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대승기신론. 일심이문. 불교의 심오한 내적 통찰. #부처님말씀 #부처님가르침

이것이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대승기신론. 일심이문. 불교의 심오한 내적 통찰. #부처님말씀 #부처님가르침

간략한 요약

이 비디오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자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 집중하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고, 몸, 감각, 생각, 마음 등 다양한 요소를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음속에 '나'라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며, 사람들은 외부에서 '나'라고 여길 대상을 찾아 자신을 포장하려 합니다.

비디오는 마음의 두 가지 측면인 생멸심(활동하는 마음)과 진여심(고요하고 초월적인 마음)을 소개하고,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생멸심은 외부 세계를 향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음이고, 진여심은 내면을 향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입니다. 진여심을 깨닫기 위해서는 세상과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생멸심을 고요하게 해야 하며, 이는 생각을 멈추고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합니다.

  •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며,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 중생은 외부 세계에 집착하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 마음에는 생멸심과 진여심 두 가지 측면이 있으며, 진여심은 깨달음의 핵심입니다.
  • 진여심을 깨닫기 위해서는 세상과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생멸심을 고요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의 중요성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자 당신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외부만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중생들은 몸, 느낌, 생각, 마음 등 색수상행식 오온을 자신으로 여기며, 심지어 옷, 재산, 자동차, 명예, 학벌까지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마음속에 '나'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며, 사람들은 외부에서 '나'라고 여길 대상을 찾아 자신을 포장하려 합니다.

탐욕의 원인

마음속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중생들은 외부에서 '나'라고 여길 대상들을 찾아 자신과 동일시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의 원인이며, 어리석은 중생들은 외부에서 대상을 찾아 자신을 포장하려 합니다. 그래서 온갖 것들을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허영심에 사로잡혀 잘난 척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나'가 없기에 온갖 포장지로 자신을 감싸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는 것이 중생들의 허영심입니다.

생멸심과 진여심

마음속에 '나'가 없기에 중생심은 외부에서 헛된 욕망을 추구합니다. 외부로 향해 있는 그 마음이 바로 활동하는 마음이며, 중생들은 그 활동하는 마음을 자신으로 여기고 오로지 그 활동하는 마음만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두 종류입니다. 활동하는 생멸심과 활동하지 않는 부동의 초월적인 진여심입니다. 진여심이란 당신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당신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대해 상세히 밝힌 논서가 바로 대승기신론이며, 대승기신론에는 일심이문이라는 아주 중요한 용어가 나옵니다.

일심이문

일심이문이란 하나의 마음에 두 개의 문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그 마음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문이 두 개라는 얘기입니다. 즉 하나의 마음에 문이 두 개 있으며 하나는 생멸문이고 또 하나는 진여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생멸문을 향하면 생멸심이 되고, 당신의 마음이 진여문을 향하면 진여심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의 마음이 밖을 향하면 생멸심이고, 당신의 마음이 안을 향하면 진여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의 마음에는 초점을 어디에 맞추는 그런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초점을 맞추는 기능에 따른 분류이고, 진여심은 결코 변하지 않는 그대로인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멸심

생멸심이란 언제나 밖을 향해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은 생멸을 이어가기에 생멸심이라고 부릅니다. 생멸심이 바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바로 그 마음입니다. 당신의 생각하고 느끼며 활동하는 그 마음이 바로 이 생멸심인 것입니다. 찰라생찰라멸하며 매 순간 변화하는 마음이 바로 이 생멸심입니다. 중생들은 바로 이 활동하는 생멸심을 자신으로 여깁니다. 이 생멸심이 바로 제육식인 의식입니다. 유식학으로 설명하자면 제1식에서 제8식까지가 모두 생멸심입니다. 즉 전오식, 제6식 의식, 제7식 말라식, 제8식 아뢰야식 모두가 생멸하는 생멸심입니다. 이 가운데 중생들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제6식 의식입니다.

중생심

중생들의 마음, 즉 중생은 밖을 향해 있습니다. 밖만을 바라봅니다. 왜냐면 중생들은 몸뚱아리를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몸뚱아리의 감각 기관은 바깥의 감각 대상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생들의 마음은 항상 바깥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에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까막눈인 것입니다. 몸을 자신으로 여기면 마음은 외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내적인 만족과 행복을 찾지 않고 외부 세계, 즉 이 바깥 세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결코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잠시 얻었다가도 곧 모두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윤회

죽을 때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몸을 얻어 태어나는 윤회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윤회란 중생들이 몸뚱아리로 행복을 얻으려는 헛된 노력입니다. 바깥 세상은 허상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욕망도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욕망이 채워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안 채워져서 괴로운 것입니다. 잠시 뭔가를 얻었다가 기필코 잃어버리기에 괴로운 것입니다. 왜 중생들은 계속 몸을 탐내서 윤회하는가? 그 몸뚱아리로 행복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몸뚱아리를 자신으로 여기고 그 몸뚱아리를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는 것이 바로 중생들입니다.

세상의 허구

성욕, 식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 등등 온갖 욕망들. 결국 욕망이 안 채워지기에 괴로운 것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 자체가 허구이기에 이 세상엔 행복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 세상이 허구이며 허구의 세상에 뭔 진짜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는 그 어떤 행복과 즐거움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일체세간불가락상. 하지만 중생들은 이 세상이 진짜인 줄 알고 바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몸뚱이를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세상도 허구요, 몸뚱이도 허구임을 알 때서야 그 갈망, 가래를 스스로 놓을 것입니다.

생멸심은 그대가 아니다

바로 이 세상, 즉 바깥을 향해 있는 마음이 바로 생멸심입니다. 생멸심은 그대가 아닙니다. 즉 생각하며 활동하는 그 의식이 당신이 아닌 것입니다. 당신은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도대체 나는 뭐냐? 이런 깊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하는 그 마음은 네가 아니니라. 당신의 마음속에 생각이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두 종류를 잘 구분해서 알아야 합니다. 중생들은 '나'가 있어서 그게 생각하는 줄 압니다. 그래서 이런 망언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마음과 생각의 구분

생각하는 것은 '나'가 아니고 마음입니다. 당신 마음 속에는 생각하는 '나'는 없습니다. 다만 텅 빈 마음 속에서 인연화합에 의해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질 뿐입니다. 내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를 알려면 바로 지금 당신 마음 속을 살펴보십시오. 눈을 감고 '나'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중생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나'가 100% 있는 줄 압니다. 그래서 중생인 것입니다. 당신 마음속을 살펴보십시오. '나'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당신이 그렇게나 철저히 있다고 여기는 그 '나' 또는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

겁쟁이들은 이걸 못합니다. 즉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죄가 많을수록 특히 이것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들여다보십시오. '나'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당신이 찾아보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충격 먹을 것입니다. 그렇게나 있다고 믿었던 그 '나'는 즉시 발견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나'가 있다면 찾는 그 즉시 발견되어져야만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찾아보십시오.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아, 영혼은 절대 발견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아의 진리

또 심지어 하루 종일 찾아봐도 샅샅이 뒤져봐도 '나'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당신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아의 진리를 실제로 체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도 이 사실을 직접 체험하려면 당신 내면을 샅샅이 살펴봐야 합니다. 겁내지 말고 살펴보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 내면의 번뇌는 당신을 두렵게 해서 당신 내면을 바라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속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서 당신 내면을 살펴보십시오.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그럼 당신 스스로 직접 체득할 것입니다. '나' 없음의 진리를.

나라는 것은 없다

정말로 '나'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다만 우리가 그저 대화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서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의 '단지 이름일 뿐이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말과 언어에 속는 게 중생입니다. '나'라는 말을 대화할 때 언제나 쓰니 정말로 '나'가 있다고 속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 즉 도는 언어도단입니다. 말과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진여심

진여심이란 언제나 안을 향해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진여심은 절대 동요되지도 않고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초월적인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진여심이란 진실로 여여한 마음이란 뜻입니다. 여여하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무한 대자유 그 자체를 말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마음이 바로 진여심입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은 마음이 바로 진여심입니다.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은 마음이 바로 진여심입니다.

해탈

이미 해탈되어진 마음, 즉 열반 그 자체가 바로 진여심이며, 진여심이 바로 당신의 정체입니다. 이 진여심이 바로 도입니다. 즉 당신 내면에 있는 법, 즉 담마, 다르마가 바로 진여심입니다. 도 역시 마음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근본은 마음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 내면에 이미 도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진여심입니다. 물론 이 진여심은 언어도단이라 그 어떤 말이나 언어로서 형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을 위해 언어를 사용해서 비유적으로 설명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진여심의 본질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이 진여심뿐입니다. 이 진여심만이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겨난 것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진여심이 출세간법이며 무위법입니다. 이 진여심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이 진여심이 바로 도이며, 이 진여심을 신, 즉 하나님, 하느님, 여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면 모든 것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생멸심을 아는 방법

생멸심이란 활동하며 움직이는 마음입니다. 주로 생각하고 느끼고 알면서 활동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 활동하는 마음이 뭔지 모릅니다. 그러나 쉽게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가부좌하고 허리 펴고 앉아서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몸을 절대 움직이지 말고 5분간 있어 보십시오. 그럼 알게 됩니다.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대의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생멸심입니다. 생각하며 주의를 여기저기에 두는 바로 그 마음이 움직이는 마음, 즉 생멸심입니다. 이게 바로 마음입니다. 이게 영혼이 아닙니다. 이게 '나'가 아닙니다. 이게 바로 마음입니다. 움직이며 활동하는 마음, 즉 생멸심입니다. 자신의 이 움직이는 마음을 계속 관찰하는 수행이 신수신법 사념처행 중에 심념처행입니다.

진여심을 아는 방법

진여심은 사실 생멸심처럼 그냥 관찰해서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여심은 깨달음 그 자체입니다. 이 진여심을 찰나에 순간적으로 아는 것. 이것이 바로 견성이요, 도요, 열반 체험이며, 공의 체득이며, 이것이 바로 법을 보는 것입니다. 진여심이 바로 법, 즉 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굉장히 중요하니 잘 듣기 바랍니다. 진여심이란 활동하지 않는 마음, 즉 언제나 고요한 마음입니다. 언제나 고요하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는다는 걸 뜻합니다.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무한 대자유 그 자체를 말합니다. 진여심이 바로 해탈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미 해탈되어져 있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정체입니다.

진여심 발견 방법

당신 자신의 내면에 원래부터 있는 그 도를 발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당신이 있는 이 세상과 당신이 자신으로 여기는 그 몸을 진짜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 세상과 몸이 허구임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의심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채로, 즉 이 세상도 진짜고 몸도 진짜라고 여긴다면 도노, 견성, 열반 체험, 공의 체득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면 당신의 그 믿음과 진리, 즉 실상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노, 견성, 열반 체험, 법을 보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하는 주요 원인이 바로 이것입니다. 결국 견성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견성하고자 한다면 이 세상도 당신의 몸도 진짜라는 그 확고한 믿음을 어느 정도는 버려야 합니다.

일체유위법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여전 응작여시관. 이 세상과 당신 몸은 진짜가 아니고 허구이며 가짜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당신의 마음이 진리를 향해 어느 정도 열려 있는 채로 견성을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여심을 발견하려면 생멸심이 고요해져야 합니다. 진여심은 언제나 그대로지만 생멸심의 파도가 가라앉아야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도노, 견성, 열반 체험, 공을 체득하려면 그대의 움직이는 마음, 즉 생멸심을 고요하게 해야만 합니다.

마음의 고요

도노, 견성, 열반 체험, 공의 체득은 언제나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찰나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생각을 멈추십시오. 그럼 됩니다. 활동하는 마음, 즉 생멸심이 주로 하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생각이란 과거와 미래입니다. 과거에 대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설계를 멈추십시오. 과거를 떠올리지 말고 미래에 뭘 할지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면 생각은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도는 현존입니다.

생각을 멈추면

생각을 멈추면 마음은 고요해지고 그때 진여심, 즉 도는 드러납니다. 당신의 생각이 도를 보이지 않게 하는 가림막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멈추고 고요함을 유지한 채로 찰나의 순간적으로 그대의 근원을 알아채야 합니다. 근원이 바로 진여심이며 도입니다. 도, 견성, 열반 체험, 공의 체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 즉 도를 보지만 그 원리는 모두 다 동일합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딱 멈춘 그 상태에서 찰나에 깨닫는 것입니다. 생멸심이 고요한 상태에서 진여심을 찰나에 알아채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영적인 신비 체험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정체, 근원, 실상을 찰나에 깨닫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의 충격은 상당히 큽니다. 왜냐면 무아를 체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나 있다고 여기며 살았던 그 '나', 자아, 영혼이 정말 없음을 깨닫게 되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한다

자아, 영혼이 있어서 그게 뭐든 다 하는 게 아니고 마음이 모든 것을 다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는 정말로 '나' 또는 영혼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무한 대자유를 되찾는 것입니다. 마음에 걸림돌이자 족쇄인 '나', 자아, 영혼이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 체험은 그 어떤 신통력을 얻는 것보다 가장 더 값진 보물입니다. 도, 즉 법을 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의 방향

여러 영상을 통해 여러 번 깊게 강조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수행이란 먼저 도를 보고 나서 그 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수행자가 도를 보지 못했다면 도를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로지 여기저기 헤매이기만 할 뿐입니다. 불교 수행이란 먼저 목적지인 도를 보고 나서 그 목적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도, 즉 법을 보지 못했다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도, 즉 법을 봐야 해탈문이 열립니다. 그 전에는 오로지 헤매이기만 할 뿐입니다. 그대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나는 생멸심과 진여심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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