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제국이었던 몽골은 왜 지금은 작게 쪼그라들었을까?|몽골제국이 다시는 재건되지 못한 이유

거대제국이었던 몽골은 왜 지금은 작게 쪼그라들었을까?|몽골제국이 다시는 재건되지 못한 이유

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몽골 제국이 어떻게 그토록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유지했는지, 그리고 결국 몰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두 가지를 분석합니다. 유목 민족 특유의 분배 방식과 지속 가능한 통제력 부재라는 구조적 취약점이 제국의 분열과 쇠퇴를 가속화시켰음을 설명합니다.

  • 유목 민족의 분배 방식은 제국 내 권력 다툼과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 압도적인 무력에 의존한 통치는 문화적 영향력 부족으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몽골 제국의 시작과 팽창

원래 몽골족은 여러 유목 부족 중 하나였으나, 칭기즈칸의 등장으로 통합되어 강력한 제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칭기즈칸은 기마 전사들을 만호 단위로 조직하고, 동고동락하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 전투력을 극대화했습니다. 1206년 몽골 통일 이후 서하, 서요, 금나라 등을 차례로 분쇄하고, 서쪽으로 진출하여 유럽과 이슬람 제국까지 정복했습니다. 초기에는 정복지에서 약탈을 일삼았으나, 점차 정복민을 다스려 세금을 징수하는 제국 경영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아라비아 숫자 채택, 역참 제도 도입 등 효율적인 통치 시스템을 구축하며 제국을 확장했습니다.

몽골 제국의 몰락을 부른 두 가지 취약점

몽골 제국은 유목 민족 특유의 분배 방식과 지속 가능한 통제력 부재라는 두 가지 근원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유목 민족은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공동 목표가 사라지면 언제든 재분열될 수 있는 구조였으며, 칭기즈칸은 자원의 공평한 배분을 통해 이를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칭기즈칸의 아들들 간에 출신 성분, 통솔력 문제 등으로 내분이 발생했고, 이는 제국 분열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또한, 몽골 제국의 통제력은 압도적인 무력에 의존했기 때문에, 제국이 분열되면서 전투력이 약화되고 통제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제국의 분열과 반란의 시작

칭기즈칸의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황금 시족 정체성이 약화되고, 원나라의 리더십까지 약화되자 서방 칸국들은 원나라 대칸만 쓸 수 있는 칭호를 멋대로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몽골에 정복당한 민족들은 몽골의 분열을 틈타 저항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1260년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이 맘루크 왕조에게 패배하면서 몽골의 위세가 꺾였고, 제국 전역에서 반란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러시아 지역에서는 모스크바 대공국이 킵차크 칸국에 대항했고, 이란 지역에서는 일칸국이 맘루크 왕조를 공격하던 중 차가타이 칸국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원나라의 쇠퇴와 몽골 제국의 해체

제국의 총사령부인 원나라는 강압 통치를 이어가다가 14세기 초중반 자연재해와 화폐 남발로 인해 한족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홍건적이 일어나 원나라 여름 수도를 불태우고,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면서 원나라는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차가타이 칸국, 일칸국, 킵차크 칸국 등 다른 칸국들도 내분과 티무르 제국의 공격, 흑사병 등으로 차례로 멸망했습니다. 1368년 명나라에 패배한 토곤 테무르칸이 몽골 본토로 후퇴하면서 원나라는 북원으로 밀려났습니다.

북원의 분열과 몽골의 최종 몰락

북원으로 밀려난 원나라는 북원 시대를 열었지만, 또다시 내분이 발생하면서 남몽골, 할하몽골, 오이라트 몽골로 분열되었습니다. 여진족이 강성해져 남몽골과 할하몽골을 복속시키고 청나라를 세웠습니다. 오이라트 몽골은 준가르 제국을 세워 청나라에 대항했지만, 18세기 말 내분으로 인해 청나라에 멸망했습니다. 청나라는 몽골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준가르인을 절멸시키고, 남몽골과 할하몽골을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하여 지배했습니다. 외몽골은 소련에 편입되었다가 소련 해체 후 몽골 공화국으로 독립했고, 내몽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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