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와 피맛길 도보 답사 2편 | 진짜 피맛길은 이제부터”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1 [음악] 피막길 같은 느낌이 진짜 남아 있는 거는요 골목밖에 없습니다. 우와! 하늘이 안 보입니다. 우와! >> 와! 멋진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야! 아까 종묘편을 찍어 놓기를 잘했네요. 피막길은 조선 초에 만들었잖아요. 저는 서울에서 제일 볼 만한게 골목이라고 생각해요. YMC의 건물이고요.이 건물도 굉장히 오래됐죠. 일제 때는 YMC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이 자리에 종로 경찰서가 있었어요. 우리가 교과서 보다면
0:49 김상옥 의사가 종덕찬스의 폭탄을 추척하는 사건이 벌어지죠.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서 김상호 기사가 폭탄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는 거예요. 그게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인데 그걸로 인해서 김사 열사가 일제 경찰에 추적을 받게 되죠. 그 종로 경찰서가 있던 자리입니다. 김상옥 열사는 다음 편 종로 걷게 할 때 또 말씀을 드릴 거고요. 그 마은 편에 종로서적 자리가 있습니다. 참 추억의 장소입니다. 1980년까지만 해도 서울의 가장 중심이었고 젊은 이들이 가장 여기서 많이 모이던 곳이었죠. 저도 기억나는데 저도 어릴 때 친구 만난다 그러면 항상 종로서적
1:37 앞에서 만났거든요. 종로서적 앞에 바로 종강력이 있고 지금은 종서적이가 없어졌지만 건물이나 이런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종로서적 자리도 지금은 역사의 유적이 된게 아닌가 싶네요. 어 YMCA에서 다시 옆으로 피막길이 이어지는데 이제 재개발을 해서요. 원래 피막길 그 뒤쪽 자리에 새끈한 건물이 [음악] 들어졌습니다.이 앞에 보이는이 풍경이 예전 그 피막길입니다. 옛날에 풍경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자리라는 것만 알고 지나가겠습니다.
2:24 아, 여기 [음악] 표지판이 있습니다. 인사 도시 유적 전 시간. 시전 횡랑 배수로 개관 준비 중일래 26년 7월에 개관할 예정이랍니다.이 자리를 재개발해서 건물을 세울 때 옛날 유적이 나왔기 때문에 여기도 발굴를 했거든요. 여기에서 조선 초기에 금속 활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대요. 항아리 속에서. 그다음에 세종대왕 때 만들었던 천문 시계도 여기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거를 중심으로 해서 유적 전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선시대 옛길이라고 표시되어
3:09 있네요.이 길이 아마 조선 시대의 그 옛 길 흔적인가 본데 건물을 지어 올리면서 타워 AB로이 사이의 길을 아마 흔적을 남겨 놓은 거 같습니다. 어, 길 서쪽에 있는 담장은 조선 초기부터 여러 번 고쳐 사용했다. >> 우와. >> 음. 개관하면 멋진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의 옛길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아래로는 유구가 묻혀 있고요.이 구부러진 길은 그 시제의 흔적을 남겨서 골목길을 살려 놓은 거죠. 양쪽 앞에 있던 담장은 저 유적 전 시간에 진열될 예정이라고
3:54 하네요. [음악] 오른편에 이제 국일관 건물이 보이고요. 국일관은 옛날에 명월관 국일관 유명한 요정 건물이었고요. 지금은 상업 건물로 되어 있는데 종로 2가 파고다공원 건너편 대로변하고 북일관 사이에 좁은 골목이 더 남아 있는 피막길입니다. YMC 주변에 어 재건축하기 전에는 이런 피막길이 남아서 이쪽에서 술한장 걸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발걸음을 했는데요. 지금도이 거리는 저 세운 상각까지이 길은 계속이어서 남아 있습니다.
4:40 그래도 아직 이런 길이 남아 있다는게 참 고맙네요. 네. 피막길 [음악] 같은 느낌이 진짜 남아 있는 거는요 골목밖에 없습니다. [음악] 우와. 세상에 [음악] 지금은 휴일 낮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평일 점심 때면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 같고요. 저녁 시간에도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5:30 오른쪽 자리는 옛날 서울국장 자리입니다. 건물을 올린다고 공사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어이 거리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추억이 많은 곳입니다. 어 종로사가 어네 거리에 보면 어 예전에 단성가 있었죠. 지금은 골드 주올리 센터로 바뀌어 있는데요. 반성사 맞은 편에는 피카드리 극장이 있고요. 지금이 자리에는 서울국장이 있었고요. 이쪽에서 남산 방해하로 쭉 내려가다 보면 아 을지로 지나서 명보극장이 있고요. 그다음에 명보극장 대각선 맞은 편에 스카라 극장이 있었고요. 퇴계로 쪽으로 더 하면 정면에 대한극장이 있죠. 70년대 서울시내 주요 개방관이 모두 몰려 있었습니다. 추억의 동네입니다.
6:16 자,길 또 이어집니다. 아, 골목이 구글고불합니다. [음악] 그 예전 골목이 그냥 다 있어요. [음악] 근데 지구는 주로 공부랄지 철물점 그런 작은 가게나 공장 비슷한 것들이 들어와 있는데 사대문 안에서 옛날의 [음악]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동네가 아닐까 싶습니다.이 집도 보면 2층이잖아요. 예. 일제식이 약간 적상가옥의 느낌이
7:03 [음악] 좀 나는듯한 집입니다. 창문 위에 골로 가로대를 쭉든게 보이시죠? 나름 어 건물을 [음악] 지우면서 멋을 살리려고 했던 어 작은 디테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종사가 쪽으로 오니까 기계나 공구 관련된 가게들이 많이 나오네요. 밥집 말고도 [음악] 아마 새운산과 남아 있던 시절의 유산인 거 같습니다. 어쨌든이 안쪽 골목에는 이런 작은 가게들이 아직도 어 영업을 하면서 운영을 해 나가고 있어요. 어 미래에는 이런 골목조차 훌륭한 미래 유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음악] 하거든요.
7:50 우와! [음악] 하늘이 안 보입니다. [음악] 가까지 왔어요. >> 조선초의 시전 횡랑을 만들 때에는 회전교부터 시작해서 동대문까지 양옆으로 쭉 만들었거든요. 근데 언제부턴가 아마 전쟁 이후겠죠. 임지를 하는 이후에 그 남아 있는 흔적을 보면 왼쪽에 지금 종묘가 보이는데 어 종묘 앞 정도까지이
8:38 피막길 앞으로 해서 시전 상인들이 자리를 잡게 되고 어 지금 세운상가에서 동대운 방향으로 이쪽에는 시전 상인이 아닌 일반 상인들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종묘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이루는 곳에는 시전과는 다른 시장이 형성이 돼요. 예전에는 배우의 시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로 동대문 밖에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채소를 새벽에 들어와서 판매하는 시장이죠. 배우기 시장은 주로 야채와 채소를 취급했고요. 그 배우의 시장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죠. 그 유명한 광장 시장 배우기 시장에서 변화돼서 광장 시장이 된 거고요. 그다음에 광장 시장 지나면 동대문 종합 시장 있죠?
9:23 거기까지가 옛날 배우기 시장의 흔적입니다. 동대문 안쪽으로는 배우기 시장이 있었고요. 그다음에 남대문 바깥쪽으로 남대문하고 서서문 사이에는 7패 시장이라고 시장이 만들어지는데 거기는 내어물전 말고 외어물전 살아 있는 생선을 취급한다거나 용산이나 마포에서 가짜은 생선과 해산물들을 가지고 와서 거기서 판매하는 해산물 시장이 만들어집니다. 7패 시장이고요. 그 7패 시장이 후대까지 남은게 남대문 시장이죠.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입니다. [음악]
10:09 >> 제가 아까 경복궁이 뒤에 진산으로 배각을 품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모든 군궐이 뒤에다 진산을 품고 있다. 군걸 건물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산까지 하나의 건축물로 봐야 한다 말씀드렸는데요. 세운상가 앞에 왔어요. 세운상과 앞쪽에 종묘문이 보이고요. 자, 이로 와서 종묘를 한번 보시죠. 종묘의 정문이고요. 정문 뒤에 굉장히 큰 산을 머리 위에 하나이고 있습니다. 저게 진산이거든요. 보이는 그 높은 산이 북한산 보혈봉입니다. 이렇게 진산을 뒤에이고 있는 거는 왕실의 위험을 자연의 힘을 빌어서
10:55 같이 표현하려고 하는 그런도 있었고 풍수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뒤에 큰 산을 배경으로 있는 건 개경 만올 때도 송학산을 배경으로 해서 우뚝서 있죠. 그 품수가 경복과 종묘와 창도군과 조선의 군를 짓는데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어 종로에서 종료의 정전으로 가는 길이 약간 이렇게 구부러져 있죠. 반듯하게 수직으로 있지 않아요. 뒤에 있는 북한산 보연봉을 고래하였을 정문을 약간 각도를 맞춘 거죠. 그러다 보니까 종로하고는 그니까 각도가 틀어지게 되는 겁니다. 건물을 지을 듯 어 머리 위에 정확히 진산이 오도록 그렇게 배치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11:45 [음악] >> [음악] [음악] >> 예, 단성 앞까지 왔습니다. 추억의 단성사 극장 턱긴 하지만 지금은
12:32 추홀리 상가로 바뀌어 있고요. 무슨 표지판이 무지하게 많네요. 어, 단성사 역사표가 있고요. 좌포동청터, 천주교 신자 순교터 최시영 순교터 최시형이 포도청에 잡혀 있다 해서 순교했나 봅니다. 천주교 신자들도 병인 박해 때 어 많이 순교했나 보네요.요 단성 뒤편부터 도나무까지 이어지는 단성와 피카들이 뒷골목에 그 피막길이 또 이어집니다. 그 피막길로 또 가보겠습니다. [음악]
13:30 네. 단성사편으로 단성사에서 창덕궁 도나무 방향으로 옛날 피막길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전부 귀금속 상가 이런 형태로 되어 있고 간혹가 주택들이 조금 남아 있는데요. 도로가 굉장히 좁죠. 도나문까지 그 피막기를 따라서 한번 걸어 보겠습니다. 고나문로까지 우측에도 남아 [음악] 있고요. 좌측에도 남아 있습니다. 좌측에는 요즘 익선동의 그 일부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서울에서 임금을 또 가장 높은 곳이 돼 버려서 다가 걸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음악] 그쪽에 가서 양 방향에 피막길 흔적을 따라서 걷겠습니다.
14:16 [음악] [음악] 도나문노 피바길은 도나문노에는 피전 상인들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는 [음악] 상가로 활용되진 않았고요. 주로어요 행랑 만들어 놓은 곳엔 관청들이 [음악] 들어와서 일을 봤다고 하고요. 피막길은 그래도 있었고요. 지금도 양 옆에 여전히 예전과 똑같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피막길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음악] 간판은 서술락길이라고 되 있습니다. 물론 [음악] 서술락길은 종묘 바로
15:01 붙어서 저쪽 편을 가르치는데 이런 간판이 붙어 있네요. >> [음악] [음악] >> 조용해서 좋습니다. [음악] 빅선동 상권이 도로 건덕까지 넘어와서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요. 그래도 [음악] 아직 이쪽 편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라서 걷기에 괜찮습니다.
15:47 [음악] 자, 여기까지 하고 대로변으로 나갈게요. [음악] 아이구야, 오늘은 망했다. 아까 종묘편을 찍어 놓기를 잘했네요. [음악] 창덕궁 도나무는 지금 보수 공사한다고 전부 가림막을 세워놔서 뒤산이 안 보입니다. 저 공사가 끝나서 도로 한가운데 조정에서 [음악] 보면 도나문이 있고 뒤로 높은 봉우리가 보일 거거든요. [음악] 종묘량 똑같이 북한산 보연봉입니다. 실물로 지금은 볼 수 없는게 안타깝네요. [음악] 보나문 쪽에서 종로삼과 [음악] 옆 방향으로 다시 가고 있는데요. 가기
16:33 전에 종로구 재향 군인의 건물이 보입니다. 그냥 제한 구문의 건물인데요. 어 종로구 재앙 군인의 자리에 조선노동당 사무서 터라고 되어 있네요. 깜놀게 뭘까요? 조선노동당이라고 하면 현재 북한에 있는 조선 노동당은 아닐 테고 아마 남노당을 가르키는 거 같아요. 남노당 당사로 쓰였던 건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 도나문에서 종로삼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음악] 앞에 보이는 좁은 골목길이 도나무 높이길 서쪽 방향 되겠습니다. [음악] 아 요로 쭉 내려가다 보면 익선동하고 만나게 돼 있죠. 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너무나 [음악] 핫한 익선동이라서 사람들이
17:19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좀 이런 시간이라 조용합니다. [음악] 저는 서울에서 제일 볼 만한게 [음악] 골목이라고 생각해요. 강남에 널찍하고 큰 대로하고 네모 반대하게 있는 골목 말고요. 구불구불한 [음악] 이런 골목의 실제 옛날에 흔적도 남아 있고요. 그 안에 사람사란 이야기도 남아 있고요. 어, 걷다 보면 덩치를 느낄 수가 있죠. 추억도 떠오르고요. [음악] 오른쪽에 있는 피막길은 비교독 직선으로 뚫려 있는데요. 왼쪽은 길이 아주 구부정합니다.
18:04 >> 어 조선초에 창공을 짓고 도나문 롤을 만들고 도나문노 양옆에 선으로 피막길를 냈어요. 근데 여기는 피막길 안쪽에 있는 구부러진 길이거든요. 구불구불합니다. [음악] 그 지금 봐도 이렇게 휘어져 있죠. 저 앞쪽으로 하면 더 휘어져 있거든요. 직선 도어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거고요. 구부러진 거는 자연 지흥에 따라서 원래부터 있던 길이죠. 피막길은 조선 초에 만들었잖아요. 이거는 우리 시대 때부터 있던 길입니다. [음악] 도시 건축을 연구하는 어떤 분이이 길이 고려 때부터 있던 길이라는 거를 어 나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발표한 글을 본 적이 있거든요. 당시에 고류 때는 서울을 남경이라고 불렀죠. 그 남경은
18:52 상덕궁 쪽부터 [음악] 경복궁까지 그 사이에 있었거든요.이 길은 당시에 [음악] 배각에서 내려오던 물길이 지나가는 곳이에요.이 밑에 지금도 그 개천 물길이 연결돼 있습니다. 하수구가이 물길을 따라서 길이 있었던 거죠. 고려 시대 때부터 남경의 골목길. 현재까지 고려 시대의 골목길로 서울시내 남아 있는 길은 거의 위하지 않나 싶네요. >> [음악] [음악]
19:43 >> 네. 네. 이제 도로가 넓어지네요. 피막길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종로와 피막길 걷기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오늘 날이 좀 더워서 힘들었는데요. 다음에 더 재미있는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