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 총정리 1편 : 영국이 4개로 나뉜 이유부터 백년전쟁까지

영국 역사 총정리 1편 : 영국이 4개로 나뉜 이유부터 백년전쟁까지

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영국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하여 영국이 4개의 지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으로 나뉘게 된 배경부터 블랙 시트 이슈까지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합니다.

  • 브리튼 제도의 형성 및 켈트족의 시대
  • 로마의 침공과 앵글로색슨족의 이동
  • 잉글랜드의 통합 시도와 백년 전쟁
  • 장미 전쟁과 대영제국의 발돋움

브리튼 제도의 형성 및 켈트족의 시대

원래 유럽과 연결되어 있던 영국은 기원전 6000년경 해수면 상승으로 섬으로 분리되어 브리튼 제도를 형성했습니다. 잉글랜드 지역은 비옥한 땅으로 이주민들이 농업을 들여왔고, 기원전 2000년대 초에는 인도 유럽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켈트족은 천년 넘게 살면서 스톤헨지와 같은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3100년부터 기원전 1600년까지 지어진 건축물로, 종교적 의식을 치르기 위한 장소로 추정됩니다.

로마의 침공과 앵글로색슨족의 이동

기원후 43년, 로마가 브리튼 제도를 침공하여 로마령 브리타니아가 세워졌습니다. 켈트족은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로마 문화에 동화되어 안정적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410년 로마군이 철수하자, 켈트족은 다른 부족들의 침략을 받게 되었습니다. 켈트족은 앵글로색슨족에게 용병을 요청했지만, 앵글로색슨족은 켈트족을 공격하여 잉글랜드 지방을 점령했습니다. 켈트족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등으로 도망쳤고, 이 시점부터 영국인의 개별적인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잉글랜드의 통합 시도와 백년 전쟁

4개의 지역으로 나뉜 브리튼 제도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잉글랜드 왕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12세기 헨리 2세는 아일랜드를, 13세기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를 복속시키고 스코틀랜드를 괴멸시키려 했습니다.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강압적인 통치로 인해 '스코트인의 망치'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저항은 거셌고, 잉글랜드는 완전한 스코틀랜드 지배에 실패했습니다. 12세기에는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전쟁에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1337년에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백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백년 전쟁

잉글랜드는 대륙으로 진출하려 했고, 프랑스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겨 백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잉글랜드가 크레시 전투 등에서 승리하며 프랑스 영토를 약탈했지만,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프랑스 군이 사기를 되찾고 결집했습니다. 프랑스 군은 오를레앙 전투 등에서 승리하며 설욕했지만, 잔 다르크는 화형당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대포가 발명되어 잉글랜드 장궁병들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1453년 잉글랜드를 프랑스에서 몰아냄으로써 백년 전쟁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장미 전쟁과 대영제국의 발돋움

백년 전쟁 이후 영국에서는 왕위 계승권을 두고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 간의 장미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튜더가 승리하여 튜더 왕조가 개창되었습니다. 장미 전쟁 이후 잉글랜드는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왕권이 강화되었고, 헨리 8세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해양 강국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은 왕들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왕권은 다시 약해졌고, 영국 의회가 급부상하여 권력을 잡게 되었습니다.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를 합병하고 연합법을 통과시켜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3국이 하나의 통치를 받는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 왕국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영국은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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