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역사》 인도의 괴짜 승려 달마는 누구인가? l 역사 인물 l 고전”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오늘은 중국 선종을 창시한 달마데사의 파란 만장한 인생과 그가 남긴 전설 같은 일화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달마데사는 인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은 제28대 조사이자 중국 선종의 초대 조사로서 동아시아 불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죠. 그의 본명은 보리달마이며 깨달음을 뜻하는 보리와 법을 뜻하는 달마가 합쳐진 이름입니다.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의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셋째 왕자였다고 하며 페르시아 출신이라는 설도 있죠. 왕자로 태어났으니 화려한 군궐 생활과 온갖 부기 영화가 그를 기다리고
0:47 있었습니다. 하지만 달마는 그 모든 것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달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죠. 어느 날 반야다라는 고승이 향지국에 와서 널리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국왕은 그를 왕궁으로 초청하여 법문을 들었죠. 반야다라는 왕에게 광체나는 보석을 공양받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때 바냐다라는 왕의 새 아들을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큰 아들 월정다라는 염불 산매를 닦았고 둘째 공덕다라는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셋째 보리다라는 남달랐죠. 바냐라가
1:33 물었습니다.이 세상에서이 보석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겠는가? 형들은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지만 보이다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보석은 비록 빛나지만 자신의 빛이 아니라 다른 빛을 빌려 빛나는 것에 불과하며 진정으로 뛰어난 것은 내면의 불성이라고요 반야다라는이 대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얼마 후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보리다라는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했습니다. 이때 스승은 그에게 보리달마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죠. 달마는 스승 밑에서 무려 40년간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하루하루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련을
2:19 계속했죠. 그 과정에서 달마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반야다라가 임종을 앞두고 달마를 불렀습니다. 스승은 유원을 남겼죠.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전법하도록 하라. 남쪽에 머무르지 말고 네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북쪽으로 가라고요. 달마는 스승의 명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 달마는 인도에서 불교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던 중 형의 아들인 이견왕이 즉위하면서 문제가 생겼죠. 이견왕은 불교가 국민과 조상을 현혹한다고 생각하여 불교를 배척하기
3:06 시작했습니다. 달마는 일을 보고 조카를 설득하기로 했죠. 하지만 직접 나서지 않고 제자 바라제를 보냈습니다. 바라제가 실력을 빌려 구름을 타고 왕 앞에 나타나자 이견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이때 이견왕이 물었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인가? 바라제가 답했죠. 나의 스승은 왕의 숙부이신 보리달마입니다.이 말을 듣고 이견왕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달마를 굶걸로 모셨습니다. 달마는 조카에게 깊이 있게 법을 전수했죠. 얼마 후 이견왕이 병에 걸렸습니다. 온갖 치료를 해봐도 효과가 없었죠. 왕이 달마에게 사신을 보내 도움을
3:51 청하자 달마는 왕궁에 와서 병을 위문하고 자비를 베풀어 죄를 참도록함으로써 왕의 병을 낫게 했습니다.이 소문은 인도 저녁에 퍼졌죠. 세월이 흘러 어느덧 스승 바야다라가 유원한 67년이 지났습니다. 달마는 이제 본국에서 할 일을 어느 정도 끝마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유원대로 중국으로 갈 것을 결심했죠. 당시 달마의 나이는 이미 100살이 넘었다는 설도 있고 어떤 기록에는 150살까지 살았다고도 합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고령이었던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달마는 캄보디아를지나 무려 3년이라는
4:37 긴 세월을 걸쳐 중국에 도착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험란한 여정이었죠. 드디어 520년경 달마는 중국 남쪽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남쪽은 양나라가 다스리고 있었죠. 양를 다스리던 무죄는 불교의 심취한 황제였습니다. 수백개의 절과 탑을 세웠고 수천 명의 스님을 양성했으며 수만 권의 경전을 번역하고 인쇄했죠. 백성들은 그를 중국의 전륜성왕 또는 중국의 아쇼카 왕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소식을들은 양무제는 달마를 왕궁으로 초대했죠.
5:23 화려한 궁궐에서 양무제가 달마를 맞이했습니다. 양무제는 자랑스럽게 말했죠. 짐은 일생 동안 수백개의 절과 탑을 세웠고 수천 명의 스님을 양성했으며 수만 권의 경전을 번역하고 인쇄했소. 이렇게 많은 불사를 한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황제가 이렇게 물었으면 당연히 공덕이 한량 없다는 대답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달마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죠. 무공덕. 공덕이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양무제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자신은 불교를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공덕이 없다니요. 달마는 계속 말했습니다. 이렇게 지은 공덕은 인연 과보로 언젠가는 사라지는 유르복에
6:11 불과합니다. 진짜 공덕은 깨달음의 지혜로 얻는 다음이 없는 무르복이죠. 형식과 모양에 집착한 불사는 진정한 공덕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기분이 상한 양무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성스러운 진리는 무엇이요? 달마가 답했죠. 과학연무성. 텅비어 성스러움이 없습니다. 생각으로 헤아리지 않는다는 뜻이었죠. 양무제는 더욱 당황했습니다. 그러면 짐 앞에서 있는 그대는 누구요? 달마가 답했습니다. 굳이 모르겠습니다.이 문답은 양무제를 완전히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평생 불교를 공부했다고
6:56 자부하던 황제였지만 달마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죠. 양무제는 화가 났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심지어 칼을 빼들려고 했다고도 하는데요. 신하들이 외국의 고승을 해치면 황제의 명예에 흠이 된다며 겨우 만류했죠. 달마는 이곳에는 불법이 없구나라고 탄식하며 양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북쪽 위나라로 가려면 양자강을 건너야 했죠. 그런데 양무제는 달마가 자신에게 망신을 준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북쪽으로 가기 위해 양자강을 건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죠. 양무제는 긴급 명령을 내렸습니다. 양자 강가에
7:42 있는 배는 고깃배까지 모두 철수시키고 엄중하게 감시하라. 그리고 무승철와 호위변뿐만 아니라 예하의 장군들까지 총출동시켜 강변을 парат찌 뒤져 달마를 잡아오라고 명했죠. 달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띄던 고깃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철와 군절들이 풍기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죠. 달마 앞에 뚫린 길은 오직 한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양자강 옆으로 뻗은 갈대밭으로 통하는 외길이었죠. 달마는 갈대밭을 해치고 들어갔습니다. 멀리 강 건너를 바라보니 양자강은 바다처럼
8:28 넓어 보였습니다. 강을 건너갈 묘책을 찾던 달마는 갈대밭에 버려진 면묶음의 갈대더미를 보면서 비로소 입가에 웃음을 흘렸죠. 달마는 갈 때 한 묶음을 집어들어 강물 위로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탔죠. 놀랍게도 갈 때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달마는 마치 배를 타듯 갈 때 위에 서서 물살을 타고 유유히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이를 목격한 군사들은 할 말을 잃었죠. 한줄기 갈 때 몸을 씻고 넘실거리는 강물을 넘어가는 달마의 모습은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무승철와 군졸들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9:14 잡으려던 인물이 범상한 승녀가 아니라 고승 중의 고승임을 깨달은 것이죠. 달마가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양나라 전체로 퍼졌습니다. 백성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두르며 신비로워했죠.이 일화를 이위도 강이라고 부릅니다. 양자강을 건는 딸만은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북쪽에는 북이라는 나라가 있었죠. 달마는 낙양에 도착한 후 숭산의 소림사로 갔습니다. 소림사는 495년 인도에서 온 고승발타가 창건한 곳이었죠. 달마는 소림사 위쪽에 있는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달마는 벽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하루 종일 벽만
10:01 바라보며 좌선을 했죠. 이틀이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달마는 병만 바라보았습니다. 면벽 수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마를 찾아왔습니다. 달마 권법을 가르쳐 달라. 범어를 가르쳐 달라. 경전을 가르쳐 달라. 뭔가 얻으려고 찾아온 사람들 뿐이었죠. 하지만 달마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달마는 병만 바라보았죠. 얻으려고 왔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갔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니 다가 버린 것이죠.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났습니다. 달마는 여전히 병만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달마는 졸름에
10:49 시달렸습니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졸음을 이겨야 했습니다. 달마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날카로운 칼을 들어 자신의 눈꺼풀을 잘라버린 것이죠. 피가 흘렀지만 달마는 개이치 않았습니다. 달마가 잘라낸 눈꺼풀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나무가 자라났죠. 바로 차나무였습니다.이 전설은 차를 마시면 잠이 깬다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달마도에 그려진 달마의 모습은 눈을 불하리고 있는 모습이 많은데요. 바로이 일화 때문이죠.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4년, 5년, 6년. 달마는 여전히
11:36 병만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9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죠. 낙양에 신광이라는 40대 승려가 있었습니다. 박식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죠.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에 통달했고 불경에도 해박했습니다. 주위에서 다들 그의 명민함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늘 탄식했습니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예절과 술수와 풍류와 법규뿐이요. 장자와 주역도 오묘한 이치를 완전히 밝히지 못했다. 신광은 진정한 깨달음을 찾고 있었죠. 그러던 중 소림사에 고승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광은 소림사를 찾았고 가파른 산을 타고 달마굴에
12:23 도착했습니다. 신광은 제자의 예로 달마를 모시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면 굴로 올라가 문난을 엿줍고 굴주의를 깨끗이 청소하고 때맞춰 따뜻한 물을 올렸죠.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달아는 병만 바라볼뿐 한마디 가르침이 없었습니다. 신광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함을 탓했습니다. 그의 12월 9일 밤눈이 내렸습니다. 신광은 소림사로 내려가지 않고 동굴 밖에 서서 밤을 샜습니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렸죠. 신광의 무릎까지 눈이 쌓였습니다. 하지만 신광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이 틀무렵 달마가 신광을 발견했죠. 너는
13:11 눈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신광이 눈물을 흘리며 답했습니다. 바라옵건데 감로의 문을 활짝 열어 무중생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달마가 말했습니다. 부처님들의 위없는 지혜는 여러 겁을 수행해야만 얻어지는 것이다. 너의 작은 뜻으로는 큰 법을 얻으려 해도 얻을 수 없다.이 말을 듣고 신광은 날카로운 칼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 달마 앞에 놓았죠. 피가 흘러 하얀 눈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달마가 말했습니다. 모든 부처님도 처음에 도를 구할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이제 팔을 끊었으니 법을 구할 만하다. 달마는 신광을
13:58 제자로 받아들이고 해가라는 번명을 지어주었습니다. 해가는 밤낮 없이 달마의 곁을 지켰죠. 하지만 달마는 여전히 병만 바라볼뿐 가르침이 없었습니다. 그 그림자를 따라앉고 걸으며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해가가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을 제가들을 수 있겠습니까? 달마가 답했죠.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다. 해가가 다시 말했습니다. 제 마음이 아직 편치 못하오니 스승께서 편안케 해 주소서. 이것이 바로 유명한 안심법문의 시작입니다. 닮마가 가만히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마음을 가져오라. 그럼 편안하게 해
14:46 주리라. 해가는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마음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죠. 분명히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막상 손으로 주련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불안남이 있던 정확한 위치도 모르겠고 불안함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양도 모르겠고 불안함을 줄 수 있는 손잡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가가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찾아보아도 끝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죠. 내가 이미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이 순간 해가는 깨달았습니다. 마음이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죠. 짓고 부수는 내 안에 숱한 마음이 본래 없는 것임을
15:32 알았습니다. 이렇게 해가는 달마의 제자가 되었고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달마의 새로운 가르침은 기존 승려들의 반발을 샀죠. 경전을 중시하던 교종 불교에서 좌선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 불교로의 전화는 혁명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언어밖에 마음과 마음을 전하며 바로 사람의 마음을 직관해서 부처를 이룬다는 달마의 가르침은 파격적이었죠. 달마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달마를 제거하려 했죠. 첫 번째 독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달마는 일을 알아차리고 피했습니다. 두 번째 독살 시도도 마찬가지였죠.
16:20 세 번째,네 번째, 다섯 번째 달마는 무려 다섯 번의 독살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 독살 시도가 있었을 때 달마는 달랐습니다. 달마는 그것이 독이든 음식임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이를 담담히 받아들였죠. 528년 10월 5일 달마는 입적했습니다. 향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미 150세가 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달마의 유회는 소림사 뒷산인 웅이산에 묻였죠.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나라 사신 송훈이 서역의 사신으로 갔다가 총룡이라는 곳에서 신발 한짝을 손에 들고 혼자 걸어가는 달마를 만난
17:07 것이죠. 송훈이 놀라 물었습니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달마가 답했습니다. 나는 서역으로 돌아간다. 송훈이 귀국해 황제에게 고했습니다. 황명에 따라 달마의 무덤을 파헤쳤죠. 놀랍게도 관속에는 신발 한 짝만 들어 있었습니다. 달마의 시시는 없었던 것이죠.이 전설을 지리석위라고 부릅니다. 집신 한짝을 매고 총령을 넘었다는 뜻이죠. 달마의 일생은 전설로 가득합니다.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화 9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앉아 수행한 이야기. 눈꺼풀을 잘라낸 일화 해가 팔을 자른 이야기. 그리고 죽은 후 집신 한
17:53 장만 남기고 사라진 전설.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전설이 후대에 윤색되었다고 말하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달마라는 인물이 중국 불교사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사실입니다. 경전 중심의 교종 불교에서 좌선 중심의 선종 불교로의 전환은 동아시아 불교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죠. 달마가 전한 법은 해가에게 이어졌고 해가는 승찬에게 승찬은 도신에게 도시는 홍인에게 홍인은 해능에게 전해졌습니다. 해능은 중국 선종의 제6대 조사가 되었고 그로부터 선종은 다섯 개의 큰
18:39 흐름으로 나뉘었죠. 위양종, 임재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이것을 선종오가라고 부릅니다. 달마가 예언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내 본시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노니 한 꽃에 다섯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한 꽃이 해능이고 다섯잎이 선종오가라는 해석이 있죠. 달마의 가르침은 간단하지만 심오했습니다. 내 안에 부처를 보라. 경전이나 불쌍 등 외부가 아닌 자신의 본성, 즉 마음을 들여다보아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이었죠. 이심전심 불림문자. 진리는
19:26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으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달마가 강조한 수행 방법은 이입 사행이었습니다. 이입은 분별없는 마음으로 벽을 보듯 수행하여 진리에 들어가는 것이고 사행은네 가지 실천법이었죠. 원망하지 않기 인연에 따르기, 탐내지 않기 진리대로 행하기.이 이 간단한 가르침이 중국 불교를 바꿔 놓았습니다. 달마의 영향은 단지 불교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소림사에는 달마가 전했다는 무술이 전해졌죠. 소림권법의 시조가 달마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9년 면벽 수행 중 몸이 약해진 승려들을 위해 달마가 운동법을 가르쳤다는 것이죠. 역근경과
20:14 세수경이라는 수련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이 역시 역사적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달마도는 동아시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수염을 기른 서역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죠. 사람들은 달마도를 집에 걸어두면 좋은 기운을 받고 애군을 막아 복과 재물과 건강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달마는 불교의 성인에서 민간 신앙의 상징으로까지 자리잡았죠. 일본에서는 달마 인형이 유명합니다. 손발이 없이 둥근 모양의 옷기 인형이죠. 9년 동안 벽을 향해 좌선을 하다가 손발이 썩어 버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했습니다. 달마 인형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21:01 옷기 형태로 어떤 어려움과 고생에도 견뎌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달마의 전설은 계속 이어집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달마가 원래 미남이었으나 유체 이탈을 하는 사이 곤륜산 선인이 몸을 바꿔 버렸다고도 하죠.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달마가 천산 산맥을 넘을 때 코끼리보다 큰 짐승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달마가 그 짐승의 몸에 들어가 죽어가는 짐승을 살려 길을 열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달마라는 인물이 중국의 선종을 전했고 그것이 동아시아 불교에 큰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21:47 사실이죠. 양무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태도 9년 면벽 수행의 끈기 해가를 제자로 받아들인 자비 그리고 여섯 번째 독사를 담담히 받아들인 초연함이 모든 것이 달마라는 인물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달마는 형식보다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수백개의 절을 짓고 수천 명의 승려를 배출하는 것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죠. 경전을 수만 권 읽는 것보다 한 번의 진정한 깨달음이 더 가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22:32 얻으려 합니다.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재산, 더 높은 지위. 하지만 달마는 말합니다. 얻으려 하지 말고 내려놓으라고. 밖을 보지 말고 안을 보라고.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본질을 보라고요. 선종의 창시자, 중국 불교의 혁명과 그리고 전설의 주인공, 달마대사의 인생과 그가 남긴 가르침.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더 좋은 역사 콘텐츠를 만드는 큰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