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지역갈등이 이토록 심각한 진짜 이유! 왜 남부만 찢어지게 가난할까? 이탈리아 빈부격차의 숨겨진 이유”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이탈리아는 차라리 통일되지 말았어야 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1861년 이탈리아는 통일에 성공했습니다. 모두가 잘 살게 될 줄 알았죠. 그러데 160년이 지난 지금 북부는 서유럽 최고 부국이 됐고 남부는 청년 둘 중 하나가 실업 상태인 빈민촌입니다. 도대체이 나라에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남과북이 원수가 되었을까요? 중단 국가인 한국도 항상 하게 되는 질문. 통일라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까? 그 답을 이탈리아 역사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이탈리아 지도를 보면 긴 장화처럼 생긴 반도가 지중의 바다 한가운데로 쭉 뻗어 있습니다. 중요한 건이 장화의 위쪽과 아래쪽이 전혀 다른
0:45 동네라는 겁니다. 장화 윗부분, 그러니까 북쪽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호강이라는 큰 강이 흐르면서 기름진 땅을 만들어 놨고 알프스 3명 넘어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같은 유럽 나라들과 바로 연결됩니다. 물건을 만들면 바로 팔 수 있는 장사하기 딱 좋은 위치예요. 반대로 장와 아랫부분, 남쪽은 산이 많고 평야가 좁습니다. 바다 건너편은 아프리카예요. 유럽의 중심보하는 거리가 멀고 땅도 박한 편이죠. 농사를 짓기엔 괜찮지만 큰 장사를 버리기엔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자연환경만 달랐으면이 정도 차이는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진짜 차이를 만든 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1천년
1:33 전 중세 시대 이야기입니다. 북쪽에서는 아주 독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밀라노, 베네츠아, 피레체, 제노바 같은 도시들이 스스로 나라를 만든 겁니다. 왕이 없었습니다. 상인들과 장인들이 모여서 우리끼리 규칙 정하고 우리끼리 장사하고 우리끼리 다스리자 하고 도시를 운영했습니다. 이런 도시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무역이 발달하고 은행이 생기고 기술이 쌓였습니다. 피렌체에서는 유럽 최초의 은행이 탄생했고 베네츠아는 지중의 무역을 장악한 해상 강국이 됐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 좋은 물건을 만들고 더 많이 팔고 이런 경험이 수백년 동안 북쪽 사람들의 몸에 베어든 겁니다. 남쪽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2:19 밤쪽에서는 천년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외고왕들이 들어와 주인 노릇은 했어요. 프랑스 왕이 왔다가 스페인 왕이 왔다가 또 다른 나라 왕이 바뀌고 주인은 계속 바뀌는데 한 가지는 절대 안 바뀌었습니다. 땅은 항상 왕과 귀족 그리고 교회의 것이었어요. 코뮤직전 남쪽에서는 교회가 전체 땅에 절반이 넘는 면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쥐족과 대지주 차지였고요. 그러면 일반 농민들은요 남의 땅에서 일하고 수학물의 대부분을 주인에게 바치고 겨우 남은 걸로 먹고 살았습니다. 장사를 해 본 적도 없고 스스로 뭔가를 결정해 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북쪽은 수백년 동안 내 가게를 차리고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삶을 살았고 남쪽은 수백년 동안
3:07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인이 주는만큼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같은 반도에 살았지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세상이 완전히 달랐던 거예요.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세계가 1861년 느닷 없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그런데 그 합쳐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통일이라는 이름이 무색할만큼 거칠고 일방적이었습니다. 1860년 봄 이탈리아 북쪽에서 한 남자가 자원병 천명을 모았습니다. 이름은 주세페 가리발디. 빨간 셔츠를 맞춰 입은이 천명이 낡은 배 두 척에 올라탔어요. 목적지는 이탈리아 남쪽끝 시칠리아 섬이었습니다. 목표는 남쪽의 왕을 몰아내고 쪼개져 있던 이탈리아를 하나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창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됩니다.
3:54 남쪽의 양시리아 왕국은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큰 나라였어요. 면적은 이탈리아 전체에 40%를 차지했고 인구는 반도 전체에 1분이나 됐습니다. 수도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였거든요. 그런 나라를 고작 천명으로 정복하겠다니요. 그런데 놀랍게도 진짜 이겨버립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남쪽 왕국의 군대는 숫자만 많았지 왕실이 부패하고 무능해서 장교들은 도망치기 바빴고 병사들은 싸울 의지가 없었거든요.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었어요. 남쪽 농민들이 가리발디를 환영한 겁니다. 남쪽 농민들은 수백년 동안 남의 땅에서 등이 휘도록 일만했던 사람들이에요. 비족과 교회가 땅의 절반 이상을
4:40 차지하고 있었고 농민들은 수학물 대부분을 바치고 겨우 남은 것으로 입에 풀치를 했죠.이 이 사람들 둔 가리발디는 구원자처럼 보였습니다. 새 나라가 되면 귀족들이 독차제한 땅을 우리한테 나눠 주겠지.이 한 줄의 기대가 남쪽 전체를 움직였어요. 자리발디의 군대가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농민들이 환호하며 합류했고 어떤 마을에서는 나시랑 호미를 들고 함께 싸우기도 했습니다. 천명으로 시작한 군대는 순식간에 수만 명으로 불어났어요. 사실상 남쪽 동민들이 스스로 왕국을 무너뜨린 셈이었죠. 그렇게 양시 칠리아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가리바이디는 영웅이 됐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요. 통일의 진짜
5:25 주인공은 가리발디가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판을 짜고 있던 건 북쪽의 피에몬테 왕국이었어요. 피에몬테는 지금의 토리노일대를 다스리던 나라인데 이탈리아 통일을 주도한 핵심 세력이었죠. 바리발디가 목숨을 걸고 남쪽을 정복하자마자 피에몬트의 왕이 그 땅을 전부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1861년이 왕이 이탈리아 전체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농민들은 땅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 땅은 오지 않았습니다. 세전부는 오히려 남쪽 지주들의 편해 섰어요. 왜냐하면 지주들이 통일에 협조하는 대가로 자기 땅을 지켜 달라고 요구했거든요. 전부 입장에서도 남쪽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토지 개업보다는 기존 지서를 유지하는 쪽이 편했습니다. 외국
6:12 귀족들은 여전히 넓은 땅의 주인이었고 농민들은 여전히 소장농이었어요. 게다가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해전부는 피해트에서 쓰던 법과 세금 제도를 이탈리아 전체에 똑같이 적용했어요.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서울에서 잘 돌아가는 규칙을 산골 마을에 똑같이 적용한 거예요. 신호등도 없는 동네에 빨간 불에 건너면 벌금이라고 한 셈이죠. 세금 문제가 특히 심각했어요. 북쪽 상위들은 물건을 팔아서 번 현금으로 세금을 댔지만 남쪽 농민들은 현금이라는게 거의 없었거든요. 수학물 대부분을 지주에게 바치고 남는 건 가족 먹일 식량뿐인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한테 세금 고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내 돈이 없으면 가진
6:58 것마저 빼앗겼어요. 여기에 진병제까지 시작됐습니다. 집안에 입꾼인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했어요. 독적 도시에서는 군복무가 나라를 위한 의무였을지 모르지만 남쪽 농촌에서는 사종이 달랐습니다. 농사 짓는 집에서 젊은 남자 하나가 빠지면 그의 농사를 망치는 겁니다. 가족이 굽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어요. 남쪽 농민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새 나라가 되면 내 땅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나서서 싸우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땅은 여전히 귀족 것이고 세금은 전보다 더 들었고 아들은 모르는 나라의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차라리 옛날 왕때가 나왔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죠. 참다 못한 농미들이 마침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산속으로 숨어들어
7:44 게릴라전을 버렸고 북쪽에서 데려온 관리들과 군인들을 습격했습니다. 북쪽 정부는 이들을 도적대이자 반랑군이라고 불렀지만 남쪽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저항이었어요. 세정고의 대응은 간단했습니다. 대화가 아니라 군대를 보냈어요. 진압은 무잡이했습니다. 관랑군이 숨어 있다는 이유로 마을 전체를 불태웠고 주민들을 끌어내 총살했어요. 반랑군으로 의심되면 재판도 없이 처형당했습니다. 여자와 노인도 예외가 아니었죠.이 이 진압이 약 10년 가까이 이어졌는데 이탈리아 통쟁에서 죽은 군인보다 통로 남쪽 농민들을 진압하면서 죽은 민간인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이 과정을 겪으며 남쪽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이건 통일이 아니라
8:31 정복이다. 10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이 말은 남쪽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하나의 나라가 됐다고 선언은 했지만 남쪽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 힘들어졌으니까요. 그런데 진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건이 다음부터입니다. 통일이 되고 약 30년이은 1890년대 이탈리아 북쪽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밀라노, 토리노, 제노바이 세 도시를지도 위에서 선으로 이으면 삼각형이 만들어져요. 역사학자들은 이걸 산업 삼각지대라고 부릅니다.이 삼각형 안에서 이탈리아의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토리노에서는 피아트라는 자동차 회사가 태어났습니다. 지금도 유럽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피아트 맞아요.
9:17 밀라노에서는 섬유 공장이 쉴새 없이 옷감을 찍어냈고 은행글이 들어서면서 돈이 돈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노바 한고에서는 배들이 유럽지로 물건을 실어 날랐죠. 왜 하필이 세 도시였을까요? 앞에서 이야기한 지리가 여기서 다시 힘을 발휘합니다.이 도시들은 알프스산매 바로 아래에 있어요. 산 하나만 넘으면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입니다. 물건을 만들면 바로 유럽 전체에 팔 수 있었던 거예요. 게다가 포강 뉴역의 넓은 평해야에서 식량이 넉넉하게 올라왔고 알프스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전기까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공장을 돌리기 위한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던 거죠. 여기에 통일의 효과까지 더해졌어요. 통일 전에는 이탈리아
10:03 안에서도 지역마다 세금을 따로 매겼습니다. 밀라노에서 만든 물건을 나폴리에 팔려면 국경을 넘는 것처럼 관세를 돼야 했어요. 그런데 통일이 되면서이 벽이 사라진 겁니다. 북쪽 공장에서 만든 물건이 아무런 장벽 없이 남쪽까지 쏟아져 들어올 수 있게 됐죠. 북쪽 입장에서는 시장이 갑자기 두 배로 커진 셈이에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남쪽 입자는 정반되었어요. 남쪽에도 작은 공방들이 있었거든요. 손으로 옷감을 짜는 곳, 가죽을 무두질하는 곳, 작은 도자기를 빚는 곳들이요. 뒷문은 작았지만 동해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팔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세벽이 사라지자 북쪽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물건들이 밀려
10:49 들어왔어요. 풍질은 더 좋은데 가격은 벗쌌습니다. 기계가 하루에 만들어내는 양을 사람 손으로는 한 달이 걸려도 못 따라가니까요. 남쪽에 작은 공방들은 버틸 수가 없었어요. 하나 둘 문을 딱기 시작했고 남쪽에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1990년대에 중국산 저가 제품이 밀려 들어오면서 한국의 작은 공들이 줄줄이 무너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다만 이탈리아 남쪽은 이미 출발선 자체가 훨씬 뒤에 있었기 때문에 타격이 더 컸습니다. 본방이 무너지고 나니 남쪽에 남은 건 농사뿐이었어요. 그것도 귀족이 땅을 독차지하고 농민들은 소작하는 옛날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북쪽에서는
11:36 기계가 철을 두드리고 있는데 남쪽에서는 여전히 소 한 마리가 쟁기를 끌고 있었죠. 같은 나라 안에서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은 풍경이었어요.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자 남쪽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두 개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고향에서 가난하게 버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다 건너 새로운 땅으로 떠나는 것이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를 택했습니다. 1880년대부터 남쪽 한구에는 매일같이 긴 줄이 늘어섰어요. 리국행 아르헨티나행에 오르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다리 하나 달랑들고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배에 올라탄 거예요. 가족이 함께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버지나 아들이 혼자 먼저 떠났습니다. 돈 벌어서 보내 줄게라는
12:22 한마디를 남기고요.이 이민 행렬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통일 이후 약 50년 동안 남쪽을 떠난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합니다. 지금 미국에 이탈리학의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 영화 대부에 나오는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 가족. 전부이 시기에 고향을 등진 남쪽 사람들의 후손이에요. 북쪽이 공장으로 불을 쌓을 때 남쪽은 사람마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젊고 건강한 일꾼들이 빠져나가니 남쪽에는 노인과 아이들만 남았어요. 일할 사람이 없으니 경제는 더 쪼그라들었고 경제가 쪼그라드니 더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악순난이었어요.이 문제를 역대 이탈리아 정부가
13:08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았습니다. 특히 두 차례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정부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남쪽을 살리겠다고 나섰어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남쪽에 도로를 깔고 전기를 끌어오고 거대한 공장까지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참 아이러니합니다. 차란대 사이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거든요. 사막 한가운데 세운 대성당이라고요. 왜 그런 별명이 붙었을까요? 1950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년 뒤에 일입니다. 이탈리아 전부가 역사적인 결정을 하나 내립니다. 남부 개발 기금이라는 걸 만든 거예요. 쉽게 말하면 남쪽을 살리기 위해 만든 거대한 돈 주머니였습니다.이 돈 주머니에 들어간 일산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한국 돈으로 수십조원에
13:55 달하는 돈이 약 30년에 거쳐 남쪽으로 쏟아졌습니다. 세계은행에서도 돈을 빌려왔어요. 전 세계가 이탈리아가 드디어 남쪽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주목했죠. 처음에는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했어요. 고로를 깔았습니다. 남쪽에는 연마을에 가르면 산길를 몇 시간씩 걸어야 하는 동네가 수두룩했거든요. 그런 곳에 포장 도로가 생겼습니다. 전기도 들어왔어요. 밤이면 호롱불에 의지하던 마을에 전기줄이 연결되고 수도관이 깔려서 우물까지 안 가도 물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관계 시술도 만들어서 감뭄에 시달리던 농토에 물을 댈 수 있겠고요.이시기 이시기 남쪽 사람들은 난생 처음 근대화라는 걸 경험했어요. 한국으로 치면 1970년대 새마을
14:41 운동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초과 지봉이 슬레이트로 바뀌고 마을 앞에 버스가 서기 시작한 것처럼 남쪽 이탈리아에도 비로소 20세기가 찾아온 거죠. 실제로 효과도 있었어요. 처음 약 20년간은 남쪽과 북쪽의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도 이탈리아 남부 개발은 성공적인 모델이라는 칭찬이 나왔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 엔딩인 것 같죠?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도로와 전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정부도 알고 있었어요. 남쪽에 일자리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안 떠나니까요. 그래서 정부는 큰 결심을 합니다. 남쪽에 대형 공장을 세우기로 한 거예요. 발산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어떤 공장을
15:27 어떻게 세웠느냐예요. 전부는 이탈리아의 대기업들한테 보조금을 조하며 남쪽에 공장을 짓도록 했어요.이 이 대기업들은 당연히 최신식 자동화 공장을 세웠습니다. 기계가 거의 다 알아서 돌아가는 공장이요. 건물은 거대하고 시설은 최첨단인데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어요. 여기서 사막의 대성당이라는 별명이 나온 겁니다. 사막 한 가운데 웅장한 대성당을 세웠는데 그 안에 사람이 없는 거예요. 공장 건물은 번쩍번쩍하지만 동네 주민들은 여전히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공장에서 필요한 건 고급 기술자였는데 남쪽에는 농사만 짓던 사람들뿐이었으니까요. 결국 기술자는 북쪽에서 데려오고 남쪽 주민들은 공장 담장밖에서 구경만
16:14 했어요. 여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이 공장들은 남쪽 경제와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었어요. 비율를 하나 들어 볼게요. 시골마을에 대형 마트가 하나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세요.이 이 마트는 본사에서 물건을 가져다 팔기만 하지 동네 가게에서 뭔가를 사가지는 않습니다. 동네 경제에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동네 가게들만 더 죽이는 거죠. 남쪽에 세워진 대형 공장들이 딱 이꼬리였어요. 원제료도 북쪽에서 가져오고 완성품도 북쪽으로 실어보냈습니다. 남쪽은 그냥 공장이서 있는 땅을 빌려준 것에 불과했죠. 나라에서 주던 보조금이 끊기면 어떻게 됐을까요? 공장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문에 닫거나 북쪽으로 옮겨갔어요.
16:59 남은 건 텅빈, 건물, 껍데기뿐이었죠.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재앙이 1971년에 터집니다. 정부가 남부 개발 기금의 운영 권한을 남쪽 지방 정부에 넘긴 거예요. 남쪽 일은 남쪽 사람들이 직접 결정하는게 맞다는 논리였습니다. 멀핏 뚫으면 합이적이죠. 하지만 현실은 끔찍했어요. 그때까지 남쪽 지방 정치는 이미 심하게 썩어 있었거든요. 지방 정치인들은 개발 예산을 자기 친인척 회사에 몰아주고 공사대금을 빼돌리고 표를 얻기 위해 엉뚱한 곳에 돈을 뿌렸습니다. 필요 없는 도로가 뜬금없이 깔리고 아무도 안 쓰는 공공 건물이 올라갔어요. 돈은 쓰는데 남쪽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반복됐죠. 나중에 연구자들이
17:45 분석해 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어요. 1971년 지방에 권한을 넘긴 이후 10년간 남쪽의 경제가 오히려 11%나 더 추락한 겁니다. 살리려고 준 권한이 오히려 독이 된 거예요. 결국 1984년 남부 개발 기금은 부패와 돈낭비라는 비판 속에 문을 닫습니다. 약 30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남쪽과 북쪽의 격차는 그대로였어요. 오히려 벌어진 부분도 있었죠.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 보입니다. 돈이 없어서 못 사는게 아니었어요. 돈은 쏟아부었거든요. 문제는 그 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는 구조가 없었다는 겁니다. 위에서 아무리 물을 부어도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절대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요. 그런데 그
18:32 구멍을 뚫고 있던게 단순한 부패만은 아니었습니다. 남쪽에는 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삶을 쥐고 흔드는 세력이 있었어요. 정부가 손해 놓은 자리 개발 예산이 세어나간 그 틈새를 꽉 채우고 앉아 있던 존재 마피아입니다. 마피아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영화 속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그 이미지. 멋있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실제 남쪽 이탈리아에서 마피아가 하는 짓은 영어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빵집을 하나 연다고 생각해 볼게요. 가게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 찾아옵니다.이 동네에서 장사하려면 매달 돈을 대야 해. 만내면 어떻게 되냐고요? 가게 유리창이 깨지거나 밤에 불이 나거나
19:19 가족이 위협을 받습니다. 경찰을 신고하면요. 그 경찰이 마피아랑 한편인 경우가 많아요. >> 신고한 사람만 더 위험해지는 거죠. 이게 영화가 아니라 남쪽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에요. 이탈리아 남쪽에는 세계의 큰 마피아 조직이 있습니다. 치칠리아 섬에는 코사노스트라, 나폴리일 때에는 카모라, 장화 발끝에 해당하는 칼라브리아에는 은드란게타가 자리잡고 있어요. 이름은 다르지만 하는 짓은 비슷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보호비를 듣고 건설 사업에 끼어들어 돈을 빼먹고 마약을 팔아 때돈을 벌죠. 그런데이 조직들이 하루 아침에 생긴게 아닙니다. 뿌리를 따라가면 앞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 지점과 연결돼요. 통일 이후 남쪽은 사실상
20:05 방치됐었죠. 중앙정부의 관리가 제대로 미치지 않았고 경찰도 부족했고 법원도 멀었습니다. 농민들끼리 땅 문제로 다투면 누가 해결해 줄까요? 도둑이 들면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까요? 정부가 해 줘야 할 일을 정부가 안 하니까 그 빈자리를 동네 유력자들이 채우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동매 분쟁을 중제해 주는 역할이었어요. 내가 해결해 줄게. 대신 나중에 부탁 하나 들어 줘. 이런 식이였죠. 그런데 이게 점점 커지면서 조직적인 세력이 됐고 폭력을 무기로 동네 전체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비워둔 자리를 마피아가 자기 대만의 정부처럼 꽤 차고 앉은 거예요. 정부에서 남부 개발 기금이라는 이름으로 그 어마어마한 돈이 남쪽으로
20:51 내려올 때 마피아가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건설 사업에 자기 회사를 끼워놓고 자제 납품을 독점하고 공사 대금을 빼돌렸어요. 지방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예산을 나눠 먹었죠. 앞서 이야기한 바닥에 뚫린 구멍 그 구멍의 상당 부분이 마피아로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피아가 남쪽 경제에 끼친 피해는 상상 이상이에요.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보호비입니다. 남쪽에서 장사를 하려면 마피아에게 매달 돈을 내야 해요. 이건 일종의 세금인데 정부에내는 세금과 다른 점이 있어요. 정부 세금은 도로도 깔아주고 학교도 세워 주지만 마피아 세금은 순전히 빼앗기는 돈이거든요. 장사에서 남는게 별로 없으니 가게를 키울 수가 없고 새로 가게를 열겠다는 사람도
21:37 줄어들어요. 건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쪽에서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도우려면 마피아의 허락을 받아야 해요. 마피아가 지정한 업체를 쓰고 마피아가 정한 가격을 내야 합니다. 당연히 공사비가 뻥튀이 되겠죠. 같은 도로를 북쪽에서 10억 원에 까는 걸 남쪽에서는 20억, 30억이 드는 거예요. 그 차이는 전부 마피아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이게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 될까요? 연구자들이 실제로 조사를 해 봤어요. 마피아가 장악한 지역의 1인당 소득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약 16%나 낮았습니다. 같은 남쪽이라도 마피아 세력이 강한 동네와 약한 동네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 거예요. 더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마피아가 너무 깊이 파고든 지방
22:22 의회를 정부가 강제로 해산한 적이 있어요. 마피아와 한통속이 된 지방 정치인들을 전부 몰아낸 거죠.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 지역에서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일자리가 늘어난 겁니다. 마피아가 사라지니까 비로소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 거예요.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남쪽이 못 사는 건 남쪽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에요. 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정상적으로 장사하고 정상적으로 일하고 정상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망가져 있었던 거예요. 마피아라는 거대한 기생충이 남쪽 경제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으니까요. 남쪽 사람들도 마피아의 피해자입니다. 데다스는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저항하면
23:10 목숨이 위험하고 신고해도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선택은 떠나는 겁니다. 할아버지 세대에는 미국으로 떠났다면 지금은 북쪽에 밀라노로, 토리노로, 독일로 떠나고 있죠. 이쯤 되면 북쪽 사람들 입장도 궁금해질 겁니다. 세금은 남쪽에 돈을 보내줬더니 마피아가 먹어 치우고 공장을 세워 줬더니 효과도 없고 격차는 좁혀지기는 거녕 더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북쪽에서도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이 불만이 폭발하면서 같은 나라 사람끼리 서로를 원수처럼 바라보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북쪽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볼까요? 밀라노에서 아침마다 출근하는 회사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매달 월급에서 세금이
23:55 빠져나갑니다. 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뉴스를 보면 남쪽에 또 도로를 깔고 남쪽에 또 공공 건물을 짓고 남쪽에 또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돈의 상당 부분이 마피아한테 세어나가거나 엉뚱한데 쓰이고 있다는 뉴스도 함께 나와요.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겠어요? 내가 열심히 벌어서 낸 세금이 왜 남쪽 마피아배를 불리는데 쓰이는 거야? 이런 불만이 한두 사람의 투덜거림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1년이 분노를 정치로 바꾼 사람이 나타났어요. 운베르토 보시라는 정치인이 북부동맹이라는 정당을 만든 겁니다.이 정당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고 강렬했습니다. 북쪽이 번도는 북쪽에 써야 한다. 맘쪽은 남쪽이
24:41 알아서해라. 심지어 한 때는 북쪽이 아예 독립해서 따로 나라를 만들자는 주장까지 했어요. 파다니아라는 이름에 독립국을 선포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죠. 실제로 독립이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 그만큼 북쪽의 불만도 그게 다했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남쪽 사람들은이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기생충이라고? 누가 누구한테 그런 소리를 해? 남쪽 사람들 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거든요. 일단 통일 자체가 불공평했습니다. 북쪽이 남쪽을 정복해 놓고 북쪽 기준의 법과 세금을 강제로 씌우고 관세벽을 허물어서 남쪽의 작은 산업까지 무너뜨렸잖아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남쪽 사람들이 정말로 일을 가는 건 세 가지 사실
25:27 때문이에요. 첫째, 남쪽의 곡간을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코미 전에 남쪽 양시 칠리아 왕국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나라였어요. 국고의 금과 현금이 가득했죠. 그런데 가리바이디가 남쪽을 점령하자마자이 돈이 북쪽 토리노로 실려갔습니다. 북쪽 정부는 통쟁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돈은 남쪽 사람들한테 단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둘째, 세금은 남쪽에서 더 많이 걷고 쓰는 건 북쪽에 더 많이 썼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정치인이 통일 이후 약 40년간의 세금 자료를 직접 분석한 적이 있어요. 결과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암쪽이 북쪽보다 1인당 약 20% 더 많은 세금에 냈는데 도로, 학교, 관공서 같은
26:13 공공 시설에 들어간 돈은 북쪽의 60% 수준밖에 안 됐던 거예요. 남쪽에서 걷어간 세금으로 북쪽에 철도를 깔고 공장을 세운거나 다름 없었죠. 남쪽은 계속 방치됐다가 사람들이 미국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이민을 가며 떠나자 뒤늦게 남부를 신경 쓰게 된 거죠. 셋째, 모역 정책도 북쪽에만 유리하게 짜여졌어요. 나중에 이탈리아 정부가 외국 물건의 높은 관세를 매기는 보호 무역 정책을 시작하는데 이게 북쪽 공장을 지켜주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농산물을 수출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남쪽에는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북쪽의 공장은 보호받고 남쪽의 농장은 방치된 거예요. 이걸 알고 나면 남쪽 사람들의 분노가 이해되지 않나요? 통장을 빼앗기고 세금은 더 내고 그
27:00 돈은 북쪽 발전에 쓰이고 자기네 산업은 무너지도록 내버려두고 이런 역사를 겪은 사람들한테 너희한테 세금 쓰는게 아깝다고 하니까 폭발하는 겁니다. 빼앗을 건 다 빼앗아 놓고 이제 와서 기생충이라고. 이게 남쪽 사람들의 속마음이에요. 게다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적인 무시도 있었어요. 남쪽 말투를 쓰면 저 사람 남쪽에서 하나 봐 하는 시선을 받고 집을 구할 때 남쪽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나라 여건을 가진 사람들인데 어디 출신이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겁니다.이 갈등이 최근에 다시 폭발한 사건이 있습니다. 24년 6월 이탈리아 의외에서 차별적 자치법이라는 법안이 통과됐어요. 쉽게 말하면 각
27:47 지역이 중앙정부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한 법입니다. 교육, 보건, 교통 같은 분야를 지역이 직접 관리하고 그에 맞는 세금도 지역에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었죠. 누가이 법을 밀었을까요? 당연히 북쪽이에요. 표면적으로는 지역 자율성을 높이지 않은 그럴듯한 명분이었지만 속녀는 명확했습니다. 우리 돈 우리가 쓰겠다는는 거였어요. 밤쪽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이 법이 시행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뻔했거든요. 부유한 북쪽은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병원, 더 좋은 도로를 만들 수 있지만 가난한 남쪽은 자기 돈으로는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도 유지하기 어려워져요. 지금도 남쪽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월급이 더 높은
28:33 북쪽 병원으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법이 시행되면 그 흐름이 겉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거죠. 결국 헌법 재판소가 나섰습니다.이 법의 핵심 조항 상당수에 대해 위험 판결을 내린 거예요. 하지만 갈등이 해결된 건 아닙니다. 법은 멈췄지만 감정은 그대로거든요. 북쪽은 여전히 왜 우리 돈을 남쪽에 가져가냐고 하고 남쪽은 여전히 160년 전에 빼앗아 놓고 이제 와서 버리려 한다고 하고 있어요. 같은 나라인데 서로를 우리라고 부르지 못하는 비그. 밖에서 보면 하나의 이탈리아인데 안에서는 두 개의 세 개가 등을 돌리고 있는 겁니다. 그 사이에 남쪽에서는 조용하지만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싸우는 동안 남쪽 자체가 천천히 사라져 가고
29:19 있었습니다. 쉬칠리아 옆에 사르데냐라는 큰 섬이 있습니다. 사르데냐의 어느 작은 마을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한 때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던 학교예요. 그런데 2015년 이후로 입학하는 아이가 해마다 줄더니 9년 만에 학생 수가 14%나 빠졌습니다. 한 반에 20명이던 교실이 15명이 되고 10명이 되고 결국 학교가 문을 닫습니다. 학교가 사라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더 이상이 마을에서 살 수가 없어요. 아이를 데리고 학교가 있는 동네로 이사합니다. 부모가 떠나면 동네 가게에 손님이 줄어들고 빵집이 문을 닫고 식료품점이 문을 닫습니다. 가게가 사라지면 거기서 일하던 사람도
30:04 떠나요.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가 줄어드니 의사가 떠나고 의사가 없으니 아픈 사람도 다른 데로 가야 합니다. 한 명이 떠나면 그 빈자리 때문에 두 명이 더 떠나고 두 명이 떠나면네 명이 더 떠나는 악순난니에 이게 사르데냐 한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쪽 이탈리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에요. 총이 직후 일자리가 없어진 남쪽 사람들이 미국으로 떠났다고 했는데 지금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목적지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미국 대신 밀란노로 토리노로 아니면 아예 독일이나 영국으로 떠나고 있죠. 2011년부터 13년 동안 남쪽을 떠난 청년이 64만 명이 넘습니다. 서울 강남구 전체 인구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고향을 등진 거예요.
30:50 그리고이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않습니다. 떠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에요. 남쪽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이자리가 없으니까요. 같은 나라 북쪽에 가면 월급이 훨씬 높고 일자리도 훨씬 많습니다. 내 능력을 펼칠 기회가 북쪽에만 있는데 굳이 남쪽에 남아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문제는 떠나는 사람이 그냥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탈리아 재무부가 계산을 해봤더니 대학 졸업생 한 명이 고향을 떠날 때마다 그 지역이 잃는 돈이 약 3억 8천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쓴 교육비. 그 사람이 앞으로 벌어서 내 세금, 그 사람이 동네에서 쓸 소비.이 모든게 증발하는
31:36 겁니다. 이걸 남쪽을 떠난 전체 청년수에 대입하면 총 손실이 56조원이 넘어요. 이탈리아 전국 학교 예산을 다 합친 것과 만먹는 금액이 남쪽에서 사라진 거죠. 남쪽의 대학대도 힘을 잃어가고 있어요. 북쪽 대학에는 인공지능이나 생명공학 같은 첨단 분야의 투자가 몰리는데 남쪽 대학들은 학생수가 주면서 예산도 깎이고 있거든요. 좋은 교수는 북쪽으로 옮기고 좋은 학생도 북쪽으로 진학하고 교육마저 격차를 줄이는게 아니라 오히려 벌리는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에요. 이런 이야기만 하면 남쪽에 희망이 하나도 없어 보이죠. 하지만 변화싹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남쪽에는 북쪽이 따라올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클리아 지역의
32:21 올리브유는 세계 최고급으로 평가받고 있고 시칠리아 와인은 유럽 시장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나폴리 피자는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아말피 해안이나 시칠리아의 관광 자원은 북쪽 어떤 도시도 흉내낼 수 없죠. 이유에서도 남쪽 살리기에 다시 힘을 보태고 있어요. 디지털 산업과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투자하는 기금을 지원하면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대형 공장을 세우는 대신 남쪽의 특산물과 관광 자원을 활용한 지역 위착형 산업을 키우려는 시도예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런 노력이 160년의 격차를 배우기에 충분한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같거든요. 사람들이 머물고
33:06 싶은 곳이 되지 않으면 올리브유가 아무리 맛있어도 그걸 만들 젊은이가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 남쪽 이탈리아는 갈림길에서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마을이 하나 둘 텅비고 학교가 사라지고 병원이 문을 닫고 결국에는지도 위에 이름만 남는 동네들이 늘어날 거예요. 반대로 변화가 뿌리를 내리면 160년 만에 처음으로 남쪽이 제발로 일어서는 순간이 올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 될지는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똑같은 질문이 던져지고 있으니까요. 이탈리아 북쪽과 남쪽은 통일되기 전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북쪽은 수백년간 스스로 장사하고 스스로 다스리는 삶을 살았고 남쪽은 수백년간 외국왕 밑에서
33:54 남의 땅을 일구는 삶을 살았어요.이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졌는데 합치는 방식 발전 과정도 문제였죠.이 이 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건 뭘까요? 하나의 교훈이 분명하게 보여요. 나라를 합치는 건 법 한 줄이면 됩니다. 북경손을 지우고 같은 국기를 걸고 하나의 정부를 세우면 형식적인 통일은 끝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진짜로 합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구조. 어디서 태어나든 비슷한 수준의 교육과 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내가이 나라의 진짜 이런 원이라고 느낄 수 있는 소속관. 이런 것들 없이 형식만 합치면 160년이 지나도 두 개의 나라가 하나의 국경 안에서 등을
34:40 돌리고 사는 꼴이 됩니다. 곤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이탈리아가 보여준 뼈 아픈 교훈이에요. 수식 조언을 쏟아부었지만 격차는 줄이지 않았잖아요. 사람이 머물고 싶은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공정항 규칙이 지켜져야 하고 노력한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위에서 아무리 물을 부어도 바닥의 구멍으로 전부 세어나갑니다. 한국도이 이야기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지금 한국에서는 수도권의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고 지방에서는 소멸 위험 지역이라는 말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학교가 문을 닫고 병원이 사라지는 풍경은 남쪽 이탈리아와 놀라울만큼 닮아 있어요. 그리고
35:26 한국에는 이탈리아에 없는 질문이 하나도 있습니다. 풍일이요. 언젠가 올지 모르는 남북 통. 이탈리아의 160년은이 질문에 대해 아주 무거운 대답을 던지고 있어요. 합치는 것 자체보다 합친 이후가 훨씬 더 어렵다고 말이죠. 형식적으로 하나가 되는 건 시작일 뿐이고 진짜 통일은 사람들의 삶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된다고요. 형 60년 동안 좁혀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격차. 이걸 보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우린 하나가 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오늘 영상이 유익하고 재밌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