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유홍준 교수와 함께 서울의 명소, 궁궐의 역사, 그리고 한국 문화유산의 정수를 탐험합니다. 외국인이 감탄하는 서울의 매력부터 경복궁의 유네스코 등재 가능성, 일제강점기 서울의 변화,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문화유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 외국인이 감탄하는 서울의 명소와 골목길의 매력
- 5대 궁궐의 역사와 건축적 특징, 창덕궁 후원의 아름다움
- 경복궁의 유네스코 등재 가능성과 한양도성의 가치
- 일제강점기 서울의 변화와 문화유산 보존 노력
-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백자 달항아리와 산사의 아름다움
인트로
외국인들이 서울의 골목길을 사진 찍는 모습과, 한국의 스케일에 감탄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유홍준 교수는 서울의 필수 코스와 건축가들이 감동받는 네 군데를 언급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국인은 모르지만 외국인은 감탄하는 서울의 명소
외국인에게 하루 동안 서울을 보여준다면 창덕궁을 추천합니다. 경복궁은 중국의 고공기 룰에 맞춰 지어졌지만, 창덕궁은 자연 지형에 맞춰 건물을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창덕궁 후원은 산비탈 계곡을 따라 정자를 배치하여 인공과 자연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종묘, 창덕궁 후원, 병산서원, 부석사 무량수전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감동하는 장소입니다. 인사동은 인간적인 휴먼 스케일이 강한 거리로,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곳입니다. 인사동길이 직선이 아닌 이유와 인천 국제공항의 유선형 설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서울의 상징 ‘5대 궁궐’의 뒷이야기
서울에 궁궐이 다섯 개나 있는 이유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 설명됩니다. 경복궁을 지은 후 왕자의 난으로 개성으로 갔다가 태종이 창덕궁을 지으면서 궁궐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태종은 피비린내가 나서 경복궁에 가기 싫어 창덕궁을 지었고, 유사시를 대비해 법궁과 이궁을 두는 양벌 체제를 갖추려 했습니다. 경회루는 박자청이 연못을 파서 흙으로 아미산을 만들고, 2층 건물로 300평에 가까운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수원 화성은 정조대왕의 지시로 아름답게 지어졌으며, 자연지형을 따라 버들잎 모양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경복궁은 정도전의 설계 원리에 따라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게 지어졌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복원한 이유와 창경궁이 왕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된 배경이 설명됩니다. 덕수궁은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이후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 곳이며, 순종이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며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경복궁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방법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실패했지만, 경복궁과 함께 신청하면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남대문 옆의 끊어진 구간을 화강암으로 복원하여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만들면 유네스코 등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일본인들도 탐낸 서울의 동네
일제강점기 한양도성 안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성북동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왕조는 성 아래 10리를 그린벨트로 묶었지만, 이인좌의 난 이후 군대를 주둔시키고 백성들이 살게 했습니다. 성북동은 맑은 물을 이용해 모시 배를 표백하는 권한을 얻고, 궁궐에서 쓰는 매주를 만드는 권한을 받아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도시가 팽창하면서 전차길이 놓이고, 이태준, 한용운, 김용준 등 문인들이 성북동으로 이주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도성 안에 많이 거주하면서 성북동은 일본인들이 들어오지 않은 지역으로 문인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정세권은 가회동, 익선동, 창신동 등에 표준 한옥을 지어 일본 문화 주택의 확산을 막았습니다. 서촌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지만, 평민들이 사는 동네라는 의미가 더 큽니다. 이완용과 윤덕영이 서촌의 땅을 매수하여 친일 부자들이 많이 거주했습니다. 청운동에는 안동김씨 별서가 있었고, 송강 정철과 우계 성원도 이곳에 살았습니다. 서촌에는 중인들이 많이 살았고, 겸제 정선이 그렸던 기린교 돌다리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윤동주, 이중섭, 이상 등 근대 문인들이 서촌에서 생활했습니다.
가까워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서울의 가치
서울의 문화유산을 답사할 수 있는 관광 코스로 한성백제 유적(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호수)과 암사동, 미사리 신석기 유적지를 추천합니다. 5대 궁궐, 종묘, 사직, 서촌, 북촌, 인사동, 봉은사, 선정릉, 양천 향교, 겸재정선 박물관, 허준 박물관, 망우리 공동묘원(망우 역사문화 공원) 등도 추천 코스입니다. 망우리 공동묘원에는 유관순 열사의 묘가 있으며, 이태원 공동묘지에서 무연고 묘로 화장되어 합동 묘비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평창동, 창의문 바깥, 세검정, 석파정 등에도 조선시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뽑은 한국 문화유산의 정수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문화유산으로 백자 달항아리를 꼽았습니다. 1725년에서 1750년 사이에 금사리 가마에서 만든 높이 45cm 크기의 달항아리가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당시에는 엔진 동력이 없어 발로 물레를 돌려 만들었기 때문에 보름달처럼 큰 대호를 만드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조선의 도공은 왕사발 두 개를 만들어 붙여 둥그스름한 대호를 만들었습니다. 영조 시대 때 만든 달항아리는 둥그스름하고 손자국도 있어 인간적인 채취가 느껴집니다. 김환기 선생은 달항아리를 많이 그렸으며, 달항아리는 구연부와 굽이 좁아 놓여 있는 것 같지 않고 둥실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부동산 문화재로는 한국의 산사 일곱 군데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고, 누정을 추천합니다. 누정은 관에서 지은 것으로, 각 고을마다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청풍 한벽루, 남원 광한루, 영변 백상루 등이 대표적입니다.
30년 동안의 답사 끝에 남은 것
오랜 시간 답사를 통해 배운 인생의 지혜로 "인생도처 유상수"를 언급합니다. 현장에 가면 나보다 훨씬 잘 아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경복궁 소장에게 경복궁이 가장 예쁜 때를 물었더니 비 오는 날이라고 답했고, 비 오는 날 박석 사이로 물길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