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설교는 복음이 이끄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앙생활을 잔치처럼 기쁨으로 누리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핵심은 죄 용서, 정체성 변화, 영원한 생명, 자아 망각,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 죄 용서를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정체성이 변화됩니다.
- 영원한 생명을 현재에서부터 누릴 수 있습니다.
- 자아를 망각하고 복음에 집중할 때 진정한 기쁨을 얻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서론
설교자는 미국에서 45년간 지냈으며, 때때로 설교 중 엉뚱한 말이 나올 수 있음을 양해를 구합니다. "복음이 이끄는 삶"이라는 주제를 개인적으로 적용하며 살고 있으며, 이 경험을 청중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작년에 일본 선교사님이 "페스티벌"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목회하는 것을 보고, LA에서는 어떤 단어를 가지고 목회할지 고민하다가 "피에스타"(Fiesta)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피에스타는 스페인어로 잔치와 비슷한 의미이며, 신앙생활은 기쁨 가운데 축하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새벽 기도하러 가는 길에 자신에게 "피에스타"를 설교하며 은혜를 받고 있으며, 이 감격을 청중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삶은 무언가에 이끌려 살아가는데, 아무리 좋은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니라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최우선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분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F: 죄 용서 (Forgiveness of Sin)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가 탕자를 용서하고 잔치를 베푸는 장면을 통해 죄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피에스타"의 첫 글자 F는 "Forgiveness of Sin"(죄 용서)를 의미합니다. 탕자가 돌아오기 전에 아버지가 이미 용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갑니다. 이는 당시 풍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온 동네에 알려졌고, 이웃이 그를 돌로 쳐 죽여도 무방한 시대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에 맞아 죽기 전에 달려간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절실한 필요는 돈이나 관계 회복이 아닌 용서입니다. 헤밍웨이의 짧은 이야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는 광고를 낸 것처럼, 우리 모두는 용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잔치를 벌일 수 있습니다.
I: 정체성 변화 (Identity Change)
"피에스타"의 두 번째 글자 I는 "Identity Change"(정체성 변화)를 의미합니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가 탕자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겨주는 것은 신분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반지를 끼워주는 것은 아들로서의 권위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며, 신발을 신겨주는 것은 종이 아닌 아들로서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트랜스젠더, 트랜스에이블, 트랜스레이셜 등의 이슈는 이러한 혼란을 보여줍니다. 복음은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무엇을 행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업적으로 인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는 분에게 우리 대신 죄를 씌우셨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E: 영원한 생명 (Eternal Life)
"피에스타"의 세 번째 글자 E는 "Eternal Life"(영원한 생명)를 의미합니다. 탕자 비유에서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표현은 우리가 어둠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옮겨졌음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부터 누리고 영원한 나라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따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생은 질(Quality)이면서 양(Quantity)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생을 누려야 하며, 천국이 보장된 사실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최악의 순간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최고의 것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S: 자아 망각 (Self-Forgetfulness)
"피에스타"의 네 번째 글자 S는 "Self-Forgetfulness"(자아 망각)를 의미합니다. 탕자 비유에서 큰 아들은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는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탕자는 아버지 품에 안겨 감격하며,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순간을 누립니다. 팀 켈러 목사는 "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라는 책에서 자신으로 충만한 사람은 기쁨 가운데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아상이 높거나 낮은 사람 모두 자신으로 충만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기쁨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망각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이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자기를 망각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법정에 올려놓고 자신을 평가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소리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T: 신학 (Theology)
"피에스타"의 마지막 글자 T는 "Theology"(신학)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학은 성경을 전체적인 큰 그림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창조, 타락, 구속, 회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결혼하지 못한 성도들을 보며 기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한 경우에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J.R.R. 톨킨의 "Leaf by Niggle"이라는 이야기처럼, 이 땅에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A: 예배 (Worship)
"피에스타"의 마지막 글자는 예배와 관련된 것입니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풉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차이는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예배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며,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에서 선교사를 받아야 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다음 세대를 위해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누리고 증거하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복음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