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초월자ㅣ책 읽어주는 남자ㅣ잠잘 때 듣는ㅣ오디오북 ASMRㅣ흔들릴 때 읽는

간략한 요약

이 영상에서는 니체의 「초월자」를 중심으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공유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독은 자유의 징표이며,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 니체의 철학적 문장이 현대적 관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설명
  • 고독과 인내의 필요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오프닝 멘트

현준은 안부를 전하며 이번 주의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따뜻한 날씨 속에서 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소회를 나누면서, 사람의 마음은 계절과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잘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고, 오늘 다룰 책인 니체의 「초월자」에 대해 소개한다. 이 책은 남이 정해놓은 길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니체의 초월자

현준은 니체의 초월자 개념을 설명하며, 자아 실현과 고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독은 자유를 의미하며, 주체적 삶을 사는 사람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자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이 고독이 전략적으로는 나를 강하게 하고, 고독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기 발견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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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현준입니다. 이번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날이 따뜻해서 주말에 나들이 다녀오신 분 많을 것 같은데 저도 어 날이 좋아서 나드리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살짝 덥더라고요. 이제 아 이제 봄이 벌써 지나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더워서 예 반팔을 입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진짜 그래요. 이제 벚꽃이 치고 나무 끝에서 초록빛 입들이 올라오는 걸 보고 있으면 아 이제는 정말

0:46 여름으로 향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참 그런 거 같아요. 계절은 늘 정신을 차려 보면 바뀌어 있는 거 같습니다. 어느 날 문득 곁으로 와 있죠. 그런데요. 사람의 마음은 꼭 계절을 따라가는 거 하지 않습니다. 바깥은 봄이고 여름인데 내 안은 아직 겨울 순간들이 많죠. 시간이 흐르고 계절도 바뀌고 하루하루는 분명히 지나가고 있는데 정작 마음은 아직 같은 자리에서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1:32 그래서 유독 어 이렇게 날씨 좋은 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며 살고 있나? 나는 내 목소리를 따라가며 살고 있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어 볼 책은요. 히어 출판사에서 나온 니체 초월자란 책입니다. 제목만 들으면 조금 단단하고 멀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왜냐면 초월자라는 말이 주는 울림이 있으니까요. 그런데이 책은 특별한 존재가 되라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요.

2:18 오히려 자기 삶을 자기의 기준대로 살아가라는 뉘앙스의 말을 담고 있습니다. 남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고통이나 흔들림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마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를 말해 주는 책인 거 같아요. 읽다 보면요.이 이 책이 굉장히 철학적이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의 삶과 굉장히 많이 다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니체는 현대 과학자도 심리학자도

3:06 아니지만 인간이 왜 흔들리는지 왜 남의 시선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지 그리고 어떤 고통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어떤 고통은 사람을 좀 더 깊어지게도 하는지에 대해서 아주 깊은 통찰로 바라보는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니체의이 문장은 아주 오래된 말인데도 불구하고 낡게 들린다기보다는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말처럼 저에겐 들렸습니다. 현대 과학이, 현대 심리학이 많은 연구 결과들로 쌓아왔던 결론을 니체는 철학적 사유로

3:54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그런데 어 요즘에 밝혀진 사실들인데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오늘 함께 읽게 될 문장들을 들으시다 보면 진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것은 정답을 알려 주는 문장이라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내가 지금 어디에서 있는지, 내가 지금 어떤 기준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이라서

4:41 그렇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 주는게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방법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라 그랬었던 거 같아요. 그래요. 이미 봄은 왔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그런 계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시간은 뭔가를 빨리 바꾸려 하기보다는 잠깐 조용히 내 마음의 계절이 어떤 색으로 그리고 어떤 공기로 물들어 있는지 한번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5:26 결국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내 마음이 전쟁 터고 내 마음이 겨울이면 밖퀴 아무리 봄이라도 밖퀴 아무리 따뜻하더라도 마음 추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오늘 같이 들어 보시고 또 조금 내 마음을 좀 내려놓는 그리고 또 편해질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 딱딱하고 무거웠을 수도 있다라는

6:12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가끔 이런게 저는 좋더라고요.음 음. 한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고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 그런 시간을 한번 좀 가져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소개해 드릴게요. 니체 초월자. 고덕은 자기 삶을 책임진 사람의 몫이다. 무리에 섞여 있는 자는 결코 그

6:58 무게를 알지 못한다. 남들이 가르키는 길을 따라가기에 자신의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는 홀로 지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길 수 없고 누구의 핑계도 삼지 않는다. 그야말로 고독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늘 외롭다. 그 길은 누구도 함께 걸어 주지

7:46 않는다. 친구조차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며 고통을 대신 나눠 주지도 않는다. 위험을 홀로 감수해야 하고 부른과도 혼자 맞어야 한다. 그러나 혹독한 그 길만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땅속을 파는 두더지처럼 홀로 파고되는 것이다. 아주 치흙 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달련한다. 하지만 그 고덕은 나를 파괴하지 않고

8:31 오히려 나를 경고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고독을 병으로 여긴다. 외로움을 피해야 할 감옥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고독은 자유의 징표다. 남이 대신 걸어주지 않는 길.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길 위에서만 구독이 따른다. 모르는 자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자다. 고덕은 자기 자신의 삶을 쥐고 있다는 증표다. 인간은 고덕을 두려워하고

9:17 외로움 없는 삶을 갈망하지만 외로움이 없다면 길도 없다. 편안함 속에 머무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자는 반드시 고덕을 통과해야 한다.이 이 고덕은 단순한 결핍이나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나의 시대가 다가올 거라는 전조 증상이다. 뿌리 속에서는 내 모습이 흐려지고 타인의 눈빛에

10:03 외곡된 형상만이 보인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숨길 수도 없고 꾸밀 수도 없으며 변명할 수도 없다. 오직 날 것에 나와 정면으로 부딪친다. 고덕은 인간을 약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약한 자는 무너지지만 강해질 준비가 된 자는 단련되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사람은 반드시 고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짐을 끝내 사랑하게 되는

10:50 순간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자기만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고덕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삶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로 고통이다. 고통은 삶의 필연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차례로 찾아온다. 그러나 고통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찾아오는 건 아니다.

11:38 고통 속에서 거기서 무너지는 이유는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버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내가 힘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아무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폭풍은 언제나 약한 가지부터 꺾는다. 바람이 몰아치면 잎사귀는 흩날리고 줄기가 약한 나무부터 부러진다. 그렇다면 누가 버티겠는가? 바로 뿌리를 깊게 내린 남다. 흔들릴 수는 있어도 쓰러지지는 않는다.

12:26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끝까지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자만이 결국 승리를 거둔다.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내를 수동적인 힘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인내는 능동적인 힘이다. 삶의 압력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건 강한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13:13 오히려 버티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쉽다. 버티는 것이 훨씬 어렵다. 역사의 기록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수많은 민족과 왕국이 흑망을 거듭하는 동안 일부는 오랫동안 버텼다. 그들의 무기는 화려한 검이 아니라 인내였다. 추방과 박해, 멸시와 구력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자들만이 조엄을 지켜냈다. 자연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작은 씨앗은 처음엔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다.

13:59 그러나 그 작은 씨앗은 버틴다. 비가 적게 내려도 햇볕이 뜨거워도 바람이 매서워도 뿌리를 내린다. 수년이 지나면 그 뿌리는 바위를 갈라내고 마침내 작은 싹은 나무로 자란다. 약해 보이는 씨앗이 결국 바위를 이긴다. 그게 버짐의 힘이다. 우리 삶에도 같은 법칙이 작동한다. 학문을 익히는 일, 기술을 배우는 일, 관계를 이어가는 일. 어느 하나 인내없이 이루어지지

14:45 않는다. 잠시 불타는 열정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는 것이다. 길을 완주하는 자는 언제나 버틴 자다. 많은 이들이 포기하는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내뒤진 사람만이 목적지에 닿는다.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이어가는 사람은 적다. 악기를 배우는이는 많지만 몇 해가 지나도 연주를 계속하는이는 드물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끝내 책을 완성하는 사람은 극소스다.

15:33 이유는 단 하나다.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지만 끝까지 버티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인내는 고독을 요구할 것이다. 때로는 타인의 조롱, 주변의 무관심, 가까운 이들의 불신조차 감당해야 할 것이다. 승리는 재능의 것이 아니다. 재능은 빠르게 빛날 수 있으나 오래 타오르지 못한다. 승리는 내 것이다. 고통을 견디고 시간을 견디고

16:19 불안을 견디는 자만이 결실을 본다. 인내 없는 결실은 없다. 버티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버티는 자는 끝내 도착한다. 버티는 자가 결국 이긴다. 인내는 삶의 가장 큰 무기다. 삶이 무거운 이유는 되게 단순하다. 필요 없는 것을 스스로 모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손에 들린 짐은 많아 보이지만 정작 꼭 필요한 건 그다지 많지 않은

17:07 것과 똑같다. 사람은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내려놓지 못하기에 삶은 무겁다. 욕망은 본래 단순하다. 목이 마르면 물을 원하고 배고프면 음식을 원한다. 그러나 인간은 피를 넘어서 더 좋은 맛, 더 화려한 옷, 더 넓은 집을 원한다. 그렇게 불필요한 것을 계속 붙잡을수록 삶은 두껍고 무거워진다. 욕망을 줄이는 순간 삶은 달라질

17:54 것이다. 딱 나에게 필요한만큼만 원하면 삶이 한결 가볍다. 많은 수요는 편안함을 주는 듯 보이나 실제로 관리하는 것에 오는 필요와 불안을 동반한다. 수많은 물건을 한식 관리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언제 이를까 싶어 훨씬 더 두려워진다. 적게 가지면 단순해지고 단순함 속에서 평온히 찾아온다. 욕망을 줄인다는 건 결핍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18:40 오히려 더 충만해지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으면 남아 있는 것의 가치가 오히려 선명해진다. 한 개의 빵이 진짜 배고픔을 채워주듯 한 사람의 우정이 많은 관계보다 더 깊은 의미를 준다. 욕망을 줄이는 걸 손해라 생각하지 말라. 패배도 아니다. 욕망을 줄이는 건 오히려 회복이다.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 삶은 가볍고 선명하기 때문이다. 삶을 가볍게 하고 싶다면

19:25 필요한만큼만 원하라. 과한 소유는 삶을 무겁게 만들고 절제된 소유는 삶을 가볍게 한다. 욕망을 줄이면 짐이 줄어들고 짐이 줄어들면 삶은 가벼워진다. 사람들은 흔히 사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추암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꽃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

20:12 그 아름다움은 꽃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감정 속에 있다. 어떤이는 한송이의 장미를 보고 환일을 느끼지만 다른이는 가시에 찔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같은 장미가 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고 한 사람에게는 불쾌함이다. 장미의 성질은 고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추암도 마찬가지다. 폐허가 된 건물을 보고 어떤이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또 다른 어떤이는

20:57 그 안에서 역사의 무게를 발견한다. 똑같은 자네가 누구에게는 깊이 대상이 되고 누구에게는 감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걸래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다.이 통찰은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사람은 소박한 시골길을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만 감탄을 한다. 똑같은 풍경이 누군가에겐 치루함이고

21:43 다른 누군가에겐 기쁨이 되는 것이다.이 차이는 사물이 아니다. 감각하는 주체의 마음에 있다. 세상은 몰래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세상은 단지 우리가 빛깔을 더히는 무대일 뿐이다. 내가 마음을 열면 서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다. 그러나 마음이 다치면 가장 화려한 것에서도 추함을 느낀다. 사물은 거울뿐 그 안에 비친 건

22:30 나의 내면이다. 정말 단 하나의 상처도 없이 완벽한 대충을 이루고 있는 사과를 보면 무슨 기분이 들겠는가?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빨간 사과를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에 빤히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하면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완벽한 존재는 흠잡을 것이 없지만 그 흠없음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23:18 오히려 거리감을 느낀다. 흠이 없기에 감탄할 수는 있어도 다가갈 수는 없다. 매끈하고 빈틈 없는 존재는 친근하지 않다. 불안전함은 인간 다음의 증거다. 작은 실수. 서은 말투, 불균형한 성격, 쉽게 드러나는 감정, 그리고 어떤 상처들. 바로 이런 것이 사람을 진짜 인간으로 만든다. 완벽하게 계산된 태도와 허점 없는 모습은 처음엔 인상적일 수 있으나

24:04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그 속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함은 공감을 낳는다. 타인의 약점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본다. 누군가 더듬거리고 조조하고 상처 있고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 친근함을 느낀다. 어떤 사람을 향해 끌리는 건 그가 결코 숨기지 못하는 작은 결함일 때가 많다. 완벽한 사람을 모방하고 싶어 할 순 있지만 결국 마음을 열고 다가가게 되는 건

24:51 불안전한 사람이다. 불완전함은 장점을 더 돋보이게 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드러나듯 결점이 있기에 미덕이 더 뚜렷해진다. 거칠고 불안정한 사람이 한 순간 보이는 진지함은 커다란 울림을 준다. 늘 침착한 사람의 냉정함보다 흔들리던 사람이 보여주는 단단함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완벽하게 계산된 연설보다 오늘한 고백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25:37 완벽한 연주보다 순간의 실수와 떨림이 섞인 연주에서 진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완벽한 건 이미 완성되어 더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나 불안전한 존재는 계속 변할 수 있고 그 변화를 통해서 성숙한다. 인간의 이야기는 불완전함에서 시작되고 그 불완전함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바로이 끝나지 않는 과정을 우리는 인간답다고 부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26:23 불안전함을 부끄러움으로 여긴다. 흠을 감추려 하고 약점을 가리려 한다. 예술가 결점을 작품 속에서 오히려 강렬한 대비로 활용하듯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면서 그걸 통해 장점을 돋보이게 만들고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불안전한 곳에 있다는 건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과 똑같은 말이다. 흠이 있기에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다.

27:09 불안전함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다. 그러니 불안전함을 거부하지 말자. 그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매우 시작이자 변화의 기회다. 완벽은 다혀 있으나 불안전함은 열려 있다. 인간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살아 있고 성장하는 것이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상처받고 흔들리며 사는 것이 그게 삶이다.

28:01 진짜 강한 사람은 거칠례가 필요 없다. 힘은 본래 안에 있는 것이지 외부의 장식으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 위험을 꾸미는 자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불안을 가리려는 자다. 거치려는 약자의 방패다. 느린 걸음부터 진지한 표정. 복잡하게 돌려 말하는 어투.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려는 본능까지.이 이 모든 것은 근엄마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음의 소심함을 덮어두려고 연기하는 것이다.

28:48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게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대로 진짜 강한 사람은 아무 장식도 필요지 않다. 목소리를 꾸미지 않아도 무게가 있고 태도를 과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움직인다. 가진 것을 자랑하고 과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의 주변에 머은다. 진짜 강한 사람의 힘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그는 정직하게 말할 수 있고 솔직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29:36 강한 사람은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 거칠래로 존경을 세려는 자는 존경을 얻더라도 일시적이다. 두려움이나 과장으로 세운 권위는 언젠간 무너진다. 사람들은 처음엔 근한 외양의 주눅이 들지만 곧 그 안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본질이 없는 힘은 존경을 낳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강한 사람의 존경은 시장은 미미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깊어진다.

30:24 조용히 있어도 주변은 그의 기운을 느끼고 말이 적어도 그의 한마디는 더 무겁게 들린다. 자신을 크게 보이려는 욕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린다. 약한 자는 존경을 흉내내려 하고 강한 자는 존경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약한 자는 두려움을 팔아 거리를 세우지만 강한 자는 두려움조차 이용하지 않는다. 약한 자는 자신이 가진 걸 과시하지만

31:12 강한 자는 굳이 자신이 가진 걸 과시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결국 누군가를 따르게 되는 건 거칠례 때문이 아니라 본질 때문이다. 누군가가 지나치게 자신을 꾸미거나 과시한다면 경계하라. 그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쟁취하고 싶은 것이 명확히 있는 비겁하고 교활한 사람일 수 있다. 꾸미지 않아도 무게가 느껴지는 그런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진짜로 강한 사람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

31:57 두려움은 나약한 감정처럼 느껴질 것이다. 인간의 두려움을 갖는 건 단순히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는 깊은 감각의 발현이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위험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간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두려운 걸 마주하면 눈이 커진다. 보이지 않던 위험을 감지하게 되고 숨은 징구를 읽게 된다. 숲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릴 때 두려움은 그 몸을 움치리게 하는

32:42 감정이 아니다. 위험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준비하게 만드는 신호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그 두려움을 단순히 반사적으로 느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유로 연결한다. 무엇이 나를 위협하는가?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 두려움은 질문을 만들어 내고 그 질문은 나를 구한다. 두려움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세련된 형태다. 무모하게 달려드는 연기는 한 순간에 힘을 보여 줄 수는 있으나

33:31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두려움은 멈추고 숨을 고르게 하며 발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살피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오래 버티게 한 힘이다. 준비할 시간과 선택할 시간, 스스로 다잡을 시간을 준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무모하다. 위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돌진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청약하지 못하는 자는 용감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34:17 두려움은 위험이 있다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외면하거나 그곳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두려움만큼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위험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내가 가진 힘과 한계를 마주한다. 두려움은 내게 물을 것이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이 이 질문은 회피하는 자에겐 족세가 되지만 정직하게 응시하는 자에겐 성장의 계기가 된다.

35:02 두려움을 똑바로 직시하고 넘어설 때 비로소 자기 극복이 시작된다. 인간은 두려움을 통해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사유하며 더 단단히 살아남는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시련을 겪으면 인간은 원망이란 걸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원망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작았다가 어느 순간엔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35:49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다타거나 세상을 미워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겪은 일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원망은 생각처럼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습관이다. 원망이란 감정이 나를 낳게 하고 있나?이 이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 보면 쉽게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본뒤 불행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설명하면 덜 괴롭기 때문이다.

36:35 그러나 설명은 언제나 그 고통을 더 잔인하게 만든다. 이해하려 했쓰지만 삶은 대부분 설명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살다 보면 불공평한 일, 설명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결과는 초라하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라는 사실에 갇힌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왜라고 묻는게 아니라 어떻게로 옮겨가는 순간 시작된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보다.이 상황을 어떻게 다시 헤쳐 나갈

37:21 것인가를 묻는 것이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원망은 감정이고 의제는 선택이다. 감정은 하루를 소비하지만 의지는 하루를 쌓아 올린다.이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당신도 삶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삶은 공평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38:07 삶은 반응하는 법을 배우게 만드는 장치다. 상처를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좌절을 통해서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다. 삶은 친절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무엇보다 정직하다. 내가 해결하고자 앞으로 나아가면 길이 열리고 멈추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린다. 원망은 나를 그 자리에 굳게 만드는 감정이다. 누구에게나 절망을 찾아온다. 그 순간엔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을

38:53 것 같고 앞으로의 시간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해야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하다.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어떤 속도이든 하루를 지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 단순한 행위가 모든 회복의 시작이다. 한 걸음 내디면 생각이 따라온다. 그러나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

39:42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라고 묻지만 삶은 그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삶은 말이 없고 대신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잡을지 놓칠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선택이 쌓이면 방향이 되고 방향이 쌓이면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그러니 세상을 탓타기보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라. 삶을 바꾸는 건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40:27 그래도 살아보자는 아주 단순한 태도다.이 태도는 불안 자체를 없애지는 않겠지만 불행을 감당할 수 있는 나를 만든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다시 한번 시도하는 자에게는 삶은 언제나 그 사람의 편이다.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견뎌내라. 삶을 원망하기보단 다시 시작하라.

41:18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건 무엇인가? 돈 지위 명예 철학 철학적 사유, 진리, 그 무엇도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 즉 내 생각을 가장 사랑한다. 그 사랑은 애착에 가깝다. 사람이 신념을 지킬 때 보이는 열정은 자기 확신을 잃지 않으려는 방어제일 뿐인데 말이다. 누군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그것이 단순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생각을 위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42:06 불쾌해진다. 논쟁의 목적은 진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지켜내는 것으로 변한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그 생각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타인과 자신을 설득할 논리를 펼치지만 그 논리의 방향은 이미 정해 놓은 결론으로 향한다. 새로운 의견이 등장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한다. 하나는 거부. 다른 하나는 재해석이다. 거부는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막기 위해 벽을 치는 것이기에

42:54 단순한 방어에 속한다. 제석은 더 교묘하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결국 내 생각 안에서 자신에게 맞게 다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이 두 가지의 본질은 똑같다. 다른 이의 관점을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내 생각의 테두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반대되는 논리에 부딪히면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존심이 흔들린다.

43:42 자신의 생각을 돌보고 지키면서 살기에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마치 자아 전체가 위협받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내 생각을 사랑할수록 그 생각이 나를 좁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지킬 때 강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새로운 걸 받아들의 힘을 잃고 객관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신념을 지키는 일과 자기 생각이 갇히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44:31 신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다. 생각을 도구로 쓰며 언제든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생각에 갇힌 사람은 생각을 신처럼 여긴다. 오음에 대한 확신이 두려움을 덮고 의심을 부정으로 여긴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에 바쁘다. 신념을 지키는 건 삶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고 자기 생각에 갇치는 건 스스로 벽을 쌓는 일이다.

45:17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우상숭배로 변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나는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되 그 생각에 얽매이지는 말아야 한다. 자기 삶을 책임진 사람의 몫이다. 무리에 섞여 있는 자는 결코 그

46:03 무게를 알지 못한다. 남들이 가르키는 길을 따라가기에 자신의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는 홀로 지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길 수 없고 누구의 핑계도 삼지 않는다. 그야말로 고독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늘 외롭다. 그 길은 누구도 함께 걸어주지

46:50 않는다. 친구조차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며 고통을 대신 나눠 주지도 않는다. 위험을 홀로 감수해야 하고 부른과도 혼자 맞서야 한다. 그러나 혹독한 그 길만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땅속을 파는 두더지처럼 홀로 파고되는 것이다. 아주 치흙 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달려난다. 하지만 그 고덕은 나를 파괴하지 않고

47:35 오히려 나를 경고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고독을 병으로 여긴다. 외로움을 피해야 할 감옥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고독은 자유의 징표다. 남이 대신 걸어주지 않는 길.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길 위에서만 구독이 따른다. 구독을 모르는 자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자다. 고독은 자기 자신의 삶을 쥐고 있다는 증표다. 인간은 고덕을 두려워하고

48:21 외로움 없는 삶을 갈망하지만 외로움이 없다면 길도 없다. 편안함 속에 머무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자는 반드시 고덕을 통과해야 한다.이 이 고덕은 단순한 결핍이나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나의 시대가 다가올 거라는 전조 증상이다. 뿌리 속에서는 내 모습이 흐려지고 타인의 눈빛에

49:08 외곡된 형상만이 보인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숨길 수도 없고 꾸밀 수도 없으며 변명할 수도 없다. 오직 날 것에 나와 정면으로 부딪친다. 고덕은 인간을 약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약한 자는 무너지지만 강해질 준비가 된 자는 단련되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사람은 반드시 고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짐을 끝내 사랑하게 되는

49:55 순간 그 누구도 다할 수 없는 자기만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고덕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삶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로 고통이다. 고통은 삶의 필연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차례로 찾아온다. 그러나 고통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찾아오는 건 아니다.

50:43 고통 속에서 거기서 무너지는 이유는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버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인내가 힘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아무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폭풍은 언제나 약한 가지부터 꺾는다. 바람이 몰아치면 잎사귀는 흩날리고 줄기가 약한 나무부터 부러진다. 그렇다면 누가 버티겠는가? 바로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다. 흔들릴 수는 있어도 쓰러지지는 않는다.

51:31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끝까지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자만이 결국 승리를 거둔다. 진내는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내를 수동적인 힘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인내는 능동적인 힘이다. 삶의 압력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건 강한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52:18 오히려 버티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쉽다. 버티는 것이 훨씬 어렵다. 역사의 기록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수많은 민족과 왕국이 흑망을 거듭하는 동안 일부는 오랫동안 버텼다. 그들의 무기는 화려한 검이 아니라 인내였다. 추방과 박해, 멸시와 구력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자들만이 존엄을 지켜냈다. 자연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작은 씨앗은 처음엔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53:04 그러나 그 작은 씨앗은 버틴다. 비가 적게 내려도 햇볕이 뜨거워도 바람이 매서워도 뿌리를 내린다. 수년이 지나면 그 뿌리는 바위를 갈라내고 마침내 작은 싹은 나무로 자란다. 약해 보이는 씨앗이 결국 바위를 이긴다. 그게 버의 힘이다. 우리 삶에도 같은 법칙이 작동한다. 학문을 익히는 일, 기술을 배우는 일, 관계를 이어가는 일. 어느 하나 인내없이 이루어지지

53:50 않는다. 잠시 불타는 열정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는 것이다. 길을 완주하는 자는 언제나 버틴 자다. 많은 이들이 포기하는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내뒤진 사람만이 목적지에 닿는다.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이어가는 사람은 적다. 악기를 배우는이는 많지만 몇 해가 지나도 연주를 계속하는이는 드물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끝내 책을 완성하는 사람은 극소스다.

54:38 이유는 단 하나다. 거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지만 끝까지 버티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인내는 고독을 요구할 것이다. 때로는 타인의 조롱, 주변의 무관심, 가까운 이들의 불신조차 감당해야 할 것이다. 승리는 재능의 것이 아니다. 재능은 빠르게 빛날 수 있으나 오래 타오르지 못한다. 승리는 내 것이다. 고통을 견디고 시간을 견디고

55:24 불안을 견디는 자만이 결실을 본다. 인내없는 결실은 없다. 버티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버티는 자는 끝내 도착한다. 버티는 자가 결국 이긴다. 인내는 삶의 가장 큰 무기다. 삶이 무거운 이유는 되게 단순하다. 필요 없는 것을 스스로 모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손에 들린 짐은 많아 보이지만 정작 꼭 필요한 건 그다지 많지 않은

56:12 것과 똑같다. 사람은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내려놓지 못하기에 삶은 무겁다. 욕망은 본래 단순하다. 목이 마르면 물을 원하고 배고프면 음식을 원한다. 그러나 인간은 피요를 넘어서 더 좋은 맛, 더 화려한 옷, 더 넓은 집을 원한다. 그렇게 불필요한 것을 계속 붙잡을수록 삶은 특겁고 무거워진다. 욕망을 줄이는 순간 삶은 달라질

56:59 것이다. 딱 나에게 필요한만큼만 원하면 삶의 한결 가볍다. 많은 수요는 편안함을 주는 듯 보이나 실제로 관리하는 것에 오는 필요와 불안을 동반한다. 수많은 물건을 하나씩 관리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언제 이를까 싶어 훨씬 더 두려워진다. 적게 가지면 단순해지고 단순함 속에서 평온히 찾아온다. 욕망을 줄인다는 건 결핍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57:45 오히려 더 충만해지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으면 남아 있는 것의 가치가 오히려 선명해진다. 한 개의 빵이 진짜 배고픔을 채워주듯 한 사람의 우정이 많은 관계보다 더 깊은 의미를 준다. 욕망을 줄이는 걸 손해라 생각하지 말라. 패배도 아니다. 욕망을 줄이는 건 오히려 회복이다.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 삶은 가볍고 선명하기 때문이다. 삶을 가볍게 하고 싶다면

58:30 필요한만큼만 원하라. 과한 소유는 삶을 무겁게 만들고 절제된 소유는 삶을 가볍게 한다. 욕망을 줄이면 짐이 줄어들고 짐이 줄어들면 삶은 가벼워진다. 사람들은 흔히 사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추암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꽃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

59:17 그 아름다움은 꽃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감정 속에 있다. 어떤이는 한송이의 장미를 보고 환일을 느끼지만 다른이는 가시에 찔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같은 장미가 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고 한 사람에게는 불쾌함이다. 장미의 성질은 고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추암도 마찬가지다. 폐허가 된 건물을 보고 어떤이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또 다른 어떤이는

1:00:02 그 안에서 역사의 무게를 발견한다. 똑같은 자네가 누구에게는 깊이 대상이 되고 누구에게는 감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걸래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다.이 통찰은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사람은 소박한 시골길을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만 감탄을 한다. 똑같은 풍경이 누군가에겐 치루함이고

1:00:48 다른 누군가에겐 기쁨이 되는 것이다.이 차이는 사물이 아니다. 감각하는 주체의 마음에 있다. 세상은 몰래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세상은 단지 우리가 빛가를 더히는 무대일 뿐이다. 내가 마음을 열면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다. 그러나 마음이 다치면 가장 화려한 것에서도 추함을 느낀다. 사물은 거울뿐 비친 건

1:01:35 나의 내면이다. 정말 단나의 상처도 없이 완벽한 대충을 이루고 있는 사과를 보면 무슨 기분이 들겠는가?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빨간 사과를 보면서 아름답는 생각에 많이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하면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완벽한 존재는 흠잡을 것이 없지만 그 흠없음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1:02:23 오히려 거리감을 느낀다. 흠이 없기에 감탄할 수는 있어도 다가갈 수는 없다. 매끈하고 빈틈 없는 존재는 친근하지 않다. 불안전함은 인간 다음의 증거다. 작은 실수. 서은 말투, 불균형한 성격, 쉽게 드러나는 감정 그리고 어떤 상처들. 바로 이런 것이 사람을 진짜 인간으로 만든다. 완벽하게 계산된 태도와 허점 없는 모습은 처음엔 인상적일 수 있으나

1:03:09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그 속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함은 공감을 낳는다. 타인의 약점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본다. 누군가 더듬거리고 조조하고 상처 있고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 친근함을 느낀다. 어떤 사람을 향해 끌리는 건 그가 결코 숨기지 못하는 작은 결함일 때가 많다. 완벽한 사람을 모방하고 싶어 할 순 있지만 결국 마음을 열고 다가가게 되는 건

1:03:56 불완전한 사람이다. 불완전함은 장점을 더 돋보이게 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드러나듯 결점이 있기에 미덕이 더 뚜렷해진다. 거칠고 불안정한 사람이 한 순간 보이는 진지함은 커다란 울림을 준다. 늘 침착한 사람의 냉정함보다 흔들리던 사람이 보여주는 단단함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완벽하게 계산된 연설보다 오늘한 고백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1:04:41 완벽한 연주보다 순간의 실수와 떨림이 섞인 연주에서 진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완벽한 건 이미 완성되어 더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나 불완전한 존재는 계속 변할 수 있고 그 변화를 통해서 성숙한다. 인간의 이야기는 불완전함에서 시작되고 그 불완전함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바로이 끝나지 않는 과정을 우리는 인간답다고 부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1:05:28 불완전함을 부끄러움으로 여긴다. 흠을 감추려 하고 약점을 가리려 한다. 이술가가 결정을 작품 속에서 오히려 강렬한 대비로 활용하듯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면서 그걸 통해 장점을 돋보이게 만들고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불안전한 곳에 있다는 건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과 똑같은 말이다. 흠이 있기에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다.

1:06:13 불완전함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다. 그러니 불완전함을 거부하지 말자. 그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매우 시작이자 변화의 기회다. 완벽은 다혀 있으나 불안전함은 열려 있다. 인간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살아 있고 성장하는 것이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상처받고 흔들리며 사는 것이 그게 삶이다.

1:07:05 진짜 강한 사람은 거칠례가 필요 없다. 힘은 본래 안에 있는 것이지 외부의 장식으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 위험을 꾸미는 자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불안을 가리려는 자다. 거치려는 약자의 방패다. 느린 걸음부터 진지한 표정. 복잡하게 돌려 말하는 어투.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려는 본능까지.이 이 모든 것은 근엄마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음의 소심함을 덮어두려고 연기하는 것이다.

1:07:52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게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대로 진짜 강한 사람은 아무 장식도 필요지 않다. 목소리를 꾸미지 않아도 무게가 있고 태도를 과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움직인다. 가진 것을 자랑하고 과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의 주변에 머은다. 진짜 강한 사람의 힘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그는 정직하게 말할 수 있고 솔직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1:08:40 강한 사람은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 거칠래로 존경을 세려는 자는 존경을 얻더라도 일시적이다. 두려움이나 과장으로 세운 권니는 언젠간 무너진다. 사람들은 처음엔 근한 외양의 주눅이 들지만 곧 그 안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본질이 없는 힘은 존경을 낳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강한 사람의 존경은 시장은 미미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깊어진다.

1:09:29 조용히 있어도 주변은 그의 기운을 느끼고 말이 적어도 그의 한마디는 더 무겁게 들린다. 자신을 크게 보이려는 욕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린다. 약한 자는 존경을 흉내내려 하고 강한 자는 존경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약한 자는 두려움을 팔아 거리를 세우지만 강한 자는 두려움조차 이용하지 않는다. 약한 자는 자신이 가진 걸 과시하지만

1:10:16 강한 자는 굳이 자신이 가진 걸 과시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결국 누군가를 따르게 되는 건 거칠례 때문이 아니라 본질 때문이다. 누군가가 지나치게 자신을 꾸미거나 과시한다면 경계하라. 그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쟁취하고 싶은 것이 명확히 있는 비겁하고 교활한 사람일 수 있다. 꾸미지 않아도 무게가 느껴지는 그런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진짜로 강한 사람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

1:11:02 두려움은 나약한 감정처럼 느껴질 것이다. 인간의 두려움을 갖는 건 단순히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는 깊은 감각의 발현이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위험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간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두려운 걸 마주하면 눈이 커진다. 보이지 않던 위험을 감지하게 되고 숨은 직구를 읽게 된다. 숲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릴 때 두려움은 그저 몸을 움치리게 하는

1:11:47 감정이 아니다. 위험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준비하게 만드는 신호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그 두려움을 단순히 반사적으로 느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유로 연결한다. 무엇이 나를 위협하는가?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 두려움은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 질문은 나를 구한다. 두려움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세련된 형태다. 무모하게 달려드는 연기는 한 순간에 힘을 보여 줄 수는 있으나

1:12:36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두려움은 멈추고 숨을 고르게 하며 발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살피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오래 버티게 한 힘이다. 준비할 시간과 선택할 시간, 스스로 다잡을 시간을 준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무모하다. 위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돌진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청약하지 못하는 자는 용감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1:13:21 두려움은 위험이 있다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외면하거나 그것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두려움만큼 나를 지켜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위험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내가 가진 힘과 한계를 마주한다. 두려움은 내게 물을 것이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이 이 질문은 회피하는 자에겐 족세가 되지만 정직하게 응시하는 자에겐 성장의 계기가 된다.

1:14:07 두려움을 똑바로 직시하고 넘어설 때 비로소 자기 극복이 시작된다. 인간은 두려움을 통해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사유하며 더 단단히 살아남는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시련을 겪으면 인간은 원망이란 걸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원망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작았다가 어느 순간엔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1:14:54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다 타거나 세상을 미워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겪은 일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원망의 생각처럼 가벼운 감정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습관이다. 원망이란 감정이 나를 낳게 하고 있나?이 이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 보면 쉽게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본뒤 불행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설명하면 덜 괴롭기 때문이다.

1:15:39 그러나 설명은 언제나 그 고통을 더 잔인하게 만든다. 이해하려 했으지만 삶은 대부분 설명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살다 보면 불공평한 일, 설명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결과는 초라하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라는 사실을 갇힌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왜라고 묻는게 아니라 어떻게로 옮겨가는 순간 시작된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보다이 상황을

1:16:25 어떻게 다시 헤쳐 나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원망은 감정이고 의제는 선택이다. 감정은 하루를 소비하지만 의지는 하루를 쌓아 올린다.이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갈라 놓는다. 당신도 삶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삶은 공평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17:12 삶은 반응하는 법을 배우게 만드는 장치다. 상처를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좌절을 통해서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다. 삶은 친절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무엇보다 정직하다. 내가 해결하고자 앞으로 나아가면 길이 열리고 멈추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린다. 원망은 나를 그 자리에 굳게 만드는 감정이다. 누구에게나 절망을 찾아온다. 그 순간엔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을

1:17:58 것 같고 앞으로의 시간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해야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하다.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어떤 속도이든 하루를 지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 단순한 행위가 모든 회복의 시작이다. 한 걸음 내디면 생각이 따라온다. 그러나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

1:18:47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라고 묻지만 삶은 그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삶은 말이 없고 대신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잡을지 놓칠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선택이 쌓이면 방향이 되고 방향이 쌓이면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그러니 세상을 탓타기보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라. 삶을 바꾸는 건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1:19:32 그래도 살아보자는 아주 단순한 태도다.이 태도는 불안 자체를 없애지는 않겠지만 불행을 감당할 수 있는 나를 만든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다시 한번 시도하는 자에게는 삶은 언제나 그 사람의 편이다.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견뎌내라. 삶을 원망하기보단 다시 시작하라.

1:20:22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건 무엇인가? 돈 지위 명예 철학 철학적 사유, 진리, 그 무엇도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 즉 내 생각을 가장 사랑한다. 그 사랑은 애착에 가깝다. 사람이 신념을 지킬 때 보이는 열정은 자기 확신을 잃지 않으려는 방어제일 뿐인데 말이다. 누군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그것이 단순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생각을 위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1:21:10 불쾌해진다. 논쟁의 목적은 진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지켜내는 것으로 변한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그 생각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타인과 자신을 설득할 논리를 펼치지만 그 논리의 방향은 이미 정해 놓은 결론으로 향한다. 새로운 의견이 등장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한다. 하나는 거부, 다른 하나는 재해석이다. 거부는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막기 위해 벽을 치는 것이기에

1:21:59 단순한 방어에 속한다. 제석은 더 교묘하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결국 내 생각 안에서 자신에게 맞게 다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이 두 가지의 본질은 똑같다. 다른 이의 관점을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내 생각의 테두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반대되는 논리에 부딪히면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존심이 흔들린다.

1:22:47 자신의 생각을 돌보고 지키면서 살기에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마치 자아 전체가 위협받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내 생각을 사랑할수록 그 생각이 나를 좁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지킬 때 강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새로운 걸 바다들의 힘을 잃고 객관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신념을 지키는 일과 자기 생각이 갇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1:23:36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다. 생각을 도구로 쓰며 언제든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생각에 갇힌 사람은 생각을 신처럼 여긴다. 오음에 대한 확신이 두려움을 덮고 의심을 부정으로 여긴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에 바쁘다. 신념을 지키는 건 삶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고 자기 생각에 갇치는 건 스스로 벽을 쌓는 일이다.

1:24:21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우상숭배로 변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나는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되 그 생각에 얽매이지는 말아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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