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비디오에서는 조선 시대의 비극적인 사건인 계유정난과 단종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어떻게 이러한 비극을 초래했는지, 그리고 단종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 계유정난과 단종 보기 운동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 세종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 부족과 유교적 이념에 대한 집착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수양대군의 권력욕과 카리스마, 그리고 신숙주, 한명회 등 젊은 신진 관료들의 지지가 계유정난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소개
정영진과 정방, 이지선은 영화 "왕과 나"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며, 단종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영화는 단종이 유배된 이후의 시간을 담고 있으며,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고 단종이 왕위를 물려주게 되는 과정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하고 단종이 귀양을 떠나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스토리를 다룹니다. 장황준 감독은 영월의 호장 음몽두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것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계유정난, 단종 보기 운동, 그리고 단종의 죽음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계유정난과 단종 보기 운동, 그리고 단종이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관련 책으로는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 만화, 민음사에서 나온 "15세기", "한국사인물산책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 관리의 리더십"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어떻게 잉태되었고,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중심 인물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단종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살펴봅니다.
단종은 왕이 될 이유가 있었나?
12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단종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수양대군이 권력을 쟁취한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로, 형인 문종이 병약한 탓에 왕위를 이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수양대군은 뛰어난 신체 능력과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세종은 적장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세종의 불행한 선택
세종은 자신이 셋째 아들로서 왕위에 올랐다는 컴플렉스와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적장자인 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문종은 세자 시절을 오래 겪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고, 이는 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결격 사유였습니다. 세종은 문종에게 세손을 잘 부탁하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이는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단종의 불운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했지만 2년 만에 사망하면서 단종이 12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단종은 삼촌들의 위협 속에서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문종은 처복이 없어 왕비들이 쫓겨나거나 일찍 사망했고, 단종은 어머니의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세종은 신하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6조 직계 체제를 만들었지만, 이는 오히려 신하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세종의 아들들
세종은 아들들을 국정에 개입시켜 신하들을 견제하려 했지만, 이는 삼촌들이 권력에 대한 욕망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세종은 아들들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지만,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쉽게 나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세종의 이러한 판단 착오가 큰 불씨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3대가 잘 되어야 나라가 흥한다
한 나라가 잘 되려면 3대가 잘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청나라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츠의 일본 막부 시대를 예로 듭니다. 조선도 태종, 세종으로 이어지는 좋은 흐름을 탔지만, 문종과 단종, 세조 시대에 계유정난이 일어나면서 훈척 정치와 외척 정치, 세도 정치로 이어지는 안 좋은 패거리 정치의 원형이 만들어졌습니다.
계유정난의 서막
1452년 단종이 즉위하고 김종서와 황보인을 중심으로 하는 노신들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이들은 안평대군과 손을 잡고 단종을 옹위하려 했고, 수양대군은 이에 맞서는 세력을 형성합니다. 수양대군은 이성계 가문의 혈통을 대표하는 인물로, 종친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신숙주, 한명회 등 젊은 신진 관료들을 포섭합니다.
수양대군의 쿠데타
1453년 음력 10월 10일 밤,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이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유사한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수양대군 측은 김종서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안평대군을 옹립하려 한다는 고변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의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고 선동합니다. 평소 훈련시켜 온 무장들을 동원하여 김종서의 집을 습격하고, 김종서를 살해합니다.
쿠데타의 성공과 안평대군의 죽음
수양대군은 도성을 장악하고 주요 대신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살생부를 작성합니다.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영의정,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주요 요직을 차지합니다.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 보낸 뒤 살해하고, 그의 아들들도 모두 죽입니다. 수양대군은 단종에게 역적들을 처단했다고 보고하며, 권력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태종을 능가하는 세조
세조는 할아버지 태종과 마찬가지로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지만, 태종보다 더 과감하고 행동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태종은 사람들을 시켜 정도전 일파를 기습했지만, 세조는 직접 김종서 암살에 참여했습니다. 세조의 배짱과 배신은 태종을 능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세조의 한계
세조는 유교의 중요한 종법 질서를 위반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에 두고두고 비판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유능한 구강이라도 신하들에게 유교적으로 충성하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세조의 사후, 의리와 절개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세조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사육신의 등장
단종 관련 이야기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사육신 이야기입니다. 사육신은 계유정난 당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합니다. 이들은 지편전 출신의 엘리트 관료들로, 수양대군이 신권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왕위를 찬탈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단종 복위 계획의 실패
사육신은 명나라 사신 환송 파티에서 세조를 암살하려 했지만, 계획이 실패합니다. 한명회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세조가 무덥다는 이유로 운금들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거사 직전 김질이라는 인물이 배신하여 영모 사실을 고변하면서 사육신의 계획은 발각됩니다.
사육신의 최후
사육신은 친국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능지처참을 당합니다. 세조는 고문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이미지를 실추시켰습니다. 성산문은 세조를 "나으리"라고 부르며 저항했고, 박팽년은 옥사했으며, 이개는 법전에 인도적으로 사람을 다뤄도 된다는 조항이 어디 있냐고 항변했습니다. 사육신의 시신은 아무도 수습하지 못했고, 아들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딸과 처들은 공신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박팽년의 후손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가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박팽년의 직계 자손이 유일하게 살아남게 됩니다. 박팽년의 며느리는 대구로 공비로 가게 되었고, 아들을 낳아 외가집에 보내 키웠습니다. 세조 사후, 박팽년의 손자가 자수하여 복권되었고, 박팽년의 후손은 사육신 제사를 지내주었습니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가 바로 박팽년 후손 집안이며, 박중기 국회 의장이 박두을 여사의 조카입니다.
단종의 유배와 죽음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후, 세조의 신하들은 단종을 상황에서 폐지하고 노산군으로 강등시킬 것을 주장합니다. 단종의 장인과 금성대군이 영모를 꾸민다는 이유로 단종은 영월 청령으로 유배됩니다.
2부 예고
김종서와 수양대군이 어떻게 대립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김종서가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2부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또한,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와 관련된 아트니스 이벤트 경매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