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될 때까지 '이것' 모르면 진짜 망합니다 (가혹한 진실들..”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 지금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합니다. 아마 쫄려서 돈 쫓다가 망했을 거예요. 근데 우리도 벌써 여러 나라로 해외 출장들을 다녀왔는데 최근에는 뉴욕 출장에 다녀온 영상들을 올렸죠. 근데 이게 저한테 되게 초심을 좀 되새기게 하는 그런 출장이었어요. 은근히 저한테 도전처럼 느껴졌던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약간 막막했던 부분도 있는데 그런게 오히려 좀 성사가 됐을 때 성취감이 엄청 크더라고요. 내가 원래는 이렇게 되게 도전 정신이 있고 막무관으로 이렇게 막 들이받는 그런 기술이 있었었는데 이게 언제부터 좀 이렇게 많이 없어진 거지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보게 되더라고요. 좀 지금의 나를 좀
0:45 돌아보게 되고 거기에 대한 고민을 좀 많이 해 보게 됐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번에 출장을 갈 때는 아무래도 제가 혼자 뉴욕에 있어야 되는 상황이기도 했고 제가 최근에 좀 바빴어 가지고 이제 크로 멤버들이 다 바쁘기도 했고 내가 혼자 기획을 하고 여러 가지 도전들을 해서 이제 조율를 하고 진행을 해 보자 이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원래는 처음에 유튜브 시작할 때는 그냥 당연히 이렇게 혼자 다 했었는데 저희가 이제 점점 인원수가 늘어나면서 아무래도 분어화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일의 스케일은 좀 더 키울 수 있는게 장점인데 혼자 하긴 약간 버거워진 부분이 있습니다. 요거를 뉴욕에서 기획부터 진행까지 다 내가 한번 해 보자. 컨텐츠를 찍고자 하는 곳에 그냥 무작정 콜드 메일들을 막 보내고 거기에서 이제 회신 오는 내용으로 이제 계속 조율를 하고 만약에 성사가 잘 안 됐으면 그냥 현재에 갔을 때
1:32 무조건 찾아가고 뜻밖에 성사된 것들이 되게 많았어요. 제일 좋았던 건 아무래도 옥션 회사에 사인 그 필립스 뉴욕 본사에 이제 콜드메일을 보냈던게 너무 이렇게 웰컴을 해 주시면서 촬영 성사가 되면서 오픈 시간도 전에 들어가서 정말 귀한 시계들을 볼 수 있었던 거예. 예를 들면 이제 에리 클랩이 찾던 파텍 필립이라 이것또 처음에는 당연히 답장이 아예 안 오다가 이제 갑자기 답장이 오고 근데 아 시계는 못 보여 줄 거 같다 이랬다가 제가 또 이제또 부탁을 드리니까 아 시계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이러면서 이제 계속 발전해서 그 컨텐츠까지 나온 거거든요. 이것도 진짜 그냥 제가 콜드메을 보냈는데 때마침 거기에 도널드 킴이라는 재미 교포분이 계셨고 한글을 좀 할 줄 아시는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분이 저희 영상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이제
2:18 저희에 대한 어떤 신뢰와 지지를 통해서 이제 그 콘텐츠가 나올 수 있게 된 건데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소드 킴께서 한국에 또 때마침 출장을 오게 됐어요. 그 콘텐츠 찍고 나서 한 몇 주 뒤에 그분 계신 호텔로 가서 같이 티타임 가시면서 또 대화를 나눴었거든요. 이게 또 좋은 인연으로도 발전이 됐던 거. 그리고 이제 영상에서도 말씀드렸는데 아날로그 시프트라는 진짜 뉴욕에서 되게 큰 의미가 있는 중고시계의 거래 딜러샵도 있는데 거기는 이제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안 왔어요. 생활내식의 김생활 님도 아 여기는 꼭 한번 저 대신가 주시면 안 되냐 뭐 이렇게 얘기를 하셨을 정도로 좀시기 좋아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되게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그래서 아 메일은 답장은 안 왔는데 어쨌든 저도 너무 촬영을 하고 싶고 해서 그냥 갔어요. 1층에서 막 여권을 내고 그 경비분께서 뭘 이렇게
3:04 찍어 주셔야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가 있더라고. 갔더니 이제 약속은 했냐 그래서. 아, 약속은 안 했는데 내가 유튜버인데 여기를 꼭 촬영을 하고 싶다. 촬영을 해도 되는 물어볼 수 있게 해 달라 그랬더니 이제 막 고민을 하더니 일단은 올려고 내 주셨어. 그래서 올라가서 처음에는 그뭐 정리해 주시는 분이 오셨어요. 내가 이제 이런 사람인데 메일을 보냈는데 회신은 안 왔다. 근데 여기 관계자분들 만나고 약간 안에 좀 촬영을 해 보고 싶어서 왔다 이랬더니 그분이 들어가서 관계자분을 데리고 또 나오셨어요. 그래서 관계자분한테 또 똑같이 설명을 했더니 어 우리가 회신을 안 했어 이러는 거예요. 아 그렇다고 그래서 저희가 원래 저희 채널 소개서가 있거든요. 프린트를 해 왔거든요. 그래서 앞에서 막 보여주면서 우리 이렇게 되게 신뢰할 수 있는 채널이에요. 구독자도 이만큼 있고 해외에서 막 이런 CEO들 인터뷰도 하고 현지 촬영도 되게 많이 했다. 막 들어오라고 그러면서 촬영
3:50 굉장히 협조를 잘해 주시고 아예 그 인터뷰까지 응해 주셨죠. 그 인터뷰 해 주셨던 분이 실제로 저 영상에 오셔서 댓글도 달주셨어요. 와 이거 되게 대박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촬영을 하면서. 이외에도 이제 좀 비슷한 이런 성취들이 좀 있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컨텐츠가 되게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잘 나왔다고 생각하고 만족스러워요. 그래서 말씀드렸듯이 아 예전엔 내가 진짜 이렇게 막무한애로 막 들이받아서 도전하고 환경에 변화를 접으려고 하고 의지가 되게 강하고 실제로 참 도전적인 사람이었는데 이런 작은 회사를 차리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면서 점점 몸을 살리게 되고 그리고 이제 팀으로 움직이는 것에 의존을 좀 많이 하게 됐다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생각을 좀 정리해 보니까 아 시스템은 효율을 추구하고이 효율적인 시스템은 일을 더 쉽게 만들어 주지만 또 이제 안정을
4:36 추구하게 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재미나 도전 정신은 좀 없어진다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그 최근에 또 월드컵이 있었잖아요. 되게 뭐 마음 아픈 이벤트긴 했지만은 축구 같은 경우에도 옛날에는 막 그런 제가 어릴 때만에도 막 슈퍼스타들이 되게 잘 나오고 막 그런 사람들을 필도로 막 경기가 되게 막 다이나믹하고 막 이랬었는데 요즘에는 이제 축구라는 것도 되게 고도화가 되면서 전술화가 되면서 약간 감독형 축구라고 하잖아요. 다이나믹하고 막 엄청 막 짜릿하고 이런 것들은 많이 없어진 거 같아요. 옛날보다 좀 재미가 덜하다. 뭐 축구 말고도 다른 스포츠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이번에 누역에서 안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이제 G쥐 메거진의 유튜브 채널을 진행하는 MC를 봤었던 모델 노마를 만나면서 여기에 대해서 다시 또 회상을 하게 됐어요. 나의 어릴 적은 어땠는가? 어릴 때 뭐 제가 되게 많은 그런 뭐 책이나
5:22 미디어의 영향을 좀 받았었는데 그중에서 이번에 생각난 거는 김동수라는 기업가분이 쓴 너의 꿈을 대한민국에 가두지 마라는 책을 제가 어릴 때 되게 감명깊게 읽었거든요. 그걸 보고서 되게이 세계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리고 되게 도전적으로 많이 변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단돈 50달러를 들고 김동수라는 분이 미국에 가서 토마토 농장에서 이러고 막 약간 이제 밑바닥 고생을 막 하다가 막 이런저런 그 에피소드들이 생기면서 결국에는 아시아인 최초로이 듀폰이라는 회사 있죠? 여기에 이제 아시아 태평양 회장이 된 이야기예요. 그래서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모토이자 키워드가 이제 브레이더 박스라는 문장인데 한마디로 이제 자신이 갇힌 그 상자 한마디로 한계를 좀 깨부어라 이런 내용입니다. 학벌이 됐든 국적이 됐든 뭐 능력의 한계든 이런 것들을
6:09 깨부인의 무대를 세 개로 넓혀라 뭐 이런 내용이었어. 그래서이 책을 보고 여러 가지 세계적인 도전을 해야겠다 막 생각을 하고 그러다가 이제 미국의 배낭 여행도 가게 됐었죠. 그때 진짜 제가 막 영어 과에도 하고 있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돈이 너무 안 보이는 거예요. 그게 진짜 너무 빠듯한 거죠. 학비도 학자금 대출를 받았었거든요. 따로 자금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진짜 제가 안 해 본 알바가 없다고 여러 영상에서 말씀드렸죠. 뭐 피자 배달도 하고 공사현장에서도 일을 하고 마트에서 뭐 파는 것도 해보고 레스토랑 서빙도 하고 뭐 진짜 뭐 안 해 본게 없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이제 택배 상하처였고 저기 가산 디지털 단지 쪽에 있는 한진 택배에서 밤새 택배 상하차는 것도 꽤 오래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서 제가 친구 한 명을 모집해서 각각 200만 원씩 해서 미국에 거의 20일을 갔다 왔어요. 샌프란시스코부터 해가지고 요세미트 국립공원, 라스베가스, 그랜드 캐년,
6:56 LA 이런 식으로 이제 돌았는데 막 6인 8인실 막 그런 뉴스 같은데 머물고 막 그때는 진짜 스마트폰도 대중화되기 전이었어 가지고 아무튼 그지도 보고 다니는 시대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만 그 라스베가스에 갔으니까 이런 뷔페 같은 것도 한번 먹고 싶은 거데 그렇게 안 있었어요. 카니발 어쩌고 뷔페를 가서 이제 그거를 이제 먹고 나서 좀 남은게 있었어요. 아 이걸 좀 버리기는 더 아깝고 해가지고 그 우산 넣는 비닐봉지 있잖아요.이 먹던 걸 이렇게 쏟아 놓고 그걸 또 들고 그랜드 캐년 가서 어디 바위 같은데 앉아가지고 또 이제 그걸 먹는데 그 중에 하단가 약간 상한 거예요. 그래갖고 또 이제 베아리를 하고 힘들게 막겨을 사였습니다. 근데 그 그게 저는 지금 솔직히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을 여행을 하고 이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만은 압도적으로 가장 기억이
7:42 남는 여행이었던 거 같아요. 그만큼 와 이게 될까?이 돈 가지고 이게 될까? 아무것도 지금 뭐 아는 것도 없고 이제 뭐 제도 딱 들고 그냥 가는 건데 근데 그런 것들을 다 내 계획대로 하게 되면서 막 진짜 계획도 엑셀로 엄청 촘촘하게 막 짰었거든요. 안 될 것 같다고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는게 성공이 됐을 때 그 성취감 같은게 엄청 크고 거기서 한 단계 성장을 하게 되는 건데 근데 그걸 정말 뼈저리게 느끼는 경험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거 얘기를 또 이제 노마랑 만나서 씨 아빠에 갔을 때 같이 했는데 노마도 이제 본인 얘기를 해 주더라고요. 이제 어릴 때 모델 너무 하고 싶은데 제 국내에서 뭔가 어떻게 하는 거는 좀 성공 가능성이 낫다고 생각이 들어서 아예 그냥 제일 큰 무대로 가자 해서 그냥 무작정 20대 초반에 뉴욕을 온 거예요. 그 친구 집에 얹혀 살았었는데 그 친구가
8:29 사진을 좀 더 파격적으로 찍어 보자 해가지고 머리도 막 엄청 탈색을 하고 막 파란색 렌즈도 끼고 막 그러면서 찍었던 거를 보내 보니까 그중에 이제 아 와서 면접 한번 봐 보자 했던 회사들이 되게 많았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소속사가 생기고 우리가 하는 그런 명품 브랜드들의 쇼에 이제 서게 되고 이제 최고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거죠. 그 똑같은 얘기 하더라고요. 그때 어떻게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 지금만 생각해 보면 그때가 되게 대단한 거죠. 지금은 이런 식으로 뉴욕에 와서 막 이렇게 커리어 쌓아서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때 당시에 노마가 그렇게 했을 때는 유니한 그런 루트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도전을 했던 거 중에 이제 가장 좀 의미 있었던 그런 도전들은 환경을 바꾸는 거였던 거 같아요. 아, 내가 지금 여기서 안 되겠다 싶으면 아예 그냥 무모하더라도 내 환경 중에 좀 큰 거를 딱 바꿔
9:14 버리는 거죠. 예를 들면 이제 제가 이제 러닝이 유행하기 전에 뭐 내가 뭐 선구자할 때 뭐 이런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근데 진짜로 그냥 20대 때 달리는 거의 맛을 좀 알게 돼 가지고 마라톤을 진짜 많이 뛰었습니다. 진짜 그 마라톤 그 매달도 엄청 많았고 집에 사회인 동회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연습해서 10km 뛰고 어 10km 뭐 50분 안에 들어오기 뭐 이런게 그냥 목표고 그때 이제 우리 친구들이 다 10km만 뛰다가 이제 점점 기록이 좀 빨라지기 시작을 하죠. 그러다가 이제 제가 처음으로 아 이거 하프를 한번 뛰 볼 수도 있겠는데이 10km를 띄는게 생각보다 되게 빨리 끝나는 거예요. 이제 힘들지 않고 너무 이제 뭐 큰 도전도 아닌 거죠. 계속 하다 보니까. 그래서 제가 하프를 한번 완주를 하게 됩니다. 뭐 기록은 형편 없었던 거 같아요. 다리가 그때 너무 아파가지고 막 쩔뚝거리면서 이렇게 완주를 했어요. 근데 그때 우리 동호의 친구들이 다
10:01 이미 들어와 있었죠. 10km를 뛰고 나서 환대를 막 해 주는 거야. 영상 촬영도 막 해 주고. 그래서 와 진짜 해냈다이 느낌이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는데 그리고 나서 재밌는 일이 뭔지 아세요? 제가 한번 하프를 뛰고 완주를 하는 걸 딱 보여주고 나니까 다른 동화의 친구들도 다 하프를 뛰는 거예요. 이제 되는구나라는 걸 아는 거죠. 뭐 하프 코스 뭐 풀코스 이런 거는 아 우리 같은 그냥 뭐 회사원들이 뛰는게 아니라 되게 전문적으로 운동 잘하는 뭐 트라이슬론 이런 거 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다가 주변 내 친구가 갑자기 딱 성공을 하면은 그때부터 어 저게 되네. 어 나도 해 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니까 한 명이 하프를 뛰면은 다 뛰게 되고 한 명이 풀코스를 뛰면 다 뛰게 되는 겁니다. 그 여러 올림픽 기록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이게 막 절대 안 깨진다 안 깨진다 하다가 뭐가 하나 딱 깨지면은 갑자기 그게 막 다 깨지거든요. 된다 안 된다를
10:47 조금 나랑 비슷한 레벨 사람이 보여주면 거기에 대한 도전 정신이 빡 생겨 버리는 거 같다 이거죠. 성공을 하려면은 어떤 같은 레벨에 같은 환경에 이렇게 딱 머물려 있기보다는 큰 성취를 보여주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는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곳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도전을 해야 된다. 그 예전에 이제 제가 또 20대 때 대학교에서 이제 응원 단장 한 적이 있다고 했었잖아요. 이것도 이제 예전에 뭐 인생 그래프 이런 영상에서 말씀드렸었는데 처음에 저희 그 선배님들이 저한테 차기 이제 단장을 제안을 했을 때 제가 그걸 거절했어요. 제가 그걸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대 단장님을 보면 나보다 훨씬 더 성실하고 바람직하고 도덕적이고 리더십이 큰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아 나 딸이가 저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저 말고 이제 다른 사람
11:32 시켰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고 저는 부단장 정도만 하겠다 이랬는데 이제 선매님들이 감사하게도 그때 이제 밀어 붙여 주셔서 이제 어떻게 하다 보니까 단장이 됐죠. 근데 그때 제가 진짜 1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던 그리고 공감했던 문장이 뭐냐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다가 그 완장을 딱 차게 되니까 그런 사람이 제가 되더라고요. 엄청난 고민과 인내와 고통과 이런 시간들이 막 지나면서 계속 내가 성장을 하는 거예요. 돌아봤을 때 제가 가장 크게 이제 퀀텀 점프를 했던 시기가 아마 그때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아 이게 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냥 막 들이받았던 거죠. 아까 말씀드렸던 그 미국 배낭 여행도 마찬가지고 그게 저를 되게 도전적으로 만들어 줬던 거 같아. 아 일단은 아 내가 할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은데 하는데 그냥 그 포지션에 나를 딱 올려만 놓으면은 그 비슷한
12:17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죠. 가장 최근에 느끼고 있는 건 아무래도 좀 주제수죠. 파이트벨트 포스트라이프라고 얘기 했잖아요. 그걸 계속 수련을 하다 보니까 승급 시험이 있어요. 이제 사방님이 아 이제 승급 시험을 보셔도 좋을 것 같다. 근데 어 저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제가요. 그러니까이 승급 시험을 보 나면 승급 시험에 합격했다는 그 벨트가 있는데 그 벨트를 차고 보통 한 6개월 정도 있으면 이제 블루 벨트가 되는 거예요. 근데 저는 이제 주지수 블루벨트가 제 인생 목표라고 했잖아요. 근데 이제 저는 스스로 생각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실력이 너무 부족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한데 성님이 시험을 보자고 했어요. 근데 2주과 3주 뒤에 보자는 거예요. 근데 어 나는 준비가 안 되는데. 근데 이제 선언님은 아 내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저한테 막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더라고.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엄청 공부를 합니다. 막 그 전날은 밤을 샜어요. 거의 막 그 빨간 팬으로 적어 가면서 막
13:03 타이핑하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제 사무실에도 제 자리에 막 매트 깔아 놓고 그 위에서 막 둘러다니면서 혼자 막 연습하고 그러다가 이제 시험 날짜가 돼서 시험을 봤는데 제 개인적으로 되게 아쉽죠. 제가 그래가지고 이제 사님한테 제 시험은 언제로 볼 수 있나요? 이랬더니 이제 사우님 제 시험까진 안 보셔도 될 거 같은데요. 되게이 정도면 되게 잘하신 거라고 이러시더 아 이게 또 이렇게 또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준비되면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 그 준비가 되는게 은근히 되게 힘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완벽한 때를 기다리면 그게 언제 올줄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그냥 제 원래 제 스타일도 그냥 핀을 딱 그날 자에 딱 꽂아 놓으면은 그때 가서 어떻게든 합니다. 막 벼락치기를 하든 밤을 세든 해가지고. 그래서 클로분들께 진짜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나이가 젊으시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13:50 선에서 최대한 만늘 도전을 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당연히 드실겠지만은 일단은 한번 완장도 차보고 기회가 있다면은 많은 완장을 좀 차보시는 것도 저는 되게 좋은 거 같아요. 리더십 발전이나 본인의 성장에 있어서. 아, 내가 언젠가 준비가 되면 이걸 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일단 데드라인을 탁 잡아 버리고 그냥 이제 뛰어드는 거죠. 이게 왜 제가 맨날 젊을 때에는 젊다면 이런 전제를 다냐면 그 라이브를 하면서도 어떤 분께 좀 제 생각을 좀 말씀드린 거긴 한데 가족이 생기거나이 나이가 되는 것 때문에 그런 것에 의해서 도전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지금 솔직히 그런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도 지금 상태에서 다시 처음부터 그렇게 도전들을 해 봐라 하면 아마 절대 못
14:37 했을 거예요. 너무 마음이 막 쫄리고 쪼들려서 불안한 마음에 돈을 쫓다가 아마 망했을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 되게 행복하거든요. 이제 저도 이제 그렇게 된 케이스니까. 처음부터 잘 되는 건 정말 힘들어요. 이거는 엄청난 뭐 천재들이나 진짜 머리가 좋은 분들이면 모르겠지만은 뭐 저 같은 범위는 되게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당연히 돈 벌릴 차 못 합니다. 약간 열정으로 그냥 하는 거죠. 결국은 내가 벌런 운동 깎아 먹으면서 이제 하는 건데 저도 이제 퇴설를 하고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 그랬거든요. 퇴직금 받은 걸로 그냥 깎아 먹으면서 이제 계속 했어요. 그때 이제 같이 일을 시작했던 토퍼한테 제가 티를 안 했습니다만 실제로 엄청 쪼들려서 맨날 밤에 토퍼 퇴근하고 나면 그 사무실 의자에 앉아 가지고 엄청 고민하고 막 고뇌하고 막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많이 벌어서이 월세와 인건비와 세금과 이런 것들을 막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게 될까?
15:23 근데 이게 아 너무 조급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굶자라는 다짐을 했던 거고 이게 왜 조급하면 안 되냐면 엄발의 오줌 누기식으로 빠르게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길들이 보여요. 근데이 길을 가면 안 돼. 이거는 정말 먹으면 안 되는 독사과 같은 거예요. 근데 그걸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분들도 계시겠죠. 아 당장 막 월세 엄청 밀려 있고 막 직원들 월급 엄청 밀려 있고 이러면은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분들도 계시겠죠. 근데 이렇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도 돈에 쫓이다 보면 사람이 조급해지거든요.이 일단은이 좋아하는 일도 너무 이제 일처럼 느껴져서 안 좋아하게 되고 원래 내 어떤 창의성이나 좋은 아이디어들이 있었던 것들 이런게 다 발휘가 안 돼요.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여기서 독사화를 딱 먹으면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진짜 굽는 시간은 무조건 필요하고 저는 한 2년까지도 굶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16:09 했었어요. 왜냐면 이게 진짜 노력만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시대에도 잘 만나야 되고 운도 좋아야 되고 정말 뭐 좋은 사람들도 만나야 되고 초자식이 있는 지금 그거를 다시 하라고 하면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계속 그런 얘기를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진짜 2, 30대 때 좀 젊을 때 겁없이 좀 무모하게 도전을 해 보는 건 되게 성공을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은 본인 성장에 되게 큰 도움이 되거나 밑걸음이 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많이 느끼고 실제로 저의 20대 제가 무모하게 했던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도 저에게 좋은 영향들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사실 뭐 매년 크든 작든 도전들을 많이 해 왔었어요. 계속. 어쨌든 회사는 계속 성장해야 되고 뭔가를 계속 확장해야 되니까. 올해도 마찬가지거든요. 제가 뉴욕에 갔다 오고 여러 가지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서 그 전과 좀 달라진 부분은 뭐냐면 아 내가 너무
16:56 평안했다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어느 정도 이제 회사가 자리를 잡고 저희가 하는 일이 되게 잘 풀리고 하면서 큰 고민이나 고통이나 위기 뭐 이런 것들이 정말 감사하게도 많이 없었어요. 예. 계속 이제 어쨌든 매출도 조금씩이지만 계속 늘고 큰 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좀 재산이 축적되고 있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뭐 가족들이나 뭐 주변 사람 중에 크게 아픈 사람도 없고 여러 가지 그런 어 행운들이 따르면서 너무 제 삶이 좀 평안해진 거죠. 이전에 비해서. 그래서 올해는 생각을 좀 바꾼 게야. 내가 여기서 좀 더 성장하고 뭔가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게 고통을 줘야겠다라는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주는게 되게 인간의 성장이 중요하다. 제가 바탕화면에 항상 이런
17:41 모티베이션을 줄 수 있을 만한 그런 걸 막 써 놓거든요. 근데 이제 지금 바탕에 써 있는 거는이 시메토크에서 말씀드린 거의 어떤 총 집합체인데 제 생각에 흐름이 그냥 이렇게 흘러온 거예요.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래서 딱 그 한 문장은 고통 없이 인간은 성장할 수 없다. 이렇게 제가 바탕화면을 딱 써 놨어요. 엄청 무섭게 생긴 사자 이미지랑 같이 [울음] 튼튼이가 일어나려고 하나? 아직도 새벽인데 >> 아빠 >> 들리시나요? 아 제 목소리가 들렸나 봐요. 기가지. 아무튼 그래서 클럽 여러분들도 젊을 때 많은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 스스로가 고통스러울 줄라도 그 고통이 나중에는 큰 밑걸림이 될 수도 있고 나중에 진짜 뭔가 평안해지면 그 고통이 나중에
18:28 그려질 수도 있다. 예. 그게 이제 결론입니다. 튼튼이가 오라고 해서 저는가 봐야겠어요. 뭐 무슨 연출한 것처럼 이렇게 안 그래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네. 클럽 여러분들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저는 유가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