1천만 고려인을 위해 몽골과 연합해 새국가를 만드는데 중국의 초강력 압박에도 대반전의 기적을 만든 이유! 세계가 응원하는 선한영향력 한국 [해외감동사연]

하늘감동 www.youtube.com

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한국의 기술진이 몽골 북부 지역에 사할린 고려인들을 위한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상의 주요 내용은 기술의 힘을 통해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하고, 사할린 고려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 한국이 몽골에서 사할린 고려인 정착지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함
  • 한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불모지를 개발 및 농업용 토지 조성
  • 중국과 일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됨
  • 신한촌이라는 새로운 도시가 탄생하여 사람들의 삶이 변화됨

인트로: "한국이 땅을 만든다고?"

영상이 시작되면서 한국이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란 발상으로 시작합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총 1천만 명의 고려인들이 귀향할 장소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발했습니다. 몽골 정부가 한국의 진심에 응답해 땅을 내줄 때, 새로운 정착지가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1부: 몽골 불모지에 도착한 한국 기술진

한국 기술진이 몽골 북부에 도착했을 때, 그 곳은 황량한 불모지였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못했지만, 기술진은 진지하게 도시를 만들기 위해 현장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측의 계획은 기존 도시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정착지를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2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술력

한국의 기술진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존 가능한 주거 공간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설계하며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저수시설도 구축하고, 농업용 토지에서 식량을 재배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했습니다. 이를 통해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3부: 사할린 고려인들의 눈물

사할린에서 온 고려인 실무단은 처음 도착했을 때, 눈물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집과 삶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이전의 힘든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눈물은 감정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4부: 중국과 일본의 본격적인 방해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중국과 일본으로부터의 방해가 발생했습니다. 중국은 몽골 한국 공동 개발 프로젝트가 지역 안정에 해를 끼칠 것이라 주장하며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계속되어 갔고, 한국 측에서는 이를 강하게 반박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5부: 신뢰로 완성되는 국가 협력

프로젝트의 성공은 한국이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과 몽골 정부는 상호 신뢰를 통해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도시가 성립하게 되었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6부: 신한촌의 탄생과 새로운 방식

한국 기술진이 완공한 신한촌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이 정착해 살아가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정과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한국의 새로운 국가 협력 방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엔딩: 책임지는 나라의 의미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한국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책임지는 나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은 어떠한 강대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지지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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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한국이 새 국가를 만든다고요? 미쳤습니까? 그건 만드는게 아니에요. >> 지금 한 선택이 역사를 바꾸고 있습니다. 무려 천만 명의 고려인 돌아갈 곳도 남을 곳도 없던 벼랑 끝에서 있던 사람들 모두가 외면했을 때 대한민국은 함께 살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몽골은 그 진심에 응답했습니다. 쓰지 못하던 땅을 내주며 말했죠.이 이 땅을 사람의 터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 그 순간부터 지독한 방해가 시작됐습니다. 중국의 지저분한 정보 공작, 일본의 한국저지 [음악] 선언. 위기는 점점

0:45 대한민국을 조여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길을 놓고 하나씩 도시를 세웠습니다. 결과는 단 하나였습니다. 사람이 먼저 정착했고 국가는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그 선택의 끝에서 벌어진 새 삶을 향한 충격적인 반전 지금 시작합니다. 잠시만 구독과 좋아요 눌러 주시고 댓글에 대한민국을 도전 화이팅이라고 남겨 주세요. 하늘 감동 이야기 시작합니다. 제 이름은 바타르입니다. 몽골 외교부 산악 국제협력 위원회 소속이죠.

1:30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이 일을 처음 맡았을 때 회의적이었어요. 사알린 고려인 귀환 문제라는게 워낙 복잡한 사안이잖아요.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얽혀 있는 역사적 문제니까요. 처음 한국 정부 대표단을 만난 건 울란바토르의 한 회의실이었습니다. 저는 통역겸 기록 담당으로 배석했죠. 회의 주제는 명확했어요. 사알린에 남아 있는 고려인 동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측 수석 대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을 한국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2:15 저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당연한 얘기였으니까요. 한국도 땅이 좁잖아요. 23,명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 거예요. 그런데 다음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어요. 몽골측 대표들도 저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죠. 새로운 정착지요. 네. 기존 도시에 흡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터전을 조성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장소로 몽골 북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저는 순간

3:02 제 귀를 의심했어요. 몽골 북부라고요? 그곳은 우리 몽골 사람들도 포기한 땅이에요. 혹한의 사막화까지 진행되고 있는 불모지죠. 인프라도 없고 사람도 살지 않아요. 몽골측 수석 대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북부 지역은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왜 하필 그곳을 선택하셨습니까? 한국측 대표가 서류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어요. 그건 위성 지도였습니다. 몽골 북부 저녁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죠. 이곳은 확실히 현재로선 척박합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

3:48 기술진이 분석한 결과 대규모 간첩과 인프라 구축으로 충분히 거주 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을 통역하면서도 믿기지 않았어요. 간척이요? 여기가 바다도 아닌데요. 그리고 인프라 구축이라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한국측은 진지했습니다. 너무나도 진지했어요. 우리는 몽골과 함께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기술과 자본, 몽골의 땅과 자원, 그리고 사린 고려인 분들의 새로운 사.이 이 세 가지가 만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4:34 회의는 그렇게 끝났어요. 몽골 정부는 검토하겠다고 했고 저는 그날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생각했죠. 이건 그냥 말뿐일 거라고. 실제로 진행될 리 없다고요. 그런데 석달 뒤 저는 몽골 북부 현장에서 있었습니다. 헬기에서 내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황량함 그 자체였어요. 끝없이 펼쳐진 매마른 땅 바람만 휘몰아치는 벌판 나무 한 그루 제대로서 있지 않았죠. 그런데 그곳에 이미 한국 기술진이 와 있었습니다. 수십명의 엔지니어들, 중장비들, 그리고 임시 숙소까지.

5:22 저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아,이 사람들 진짜 하려는 거구나.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김부장이라고 소개하더군요. 바타르 씨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그런데 정말 이곳에 도시를 만드신다는 겁니까? 김부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어요. 보기엔 아무것도 없죠. 하지만 6개월 뒤에 다시 오시면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실 겁니다. 저는 솔직히 반신반했어요. 6개월이요?이 황무지를 6개월 만에 바꾼다고요?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6:09 시작됐습니다. 측량 팀이 땅을 재고 지질 조사팀이 땅을 파헤쳤어요. 그리고 설계팀은 매일같이 회의를 했죠.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점점 놀라게 됐어요.이 사람들은 단순히 건물만 짓는게 아니었어요. 물 문제, 전기 문제, 난방 문제, 교통 문제.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있었던 거죠. 어느 날 저녁 김부장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부장님, 궁금한게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그냥 한국 안에서 받아들이면 안 되나요?

6:54 김부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했어요. 받아들이는 것과 책임지는 건 다릅니다. 우리가 만약 한국 본토에 이분들을 모신다면 그분들은 평생 이방인으로 살게 될 거예요. 언어도 문화도 생활 방식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라면 다릅니다. 새로운 시작이죠. 아무도 이방인이 아닌 곳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터전. 저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이건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었어요. 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었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현장은 매일 변했어요. 도로가 깔리기

7:42 시작했고 기초 공사가 진행됐죠.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물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었어요. 한국 기술지는 지하 수맥을 찾아내고 대규모 저수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빗물을 모으는 시스템까지 구축했죠. 저는 그걸 보면서 깨달았어요.이 사람들은이 땅을 정말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거요. 석달제 첫 번째 건물이 완성됐습니다. 그건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어요. 폭한을 견딜 수 있는 단열 시스템, 태양과 풍력을 결합한 에너지 시스템,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8:28 구조까지 모든게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었죠. 김부장이 제게 말했습니다. 바타르 씨, 이제 사알린 분들을 모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실무단이 곧 방문할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긴장했어요. 과연 사알린에서 오시는 분들이 이곳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이 낯선 땅을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이곳을 받아들이실까요?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사알린 고려인 실무단 30여명이 현장을 방문한 날이죠. 저는 그분들을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아팠어요. 대부분 연세가 많으셨어요.

9:15 80대, 90대 어르신들도 계셨죠. 그분들의 눈빛엔 기대보다 불안이 더 컸어요. 헬기에서 내리시는 그분들을 바라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은 평생을 떠돌며 사셨구나. 일본의 강제로 끌려가 사할린에서 버려지고 그곳에서 수십년을 살아오신 거예요. 이제 또다시 낯선 땅에 오신 거죠. 한 할머니가 땅을 보시며 말씀하셨어요. 여기가 우리가 살 곳이라는 겁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계셨어요. 저는 통역을 하면서도 울컥했습니다. 김부장이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했어요. 어르신, 아직은 공사 중입니다.

10:02 하지만 완성되면 다시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될 겁니다. 약속드립니다. 그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김부장을 바라보셨어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집이 생기는 겁니까? 김부장도 목이 매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네, 어르신. 여기가 어르신들의 집입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정착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걸요. 한국은 받아주는 나라가 아니라 책임지는 나라가 되려는 중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했습니다.

10:49 쓸 수 없던 땅을 쓰겠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하린 실무단이 돌아간 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어요. 저는 매일 현장을 기록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업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자신도이 프로젝트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걸 느꼈죠. 몽골은 땅이 넓습니다. 세계에서 19 번째로 큰 나라예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제한적이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인프라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혹한이 문제예요. 특히 북부 지역은 우리 몽골 사람들도 포기한 곳이에요. 겨울엔 영하

11:37 40도까지 떨어지고 여름엔 사막처럼 건조하죠. 물도 부족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늘 말해 왔습니다.이 땅은 안 된다. 그런데 한국 기술지는 달랐어요. 전혀 다른 질문을 했죠. 어느 날 김부장이 몽골측 엔지니어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저도 통역으로 배석했죠. 몽골측 책임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이 지역은 겨울이 너무 혹독합니다. 난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겁니까? 김부장이 차분하게 대답했어요. 혹한이 문제라면 호한을 견딜 수 있는

12:23 구조를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연료 공급이 어렵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석유나 가스를 끌어오려면 엄청난 비용이 될 텐데요. 그래서 자체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태양광 풍력 지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죠. 몽골측 엔지니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봤어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죠. 태양광료 겨울엔 해가 짧은데 가능합니까? 여름에 축적한 에너지를 저장합니다. 그리고 폭력으로 보완하죠.이 지역은 바람이 강하니까 오히려 유리해요. 저는 그 대화를 통역하면서

13:08 놀랐어요. 한국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죠. 바람이 강하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풍력 발전의 기회라는 거예요. 회의가 끝난 뒤 몽골측 수석 엔지니어가 제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바타르,이 사람들 정말 제 정신인가? 여기서 도시를 만들겠다는게 말이 돼? 저도 확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죠. 제 정신이 아니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포기는 커녕 더 정교한 계획을 세우고 있잖아요. 석달이 더 지났습니다.

13:54 현장은 날마다 변했어요. 가장 먼저 만들어진 건 에너지 시설이었습니다. 거대한 폭력 발전기들이 벌판에 세워지기 시작했죠. 바람이 불 때마다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어요. 그다음은 물 문제였습니다. 한국측 수자원 전문가들이 땅을 분석했어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죠. 지하 700m 지점에 거대한 수맥이 있습니다. 저는 믿을 수 없었어요. 우리 몽골 정부도 몰랐던 사실을 한국 기술진이 찾아낸 거예요. 정말입니까? 그럼 물 문제가 해결되는 겁니까? 시출을 해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14:41 분석상으론 2만 명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실제로 시추가 시작됐어요. 열흘 만에 물이 솟아올랐습니다. 깨끗한 지하수였죠. 현장에 있던 몽골 인부들이 환호성을 질렀어요. 저도 그랬죠. 김부장이 제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보셨죠?이 땅에 생명이 있었어요. 우리가 찾아낸 겁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한국은 땅을 소유하려는게 아니었어요. 땅을 살게 만들려는 거였죠. 물이 확보되자 다음 단계가 시작됐습니다. 농업용 토지 조성이었어요. 사막화된 땅에 어떻게 농사를

15:28 짓느냐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측 농업 전문가가 설명했어요. 토양 계량을 먼저 합니다. 유기물을 투입하고 미생물을 활성화시키죠. 그리고 점적 관수 시스템으로 물을 절약하면서 작물을 키웁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빠르면 6개월 늦어도 1년이면 채소 정도는 재배할 수 있어요. 몽골 농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한국 기술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시범 농장을 만들었어요. 불과 300평방미 규모였지만 거기서

16:16 상추와 배추를 키우기 시작했죠. 처음엔 아무도 관심 없었어요. 그냥 한국 사람들이 뭔가 실험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죠. 그런데 두 달 뒤 상추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요. 몽골 인부들이 모여들었어요. 다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상추를 만져봤죠. 이게 정말 여기서 자한 겁니까? 한국측 농업 전문가가 웃으며 대답했어요. 직접 맛보세요. 한 인부가 상추를 뜯어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커졌죠. 싱싱한데요. 정말 여기서 자한게 맞아요? 네.이 이 땅에서 자랐습니다.

17:02 앞으로는 더 큰 규모로 할 겁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전유를 느꼈어요. 죽어 있던 땅이 살아나고 있었어요. 한국의 기술로요. 여섯 달째 첫 번째 주거 단지가 완성됐습니다. 백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규모였죠. 건물은 단순히 추위를 막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최첨단 단열제로 외벽을 감쌌고 삼중 유리창을 설치했죠. 바닥엔 온돌 시스템이 깔렸어요. 제가 처음 그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밖은 영화 20도였는데 아는 따뜻했어요. 난방을 가동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17:49 어떻게 이렇게 따뜻합니까? 김부장이 설명했어요. 단열이 워낙 잘돼서 건물 자체가 열을 보존합니다. 그리고 지열를 활용한 온돌 시스템이 보조하죠. 에너지 효율이 일반 건물의 3배입니다. 저는 감탄했어요. 이건 단순히 집을 짓는게 아니었어요. 환경과 싸우는게 아니라 환경을 이용하는 거였죠. 그 무렵 몽골 정부 고위 관료들이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부총리도 오셨어요. 처음엔 회의적인 눈빛이셨죠. 정말 이곳에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김부장이 자신있게 대답했어요.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18:36 부총리를 비롯한 관료들을 죽어 단지로 안내했어요. 건물 안을 둘러보시던 부총리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습니다. 놀랍군요. 정말 놀라워요. 시범 농장도 보여 드렸죠.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보신 부총리가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이건 기적입니다. 우리가 포기했던 땅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어요. 김부장이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기적이 아닙니다. 기술입니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앞으로이 도시는 더 커질 겁니다. 부총리가 김부장의 손을 꽉 잡았어요. 한국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19:23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몽골 정부는 공식적으로이 프로젝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어요. 그리고 저는 기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은 땅을 빼앗지 않는다. 한국은 땅을 살린다. 하지만 저는 그때 몰랐어요.이 이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요. 그리고 그 불편함이 곧 방해로 바뀔 거라는 것도요. 일곱 달째 교통 인프라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수도 울란바토르까지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였죠. 한국 건설사들이 투입됐어요.

20:09 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중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중국측 관계자들이 현장 주변을 배하고 있더라고요.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죠. 저는 김부장에게 조용히 말했어요. 저 사람들 계속 저희 현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부장이 그쪽을 흘긋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알고 있어요. 어차피 숨길 수도 없고 숨길 이유도 없죠. 우리는 당당하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불안했어요. 중국이 단순히 관찰만 하고 있을 리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제 불안은 현실이 됐습니다.

20:56 얼마 뒤 중국 정부가 공식 성명을 발표했거든요. 몽골 한국 공동 개발 프로젝트는 지역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저는 그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어요. 시작됐구나. 방해가 시작됐어요. 사알린에서 온 사람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우려 표명 이후 현장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어요. 몽골 정부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관료들은 중국을 자극하지 말자는 의견을 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았어요. 오히려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21:41 김부장이 저에게 말했어요. 바타르 씨, 다음 주에 사할린 분들이 대규모로 방문합니다. 약 200명 정도 될 거예요. 200명이요? 그렇게 많은 분들이요? 네. 실제 정착 희망자들입니다. 직접 보고 결정하시게 하려고요. 저는 긴장됐어요. 이번 방문이이 프로젝트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만약 사알린 분들이 이곳을 거부하신다면 모든게 물거품이 될 테니. 일주일 뒤 사알린에서 온 분들이 도착했습니다. 버스 다섯 대에 나눠고 오셨죠. 저는 통역 업무 때문에 맨 앞 버스에

22:28 동승했어요. 버스 안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대부분 노인분들이셨고 젊은 사람들도 표정이 어두웠어요. 한 할아버지가 창밖을 보시며 중얼거리셨습니다. 또 낯선 땅이구만. 그 말에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이분들은 평생을 이방인으로 사셨겠구나. 일본에 끌려가 사할내 버려지고 그곳에서 수십년을 견디셨을 거예요. 이제 또다시 모르는 땅에 오신 거죠. 버스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문이 열리고 분들이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모두들 멈춰 서시더라고요. 그냥 조용히 서서 주변을

23:14 바라보셨어요. 저는 그분들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받습니다. 7개월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었어요. 건물들이 줄지어서 있고 도로가 깔려 있고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었죠. 멀리 풍력 발전기들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어요. 한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셨습니다. 여기가 우리가 살 곳입니까? 김부장이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했어요. 어르신 환영합니다. 네. 이곳이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곳입니다. 할머니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시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 한 분 두 분

24:02 우시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황했어요. 혹시 실망하신 건가? 기대에 못 미친 건가? 그런데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어요. 이분들은 슬퍼서 우시는게 아니라 감격해서 우시는 거였어요. 김부장이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완성된 주어 단지로 향했죠. 건물 앞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어요. 이게 정말 우리가 살 집입니까?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아도 되는 겁니까? 한국측 직원이 건물문을 열었어요.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24:48 들어갔습니다. 현관을지나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어요. 따뜻해. 정말 따뜻한데요. 밖은 영화 15도였는데 실내는 봄날처럼 포근했어요. 한 할아버지가 바닥을 만지작거리시더니 눈을 크게 뜨셨습니다. 이거 온돌 아닙니까? 한국식 온돌이잖아요. 김부장이 웃으며 대답했어요. 맞습니다. 어르신들이 익숙하실 거라 생각해서 모든 집에 온도를 깔았습니다. 사람들이 방방마다 돌아다니며 구경했어요. 부엌, 화장실, 침실 모든게 세 것이었고 깨끗했죠.

25:34 한 아주머니가 부엌 싱크대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어요. 평생 이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사할린에선 여섯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았거든요.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셨나 봐요. 다음으로 학교를 보여줬습니다. 아직 완공되진 않았지만 골조는 완성된 상태였죠. 젊은 엄마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공부하는 겁니까? 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2단지 안에 있습니다. 한국식 교육과 몽골식 교육을 병행할 예정이에요. 한 젊은 여성이

26:22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한국어도 가르쳐 주시나요? 저희 아이는 한국말을 못 하거든요. 당연합니다. 한국어와 러시아, 몽골러 모두 가르칠 겁니다.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그 말에 여성의 눈가가 붉어졌어요. 제 아이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니 꿈만 갔네요. 저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이분들에게 이건 단순히 이사가 아니었어요.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었던 거죠. 병원 건물도 안내했습니다. 이것도 아직 공사 중이었지만 규모가 상당했어요.

27:07 3층 건물에 최신 의료 장비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죠.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으셨어요. 여기 병원에 의사 선생님이 계십니까? 저희는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한국에서 의료진이 파견됩니다. 넥과 와, 정영외과 한의사까지 다 오십니다. 그리고 몽골 의료진도 함께 근무할 거예요. 한의사요? 정말입니까? 네. 어르신들께서 익숙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두 손을 모으시더니 절을 하셨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7:53 점심 시간이 됐어요. 한국 측에서 준비한 식사가 제공됐습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밥 전형적인 한국 가정식이었죠. 사람들이 식당에 앉아 음식을 받아들었어요. 그리고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또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김치를 집으시며 말씀하셨어요.이 맛이야.이 맛 70년 만에 먹어보는 고향 맛이야. 옆에 계시던 할머니도 오셨어요. 사할린에선 김치가 귀했어요. 배추도 구하기 힘들고 가끔 만들어 먹으면

28:38 그게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식사 내내 흐느끼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어요. 저도 눈시율이 붉어졌습니다. 이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고향을 그리워하셨을까요? 식사 후 김부장이 모두를 강당으로 안내했습니다. 200여명이 모두 앉았죠. 김부장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어요. 어르신 여러분 그리고 젊은 분들 오늘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어요. 이곳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공사가 남아 있죠.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김부장이 잠시 멈췄다가

29:26 천천히 말을 이었어요. 여러분이 이곳에 오시면 다시는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 이곳은 여러분의 집입니다. 여러분의 고향입니다. 한 중년 남성이 손을 들었어요. 저희가 여기 오면 일자리는 있습니까?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농업 축산업 건설업 서비스업 다양한 일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술 교육도 제공할 겁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는 일을 찾으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물었어요. 우리 국적은 어떻게 됩니까? 한국 사람이 되는 겁니까? 몽골 사람이 되는 겁니까?

30:11 김부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국적을 원하시면 지원하고 몽골 국적을 원하시면 그것도 가능합니다. 이중 국적도 검토 중입니다. 중요한 건 국적이 아니라 여러분이 안정적으로 사실 수 있느냐에요. 노인 한 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일본에선 조선인이라 차별받고 러시아에선 일본인이라 의심받았죠. 이제 우리도 집이 생기는 겁니까? 김부장의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네, 어르신. 여기가 어르신들의

30:57 집입니다. 누구도 여러분을 이방인이라 부르지 않을 겁니다. 강당이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그리고 곧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쳤죠. 저도 일어나서 박수를 쳤어요. 그날 저녁 사알님 분들이 돌아가기 전에 한 할머니가 저를 찾아오셨어요. 젊은이 통역하시는 분이죠. 네, 그렇습니다. 한국분들께 전해 주세요. 우리는 꼭 올 겁니다. 이곳에 와서 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생을 마감하겠습니다. 할머니의 눈빛은 확고했어요.

31:43 더 이상 떠도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결함이 느껴졌죠. 저는 김부장에게 그 말을 전했어요. 김부장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겠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버스가 떠나는 걸 배웅하면서 저는 깨달았어요. 이건 단순한 정착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걸요. 한국은 받아주는 나라가 아니라 정착을 책임지는 나라가 되려는 중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날 밤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은 강한 나라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책임지는 나라다. 그리고 그게 더 위대하다. 하지만 저는 몰랐어요.이

32:29 감동적인 순간이 누군가에겐 위협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걸요. 그리고 그 위협이 곧 현실이 될 거라는 것도요. 그때부터 방해는 시작됐습니다. 사알린 고려인 방문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어요. 국제 뉴스에서이 프로젝트가 언급되기 시작했거든요. 처음엔 긍정적인 보도였어요. 인도적 지원, 역사적 화해, 국제 협력 같은 단어들이 나왔죠. 하지만 일주일도 안 돼서 논조가 바뀌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가 먼저 움직였어요. 저는 아침에 출근해서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33:15 한국의 몽골 진출, 지역 세력 균형 깨뜨릴구려. 기사 내용은 더 노골적이었어요. 한국이 몽골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사알린 고려인 정착은 명분일 뿐. 실제로는 군사적 거점 확보가 목적이다. 이런 식이였죠. 저는 황당했어요. 군사적 거점이라니요. 여기는 노인들과 가족들이 살 정착촌인데요. 김부장에게 기사를 보여줬어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완전히 사실과 다른데요. 김부장이 기사를 읽더니 한 숨을 쉬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입니다. 중국 입장에선 몽골과

34:01 한국이 가까워지는게 달갑지 않죠.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까지 고려하면요.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할 일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상황은 악화됐어요. 이틀 뒤엔 일본 언론이 가세했습니다. 한국 사할린 문제 정치적으로 이용. 일본 언론은 다른 각도로 접근했어요. 사알린 고려인 문제는 원래 일본이 책임져야 할 역사적 과제인데 한국이 끼어들어 일본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거였죠. 저는 어이가 없었어요. 일본이 언제 사린 고려인을 도았다고요? 오히려 그분들을 버리고

34:49 간 장본인이잖아요.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진지했습니다. 외교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말했어요. 한국의 일방적인 세력 확장은 동부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력 확장이라는 표현이 제 귀에 거슬렸어요. 우리는 사람을 구하고 있는 건데 그게 세력 확장이라고요? 며칠 뒤 더 큰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중국 정부가 몽골의 특사를 보낸 거예요. 저는 그 회담에 배석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들은 바로는 중국이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었다고 해요. 몽골 마이너스 한국 협력 프로젝트를

35:34 재검토하라. 그렇지 않으면 양국 경제 협력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사실상 협박이었죠. 중국은 몽골의 최대 교역국이에요. 몽골 경제의 절반 이상이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고 있죠. 그런 중국이 경제 카드를 꺼낸 거예요. 몽골 정부 내부에서 동요가 이었습니다. 저도 느낄 수 있었어요. 회의실 분위기가 무거워졌고 관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죠. 어느 날 몽골 외교부 차관이 저를 불렀어요. 바타르 솔직히 물어보겠네. 자네는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36:20 사할린 고려인들에게도 좋고 우리 몽골에게도 좋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반대하고 있어. 경제 제재까지 언급했다네. 그렇다고 멈춰야 합니까? 우리가 잘못한게 뭡니까? 차관이 한 숨을 쉬었어요. 잘못한 건 없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을 무시할 수 없어. 우리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 국민들이 고통받는다네. 저는 답답했어요. 옳은 일인데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요. 그날 밤 저는 김부장을 만났습니다. 현장 사무실에서 혼자 서류를 보고 있더라고요. 힘드시죠?

37:06 김부장이 고개를 들어 저를 봤어요. 피곤한 표정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생각보다 강하게 나오네요. 몽골 정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경제 제재 얘기까지 나왔거든요. 김부장이 창밖을 바라봤어요. 어둠 속에서 건설 중인 건물들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바타르 씨, 제가 왜이 일을 하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국가의 명령이니까요. 아닙니다. 선택이에요. 저도 처음엔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알린 어르신들을 만나고 나서 바뀌었죠. 김부장이 책상 서랍을 열어 사진 한

37:51 장을 꺼냈어요. 한 할머니가 웃고 계신 사진이었습니다. 이분은 박순자 할머니십니다. 올해 92세요. 일곱살 때 일본에 끌려가셨대요. 평생을 사할린에서 사셨고요. 이분이 제게 말씀하셨어요.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따뜻한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요. 저는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그래서 저는 멈출 수 없어요. 중국이 뭐라 하든 일본이 뭐라 하든 박할머니 같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그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한국은 정말 다르구나. 이익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구나. 다음날 국제 회의가

38:38 열렸습니다. 몽골 마이너스 한국 협력 프로젝트를 논의하는 자리였죠. 중국과 일본도 참석했어요. 저는 통역으로 회의장에 들어갔습니다. 분위기는 냉랭했어요. 중국 대표단과 일본 대표단이 한편에 앉아 있고 한국과 몽골 대표단이 반대편에 앉았죠. 중국측 대표가 먼저 발언했습니다. 우리는이 프로젝트가 지역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몽골 북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긴밀한 경제 협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일본 대표가 거들었어요. 사알린 문제는 복잡한 역사적 사안입니다.

39:24 일방적인 접근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한국측 수석 대표가 침착하게 대응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위협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들에게 집을 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중국 대표가 날카롭게 반박했어요. 집을 준다는 명분으로 군사적 거점을 만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군사 기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계획이 전혀 없어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한국 대표가 서류를 꺼냈어요. 여기 설계도가 있습니다. 주어단지, 학교, 병원, 농업 시설 전부 공개하겠습니다. 직접 확인하십시오.

40:11 회의장이 조용해졌어요. 중국 대표가 서류를 받아 후받습니다. 일본 대표가 다른 각도로 공격했어요. 경제적 타당성은 검토하셨습니까?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대표가 차분하게 답했습니다. 우리는 손익을 따지는게 아닙니다.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겁니다. 감상적인 접근은 위험합니다. 감상이 아닙니다. 책임입니다. 그 말에 회의장이 다시 조용해졌어요. 저는 통역하면서도 한국 대표의 단호함에 감탄했습니다. 몽골측 대표도 입을 열었어요. 몽골은

40:57 주권 국가입니다. 우리 땅에서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결정합니다. 한국과의 협력은 우리의 선택이에요. 중국 대표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경제적 결과를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협박입니까? 현실입니다. 긴장감이 감돌았어요. 저는 숨을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한국 대표가 다시 말했어요. 중국과 일본이 우려하시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그럼 결과를 감수하셔야 할 겁니다. 감수하겠습니다. 우리는 침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어 있던 곳에 삶을

41:44 만듭니다. 그게 잘못됐다면 세상이 잘못된 겁니다. 회의는 결렬됐어요. 중국과 일본 대표단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김부장을 만났어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중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면 몽골이 힘들어질 텐데요. 김부장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몽골만 힘든게 아니에요. 우리도 타격을 받을 겁니다. 하지만 바타르 씨 세상엔 돈보다 중요한게 있어요. 뭔데요? 신의입니다. 우리가 사알린 어르신들께 약속했잖아요. 집을 드리겠다고.

42:30 그 약속을 지키는게 더 중요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전율했어요.이 사람들은 진짜구나. 말만이 아니라 진짜로 책임지려는 거구나. 며칠 뒤 중국이 실제로 움직였습니다. 몽골산 석탄 수입을 30% 줄이겠다고 발표한 거예요. 몽골 경제의 직격탄이었죠. 몽골 언론이 들끌었어요.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왜 중국을 자극했느냐? 한국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다. 저도 불안했어요.이 프로젝트가 정말 좌초되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때 한국이 움직였습니다.

43:16 한국 정부가 긴급 경제 지원 패키지를 발표한 거예요. 몽골산 석탄을 중국이 줄인만큼 한국이 수입하겠다고 했죠. 게다가 더 높은 가격으로요.뿐만 아니라 몽골 관광산업 지원, 인프라 투자 확대, 기술 협력 강화까지 제시했어요. 몽골 국민들이 놀랐습니다. 저도 놀랐고요. 한국이 진짜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중국 압박을 이렇게 막아주다니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어요. 정부 비난이 사라지고 오히려 한국에 대한 고마움이 커졌죠. 저는 그날 밤 일기에 썼습니다. 중국은 협박으로

44:01 움직이고 일본은 비난으로 막으려 했다. 하지만 한국은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게 차이구나. 프로젝트는 계속됐습니다. 오히려 더 빨라졌어요. 한국에서 추가 인력과 장비가 들어왔고 몽골 정부도 적극 지원했죠. 하지만 저는 알았어요. 이건 끝이 아니라는 걸요. 중국과 일본이 이대로 물러설 리 없었으니까요. 더 큰 압박이 올 거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국가는 이익으로 움직이지만 신뢰로 완성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중국의 경제 제재가 현실화되면서 몽골 내부가 요동쳤어요.

44:46 국회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고 언론은 연일이 문제를 다뤘죠. 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어느 날 몽골 국회에서 긴급 청문회가 열렸어요. 저도 참관인 자격으로 들어갔죠. 의원들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한 의원이 외교부 장관을 향해 소리쳤어요. 장관님, 중국과의 관계가 이렇게 나빠진 책임을 어떻게 지실 겁니까? 석탄 수출이 줄어들면서 광산 노동자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입니다. 장관이 침착하게 답변했습니다. 한국이 그 부분을 보전해 주기로

45:31 했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조건으로요. 다른 의원이 반박했어요. 한국을 믿을 수 있습니까? 중국은 우리와 수십년간 거래해 온 파트너입니다. 한국은 고작 몇 개월 된 관계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신중한게 아니라 위험한 겁니다. 중국을 적으로 돌리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회의장이 순렁했어요. 많은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죠. 저도 솔직히 걱정됐어요. 중국은 강대국이고 몽골은 작은 나라예요. 맞서 싸우기엔 너무 버거운 상대죠. 그때 한월로 의원이

46:18 일어났습니다. 70대 후반의 노의원이었어요. 목소리는 떨렸지만 힘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저는이 나라가 독립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91년 전 일이죠. 그때도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었어요.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요. 회의장이 조용해졌어요. 우리는 늘 선택해야 했습니다. 어느 강대국 편에 설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국은 우리에게 편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함께 서자고 했죠. 누군가 물었어요. 그게 무슨 차이입니까? 큰 차이입니다.

47:03 중국은 우리 땅의 자원을 원했고 러시아는 우리의 전략적 위치를 원했어요. 하지만 한국은 우리의 미래를 함께 만들자고 합니다. 이게 같습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맞아요. 한국은 달랐어요. 청문회가 끝난 뒤 저는 김부장을 만났습니다. 현장 사무실에서 설계도를 보고 있더라고요. 국회 분위기가 안 좋더군요. 김부장이 고개를 들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에요. 하지만 의원들 중 일부는 프로젝트 중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단할 수

47:48 없어요. 이미 사알린 분들이 이사 준비를 하고 계시거든요. 저는 놀랐어요. 벌써요? 아직 공사도 다 안 끝났는데요. 공사는 6개월 뒤면 1차 완됩니다. 첫 번째 단지에 500가구가 입주할 수 있어요. 그분들이 먼저 오시는 겁니다. 만약 몽골 정부가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부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하지만 포기는 없습니다. 그 단호함에 저는 또 한 번 감동받았어요. 며칠 뒤 몽골 정부 내각 회의가 열렸습니다.

48:34 한국 마이너스 몽골 협력 프로젝트의 향방을 결정하는 자리였죠. 저는 직접 참석할 수 없었지만 회의 내용을 전해들 회의는 격렬했다고 합니다. 찬성파와 반대파가 팽팽히 맞었대요. 반대파 장관이 말했어요. 중국은 우리 수출의 60%를 차지합니다.이 관계를 망치면 국가 경제가 무너져요. 찬성파 장관이 반박했죠. 그래서 영원히 중국 눈치만 봐야 합니까? 한국은 우리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줬어요. 선택지가 아니라 위험입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토론이 계속됐어요.

49:22 그러다 총리가 한국측에 질문을 던졌대요. 한국 정부에 묻겠습니다. 만약 중국의 압박이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를 지킬 수 있습니까? 한국측 대표가 답했다고 해요. 군사적으로 지키겠다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군사 동맹을 제한하는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해요? 중국이 몽골에 가하는 경제적 타격을 한국이 모두 메우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몽골의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도록 돕겠어요.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겁니다.

50:08 반대파가 비웃었대요. 말은 쉽죠? 실제로 가능한 겁니까? 가능합니다. 이미 구체적인 플랜이 있어요. 한국측이 서류를 제출했어요. 그 안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몽골산 히토류 전량 구매 계약 관광산업 육성 지원 제조업 합작 투자 기술 교육 프로그램 청년 고용 창출 사업 총리가 서류를 보더니 놀랐대요.이 이 정도 규모면 천문학적인 투자인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솔직히 한국이 얻는게 뭡니까? 한국 대표가 잠시

50:55 침묵했다가 말했어요. 신뢰를 얻습니다. 신뢰요? 네. 몽골이 한국을 믿어 주는 것. 그게 우리가 얻는 가장 큰 자산이에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죠. 회의장이 조용해졌대요. 많은 장관들이 생각에 잠겼다고 합니다. 총리가 다시 물었어요. 조건이 있습니까? 분명히 뭔가 요구하실게 있을 텐데요. 한국 대표가 고개를 저었대요. 군사 기지는 세우지 않습니다. 자원 독점도 하지 않습니다. 개발 기술은 몽골과 공동 소유합니다. 정착지는 다국적 공동 자치로 운영합니다. 그럼 한국이 얻는 건

51:42 뭡니까? 파트너를 얻는 겁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성장하는 거죠. 그 말에 반대파 장관도 할 말을 잃었대요. 회의 결과는 찬성이었습니다. 몽골 정부는 한국과의 협력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어요.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김부장에게 달려갔죠. 그랬습니다. 정부가 승인했어요. 김부장이 웃었어요. 다행이네요.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진짜 시작이요? 지금까지 한게 뭡니까? 준비였죠.

52:27 이제부터는 실제로 사람들이 오십니다. 삶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날 저녁 저는 현장을 걸었습니다. 석달 전만 해도 황무지였던 곳이 이제는 도시의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어요. 건물들이 줄지어서 있고 가로등이 켜져 있고 도로에는 차들이 다니기 시작했죠. 한 몽골 노동자가 제게 다가왔어요. 바타르 씨, 이거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뭐가요?이 모든 게요. 석달 전만 해도 저는 믿지 않았어요. 여기에 도시가 생긴다는 걸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정말로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한국 기술이 대단하죠?

53:15 기술도 대단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게 있어요. 뭔데요? 약속을 지킨다는 거요. 한국 사람들은 말한 걸 정말로 해요. 우리가 평생 겪어온 사람들과는 다르다니까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요. 한국은 달랐어요. 이튿날 한국 정부가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몽골과의 경제 협력 패키지였죠. 규모는 50억 달러. 몽골 입장에선 엄청난 금액이었어요. 뉴스가 나가자 몽골 국민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한국이 진짜 우리를 도와주네. 중국보다 낫잖아. 이제 중국 눈치 안

54:02 봐도 되는 거 아니야? 여론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처음엔 회의적이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한국을 지지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추가 압박이 들어왔어요. 몽골과의 국경 건문을 강화한다. 물류 통관을 지연시킨다. 이런 시기였죠. 일본도 가세했어요. 국제 언론을 통해 한국을 비난했습니다. 한국의 팽창주의가 동부가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몽골 정부가 공식 반박 성명을 냈거든요. 몽골은 주권 국가이며 우리의 협력 대상을 선택할 권리가

54:48 있다. 한국과의 협력은 평화적이며 상호 이익적이다. 외부의 간섭을 거부한다. 저는 그 성명을 보고 놀랐어요. 몽골이 중국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맞선 건 처음이었거든요. 김부장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몽골이 중국에게 나올 수 있어요? 혼자서는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죠. 한국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하죠. 하지만 바타르 씨, 세상에 위험 없는 선택이 어디 있습니까? 중요한 건 올바른 선택이에요. 저는 그 말에

55:35 깊이 공감했어요. 일주일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럽 연합이 성명을 발표한 거예요. 한국 몽골 협력 프로젝트는 인도적이며 건설적이다. 국제 사회가 지지해야 할 모범 사례다. 미국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어요. 한국의 책임 있는 국제 협력을 환영한다. 중국과 일본이 고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한국을 압박하려 했지만 오히려 국제 여론이 한국 편이 된 거예요. 저는 깨달았어요. 한국이 처음부터 투명하게 모든 걸 공개했기 때문이라는 걸요. 숨길게 없으니 떳떳한 거죠. 프로젝트 착공

56:21 8개월째 첫 번째 입주가 시작됐습니다. 사할린에서 500가구가 도착한 거예요. 저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버스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사람들이 하나씩 내렸어요. 노인분들, 젊은 부부들, 아이들. 한 할머니가 건물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이게 우리 집입니까? 정말 우리가 여기서 살아도 되는 겁니까? 김부장이 할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네, 어르신, 이제 다시는 떠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가 어르신 집이에요.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땅을 만지셨어요. 그리고 목노아 오셨습니다.

57:08 저도 울었어요. 주변에 있던 몽골 노동자들도 울었죠. 그날 저녁 저는 일기에 썼습니다. 오늘 나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봤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그 힘은 무기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는 것도 나는 이제 한국을 다르게 기록합니다. 첫 입주 이후 석달이 흘렀어요.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500 가구가 1천 가구가 됐고 천 가구가 2천 가구가 됐죠. 사알린에서 계속 사람들이 왔어요. 저는 매일 아침 정착촌을 걸었습니다.

57:54 처음엔 낯설고 조용했던 거리가 이제는 생기로 가득했어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노인분들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상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었죠. 어느 날 아침 한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정착촌 입구 벤치에 앉아 계시더라고요. 할아버지 아침부터 나오셨네요. 할아버지가 웃으셨어요. 여기 앉아 있는게 좋아서 그래. 사람들 오가는 거 보는게 재미있거든. 사알린에서는 이렇게 못 하셨어요? 거긴 추워서 밖에 못 나갔지. 여긴 따뜻해. 집도 따뜻하고 거리도 살만하고 할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시며

58:40 말씀하셨어요. 평생 남의 땅에서 살았어. 일본 땅, 러시아 땅. 근데 여긴 달라. 여기는 우리 땅이야. 우리가 주인이라니까. 저는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래요. 이곳은 이분들의 땅이었어요. 학교도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개교식날 저도 참석했어요.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어요. 한 엄마가 제 옆에서 있었어요. 눈물을 닦으시더라고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냥 기뻐서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걸 볼 줄은 몰랐거든요.

59:27 사알리네는 학교가 없었어요. 있긴 했죠. 하지만 한국어로 가르치는 학교는 없었어요. 우리 아이는 러시아도 서툴고 한국어도 몰라요. 중간에 낀 아이였죠. 이제는 다르겠네요. 네. 여기선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 역사도 배운대요. 우리 아이가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예요. 개교식에서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이 학교는 여러분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몽골 시민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겠습니다.

1:00:12 학부모들이 박수를 쳤어요. 저도 같이 쳤죠. 병원도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의사들과 몽골 의사들이 함께 일했어요. 어느 날 병원을 둘러보다가 한국인 의사를 만났습니다.이 원장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원장님, 여기 오시느라 힘드셨죠?이 이 원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어요. 힘든게 아니라 보람 있어요. 서울에 있을 땐 환자가 너무 많아서 한 사람 한 사람 제대로 못 봤거든요. 여긴 달라요. 시간을 갖고 진료할 수 있어요. 환자들은 어떤가요? 대부분 노인분들이세요.

1:00:58 오랫동안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셨어요. 어제 한 할머니가 오셨는데 10년 넘게 허리 통증을 참고 사셨대요. 제대로 진료받을 곳이 없었던 거죠. 치료는 잘되셨어요? 한의학 치료와 물리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어요.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평생 이렇게 친절한 의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요. 저는이 원장의 얼굴에서 진심을 봤어요.이 사람은 돈 때문에 여기 온게 아니었어요. 정말로 사람을 돕고 싶어서 온 거였죠. 농업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시범 농장에서만 장물을 키웠는데 이제는 대규모로 확장됐어요.

1:01:46 상추, 배추,무, 토마토 다양한 채소가 자라고 있었죠. 한국에서 온 농업 전문가가 몽골 농부들을 가르쳤어요. 저도 교육 현장을 취재했습니다.이 땅에서 정말 농사가 됩니까? 한 몽골 농부가 의아해 하며 물었어요. 전문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보세요. 이미 잘하고 있잖아요. 불가능한게 아니었어요. 방법을 몰랐을 뿐이죠. 우리는 평생이 땅은 안 된다고 배웠거든요. 이제는 다시 배우셔야 해요.이 땅도 살 수 있다고요. 농부가 상추를 쓰다듬으며 감탄했어요. 신기하네요.

1:02:33 정말 신기해요.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한국은 정말 대단하구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구나. 하지만 모든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에요. 여전히 중국과 일본은 불편해했죠. 중국 언론은 계속 비난 기사를 냈어요. 한국의 팽창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몽골이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정착촌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 바빴고 몽골 정부는 한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했죠.

1:03:19 어느 날 국제 언론이 이곳을 취재하러 왔어요. BBC, CNN, 알자지락 유명 언론사들이었죠. 저도 통역으로 참여했습니다. 기자들이 정창민들을 인터뷰했어요. 한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여기 생활이 어떠십니까? 할머니가 화나게 웃으셨어요. 좋아요. 너무 좋아요. 평생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우리 은인이에요.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요. 끝까지 책임져졌죠. 다른 기자가 젊은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1:04:05 남편이 대답했어요. 여기서 농사를 배우고 있어요. 땅도 분양받았고요. 아이들 키우면서 여기서 평생 살 겁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인이 단호하게 말했어요. 상관없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준 적이 없어요. 한국만이 우리를 도와줬죠. 우리는 한국을 믿어요. 기사가 나가자 국제 여론이 또 한번 움직였습니다. 이번엔 찬사였어요. 한국의 인도적 프로젝트, 새로운 국제 협력의 모델,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도 원칙을 지킨 한국. 사람 중심의

1:04:51 외교. 한국이 보여준 새로운 길. 중국과 일본이 점점 더 고립됐어요. 압박하면 할수록 한국의 평판만 올라갔죠. 1년이 지났습니다. 정착촌 이름도 정해졌어요. 신한촌. 새로운 한인 마을이라는 뜻이었죠. 개촌식 날이었어요. 수천 명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사할린 고려인들, 몽골 주민들, 한국 관계자들, 그리고 저도 있었죠. 몽골 대통령이 연설했어요. 오늘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국경보다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만든 거죠. 신한초는 몽골과 한국의 우정을

1:05:37 상징합니다. 한국 대사도 연단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지만 책임지는 나라입니다. 신한초는 그 약속의 결과예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어요. 저도 박수를 쳤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요. 저녁에 김부장과 마지막 대화를 나눴어요. 김부장은 곧 한국으로 돌아가실 예정이었거든요. 부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부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어요. 고생이 아니었어요.

1:06:23 영광이었죠.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저 혼자 한게 아니에요. 한국 정부, 몽골 정부, 그리고 바타르 씨 같은 분들이 함께했죠. 부장님은 앞으로 뭘 하실 겁니까? 비슷한 프로젝트가 또 있어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을 위한 거예요. 그쪽도 도와야죠. 저는 감탄했어요.이 사람은 멈추지 않는구나. 부장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보세요.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한국이 얻는게 뭡니까? 김부장이 창밖을 바라봤어요. 불켜진 신한촌이 보였습니다. 저기 보이세요? 저 불빛들. 네. 저

1:07:11 불빛 하나하나가 가정이에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죠. 따뜻한 집에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그게 우리가 얻는 겁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전부예요. 그리고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울었어요. 정말로이 사람들은 달랐어요. 며칠 뒤 저는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편지였죠. 나는 몽골정부 협력위원 바타르입니다.이 편지는 1년 전 시작된 프로젝트의 기록이에요. 한국은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군사력으로 보면 중국에 못 미치고

1:07:57 경제 규모로 보면 일본에 뒤쳐지죠. 하지만 한국은 책임지는 나라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여전히 불편해합니다. 한국이 세력을 확장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이미 늦었어요. 이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고 노인들이 웃고 가족들이 행복해 하고 있어요. 국경보다 삶이 먼저인 도시가 생겼죠. 저는 이제 한국을 다르게 기록합니다. 한국은 땅을 빼앗지 않습니다. 한국은 땅을 살립니다. 한국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함께 섭니다. 한국은 압박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1:08:42 신뢰합니다. 이건 확장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새로운 국가의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확신합니다.이 이 방식이 결국 이길 거라고요. 왜냐하면 사람은 힘보다 신뢰를 따르니까요. 저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몽골 외교부에 제출했습니다. 공식 보고서로 말이죠. 그날 밤 저는 신한촌을 마지막으로 걸었어요. 거리는 조용했지만 따뜻했어요. 창문마다 불빛이 세어나왔죠. 한 집 앞을 지나는데 안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어요.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있는 것 같았죠.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미소지였습니다.

1:09:30 이게 답이구나. 이게 한국이 만들고 싶었던 거구나. 강한 나라가 아니라 책임지는 나라.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하는 나라. 그런 나라. 그리고 저는 이제 압니다. 세상은 결국 그런 나라를 기억할 거라는 걸요. 여러분, 긴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떠셨나요?이 이 이야기가 여러분 마음속에 작은 불꽃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대한민국이 보여준이 새로운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하늘감동 채널은

1:10:16 다음에도 더 좋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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