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함께 만들어 나갈 새로운 한류  ㅣ KBS 다큐 인사이트 -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 한류오디세이 25.1023-25.10.24 방송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함께 만들어 나갈 새로운 한류 ㅣ KBS 다큐 인사이트 -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 한류오디세이 25.1023-25.10.24 방송

간략한 요약

이 다큐멘터리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를 탐구합니다. 과거 식민지배의 아픔과 냉전 시대의 정치적 필요성, 경제 성장과 문화 교류의 역동성을 거치며 두 나라는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위안부 문제 제기 등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한일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협력이라는 복잡한 감정
  • 경제 성장과 문화 교류를 통한 상호 영향
  • 민주화 이후 한일 관계의 새로운 변화

한국과 일본의 관계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지만,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과거와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이웃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관심, 질투, 동경, 미움이 교차하는 감정 속에서 6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89세의 일본인 고시다는 27세 때 한국을 방문하여 가난하고 지저분하다고 느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한국과 인연을 맺은 후 사진작가로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해 왔습니다.

격렬한 반대 속의 한일 수교

해방 이후 단절되었던 일본과의 교류 재개 소식에 한국 사회는 분개했습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자금 확보 필요성이 한일 수교의 배경이 되었지만, 반일 감정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지는 등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대한해협에서 한일 토론회가 열리는 등 관계 개선 시도도 있었습니다.

외색이라는 금지

정치, 경제적으로 국교 정상화가 불가피했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금지 조치는 여전했습니다. '외색'이라는 단어는 대중문화를 검열하고 금지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반일 감정에 기대어 대중문화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고도 성장기의 일본

1960년대 일본은 자동차와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고도 성장을 이루며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80년대에는 도쿄의 땅값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력이 막강했습니다.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일본을 배우다

한국은 일본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일본을 배우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1982년 일본에서는 로봇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일본인들은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었습니다. 한국 유학생들은 태극기를 품에 안고 일본으로 떠났으며,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동경심이 공존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일본으로 간 한국 가수들

한국에서 데뷔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전성기를 누린 가수 계은숙은 일본 엔카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김현자, 패티김, 나훈아 등 많은 한국 가수들이 일본으로 진출했으며, 조용필은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여 한국 가요를 선보였습니다.

한국 음악을 만나다

1995년 한국을 찾은 하세가와 요헤이는 한국 음악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의 명곡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숨겨야 했던 일본 문화

오랜 시간 동안 일본에서 한국 문화는 관심 밖의 영역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가 금지되거나 숨겨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 만화책을 모아온 김영규 씨는 당시 일본 만화가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했다고 회상합니다. 해적판 만화책이 유통되고, 불량 만화 소각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만화 영화 하청 기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과 인력이 부족했던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채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송국을 통해 수입된 일본 만화 영화 중 일부는 한국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핵심 원화 작업을 담당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거품 붕괴

한국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던 시기, 일본 경제는 거품이 꺼지며 장기 침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 일본 주가와 부동산은 폭락했고, 기업들이 줄도산했습니다. 1995년 고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위기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

일본의 SA 작가 아마스 리코는 거품 경제 붕괴 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묘사했습니다. 1997년 야마이치 증권이 도산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신주쿠 미아

한국인 사진작가 양승우는 버블 붕괴 후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20년 동안 기록했습니다. 그는 화려한 공간과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의 모순된 풍경을 담아냈고, '신주쿠 미아'라는 작품으로 도몬켄상을 수상했습니다.

새로운 시작

1990년대 한국은 OECD 가입과 함께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고, 조선총독부가 해체되었으며,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었습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통해 양국은 과거사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가까워질 수 없었던 나라

한국과 일본은 더 이상 위계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65년 수교 이후 한국은 일본을 거부했고, 일본은 한국에 무관심했지만, 서로를 관찰하며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일본에 대한 오랜 동경과 미움은 한국이 성장한 후에야 투명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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