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다큐멘터리는 언어가 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입니다.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의 연관성, 벼농사 기술의 전파, 인골 연구를 통해 밝혀진 고대인의 이동 경로 등을 추적하며, 언어의 변화와 소멸이 민족의 흥망성쇠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줍니다.
- 언어는 민족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요소이며, 민족의 정체성을 결정짓습니다.
-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는 뿌리가 같을 가능성이 있으며,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농경 문화와 함께 언어가 전파되었을 수 있습니다.
-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는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거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웨딩드레스와 언어의 다양성
오늘날 전 세계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는 웨딩드레스는 국적을 초월한 보편적인 결혼 예복이 되었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신부들의 유전자를 검사해도 민족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언어학자들의 연구: 한국어와 일본어의 기원
일본 후쿠오카에서 아프리카 언어 전문가 키요시 교수와 강영미 교수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을 비교하며, 2년간 5천여 개의 비슷한 어휘를 찾아냈습니다. 한자 차용어를 제외하고도 두 나라의 고유어에서 유사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일본어의 뿌리가 고대 한국어에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한반도 북부에서 일본 열도로 이어지는 고대 동아시아 언어 지도를 제시합니다.
고대 논 유적 발굴: 벼농사의 전파
일본 나가사키현에서는 2천 5백여 년 전의 고대 논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당시의 가장 오래된 논으로, 계곡물을 이용해 벼를 재배한 흔적을 보여줍니다. 이후 후쿠오카의 평야 지대에서도 대규모 논 유적이 발견되면서 벼농사가 평야 지대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논과 함께 마을 유적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 일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마을이었습니다.
인골 연구: 야요이인의 등장
큐슈 대학에서는 고대 인골 연구를 통해 일본에 새롭게 등장한 문화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두개골 크기, 코 모양 등을 분석한 결과, 기존의 조몬인과는 다른 이질적인 인골 집단인 야요이인이 발견되었습니다. 야요이인은 얼굴이 길고 갸름하며, 눈썹이 가늘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 인근의 도이 가하마 유적에서는 야요이인 유골 300여 구가 발굴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한반도 방향을 바라보게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전남 지역 청동기 유적: 송국리 문화
전남 지역에서는 2천 5백 년 전의 청동기 마을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큰 곡식 저장고와 함께 송국리형 주거지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충청도 지역에서만 조사되던 형태였습니다. 송국리형 주거지는 구릉지에 움집을 짓고 평지에 논을 만드는 형태이며, 마을 전체를 울타리로 둘러 보호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야요이 마을과 유사한 모습입니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송국리 유물은 일본에서도 그대로 발견되는데, 이는 송국리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를 이루었음을 시사합니다.
언어학적 증거: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의 연관성
홋카이도 대학의 마크 허드 교수는 일본어의 원형이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농경인의 언어라고 주장합니다. 안정된 농사로 인구가 늘자 경작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농사 기술과 함께 언어를 가지고 이동했습니다. 그는 한반도 농경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의 언어를 뿌리내렸다고 믿고 있습니다.
언어의 변화와 분화
고대 한반도 농경인의 언어가 일본어의 기원이라면, 왜 지금의 두 나라 언어는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요? 로스 킹 교수는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기둥의 말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일본어의 조상은 농사를 전해준 한반도 농경인의 말이지만, 한반도에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어가 사라졌습니다. 김용욱 교수는 비석에서 고대 한국어의 흔적을 찾고 있으며,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송기중 교수는 삼국사기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의 어휘를 비교하며, 세 나라가 서로 다른 어휘를 사용했음을 밝혀냅니다.
고구려와 일본어의 연관성
고구려와 일본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찾아낸 고구려의 수사는 일본어와 일치합니다. 민족의 언어 계통을 찾는 데 가장 중요한 증거가 수사의 일치인데, 고구려와 일본의 수사가 일치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옛날 한반도에는 한 줄기에서 나온 부여와 한어가 있었고, 그 갈래에서 나온 말들이 조화를 이루어 지금의 한국어를 이루었습니다. 일본어는 따로 떨어져 저 혼자만의 길을 걸어 지금의 일본어가 된 것입니다.
고마 신사와 고구려 유민
일본 동경 외곽에는 고구려라는 뜻의 고마 신사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고구려의 마지막 왕자 약광의 족보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약광 왕자는 일본으로 망명하여 이곳에 정착했고, 그를 따라 1700여 명의 고구려 유민도 함께 왔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고구려는 사라졌지만, 약광과 난자의 후손들은 여전히 고구려의 후손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변화와 소멸
말에는 생명이 있어서 세월과 함께 변해갑니다. 같은 핏줄에서 나온 말이라도 걷는 길이 다르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130년 전에 쓰던 말도 지금은 전혀 쓰이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한국어와 단절된 채 카자흐어와 접하면서 고립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로스 킹 교수는 시간이 흐르면 언어가 완전히 달라져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언어와 민족의 운명
한국인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바로 한국어입니다. 언어를 잊어버리면 민족은 사라집니다. 한때 대제국을 건설했던 만주족은 언어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지구상에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말이 없어지면 우리 민족도 사라집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룩해 나가는 도구는 바로 우리 한국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