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육 통합 01~18] 인간의 영,혼,육이란 무엇인가ㅣ앤드류워맥ㅣ거듭남의비밀ㅣ성령충만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영,혼,몸ㅣ구원ㅣ믿음ㅣ그리스도인의 정체성ㅣ방언ㅣ은사ㅣ기도

[영혼육 통합 01~18] 인간의 영,혼,육이란 무엇인가ㅣ앤드류워맥ㅣ거듭남의비밀ㅣ성령충만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영,혼,몸ㅣ구원ㅣ믿음ㅣ그리스도인의 정체성ㅣ방언ㅣ은사ㅣ기도

간략 요약

본 영상은 영혼육의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신앙생활의 혁신을 가져오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거듭남은 영의 변화이며, 영 안에서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같습니다.
  • 신앙생활은 영 안의 완전함을 인식하고, 혼과 육을 영에 복종시키는 과정입니다.
  • 성령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의 지혜를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시리즈 소개 및 개인적 경험

앤드류 워맥은 영혼육에 대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며, 이 가르침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1968년 3월 23일 주님과의 기적적인 만남을 통해 불꽃을 일으키고 동기를 부여받았지만, 감정적인 경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베트남에서 13개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좌절했고, 심지어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영혼육에 대한 가르침이 그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지식의 중요성

감정적인 경험만으로는 삶을 유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3절과 4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진리를 통해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진다고 강조합니다. 감정적인 경험은 관심을 끌고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주지만, 감정이 사라진 후에는 좌절감이 밀려올 수 있습니다.

영혼육의 분리

고린도후서 5장 17절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통해 영혼육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구원받는 것은 몸이나 혼이 아니라 영이며, 변화된 것은 영이라고 강조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통해 영과 혼과 몸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는 보이고 느낄 수 있지만, 영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영의 중요성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세 번째 부분, 즉 영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예로 들며, 육체나 혼적인 영역에서는 이전 것이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거듭날 때 몸은 거듭나지 않으며, 혼적인 영역도 즉시 변하지 않습니다.

거듭남과 변화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예수께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영적인 탄생을 해야 합니다. 거듭날 때 변하는 것은 몸이나 혼이 아니라 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갈망

1958년에 거듭났지만 1968년에 주님과 기적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제 삶에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후로는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고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맛보았지만 4개월 반 후에 그 감정과 느낌이 사라졌고 다시 되찾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을 사랑하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비교하는 것은 나쁘지만 쉽게 말하기 위해 굳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말하자면 저는 비교적 모범적인 크리스천 청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순수한 선과 순수한 거룩이시고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체험

최선을 다해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열심히 해야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빚을 지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적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부터 완벽하게 거룩하게 살고 잘못된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거에 저지른 모든 엉망진창인 일들을 지을 수 없다는 걸 제가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 안에서 새로운 사람

구원받은 것은 제 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마찬가지로 제 혼 즉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은 것은 바로 제 영이고 영 안에서 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걸 보고 나서 요한복음 4장 24절 말씀.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연결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영적인 부분의 변화

저는 평생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편안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는 괜찮았지만 새로운 사람과 있으면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 걸었어요. 어떤 분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저는 두 블록이나 가서 차에 앉아서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정말 끔찍하죠. 이유는 다 모르겠지만 대부분 종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국에서의 변화

우리는 우리 모두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맞습니다. 천국은 정말 멋진 곳이 될 거예요. 하지만 천국은 우리가 새로운 몸, 영광스러운 몸을 받는 곳이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영광스러운 몸을 받으셨을 때 나타났다 사라지시기도 하시고 벽을 통과하기도 하셨다는 기록이 있잖아요. 우리도 영광스러운 몸을 받게 될 거예요.

영 안의 능력

제 영 안에서 저는 영원 안에서 제가 될 수 있는만큼 지금 당장 완벽한 존재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가지신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영 안에서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그걸 과격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에베소서 1장 18절부터 그 장의 끝까지가 바로 그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혼육의 이해

여기서 만약 여러분이 제가 말하는 영혼육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연적인 영역에서만 사물을 본다면 앞서 말한 성경 말씀과 실제 삶의 괴리감을 바로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제가이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거울을 보면서이 부활의 능력을 보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흰머리가 있고 여드름도 있고 주름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영적인 거울

저는 영혼육의 눈으로 성격을 읽기 시작했고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지 보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했을 때 갑자기이 모든 성경 구절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참으로 참으로를 의미합니다. 아멘. 아멘이라고도 하죠.

예수님과 똑같은 영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능력은 우리의 영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예수님과 똑같습니다.이 부분은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룰 텐데요. 요한일서 4장 17절에 보면 사랑이 우리에게서 이와 같이 온전하게 된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신 것 같이 우리도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영혼몸 주제

영혼몸이라는 주제로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적인 영역과 혼적인 영역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정체성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것을 영혼몸이라고 부릅니다. 제 안에 영을 제대로 깨닫고 혼과 육의 상관를 알았을 때 제 삶이 완전히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영혼육의 세 부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도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혼육 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의 인식

하지만 우리의 영에 관해서는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영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을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혼란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끼고 알 수 없습니다.

영적인 탄생

요한복음 3장에서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죠. 엊그제 말씀드렸듯이 원어에서 거듭난다는 단어의 의미는 위로부터 태어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

양자물리학과 같은 과학에서 동시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체 현실들을 가지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가 따로 존재하며 또한 동시에 존재한다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그것들은 나란이 있고 서로 다른 존재인 거죠.도 우리도 아시다시피 성경은 우리 주변에 천사들이 있고 악마들이 있다고 말해 줍니다.

영적인 거울

자, 그렇다면 우리가 볼 수 없고 영은 영이고 육은 육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우리의 오감으로 우리의 영 안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낼 수 없다면 어떻게 영에 대한 것들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럴 때 항상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을 펼쳐서 읽어 드리겠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

누가 저에게 몸 상태가 어떤지 모르면 덥거나 춥거나 피곤하다거나 활력이 넘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기분이 어떤지 물으면 좋거나 우울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누가 우리의 영이 어떤지 묻는다면 그걸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거울을 보러 갈 수도 없죠. 거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가야 하는 거죠.

영적인 사람

다시 말씀드리지만 진정한 우리 각 사람은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이걸 깨닫기 시작했을 때 제 삶이 완전히 변화됐습니다. 오늘 점심 시간에 직원 중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직원이 자신을 변화시킨 것은 바로이 영혼 몸에 대한 가르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문제가 많았고 마약에 빠졌고 자해하고 몸을 태우고 심지어 죽고 싶어 했습니다.

이미 도착한 우리

아시다시피 제가이 복음 방송을 했을 때 사람들이 방송 사역을 반대했습니다. 만약 그때 성령님의 이끄심보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면이 사역을 할 수 없었겠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성령 안에 살게 되면 담대히 나아가게 하십니다. 의사가 사형 선고를 내리든 은행가가 대출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든 뭘 가질 수 없다고 하든 크게 상관없게 됩니다.

영과 혼의 일치

우리의 영은 항상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완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은 잘할 필요도 없습니다. 개선할 필요도 없는 완전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두 개의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혼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혼의 정신적 감정적인 부분이 여기에서 영과 일치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하여이 둘이 일치하게 된다면 그것은 몸만 남겨두고 2대 1이 됩니다.

영 안에서 이미 완전

여러분,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는 이미 완전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3분의이 끝난 거예요. 하나님께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 우리의 영의 먼지를 털어내거나 더 많은 능력을 주입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이 순간 우리 안에 영원토록 가질 거듭난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영역과 몸의 상호작용

몸과는 영적인 영역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영은 영이고 육은 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영역이 있고 육체적인 자연적인 영역이 있으며 그것들은 직접적으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거울,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창문이나 거울처럼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은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말씀으로 가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완전한 자유의 율법 즉 성경 말씀을 들여다봄으로써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으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진리

감정을 무시하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감정이나 오감을 통해 보고 느끼는 것에 지배당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치유 같은 영적인 진리를 가지고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하니까 그냥 나는 낳았다라고 말하면서 육체적인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4절에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되어 있습니다.이 구절의 나머지를 설명하기 전에 이번 주 내내 매일 사용했던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과 일맥 상통한다는 거를 말씀드립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즉 새로운 사람이라는 거죠.

하나님의 의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의 영을 보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고 하나님은 영으로 저를 보고 계시고 저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해 드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완전한 것으로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저희의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의

자기 의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가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절에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께 드리는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의 의

우리의 의로운 행위를 가지고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로 대체하는 것은 모욕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이 구절은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믿음과 의로서 우리는 하나님께 가야 합니다.

율법의 목적

그리고 율법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가 그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율법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든 율법을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물

우리의 거듭난 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 알게 됩니다. 오직 영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위로부터 거듭났다면 우리의 영은 의롭고 참되게 거룩하게 창조되었다고 말입니다. 제 방송을 보고 계시는 분들 중에는 결국 그렇게 말하지 못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저는 의롭고 거룩합니다. 제 행동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제 혼에 대해서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 영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거듭난 제 영은 예수님만큼 의롭고 거룩하고 순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물로 거듭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혼몸의 이해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육체와 혼의 관점에서만 사물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고 주님 안에서의 기쁨을 누리며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거듭난 영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전되기를 기도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거울,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영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것들을 보여줍니다. 야고보서 1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울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거울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지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일한 영

요한일서 4장 17절은 예수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은 바로 우리의 거듭난 영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신성모독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다수의 기독교인은 자기의 죄가 용서받았다고는 믿지만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실제로 눈에 띄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과 합한 자

고린도전서 6장 17절입니다.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그리고 헬라어에서 하나라는이 단어는 헤이스 HIS인데 이것은 다른 것을 배제하는 단 하나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슷하거나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일도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 능력은 우리의 몸과 우리의 생각 즉 혼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소망

골로새서 1장 27절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완전합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우리의 영적인 영역에서 우리의 구원은 완전합니다. 저는 이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의 거처

저는 제 배를 가리키면서 이곳이 영적인 사람이 거하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영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멘. 우리의 배가 얼마나 크든 상관없이 영적인 영역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합니다. 우리는 거듭났고 우리 아내는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기독교인의 삶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께 나아가 더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성령 안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그것을 발견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없는 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대신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주신 것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방금 한 말은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

하지만 진실은 은혜로 구원받은 낡은 죄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낡은 죄인이었지만 은혜로 구원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영역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물론 여전히 죄로 인해 부패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전쟁

이번 주 처음 3일 동안 저는 기초를 다졌고 이미 제 삶을 변화시킨 정말 중요하고 혁명적인 것들을 많이 말했습니다. 몸과는 영적인 영역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영은 영이고 육은 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영역

우리는 영적인 영역과 육체적인 자연적인 영역이 있으며 그것들은 직접적으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창문이나 거울처럼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영적인 거울,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창문이고 거울이 돼서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완전한 자유의 율법 즉 성경 말씀을 들여다봄으로써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생각하기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고치지 않아요. 그들은 그들이 느끼는 대로 생각하죠.

육체적인 문제

저는 우리가 육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육체적인 세계가 존재하는 걸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부정하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세계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혼적인 세계 말고도 다른 부분이 있다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새 사람

우리는 거듭난 새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낫지 않았더라도 나는 낳았다라고 말하는 건 제 육체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무시해서가 아니고 스스로가 육체적인 존재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으로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제 안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살아 있고 그걸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로마서 10장 10절 말씀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제 영 안에 있는 진리가 제 몸 밖으로 나타날 거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

에베소서 4장 24절에 새 사람을 입으라.이는 이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강력하죠. 거듭난 우리들은 의와 진리의 거룩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듭난 후에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 하나님 저를 의롭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영으로 예배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를 영으로 보시고 우리의 행동이 아닌 영 안에서의 우리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행동을 이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으로서 육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죄 가운데에 살면 우리의 몸과 영혼을 악마에게내어 주는 것입니다.

새 사람의 특징

에베소서 4장 24절에 따르면 우리의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미 의롭고 참으로 거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창조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노력해서 얻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참으로 거룩하게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

갈라디아서 4장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예수님의 영만큼 순수합니다. 거듭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저희 안에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자기의 의의 한계

만약 우리가 자기 의를 세우고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제가 금식했고 기도했고 이것저것 다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제게 무엇을 주실 건가요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행위를 근거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되고 그것은 자기의 의가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취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로마서 11장 6절에서는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만일 행위로 말미암음이면 은혜로 말미암음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행위되지 못하느니라. 풀이하자면 단지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 즉 은혜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지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고 그분을 통해 의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율법의 마침

로마서 10장 4절에서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가 그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새 사람을 입으라.이 이 세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하나님께 비로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올바른 사용법을 우리의 영 안에 이미 넣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말이죠.

하나님의 선물, 의

저는 잘하면서 제 거듭난 영이 아닌 제 육체와 정신과 감정적인 부분에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만 중점을 두었고 저는 끊임없이 실패한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영이 제가 의롭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으며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순수하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https://www.youtube.com/watch?v=q0LY9wPiZO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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