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미국대학졸업생 조선청년 변수의 꿈 [역사실험] KBS 2013.03.13 방송

최초의 미국대학졸업생 조선청년 변수의 꿈 [역사실험] KBS 2013.03.13 방송

간략한 요약

이 비디오는 갑신정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농업 근대화에 헌신한 조선 청년 변수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이었으며, 농무부에서 일하며 뛰어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요절했습니다. 그의 삶은 미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사후 120년 만에 그의 졸업장이 발견되어 메릴랜드 대학에 기증되었습니다.

  • 변수는 갑신정변에 참여한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농업 근대화를 꿈꿨습니다.
  • 그는 메릴랜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농무부에서 뛰어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 그의 삶은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고, 사후 그의 업적이 재조명되었습니다.

소개

조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조선 청년 변수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타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미국 주요 신문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며 안타까워했고, 신문들은 그를 '조선의 귀족'이라고 칭했습니다. 그의 장례는 남북전쟁 영웅인 암 맨딜 장군이 주관했으며, 그는 변수를 위해 자신의 묘지를 제공했습니다.

메릴랜드 주립대학

메릴랜드 주립대학은 미국의 대표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했습니다. 이 대학은 동양인 최초 졸업생이자 한국인인 변수를 기념하는 방을 마련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헤럴드 변은 변수의 후손으로, 잊혀진 그의 기록을 찾고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변수의 자료 조사

헤럴드 변은 10여 년간 변수의 자료를 조사해 왔습니다. 1910년 화재로 많은 자료가 소실되었지만, 변수의 자료는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대학의 학적부에는 그의 이름이 남아 있으며, 대학 시절 그에게는 찰스 펜 에릭 칼 버트의 아들과 암 맨딜 창군이라는 두 명의 후견인이 있었습니다.

갑신정변과 망명

변수는 5년 전 조선의 역적으로 몰려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갑신정변에 가담하여 조국의 자주 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했지만, 혁명이 실패하면서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당시 그의 일본행을 후원한 사람은 친한파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였습니다.

일본 망명 생활

변수는 일본에서 스승처럼 따랐던 김옥균의 곁을 지키며 1년간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중국 역관을 지낸 부유한 중인 가문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선진 문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김옥균은 그의 어학 실력을 높이 사 일본 수신사의 수행원으로 발탁했습니다.

근대화의 경험

변수는 일본에서 양잠 과학을 배우며 농업 근대화에 관심을 가졌고,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화학 공부가 필수적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고종의 명령으로 보빙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조선인 최초로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보빙사절단 활동

변수는 보빙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선진 시설을 시찰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그는 미국의 경직 산업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현지 공장을 방문하여 전문적인 식견을 드러내 미국 기자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공식 일정이 끝난 후에는 서광범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며 견문을 넓혔습니다.

개화 운동 헌신

세계 일주 경험은 변수가 조국의 개화 운동에 헌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귀국 후 그는 왕의 측근에서 근대화 사업을 주도했지만, 갑신정변 실패 후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메릴랜드 농과대학 입학

미국으로 돌아온 변수는 메릴랜드 농과대학에 입학하여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농업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선진 농업 기술을 바탕으로 조선의 농업 근대화에 기여하고자 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학업에 전념했습니다.

미국 대학 졸업과 농무부 취업

변수는 입학 4년 만에 학위를 취득하여 조선인 최초의 미국 대학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졸업을 한 달 앞두고 미국 농무부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으며, 석 달 만에 일본 농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농무부에 제출했습니다. 그의 보고서는 극찬을 받았고, 다음 과제로 중국 농업에 대한 보고서를 의뢰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추모

다음 과제 자료 수집 차 학교를 찾았던 변수는 기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당시 미국 주요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미국인들은 그의 드라마틱한 삶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암 맨딜 장군은 그를 위해 자신의 묘지를 제공했지만, 조선 공사관은 그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졸업장 찾기

헤럴드 변은 변수의 졸업장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홍성표 박사는 2002년 변수의 묘비를 발견했지만, 졸업장은 찾지 못했습니다. 헤럴드 변은 다시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졸업장 찾기를 시작했고, 변수의 대학 동기였던 리처드 칼 버트의 후손을 찾아 졸업장 관련 정보를 얻고자 했습니다.

졸업장 발견과 기증

리처드 칼 버트의 후손은 각지에 흩어진 후손들에게 편지를 써서 변수의 졸업장을 찾았고, 120년 만에 발견된 졸업장은 메릴랜드 대학에 기증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미국 정부 대학 졸업장은 지난 7월 2일 메릴랜드 대학에 기증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게 되었습니다.

변수의 꿈과 유산

변수는 중인 신분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고의 엘리트들과 함께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고, 국왕의 측근으로 혁명까지 주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절대 빈곤으로부터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농학 연구와 근대 혁명에 헌신했으며, 그의 열정은 12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사후 21년 만인 1910년, 대한제국은 변수를 신원하고 종2품 규장각 부제학을 추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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