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감동사연] "3억 인구가 선택한 한글!" 프랑스 원조 중단에도 아프리카 15개국 한글 선택! 70% 문맹 3개월 만에 해결, 60년 교육 시스템 바꾼 충격 반전”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지금 프랑스 엘리제공이 밝혔습니다. [음악] >> 우리가 너희를 발전시켜줬는데 감히 배신네. >> 동양의 한 문자가 단 3년 만에 프랑스의 60년 [음악] 아프리카 제국을 뿌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60년간 지배한 3억 [음악] 인구 그중 70%가 문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식민지배의 잔인한 [음악]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경악한 기적이 시작됐습니다. 식민지 없이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 그들의 글자가 3억 [음악] 명을 깨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 프랑스는 족세였다. 한글은 날개다. >> 안녕하세요. >> 프랑스 정부가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음악] 이미 늦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몇 년 전 가을 저는 다카르 외곽의
0:47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유네스코 교육 실태 조사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죠. 붉은 흑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을지나 낡은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복도에는 프랑스어로 쓰인 교육 표어들이 벽에 붙어 있었어요. 교실문을 열었을 때 저는 숨이 멋는듯한 관경을 목격했습니다. 30명의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눈동자에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영혼히 빠져나간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죠. 교실 앞에서는 프랑스어 교사가 칠판에 뭔가를 적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그저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봉주르, 레 장팡, 오늘은 어떤가요? 교사가 밝게 인사를 건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대답하지 않았어요. 30명 모두가
1:34 친묵 속에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교실를 가득 채운 친묵. 그 무거운 공기가 제 가슴을 짓눌렀어요. 수업이 계속됐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질문을 던져도 고개만 숙일 뿐이었죠. 그런데 쉬는 시간 종이 올리자 마법처럼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방금 전까지 죽어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살아났어요. 월로프어로 악자짓걸 떠들며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장난치며 뛰어다니기 시작했죠. 완전히 다른 아이들이었습니다. 같은 아이들이 만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때 한 소년이 제게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12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어요. 깡마른 몸에 낡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습니다.
2:22 나중에 알게 된 이름은 이브라마였죠. 선생님은 누구세요? 이브라이마가 월로프어로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이란다. 파리에서 왔어. 제가 월로프어로 대답하자 이브라이마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와, 선생님도 우리 말하시네요. 우리 형도 똑같이 말했어요.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형은 결국 3년 만에 학교를 그만뒀어요. 프랑스어를 못 따라가서요. 지금은 시장에서 집 나르는 일에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3:07 저는 교무실로 향했어요. 교장 선생님께 통계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철류를 받아든 순간 손이 떨렸어요.이 이학교의 중태율 단어를 외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저는 이브라마를 다시 찾았어요. 이브라마, 월로프어로 계산할 수 있니? 당연하죠. 이브라이마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네타 야 줄루스냐 주로니 야 푹
3:54 줄로니 일곱이요? 3 더하기 넷은 일곱 정확하게 대답했어요. 그런데 왜 수업 시간에는 대답을 안 하니? 이브라임마가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프랑스어로는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헷갈리고요. 대답하려고 하면 친구들이 웃어요. 발음이 이상하다고. 그날 저녁 저는 이브라이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작은 흑집이었어요. 어머니가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죠. 제 아들은 똑똑해요. 정말이에요. 어머니가 원로프어로 말했습니다. 집에서는 뭐든 잘해요. 동생들 숙제도 도와주고 시장 가서 계산도 잘하고
4:39 하지만 학교에서는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프랑스어 때문에요.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쳤습니다. 저도 예전에 학교에 다녔어요. 하지만 프랑스어를 못 따라가서 2학년 때 그만뒀죠. 제 어머니도 그랬고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집안은 3대가 문맹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충격이었습니다. 프랑스어가 교육의 사다리가 아니라 장벽이 되고 있었던 거예요. 학교를 나서는데 이브라마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 손을 꼭 잡았어요.
5:37 최소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월로프어, 반발라어 등 현지 언어로 기초 교육을 진행해야 합니다. 순간 회의실이 얼어붙었어요. 누군가 비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언어 정책국장 루크루가 코웃음을 쳤어요. 디알로 박사, 아프리카 언어로 어떻게 과학을 가르칩니까? 수학은요? 역사는요? 그런 원시적인 언어들로는 현대 문명을 표현할 수조차 없어요. 원시적이라고요?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월로프어는 천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복잡한 철학적 개념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르쿠르가 비웃으며 말했어요. 설마 구전으로 교육하자는 건 아니겠죠? 뒤랑 차관이
6:23 손을 들어 제지했습니다. 디알로 박사. 우리는 60년간 프랑코니를 통해 아프리카의 문명을 전파해 왔습니다. 이제 와서 그것을 부정하자는 겁니까?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죠. 60%가 넘는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건 그들의 능력 문제입니다. 교육 정책실장 모랭이 차갑게 말했어요. 프랑스어를 배울 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성공하고 없는 아이들은 도태되는 거죠. 자연스러운 선별 아닙니까? 저는 믿을 수 없어서 되물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선별이라고요? 그게 교육입니까?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마십시오. 뒤랑이 단호하게 말했어요. 프랑스어은 이성과 논리의 언어입니다.
7:09 아프리카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프랑스어를 익혀야 합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르크르가 덧붙였어요. 게다가 각 나라마다 수십개의 부족 언어가 있는데 그걸 다 가르칠 겁니까? 프랑스어야말로 통합의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통합에서 60%가 배제되고 있다면요? 충분합니다. 뒤랑이 책상을 쳤어요. 디알로 박사. 당신은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으로 소르본을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프랑스 교육 시스템을 공격하는 겁니까? 마지막 일격이었어요. 배음 망덕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거였죠. 저는 시스템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개선을 제한하는 제한은 기각됩니다. 프랑코포니 정책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7:56 회의가 끝났습니다. 복도로 나왔을 때 젊은 직원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왔어요. 끌레이라는 연구원이었습니다. 디알로 박사님. 저는 선생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는 주의를 살피며 속삭였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변화를 원하지 않아요. 프랑코니는 프랑스의 자존심이거든요. 식민지는 사라졌지만 언어 집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죠. 파리의 한 카페에서 홀로 앉아 있을 때 이브라이마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우리도 우리 말로 공부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오늘 회의에서 답을 얻었죠. 프랑스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 그날 밤 저는 세내갈에 있는 동료 파티마에게 전화했습니다. 어떻게 됐어? 파티마가
8:43 물었어요. 예상대로야. 우리는 영원히 프랑스어의 노예로 살아야 하나 봐. 포기하지 마. 아미나타. 언젠가는 길이 열릴 거야. 하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이렇게 뜻밖의 방식으로 올 줄은요. 척 후는 싱가포르로 향했습니다. 아시아 교육혁신 포럼에 초청받았거든요.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어요. 또 다른 관료적인 회의일 거라고 생각했죠. 첫날은 일본의 로봇 교육, 둘째 날은 중국의 온라인 플랫폼이었습니다. 지루했어요. 아프리카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들이었거든요. 하지만 셋째 날 제 인생을 바꿀 발표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한국
9:28 세종학당의 이하연 교수님 발표입니다. 주제는 한글을 활용한 소수민족 언어 보존 프로젝트입니다. 한글 저는 고개를 들었어요. 한국 문자가 소수민족 언어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단상에 옳은 이하연 교수는 50대 중반의 여성이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어요. 인도네시아에는 700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문자가 없죠. 로마자로 표기하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글을 시도했습니다. 화면에 인도네시아 솔라시 섬의 작은 마을이 나타났어요. 이곳은 부톤이 사는 지역입니다. 인구 8만 명이 부토를 사용하지만 문자가 없어서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죠. 다음
10:15 슬라이드가 충격적이었습니다. 붙어를 한글로 표기한 교과서였어요. 한글은 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만든 문자입니다. 어떤 언어의 발음도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죠. 부톤 아이들은 단 일주일 만에 한글로 자기 언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저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영상이 재생됐어요.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칠판에 한글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들이 쓰는게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부토너라는 거였어요. 와, 나 드디어 우리 할머니 이름을 썼어. 한 아이가 환호했습니다. 자막이 있어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하연 교수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로마자로는 부토너의 복잡한 발음을 표기할 수 없었습니다.
11:02 하지만 한글은 달랐죠. 혀의 위치, 입술의 모양, 목소리의 높낮지까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손을 들었어요. 잠깐만요. 왜 로마자는 안 되고 한글은 되는 거죠? 이하연 교수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로마자는 라틴어를 위해 만들어진 문자예요. 다른 언어를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한계가 있죠. 하지만 한글은 다릅니다. 그녀가 다음 슬라이드를 보여줬어요. 세종대왕의 초상어였습니다. 1446년 세종대왕은 한글을 반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란 말삼이 둥규의 달라 문자와로 서르마띠 아니할씨.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저는 전유를
11:48 느꼈어요. 600년 전 한국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던 거예요.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과학적인 문자를 만들었죠. 바로 한글입니다. 쉬는 시간에 저는 이하연 교수에게 다가갔습니다. 교수님, 저는 세내갈에서 온 아미나타 디알로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요. 프랑스어 때문에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죠. 이하연 교수가 관심을 보였어요. 체내갈이라면 월로프어를 쓰시죠? 네, 맞아요. 하지만 문자가 없어서 한글로 표기해 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한글로 월로프어요.
12:33 이하연 교수가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었어요. 당신 이름을 월로프어로 어떻게 발음하죠? 아미나타 디알로요. 그녀가 한글로 적었습니다. 월로프어 발음에 맞춰서요. 이게 제 이름이에요? 네. 한글은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거든요. 원로 푸어의 특수한 발음도 문제 없을 거예요. 그날 저녁 호텔 방에서 저는 밤새 한글에 대해 검색했습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 말소리의 과학적 분석,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에 새벽씨.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거다. 이게 바로 우리가 찾던 답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어요. 프랑스 정부가 아프리카 엘리트들이 과연
13:19 받아들일까요? 이하연 교수와 아침 식사를 하며 저는 솔직히 털어 놓았습니다. 한글이 해답인 건 알겠어요. 하지만 저항이 너무 클 거예요. 프랑스어 기득권이 너무 강하거든요. 이하연 교수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변화는 항상 작은 곳에서 시작됩니다. 세종대왕도 처음엔 양반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어요. 하지만 백성들이 한글의 가치를 알아봤죠. 중요한 건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울 수 있다면 그게 정답 아닐까요? 공항으로 가는 길 이하연 교수가 작은 책자를 건네 줬어요. 한글 교육 가이드예요. 월로프어 표기에 도전해 보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저는
14:04 결심했습니다. 일단 해보자. 작게라도 조용이라도 시작해 보자. 비행기 안에서 이하연 교수가 준 자료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한글의 과학적 체계, 교육 방법론, 실제 사례들, 체내갈 도착 전까지 머릿속으로 수십번 시뮬레이션을 했어요. 체내갈로 돌아온 저는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공식 채널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대신 제 고향 마을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고향 티바우하는 다카르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의 작은 마을이었어요. 제 사촌 카디아 2가 그곳에서 비공식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죠.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었어요. 언니 갑자기 웬 일이야? 카디아가 반갑게
14:50 맞아줬어요. 카디아, 내가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고 해. 너희 아이들과 함께. 저는 이하영 교수에게 받은 자료를 보여줬어요. 카디아가 고개를 겨우했습니다. 이게 뭐야? 동그라미랑 막대기 그림 같은데 한글이라는 문자야. 이걸로 월로프어를 쓸 수 있어. 카디아투가 놀란 눈으로 저를 봤어요. 월로 푸어를. 정말로 그날 저녁 저는 15명의 아이들 앞에 섰습니다. 나이는 여덟살부터 14살까지 다양했어요. 모두 프랑스와 학교에서 중퇴했거나 아예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이들이었죠. 오늘부터 우리는 특별한 걸 배울 거야. 우리 말을 쓰는 방법을 배울 거야. 아이들이 수금거렸어요.
15:36 원로 푸어를 쓴다고요? 그런게 가능해요. 11살 파티마가 손을 들었어요. 선생님, 원로프어는 말로만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이제는 쓸 수 있어.이 글자로 저는 칠판에 큰 원을 그렸어요. 이건 응야. 입을 동그랗게 해서내는 소리지. 아이들이 따라했어요. 응. 이번엔 막대기 하나. 이건 이야.이 이 단순했어요. 너무나도 단순해서 아이들이 금세 이해했습니다. 30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여덟살 파투마타가 칠판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파투마타
16:22 자기 이름이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쓴 거였죠. 선생님, 제가 썼어요. 제 이름을 썼어요. 파투마타가 뛰면서 소리쳤어요.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칠판으로 달려갔습니다. 나도 나도 내 이름 쓸래? 춘식간에 칠판이 한글로 쓴 이름들로 가득 찼어요. 파티마, 이브라이마 무사 아미나. 카디아투가 교실 뒤에서 눈물을 닫고 있었어요. 언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구나. 애들이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이틀째부터는 단어를 가르쳤어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부터 시작했죠. 엄마는 원로프어로 뭐야? 야이. 아이들이
17:08 외쳤어요. 저는 칠판의 야이라고 썼어요. 아이들이 신나게 따랐었죠. 차을째 아이들이 집에서 뭔가를 가져왔어요.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셨어요. 우리 아빠가 이걸 보고 울었어요. 우리 말을 글로 쓸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데요. 파티마가 자랑스럽게 종이를 보여 줬어요. 티바완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었죠. 우리 마을 이름이에요. 할머니가 이걸 보고 너무 기뻐하셨어요. 일주일째 저는 문장 쓰기를 시도했어요. 오늘은 짧은 문장을 써 볼 거야. 엄마 사랑해를 원로프어로 뭐라고 하지? 야이 바그나 아이들이 합창했어요. 저는 칠판에 천천히 썼습니다. 야이 바그나 아이들이
17:55 조용히 따라썼어요. 그리고 누군가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3살 마리암이었어요. 왜 그러니 마리암? 엄마한테 엄마한테 편지 쓰고 싶어요. 엄마는 그을 몰라서 제가 학교 다니는 것도 이해 못 하셨거든요. 이제 우리 말로 편지 쓸 수 있잖아요. 그날 저녁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편지를 들고 갔어요. 다음날 아침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부모들이 학교로 몰려왔어요. 이게 뭐예요? 우리 애가 쓴 거라고요? 한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들고 있었어요. 야이 박은아. 엄마 사랑해요. 파티마가 읽어주자 어머니가 아들을 꼭 안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우리 말로 글을 쓰다니.
18:42 하지만 모두가 감동한 건 아니었어요. 마을의 프랑스어 교사였던 은디아에가 찾아왔습니다. 아미나타 네가 뭐 하는 거요? 애들을 망치려고 작정했소? 망친다고요? 애들이 처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요. 그게 글이오. 이상한 그림 아니요? 프랑스어를 배워야 출세할 수 있는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시오. 은디아에가 떠난 후 카디아투가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언니 소문이 퍼지면 문제 될 거야. 정부에서 알면 알게 하지. 하지만 멈출 순 없어. 애들 표정 받잖아. 두 주째 되는 날 정말 문제가 터졌어요. 다카르에서 교육구 감독관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같은
19:28 날 오후 프랑스어 교사 협회 회장이 마을에 나타났죠. 아미나타 디알로 네가 아이들에게 이상한 문자를 가르친다는 소문이 파다하더군. 협회장 디알로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엘리트였어요. 그의 눈빛은 차가웠습니다. 이상한 문자가 아니라 한글입니다. 아이들이 월로프어를 쓸 수 있게 해 주는 거죠. 됐어. 디알로가 손을 들어 제지했어요. 너도 알겠지만 세네갈래 공룡은 프랑스어요. 우리는 프랑스어로 교육받고 프랑스어로 출세하는 나라요. 하지만 국민의 80%는 프랑스어를 못 합니다. 그럼 배워야지. 너처럼 말이오. 너도 프랑스어 덕분에 파리에서 공부했지 않소. 저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어요. 저는 운이 좋았을
20:15 뿐이에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때 교육부 감독관이 끼어들었어요. 디알로 박사. 당신의 행위는 불법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즉시 중단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카디아투가 나섰어요. 여기는 정식학교가 아니에요. 그냥 아이들을 돌보는 곳일 뿐이에요. 그래도 교육 행위는 교육부의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디알로가 비웃으며 말했어요. 더 큰 문제는 이거요. 네가 아시아 문자를 퍼뜨리고 있다는 거. 프랑스어를 버리고 아프리카의 영혼을 팔았소. 영혼을 팔았다고요? 저는 분노가 치밀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쓰고
21:00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게 영혼을 판 거라고요? 프랑스가 우리에게 준 문명을 거부하는 거 아니요? 문명이요? 60%의 아이들을 문맹으로 만드는게 문명입니까? 순간 정적이 흘렀어요. 디알로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너 같은 사람 때문에 아프리카가 발전하지 못하는 거요. 과거에 집착하고 서구 문명을 거부하고 거부하는게 아니라 보완하려는 겁니다. 모국어 교육과 프랑스어 교육이 공존할 수 있어요. 순진한 소리. 감독관이 코웃음쳤어요. 네가 파리에서 뭘 배운 거야? 소르보이 명성의 먹치를 하는 군. 그들이 떠난 후 카디아투가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언니 이제 어떻해? 정말
21:45 법적 조치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날 저녁 제 가족들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큰 오빠, 작은 오빠까지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웠어요. 아미나타, 네가 우리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는 소문이 다카르까지 퍼졌다. 아버지, 우리는 3대째 프랑스어 교육을 받은 집안이다. 내 할아버지는 독미후 첫 프랑스어 교사셨고 나도 프랑스어로 출세했다. 그런데 네가 그 모든 걸 부정한다니 큰 오빠가 화를 냈어요. 파리까지 유학 보냈더니 돌아와서 하는 짓이 이거야. 아시아 문자나 퍼뜨리고 오빠 와서 직접 봐.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행복 그게 밥 먹여
22:33 주나? 프랑스어 못 하면 공무원도 의사도 변호사도 될 수 없어. 작은 오빠도 거들었어요. 누나, 제발 정신 차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디알로 집안에서 배신자가 나왔다고 해. 아버지가 최후 통첩을 했어요. 당장 그만둬라. 안 그러면 넌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 그 말에 가슴이 찢어졌어요.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죄송해요. 하지만 전 계속할 거예요. 아버지는 말없이 돌아섰어요. 오빠들도 따라갔죠. 혼자 남겨진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가족에게까지 버림 봤다니 다음날은 더 힘들었어요. 마을 사람들도 둘로 갈라졌거든요. 일부는
23:20 저를 지지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어요. 저 여자가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있어. 프랑스어도 못 배우는데 무슨 아시아 글자야. 출세하려면 프랑스어를 배워야지. 심지어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요. 15명이던 학생이 여덟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아이들의 의지는 더 강해졌어요. 파티마가 말했죠. 선생님, 저희는 계속 배울 거예요. 이제야 글을 쓸 수 있는데 포기할 수 없어요. 이브라임마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희 엄마가 그러는데요. 선생님이 용감한 사람이래요. 모두가 반대해도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요. 아이들의 말에 힘을 얻었지만 압박은 계속됐어요. 일주일 후 프랑스 대사관에서 연락이
24:08 왔습니다. 문화참사관이 저를 만나고 싶어 했어요. 대사관의 화려한 응접실. 참사관 뒤랑은 정중하지만 단호했어요. 디알로 박사. 당신의 활동이 프랑스 세뇌갈 문화 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 단지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칠 뿐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문자로 말이죠.이는 양국 관계의 기본 원칙에 어긋납니다. 뒤랑은 서류를 꺼냈어요. 당신은 프랑스 정부 장학생이었습니다. 계약서를 기억하시죠? 프랑코포니의 가치를 확산하겠다고 서명했습니다. 그래서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치하란 말입니까? 프랑스어를 가르치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해요. 뒤랑이 차갑게 말했어요. 그건 능력의
24:55 문제입니다. 디알로 박사 계속 이런 활동을 하신다면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프랑스와 관련된 모든 지원이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대사관을 나오며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모두가 저를 배신자라고 부르고 가족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마리아이 쓴 일기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오늘도 한글을 배웠다. 이제 나는 우리 엄마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후 저는 완전히 고립됐어요. 하지만 뜻밖에 도움의 손길이 왔습니다. 이브라임마 어머니가 모스크에서 아들의 변화를 이야기했고
25:42 그 말을들은 모스크 이맘 쉐이크 알리움 바가 일주일 후 저를 찾아왔어요. 70대에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였죠. 아미나타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 좀 나누지. 솔직히 걱정됐어요. 종교 지도자들도 저를 비난하러 온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쉐이크 님 저를 왜 찾아오신 거죠? 노인는 온화하게 웃었어요. 자네가 하는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그래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 아마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 하지만 내가 더 관심 있는 건 아이들의 변화야. 이브라이마 어머니가 모스크에 와서 울며 기도했거든. 이브라이마 어머니가요. 그래. 아들이 처음으로 알라의 이름을
26:28 썼다고. 그것도 우리 말로 저는 놀랐어요. 이브라이마가 한글로 종교적인 내용도 쓰기 시작했단 말인가요? 쉐이크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어요. 한글로 적힌 무언가가 있었죠. 비스밀라 라흐니 라임. 제가 읽었어요. 자비로우시고 자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이브라마가 쓴 거야. 12살 아이가 코란의 첫 구절을 우리 말로 쓴 거지. 쉐이크의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40년간 아이들에게 코란을 가르쳤네. 하지만 대부분 아라버를 외우기만 할뿐 뜻을 모르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는 우리말로 쓰고 이해할 수 있게 됐구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걸 반대하고 있어요.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문자를 쓴다고
27:13 쉐이크가 고개를 저었어요. 알라는 모든 언어를 존중하시네. 포란에도 나와 있지. 우리가 너희를 여러 민족과 부족으로 만든 것은 서로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 언어도 마찬가지야.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어요. 프랑스어도 좋은 언어야.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지. 우리 아이들이 우리 말로 지식을 얻고 신앙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교육 아닌가? 쉐이크 님, 그럼 저를 도와주실 건가요? 노인이 미소 지었어요. 이미 결정했네. 내일부터 모스크 교육관에서 한글 수업을 열어도 좋네. 모스크에서요? 정말로요? 그래. 그리고 내가 직접 배워 볼
27:59 생각이네. 70이 넘었지만 배움의 나이가 어디 있겠나. 다음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어요. 모스크 교육관에 쉰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왔어요. 쉐이크가 직접 소개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특별한 공부를 시작한다. 우리 말을 쓰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이는 알라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더 깊이 신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대단했어요. 그동안 저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죠. 첫 수업은 감동적이었어요. 쉐이크가 칠판 앞에 서서 한글 자음을 따라 쓰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했습니다. 이게 고이구나. 입천장에 혀가 닿는 모양이라니 정말
28:45 과학적이야. 다른 어른들도 진지하게 따라했어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여성들의 참여였습니다. 평소 교육 기회가 없던 어머니들이 열심히 배웠어요. 비네타라는 45살 여성이 말했어요. 프랑스와 학교는 엄두도 못 냈는데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말이니까요. 일주일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쉐이크가 금요 설교 시간에 한글로 쓴 코란 구절을 보여 준 거예요. 보시오. 이것이 우리 말로 쓴 알파티아. 이제 우리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알면서 기도할 수 있어. 신도들이 순렁거렸어요. 일부는 충격을 받았고 일부는 감동했죠. 이게 가능한 일이었구나. 우리 아이도 이제 코란을 이해할 수 있겠네. 하지만 일부 보수적인
29:33 신도들은 반발했어요. 코라는 아랍로만 읽어야 합니다. 쉐이크가 차분히 대답했어요. 물론 원전은 아버지.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외우기만 하는 것보다 우리 말로 의미를 아는게 더 중요하지 않겠소. 터키도 인도네시아도 자기 문자로 코란을 공부하오 그의 논리는 명확했고 반대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어요. 더 놀라운 건 아이들의 변화였어요. 코란 수업 시간에 한글로 받아쓰기를 하니 이해도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이제 알았어요. 라만이 자비로운 분이라는 뜻이었구나. 열 사람자가 환호했어요. 모스크 한글 수업은 입소문을 타고 퍼졌어요. 인근 마을에서도 구경 오는 사람들이 생겼죠. 어느 날 이웃 마을에 이맘
30:20 세 명이 찾아왔어요. 쉐이크님, 우리도이 방법을 배우고 싶소. 우리 아이들도 신앙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소. 쉐이크가 저를 보며 말했어요. 아미나타가 우리의 스승이요. 그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배신자가 아니었어요. 종교 지도자들의 인정을 받은 거죠. 최이크의 지원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특히 놀라웠던 건 여성들의 변화였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모스크 교육과는 여성들로 가득 찼어요. 25살부터 예순살까지 평생 글을 몰랐던 어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러 왔죠. 그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사람은 45살의 비네타였어요.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이었죠.
31:07 선생님, 저는 꼭 배워야 해요. 장사할 때마다 수같거든요. 숫자를 못 읽으니까요. 비네타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어요. 시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죠. 참주가 지났을 때 비네타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썼어요. 참냐? 야이 박은아 알리 내 아들아 엄마가 사랑한다. 그녀가 쓴 문장이었어요. 선생님 제가 제가 정말 쓴 거예요. 비네타가 울기 시작했어요. 다른 여성들도 눈물을 닦았죠. 20년 전에 아들을 도시로 유학 보냈어요. 그 후로 소식이 끊겼죠.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쓸 수
31:53 없었고 바다도 읽을 수 없었어요. 그녀는 편지를 가슴에 품었어요. 이제라도 아들에게 편지를 보낼 거예요. 엄마도 이제 글을 안다고 주 비넷타는 놀라운 소식을 가져왔어요. 선생님 아들이 답장을 보냈어요. 편지는 프랑스로 쓰여 있었지만 아래에 한글로도 적혀 있었어요. 야이 닉나 박후독 엄마 정말 놀라워요. 엄마가 글을 쓰다니 저도 한글을 배워서 엄마와 편지할게요.이 이야기는 마을 여성들 사이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어요. 나도 아들에게 편지 쓰고 싶어. 딸한테도 쓸 수 있겠지. 장부도 쓸 수 있을까? 시장상인 여성들이 특히
32:38 적극적이었어요. 그동안 숫자를 몰라서 얼마나 손해를 받는지 모른다며 한글 숫자부터 배우기 시작했죠. 두 달 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요. 시장에 한글 간판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비네타의 신선한 야채, 파티마 양품점, 마리안 빵 가게. 처음엔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게 뭐야? 이상한 그림 아니야? 하지만 여성들은 당당했어요. 우리가 쓴 우리 가게 이름이야. 이제 우리도 그을 안다고. 더 놀라운 건 여성들이 서로 한글로 메모를 주고받기 시작한 거예요. 시장에서 물건값을 적어 주고 레시피를 공유하고 심지어 연애 편지도 썼죠. 신살마리아마가 수줍께 고백했어요. 남편한테 처음으로
33:25 연애 편지를 썼어요. 결혼한지 30년 만에요. 남편이 읽고 울었대요. 이런 변화를 보고 마을의 남성들도 동료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내가 글을 쓰는데 나만 모른다는게 딸이 아빠도 배우라고 조르는데 결국 남성 반도 만들어졌어요. 프라이드 때문에 처음엔 쭈격거렸지만 곧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죠. 그런데 진짜 혁명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어요. 어느 날 비네타가 다른 상인 여성 열명과 함께 저를 찾아왔어요. 선생님, 우리가 결정했어요. 시장상인 조합을 만들 거예요. 그리고 모든 거래를 한글로 기록할 거예요. 저는 놀라서 되물었어요. 조합을 그게 가능할까요? 왜 안 돼요?
34:12 이제 우리도 글을 쓸 수 있는데 그동안 중간 상인들한테 얼마나 속았는지 몰라요. 이제는 우리가 직접 장부를 쓸 거예요. 파티마가 거들었어요. 맞아요. 어제 감자 100kg 팔았는데 중간 상인이 50km만 샀다고 우기는 거예요. 증거가 없으니 당할 수밖에 없었죠. 여성들의 결의는 단단했어요. 일주일 후 여성상인 조합이 정식으로 출범했습니다. 첫 회의는 감동적이었어요. 30명의 여성이 모여서 한글로 회의록을 작성했거든요. 오늘 날짜 참석자 비네타, 파티마, 마리암, 안건 공동 구매와 판매 가격 협의 회의를 마친 후 비네타가 말했어요. 40년 동안 장사했지만
34:59 오늘처럼 뿌듯한 날은 없었어요. 드디어 우리가 주인이 된 것 같아요. 소문은 빠르게 퍼졌어요. 임근 마을 여성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죠. 우리도 한글을 배우고 싶어요. 조합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한 달 만에 조합원이 100명을 넘었어요.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형 유통업체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티바우한 여성 조합과 직거래하고 싶습니다. 체계적인 장부 관리가 인상적이네요.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를 하니 수익이 두 배로 늘었어요.이 성공 스토리는 전국적인 뉴스가 됐어요. 문맥 여성들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실렸죠. 하지만 진짜 감동적인 순간은 따로 있었어요. 어느 날 저녁 예순살례
35:44 함사투 할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가져왔어요. 선생님, 이거 제가 쓴 거예요. 편지를 펼쳐 보니 눈물이 났어요. 내 아들아, 엄마도 이제 그을 안다. 40년 전 네가 프랑스로 떠날 때 공황에서 울기만 했던 엄마가 이제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보고 싶다. 내 아들아, 엄마가 함사투 할머니가 흐느꼈어요. 아들이 파리에서 의사가 됐대요. 하지만 편지한 통 제대로 못 보냈죠. 이제야 이제야 엄마 마음을 전할 수 있어요. 두 주 후 함사투 할머니의 아들이 새내갈로 왔어요. 공항에서 어머니를 만난 그는 한글로 쓴 편지를 보고 무릎을 꿇었다고 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가 그을
36:32 모른다고 무시했던 제가 부끄러워요.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여성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어요. 어느 날 비네타가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우리가 마을 회의에 참석하겠어요? 이제 우리도 회의록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마을 회의는 전통적으로 남성들만의 영역이었어요. 여성들의 요구에 남성들은 당황했죠. 여자들이 무슨 회의야? 하지만 쉐이크가 나섰어요. 왜 안 되겠어? 그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권리가 있어. 첫 번째 여성 참여 마을 회의 역사적인 순간이었어요. 비네타가 일어나서 발언했어요. 시장 환경 개선에 대해 권의하고 싶습니다. 여기 제가 작성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한글로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보고
37:20 남성들도 놀랐어요. 이걸 정말 당신들이 작성한 거요? 네. 우리가 직접 조사하고 정리했어요. 이제 우리도 할 수 있어요. 그날 이후 마을 회의는 더 활발해졌어요. 여성들의 참여로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결정도 더 합리적으로 바뀌었죠. 하지만 이런 변화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세력도 있었어요. 은디아에가 다시 나타났어요. 이게 다 그 한글 때문이야. 여자들이 벌릇 없어졌어. 하지만 여성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어요. 버릇 없어진게 아니라 깨어난 거예요. 우리도 인간이고 배울 권리가 있어요. 파티마가 당당하게 맞었어요. 프랑스어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었어요. 하지만 한글은 우리를
38:05 자유롭게 했어요. 이제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은디아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갔어요. 그날 밤 여성들이 축하 모임을 열었어요. 비네타가 일어나서 말했어요. 1년 전만 해도 우리는 문맹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우리가 쓴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어요.이 모든게 아미나타 선생님과 한글 덕분이에요. 모두가 박수를 쳤어요. 그때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전통 얼로푸어 노래였는데 가사를 바꿔서 불렀죠. 한글, 고마워. 우리에게 빛을 주었네. 이제 우리도 쓸 수 있어. 우리 마음, 우리 생각을 모두가 따라 부르며 춤을 쳤어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어요. 이것이 바로 세종대왕이
38:52 꿈꾸던 모습이 아닐까? 백성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세상. 다음 주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어요. 체네갈 대통령이 우리 마을을 방문한다는 거였어요. 대통령 방문 소식의 마을은 발칵 뒤집혔어요. 문화부 장관 시세가 우리 마을의 성공 사례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이 직접 확인하고 싶다며 비공식 방문을 결정한 것이었죠. 방문일 아침 마을 입구에는 특별한 현수막이 걸렸어요. 한글로 쓴 환영 문구였죠. 다램 대통령님, 티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원들이 먼저 도착했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었어요. 이게 뭡니까? 중국어인가요? 비네타가 당당하게 대답했어요. 한글이에요.
39:41 우리가 쓴 우리 말이죠. 오전 10시 대통령 차량이 도착했어요. 50대 후반의 훈두 다렘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엘리트였죠.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현수막을 보더니 멈춰섰어요. 이걸 누가 썼습니까? 저희가 썼습니다. 대통령님. 여성 상인들이 앞으로 나섰어요. 대통령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물었어요. 정말로요? 여러분이 직접 그때 여덟살 파투마타가 앞으로 나왔어요. 손에 편지를 들고 있었죠. 대통령 할아버지 이거 제가 쓴 편지예요. 읽어 드릴게요. 파투마타가 또렷한 목소리로 읽었어요. 대통령 할아버지께 우리는 이제 글을 써요. 엄마도 할머니도 쓸
40:27 수 있어요. 한글로 우리 말을 쓰니까 너무 좋아요. 프랑스어는 어려워서 울었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공부해요. 대통령의 표정이 진지해졌어요. 얼마나 배웠니? 두 달이요. 두 달 만에 이렇게 쓸 수 있다고. 쉐이크가 나섰어요. 대통령님, 직접 보시죠.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 즉석 시범이 시작됐어요. 한글을 처음 보는 아이 하나를 불러서 가르쳤죠. 이건 아야. 입을 크게 벌리는 소리지. 15분 후. 그 아이가 자기 이름을 쓰는 걸 보고 대통령은 경악했어요.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앞으로 나가서 설명했어요. 대통령님, 한글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41:13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설계됐죠.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도구였습니다. 대통령이 물었어요. 당신이 아미나타 디알로 박사군요. 파리의 배신자라고 들었는데 배신자가 아닙니다. 전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길을 찾았을 뿐입니다. 그때 비네타가 용기를 냈어요. 대통령님 저희 장부를 보여 드려도 될까요? 여성상인 조합의 한글 장부를 보고 대통령은 또 한번 놀랐어요. 이걸 여러분이 직접 작성한 겁니까? 네. 이제 저희도 속지 않아요. 모든 걸 기록하니까요. 대통령은 장부를 한참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갑자기 물었죠.이 한글로 프랑스어도 쓸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즉석에서
42:00 써 보였어요. 봉주르 무슈레프레지당. 놀랍군요. 정말로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거군요. 춘차를 마친 대통령은 마을 회관에서 즉석 연설을 했어요. 오늘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60년간 실패한 일을 여러분은 몇 달 만에 해냈습니다. 청중들이 숨 죽였어요. 프랑스어 교육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제가 틀렸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지식 전달이지 특정 언어를 강요하는게 아닙니다.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선언했어요. 정부 차원에서 한글 교육을 검토하겠습니다. 모든 새내갈 국민이 자기 언어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환호성이 터졌어요. 여성들은 서로 부둥켜고 울었죠. 하지만 대통령은 신중하게
42:47 덧붙였어요. 물론 반발이 클 겁니다. 프랑스도 국내 기득권층도 반대할 거예요. 하지만 변화는 필요합니다. 떠나기 전 대통령은 저에게 조용히 말했어요. 디알로 박사, 당신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겁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저도 그래요. 이게 옳은 길이라면 함께 가야죠. 대통령이 떠난 후 언론이 몰려들었어요. 정말 대통령이 한글 교육을 지지했나요? 문맹 퇴치의 새로운 해법이라고요? 하룻밤 사이에 우리 마을은 전국적 관심사가 됐어요. 다음날 예상대로 반발이 시작됐어요. 프랑스 대사가 긴급 성명을
43:32 발표했어요. 체네갈과 프랑스의 특별한 관계를 해치는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국내 프랑스와 엘리트들도 들고 일어났어요. 대통령이 포퓰리즘에 굴복했다. 아시아 문자로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훼손하는가? 하지만 민중의 반응은 달랐어요. 다른 지역에서 무늬가 쏟아졌어요. 우리 마을에도 한글 선생님을 보내 주세요. 우리 아이들도 배우게 해 주세요. 특히 시골 지역과 빈민과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대통령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디알로 박사님, 대통령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도로 향했어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불꽃이 이제 전국으로 번지려 하고
44:18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어요. 대통령궁 회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시작됐어요. 교육부 장관, 문화부 장관, 그리고 프랑스권 담당 장관까지 모였죠. 디알로 박사, 네가 시작한 일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아시오? 교육부 장관 토레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어요. 아이들이 그을 배우는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요? 문제는 그게 아니요. 프랑스와의 관계, 60년간 쌓아온 교육 체계.이 이 모든게 흔들리고 있어. 프랑스권 담당 장관 디우프가 서류를 내밀었어요. 프랑스 정부의 공식 서한입니다. 만약 한글 교육을 공식화한다면 연간 5억 유로의 교육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합니다. 5억 유로
45:05 체내갈 교육 예산의 30%였어요. 그뿐이 아닙니다. 토레가 덧붙였어요. 프랑스 대학들이 새내갈 학생 받기를 거부하겠대요. 유학의 길이 막힌다는 겁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어요. 대통령이 입을 열었어요. 그래도 우리 국민 70%가 문맹인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디알로 박사, 당신의 방법이 정말 해법이 될 수 있습니까? 네, 대통령님, 석달이면 기초 문회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프랑스어로는 3년이 걸리는 일이죠.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텐데 디우프가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그때 문화부 장관 시세가 뜻밖에 발언을 했어요. 잠깐 우리가 왜 이렇게 프랑스 눈치만
45:51 봐야 합니까? 독립한지 60년이 넘었는데도 시세 현실을 봐야지. 토레가 핀잔을 줬어요. 현실이요? 현실은 우리 국민 대부분이 글을 못 읽는다는 거예요. 그게 진짜 현실 아닙니까? 대통령이 손을 들어 중제했어요. 일단 시범 사업으로 시작합시다. 몇 개 지역에서만 한글 교육을 해보고 결과를 보는 거죠. 하지만 프랑스의 압박은 즉각적이었어요. 다음날 프랑스 기업들이 세뇌갈 투자 재검토를 발표했어요. 프랑스계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올렸죠. 언론도 둘로 갈라졌어요. 느레이우 신문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다. 느몽드 아프리크 무무한 실험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다. 일주일 후 더 큰 사건이
46:37 터졌어요. 서아프리카 프랑스 어 정상회의에서 세내갈이 제외된 거예요. 한글을 공용 문자로 검토하는 국가는 프랑쿠폰이 회원 자격이 없다. 프랑스 대통령의 직접적인 경고였죠. 국내에서도 반발이 거세졌어요. 프랑스어 교사 만 명이 거리로 나왔어요. 우리 일자리를 빼앗지 마라. 한글은 문화 제국주의다. 일부 과격한 시위대는 제 사진을 불태웠어요. 배신자 아미나타라고 쓴 플래카드와 함께요. 하지만 뜻밖의 곳에서 지원군이 나타났어요. 말리 브르키나 파소, 리제르의 교육부 장관들이 세네가를 방문한 거예요. 우리도 한글 교육에 관심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압박이 두렵지 않냐고요? 우리는 이미 가난합니다. 말리 장관의
47:25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프랑스어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게 아니라 대다수를 배제하는 도구였습니다. 이제는 바꿀 때입니다. 이들 국가의지지 선언은 큰 힘이 됐어요. 또 다른 반전도 있었어요. 세계은행과 유네스코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한글을 활용한 문맹 퇴치 프로젝트의 효과가 입증된다면 우리도 지원할 용이가 있습니다. 프랑스 일변도였던 국제 원조의 판이 바뀌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어요. 프랑스계 대기업에서 일하던 청년들이 집단 해고됐어요. 이유는 단 하나. 한글 교육을 지지했다는 것.이 소식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어요.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 우리 말로
48:10 배울 자유를. 시위대 중에는 놀랍게도 대학생들이 많았어요. 프랑스어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었죠. 의대생 알리우가 마이크를 잡았어요. 저는 프랑스어로 의학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제 환자 대부분은 프랑스어를 못 해요. 초이 안 되는 의사가 무슨 소용입니까? 법대생 파티마도 외쳤어요. 법전은 프랑스로 쓰여 있지만 국민은 그걸 읽을 수 없어요. 이게 정의입니까? 젊은 엘리트들의 참여는 판도를 바꿨어요.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다를 발표했어요. 국민 여러분, 우리는 기로에서 있습니다. 편한 길을 갈 것인가? 옳은 길을 갈 것인가?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어요. 저는 티바완에서 한글로
48:55 처음 글을 쓴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한글을 활용한 모국어 교육을 공식 정책으로 채택합니다. 프랑스어도 계속 가르치되 모국어 운해력을 먼저 기르겠습니다. 역사적인 선언이었어요. 프랑스는 즉각 모든 원조를 중단했어요. 체네갈은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습니다. 교육 예산의 30%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우리는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국민이 되겠습니다. 무지하지만 부유한 것보다 깨어 있지만 가난한 것이 낫습니다. 그날 밤 저는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디알로 박사.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전국적인 한글 교육을
49:41 준비해 주십시오. 네.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창밖을 봤어요. 다카르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죠.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불꽃이 이제 나라 전체를 밝히려 하고 있었어요. 프랑스의 압박은 거했지만 우리의 의지는 더 강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한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디알로 박사님, 한국 정부에서 급히 만나고 싶어 합니다. 대사관에 도착하니 낯선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국 교육부, 외교부, 그리고 놀랍게도 여러 대기업 관계자들이었죠.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교육부 아프리카 협력과장 이서진입니다. 잠깐
50:28 이서진.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이하연 교수와 이름이 비슷했어요. 혹시 이하연 교수님과 이서진 과장이 미소 지었어요. 제 어머니십니다. 어머니께서 새내갈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놀라운 인연이었어요. 한국 정부는 세내갈의 한글 교육 프로젝트를 전폭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믿끼지 않아서 되물었어요. 정말인가요? 왜 왜 우리를 돕는 거죠? 외교부 관계자가 설명했어요. 한글은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이죠. 인류 공동의 자산인 한글이 아프리카에서 문맹 퇴치에 기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종대왕의 뜻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때 삼성 관계자가 앞으로 나왔어요. 저희는 한글 교육용 태블릿
51:15 10만 대를 지원하겠습니다. 전원과 인터넷이 없는 지역에서도 쓸 수 있는 특별 제작품입니다. LG 관계자도 거들었어요. 저희는 태양광 충전 시스템을 지원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어디서든 디지털 교육이 가능하도록 현대차 SK 노때 한국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지원을 약속했어요.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네이버였어요. 저희가 개발한 AI 번역 시스템을 무상 제공하겠습니다. 월로프어, 플라워 등 세내갈의 모든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났어요. 프랑스는 우리를 버렸지만 한국은 손을 내밀어 준 거예요. 왜?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거죠? 이서진 과장이 따뜻하게 말했어요.
52:02 한국도 한 때 문맥률이 80%였습니다. 하지만 한글 덕분에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죠. 그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일주일 후 한국 교원대학교에서 100명의 자원봉사 교사가 도착했어요.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 한 교사가 인터뷰했던게 기억나요? 최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이 600년 후 아프리카에서 쓰인다니 가슴이 벅차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류 아닌가요? 체내갈에 도착한 한국 교사들은 즉시 현장에 투입됐어요. 그중 가장 열정적인 사람은 은퇴 교사 박정순 선생이었어요. 예순일곱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원한 분이었죠. 40년간 한국에서 한글을 가르쳤어요. 이제는 세계의 한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박
52:47 선생은 특히 어른들 교육에 탁월했어요. 한글은 나이 들어서 배워도 쉬워요. 세종대왕이 그렇게 만드셨거든요. 한국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현지인들을 감동시켰어요. 더위에 지쳐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죠. 청년 교사 김서현 씨의 일하는 특히 유명해요. 말라리아에 걸려 입어내는데도 병상에서 교재를 만들었거든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해요. 내일 새로운 글자를 배우기로 했거든요. 이런 모습에 새내갈 사람들도 변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정말로 돕고 싶어 하는구나. 프랑스인들과는 달라. 그들은 우리를 존중해. 한국 대통령이 직접 세내가를 방문했을 때도 화제였어요. 공항에 마중 나간
53:32 아이들이 한글로 쓴 플랫카드를 들고 있었죠. 환영합니다. 한국 대통령님. 한글 고맙습니다. 한국 대통령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며 눈물을 닦았어요. 세종대왕께서 보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거예요.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은 파격적인 제안을 했어요. 앞으로 10년간 매년 1억 달러를 한글 교육에 지원하겠습니다. 조건은 없습니다. 오직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우기만 하면 됩니다. 체내갈 대통령이 감격했어요. 프랑스는 60년간 우리를 지배했지만 한국은 단 1년 만에 우리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두 정상이 서명한 한글 교육 협력 협정은 역사적인 문서가 됐어요. 그날 저녁 저는 비네타를 비롯한 여성들과
54:17 함께 작은 축하 모임을 가졌어요. 한국이 준 건 돈이나 기계가 아니에요. 비네타가 말했어요. 희망을 줬어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요. 한국의 전폭적인 지원 이후 변화의 속도는 놀라웠어요. 석달 만에 새내갈 저녁 마을에서 한글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한국 교사들과 세내갈 현지 교사들이 함께 아이들을 가르쳤죠. 가장 놀라운 건 학습 속도였어요. 한 달이면 기본 읽기 쓰기, 석달이면 편지 쓰기. 이게 평균 성과였습니다. 프랑스어로는 3년이 걸리던 일이었죠. 티바우완을 찾았던 기자 한 명이 석달후 다시 왔어요. 믿을 수 없어요. 지난번에 제 이름도 못 쓰던 아이가 이제는 일기를 쓰고 있어요. 열살 무사가
55:03 보여준 일기장은 감동적이었어요. 오늘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셨다. 엄마도 이제 한글을 배운다. 우리 가족 모두가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행복하다. 하지만 진짜 혁명은 다른 나라들로 번지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만리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교육부 장관이 직접 티바우안을 방문한 후 즉각 시범 사업을 결정했어요. 우리 말은 반발하어입니다. 한글로 반발하어를 쓸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즉석에서 반발하어 기본 표기법을 보여줬어요. 두 달 후 말리수도 바코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어요. 5,명의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중퇴율이 벌써 20% 떨어졌어요. 브르키나 파소도
55:49 뒤따라요. 그들의 언어는 모레어였죠. 한글은 정말 마법밭 모레어의 복잡한 성조까지 표현할 수 있어요. 브르키나 파소 교육부 차관의 말이었습니다. 니제르, 기니, 코트디브아르 하나 둘씩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동참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가장 극적인 변화는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났습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 인구 국가죠. 2억명이 넘는 인구에 500개가 넘는 언어가 있었어요.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는 너무 복잡해요. 나이지리아 교육부의 첫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요 언어 다섯 개만 선택해서 시범 사업을 제안했죠. 하우사어, 이그보어,
56:35 요르바어, 플라니어, 이조어. 6개월 후 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10만 명의 아이들이 참여했고 95%가 기초 문회력을 갖췄습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대학의 연구 결과였죠. 더 놀라운 건 경제 효과였어요. 한글을 배운 여성들이 작은 사업을 시작했어요. 장부를 쓸 수 있으니까 거래가 투명해졌고 신용도가 올라갔죠. 한글 학습자 대상 소액 대출 프로그램 나이지아의 한 은행이 시작한 프로그램이었어요. 문맥률이 높아서 대출을 못 받던 여성들이 한글로 장부를 쓰자 신용을 인정받은 거예요. 7개월 만에 5,명이 넘는 여성이 대출을 받았고 연체율은 1%에 불과했습니다. 교육이
57:21 경제를 바꾸는 걸 처음 봤어요. 세계은행 아프리카 담당자의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동아프리카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트와일리어권 국가들이었죠. 트와일리어는 이미 문자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의하자. 케냐 교육부 장관이 설령했어요. 로마자로 쓰고 있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요. 특히 아이들이 헷갈려합니다. 한글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시험 결과는 놀라웠어요. 한글 표기 스활일려가 로마자 표기보다 학습 속도가 두 배 빠른 거예요. 혀를 어디에 대는지 입술을 어떻게 하는지가 글자에 나타나니까 발음이 정확해져요. 케냐 나이로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설명했습니다. 1년이 지났을 때
58:09 통계가 나왔어요. 아프리카 15개 국가 8천만 명이 한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발표였죠. 그리고 또 다른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어요. 한글 세대의 탄생이었습니다. 한글로 교육받은 아이들이 자신감이 넘쳤어요. 프랑스어나 영어를 몰라도 위축되지 않았죠. 저는 이그보어로 생각하고 한글로 씁니다. 그게 자랑스러워요. 나이즈리아 14살 소녀 치디의 말이었어요.이 자신감은 창의성으로 이어졌어요. 한글로 쓴 아프리카 동화책이 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를 아이들이 직접 글로 쓴 거예요. 범위 아난 씨의 모험, 차자왕 순방구, 바오밤 나무의 비밀, 전통 이야기들이
58:55 한글로 기록되고 출판되고 퍼져나갔어요. 케냐의 한 출판사는 10개월 만에 300권의 아프리카 동화책을 출관했습니다. 모두 한글 표기였죠. 처음으로 우리 언어로 된 책을 출판할 수 있게 됐어요. 출판사 대표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극적인 변화는 교육 현장에서 일어났어요. 선생님들이 발견한 거예요. 한글로 모국어를 가르친 후 프랑스어나 영어를 가르치면 오히려 학습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모국어로 개념을 이해하니까 외국어는 단어만 바꿔 넣으면 돼요. 만리의 한 구사가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데이터가이를 증명했어요. 한글 모국어 교육 후 프랑스어를 배운 그룹이 처음부터 프랑스어로 배운 그룹보다 2년 후
59:41 프랑스어 실력이 더 높았습니다. 다카르 대학교의 연구 결과였죠.이 결과는 프랑스어 반대파들의 입을 막았어요. 한글이 프랑스어를 대체하는게 아니라 보완하는구나. 심지어 일부 프랑스어 교사들도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한글로 개념을 먼저 이해하면 제 수업이 훨씬 쉬워져요. 새내갈래 한 프랑스어 교사가 고백했습니다. 1년 반이 지났을 때 저는 아프리카 교육 장관 회의에 초청받았어요. 스무의 국가에서 교육부 장관들이 모였습니다. 디알로 박사 당신이 시작한 혁명이 대륙을 바꾸고 있습니다. 가나 교육부 장관의 말이었어요. 회의에서 놀라운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아프리카 한글 교육 연합 창설무개 국가가 공동으로 한글
1:00:28 교육 표준을 만들고 교재를 공유하고 교사를 교류하기로 한 거예요. 한국 정부도 즉각 반응했어요. 아프리카 한글 교육에 향후 5년간 50억 달러를 지원하겠습니다. 한국 대통령의 발표였습니다. 그날 저녁 호텔 방에서 혼자 앉아 있을 때 문득 깨달았어요. 3년 전 다카르의 그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일이 이제 대륙 전체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요. 창 밖으로 아프리카의 밤하늘이 보였어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죠. 세종대왕님, 당신의 한글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어요. 다음날 더 큰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UN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디알로 박사님, UN
1:01:14 총회에서 발표해 주시겠습니까? 전 세계가 아프리카의 기적을 알아야 합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어요. UN 총회에서 제가 연설할 차례였죠. 뉴욕 UN 본부 193대 국가 대표들 앞에 서니 다리가 떨렸어요. 하지만 제 뒤에는 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티바우 안에서 온 아이들이었죠. 오늘 저는 한 언어학자가 아닌 기적의 증인으로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어요. 몇 년 전 새내갈래 작은 마을에서 15명의 아이들과 시작한 일이 이제 1억 명의 삶을 바꿨습니다. 화면에 통계가 나타났어요. 첫째, 15개 국가 한글 교육 도입. 둘째, 1억명
1:01:59 기초 문회력 획득. 셋째, 문맥률 70%에서 25%로 감소. 넷째, 여성 문의 300% 증가.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준비한게 있었죠. 이제 직접 들어 보시겠습니다. 한글이 바꾼 삶의 목소리를. 첫 번째는 이제 16살이 된 이브라이마였어요. 이브라이마가 마이크 앞에 섰어요. 그 수줍던 소녀는 이제 당당한 모습이었죠. 안녕하세요. 저는 세네갈래 이브라이마입니다. 놀랍게도 한국어로 인사했어요. 그리고 영어로 이어갔죠. 몇 년 전 저는 이름도 쓸 수 없었어요. 하지만 한글을 만나고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이브라이마가 태블릿을 들어 보였어요.
1:02:45 화면에는 한글로 쓴 일기가 있었죠. 이건 제가 쓴 일기예요. 우리 마을 이야기를 썼어요. 이제 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우리의 아픔과 희망을 세게에 전하고 싶어요. 회의장이 조용해졌어요. 이브라임마가 마지막으로 한글로 쓴 문장을 읽었어요. 미래는 그를 아는 자의 것이다. 이제 우리도 미래를 쓸 수 있다.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몇몇 대표들은 눈물을 닦았죠. 두 번째는 만리의 비내타였어요. 이제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 그녀였죠. 저는 45살에 처음 글을 배웠습니다. 시장에서 야채를 팔던 문맹 여성이었죠. 비네타가 장부를 보여 줬어요. 한글로 장부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업이 커졌어요. 이제 저는 100명을 고용하는 농산물 유통
1:03:32 회사 대표입니다. 그녀의 다음 마리 모두를 올렸어요. 제일 기쁜 건 딸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됐다는 거예요. 이제 딸들의 숙제도 봐줄 수 있거든요. 세 번째는 특별한 영상이었어요. 세네갈, 말리, 브르키나 파소, 나이지리아 15개 국가 아이들이 동시에 나타났어요. 화상 연결이었죠. 모두가 한글로 쓴 종이를 들고 있었어요. 우리는 세네갈, 저는 말리, 저는 브루키나 파소, 저는 나이지아. 모든 아이들이 함께 외쳤어요. 감사합니다. 한글 감사합니다. 세종대왕 순간 한국 대표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어요. 한국 대사가 고개를 숙이고 울고
1:04:19 있었죠. 저는 연설을 이어갔어요. 이것은 단순한 문자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었습니다. 화면에 새로운 사진이 나타났어요. 한글로 쓴 아프리카 최초의 백과 사전, 의학 교과서, 법전, 프랑스어나 영어를 거치지 않고 이제 아프리카는 자기 언어로 지식을 생산합니다. 그때 프랑스 대표가 손을 들었어요. 긴장했지만 뜻밖에 말이 나왔죠. 프랑스를 대표해 사과들입니다. 우리가 틀렸습니다. 언어는 지배의 도구가 아닌 소통의 도구여야 합니다. 프랑스 대표가 일어나 한국 대표에게 악수를 청했어요. 역사적 화해의 순간이었죠. 미국 대표도 발언했어요. 미국은 아프리카 한글 교육의 50억 달러를
1:05:05 지원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개발 원조입니다. 중국, 일본, 영국 각국이 앞다투어 지원을 약속했어요. 그런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따로 있었어요. UN 사무총장이 일어났어요. 오늘 우리는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작은 문자 하나가 대륙을 바꾼 것을.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선언했어요. 유회는 10월 9일 한글날을 세계 문회의 날로 지정합니다. 모든 인류가 읽고 쓸 권리를 기억하는 날로 환호성이 터졌어요. 한국 대표단은 서로 부동켜고 울었죠. 저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세종대왕이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각국
1:05:50 대표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와 주세요. 우리도 한글을 배우고 싶어요. 그날 밤 뉴욕 타임 스퀘어 전광판에 특별한 문구가 떴어요. 한글 세 개를 바꾸다. 한글로도 쓰여 있었죠. 시간이 흘러 여러 애가 지났습니다. 믿기 어려운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아프리카 대륙의 문맥률이 70%에서 20%로 떨어졌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문맹 퇴치였죠. 더 놀라운 건 문화적 변화였어요. 아프리카 한글 문학상은 이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최근 노벨 문학상 후보의 아프리카 한글 작가 세 명이 올랐어요. 그중 한 명이 바로 살이 된 이브라이마였죠. 한글로 아프리카의
1:06:36 목소리가 세계에 올려 퍼지다. 각국 언론의 헤드라인이었어요. 경제적 성과도 놀라웠어요. 아프리카 대륙의 국내 총생산이 여러 해간 평균 8% 성장했습니다. 세계은행은이를 문회력 혁명이 가져온 경제 기적이라고 불렀죠. 나이지아는 아프리카의 실리콘 밸리가 됐습니다. 한글 코딩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스타트업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진출했거든요. 프랑스의 태도 변화도 인상적이었어요. 얼마 전에 프랑스 대통령이 세네가를 방문했을 때 한글로 연설문을 준비해 왔더라고요. 나는 세네가를 사랑합니다. 한글로 쓴 종이를 들고 있었죠. 과거를 반성합니다. 이제 프랑스도 배우겠습니다. 모든 언어와 문자는 평등합니다. 역사적 화해의
1:07:23 순간이었어요. 한국과 아프리카의 관계는 그야말로 혁명이 됐어요. 한아프리카 한글 연대가 출범했고 매년 수만 명이 교류하고 있죠. 특히 감동적인 건 한글 할머니 봉사단이었어요. 한국의 은퇴 교사 할머니들이 아프리카로 가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죠. 얼마 전 쉐이크 알림 바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종교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교육 평등을 실현한 공로가 인정받은 거죠. 저도 작은 영예를 얻었어요. 유네스코 교육 혁신상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저가 아니었어요. 티바우안의 아이들, 용기 있는 어머니들, 그리고 한글을 믿어 준 모든 사람들이었죠. 지난달 저는 티바우안을 다시 찾았어요. 첫 한글 수업을 했던 그
1:08:10 교실 이제는 번듯한 건물이 됐지만 그 감동은 여전했어요. 아이들이 태블릿으로 공부하고 있었어요. 칠판에는 여전히 한글이 가득하고 아이들의 눈빛은 더욱 반짝였죠. 선생님, 이브라이마가 뛰어왔어요. 이제는 훌쩍 잘한 청년이 됐더군요. 저 이제 책을 쓰고 있어요. 우리 마을 이야기예요. 한글을 만난 날부터 시작하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던 미래였어요. 아프리카가 자기 목소리를 찾은 것. 그리고 그 시작은 작은 동그라미와 막대기. 한글이었습니다. 최종대왕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만드신 한글이 600년 후 아프리카 대륙을 바꿨습니다. >> 지금까지 아미나타 디알로의 사연
1:08:57 어떠셨나요? 작은 문자 하나가 만들어낸 거대한 변화 때로는 가장 단순한 해답이 가장 위대한 혁명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한글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미래가 되었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나요?이 이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면 주변에 꼭 공유해 주세요. 전 세계의 한글의 가치를 알리고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요. 그리고 잊지 [음악] 마세요.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까지. 여러분의 작은 클릭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더풀 해외 사연이었습니다. 사연이었습니다. 사연이었습니다. 회사연이었습니다. 회사연이었습니다.
1:09:46 사연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