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직접 찾아 온 하버드 언어학 박사가 길거리에서 한국어 보고 분노한 이유 (로스킹 교수)

간단한 요약

이 영상에서는 하버드 대학교의 언어학 박사인 로스킹 교수의 한국어 교육과 한국에 대한 경험을 다룹니다. 교수는 40년간 한국어를 연구하고 교육해온 경력과 한국어 마을을 설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 하버드 박사가 처음 한국어를 접하게 된 이유
  • 40년간 한국어의 인식 변화와 글로벌적 성장

하버드 대학교 언어학 박사 로스킹 교수

로스킹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의 언어학 박사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언어학 분야에서 한국어가 굉장히 재미있고 독특하다고 강조하며, 이로 인해 한국어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버드 언어학 박사가 한국을 찾아오게 된 이유

교수는 한국어 학습을 통해 한국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커졌고, 1981년 처음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당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독재정권 아래의 한국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1981년, 한국을 처음 알게 되고 느낀 점

1981년, 로스킹 교수는 한국어를 독학 후 1년간 한국에서 보낸 경험을 이야기한다. 당시 정치적 상황과 한글에 대한 흥미를 느끼며, 선교사와 평화봉사단 출신의 외국인들 사이에서 독특한 존재로 대접받았다.

10개 국어 이상 학습한 하버드 박사가 한국어 보고 놀란 이유

교수는 여러 외국어를 배운 경험이 있어 한국어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국어는 학습할수록 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그는 한글이 정교한 문자라는 점에 매료되었고, 한국어 학습의 환경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전한다.

40년 전과 현재. 한국어에 대한 인식 차이

40년 전 한국어에 대한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나 현재는 미국 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증가하여 한국어가 인기 있는 외국어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어 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감지하고 있다.

하버드 박사가 미국에 한국어마을을 설립한 이유

로스킹 교수는 1999년 한국어 마을을 설립하면서 새로운 한국어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몰입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마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

교수는 한국어 마을에서의 교육 방식으로 주거 몰입 교육을 채택하여 한국어를 배우는 환경을 조성하고, 학습자들이 한국어에 24시간 노출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최근 한국어마을에 외국인이 넘쳐나는 이유

최근 한국어 마을은 외국인 학습자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이루어진 배경과 추가적인 교육 제공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하버드 언어학 박사가 한국어 연구 하다 화가 난 이유

교수는 한국어 교육에서 한자 교육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그는 한국어를 잘 배우기 위해서는 한자 학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버드 언어학 박사가 40년간 한국어 연구 하다 발견한 것

그는 한국어와 한자의 관계와 역사적 상호작용을 연구하면서 언어 민족주의가 한국 문화 안에서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분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려면 해야할 일

로스킹 교수는 한국어의 글로벌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과 방법을 제시하며, 한국어 교육이 한국 내외에서 차별화될 필요성을 설명한다. 그는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강의하며 느낀 것

그는 캐나다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면서의 경험과 한국어 교육에 대한 글로벌적인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학습자의 각기 다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적 접근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하버드 언어학 박사가 죽기전까지 한국어를 연구하고 싶은 이유

교수는 한국어에 대한 연구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앞으로도 한국어의 발전과 전파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다. 그는 연구의 필요성과 후속 세대를 위한 한자 교육 자료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튜브 영상을 몇 초 만에 요약하세요

무료 Summ 앱으로 어떤 영상이든 이런 요약을 원하는 언어로 받아보세요.

App Store에서 다운로드
Google Play에서 다운로드

스크립트

“한국을 직접 찾아 온 하버드 언어학 박사가 길거리에서 한국어 보고 분노한 이유 (로스킹 교수)”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한국어가 미국에서 가르치는 탑 10 외국어 안으로 들어간 거예요 제가 막 시작할 때는 꿈에서도 이제 못 꿨을 겁니다 너무 놀라운 거죠 거의 미개척 분야였어요 그때 당시에는 한국어 자체가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재미있어요 한글이라는 문자도 잘 짜여진 그런 문자이기 때문에 좀 더 깊은 연구를 해야겠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대학의 아시아 학과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라스킨이 합니다 학부는 예일대에서 언어학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가서 석사과정 박사 과정을 언어학으로 그것도 한국어학 마쳤고요

0:46 한국어를 40년 넘게 배우고 있고요 30년게 가르쳐 왔습니다 한국어를 세종시에서 초청해 가지고 세종시 방문하고 또 서울에서 특강을 한번 하고 내일 들어갑니다 세종시에서는 한글과 한국어 한국어 교육 여러 가지를 합쳐서 일종에 한글 문화 도시를 이제 만들겠다고 막 그런 계획을 짜고 있는데 제가 25년 동안에 운영해온 숲속의 호수라고 한국어 마을을 알게 된 거예요 세종시에서 언어 마을 그 시스템을 벤치마킹으로 하겠다고 협업을 좀 하자고 그런 일 때문에 나온 것이고 1년 만에 나온 겁니다 예 보통

1:32 1년에 한 두 세 번씩 나오는데 작년에는 바빠 가지고 못 나왔어요 좀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다가 굉장히 훌륭한 교수 한분 이제 뵙게 됐어요 예대에서 이제 언어학자 이셨는데 1어 일본어학 그리고 한국어 학도 같이 하고 계셨어요 그때 당시에는 예 대에서는 한국어 프로그램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일본어부터 시작을 했는데 그 교수님이 또 마침 그때의 학과장이 있어요 그래서 학과에서 돈을 좀 마련해 가지고 여름 방학때 한국에 나올 수 있게끔 그런 기회를 주셨어요 그래서 1년 동안 독학을 한 다음에 한국에

2:18 처음으로 나왔어요 81년도에 한국에 대해서 아는 하나도 없었어요 그 순전히 어학적 언어학적인 지적인 호기심 때문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의 그때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왔어요 와보니 이제 완전히 독재 전두한 정권 그때이고 풍부한 경험을 했죠 그 여름 방학 동안에 한국어도 많이 배우고 인상이 깊었죠 예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고 왜냐면 그때 당시에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선교사가 아니면 평화봉사단 그 멤버 아니면 뭐 군인 간첩들 그 이외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 잘 없었어요 제가 사실 교수진을 보면

3:05 거의 다 평화봉사단 출신 아니면 선교사 아니면 군인 출신이에요 제가 아무래도 첫 다른 길로 나온 교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의도하거나 계획한 건 아니지만 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한국어 자체가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재미있어요 한글이라는 문자도 잘 짜여진 그런 문자이기 때문에 좀 더 깊은 연구 해야겠다 거의 미개척 분야였어요 예 그때 당시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이전에 당당히 많은 외국어를 배웠어요 살 때부터 18살 때까지 그 미네소타 북쪽에 있는이 콘코디아 언어 마을들을 한 8년간 여름마다 여름

3:51 내내 다녔어요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에도 이미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독일어를 정도 잘 할 줄 알았어요 달리 잘하는 건 없지만 외국어는 빨리 배우거든요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여러 가지 다양한 새로운 이국적인 외국어를 배워 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아랍어도 한 2년 정도 배우고 터키어 뭐 인도네시아 말 모스와 일리어 1년 배우고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어요 다만 한국어는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그런 언어인 거 같아요 81년도 여름에 나왔을 때는 는 주로 독학을 했지만 한 6주 동안 어학당을 다녀봤습니다 그때 당시에 MBC

4:36 방송국 발로 옆에 명도 어학원이 아는 곳이 있었어요 선교사들 테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그런 기관이었던 그때 당시는 영어권 학습자를 위한 교재 같은 거 잘 없었어요 근데 명도 학원에서 나온 잘 만든 교재였다 한 6주 동안 등록을 를했습니다 거기는 1급에서 터 6급이 있었어요 도착했을 때 2급을 들어갔다가 6주 후에 이제 6급을 졸업하고 나왔어요 현장에 와 보니까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어요 오기 전까지는 주로 책으로만 입력을 이제 해 놨지만 말은 안 나왔어요 그 명도 어학원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이제

5:22 늘었어요 그래서 거기 같이 다녔던 선교사들이 저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주마다 이제 레벨업 했으니까 예 뭐 일단 그 한국어 교육을 위한 인프라가 그동안에 많이 바뀌었죠 많이 좋아졌죠 뭐 아직 위협한 점이 많지만 제가 1980년도에 시작할 때는 북미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 수가 375명이 있어요 지금 미국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 수가 2만 명 넘거든요 그만큼 한국어가 상당히 인기가 좋아졌어요 한국어가 미국에서 가르치는 탑 10 외국어 안으로 들어간 거예요 제가 막 시작할 때는 꿈에서도 이제 못 봤을 겁니다 한국어라는 외국어가 그 그만큼 인기가

6:10 좋아질 것을 너무 놀라운 거죠 맨 처음에 이제 교편을 이제 잡은 다음에 가장 좀 답답했던 것이 교포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국국 교육이 왜냐면 교포 아니면 과연 누가 한국어 학습에 대한 관심이 있을까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주로 교포 위주로 이제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답답했어요 이게 사실상 굉장히 재미있는 언어고정 나라이고 역사가 깊은 그런 문명인 좀 더 열린 그래서 누구나 환영하는 한국어 교육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 답답함 때문에이 한국어 마을을 1999년도에 설립한 거예요 18세

6:56 이하 학습자를 위한 독특한 언어 환경을 이제 만들고 싶어 했어요 콘코디아 언어 마을이라는 개념은 영어로 말하자면 residential immersion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주거 몰입 교육인데 쉽게 말씀드리면 다 같이 먹고 살고 24시간 내내 타겟 언어에 노출돼 있는 상태에서 한국어가 계속 들리고 계속 보이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학습자들을 위해서 캠핑인데 캠프 같은 그런 환경인데요 다만 모든 활동을 타겟 언어로 해야 되고 학습자가 만나는 어린마음 학습을 위해 거기에 있는

7:43 거예요 그러한 언어 마을 환경에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이 학습자들의 영어에 대한 관심 하나도 없어요 영어 화자가 한국에 나와서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하면은 가장 답답한 방벽이 바로 영어입니다 다들 영어 이제 배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영어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품화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데 사실 걸림돌이 돼요 언어 마을에 가면 일단 재미 있어야 해요 그리고 한번 다녀 보면은 아 그럼 내년 여름에도 오고 싶다 5년 차 매들 같은 거 주거든요 그런 5년차 빌리지가 상당히 많고 그 심지어 2 3년에 한 번씩 10년 차 빌리저 나옵니다 숲속의 호수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녀보면

8:30 한국학이 한국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학교로 지나가게 됩니다 결국 한국학에 기여를 하고 있는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국제 교류 재단에서 그 코리아 파운데이션에서 지난 15년 넘게 쭉 지원을 해 줬어요 원래는 주로 대학교 자원만 지원하지만 저희 숲속의 호수를 계속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 연결성 때문에 하죠 그리고이 숲속의 호수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이 아니에요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고 한두 번 다녀보면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한국어 평생 학습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어떤 직업을 하게 돼도 계속 한국어와 한국 문화랑 관계를 이제

9:16 맺고 싶어 하는 세계 시민이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이 돼요 그래서 계속 한미간의 중요한 다리 역할을 이제 할 친구들이죠 1990년부터 교수가 됐 거든요 영국에서 95년에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사를 가서 UBC 교수가 됐는데 근데 운 좋게도 들어가는 순간부터 전임이 됐어요 말 제 태열을 받았어요 테뉴 받기만 하면 비교적 이제 자유로워 있잖아요 이제 교수가 그래서 캐나다로 이제 옮겨 가면서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교포 비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회 학습자를 위한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됐고 또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은 제가 이제 19살

10:03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잖아요 근데 한국어는 일본 하나 중국어와 마찬가지로 영어 화자에게는 굉장히 시간과 노력과 돈을 필요로 하는 투자를 필요로 하는 외국인데 대학 들어가서야 배우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거예요 어렸을 때 사실 시작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역시이 언어 마을 시스템이 18세이 이하 학습자를 위주로 하기 있기 때문에 좀 더 밝은 미래를 위한 이제 한국어 교육을 위해 좋은 그런 실험장이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그때 당시의 한국 교육은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 의하여 한국 사람을 위해서 하는 우리말 우리끼리 식 그런 것이었어요

10:51 한국 사람이 할 수 없는 색다른 그런 한국어 교육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여러 가지 액티비티를 위해서 움직이면서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되고요 대안학교에 비슷하지만 그것도 아니에요 태권도도 하고 춤도 하고 도자기 활동도 있고 훌륭한 액티비티가 될 수가 있어요 재미있게 가르치면 포인트는 한국말로 그 액티비티를 어떻게 활용해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느냐 그게 포인트예요 이제는 수요가 너무 폭등해서 아이를 계속 돌려보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만에 내지 마련을 하게 됐어요 5년 동안에 콩코디아 언어 마을에서 소유하고 있는 상당히

11:38 큰 대지에 한 군대에 1년 내내 쓸 수 있는 상설 한국어 마을을 짓게 됐어요 올해 여름에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거기서 하게 됐어요 그 이전까지는 계속 남의 집을 이제 빌리면서 해야 됐어요 우리만의 멋진 공간이 드디어 생겼지만 40% 밖에 짓지 못했어요 계속 모음을 해야 되기 때문에 숙소 두채 더 들어가야 되고 액티비티 센터 하나 만들어야 되고 스포츠 센터도 만들어야 되는데 그 운영은 비영리 사업이기 때문에 학비로 운영이 됩니다 근데 하드웨어는 모금을 해야 됩니다 장학금도 물론 있죠 참가를 하는 빌리저의 한 20% 장학금을 받고 옵니다 그런 것을 위해서도 모음을

12:25 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여름에 6주 동안 운영을 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숙소가 생기면 좀 더 오래 해마다 1주씩 1주씩 늘려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일단 완성되면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교육 기관에서도 쓸 것 같아요 다른 언어 말들을 보면요 민속학적 그런 맛이나요 그래서 독일 어마 가면 100년 전 200년 전 독일 집같이 그 지어 놨거든요 근데 저희가 원했던 것은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한국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뭐냐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현대 그리고 미래로 이제 향하는 이노베이션이 강한

13:10 나라이기 때문에 현대식 건축을 하되 지붕 라인이라던지이 지붕들 이런 거 경복궁 같은 데서 이렇게 빌려왔어요 그리고이 착용이라 개념도 자연을 이렇게 빌려서 이제 보이는 전통 한국식 디자인 개념을 를 활용한 거예요 한국어의 경우는 재밌는 것은 거의 2천년 동안에 한분하고 계속 접촉을 통해 많이 변했죠 한문과 한국어의 오랜 접촉을 통해 생긴 여러 가지 현상 변화 문자 체계 그런 거 제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 요즘 하고 있는 공부는 뭐 15세기 한국어 자료 조선

13:55 시대나 고려 시대 때에 한국인들이 문을 어떻게 읽었을까 어떻게 해독을 했을까 그게 저에게 재밌는 거예요 한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은 언어 민족주의가 굉장히 강한 나라인 데다가 그 언어 민족주의라는 것이 사실 언어 민족주의가 아니라 문자 민족주의라는 것이에요 즉 한글에 대한 숭배 한글 컬트가 이제 있다고 볼 수 있거든요 한글이 훌륭 하지 않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한글를 강조하는 그런 것이 죽지 않은 현상인 거 같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에 한자라는 문자 체계와 한 문이라는

14:42 언어를 너무 타자화 해 가지고 이게 우리 것이 아니라는 듯이 적대시하는 그런 경향도 너무 안 좋습니다 지난 20년 사이에 한자 교육이 한국어 교육장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웬만한 외국 사람이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면 한차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여기 한국에 와서 어학당에서 배워도 한자 수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게 너무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진짜 한국어를 잘 하려면은 한자를 공부해야 돼요 조선 시대처럼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훈련시키는게 아니라 좀 더 좋은 좀 더 교양 있는 한국어 사용자가 되려면

15:28 한차를 공부해야 돼요 학교에서는 한차를 잘 가르치지 않지만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긴 있죠 북한에서는 쭉 1950년대 초부터 한차 교육을 계속 철저하게 해오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에 김정은이 정권 밑에서는 조금 줄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북한에서는 영어를 많이 대요 근데 제가 하고 있는 연구 주제들은 좀 잡다 입니다 원래 박사이 논 논문은 방언학 했거든요 저 19세기말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나왔던 길일 문자로 기록된 방언 자료에 대해서 썼고요 박사기간 다음에

16:14 15년간 계속 러시아 카작스탄 우즈베키스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계신 고려인 할머니들이랑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말하지면 소비에 코리안 소련식 한국어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최근에 다시 또 그 자료로 돌아가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최근에 러시아 원동 지방에 가장 먼저 생긴 한인촌 중 하나가 유명한 고려인 마을이 하나 있어서 러시아인 선교사가 실험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제의를 위한 문서를 하나 발견했어요 근데 당연히 방언으로 쓰인 한글로 돼 있지만은 함경북도 사투리 많이 들어간 자리를

17:00 하나 이제 발견했거든요 그리고 러시아로 설명도 들어간 거의 150년 전에 러시아 선교사가 국경을 넘어간 함경도 출신들의 방언을 배우면서 무슨 그런 필사본을 하나 분석하고 있습니다 요즘 큰 관심사가 다음 세대를 위한 한자 교육 자료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아무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근데 꼭 필요하거든요 뛰어서 기야 뭐 구글 검색해 보면 다 나오는데 한자는 공부를 해야 돼요 근데 어렵지는 않아요 근데 문제는 근데 한국에서 워낙 이걸 적대시 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게 중국거라고 민족화 한 것이기 때문에 꺼려하고 두려워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고 안 배우려고 그래요 한자를 어떻게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17:48 그게 수수께끼에 암기만 하면 너무 재미없잖아요 게임으로 하면 더 재미 있는데 그래서 게임이랑 멀티미디어 자료를 이렇게 이렇게 보여 주면서 덜 자증 나죠 아 아이들이 사실상 제가 한자를 가르칠 때는 한자를 쓰는 건 강조하지 않아요 왜냐면 요즘 사람들은 손으로 쓰지 않거든요 입력 식으로 이제 타이핑으로 이제 입력을 하는데 그 대신 한자를 앎으로서 어떻게 좀 더 풍부한 어휘를 구사를 할 수 있을까 한자와 한자어 한자를 통해서 좀 더 풍부하고 많은 어휘력 를 키우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이야말로 한국 역사상

18:34 상당히 묘한 순간이에요 지난 2000년 동안에 외국인이 한꺼번에 천명 이상이 한국어를 공부 시보 하는 그런 순간이 사실 없었거든요 근데 오늘날처럼 외국에서 수천 명이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한국과 한국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준비도 하나도 안 돼 있습니다이 순간에 어떻게 대비를 해야 될지 몰라하고 있고 자국어 보급 정책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거 같아요 자국의 보급 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lange의 하나거든요 일종의 학술 분야입니다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외국인이 많은데 한국 내에서는

19:22 외국에서 외국인들이 자국의 보급 정책에 대한 연구 업적을 안 보는 거 같고 지금 하고 있 있는 해외 한국어 보급 정책도 서툴게 하는 거 같습니다 한국어 교육이라는 것이 이제 웬만한 한국 사람한테 이렇게 모르면 아 뭐 같은 한국어 아니냐 그러면은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그냥 한국 내에서 하든지 한국 바깥에서 하든지간에 다 똑같잖아 한말의 말이에요 한국 내에서 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과 한국 바깥에서 하는 한국어 교육이 달라야 되고 해외에서 하고 있는 한국국 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구별이 이거예요 해당 나라의 GMP 한국보다 낮으나 한국보다 높으냐 해당 나라의 GMP 한국보다 낮을 때는 학습자들의 동기

20:10 부여가 도구적이해 한국어를 잘 배워 놓으면 먹고 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 한국어를 잘 배워 놓으면 삼성이나 LG 공장 가서 일을 할 수가 있어요 근데 서유럽이나 북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런 도구적인 동기 부여가 아니라 훨씬 더 감정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그 서정적인 그런 충동 때문에 배우고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전략이 달라야 돼요 그리고 좀 더 다른 잉센 티비를 줘야 돼요 학습자들 테 근데 한국 내에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뉘앙스가 있는 전략을 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강의는 올해네 과목이에요 두 과목은 한자이고 또 하나는 중세 한국어 이건

20:57 말하지면 한국어의 역사에 대한 그런 강의입니다 훈민정음 월인석보 석보상절 훈민정음 창제 바로 이후에 간행된 자료들이 근데 그 20세기 한국어랑 많이 달라요 어려워하지 그 왜냐면 언어학 지식도 조금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이 15세기 한국어와 20세기 한국어가 다른 언어라고 제가 강조를 하기 때문에 이게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대해야 된다 임해야 된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는 특히 저 유학생이나 1.5세 그런 한국인들은 아 이게 뭐 15세기 한국어지만 나는 뭐 한국 사람이니까 쉽겠지 그래서 공부를 안 해요 좋은 점수가 안 나와요 이미

21:43 현대 한국어를 어느 정도 알아야 중세 한국어 과목을 택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네 번째는 한문이 한문은 영어로 가르치죠 그렇지만 한문을 가르칠 때는 한국에서 가르치는 방법으로 죠 훈과음을 한국어로 해야 되고 그리고 도까지다는 방법을 배우게 돼요 웬만한 미국 대학에서는 한문을 가르칠 때는 현대 중국어를 알아야 된다는 그런 조건을 붙이고 가르칩니다 근데 한국학 하는 학생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19세기 뭐 조선 시대 역사를 하려면은 한문을 알아야 되는데 중국어도 할 줄 알아야 되나 그 말도 안 되죠 여기 한국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2000년 동안 이제 한문을

22:28 계속 쓰고 읽고 공부를 했는데 중국어는 한 마디도 못 했잖아요 그런 선입견을 이제 깨기가 어려워요 이런 얘기를 아직 못 드렸지만 저는 2008년부터 2020년까지 12년간 아시아 학과 학과장을 했거든요 UBC 같은 상당히 큰 부립 대학에서 그것도 상당이 큰 아시아 학과에서 학과장 하게 되면 일이 엄청 많아요 12년 동안 했기 때문에 그 12년 동안에 하고 있었던 영구 프로젝트가 좀 정체 이제 상태로 남아 있는데 드디어 15년 만에 2008년도 아지 막 시작했던 몇 가지 프로젝트를 다시 또 이제 시작한

23:16 거예요 죽기 전에 그리고 은퇴하기 전에이 몇 가지를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한자 교육 자료 15세기 주해본 그리고 해외 한국학을 위한 한문 교육 자료 그 세 가지 꼭 이제 끝내고 싶고 근데 그 이외에 또 최소 한인들의 방언 자료도 계속 다루고 있고 100년 전에 1888년부터 1927년까지 40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했던 캐나다 선교사 게일 목사라고 있었어요 근데이 게일 목사라는 분이 상당히 많은 출판되지 못한 한문 자료를 영어로 번역한 그런 필사본을 많이 남거든요 그래서 그 자료들도 세로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일이

24:03 많습니다 [음악]

Share

다른 영상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