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광구 앞에서 결국 침묵한 일본, 한국의 대반격에 판이 완전히 뒤집힌 진짜 이유!”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2025년 6월 20일 일본이 50년을 기다려 온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날입니다. 종이 한 장만 보내면 한국과 묶여 있던 협정을 끝낼 수 있는 날이었죠. 그런데 그날 일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통보 연권, 입장 발표 연건. 심지어 눈평마저도 연건이었습니다. 혹시 날짜를 까먹었던 걸까요? 아닙니다. 그 조항은 일본 외무성이 50년 동안 손해 쥐고 관리해 온 문서입니다. 까먹을 수가 없는 구조예요. 그렇다면 그 권리에 대한 관심이 식은 걸까요? 그것도 아니었어요. 1년 전에도 일본 외무상은 국회에 나와 협정 속 그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중요했던 거죠. 그렇다면
0:45 협정을 끝내면 오히려 손해라서였을까요? 아니요. 정반대입니다. 지금 국제법 흐름대로 선을 다시 그으면 그 바다의 90%가 일본 몫시라는게 일본측 주장이었거든요. 일본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끝내는 순간 90%를 가져갈 수 있는 나라가 끝낼 수 있게 된 첫날에 입을 굳게 담은 겁니다. 도대체 왜 일본은 아무런 말도 못 했던 걸까요? 그 해답은 바로 협정문 조항 한 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항은 사실 일본보다 우리한테 더 중요해요. 끝까지 보시면 그 조항 한 줄이 어떻게 우리 지갑까지 뒤흔드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답부터 드리면 열쇠가 두 개였습니다. 그 협정에는
1:32 한쪽이 원한다고 바다가 열리는 구조가 아예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이 한마디로는 아무것도 설명이 안 돼요. 일본이 왜 자기 손에 열쇠까지 그대로 놔뒀는지, 그 열쇠가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직접 만져 보셔야 합니다. 칠광고의 공식 이름은 한일 공동 개발 구역 줄여서 J디지트입니다.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 사이에 뾰족하게 걸쳐 있는 삼각형 구역이에요. 면적이 82,557제곱km 오후 서울 면적에 124배 남한 전체 면적에 82%에 해당합니다. 바다 위에 그은선 몇 개 안에 남한만 한 덩어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셈이죠.이 이 구역에서 한국은 혼자
2:17 시추선 한척 띄울 수 없고 일본도 똑같습니다. 탐사도 시추도 생산도 양쪽이 함께 하기로 되어 있고 실제로 바다를 파는 회사조차 양쪽이 하나씩 지정하게 돼 있어요. 한쪽이 손을 놓아 버리면 남은 한쪽은 그냥 서서 바다만 바라봐야 해요. 자물소에는 하나인데 열쇠 구멍이 두 개인 문인 거죠. 그럼이 문은 언제까지 잠겨 있는 걸까요? 그 시간표를 협정 31조가 못 박아 놨습니다. 유효 기간 50년 협정이 발효된 날이 1978년 6월 22일이니까 50년이 채워지는 날은 2028년 6월 22일이에요. 그런데 종료 통보는 만료 3년 전부터 할 수 있게 돼 있었습니다. 그 첫날이 바로
3:02 2025년 6월 22일이었던 겁니다. 만기가 없는 전기 예금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가입하고 나면 50년 동안은 해지 자체가 안 됩니다. 50년이 다 되어 갈 무렵는 언제든 해지 신청서를 낼 수 있어요. 그런데 신청서를 끝내 안 내면 어떻게 될까요? 돈은 그 계좌에 그대로 남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자동으로 다시 묶기는 거죠. 반대로 신청서를 내면 그때부터 3년을 더 기다렸다가 빠져나가고요. 그러니까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2028년 6월 22일은 결전의 날이 아니에요. 2025년에 통보서를 보냈다면 3년 뒤날 끝난다는 아주 단순한 뺄셈에서 나온 날짜입니다.
3:48 그런데이 날짜들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1965년 6월 22일 한일 기본 조약이 서명됐습니다. 1978년 6월 22일 칠광고 협정이 발효됐습니다. 그리고 2028년 6월 22일 그 협정의 50년이 채워집니다. 두 나라를 묶은 매듭이 세 번 다 같은 날짜에 걸려 있어요. 우연 치고는 참 묘하죠. 자, 그럼이 열쇠 두 개짜리 문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요? 힘없는 나라가 사정사정에서 얻어낸 물건이 아닙니다. 그때 억울해 했던 쪽은 오히려 일본이었어요. 1969년 UN 아시아 극동경제위원회 ECA가 보고서 하나를 내놓습니다. 미국 지질학자 케네스 에머리가이 조사단이 동중국회 대륙을 훑어보고
4:34 내린 결론은 짧았어요.이 일대의 대규모 석유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검은 황금이라는 말이 신문 지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던 나라에서 그 소식이 어떻게 읽혔을지는 짐작이 가시죠. 그 보고서를 가장 빠르게 낚아챈 정부가 한국이었습니다. 1970년 6월 이낙선 상공부 장관이 대륙 광부 설정을 발표합니다. 해적 왕물 자원 개발법을 만들고 제주도 남쪽 바다에 7번 광구라는 이름을 붙여서 일본보다 먼저 깃발을 꽂았어요. 그런데 1970년에 한국이 그 깃발 말고 손해 준게 뭐였을까요? 광구를 그려 넣은지도 한 장. 그리고이 광구가 우리 것이라고 적어 놓은 법률 한 장이었어요. 사실상
5:21 종이 두 장이 전부였습니다. 심의 시추 기술 없고 쏟아부을 자본 없고 유전을 찾아본 경험은 아예 처음이었어요. 당시 우리 1인당 국민 소득이 300달러에 못 미치던 시절이잖아요. 바다 밑으로 수천미터를 뚫는 작업은 그 무렵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나라들만 하던 일이었거든요. 깃발은 꽂았는데 팔 방법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한국 정부가 꺼내던 카드가 좀 뜻밖에 불과 25년 전까지이 땅을 지배했던 나라 일본에게 같이 파자고 손을 내민 거예요. 자존심을 접은게 아니라 접어서 챙긴 겁니다. 1974년 1월 30일 서울에서 협정에 서명했고 4년 반이 지난 1978년 6월 22일에야 발효됐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6:07 그림이 하나 그려지죠. 기술도 돈도 없던 나라가 강대국 옆에 끌려가서 도장을 찍어 준 계약. 누가 봐도 아쉬운 쪽은 한국이었죠.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국회의법 조사처는이 협정을 두고 당시 국제법 기조가 대륙 자연 연장론이었던만큼 상대적으로 한국에 유리하게 체결된 협정이었다고 정리합니다. 증거는 두 나라가 도장을 찍는 속도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한국은 서명하고 4개월 만에 국회 비준을 끝냈습니다. 일본은 그 비준 하나에 4년 반을 썼습니다. 같은 종이 한 장을 두고 한쪽은 4개월, 다른 쪽은 4년 반이었죠. 왜 그렇게 미뤘을까요? 자기 앞바다를 통째로 내줬다는 반발이 일본 안에서
6:53 터져 나왔고 마침 UN 해양법 회의가 돌아가는 중이라 판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지켜봐야 했거든요. 사인은 해놓고 도장은 서랍에 넣어둔 4년이었습니다. 서울은 빨리 굳이자는 쪽이었고 도쿄에는 억울하다는 기류가 흘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니까이 협정은 일본이 얻어낸게 아니라 일본이 마지못해 받아든 쪽에 가까웠던 거죠. 그렇게 4년을 끌다 결국 도장을 꺼낸 1978년 협정문의 그 조항은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어느 쪽도 혼자서는이 문을 열 수 없다. 그 한 줄이 50년 뒤에 어떤 위력을 갖게 될지 그때는 양쪽 다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이 바다의 90%가 일본 몫시라는 말이
7:41 나옵니다. 같은 바다, 같은 협정문인데 어쩌다 숫자가 이렇게 달라진 걸까요? 바다가 움직인게 아닙니다. 그 바다를 재는 자가 바뀌었어요. 그 자가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아야 일본이 왜 90%를 눈앞에 두고도 손을 못 뻗는지가 풀리거든요. 바다를 재는 쟤는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자연 연장론, 다른 하나는 중간선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벌써 머리가 아프시죠? 그런데 마당 하나만 떠올리시면이 이야기는 30초 만에 끝납니다. 집 뒤에 넓은 마당이 하나 딸려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우리 집에서 깔기 시작한 잔디가 옆집, 담장 코 앞까지 쭉 깔려 있어요. 동네에서 예전부터 쓰던 자는 이랬습니다. 잔디가 이어진
8:26 데까지가 그 집 마당이다. 그러니까 담장 바로 앞까지 우리가 썼죠. 그런데 어느 날 동네 규칙이 바뀝니다. 새로 들어온 자는 잔디를 아예 쳐다보지 않아요. 우리 집 벽과 옆집 사이를 자해서 딱 절반 거기가 경계라는 겁니다. 땅은 1cm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를 바꿔되는 순간 어제까지 우리 마당이던 절반이 옆집 것이 되는 거죠. 칠광고에서 벌어진 일이 정확히 이겁니다. 1970년대 국제법이 손에 들고 있던 건 잔디를 재는 자였어요. 육지에서 바다 밑으로 대륙분기 자연스럽게 뻗어 나간 데까지가 그 나라 몫시라는 논리. 이게 자연 연장론입니다. 그럼 우리 쪽 잔디는
9:12 어디까지 이어져 있었을까요? 제주도 남쪽 바다 밑은 수십 안팎에 완만한 대륙분기 한참을 이어지다가 일본 쪽에 가서야 오키나와 해굴을 만나 2,000m 아래로 뚝 떨어집니다. 잔디가 끊기는 자리가 일본 코아피였던 거죠. 1969년 북회 대륙 사건에서 국제 사법 재판소는이 자연 연장 쪽 논리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1970년에 한국이 종이 두 장만 들고도 당당했던 배경에는이 판결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세 개가 쓰는 자가 조금씩 바뀝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다 지형을 일일이 따져 재는 것보다 해안선에서 거리를 재는 쪽이 다툼이 훨씬 적었거든요.
9:59 1985년 리비아와 몰타 사건에서 흐름이 한번 흔들렸고 38년이 더 지난 2023년 니카라고와 콜롬비아 사건에서는 200캐리 안쪽이라면 거리 기준이 앞선다는 쪽으로 정리됐습니다. 50년 사이에 자가 두 번 갈린 셈입니다. 한국이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서 있었는데 세계가 들고 온 자가 바뀐 겁니다. 2024년 2월 가미카와 요코 당시 일본 외무상은 국회에서 중간선에 의한 경계 획정이 공평한 해결이라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세자를 대고 선을 그으면 칠광고의 90%가 일본 쪽으로 넘어간다는게 일본측 주장이에요.이
10:44 90%는 일본 주장을 기준으로 한 추산치입니다. 국회의법 조사처도 경계가 새로 그어지면 공동 개발 구역이라는 존재 자체의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니까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면 우리가 불리한게 사실이에요. 뒤에 나올 이야기가 통쾌하더라도이 대목만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으셔야 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이상한게 하나 생기죠? 일본은 그냥 협정을 걷어차고 90%를 가져가면 되는 거다닐까요? 바로 여기서 자물쇠가 다시 등장합니다. 협정이 끝난 다음날 그 바다는 곧바로 일본 것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협정이 끝난다고 해서 그 바다의 선이 자동으로 그어지지는 않아요. 양쪽
11:29 주장이 겹친 채로 남는 경계 미획정 수역이 될 뿐입니다. 우리 정부 설명도 같아요. 권원이 서로 겹치는 수역에서는 상대 동의 없이 어느 쪽도 단독으로 개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자는 일본 쪽으로 바뀌었는데 문에 달린 자물소에는 50년 전 그대로인 거죠. 그런데이 문에는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열쇠를 쥐고 있어도 그걸 실제로 꽂을 손이 있어야 문이 열려요. 손이 없으면 열쇠를 열게 주고 있어도 그냥 쇠덩어리일 뿐인 거죠. 협정은 양국이 각각 개발을 맡을 회사를 그러니까 조광권자를 지정하도록 못 박아 놨습니다. 한쪽만 이름을 올려서는 아무 효력이 생기지 않거든요. 한국은 한국 석유공사라는
12:15 손을 세워뒀어요. 일본은 어떨까요? 1993년에 양쪽이 조광권을 반납한 뒤로 일본 쪽 자리는 지금까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개발을 하자고 마음 먹어도 서류에 이름을 올릴 회사가 자기 쪽에 없는 상태인 거죠. 그래서 이런 해석이 나와요. 일본이 안 판게 아니라 못 파는 상태를 스스로 그대로 둔 것으로 읽힌다는 분석입니다. 일본이 공식으로 내놓은 설명은 아니고 정황을 놓고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 여기까지를 한 문장으로 묶어 볼까요? 법이라는 자는 일본 편으로 바뀌었는데 협정이라는 자물쇠와 조광권자라는 손이 일본의 발목까지 같이 붙잡고 있는 구조인 거죠. 그럼 손도 세우지 않은 상대를
13:00 앞에 두고 한국은이 50년 동안 뭘 하고 있었을까요?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1980년 5월 7일구 저소 구역에서 첫 시추가 시작됐다고 전해집니다. 바다 한가운데 시추선이 자리를 잡고 파이프가 수백m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 시절 그 구멍 하나하나는 그냥 구멍이 아니었습니다. 산유국이 되느냐 마느냐 나라 전체의 기대가 파이프 끝에 매달려 있었던 거죠. 1980년에는 제칠 광고를 제목으로 단가요까지 나와서 거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라디오를 끼고 사셨던 분들은 아마 멜로디가 어렴풋이 떠오르실 거예요. 그 기대가 어떻게 됐을까요? 8년 동안 일곱 개의 시추공을 뚫어뜨었습니다. 그중 세계 공에서 석유와 가스의 흔적이 잡혔어요.
13:47 그런데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된 공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흔적은 있는데 퍼 올려 팔 만한 양이 아니라는 결론이었죠. 바다 한가운데서 지층 수천미터를 뚫는 일이라 구멍 하나에 들어가는 돈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걸 8년 동안 일곱 번 반복하고 손에 남은게 흔적 세계였죠. 1987년 일본이 발을 뺍니다. 경제성이 없다는게 이유였어요. 그리고 1993년 양쪽이 조강권을 나란히 반납하면서이 협정은 사실상 이행이 멈춰서니다.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칠광고를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 텐데요. 그 영화 속 시추선의 무대가 실제로 존재했던 바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이 이야기에서 가장 조용한
14:34 대목이에요. 협정문은 양국이 마주앉는 공동위원회회회라는 회의체를 따로 규정해. 규정해 놨습니다. 1985년에 5차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다음 회의가 언제 열렸을까요? 2024년 9월 27일 6차 회의였습니다. 39년입니다. 5차 회의가 열리던 해에 태어난 아기가 마흔이 되어서야 6차 회의가 열린 겁니다. 1985년이 어떤 해였는지 한번 떠올려 보세요. 서울 올림픽도 열리기 전이고 우리 1인당 국민 소득이 2,000달러 데이던 시절이죠. 그 아이가 자라서 학교를 마치고 취직을 하고 자기 아이를 낳는 동안 그 회의 실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39년은 통째로 버려진 시간이었을까요? 그건 또
15:19 아니에요. 한국은 공동위원회를 열자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자물세가 두 개 문은 이럴 때 잔인해지죠. 아무리 두드려도 저쪽에서 열쇠를 안 꽂으면 그냥 다친 문이거든요. 그럼 상대가 끝까지 응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문이 열리는 날을 대비해서 내 손을 키워 두는 겁니다. 한국이 택한게 정확히 그 길이었어요. 2002년 한국 석유 공사와 일본 석유 공단이 딱 한 번 공동 물리 탐사를 합니다. 이때 잡힌 추정 매장량이 3,600만 톤이었어요.이 숫자는 구역 전체가 아니라 탐사가 닿은 일부 구간을 놓고 나온 추정치였습니다. 그래도 흔적만 있던 바다에서 처음으로 숫자다운 숫자가
16:06 나온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1996년에 나온 탐회 이호가 2085톤짜리 배웠습니다. 2024년 5월 31일 취향한 탐해 사모는 6,862톤입니다. 건조비만 177억 건이 들어갔어요.이 배가 뭘 하는 배냐면요. 바다 뒤로 6km짜리 케이블을 여덟 줄 끌고 다니면서 바다 밑층을 3차원으로 찍어내는 배입니다. 케이블을 부채살처럼 펼치고 지나가면 그 아래 지층이 통째로 입체 사진으로 남는 셈이에요. 배가 세 배 넘게 커졌다는게 무슨 뜻일까요? 땅 문제로 다투는 상황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한쪽은 여기가 우리 땅이라고 목소리만
16:52 높입니다. 다른 한쪽은 측량 도면을 펼쳐 놓고 여기부터 여기까지라고 짚어요. 둘 중 누구 말에 힘이 실릴지는 뻔하죠. 타매 사모는 그 도면을 우리 손으로 직접 그릴 수 있게 해주는 장비인 거죠. 김병엽 박사는 칠광고 탐사 준비는 돼 있다는 취지로 밝힌 바 있어요. 1970년에 종이 두 장이었던 손에 54년 만에 6,862톤짜리 배가 들린 겁니다. 그럼이 배를 손에 넣은 한국이 그다음에 한 일이 뭐였을까요? 2024년 9월 27일 39년 만에 그 6차 공동위원회이 회의를 소집한 쪽이 한국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기술을 빌려쓰자고 손 내밀던 나라가 이제는 상대를 불러내는
17:39 자리에 앉은 거죠. 물론 일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어요. 회의가 열린 당일 일본측은이 자리가 협정의 향방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김을 빼려는 반응이었죠. 그래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남아요. 39년 동안 응하지 않던 일본이 한국이 부르자 나왔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세상이 아는 칠광고입니다. 그런데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그냥 오래된 외교 뉴스 한 토막으로 정리됐을 거예요.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거든요. 일본이 통보서 한 장을 보냈다고 가정해 볼게요. 3년 뒤 협정은 끝납니다. 그리고 일본 주장대로 중간선이 그어지면 그 바다의 90%가 일본 몫시돼요. 누가 봐도 남는 장사죠. 그런데 그 계산에는
18:27 함정이 하나 숨어 있어요. 협정이 끝나는 순간 그 바다에 생기는 건 일본의 새 영역이 아니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공백입니다. 협정이 사라진다고 누가 와서 선을 그어 주는게 아니거든요. 부부가 이혼 도장을 찍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살던 명의를 어떻게 나눌지는 아직 못 정했습니다. 한쪽은 내가 대출을 다 갚았으니이 집은 내 것이라고 주장해요. 다른 쪽은 절반은 내 몫이라고 맞서죠.이 이 상태에서 한쪽이 그 집을 마음대로 팔 수 있을까요? 등기소도 은행도 받아주지 않죠. 결국 둘 다 손을 못 대는 집이 되는 겁니다. 협정을 끝낸 다음날의 칠광고가 정확히 그 집인 거죠. 한국은 여전히 자연 현장을 주장하고 일본은 중간선을 주장하고 그
19:12 위에 시추선을 띄우려면 결국 상대 동의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일본 입장에서 협정 종료는 승리가 아니라 공백인 거죠. 그럼 일본은 왜 하필 그날 침묵했을까요? 일본 요미오리 신무은 일본 정부가 종료 통보를 보류했다고 보도하면서 몇 가지 이유를 짚었습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분위기를 흔들고 싶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날이 한일 수교 60주년이라는 점도 걸렸어요. 그리고 한국의 새 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좀 더 지켜보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이유의 겉면에 가깝습니다. 날짜부터 다시 보실까요? 종료 통보가 가능해진 첫날이 하필 수교 60주년 당일이었습니다. 축하 사절이 오가고 기념사가 낭독되는 그
19:59 하루에 60년 된 이웃에게 협정을 끝내겠다는 종이를 내미는 그림이 되는 거죠. 외교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건 고를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을 겁니다. 여기에 더 무거운게 겹칩니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25년 11월 7일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에서 대만을 둘러싼 상황을 놓고 전함을 동원한 무력 행사가 벌어지면 졸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중국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어요. 자국민 여행 자재 권고가 나오고 유학 경고가 붙고 문화 교류가 줄줄히 멈춰섰습니다. 그런데이 상황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75%까지 올라갑니다. 안에서 박수를 받는 간격 노선이라 물러설 이유가 없어진 거죠. 동시에
20:47 이런 계산도 가능해집니다. 중국과 정면으로 맞서 있는 마당에 한국과의 협정까지 깨서 분쟁 수역을 하나 더 만들 여유는 더 줄어들었다고 읽을 수 있어요. 어느 하나가 단독 원인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이 겹쳤고 그중 가장 무거운게이 대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자, 이제이 구조에 진짜 얼굴이 나옵니다. 일본이 한국의 드림인 중간선이라는 칼.이 이 카레는 날이 양쪽에 붙어 있어요. 한쪽 날은 한국을 향합니다. 그런데 반대쪽 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7광구 경계선에서 불과 800m 떨어진 자리에 중국이 1995년부터 춘샤오 가스전을 샤춘을 개발해 왔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
21:33 인정하지 않는 중간선을 기준으로 보면 서쪽으로 4km 지점이에요. 그 일대에는 핑후를 비롯한 다른 가스 전들도 줄지어 들어섰습니다. 800m면 어느 정도 거리일까요? 바다 위에서는 서로 배의 불빛이 보이는 거리입니다. 바다 위에 세운 시추 구조물은 그냥 설비가 아닙니다. 여기는 우리 바다라는 주장을 콘크리트로 새겨 놓은 표식인 거죠. 그리고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들고 나온 논리가 뭔지 아세요? 대륙이 오키나와 해국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자연 연장론입니다. 1970년대에 한국이 들고 있던 그 자를 지금은 중국이 일본 앞에서 들고 있는 거죠. 참 굳죠. 여기서이 이야기가 왜 무서운지가 드러납니다.
22:18 바다 및 지층은 국경선을 따라 끊기지 않아요. 커다란 그릇 하나의 빨대 두 개를 꽂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쪽 빨대를 안 빨고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도 옆에서 빨면 그릇의 음료짜 그릇의 음료는 줄어듭니다. 심지어 내쪽에 있던 것까지 그쪽으로 흘러가요. 우리가 50년 동안 한 방울도 못 뽑는 사이 800m 밖에서는 계속 빨대가 돌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지분을 누가 얼마나 가질지 정하지 못한 사이에도 자원은 얌전히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한국과 일본 둘이 마주 안은이 아니었습니다. 칠광고를 한일 전으로만 놓고 보면 절반밖에 못 보는 셈이에요. 일본이 한국을 누르려고 협정을 깨는 순간 그 자리에 생기는
23:04 공백을 가장 방일 쪽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세 번째 나라라는 겁니다. 좀 소름 돋지 않으세요? 그런데 여기서 좋아하시면 그건 김치국입니다.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게 아직 남아 있거든요. 그럼 한국은 그냥 운이 좋았던 걸까요? 그 빗장은 하늘에서 떨어진게 아닙니다. 1974년에 협정문에 박아놓은 문장 하나가 50년을 버틴 결과예요. 그때 그 문장을 넣지 않았다면 지금이 바다는 벌써 다른 그림이 됐을 겁니다. 그리고 2025년 6월 22일 상대는 자기 손에 있는 카드를 끝내 꺼내지 못했습니다.이 두 가지가 지금 우리가서 있는 자리를 설명해 주는 근거죠. 그런데 여기서 김치국을 한 사발 들이켜면 곤란하죠. 칠광고
23:51 이야기가 나오면 늘 따라붙는 숫자가 하나 있어요. 매장량 1천억 배럴 사우디아라비아 옆에 놓을 만하다는 말까지 나옵니다.이 숫자 어디서 나온 걸까요? 2005년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 보고서에서 인용된 수치입니다. 그런데이 숫자에는 조건이 두 개 붙어요. 칠광구만이 아니라 동중 국회 전체를 놓고 나온 추정이라는 것. 그리고 현장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한게 아니라 지질 구조를 놓고 유추한 값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확정된 매장량이 아니라 가능성을 넓게 잡아본 추산치인 거죠. 그럼 실제 탐사에서 나온 숫자는 어땠을까요? 비교가 안 될만큼 작습니다. 한국 석유 공사가 잡은 3,600만 톤은 구역 전체가 아니라 일부 구간에 추정치였어요.
24:38 2004년 탄성파 조사에서는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칠광고 밑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 아직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사우디 옆에 세우는 그림은 지금 단계에서는 확실히 앞서 나간 이야기죠. 그럼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되는 걸까요? 그날의 침묵이 영원한 침묵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일본이 그 카드를 아예 버린게 아니라 잠시 내려놓어 놓은 것뿐이거든요. 국민대 박창건 교수는 일본이 한국의 새 정부를 지켜보다가 협정파기나 재교섭 카드를 꺼낼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통보는 2028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죠 없죠. 2025년 6월 22일 이후로는 언제든 보낼 수 있는 상태입니다. 2028년 6월 22일은
25:27 결전의 날이 아니라 만기일 뿐이고 그 사이에 하루하루가 다 시험되인 거죠. 그리고 이건 분명히 하고 가겠습니다. 지금 일본을 붙잡아 두고 있는 중국 쪽 압박은 한국이 만들어낸 상황이 아니에요. 일본이 어리석어서 못 움직인 것도 아닙니다. 자기나 이익을 놓고 가장 냉정하게 계산했더니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라는 답이 나온 거죠. 투자 이야기도 한 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2023년 11월 7광구 제추진 보도가 나왔을 때 관련주가 급등한 적이 있어요. 산업의 전망과 개별 회사의 주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판단은 본인 몫시라는 점 꼭 기억해 주세요. 자,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돈 안 된다며 먼저 발을 뺐던 나라가 끝낼 수 있게 된
26:14 첫날에 왜 종이 한 장을 못 보냈는가? 이제 그날을 이렇게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침묵은 일본의 패배도 한국의 승리도 아니었어요. 자기 열쇠를 버릴 수가 없었던 날이었던 겁니다. 협정을 끝내는 순간 90%가 아니라 공과백이 오고 그 공백 800m 옆에는 이미 다른 나라의 우물이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1969년에 우리가 들고 있던 건지도 한 장과 법률 한 장이었습니다. 24년에 우리 손에 들린 건 6,862톤짜리 탐사선입니다. 바다는 55년 전 그 자리 그대로인데 그 앞에 앉은 우리 의자만 바뀐 거죠. 그리고이 바다가 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지 마지막으로이 숫자를 보셔야 합니다.
27:01 2025년 한해에 우리나라가 원유를 사오는데 쓴 돈이 752억 달러입니다. 가스까지 더하면 1천억 달러가 넘어요. 1달러 1,400원으로만 잡아도 150조원에 가까운 돈이 매년 밖으로 나갑니다. 국민 한 사람당 280만 원 꼴이에요.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90% 넘는 몫을 밖에서 사오는 나라거든요. 칠광구가 우리 지갑 문제인 이유는 그 밑에 뭐가 묻혀 있어서가 아닙니다. 매년 이만큼의 돈이 나가는 나라기 때문인 거죠. 마지막으로 렌즈 하나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칠광고 뉴스를 보시면 일본이 뭐라고 하는지보다 중국이 그 바다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세요. 그리고 잊지 마셔야 할게 하나 더 있어요. 열쇠는 쥐고
27:47 있는 동안만 열쇠입니다. 1974년에 우리가 챙겨둔 그 열쇠도 손을 놓는 순간 그냥 쇠조각이 됩니다. 여러분은 2028년 6월 22일이 바다가 어떻게 되어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 주시면 하나하나 읽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