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능엄경 전체 해설ㅣ부처님이 말씀하신 가짜 깨달음 50가지, 나도 모르게 빠지는 마(魔)의 함정”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4 [음악] 지금이 시간에도 어느 도량에서는 한 수행자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또 어느 골방에서는 손에 염주를든 노보살님이 조용히 관세음보살를 부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어느 산사 마루 끝에서는 새벽 예부를 마친 노스님이 차 한잔을 드시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이 [음악] 모든 정성스러운 자리를 두고 놀라운 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닫고도 마의 소가 헛걸음을 하는이가 한 둘이 아니라고 하신 까달깁니다. 불자님들이 말씀이 마음에 가만히 걸리실 것입니다. 저를 안 한 사람도 아니고
0:51 경을 안 외운 사람도 아닙니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누구보다 간절히 닦은이가 마에 속는다고 하시니 결코 가벼히들을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더욱이 부처님께서는 한두 가지가 아니라 직접 50가지나 따로 떼어내어 일러주신 함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이 [음악] 말씀의 무게가 보통이 아닌 까닭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볼 경전은 능엄경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짜 깨달음 50가지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드는 마의 함정에 관한 가르침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능엄경이 다른 경전과 구별되는 자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까닭기입니다.
1:37 다른 경전이 어떻게 깨달음에이를 것인가를 설하셨다면 능엄경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어떻게 가짜 깨달음에 속지 않을 것인가를이 한 자리에서 일러 주십니다. 깨달음을 가르치는 경은 많아도 가짜 깨달음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풀어 보이신 경은 오직 능엄경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마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 마가 아닙니다. 어두운 골목에서 불쑥 나타나는 귀신도 아니며 무서운 형상으로 다가오는 외부의 존재도 아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만은 더 무섭게도 가장화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마음이 가장 고요할 때 가장
2:23 밝아진듯한 그 순간이 가장 위태로운 자리입니다. 아, 내가 드디어 무언가를 보았구나 하는 한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 바로 거기에서 막아들어선다고 부처님께서는 거듭 일러 주십니다.이 한 법문을 끝까지 들으시고 나면 한 가지를 분명히 손에 쥐고 가시게 됩니다. 수행 중에 어떤 좋은 경계가 일어나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분별의 힘이 그것입니다. 환난 빛이 보이고 깊은 환이가 차오르고 자비심이 가슴 가득 일어나더라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본래 자리로 가만히 돌아갈 줄 아는 안목이 열리시기 때문입니다.
3:09 평생 다가오신 그 정성이 헛되히 흩어지지 않도록 부처님께서 손수 내려주신 방패를 오늘 일한 자리에서 함께 받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을 설하신 자리는 결코 평온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절박한 사전과 50가지 막연계의 자리는 다음 자리에서 차분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오늘이 한 자리에서 우리는 아홉 대목을 함께 걸어가게 됩니다. 먼저 능엄경이 어떤 자리에서 설해졌는지 부처님께서 왜 50가지나 따로 떼어 경고하셨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다음으로 마감 무엇인지 진짜 깨달음과 가짜 깨달음을 가르는 부처님의 기준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3:56 풀어드립니다.이어서 세금에서 시금까지 다섯 단계의 막연계를 한 자리씩 들여다보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일반 신자도 일상 속에서 오음마에 속지 않을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손에 쥐어주신 방패를 함께 챙겨 드리려 합니다.이 이 자리에 머무르시는 동안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치고 호흡을 고르십시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 담아두신 깊은 가르침이 한 글자 한 글자 우리 마음 안에 고요히 스며들 수 있도록 함께 천천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이제 능엄경이 처음 설해진 그 자리로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펼쳐 보이신 가르침이
4:42 한두 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영축산 봉우리 위에서도 설하셨고 중림정사 그 고요한 숲에서도 법을 펴셨습니다. 그런데 능엄경이 설해진 자리는 다른 어느 자리와도 사뭇 달랐습니다. 평온한 도량의 결과 부좌가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절박한 순간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는 사촌 동생이자 가장 가까이 모시던 시자가 한 분 계셨습니다. 바로 안난존자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잘 외운 분이었으며 훗날 경전 결집 때 그런 모든 가르침을 입으로 다시 옮긴 분이기도 합니다. 흔히
5:28 다문제일이라 불리신 분이 바로 아난존자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처님 곁에서 평생을 지낸 아난존자에게도 한 순간 마의 환술에 걸려 들어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의 가장 가까운 분께서도 그러하셨기에이 한 사건이 우리에게 전하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입니다. 이날 아나는 걸식을 마치고 홀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길을 가다 보니 어떤 여인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음악] 그 여인이 바로 우리가 익히 들어온 마든가라는 여인입니다. 아든가의 어머니는 외도의 환술을 부리는 사람으로 사비가라는 큰 환술의 진원을 익혀두고 있었습니다.이
6:14 사비가라 진언은 옛 외도의 진원 가운데서도 그 힘이 가장 거센 것으로 알려져 있던 자리입니다. 한번 그 주문에 걸려들면 청정한 개를 평생 지켜온 수행자라 하더라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딸이 아난 존자를 보고 마음을 깊이 품게 되자 그 어머니는 외도의 주문을 외워 아난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청정한 개를 평생 지켜오신 아난존자가 그 환술의 힘 앞에서 한걸음 한 걸음 무너져 가던 절박한 순간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던 분이 한 순간에 그릇된 욕망의 자리로 끌려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7:01 잠시 마음을 멈추고 가만히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가장 가까운 시자. 누구보다 법을 많이들은 그 안난 존자도 환술 앞에서 한 걸음에 무너져 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이 한 대목 앞에서 머리가 서늘해지는 까닭기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법을 많이 들었다고 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 곁에 있다고 마장을 피할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었던 것입니다. 말하는 것이 그토록 미세하고 그토록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부처님께서는 [음악] 이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위태로운 순간을 멀리
7:47 떨어진 자리에서 환이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곧장 정수리에서 한 줄기 광명을 놓으십니다. 그 광명 속에서 한분의 화신불이 천임 연꽃 위에 화하여 다니를 외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듣는 능엄주의 시작입니다. 화신불의 달라니가 마든가의 환수를 단번에 깨뜨렸으며 아한 존자는 그 자리에서 풀려나 부처님 앞으로 인도되어 왔습니다. 능엄경이라는 한 경전이 바로이 한 순간에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구하시고 나서 그저 위로의 말씀만 건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난에게 깊고 깊은 질문을
8:33 던지십니다.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한번 일러 보아라. 안난존자는 일곱 번을 답하였고 부처님께서는 일곱 번 모두 그 답을 부수 가십니다. 마음이 몸 안에 있다는 답도 깨졌으며 몸밖에 있다는 답 역시 깨졌습니다. 눈 안에 숨어 있다는 답도 어둠 속에 있다는 답도 모두 부처님의 한마디 앞에서 가루처럼 흩어져 갑니다.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칠처징심이라 이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일곱 자리에서 따져 물으신 부처님의 자상한 발자 취가 거기에 새겨져 있는 까닭입니다. 아난존자가 답한 일곱 자리란 이런 자리들이었습니다.
9:20 마음이 몸 안에 있다는 자리, 몸 밖에 있다는 자리, 눈속 깊이 숨어 있다는 자리, 어둠 속에 있다는 자리, 마음 가는 곳을 따라 함께 있다는 자리, 안과 밖에 중간에 있다는 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디에도 없다는 자리.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볼 만한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일곱 자리 모두가 마음의 본래 자리가 아니라고 한 자리 한 자리 차분히 깨뜨려 가셨습니다. 마음이 어디 한 곳에 머무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이 일곱 차례의 문답으로 분명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능엄경의 첫 자리에 해당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을 구하시고
10:05 칠처징심으로 마음의 자리를 따져 물으신 다음 본격적으로 능엄경에 길고 깊은 가르침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함께 풀어볼 가르침은 능엄경의 첫 자리가 아니라 그 마지막 자리에 놓여 있는 까닭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 길고 깊은 가르침을 다 펼쳐 보이신 다음 마지막에 따로 한 대목을 떼어 두셨습니다. 그 대목이 바로 우리가 오늘 살펴볼 오음마 50가지의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 왜 그렇게 따로 떼어 두셨는지 그 까달기 분명히 있습니다. 능엄경은 본래 마음에 본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경전입니다.
10:50 칠처징심에서 시작하여 파란 변견을 거치고 마지막에는 이근 원통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펼쳐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어떻게 닫고 어떻게 깨달음에 이르는지를 차곡차곡 일러 주십니다. 그런데 마지막 자리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돌이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행자가이 가르침대로 닦아 들어가더라도 도중에 반드시 만나게 될 함정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함정이 바로 50가지의 막연계인 오음마입니다. 부처님께서 친히 이르시기를 말법 시대의 수행자는 더더욱이 자리에서 무너지기 쉽다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말법 시대라함은 바로 우리가 지금
11:38 살고 있는이 시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부처님 열반 이후의 세월을 옛 어른들께서는 새 시대로 나누어 보아 오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살아 있고 닦으면 닦근 대로 깨달음을 얻는 시대를 정법 시대라 하였습니다. 그다음 가르침은 남아 있으나 닦는 모습만 비슷해지는 시대를 상법 시대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르침은 남아 있으되 닷가도 깨달음에 이르기는 어려운 시대를 말법 시대라 이름하였습니다. 부처님 열반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의 근기는 옅어지게 됩니다. 다른 법은 점점 흐릿해져 가고 마구니는 더욱 활계를 치는 시기로 부처님께서는
12:24 멀리 내다보셨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50가지나 별도로 자세히 일러 주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지금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위한 당부였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그 자비로운 눈길이 2,500년의 세월을 건너 지금이 자리에까지 닫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평소 가르침을 펼치실 때 길게 늘어놓기보다는 핵심을 짧게 짚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마 한 대목만큼은 세금 열 가지, 수음 열 가지, 상음 열 가지, 행음 열 가지, 시금 열 가지로 일일이 짚어 보이시는
13:09 자리입니다. 다섯 단계마다 열 가지씩 또박또박 끊어 일러 주시던 그 자상하심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우리는이 한 대목에서 분명히 느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그 자상하심에는 한 가지 깊은 이유가 깃들어 있습니다. 많은 한 자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거듭거듭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세금에서 한 번 막아냈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수음의 자리에서 또 다른 얼굴로 찾아오게 됩니다. 수음을 넘어서면 상음의 자리에서 새로운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음을 넘어서면 행음의 자리에서
13:54 행음을 넘어서면 시금의 자리에서 또 다른 옷을 갈아입고 다시 찾아옵니다. 그렇게 다섯 단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부처님께서는 단계마다 일일히리 그 얼굴을 짚어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볼이 가르침은 능엄경의 끝자락에 부처님께서 손수 새겨두신 당부에 해당합니다. 평생을 닦으신 분이라면 더더욱 귀기울여 들으셔야 할 자리입니다. 이제 막 마음 공부를 시작하신 분이라면 처음부터 길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어디에서 미끄러지기 쉬운지 그 자리를 부처님께서 미리 일러 주셨기에 그 일러 주심에 우리도 한 자리 한 자리
14:41 마음을 모아 따라가 보겠습니다. 한 줄 한 줄이 곧 우리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미리 손에 쥐여 주시는 등불이 되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짚고 다음 자리로 넘어가려 합니다. 능엄경이 마든가 사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예시하기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 안에도 마든가의 환술 같은 자리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자리, 욕망이 일어나는 자리, 두려움이 솟구이는 자리. 그 자리마다 우리는 작은 마든가를 만나고 있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을 광명으로 건져올리셨듯이 능엄경의 가르침은 지금이 자리에서도
15:26 [음악] 우리를 그 환술에서 건져올리는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그러니이 [목을 가다듬음] 가르침을 듣는 한 자리 한 자리가 곧 부처님의 광명이 우리 마음에는 자리이기도 한까입니다. 이제 자리를 옮겨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마의 진짜 정체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 마처님께서 능엄경에서 말씀하신 말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가짜 깨달음이라는 말의 진짜 무게가 무엇인지를 다음 자리에서 차분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가리키신 그은 도대체 어떤 자리였는지를 함께
16:13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하는 말은 대체로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존재였습니다. 어두운 골목의 귀신, 사람을 홀린다는 도깨비, 한밤 중에 잠을 흔들어 깨우는 가위. 그래서 말하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외부에 무서운 형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능엄경 마지막에 일러 주신 그 말은 그런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하셨습니다. 하나는 천마이고 또 하나는 음마입니다. 천마는 바깥에서 찾아오는 말을 읽컫는 자리입니다. 천상의 마왕이나 그 권속들이 수행자를
17:01 흔들기 위해 모습을 나타내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옛 부처님의 일대기를 보아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마왕 파순이 찾아와 가은 환술로 부처님을 흔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마왕은 무서운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혹하기도 하였으며 가은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며 부처님의 마음을 흔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환술 앞에서 [음악] 한 자리도 움직이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바깥에서 모습을 보이며 찾아오는 마. 그것이 바로 천마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무려
17:47 50가지를 따로 떼어 자세히 일러 주신은 천마가 아닙니다. 바로 음마입니다. 음마라함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이 일으키는 말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오마라 부르는 까닭기 여기에 있습니다. 인색수상행식 다섯 단계의 마음 안에서 다른 누가 들어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 스스로 일으키는 함정이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 분명히 이르시기를 이만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다섯에서 일어난다고 못박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능엄경에 무서운 자리가 있습니다. 바깥에서 오는 말하면 능엄주를 외우거나 부처님께 귀의하면
18:33 막아낼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막아야 한단 말입니까? 내 안에서 일어나니 내가 그것을 말하고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깨달음이라 여기고 신통이라 여기고 잡이라 여기게 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께서 그토록 거듭 경고하신 가짜 깨달음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가짜 깨달음이란 도대체 어떤 자리인지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한 분이 좌선을 오래 하시다 보면 어느 날 마음이 환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기도를 깊이 하시다가
19:18 갑자기 큰 자비심이 솟구쳐 모든 사람을 다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 자체는 좋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자리에서 한 생각이 미세하게 따라붙습니다. 아 내가 드디어 무언가를 얻었구나. 내가 이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자리에 도달했구나. 바로 그 한 생각이 가짜 깨달음의 씨앗이 되는 자리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진짜 깨달음은 얻었다는 생각조차 없는 자리입니다. 무엇을 보았다는 자취도 없고 누구보다 높아졌다는 우줄함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도 이미 분명히 말씀해 두셨습니다.
20:04 보살은 보시를 하되 보시한다는 상을 내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깨달았다는 상이 일어나는 그 순간 [음악] 이미 진짜 깨달음에서는 한 걸음 멀어져 있는 자리에서 있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진짜와 가짜를 가르신 기준은 의외로 매우 간단합니다. 어떤 좋은 경계가 일어나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가? 그 자리에 자기를 세우지 않는가? 머무는 순간이 곧 가짜이며 머물지 않는 자리가 곧 진짜입니다. 능엄경의 부처님께서는 이을 두고 좋은 경계가 일어나거든 그것을 좋은 일이라 알기만 하고 거기에 자기를 세우지
20:50 말라고 거듭 당보하셨습니다. 자기를 세우는 그 한 자리에 마가 깃들고 자기를 세우지 않는 자리에서는 마가 발 뒤딜 곳이 없어지는 까닭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고 가야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많은 절에 오래 다니신 분에게 오히려 더 깊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처음 마음 공부를 시작한 분에게는 사실 막연계라 할 만한 자리가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정성이 쌓여 한 자리가 화해지기 시작한 분들. 이런 분들이 오히려 미세한 막연게 가장 노출되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 분명히 이르시기를 좋은
21:36 자리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한 생각 잘못 내면 그 자리가 그대로 마의 자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이 대목을 생각하시면 마음이 서늘해지는 분이 계실 줄 압니다. 평생 새벽 예부를 빠뜨리지 않으신 보살님. 사경을 수십권 마치신 거사님. 무릎이 달도록 절을 하신 분들. 그분들이 오히려 미세한 막연계에 더 가까이 계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이 사실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처님의 그 깊은 자비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깊이 닦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부처님께서 미리 손을 내밀어 일러 주신 것이기
22:21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막연계는 어떤 자리인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사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이런 마음을 내보셨을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그래도 신심이 깊지 하는 비교의 마음. 우리 도반보다 내 공부가 한 발 더 나아갔다 하는 미세한 우줄함. 내가 이만큼 닭같기에이 정도는 알아준다 하는 기대. 이런 마음 한자락도 사실은 작은 마경계의 자리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가리키신 큰 50가지 마계는 결국이 작은 자리들이
23:07 점점 깊어지고 미세해진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는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우리가 가장 정성껏 닫고 있는 그 자리에 깃들어 있습니다. 가장 화나게 마음이 열리는 자리,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리. 바로 그 자리에 막아 가만히 깃들어 있는 까닭기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 새겨두신 가르침의 무게가 이제 [음악] 조금씩 느껴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이 음마의 자리를 가리켜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와 같다고 비유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림자는 분명히 있지만 잡으려 하면
23:53 잡을 수 없습니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뿐 그 자체로 독립된 무엇이 아닙니다. 음마도 그와 같습니다.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어떤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림자를 붙들고 싸우려 하면 끝없는 싸움이 됩니다. 그림자를 만드는 본래의 빛 곧 마음의 본래 자리로 돌아갈 때 비로소 그림자도 함께 사라집니다.이 이 자리를 분명히 새겨 두십시오. 마은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좋은 경계든 나쁜 경계든 거기에 자기를 세우는 한 생각이 곧 마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닦아야 할 자리는 마와
24:40 싸우는 자리가 아닙니다. 마가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손을 놓는 자리입니다. 손을 놓는다는 것은 그 경계를 미워하거나 밀어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좋은 경계도 나쁜 경계도 그저 일어나는 한 모습이라 알기만 할뿐 거기에 마음을 붙들지 않는 자리입니다.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두는 자리 그 자리야말로 부처님께서 능엄경에 새겨두신 분별의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자리를 옮겨 오음마의 첫 번째 단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세금 곧 몸과 감각에서 일어나는 열
25:25 가지 함정. 가장 처음 우리가 만나게 될 막연계의 구체적인 모습이 다음 자리에서 차분히 펼쳐지게 됩니다. 이제 오음마의 첫 번째 자리 세금으로 함께 걸어들어가 보겠습니다. 세금이라함은 우리 몸과 감각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몸이 곧 새기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맞고 혀로 맛보고 살로 닿는 그 모든 감각의 자리가 세금의 자리에 속합니다. 수행자가 좌선을 하거나 염부를 깊이 모실 때 가장 먼저 변화가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이 세금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이 세금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26:12 경계를 한 자리 한 자리 자상하게 짚어 보이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몸에 무게가 사라지는듯한 가벼움이 찾아오는 자리입니다. 좌선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경험이 일어납니다. 또 어느 순간에는 몸의 윤곽이 흐릿해지고 안과 밖에 경계가 풀려나가는듯한 자리가 열리기도 합니다. 이때 수행자는 [음악] 아, 내가 드디어 몸을 벗어났구나 하고 여기시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이르시기를이는 잠깐 일어나는 상일 뿐이며 진짜 깨달음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 몸이 한 순간 투명해지거나 사물을 꿰뚫어 보는듯한
26:59 자리입니다. 또는 자기 몸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듯한 느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이을 두고 정밀한 정신이 살을 뚫고 나오는 자리라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이 역시 잠깐의 경계일뿐 거기에 자기를 세우면 그대로 마의 자리로 올마가게 됩니다. 세 번째는 정신이 한없이 맑아지고 시방 세계가 한 눈에 들어오는듯한 자리입니다. 가장 많은 수행자가 흔들리시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이르시기를이 또한 잠깐 일어나는 상이라 두면 좋은 자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친견하였다 여기면 그
27:44 자리에서 마가뜬다고 거듭 당부해 두신 것입니다.네 네 번째는 갑자기 광명이 가득 차오르고 몸밖해지는듯한 자리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흔히 내가 이제 부처님의 광명에 닿았구나 하고 여기시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이 빛이 오래 쌓인 정성이 한 순간 풀려나가는 자리일 뿐이라 분명히 못 박으십니다. 다섯 번째는 [음악] 어떤 모습이나 형상이 눈앞에 또렷이 나타나는 경계입니다. 부처님이나 보살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글자가 떠오르거나 청정한 도량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흔히 신통이 열렸다 여기시는 자리에
28:29 해당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이 자리에서도 보이는 그대로를 진실이라 여기면 안 된다고 한번 더 못 박아 일러 주셨습니다. 여섯 번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일이 보이거나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는듯한 자리입니다. 평소에는 닿지 못하던 자리에 마음의 귀와 눈이 열린듯한 경계가 되겠습니다. 일곱 번째는 자기 몸이 한없이 늘어나거나 거꾸로 한없이 작아지는듯한 경계로 다가옵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이을 두고 몸에 한계가 풀려나가는 자리라 일러 주셨습니다. 여덟 번째는 갑자기 큰 광명이 비치는듯한 자리로 열립니다. 앞서네
29:16 번째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빛이 더 깊고 더 환하여 마치 천지가 한꺼번에 밝아진 듯이 느껴지는 자리입니다. 아홉 번째는 한밤 중에도화한 대나처럼 사물이 또렷이 보이는 자리에 해당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어도 눈앞이 화해지고 멀리까지 또렷하게 비춰지는 경계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열 번째는 자기 몸이 사라지고 [음악] 다만 한점 마음만 남는듯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세금 막연계의 마지막 자리이며 동시에 가장 깊이 흔들리기 쉬운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한 자리 한 자리가 수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날 수 있는 경계들이었습니다.
30:02 그래서 부처님께서는이 자리들을 이일리 가려 보이시면서 한결 같은 한 말씀을 거듭 덧붙이셨습니다. 의는 좋은 경계이기는 하나 진짜 깨달음이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잠깐 일어나는 한 모습일 뿐이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말고 그저 지나가게 두라 하신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이한 말씀이 세금 열 가지를 모두 꿰뚫는 분별의 잣대가 되어 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어 두려 합니다. 세금의 자리에서 이런 경계가 일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리가 수행이 한 자리 익어가고 있다는 한 표시가 되어줍니다.
30:48 어두운 방 안에서 햇살 한 줄기가 비치기 시작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빛을 자기 것이라 움켜 주려 할 때 일어납니다. 잠깐 비치는 햇살을 손에 쥐고 가두려는 그 순간 빛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림자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 세금의 본질을 한마디로 짚어 보이셨습니다. 세금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계는 모두 견고 망상의 한 모습이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견고 망상이라함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망상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평생 몸을 날아 여기고 감각을 진실이라 여기며 살아오는 그 굳은 한 자리.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31:36 변화의 경계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 굳어진 망상이 풀려나가면서 일으키는 한 모습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빛이 보이든 형상이 비치든 몸이 가벼워지든 시방이 환이 드러나든 그 모두가 몸을 날아 여겨온 굳은 자리가 한 자락씩 풀려나가는 자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불자님들 가운데도 평생 저를 다니시면서 한두 번쯤은 이런 자리를 만나 보셨을 줄 압니다. 새벽 예불 중에 갑자기 마음이 환해지신 분도 계실 것이고 사경을 하시다가 가슴이 따뜻해지신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염부를 하시다가 어떤 자리가 열린듯한
32:21 느낌을 받으신 분도 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때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가만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따라붙지는 않으셨는지요? 나는 다른 사람보다 한 자리 앞서가는구나 [음악] 하는 미세한 마음이 슬이 일어나지는 않으셨는지요? 그 한 생각이 사실은 세금 열가지의 한자락이었던 까닭기입니다. 세금의 막연계는 다른 단계의 막연계보다 비교적 알아차리기 쉬운 자리에 해당합니다. 몸과 감각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변화가 비교적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이 세금의 자리를
33:06 온마 가운데 가장 먼저 짚어 주셨습니다.이 이 자리에서 한 번 분별의 눈을 길러 두면 다음 단계인 수의 미세한 막연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생기는 까달깁니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 세금의 자리를 어떻게 다스려 가야 하는지를 한두 가지 짚어 드리고자 합니다. 옛 어른들께서 한결같이 일러 주신 첫 번째 방편은 능엄주를 외우는 자리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직접 일러 주신 진원이기에 세금에 어떤 경계가 일어나도 그 자리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줍니다. 새벽이나 저녁 하루 한 자리만이라도 능엄주를 정성껏 외워 보십시오. 그 한 자리가 쌓여가는 동안 마음은
33:54 저절로 흔들리지 않는 자리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두 번째 방편은 회광 반조라 하는 자리입니다. 어떤 좋은 경계가 일어나거든 그 경계를 따라가지 마시고 그 경계를 보고 있는 마음 자체로 돌이켜 비추어 보십시오. 빛이 보이거든 빛을 따라가지 말고 그 빛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어디 있는가를 돌이켜 살피라는 가르침입니다. 옛 큰 스님들께서 한결같이 강조하시던 자리가 바로 이회광 반조의 자리였습니다. 경계를 잡으려 하면 마가 깃들고 그 경계를 보는 자리로 돌이키면 많은 발 뒤딜 것을 잃게 됩니다. 세 번째 방편은 선지식께 엿줍는 자리입니다.
34:42 혼자 닦다 보면 자신이 어느 자리에 와 있는지 분별이 흐려지는 때가 옵니다. 그럴 때는 [음악]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가신 큰 스님이나 도안께 가만히 여쭈어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도 능엄경에서 마경계를 만난 수행자는 반드시 바른 안목을 가진 분께 가서 물어본별을 받으라 이르셨습니다. [음악] 묻는 한 자리. 그 자리가 곧 마장을 끊는 자리가 되어줍니다. 우리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음 자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세금을 넘어서면 곧 수음의 자리가 이어집니다. 수음 곧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과 감정의 자리입니다. 세금보다 한층 더 미세하고 더
35:28 알아차리기 어려운 대목이 되는 까닭입니다. 그 열 가지 함정을 다음 자리에서 차분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제 오음마의 두 번째 자리 수음의 자리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음이라함은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과 감정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좋다 싫다 기쁘다 슬프다 사랑스럽다 밉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으키는이 모든 느낌이 곧 수음의 자리에 속하게 됩니다. 세금의 자리가 몸과 감각의 변화였다면 수음의 자리는 그 한 걸음 안쪽으로 들어와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리킵니다. 부처님께서는이
36:14 수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막연계를 세금보다 한층 더 미세한 자리라 거듭 일러 주셨습니다. 세금의 변화는 몸으로 드러나기에 비교적 알아차리기 쉬운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수음의 자리는 감정 그 자체로 변화는 까달게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자기 변화를 좋은 일로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환의가 차오르고 자비심이 솟구이는 그 자리를 말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바로 그 의심 없는 자리에서 가장 깊은 마장이 깃들게 되는 까닭기입니다. 추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경계를 부처님께서 하나하나 짚어 보이셨습니다.
37:00 첫 번째는 갑자기 끝없는 슬픔이 차오르는 자리입니다. 좌선이나 염불이 깊어지면 어느 날 까닭모를 슬픔이 가슴 한 가운데서 솟구쳐 오릅니다. 평생 흘리지 못한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때 수행자는 내가 드디어 중생의 고통을 깊이 느끼게 되었구나 하고 여기시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이르시기를이 또한 잠시 일어나는 한 경계일 뿐이라 못 박으셨습니다. 두 번째는 거꾸로 까닭없는 환의와 기쁨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자리에 해당합니다.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이며 웃음이
37:48 절로 세어나오는 그런 자리입니다. 보살의 자비를 내가 드디어 얻었구나. 여기시기 쉬운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환이에 자기를 세우는 한 생각이 따라붙으면 그대로 마의 자리로 올마가게 됩니다. 세 번째는 자기가 한없이 강해진듯한 느낌.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을듯한 자리입니다.이 어른들께서는 이을 두고 정진의 힘이 너무 거세 도리어 자만이 솟는 자리라 일러두셨습니다.네 번째는 거꾸로 한없는 무력감이 찾아오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듯한 자리입니다. 두 자리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수행자에게서 번갈아 일어나기도
38:33 합니다. 다섯 번째는 까닭없는 의심과 두려움이 솟구이는 자리에 해당합니다. 평소에는 흔들리지 않던 자리에서 갑자기 자기 수행을 의심하게 되거나 알 수 없는 불안이 가슴을 누르게 됩니다. 여섯 번째는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이 다 좋고 만족스러워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자족의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자리를 가장 위태로운 자리 가운데 하나로 짚어 두셨습니다. 더 닦을 것이 없다는 한 생각이 수행의 길을 가장 빨리 끊어 버리는 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는 자기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단정해 버리는 자리에 이르게
39:19 됩니다. 여덟 번째는 모든 인연과 모든 사람에게 한없는 자비심이 폭발하는 경계입니다.이 이 자비심이 너무 깊어 마치 자기가 관세음 보살이 된 듯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홉 번째는 거꾸로 모든 것이 비어 있다는 한 견해에 사로잡혀 인과도 없고 선악도 없다는 자리로 흘러가게 됩니다. 열 번째는 [음악] 한없는 애욕과 집착이 도리어 솟구쳐 오르는 자리에 해당합니다. 수행이 깊어졌다 여기는 한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욕망의 폭발이 일어나는 까닭기입니다.이 열 가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시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40:04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둘 다 수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슬픔도 마이며 환의도 마인 것입니다. 강해짐도이고 무력감도며 자비심의 폭발도 모든 것이 비어 있다는 견해도 그저 한 모습의 마일 뿐이라는 [음악] 자리가 됩니다. 옛 큰 스님들께서도 수음의 자리에서 가장 많이 무너지는 분이 다름 아닌 오래 닦으신 분이라 거듭 일러 주셨습니다. 슬픔과 환의, 자비와 자만, 두려움과 자족이 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까달게 평생 닦으신 정성마저 한 순간 흔들리기 쉬운 대목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짚어 보이신
40:51 자리는 감정 그 자체가 말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감정에 자기를 세우고 그 감정을 곧 깨달음으로 여기는 한 생각. 그 한 자리가 곧 말하는 가르침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수음 막연계의 무서운 자리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슬픔이 일어나면 우리는 [음악] 아, 내가 너무 슬프구나 하고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비심이 폭발하거나 한없는 환이가 차오를 때는 [음악] 사정이 다릅니다. 그 좋은 자리를 말하고 의심하시는 분은 거의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생 다가온 보람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여기게 되고 더 깊이 그 자리에 머물려 하게 됩니다.
41:38 바로 그 머무는 한자락에서 부처님께서 경고하신 수음의 마장이 가만히 깃들게 되는 까닭깁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 수음의 본질을 한마디로 짚어 두셨습니다. 추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는 허명 망상의 한 모습이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허명 망상이라함은 비어 있으면서도 화나게 일어나는 망상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은 사실 그 본바탕이 비어 있는 자리입니다. 슬픔이라는 실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환이라는 알맹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한 인연이 모이면 일어나고 한 인연이 흩어지면
42:23 사라지는 [음악] 그런 비어 있는 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화난 한 모습을 진짜라 여기고 그것에 매달려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 짚어 주신 수음의 자리는 바로 그 매달림의 자리를 가리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가만히 우리 일상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깊은 슬픔이 까닭 없이 찾아온 새벽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또 누구나 한 번쯤은 알 수 없는 환이가 가슴 가득 차올라 누구든 안아주고 싶은 자리에서 보셨을 줄 압니다. 그 자리는 [음악]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를 곧 깨달음이라 여기고 머무르려 하는 한 생각만 가만히
43:11 내려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일어나는 감정은 그저 일어나도록 두고 사라지는 감정은 그저 사라지도록 두는 자리. 그 자리가 곧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가르치신 분별의 길이 됩니다. 수음의 자리를 다스리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깊습니다. 어떤 감정이 일어나거든 그 감정의 이름을 한번 붙여 보십시오. 아, 지금 슬픔이 일어났구나. 아, 지금 환이가 차오르는구나. 이렇게 한마디로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 감정에 휘말려 들어가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됩니다. 그렇게 한 걸음 물러서 그 감정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기
43:57 바랍니다. 잡지도 말고 밀어내지도 말고 그저 한 모습이라 알기만 하는 자리.이 이 자리가 한 번, 두 번 익어가는 동안 수음에 어떤 큰 경계가 일어나도 그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제 다음 자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수음을 넘어서면 곧 상음의 자리가 이어집니다. 상음 곧 생각과 상상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함정의 자리이며 부처님께서 가장 길게 경고하신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음 자리에서 차분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제 오음마의 세 번째 자리 상음의 자리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44:44 상음이라함은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상상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금이 몸의 자리였고 수음이 감정의 자리였다면 상음은 그 안쪽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옵니다. 곧 생각과 상상이 비전에는 한 차원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가장 길게, 가장 자상하게 풀어 보이신 자리가 바로 이상의 자리입니다. 다른 음에 비해 분량 자체가 가장 많은 까달기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가만히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세금의 자리에서도 빛이 보이거나 멀리 있는 모습이 보이는듯한 경계가 있었습니다.
45:31 그러나 그 자리는 몸에 감각이 풀려나면서 잠시 일어나는 한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상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통은 그보다 한층 더 깊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까달게 훨씬 또렷하고 훨씬 매혹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부처님께서이 자리를 그토록 자세히 찍으신 까닭은 분명합니다. 상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막연계는 다른 어떤 자리보다 신통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까닭기입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일이 보이는 자리, 다른 사람의 마음이 읽히는 자리, 전생의 자취가 떠오르는 자리, 신이 강림한듯한 자리, 그 한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은 수행자가 예로부터 거의
46:17 없을 정도였습니다. 상음의 자리는 그토록 깊고 미세하며 매혹적인 자리입니다. 옛 큰 스님들께서 한결같이 신통을 따라가는 수행자는 돌을 잃는다고 경고하신 까닭도 바로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상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경계를 부처님께서 하나하나 짚어 보이셨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에게 갑자기 큰 지혜가 솟구쳐 오르는듯한 자리입니다. 평소에는 [음악] 풀리지 않던 경전 구절이 한 순간 환이 열리거나 어떤 문제가 닿기만 하면 답이 척척 떠오르는 경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때 수행자는 내가 드디어 큰 깨달음을 얻었구나
47:04 하고 여기시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이 또한 상음의 한 모습일 뿐이라 못 박아두셨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 몸 안에서 빛이 흘러나오거나 몸에서 묘한 향기가 어리는듯한 자리입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이을 두고 상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밀한 망상이라 일러 주셨습니다. 세 번째는 정신을 한 자리에 모으는 동안 보이지 않던 어떤 존재의 말소리가 들리는 경계로 다가옵니다. 신중의 가르침이 들린다 여기거나 부처님의 음성이 직접 들렸다 여기시기 쉬운 자리입니다.네 번째는 어떤 형상이 또렷이 눈앞에 나타나 마치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친히
47:51 강림하신듯한 경계로 다가옵니다. 다섯 번째는 자기 몸을 떠나 멀리 다른 자리로 다녀온듯한 자리 곧 신족통이 열린 듯이 여겨지는 경계가 됩니다. 여섯 번째는 어두운 자리에서도 사물이 환이 보이고 멀리 떨어진 곳에 일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이는 자리입니다. 한 분의 수행자가이 자리에 이르면 자기에게 천안통이 열렸다 굳게 믿게 됩니다. 일곱 번째는 자기 몸이 칼이나 불에도 상하지 않을 듯이 여겨지는 자리입니다. 여덟 번째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한 눈에 들여다보는듯한 자리 곧 타심통이 열렸다 여겨지는 경계입니다. 아홉 번째는 자기와 다른 사람의
48:38 전생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흔히 숙명통이 열렸다 여기시는 대목이 바로이 자리입니다. 열번째는 모든 번뇌가 한순간 사라진듯한 자리, 곧 누진통에 이르렀다 여겨지는 자리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열 번째 자리를 가장 위태로운 자리로 짚어 두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가만히 새겨 두십시오. 상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가 사실은 우리가 흔히 듣는 육신통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누진통 부처님과 큰
49:24 보살님들께서 본래 갖추신 그 여섯 신통의 모습이 상음의 자리에서 그대로 흉내내듯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이 자리를 만나면 자기에게 진짜 신통이 열렸다 굳게 믿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이르시기를이는 [음악] 진짜 신통이 아니라 상음의 한 모습이 비전에는 거짓 신통일 뿐이라 하셨습니다.이 대목에서 부처님께서는 한 가지 무서운 말씀을 더 남겨 두신 것입니다.이 이 자리에서 자기를 세우는 한 생각이 일어나면 천마가 그 자리에 깃들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본래 음마 곧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마였던 자리가 이한 생각으로 바깥에
50:10 첫맛까지 끌어들이는 자리로 올마간다는 뜻입니다.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가장 길고 자세하게 풀어 보이신 까달기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상음의 자리는 천마가 가장 즐겨 기뜨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도가 깊었던 수행자분들 가운데이 상음의 자리에서 무너지신 [음악] 분이 적지 않으셨다고 전해옵니다. 한평생 정성을 쏟아리가 환이 열린 바로 그 순간에 자기에게 신통이 열렸다는 한 생각이 따라붙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을 다스리지 못한 까달게 끝내 외도의 길로 흘러가시거나 관기에 빠지신 분들도 계셨다고 옛 큰 스님들께서는 가만히
50:56 일러 주시곤 합니다. 부처님께서 무려 50가지 마장 중에서도이 상음의 열 가지를 가장 길게 풀어 보이신 까닭기 바로 이런 가슴 아픈 자취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 상음의 본질을 한마디로 짚어 두셨습니다. 상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는 융통 망상의 한 모습이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융통 망상이라함은 막힘없이 두루통하는 듯이 보이는 망상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본래 어떤 자리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멀리 떨어진 일도 떠올릴 수 있고 한 번도가 본 적 없는 것도 그려 볼 수
51:41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어려풋이 헤아려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행이 깊어지면이 막힘없는 생각의 자리가 어느 순간 진짜 신통처럼 또렷해지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 또렷함이 곧 진짜 신통이라 여기는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융통 망상은 그대로 마의 자리로 올마가는 까닭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새겨두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진짜 신통은 닦아서 얻는 자리가 아니라 [음악] 본래 갖추어진 자리가 무명의 그림자를 벗으면서 저절로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큰 보살님들께서는 신통을 가지고 계셔도 좀처럼 드러내지
52:27 않으셨습니다. 그저 한 중생의 인연을 따라 한 자리에서 조용히 활용하실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상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짓 신통은 그 한 자리를 자랑하고 드러내고 싶어 안다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잣대가 바로이 한 자리에 분명히 놓여 있습니다. 방음의 자리를 다스리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은 한결같이 한 자리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신통이 열린듯한 자리가 일어나거든 절대로 그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도 전하지 말고 가만히 마음속에 묻어두는 자리. 그 자리가 옛 어른들께서 [음악] 한결같이 일러
53:13 주신 길이었습니다. 묻어두는 동안 그 경계는 [음악] 저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입밖에내어 자랑하면 그 자리에서 마가 깃들어 다시는 거두어들이기 어려운 자리로 흘러가는 까닭입니다. 옛 큰 스님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신 무건정진의 깊은 뜻이 바로이 자리와 다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다음 자리로 한 걸음 옮겨 보고자 합니다. 상음을 넘어서면 곧 행음의 자리가 이어집니다. 행음 곧 미세한 마음의 흐름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함정의 자리입니다. 거의 깨달음에 가까워진 자리에서 빠지는 또 다른 깊은 함정이 그곳에서
53:58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자리에서 차분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제 오음마의네 번째 자리 행음의 자리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행음이라함은 우리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가는 미세한 흐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금이 몸의 자리, 수음이 감정의 자리, 상음이 생각의 자리였습니다. 그렇다면 행음은 그 모든 자리 아래에서 쉬지 않고 흐르고 있는 한 줄기 마음의 강물과 같은 자리가 됩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멍안히 앉아 있는 동안에도이 [음악] 흐름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닦아들어오신 분이라면 이미 세금과
54:44 수음과 상음의 자리를 모두 넘어선 자리에서 계신 분입니다. 몸의 가벼움도 감정의 환이도 신통의 모습도 모두 한 번씩 지나오신 자리이며 거의 깨달음의 문턱에 다다른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이 [음악] 행음의 자리에서 또 다른 깊고 미세한 함정 열 가지를 일러 두셨습니다. 깨달음이 가까운 자리에 이를수록 함정도 함께 미세해진다는 사실을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짚어두신 까닭깁니다. 행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막연계는 앞에 세 자리와는 그결이 사뭇니다. 세금의 자리는 몸의 변화로 드러났고 수음의 자리는 감정의 흔들림으로
55:30 다가왔으며 상음의 자리는 신통의 모습으로 펼쳐진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행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함정은 어떤 모습이나 감정이나 신통이 아니라 한 가지 견해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 견해가 바로 예로부터 외아 불려온 그릇된 사상의 자리입니다. 수행자가 행음의 자리에 이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끊이지 않고 흐르는 한 줄기 흐름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수행자는 어느 순간 그 흐름에 대한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결론이 부처님께서 경계하신 외도의 견해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56:16 짚어 보이신 열 가지를 큰 줄기 몇 가지로 풀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자리는 그 흐름을 들여다보다가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고 결론짓는 자리입니다. 곧 세상은 본래부터 있었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견해로 흘러가게 됩니다. 흔히 상견이라 불리는 외도의 한 갈래가 바로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상견에 빠진 분은 자기를 비롯한 만물이 본래부터 있었다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닦아도 닿지 않아도 결국 같은 자리라 단정해 버리는 까닭게 닦끔의 길이 그대로 막혀 버립니다. 두 번째 자리는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이 흩어지고 끊어진다는
57:02 결론에 이르는 자리입니다. 사람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며 어떤 인과도 남지 않는다는 견해입니다. 흔히 단견이라 부르는 자리이며 인과를 부정하는 가장 위험한 견해 가운데 하나로 부처님께서는 짚어 두셨습니다. 단견에 빠진 분은 선악도 없고 어보도 없다 단정하기에 한평생 닦으신 공덕마저 한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자리는 한쪽으로는 영원하다 보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끊어진다 보는 자리입니다. 곧 마음은 영원하고 몸은 끊어진다. 또는 한 부분은 영원하고 한 부분은 무상하다는 이런 식의 절반의 견해가
57:47 일어나게 됩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이을 두고 영혼과 무상을 함부로 쪼개어보는 자리라 일러 주셨습니다. 본래 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둘로 갈라 한쪽은 영원, 한쪽은 사라짐으로 못 박는 그한 생각이 바로 외도의 자리로 흘러가는 길목입니다.네 번째 자리는 세상에 [음악] 끝이 있다 없다를 두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리는 자리에 해당합니다. 다섯 번째 자리는 모든 것의 근원에 한 가지 정해진 원리가 있다고 단정해 버리는 자리입니다. 옛 외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한 가지 원소나 한 분의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견해가 모두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사후의
58:34 자리를 두고 어떤 자리는 어떤 자리는 없다 하며 갓까지 결론을 내리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죽은 다음 마음만 남는다. 몸만 남는다. 둘 다 남는다. 둘 다 사라진다. 그 갓까지 견해가 모두이 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까닭기입니다. 여덟 번째는 일체의 자리가 다 끊어진 자리에서 그것이 곧 열반이라 단정해 버리는 자리로 흘러가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한 자리를 곧 부처님의 열반이라 여기는 까달게 사실은 가장 그릇된 자리로 흘러가는 함정입니다. 아홉 번째와 열 번째는 닥지 않고도 깨달음에이를 수 있다고 단정하는
59:19 자리이거나 다섯 가지 감각 자리 자체가 곧 열반이라 여기는 자리로 흘러가게 됩니다. 곧 보고 듣고 맛보는 그 자리 그대로가 깨달음이라 단정하여 닦음의 길을 끊어버리는 그릇된 열반관의 한 갈래입니다.이 열 가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시면 한 가지 공통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모두가 한 견해에 매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자리는 영원이라 매어 있고 어떤 자리는 끊어짐이라 매어 있습니다. 또 어떤 자리는 있다 없다라는 두 자리에 동시에 매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이 모든 자리가 행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 모습의 견해일 뿐이라 못
1:00:05 박아두셨습니다. 본래 마음의 자리는 영원이라 할 수도 없고 끊어짐이라 할 수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 한 자리에 어떤 결론도 세우지 않는 자리가 곧 부처님께서 가리키신 중도의 길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새겨 두십시오. 행음의 자리에 빠지신 분들은 결코 어리석은 분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평생을 깊이 닦아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 다른 분들입니다. 그렇게 깊이 닦으신 분이 어찌하여 외도의 견해로 흘러가는 것인가? 그 까닭기 바로 행음의 자리가 지닌 무서움에 있습니다. 마음의 깊은 흐름을 또렷이 보고 나면 그 본 것을
1:00:51 어떤 말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함께 일어납니다. 그 풀어냄의 한 자리에서 결론이 한쪽으로 기울어 외도가 되는 것입니다. 보는 것까지는 같으되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서 진짜와 가짜가 갈라지는 까닭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 행음의 본질을 한마디로 짚어 두셨습니다. 행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는 유운 망상의 한 모습이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유운 망상이라함은 그윽이 숨어 있는 망상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세금의 견고 망상이 몸으로 드러났고 수음의 허명 망상이 감정으로 환이 일어났으며 상음의 융통 망상이 신통으로 또렷이
1:01:37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그에 비해 행음의 유운 망상은 그 모든 것 아래에서 가만히 흐르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망상이라 하겠습니다. 행음의 자리에 이르신 분조차 자기에게 망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까닭깁니다. 행음의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는 길은 한 가지 분명한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결론도 어떤 견해도 세우지 마십시오. 영원하다고 단정하지 마시고 끊어진다고도 단정하지 마시며 다 비어 있다고도 단정하지 않는 자리가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그저 흐름을 흐름인 채로 보고 거기에 어떤 이름표도 붙이지 않는 자리 옛 큰
1:02:24 스님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신 막착 곧 어디에도 머물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이 이 한 가르침이 바로 지금 행음의 자리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한 결론에 머무는 그 순간 행음의 유운 망상은 그대로 외도의 자리로 올마가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옛 어른들께서 한결같이 권하신 자리가 있습니다. 행음의 자리에 이르신 분일수록 반드시 큰 선지께 자기 자리를 점검받으시라는 가르침입니다. 마음의 흐름을 또렷이 보는 자리는 사실 혼자서는 길을 가음하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자리를 이미 지나가신 큰 스님의 한마디 점검이 평생의 닦음을 외도의
1:03:11 자리에서 건져 올려 주는 등불이 되어 줍니다. 부처님께서도 능엄경에서 거듭 이르시기를 깊은 자리에 이을수록 반드시 바른 안목을 가진 분께 물어분별을 받으라 당부하셨습니다. 이제 다음 자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행음을 넘어서면 비로소 오음마의 마지막 자리인 시금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깨달음 바로 앞에 마지막 관문. 그곳에서 또 어떤 함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다음 자리에서 차분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제 오음마의 마지막 자리 시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금이라함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뿌리자리. 곧 모든 아르마리가
1:03:57 일어나는 근본 의식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금의 몸도 수음의 감정도 상음의 생각도 행음의 미세한 흐름도 그 모든 자리가 일어나는 가장 깊은 한 자리가 바로이 시금의 자리에 해당합니다. 마음의 뿌리 또는 마음의 마지막 한 겹이라 표현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기까지 닦아들어오신 분이라면 사실은 깨달음 바로 앞에 한 걸음에서 계신 자리입니다. 세금 열가지를 넘으셨고 수음 열 가지를 지나오셨습니다. 상음의 신통 흉내에도 흔들리지 않으셨고 행음의 외도 견해까지 모두 비겨가신 자리에 이르신 것입니다.
1:04:42 그런 분이 마지막으로 마주하시는 자리가 바로 시금의 열 가지 함정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의 마지막 자리에서 가장 엄숙하게 당부하신 자리가 바로이 시금의 열 가지였습니다. 시금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함정은 앞에네 자리와는 그 차원이 또 한층 다릅니다. 세금의 몸도 사라졌고 수음의 감정도 가라앉았습니다. 상음의 신통도 지나갔고 행음의 견해마저 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경계는 이미 어떤 모습으로도 드러나지 않는 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마치 깨달음에 이르신듯한 자리이며 본인조차 자기에게 마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1:05:29 부처님께서 짚어 보이신 시금의 열 가지를 큰 줄기로 풀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자리는 모든 것이 한 자리에서 나왔다고 단정해 버리는 자리입니다. 마음에 가장 깊은 자리가 환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만물이이 한 자리에서 흘러나왔다고 결론짓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이 자리를 두고 외도의 종자가 되는 첫 자리라 못 박아두셨습니다. 한 근원을 세우는 그 한 생각이 이미 진짜 자리에서 한 걸음 멀어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자리는 자기 자신이 곧 모든 것을 만들어낸 자리라 단정하는 자리입니다. 내 마음이 곧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
1:06:15 여기게 되는 까달기며 흔히 자기를 신격화해 버리는 외도의 길로 흘러가게 됩니다. 세 번째 자리는 마음 깊은 자리에서 한 가지 영원한 자리가 따로 있다고 단정하는 자리에 해당합니다. 행음의 상견은 마음의 흐름을 보고 영원하다 결론짓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시금의이 자리는 그 흐름마저 머은 가장 깊은 뿌리에서 영원함을 세우는 까달게 알아차리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네 네 번째 자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끊어 버리고 무엇도 없다 단정하는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자리를 두고 무기공에 떨어진 자리라 분명히 짚어두셨습니다.
1:07:00 무기공이라함은 어떤 자취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뜻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평생을 다오신 분이 마지막에이 무기공의 자리에 빠지면 그것을 곧 부처님의 열반이라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텅빈 그 자리는 부처님께서 가리키신 참된공의 자리가 아닙니다. 참된 공은 비어 있으면서도 신령하게 밝아 모든 것을 비추는 자리인데 무기공은 그저 캄캄하게 끊어진 자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이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자리는 마음의 깊은 자리에서 갓지 묘한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그
1:07:46 자체로 깨달음이라 단정해 버리는 자리들입니다. 행음의 자리에서는 한 가지 견해에 매었다면 시금의 자리에서는 그 견해를 넘어선 어떤 묘한 작용 그 자체에 메이게 되는 까닭입니다. 마음에 가장 깊은 자리가 환이 열리면 거기서 일어나는 미세한 빛과 작용을 곧 부처님의 자리라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 또한 시금의 한 모습일뿐 진짜 자리가 아니라고 부처님께서는 거듭 짚어 두셨습니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자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라거나 모든 것이 다 다르다는 두 극단에 미세하게 메이는 자리입니다. 보기에는 깊은 통찰처럼 보이지만
1:08:32 사실은 마지막 한 자락의 분별에 매어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라 보아도 한쪽으로 기울고 다르다 보아도 한쪽으로 기우는 까달게 어느 쪽도 본래의 자리는 아니라고 부처님께서는 일러 두셨습니다. 아홉 번째 자리는 닭가서 [음악] 이은 그 깨달음의 자리를 본래의 자리로 단정하여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결론지어 버리는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자리를 두고 성문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큰 보살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리라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 번째 자리는 도달하신 그 자리가 곧 마지막 자리라 단정하여 자기를 정각에 붙여라 여기는 가장 큰 한 자리에 해당합니다.
1:09:18 부처님께서는이를 두고 가장 위태롭고 가장 미세한 마지막 마장이라 못 박아두셨습니다.이 이 열 가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시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시금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함정은 더 이상 신통이나 견해의 모습이 아닙니다. 깨달음 그 자체를 잘못 단정해 버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함정인 까달깁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의 마지막 자리에서 거듭 당부하신 한 마디가 있습니다.이 이 시금의 열 가지를 넘지 못하면 평생을 닦아 오신 분이라 하더라도 외도의 종자가 되거나 무기공에 떨어진다 하셨습니다. 외도의 종자라함은 외도와 마왕의
1:10:04 권속이 되어 다음 생까지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능엄경 원문에서 부처님께서 직접 짚으신 표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새겨 두십시오. 부처님께서이 마지막 자리를 그토록 엄중하게 당부하신 까닭은 결코 우리를 겁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 분의 수행자라도 마지막 한 걸음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하시려는 그 깊은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가르침입니다. 한 평생을 닦아 거의 깨달음의 문앞까지 이르신 분이 마지막 한 자리에서 외도의 자리로 흘러가는 일.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
1:10:51 이시금의 열 가지를 새겨 두신 까닭기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가슴 아픈 자취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 하시려는 깊은 자비의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경에서 시금의 본질을 한마디로 짚어 두셨습니다. 시금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는 전도 망상의 한 모습이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전도 망상이라함은 거꾸로 뒤집힌 망상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마지막 자리에 이르신 분이 깨달음과 가짜 깨달음을 거꾸로 보아버리는 자리. 그것이 바로 시금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함정의 본질입니다. 세금의 견고 망상부터 행음의 유운 망상까지 다섯 자리의 망상이 그
1:11:39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 마음 안에서 차곡차곡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금의 자리를 넘어서는 길은 한 가지 뿐입니다. 어떤 자리에 이르더라도 그것을 마지막 자리라 단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깨달음의 모습이 드러나더라도 그것을 자기 자리로 세우지 않는 것이 마지막 길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를 두고 마지막에 마지막 한 생각까지 내려놓는 자리라 일러 주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길도 옛 어른들께서 함께 전해두셨습니다. 첫째는 능엄주를 거듭 외워 마지막 자리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두는 길입니다. 둘째는 큰 선지식의 안목을 빌려 자기 자리를
1:12:26 거듭 점검받는 자리가 됩니다. 그리고 셋째는 마지막 한 자락에 자기마저 비우는 일입니다. 그 세 자리가 함께 익어 갈 때 비로소 부처님께서 가리키신 진짜 깨달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 까닭기입니다. 이제 오음마의 다섯 자리를 모두 함께 걸어왔습니다. 세금에서 시금까지 부처님께서 짚어 보이신 50가지 막연계가 우리 마음의 길에 어떤 모습으로 놓여 있는지를 차분히 살펴본 자리였습니다. 다음 자리에서는이 모든 막연계를 막아 주시는 부처님의 방패와 일상에서 우리가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실천을 함께 풀어 드리겠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자리에
1:13:12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걸어오신 불자님들 참으로 긴 길을 마아 않고 안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들으시면서 한 가지 마음이 슬며이 드신 분도 계실 줄 압니다. 50가지나 되는 막연계가 그것도 평생 닦조차 무너뜨리는 함정이 그렇게 많다면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찌 해야 하는가? 그런 막한 마음이 가슴 한 편에 가만히 차오르셨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오늘 마지막 자리에서 천천히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이 50가지 막연계를 일러 주시면서 결코 우리를 겁주시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1:13:57 오히려 그 모든 말을 한 번에 막아주는 방패를 능엄경 안에 함께 담아두신 것입니다. 그 방패가 무엇인지를 지금부터 차분히 풀어 드리겠습니다. 사실은 글이 어렵지 않습니다. 평범한 우리가 일상에서 그대로 쓸 수 있는 세 가지 분명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방패는 좋은 경계가 와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 마음입니다. 50가지 마경계를 가만히 돌아보시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이실 것입니다. 모두가 좋은 경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환의가 차오르고 신통이 열린 듯하고 깊은 깨달음에
1:14:42 이른듯한 자리. 그 좋은 자리에 자기를 세우는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비로소 마가 깃들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좋은 경계가 찾아오더라도 그저 한 모습이 지나간다 알기만 하시고 거기에 머물지 마십시오. 좋다 하여 붙잡지 않고 신기하다 하여 자랑하지 않는 그 마음 하나가 50가지 말을 한꺼번에 막아주는 첫 번째 방패가 됩니다.이 어른들께서는이 마음을 기르는 한 가지 방편으로 108 염주를 권하셨습니다. 염주한 알을 굴릴 때마다 일어나는 한 생각을 가만히 놓아보내는 연습입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그 생각한 날을 굴려보내고 나쁜 생각이
1:15:28 떠오르거든 그 생각한 날도 똑같이 굴려보내십시오. 그 단순한 한 동작이 쌓아계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에 힘이 되어 줍니다. 두 번째 방패는 능엄주를 외우는 자리입니다. 능엄경이 처음 설해진 자리를 우리는 첫머리에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존자를 환술에서 건져 올리신 그 광명 속에서 화신불이 외우신 다라니가 바로 능엄주였습니다. 능엄주는 말을 막는 부처님의 가장 큰 방패로 예로부터 수행자들이 한결같이 지녀온 진원입니다. 모든 능엄주를 다 외우기 어려우시다면 그 핵심인 신묘장구 대다니 한
1:16:15 편이라도 정성껏 지녀 보십시오. 새벽이나 잠들기 전 하루 한 번만이라도 고요히 외워 가시면 그 한 자리가 쌓여 깃들틈을 막아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외우는 일이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라면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 사경도 깊은 방편이 됩니다. 진원을 종이에 옮겨 적는 동안 마음은 저절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되고 그 모인 마음이 곧 말을 막는 자리가 되는 까닭입니다. 세 번째 방패는 홀로 판단하지 않고 선지게 엿죽는 마음입니다. 50가지 막연계가 그토록 무서운 까닭은 내 안에서 일어나기에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다는데 있었습니다.
1:17:02 내가 보는 내 자리는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래서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가신 큰 스님이나 바른 안목을 지닌 선지식께 가만히 여쭈어 보십시오. 그 한 걸음이 평생의 닦음을 마지막 자리에서 지켜주는 분별의 등불이 되어 줍니다.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도 능엄경에서 마경계를 만나거든 반드시 바른 분께 물어 분별을 받으라 거듭 당보하셨습니다. 가까이 엿줄 선지식이 없으신 분이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거울로 삼으셔도 좋습니다. 내 마음에 일어난 자리를 경전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것이 바른 자리인지 한쪽으로 기운
1:17:48 자리인지 스스로 가음하실 수 있습니다. 경전이 곧 말없는 선지식이 되어 우리 곁을 지켜주는 까닭기입니다.이 세 가지 방패는 출가하신 큰 스님만의 자리가 아닙니다. 새벽 예부를 모시는 보살님도 저녁마다 108배를 올리는 거사님도 버스 안에서 조용히 염주를 굴리시는 분도 누구나 오늘이 자리에서 그대로 지닐 수 있는 자리입니다. 는 멀리 있지 않았고 그 말을 막는 방패 또한 멀리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좋은 경계에 머물지 않는 마음, 능엄주를 지니는 정성, 선지게 묻는 겸손이 세 자리만 마음에 품으셔도 50가지 막연기 앞에서
1:18:35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자리에서 계시게 됩니다. 오늘이 한 마디만은 꼭 가슴에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좋은 경계는 좋은 경계로만 알고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이 이 한 마디가 곧 부처님께서 50가지 마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신 가르침의 전부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가만히 돌아보겠습니다. 능엄경이 마든가 사건에서 시작된 그 자리에서 출발하여 마가 본래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은마라는 사실을 함께 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음악] 세금에서 시금까지 다섯 단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50가지 마계를 한 자리 한 자리
1:19:20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몸의 자리, [음악] 감정의 자리, 생각의 자리, 미세한 흐름의 자리, 그리고 마음의 가장 깊은 뿌리 자리까지 단계가 깊어질수록 많은 더 미세해졌고 좋은 경계에 옷을 입고 더 그럴 듯하게 다가왔습니다. 몸이 가벼워지는 자리에서 환이가 차오르는 자리로 다시 신통이 열린듯한 자리에서 깊은 견해가 트인듯한 자리로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 그 자체에 이른듯한 자리에까지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자리를 자상하게 짚으시며 한결 같은 한마디를 전하셨습니다. 깨달았다 여기는 그 순간이 가장
1:20:06 위험한 자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처음를 [음악] 처음이 자리를 열며 드렸던 한 마디를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닦아도 마에 속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공통점이 바로 좋은 경계를 만난 그 한 자리에서 깨달았다고 여기며 머물러 버린 마음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50가지나 따로 떼어 그토록 자세히 일러 주신 까닭도 다른데 있지 않았습니다. 한 분의 수행자라도 그 마지막 한 자리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하시려는 깊은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이 가르침은 옛 수행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1:20:52 작은 막연계는 날마다 찾아옵니다. 기도가 잘되었다 싶은 날의 그 뿌듯함, 남보다 신심히 깊다 여기는 그 한 생각 무언가 알았다 싶을 때 차오르는 그 우줄함. 모두가 작은 상음이며 수음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50가지 막연계는 깊은 산중의 수행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서 작은 모습으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부처님의이 가르침이 그토록 오래도록 전에 내려온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굳이이 가르침을 품으신 모든 분들께서 어떤 경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1:21:38 고요한 마음에 이르시기를 두 손 모아 발언합니다. 오늘이 자리에서 함께 나눈 작은 공덕이 있다면 그 공덕이이 범문을 들으신 모든 분과 그 인연 있는 모든 분께 부루가 닿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 참된 깨달음의 자리에 함께 이르기를 진심으로 비웁니다. 오늘이 긴 법문을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이 가르침이 마음에 와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손길 하나가 더 많은 분들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인연이 되어 줍니다. 다음 자리에서도 또 다른 경전의 깊은 가르침으로
1:22:25 찾아뵙겠습니다. 늘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여러분의 길 위에 환이 함께 하시기를 두 손 모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