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다섯 명의 대신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을사오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의 마지막 발자취와 후속 조치를 추적합니다.
- 이근택 등 다섯 명의 대신은 조약 체결 후 모두 호위호식하며 죽음.
- 각자의 마지막 생애와 조약 체결 후 상황을 정리.
- 후손들의 재산과 정치적 영향을 다루면서 역사적 평가를 제공합니다.
조약 체결 날의 기억
영상 시작에서 해설자는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근택의 발언을 소개합니다. 이근택은 조약 체결 후 "나는 이제 죽어도 호위호식하며 죽을 수 있게 됐다"라고 말하며, 그가 조약을 체결한 후의 삶을 예측합니다. 사실, 도장을 찍은 나머지 대신들 역시 안전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완용, 박재순, 이지용, 권중현은 처형당한 이가 없고 모두 평화롭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러한 결말을 통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추적해보겠습니다.
을사조약의 진실
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일본 측 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대신들을 소집합니다. 일본 군대의 압박 속에서 대신들은 협박을 받으며 조약에 서명하게 됩니다. 이완용은 조약을 수용하되 수정할 것을 제안하여 찬성의 대표가 됩니다. 조약의 최종 비준은 없었고, 국제법상 유효하지 않은 문서였습니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조선을 완전히 지배하게 됩니다.
이완용의 반역과 생애
이완용은 본래 친일파가 아니었으나, 시기에 따라 일본에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조약 체결 당시 교육부 장관 격인 학부 대신으로 있던 그는 조약을 수용하며 자신의 출세를 꾀했습니다. 을사조약 후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에서도 그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이완용은 매국의 대가로 후작이 되고, 품위를 유지하며 사망하였습니다.
박재순의 외교적 배신
박재순은 조약 체결 당시 외부 대신으로 외교권을 팔아넘긴 인물입니다. 그는 이후 내부 대신으로도 활동하게 되어, 조국을 통째로 넘기는 데에 관여했습니다. 그의 생애 역시 매국으로 이어진 호가를 누리며, 그는 안정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지용, 왕족의 배신
이지용은 왕족으로, 그의 선택에 충격을 주는 배신을 저지른 인물이었습니다. 도박 중독으로 일본측에 매수되었던 그는 조약 체결 직후 매국으로 받은 돈을 도박으로 탕진합니다. 그의 마지막은 비참했으며, 권력을 얻었지만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근택의 비극적 결말
이근택은 을사조약 체결 후 자신의 집에서 암살당하게 됩니다. 조선의 군부 대신인 그는 자국의 백성에게 목숨을 잃고 일본 헌병에 의해 구출됩니다. 이후 그의 생애는 평화롭게 종료되지만, 전쟁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남습니다.
권중현의 고립된 삶
권중현은 조약 체결 후 24년 동안 식민 조선의 몰락을 지켜보며 늙어갔습니다. 그는 깊은 죄책감 없이 오래 살아남아 조국의 비극을 목격하며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종신적 지위와 일본과의 이해관계는 매국의 앞잡이로서 비극적인 운명을 가져왔습니다.
을사오적의 후손들
영상은 이완용을 포함한 다섯 대신 모두 일본 귀족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그들의 죄를 질책받았는지를 조명합니다. 친일 재산 귀속법에 의해 그들의 재산이 회수되고, 독립운동 후손들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마무리됩니다. 역사적 평가와 후회 없는 삶이 뒤따른 이들은 여전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인물임을 상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