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A] 10주차. 사랑의 인문학_역사 인물과 사랑-2(김형곤 교수)

간단한 요약

이 영상에서는 카이사르의 정치적 및 군사적 경로와 그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로마의 역사를 다룹니다. 카이사르의 통치 방식 변화와 사회적 변화,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가 주요 내용입니다.

  • 카이사르의 통치는 로마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통치 방식과 사회 구조가 변화했습니다.

카이사르의 사랑 이야기와 로마 역사

카이사르와의 여성 관계를 이야기하며, 로마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로마는 기원전 750년 경에 건국되어 AD 400년경에 멸망하였으며, 포에니 전쟁으로 인해 정치적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 로마는 카르타고를 무너뜨리고 세계 제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포에니 전쟁의 결과와 권력 변화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권력을 양극화시키고 자영 농민들이 몰락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귀족들이 대농장을 소유하게 되었고, 로마의 시민과 통치 방식이 변화했습니다.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적을 동화시키는 대신 분리된 통치 방법인 프로빈키아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카이사르와 삼두 정치

삼두 정치를 통해 카이사르는 권력을 분할하고 각 지역의 총독들이 로마 공화국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언론의 상징이자 자유의 수호자였던 로마의 헌법을 중요시했습니다. 또한 군사적 맥락에서의 권력 욕구와 언론의 대립을 설명합니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넘어 로마로 진군하며, 군사적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그의 선택은 커다란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폼페이우스와의 갈등이 심화되고 그리스에서의 전투로 이어집니다.

폼페이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정치적 관계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적이 되었고, 이집트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만남으로써 로마와의 연합을 시도하지만, 폼페이우스의 패배와 복잡한 이집트 정치 상황이 그를 어렵게 만듭니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갈등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 결혼할 것을 요구하지만, 카이사르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갈등은 카이사르의 정치적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카이사르의 암살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당하게 되며, 그의 사망은 로마의 또 다른 정치적 혼란을 초래합니다. 권력의 격변 속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독립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선택하여 로마의 정치적 상황에서 자신과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연합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갈등이 심화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최후

옥타비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권력을 쥡니다. 클레오파트라는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되며, 이집트는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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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he [음악] [박수] [음악] [박수] [음악] [박수] 이제 그 전반부에 카이사르의 사랑 이야기 뭐 선생님 사랑 아닌데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0:45 있겠지만은 어쨌든 카이사르와 여자와의 관계를 전반부에 이야기했다면 이는요 그러한 사항을 이해하기 위해서 로마 역사를 어느 정도 우리 공부해봅시다 로마는 크게 그 약 기원전 750년 경에 건국을 하고 나서 나중에 망하기는 어 AD 400에 한 뭐 7 80년 경에 망하게 됩니다 그 로마가 포에니 전쟁이라는 즉 포에니 전쟁은 페니키아인들이 어 지역의이서 동쪽 벽에 붙은 어 뭡니까 오늘날 터키의 남쪽에 트리키의 남쪽에

1:33 있는 그런 도시 국가였기 아인이 만든 그 뭡니까 타고라 도시 국가가 있었는데 그 도시 국가와 로마가 싸우게 되죠 약 100년간 그게 바로 뭐냐면은 포니 전쟁입니다이 포니 전쟁을 통해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지중의 중심으로 로마는 유럽 중동 프 등에서 세계 제국과 같은 그런 나라로 번성했습니다 포인이 전쟁의 결과는요 로마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데 일단 권력이 양극화 됩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전통 기족 즉

2:20 타고난 토지 족들이 있었던 반면에 혈족이 새로운 족이 생겨났어요 두번째는 로마 시민의 주력인데 바로 자영 농민들이 몰락하게 됩니다 왜냐면은 전쟁터가 대부분 로마였다 보니까 농사를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집니다 또 외국으로부터 쌍 가격에 곡물이 들어와요 그래서 가격 경쟁에서 밀리죠 자들이 몰락하게 됩니다 반면에 농토가 죠 그 싼를 도시의 귀족들이 돈많은 족들이

3:06 라티 대농장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서 로마가 지금까지는 모든 점령한 지역에 자유를 줬습니다 그런데 포니 전쟁 이후에 한 나라에 대한 로마의 통치 방법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적까지 적까지 동화시키는 그런 그 로마가 발전한 이유 적을 자기편으로 만든다라는 건데 그러던 로마가 전쟁 후에는 로마 시민과 완전히 구분 됩니다 즉 새로운 통치 방법을 도입하게 되죠 바로 그것은

3:52 오늘날 식민지의 개념인 프로빈키아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프로빈스 단어가 나옵니다 로마의 개념은 로마라는 도시가 있고 세로 즉 식민지 개념의 지역을 프로빈키아 즉 오늘날 프로빈스 했습니다 속주 있어요 그것은 군사적 능력을 가진 즉 군인을 총독으로 임명해서 어 그곳을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공화 말기에 시민군으로 로마에 충성하는 것보다 사 힘을 가진 적 개인 장군에게 충성하는 사병들 용병들이 많아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4:39 합니다 마찬가지로 또 삼두 정치를 이뤘던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도 대부분 속주의 총독을 지닌 군인들이 사실 로마 공화의 상징은 언론입니다 바로 그 언론의 상징은 화입니다 화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권력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반대하는 겁니다 즉 다시 말해서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고 개인이 아무리 돈이 많고 능력이 있더라도 국민이 국민 다수가 인정하지 않으면은 그는 권력자가 되지 못해요

5:26 그래서 화라는 것은 있겠죠 크게는 헌법이 작게는 다양한 법들이 있겠죠 바로 언론은 로마 공화정의 상징이었습니다 권력의 상징인 언론들은 독재 적 군인의 힘이 있다고 해서 독재 권력 개인의 권력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너무너무 혐오했습니다 어 포니 전쟁 이후에 군사적 성공을 거은 군인들은 야심과 권력욕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언론들은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로마 공화정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

6:12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은 모든 총독들 군인들은 로마 북쪽에 저 알버스 남쪽에 있는데 그곳이 흐르는 강이 루비콘 강에 여러분들 많이 들어봤을 건데 그 루비콘까지만 군인을 데리고 올 수 있다 이런 법을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총독들이 로마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군대를 루비 북쪽에 어 놔둬야 되는 거죠 어 그리고 개인반 개인이나 소수의 보좌관들 데리고 강을 건너도록 했습니다 만약 이것을 하면은

6:59 의 반역자가 되는 겁니다 공화적 말기에 삼도 정체 한 축이었던 크라수스가 아까 얘기했듯이 파라트 쿠스 란을 진압하는데 어 가산을 다 탕진하고 일찍 죽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는 두 사람 즉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가 이집트 아프리카 북부 이런 쪽에는 폼페이우스가 다스리고 오늘날 영국 브리타니아 지역 또 갈리아 오늘날 지은 쪽은 카이사르가 다스리게 됐습니다 그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 있을 수 없는 거죠 권력은 나눠서 가실 수 없는 겁니다

7:44 문제는 언로의 선택이었습니다 공화적 말기에 사변과 막대한 산을 가진 군인들의 발로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언론들은 두가지 면에서 보 페스를 선택하게 됩니다 첫째 사르는 평민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자기들의 반대편에 있었던 거죠 페스는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둘째는 사는 지적인 면에서 페이스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따라서 약간 어리 똑똑하지 않은 페스를 선해서 원의 그

8:32 실추됐을 폼페이를 요리하면서 실추된 권한을 회복하고자 했던 거죠 폼페이우스와 결탁한 언론은 갈리아에서 연전 연성에 인기를 끌고 있었던 카이사르를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이를 위해 언론은 황제권 이전에 최고의 국가 법이었 이른바 언론의 최종 근고 라는 어 적 명령을 내립니다 카이에게 군사를 리고 루비콘강을 건너지 말고 홀로 건너라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로마를 거역하거나 반대 입장에

9:17 서지 않았던 카이사르는 비강에이어서 법에 빠지게 됩니다 만 군사들과 함이 강을 되면 는 꼴이 되는 거죠 반대로 혼자 건너면 처형 당해 죽게 되는 거죠 법의 천 곧 결단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이 당시 바로 어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그리스의 유명한 희극작가 메난드로스 식구를 인용합니다 군사들에게 그 인용을 통해서 자신의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이 강을 건너면

10:03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없는 그런 기다리는 그곳으로 바로 세익스피어가 이야기했던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고 루비 강을 건너게 됩니다 기원전 49년 1월달 입니다 카이사르는 정의 부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서 로마로 진군하게 됩니다 이런 바 군사 구타가 일어나게 됐던 거죠 자 그러면은 카이사르의 반대편에 있었던

10:49 폼페이우스가 그 카이사르를 막아야 되겠죠 그죠 언론과 힘을 합쳐서 그런데 폼페이우스는 전혀 그럴 어 없 사실상 공화정의 정부인 언론으로부터 로마를 방어라는 명령과 정권을 부여받은 폼페이우스는 제대로된 전투도 한번 치지 못하고 후퇴와 후퇴를 거듭했습니다이 그리스에서 일전을 준비를 해요 아까 이야기했던 어 브루투스가 이때 페스 편을 들면서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하게 되죠 그리스로 갔다가 또 소아시아 지방을 갔다가 마지막으로

11:34 선택한 것이 이집트였습니다 폼페이우스가 마지막 그 여정지 이집트로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는 바로 로마의 동맹시 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그 동맹시 제한 보호자 아버지였기 보호받는 피보호자 입장이었습니다 즉 고객이었고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에 도움을 받아 카이사르에게 반격을 하면은 성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운명은 그를 반겨 주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집트의 상황이

12:22 매우 복잡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가 죽게 되죠 그 알렉산더의 부하 중에에 프톨레마이오스 자기 고향이 오늘날 알렉산더입니다 포레우스 알렉산더의 시체를 훔쳐서 이집트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 이집트가 어 새로운 신왕조가 만들어지는데 그게 톨레 아이오스 왕조 이제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가 싸울 때 포마스 12세 12세까지 간 거죠 12세가 죽고 권력 이양기 있습니다 보틀로 마이오스 12세가 죽을 때 두 가지를 이야기를

13:09 했습니다 하나는 맛 공주 즉 클레오파트 라죠 맛 왕자 프톨레 13세 형제 잠 자매끼리 형매 해서 공동 정치를 해라라고 명령했고 두 번째는 로마의 친구이자 동맹자 계속 유지해라이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이집트의 폼페이우스를 쫓아서 어 입성하는 48년에 이제 막 21세가 됐던 클레오파트라는 동생 포트레스 1세로부터 왕따를 당합니다 특히 포토레 13세의 그 부하들 즉 관리들부터 바로 클레오파트라가 파라오

13:56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당시 이집트의 관리들은 언론을 지원에도 불구하고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또 소아시아 지역에서 왕따를 당해서 그죠 오리엔트 지역이 여러 나라에서도 문전 박대를 당한 그 패배자이자 망명객 폼페이우스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더더욱 그 뒤에 막강한 카이사르가 추격해오고 있었던 거죠 만약 게 카이사의 적을 보살펴 주다가 오해를 살 수도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의 관리들은 자신의 파트론의 아버지 격 주인님에 불구하고 그를

14:41 죽여서 카이사르의 마음을 사고자 했던 거죠 카이사르가 드디어 클레오파트라를 만납니다 이대에 입성한 세계 권력자 카이사를 앞에 두 개의 선물이 전달됩니다 하나는요 클레오파트라의 몸종 몸종 이름이 참 재밌어요 아프로 도로입니다 아폴로도로스이 아으로 도서에 의해서 어 양탄자 물론 이것도 어 팩트 한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입니다 양탄자에 포장된 클레오파트라와 다른 하나는 비록 적이었지만 의연한 이집트의 파트론의 아버지인

15:27 피가 흐르는 폼페이우스의 목가 그리고 도장으로 쓰는 반지였다 men 두 선물 중에 어느 것을 선택했습니까 카이사르는 정치 군사 통염 상으로 어 보면은 클레 파트보다 포트레 아이오스 13세가 우위에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선택합니다 카이사의 선택에는 세 가지 점이 고려되었습니다 첫째는 폼페이우스는 적이지만 의연한 로마 로마인이 있습니다 더불어 피 보호자가 즉

16:12 아들이 아버지를 보호자를 죽이는 것은 로마 사회에서 어 근본을 흔드는 이유였죠 다른 하나는요 환관들의 간섭과 농락해 포리 마오스 13보 훨씬 자유롭고 그러한 입장이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 클레오파트라가 사람으로서 어떤 여자로서 아니라 명석한 두뇌 강한 의지력 상식 유머 거기다 미모 젊음 등은 카이사르가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었던 겁니다 카이사르의 선택의 불만을 품은 포마

17:00 13세와 그를 추정하는 어 그 관리들은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적이 되지 못하죠 지중의 세계를 장악한 카이사르는 다음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매력적인 여인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 중에 본국으로부터 보가 날라옵니다 신복 즉 니스로부터 보가 날라옵니다 어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이이 폰투스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에 남겨두고

17:46 폰투스 향하게 됩니다 토스에 가니까 제대로 싸움도 안했는데 적들이 다 도망가고 없어요 그리고 그 성보를 언론에게 편지로 써서 보냅니다 바로 그 유명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베니 BD BC 아는 그 라틴어 세 마리를 적어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본국으로 가기 전에 남아 있는 아프리카의 그 폼페이우스 잔당들을 소탕하지 당시 카르타고의 속주 카르타고 속주로 나와 속주 인가로 나와 있었던 어 블루투스의 삼촌 삼촌 카토를 진압하게 되는데 카이사르는

18:34 카토를 소카로 살려 주고자 했습니다 근데이 카토가 카이사를 끝까지 거부해요 그래서 나중에 카이사가 타고 오는 것을 보고 자살을 합니다 자 이건 역시 외삼촌인 카토를 엄청나게 따랐던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하는 또 하나의 동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본국으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유일한 성자가 돼서 로마의 정치 경제 사해 문화 모든 매어서 개혁을 단행합니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독주는 공화정의 정신를 악화시키고 어 이에 대한 불만 세력이 형성되게 됩니다 특히 그가

19:21 독재관 되고 소수 특인 언로 의원수를 종 300명에서 600명을 더 00명으로 대해서 그들의 특권적인 요소를 없애게 되는데로는 그것에 대해서 엄청난 불만이 있었던 겁니다 자 그런 상태 속에서 클레오파트라 문제가 발생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아들을 낳게 됩니다 카이사의 초청으로 로마의 공식 방문을 하게되죠 그가 이집트 왕이라는 보다 최자 의 애인 이었다는 점이 로마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고조시켰습니다 카이사르는

20:07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친구 동맹자 둘째 이집트의 왕 셋째 중요합니다 단순한 애인으로 남아 있어 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그 냉한 판단력 또 국제정치를 책임져야 되는 그 마의 에다가 그 누구보다도 또 사회적 윤리 기준이 있어야 되는 그런 사람에게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에 요구한 거 자신과의 결혼을 해야 된다 즉 칼리포르니아 아는 세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해 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자신이 낳은

20:54 자식을 인정해 달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사의 범상는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지만은 두 명의 부위는 둘 수가 없습니다 또 칼리포르니아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 이혼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던 거죠 44년 3월 15일 그의 또다른 애인 즉 세르빌리아 아들이자 의 한 사람이었던 브루투스 1로부터 암살 당하게 됩니다 자 대부분의 기존의 역사 책들은 브루투스의

21:39 카이사의 암살 이유를 공화 정신을 지키기 위한 브루투스의 정말 고기한 시민의 자유 그러한 것라고 쓰고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로마사를 배우면서 루스가 왜 시를 죽을까요 공 배 물론 이점이 무시할 수 없겠죠 그 여기에는 브루투스가 그 카이에 대한 어떤 개인적인 어떤 감정 원한 경멸이 우선 첫째는 바로 어머니 세빌리아의 인이었다 점입니다 둘째 사랑했던 자

22:24 카이사의 리아가 가이 약했던 것을 파하고 페스에 시집 보낸 거 셋째 사랑하고 존경에 맞지 않았던 삼촌 소카 카이사르에게 죽었다는 점 이런 것들이 카이사르의 거대한 산을 내가 한번 무너뜨려야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로마는 다시 경 속으로 빠집니다 2삼정 시작되는데 바로 레피두스 아는 또 다른 군인 그다음 시즈의에 양아들 저 옥타비우스 그리고 시즈의 대장군 안토니우스가 2차 3두 정치를

23:12 구축합니다 레피두스 일찍 죽고 바로 안토니우스와 어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나눕니다 두 권력은 거의 10년 동안 내전을 버린 후에에 카이사를 죽인 공화파 암살전 그리고 올라운 의원들을 무려 300명을 죽여버리게 됩니다 그런 중에 클레오파트라는 어떻게 하면 우리 이집트를 로마로부터 어 지키고 또 독립된 나라를 유지할까 생각합니다 어느 것을 선택할까요 바로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선택하게 됩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그랬던

23:57 것처럼 파트와 같은 그런 매력적인 여자와 연애를 한번 해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에게 안토니우스를 공략하기는 시은 중목이 다도 쉬웠습니다 지적이고 냉철한 카이사로 보다 가난한 평민 출신이었던 안토니오 스요 돈만이 쓰면은 그만이었습니다 어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쉽게 요리죠 정식 부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 클레오파트라는 바로 안토니오에게 이런 요구를 합니다 자신과의 정식 결혼을 해달라 즉 시제 카이사르에게 요구했던 거와 똑같은

24:44 거죠 자신의 아들을 마인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이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요구에 훨씬 더 부해서 마인 이혼하고 당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할거다 두 번째 아들을 로마인 인정하겠다 셋째는 이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당시 로마의 영토였던 시리아 또 소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이집트에 주겠다라고 결혼 선물로 선언하게 됩니다 이에 클레어 파트라의 농으로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규범을 깨뜨리고 로마의 반역자의 입장이 되는 그런

25:31 상황에 됩니다 두 권력 사이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원로원은 이번에는 누구를 선택할까요 바로 옥타비우스 편을 들게 됩니다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의 연합함대를 키이라는 곳에서 물리치고 성리를 하게 됩니다 어 배한 안토니우스는 자살 카이의 아들 카이사리온 그 카이사는 피살 되게 됩니다 옥타비 또 클레오파트라 역시 어떻게 죽습니까 바로 그 킹코브라 이집트의 킹 코브라에 의해서 자살하게 되죠

26:17 클레오파트라가 그토록 강대국 로마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기를 원했던 이집트는 그의 죽음과 함께 가되고 약 2천년 후에 독립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등장하게 됩니다 자 오늘 이야기는 거의 끝났는데요 그 사랑의 인문학의 이야기를 하면서 좀 도가 지나친 우리가 순수한 사랑보다는 그런 이야기를 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선생님의 오늘 강의의 초점은 이겁니다 바로 사랑 이야기의 인데 사실 아직도 이런 21세기를

27:02 살고 있지만 우리가 어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런 그 성의 구분 두고 여성은 일해야 되고 남자는 일해야 되고 이런 것들에서 카이사르가 사랑했던 그런 방법들 즉 여성도 당당한 사람으로서의 한 사람으로서의 입장을 우리가 이에 강의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들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강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박수] [음악] [박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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