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씨가 사실 명나라 것이라면? 나라가 사라진 사람들 그들이 택한 나라는 조선이었다

모든역사 www.youtube.com

간략한 요약

이 영상에서는 망한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성씨에 대해 다룹니다. 주요 인물들은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명나라 귀족 또는 전쟁 중 조선으로 넘어온 사람들이며, 그들의 운명은 조선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 조선 한편의 명나라 유민들 이야기
  • 다양한 명나라 귀족들의 운명과 조선에서의 삶

2023년, 성씨의 시작

영상은 지금 우리가 쓰는 성시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흔한 성씨가 아닌, 명나라에서 도망쳐온 이들의 희귀한 성씨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이 조선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다룹니다. 역사적인 배경과 명나라의 멸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조선으로 이주한 사실을 제시합니다.

명나라의 멸망과 이주

1644년, 명나라가 무너지는 순간을 생생히 전달하며, 당시 명나라 황제 숭정제가 자신의 아이들을 외가로 피신시키는 장면을 그립니다. 황제가 목숨을 끊은 이후 많은 귀족들이 조선으로 도망치기 시작하며, 전라남도 해남에는 명나라 귀족들이 살던 마을이 생기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이들은 조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그 후손들이 조선에서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다룹니다.

조선을 구한 친절

조선의 역관 홍순원이 명나라에 갔을 때 한 여인을 도와준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 여인은 나중에 명나라 고위 관료의 아내가 되어, 남편이 조선의 외교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친절이 어떻게 긴 시간 뒤에 보답받는지를 보여줍니다.

임진왜란과 다시 돌아온 은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파송하는 배경과 그 결정에 석성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석성은 조선을 위해 싸우다 감옥에서 죽게 되고, 그의 후손들이 조선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조선과 명나라의 연결고리를 보여줍니다.

강세작의 극적인 도주

강세작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전쟁 중 친부의 죽음을 목격하며 조선으로 도망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강세작은 생존을 위해 국적과 신분을 포기하고,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시문용과 벼슬

명나라의 국방부 차관 아들 시문용이 조선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다룹니다. 그는 전쟁 중 부상으로 조선에 남게 되고, 무장이 아닌 풍수 전문가로서 새로운 삶을 찾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귀족의 신분에도 변화가 생기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진린과 노량 회전

명나라 제독 진린이 이순신과 함께 싸운 노량 회전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의 후손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는 운명적인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조선에서의 그의 활동과 연결된 역사적 배경을 통해, 명나라의 유민과 조선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황조인의 특별한 대우

조선 정부가 명나라 유민들에게 '황조인'이라는 특별한 명칭과 대우를 주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들은 세금 면제를 받고 특별히 관리되었으며, 조선에서 명나라의 흔적을 이어가는 존재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에 따르는 비극

조선의 황조인으로 인정받았던 강세작의 후손들이 나중에 노비로 전락하게 된 이야기를 통해, 명나라 유민의 현실이 어떠했는지를 강조합니다. 그들의 자존감과 생존을 위한 고난을 통해 조선 사회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역사의 반복

영상은 현재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이들에게서 과거의 유민들과의 유사성을 찾아냅니다. 강세작의 이야기와 그렇게 변해버린 신분을 통해 역사가 반복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주민 문제에 대한 성찰을 제시합니다.

Summarize any YouTube video in seconds

Get summaries like this one for any video, in your language, with the free Summ app.

Download on the Apple Store
Get it on Google Play

스크립트

YouTube Transcript Generator

0:00 지금 우리가 쓰는 성시 중에 400년 전 망한 나라에서 도망쳐온 사람에 성이 섞여 있습니다. 김이, 박정 같은 흔한 성시 말고요. 여러분이 살면서 한두 번쯤 들어봤을까 말까 한 아주 희귀한 성시들이죠. 그 성시를 가진 사람들은 사실 원래 조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닥 건너온 명나라 귀족의 후손이거든요. 여기서 잠깐 상상을 해 보시죠.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여러분의 나라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대단한 명문가의 자재였어요. 할아버지는 장군이고 아버지는 나라의 고의 관료였고 여러분은 태어나서 손에 물한방울 안 묻히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룻밤 사이에 전부 없어진 겁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0:46 딱 두 개예요. 새로 나라를 차지한 정복자한테 무릎을 꿇든가 아니면 국경은 넘어서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로 도망치든가.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고르시겠어요? 이게 그냥 재미로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1644년 실제로 수만 명의 명나라 사람들이이 갈림길 앞에 섰거든요. 그 외에 200년 넘게 아시아를 호령하던 명나라가 통째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귀족들이 짐을 싸서 조선으로 넘어오기 시작해요. 전라남도 해남에 가면 지금도 지도에 나오는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이 황조 마을이에요. 명나라 황제의 조정에서 큰 벼을 하던 충신의 후회가 사는 곳이라는 뜻입니다.이 마을에는 지금도 명나라 장수의 초상화를 모신 사당이서

1:33 있어요. 여기 사는 분들 성시가 광동진씨입니다. 중국 광동성에서 온 진씨라는 뜻이죠. 바백년 전에 나라 잃고 바다 건너온 사람의 후손이 지금도 대한민국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겁니다. 오늘 던질 질문은 딱 하나예요. 나라를 잃은 귀족은 남의 나라에서 대체 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영웅이 됐을까요? 아니면 그냥 이름 없는 이방인으로 사라졌을까요?이 이 이야기 끝까지 보시면 깜짝 놀랄 만한 순간이 몇 번 나옵니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조선의 국가 정책 하나는 저도 자를 찾다가 소름이 쫙 돋았어요. 영상이 마음에 드시면 좋아요랑 구독 한 번씩 눌러 주시고요. 여러분이라면 그때 압록강을 건넜을지 아니면 고향에

2:19 남았을지 댓글로 꼭 남겨 주세요. 그럼 400년 전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그 나라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부터 봐야겠죠. 1644년 봄 명나라서도 베이징입니다. 성문을 부수고 군골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어요. 200년 넘게 세상을 호려하던 제국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때 황제의 이름은 숭정제였어요. 그는 자기가 끝이라는 걸 직감합니다. 먼저 어린 새 아들을 몰래 외가로 피신시켜요. 그다음 황우와 후궁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명합니다. 황우는 조용히 그 명을 따랐어요. 그리고 황제 본인은 군궐 뒷산으로 올라갑니다. 지금 베이징에 가면 징산 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바로 그 자리예요. 총정제는 거기 있던 나무에

3:07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나라와 함께 죽은 겁니다.이 황제 이름 잘 기억해 두세요. 영상 마지막에 아주 소름 돋는 방식으로 다시 등장하거든요. 황제가 죽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명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졌어요. 이제이 나라 사람들 입장이 되어 볼까요? 새 주인은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만주족입니다. 그들 밑에서 머리 모양까지 바꾸며 살든가 아니면 국경을 넘든가 수많은 사람이 짐을 쌌습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가 향한 곳이 바로 조선이었어요. 왜 하필 조선이었을까요?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인연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인연의 시작을 드려 드릴게요. 이게 오늘 이야기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3:52 이야기는 명나라가 망하기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인공은 조선의 역관 홍순원이에요. 역관은 통역을 담당하던 관리입니다. 홍순원이 사신단을 따라 명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었어요. 낯선 땅에서 그는 어느 여인을 만납니다.이 여인이 아주 딱한 처지였어요. 부모가 세삼을 떠났는데 장례치를 돈이 한 푼도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하려던 참이었죠. 사연을들은 홍순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는 자기가 지니고 있던 돈을 털어서 여인이 부모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줍니다. 공적인 임무로 가져온 돈까지 보했다고 해요. 그러고는 여인한테 손끝 하나 대지 않고 그냥 돌아섭니다. 대가도 바라지 않았어요. 그냥 딱 한 사람을 도았을 뿐이었죠.

4:39 홍수는 본인은이 일을 곧 잊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세상 일이라는게 참 묘합니다. 세월이 흘러이 여인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거든요. 여인은 명나라 고의 관료의 부인이 됩니다. 그 남편이 누구였는지 아세요? 바로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이었습니다. 병부상서면 지금으로 치면 국방부 장관이에요. 영나라 최고의 관료의 아내가 된 겁니다. 옛날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인이요. 여기서 은혜가 어떻게 돌아오는지 한번 보시죠. 당시 조선에는 200년 묵은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어요. 종개 변무라는 외교 문제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명나라 공식 문서에 조선 왕실의 족보가 잘못 좋던 거예요. 조선 왕조의 뿌리를

5:24 엉뚱한 사람으로 기록해 놓은 거죠. 조선 임금들이 200년 동안 고쳐 달라고 사정했는데도 꿈쩍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홍순원이 사신으로 갔을 때 단번에 해결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바로 석성의 부인이 남편을 움직인 거예요. 옛날 자기를 구해준 조선 사람이 왔다는 걸 알고 그 은혜를 갚은 겁니다. 200년 묵은 숙제가 한 사람의 친절 덕분에 풀린 셈이죠.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진짜 은혜는 그다음에 돌아옵니다. 임진의란이 터졌을 때에요. 조선이 외군한테 짓밟히면서 영나라의 원군을 애워합니다. 그런데 명나라 조정 분위기는 싸늘을했어요. 남의 나라 전쟁에 왜 우리 군대와 국골를 쏟아붙느냐는 반대가 만만치

6:09 않았거든요. 이때 반대를 무릎 쓰고 파병을 밀어붙인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석성이었습니다. 은혜를 아는 그 부인의 남편이요. 한 사람이 베푼 작은 친절이 수십년을 돌고 돌아 수만 명의 군대로 되돌아온 겁니다. 이쯤 되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하지 않나요? 솔직히 저는이 대목 정리하다가 소름이 돋았어요. 홍순원이 그날 그 여인을 그냥 지나쳤다면요. 임진외란의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아름답게 끝나면 좋았을 텐데요. 걱성의 최연은 참 얇고졌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명나라 북꾸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남의 나라 전쟁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그러자 명나라 조정은 그

6:57 책임을 누군가한테 물어야 했습니다. 그 화살이 향한 곳이 바로 석성이었어요. 파병을 주도한 사람이 그였으니까요. 석성은 감옥에 갇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옥에서 세상을 떠나요. 한번 정리해 볼까요? 조선을 살리려고 나섰던 사람이 그 대가로 자기나라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나 싶어요. 석성은 감옥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 아들들에게 유원을 남깁니다. 명나라는 이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조선으로 가라. 아버지가 목숨 걸고 도은 그 나라로 자식들을 보낸 겁니다. 큰아들 석담은 뉴베지에서 풀려나 어머니를 모시고 조선 해주에 도착해요. 조선 임금은이 사람을 수양군에 봉하고 수양사의 땅까지 내려줬습니다. 은인의 아들을

7:43 왕이 직접 챙긴 거죠. 이렇게 해서 생긴 성시가 바로 해주석씨입니다. 작은 아들은 경상도 성주의 자리를 잡아 성주 석시에 뿌리가 됐고요. 지금도 경상남도 산청과 함양일 때 해주 석시 후손들이 모여서는 마을이 남아 있어요. 조선을 살리려다 죽은 아버지. 그 자식들이 조선에서 새 가문의 시주가 되다. 성시 하나에 이런 무게가 담겨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여기까지가 남을 위해 죽은 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자기가 직접 도망쳐온 사람을 만날 차례예요.이 사람 이야기는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 두 번째 인물의 이름은 강세작입니다. 앞서 석성이 자기는 못 오고 자식만 보낸 경우라면요. 강세작은 본인이 지옥을

8:29 뚫고 조선까지 걸어온 진짜 남민이에요.이 사람이 겪은 일이 워낙 험해서 시대 배경이 자연스럽게 딸려나옵니다. 장세작은 양측 뉴욕 징조후 출신입니다. 집안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임진외란 때 조선을 구하러 파병된 명나라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이 할아버지가 조선 땅 평산에서 외군과 싸우다 전사예요. 조선을 위해 싸우다 조선 땅에서 죽은 겁니다.이 사실 꼭 기억해 두세요. 나중에 손자가 조선으로 넘어오는 장면에서 묘하게 겹칩니다. 아버지 강국태는 관려였는데 무슨 죄를 지어서 요동으로 귀향을 갑니다. 요동이 어떤 땅이었냐면요. 당시 명나라와 신흥 강국 후금이 서로 칼을 겨우던 최전선이었어요. 후금은 나중에 청나라가 되는 그 만주족

9:16 세력입니다. 곱게 자한 사대부집 도련님 강세이 하필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전쟁토로 아버지를 따라 끌려 들어간 겁니다. 그리고 요동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후군과의 전투를 투입되어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아버지 강국태는 화살을 막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18살 아들이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다 봤어요. 그날 밤 강세작의 머릿속으로 잠깐 들어가 볼까요? 아버지 시씨는 전쟁터 한복판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낮에는 후금 병사들이 돌아다니까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는 해가 지기를 기다립니다. 어둠이 내리자 몸을 낮추고 아버지한테 기억가요.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 도구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요동의 흙은 얼어 있었을 거예요. 손톱이 갈라지고 손끝이

10:04 터졌겠죠. 그는 맨손으로 흙을 파서 아버지를 산골짜기에 묻습니다. 관도 없고 수위도 없고 곡을 해 줄 사람도 없이. 평생 예법을 배우며 자한 사대부 자재가 짐승처럼 손으로 흙을 파서 아버지를 묻은 겁니다. 이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 저는 감히 짐작도 못 하겠어요.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지옥은 그다음이었거든요. 아버지를 묻은 강세작은 근처에 있던 조선군에 합류합니다. 당시 조선도 명나라 요청으로이 전쟁에 군대를 보낸 상태였어요. 강옥립이라는 장수가 이끄는 부대였죠. 그런데이 강옥립이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후근에 항복해 버립니다. 문제는 후금 입장에서 조성군은 살려들 수 있어도 명나라 병사는 아니었다는 거예요.

10:50 흑군은 항복한 조선 병사들 사이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영나라 사람을 곤란해서 그 자리에서 다 죽였어요. 강세작도 붙잡했습니다. 손발이 묶긴 채로 바위 밑에 내던져줬어요.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거죠. 여기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손발 다 묶였고 곧 처형당할 겁니다. 방법이 있나? 없어 보이죠? 그런데 강세작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몸을 뒤척해서 포승을 바위 모서리에 대고 비비기 시작해요. 살까지 벗겨지고 피가 나는데도 계속 비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줄을 끊어내요. 여기서부터가 진짜 소름입니다. 훈련한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 주변에 쓰러져 있던 죽은 조선 병사의 옷을 벗깁니다. 그리고 그 옷을

11:36 자기가 입어요. 영나라 군복을 벗고 조선 군복으로 갈아입은 겁니다. 그런 다음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선 병사들 무리 속으로 슬쩍 섞여 들어가요.이 장면 하나에 모든게 다 담겨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라면 국적이고 신분이고 사대부의 자존심이고 다 벗어 던지겠다는 거죠. 죽은 사람 옷을 입고서라도 살아남겠다는 20살 청년의 처절함이 저는 그 옷 한 벌에 다 보이더라고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정세작의 도주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요. 심양으로 갑니다. 심양성이 함락됩니다. 요양으로 도망칩니다. 요양성도 함락. 이번엔 산으로 숨어들어서 낮에는 웅크리고 밤에만 걸어 봉왕성까지 갑니다.

12:23 봉왕성에서 명나라 폐잔병 부대부터 성을 지키다가 또 전투에서 치고 이번엔 큰 부상까지 입어요. 한번 정리해 볼까요? 아버지가 죽고 자기도 죽을 뻔하고 도망친 도시마다 족쪽 무너지고 몸엔 큰 상처까지 났습니다.이 정도면 보통 사람은 몇 번을 죽어도 이상하지 않죠. 그런데도 이청년은 끝까지 살아남아요. 솔직히 저는이 대목에서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이건 운이 아니에요.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요동벌판 전체를 가로지른 겁니다. 마침내 그는 마음을 정합니다. 영나라는 끝났다. 조선으로 가자. 1625년 8월 25살 강세작이 암록강을 건너니다. 8월이라도 새벽 강물은 뼈속까지

13:09 실었을 거예요. 기억나시죠? 그의 할아버지는 조선을 구하러 왔다가 조선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자는 살기 위해서 조선으로 도망쳐 들어와요. 한 집안이 두 세대에 걸쳐서 조선과 이렇게 얽힌다는 거.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묘하지 않나요? 그럼이 명나라 사대부 집안 자재는 조선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귀한 손님 대접을 받았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하나를 짓고 갈게요. 영나라 귀족이 조선에 왔다고 하면 왠지 융승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잖아요. 높은을 받고 좋은 집에서 존경받으며 살았을 것 같죠. 천만해요. 현실은 훨씬 씁쓸했습니다. 방세작은 평안도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결국 한경도 회령 근처에 자리를

13:55 잡아요. 함경도는 당시 조선에서 제일 춥고 가난한 변방이었습니다. 영가라 중앙무대에서 놀던 집안 자재가 조선에서도 가장 끄트머리 땅에 정착한 거예요. 그가 결혼한 상대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기록에 따르면 역참에서 일하던 여종이었습니다. 역참에서 신부름하던 노비 신분의 여성이요. 영나라 고위 관료 집안 자재였던 사람이 말이죠. 이게 얼마나 얄구준 상황인지 느껴지시나요? 고국에서는 손에 물한방울 안 묻히던 도련님이 낯선 나라 변방에서 여정의 남편이 되어 살아간 겁니다. 신분이라는게 나라가 바뀌면 이렇게 허무하게 증발해 버려요. 그런데 여기서 강세작이라는 사람의 진짜 매력이 나옵니다. 한 학자가 남긴 기록에 이런 대목이

14:41 있어요. 강세작은 술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신하게 지내는 사람 집에 놀러 가면 술을내어 달라 해서 흠뻑 취한 다음에야 자리를 떴다고 해요.이 이 짧은 묘사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나라 잃고 아버지 잃고 신분까지 이잃은 사람이 조선 변방에서 이웃이랑 술장 기울이며 웃고 있는 거예요. 물론 그 술 한잔 한잔에 고향 생각이 아버지 생각이 얼마나 베어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는이 낯선 땅에서 아들 둘을 낳고 무려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네살이면 지금 기준으로도 장수인데 400년 전 그 열악한 환경에서 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죽을 고비를 그렇게 넘긴 사람이 결국 제일 오래 살아남았다는

15:27 것. 여기 뭔가 뭉클한게 있지 않나요? 강세 이야기는 여기서 잠깐 멈추겠습니다.이 사람이 훗날 조선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가 되는지는 뒤에서 소름돋게 풀어 드릴게요. 세 번째 인물로 넘어가 봅니다. 이번엔 명나라 국방부 차관의 아들이에요. 이름은 시문용. 정상북도 고령에 가면이 사람 후손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절강씨. 중국 절광성에서 온 CC라는 뜻이에요.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2,명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희귀한 성시죠. 시문용의 아버지는 명나라에서 병부 실랑을 지낸 사람이었어요. 명부 실랑이면 지금으로 치면 국방부 차관쯤 됩니다. 그러니까이 사람도 명나라

16:14 상당한 명문과 자재였던 거죠. 시문용은 임진을란 때 명나라 지원군의 장수로 조선해 왔어요.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다른 명나라 군대는 다 돌아가는데이 사람은 안 돌아갑니다. 전투 중에 입은 부상 때문이었다고 해요. 그는 경상도 성주 땅에 놀랐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이 나와요.이 사람이 조선에서 무슨 제주로 벼을려 얻었는지 아세요? 탈솜씨였을까요? 경법이었을까요? 놀랍게도 퉁수질이었습니다. 땅을 보는 눈. 그러니까 명당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천거를 받아서 벼을 얻어요.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명나라 국방구 차관의 아들이자 전쟁토를 누비던 무장이 조선에서는 퉁수 전문가로 먹고 살았다는 거예요. 여기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17:01 어쩌면 그건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는 그 나름의 생존 전략이 아니었을까? 무장으로서의 과거는 이제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요. 조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따르던 퉁수라는 새로운 기술로 자기 자리를 만든 거죠.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유연함이 있습니다. 손조 임금은 그에게 벼을 내렸고 그는 조선 여인과 결혼에 자식을 열어남겼어요. 여기서 강세작하고 비교해 보면 뭔가 걸리는게 있죠. 강세작은 한병도 병방에서 여종과 결혼했는데 치문용은 성주에 자리 잡고 벼을까지 받았어요. 같은 명나라 출신인데 왜 이렇게 처지가 갈렸을까요? 핵심은 언제 어떻게 왔느냐였습니다. 시문용은 전쟁 영웅으로 공을 세운 장수로 당당하게

17:48 조선에 남았어요. 반면 강세작은 나라가 망한 뒤에 목숨만 겨우 부지에서 도망쳐온 남민이었죠. 같은 명라 사람이라도 어떤 이름표를 달고 들어오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갈렸던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주민을 떠올려 보면 이게 꼭 400년 전만의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요. 어디서 왔느냐보다 어떤 이름표를 달고 왔느냐가 사람을 갈라놓잖아요.네 번째 임무를 만나볼 차례입니다. 이번 주인공은 여러분이 교과서에서 반드시 한 번은 봤을 사람과 직접 연결되어 혹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 노량 회전 기억하시나요? 그 노량 회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싸운 명나라 수군 제독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진린.이

18:34 이 사람 처음엔 이순신하고 사이가 최악이었어요. 성격이 거칠고 오만해서 조선수군을 아주 우습게 받거든요. 그런데 함께 싸우면서 이순신의 인품과 실력에 완전히 반해 버립니다. 나중엔이 사람은 하늘이낸 장수라고 극찬했어요. 이순신이 전사했을 때는 애통하며 직접 시까지 지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지금도 많은 사람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죠. 전쟁이 끝나고 진리는 명나라로 돌아가 높은 자기를 받았어요. 여기까지는 해피 엔딩처럼 보이죠? 이제 시간을 딱 46년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1644년 기억나시죠?이 영상 맨 처음에 나왔던 그입니다. 영나라가 멸망한 해요. 진리는 이미

19:20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그런데 그의 손자 진영소가 살아 있었습니다. 기록에는 진조라는 이름으로도 남아 있는 사람이죠. 나라가 무너지자 진영소는 결단을 내려요. 만주족 청나라 밑에서 사느니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싸웠던 그 나라로 가자 그는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망명합니다. 여기서 머리카락이 곤두선 부분이 있어요. 진영소가 조선에 와서 처음 자리 잡으려던 곳이 어디였는지 아세요? 전라남도 완도의 고금도였습니다. 고금도가 어떤 곳이냐면요. 바로 그의 할아버지 진린이 이순신과 함께 수근 기지를 두고 외군과 싸웠던 그 섬이에요. 할아버지가 조선을 위해 피를며 써 그 땅에 손자가 나라 이름 몸으로 돌아온 겁니다. 이게 그냥 우연일까요? 저는

20:07 아니라고 봐요. 실제로 질린 후손들은 대대로이 고금도에 뿌리내리려고 애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세상 천지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조상의 흔적이 남은 땅을 놓지 못한 거죠.이 대목에서 저는 가슴이 좀 먹먹했습니다. 진영소는 고금도 인근해서 경주 이씨 여인과 결혼해요. 그리고 나중에 해남무로 자리를 옮깁니다. 바로이 영상 맨 처음에 나왔던 그 황조 마을이에요. 이제 아시겠죠? 해남 황주마을 광동진 씨가 왜 거기 있는지 이순신하고 어깨를 나란히하고 싸운 명나라 제독의 피가 지금도 전라남도 해남에 흐르고 있는 겁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요. 더 놀라운게 있어요. 지금도 광동진 씨 후손들은 이순신 장군의 가문인

20:54 덕수 이씨하고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400년 전 두 장수의 우정이 후손들 사이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래요. 할아버지는 조선을 구하러 왔고 손자는 조선의 구원을 청하러 왔다.이 집안하고 조선의 인연은 두 세대에 걸쳐 완성된 거죠. 혹시 완도 고금도에 가실 일이 있으면 관묘라는 곳을 찾아보세요. 원래 진린이 세운 사당인데 일제 강점기에 파괴됐다가 지금은 이순신을 모시는 충무사가 되어 있습니다. 진린하고 이순신이 400년을 건너서 한 자리에 다시 모인 셈이죠. 지금 지도앱에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실제로 찾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까지네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석성 강세작 시문용

21:40 그리고 진린의 손자 진영소 출신도 다르고 온 시기도 다르고 조선에서 산 지역도 다 달라요. 해주경도 경상도 전라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보이죠. 그런데이 사람들이 그리고 이들과 같은 수많은 명나라 유민들이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국가 정책 아래 전부 묶여 있었습니다. 이걸 알고 나면 지금까지 본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예요. >> 준비되셨나요? >> 조선 정부는이 명나라 유민들을 특별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황조인. 영나라 황제의 조정에 속했던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구분이 하나 등장합니다. 원래 조선의 귀화한 외국인은 뭉뚱그려서 향화인이라고 불렀어요. 여진족이든 일본인이든 다

22:29 향화인이었죠. 그런데 영조 임금이 딱 선을 긋습니다. 여진족이나 외인의 자손은 향화인이라 부르고 중국 사람 자손은 황조인이라고 따로 불러라. 그냥 이름만 다르게 부른게 아니에요. 대우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황조인한테는 세금을 면제해 줬어요. 황조인만 따로 명단을 만들어서 국가가 관리했습니다. 쌀을 지급하고 삶을 내리고 심지어 결혼할 때 훈수 비용까지 대줬어요. 한마디로 명나라 출신이라는게 일종의 특별 회원권이 된 겁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명나라는 이미 망한 나라잖아요. >> 망한나라 출신을 왜 이렇게까지 떠바들었을까요? 여기에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숨어 있습니다. 임지내란과 병자오란 두

23:15 번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조선 사람들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특히 병자오란이 치명타했습니다.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청나라한테 왕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했잖아요.이 치옥을 조선 선비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진짜 문명은 청나라가 아니다. 이미 망한 명나라다. 그리고 그 명나라의 정신을 이어받은 건 바로 우리 조선이다. 우리가 명나라의 정통을 이은 진짜 문명국이라는 자부심이죠.이 생각을 증명하려면 뭐가 필요하겠어요? 영나라의 흔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조선 땅에는 진짜 명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강세작 같은 진영소 같은 사람들이요.

24:01 이제이 유민들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이 사람들은 그냥 불쌍한 남민이 아니었어요. 우리 조선이 명나라의 정통을 이었다는 걸 증명해 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던 거죠. 그리고이 믿음은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창덕공 안에 아예 재단은 하나 세워요. 이름이 대보단입니다. 여기서 잠깐 그 제사 장면을 그려 볼게요. 깊은 밤 창꾼 구원. 가장 깊숙한 산 기습입니다. 차방은 캄캄하고 인적도 없어요. 그 어둠 속에서 조선의 임금이 직접 제단 앞에 섭니다. 누런소를 재물로 올리고 향을 피워요. 그리고 절을 합니다. 누구한테 절을 했을까요? 이미 망해서이 세상에 없는 명나라 황제들입니다. 명나라를 세운

24:48 태조 인진 외란 때 원군 보내준 말력제 그리고 나라와 함께 쓰러진 마지막 황제 숭정제 기억나시죠? 영상 맨 처음에 군골 뒷싼무에 목을 맨 그 황제요. 그 황제한테 조선 임금이 새벽마다 저를 올린 겁니다. 세상에 남의 나라 황제. 그것도 이미 망한 나라에 죽은 황제한테요. 조선은이 제사를 200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리고이 대부단 제사에 황조인의 후손들을 불러다 참여시켰어요. 명나라 유민의 자손이 조선 군궐에서 명나라 황제한테 제사를 올린 거죠. 이쯤 되면 전율이 생기지 않나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에요. 석성의 후손, 강세작, 진영소, 따로 놀던

25:33 사람들이 대부단이라는 하나의 무대 위에서 만나는 겁니다. 이게 나라만 한게 아니었어요. 민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노론의 우두머리였던 송시얼이라는 거물학자가 죽으면서 제자한테 유원을 남겨요. 영나라 황제 제사를 지내라. 그래서 충청북도 계산 화향동에 만동묘라는 사당이 세워집니다. 영나라 마지막 황제의 침필 글씨까지 구회담 모셨어요. 국가는 대부단 민간은 만동묘. 조선 전체가 이미 사라진 명나라를 붙들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정점은 영조 때 나옵니다. 1764년 영조가 충량과라는 특별한 과거 시험을 만들어요. 왜 하필 1764년이었을까요?이 이 숫자에 답이 있습니다. 영나라가

26:21 망한 해가44년이었죠. 1764년은 정확히 그로부터 120년 되는 해였어요. 영조는이 상징적인 해에 명나라의 의리를 지킨 사람들의 후선하고 황조인의 후에만 응시할 수 있는 과거 시험을 연겁니다. 일반 백성은 꿈도 못 꾸는 오직 명나라와 인연 있는 사람만을 위한 시험이었어요. 망한나라를 위해서 망한지 120년이 지난 뒤에도 이렇게까지 했다는 거. >> 집념이라고 해야 할까요? 집착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여기서 인간 영조가 보이더라고요. 평생 정통성에 유난히 집착했던 그 임금의 성격이이 정책 하나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럼이 화려한 명분의 대가는 대체 누가 치렀을까요?이

27:07 이야기에 진짜 씁쓸한 결말이 여기 있습니다. 지금까지 들으시면 황조인의 삶이 꽤 괜찮았을 것 같죠? 국가가 관리해 주고 세금 면제해 주고 군궐 제사에도 참여하고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강세작을 다시 떠올려 볼게요. 그 사람 후손들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기록에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참경도 관찰사였던 남구만이 조정에 보고를 올려요. 당세작의 후손들을 돈을 주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양세적의 후손들이 노비로 전락해 있었다는 겁니다. 명나라 사대부 집안 자재가 조선으로 건너왔는데 그 손자와 증손자들은 남의 집 종이 되어 있었던 거예요. 여기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27:54 명나라 고의 관료의 후회가 조선 변방에서 노비로 살고 있었다.이 문장 하나면 충분한 것 같아요. 영분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이렇게 잔인합니다. 군궐에서는 명나라 황제한테 제사 지내면서 우리가 명나라의 정통이라고 외쳤는데 정작 진짜 명나라 사람의 후손은 노비가 되어 있었던 거죠. 조선이 그렇게 떠봤던 건 살아 있는 명나라 사람이 아니라 명나라라는 관념이었던 겁니다. 이런 비극이 강세자 후손만의 일이 아니었어요. 또 한 사람을 짧게 소개할게요. 천말리라는 명나라 장수가 있었습니다.이 사람도 임진을란 때 조선에 와서 전쟁 끝나고 안 돌아가고 눌러 앉았어요. 지금의 영향 천시

28:39 시조가 된 사람이죠. 그런데이 사람이 조선에 남은 이유가 소름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첫말리는 명나라가 곧 망하고 중국이 오랑캐 땅이 될 거라고 내답았대요. 그래서 자기 후손들만큼은 오랑캐 땅에 살지 않게 하려고 조선에 남았다는 겁니다. 영나라 멸망을 무려 44년이나 앞서 예감한 셈이에요. 그런데 여기 지독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병자오란이 터지고 나서 청나라 압력으로 조선의 귀여한 명나라 군인 후손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져요. 그러자 첫말리의 4대손이 몸을 숨기고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손을 지키려고 조선에 남았는데 정작 그 자손이 명마라 후손이라는 이유로 쫓기는 신세가 된 거예요. 지키려던 것이 오히려 짐이

29:24 되어 버린 거죠. 여기 또 하나 얄구준 기록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조인 대우가 워낙 좋아지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반 백성들이 황조인을 부러워하기 시작해요. 세금도 면제되고 국가 지원도 받으니까요. 급기야 자기가 명나라 후손이라고 거짓말로 사칭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납니다. 이거 좀 못프지 않나요? 처음엔 갈 곳 없어서 도망쳐온 불쌍한 남민이었는데 직면 지나니까 그 신분을 서로 갖고 싶어서 사칭까지 했다는 거예요. 세상이 완전히 뒤집힌 거죠. 물론 우리가 이걸 마냥 조선의 위선이라고 비웃을 수만은 없어요. 잠깐 반대편에서 생각해 볼까요? 전쟁에서 두 번이나 처창하게 진 나라가 무너진 자증심을 다시 세우려면 뭐라도 붙잡아야 했을

30:10 겁니다. 우리가 진짜 문명의 개승자라는 명분은 어쩌면 무너진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운 정신적 기둥이었을지도 몰라요. 영분이라는게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이걸 단순히 옳다 그르다로 자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역사는 원래 이렇게 여러을 가지고 있죠.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게 있어요. 장세작 이야기 기억나시죠?이 이 사람이 조선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이제 말씀드릴게요. 전세작은 함경도 변방에서 조용히 늙어 죽은 이방인의 뿐이었습니다. 큰 벼을 한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놀라운 건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 앞다투어이 사람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는 겁니다.

30:55 박세당이라는 대학자가 강세작의 일생을 기록했어요. 남구만이라는 정승도 남겼고요. 심지어 그를 직접 만나 본 적도 없는 학자들까지 그의 인생을 글로 옮겼습니다. 거기다 연암 박지원 기억하시죠? 그 유명한 열기를 쓴 사람이요. 각지원도 암록강을 건너면서 강세작 이야기를 자기 여행기에 적어 넣었어요. 강세작이 죽고 한참 뒤에 태어난 사람인데도요. 왜 그랬을까요? 성공에서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명나라 사람으로 남았기 때문이에요. 청나라에 무릎 꿇지 않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이국 땅에서 죽어 간 사람. 조선 선비들에게 강세작은 살아 있는 상징이었던 겁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가치가 바로 저것이다 하는

31:41 그러니까이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자존심 그 자체가 되어 있었던 거예요. 모비가 된 그 후손들과 상징이 된 그 이름 같은 사람 이야기야긴데 이렇게 극과 극일 수가 있나 싶습니다. 이제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나라를 잃은 귀족은 남의 나라에서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제 답을 아시겠죠? 정답은 전부 다였습니다. 누군가는 조선을 살리려다 자기 나라 감옥에서 죽었고 그 자식이 은인의 후회로 왕에게 땅을 받았어요. 누군가는 함경도 변방에서 여종의 남편으로 살다가 그 후손이 노비가 됐고요. 누군가는 풍수 실력으로 벼을 얻어 새 가문을 열었으며 누군가는 조상이 싸운 땅에 돌아와 시조가

32:27 됐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가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신적 기동을 떠바치는 상징이 됐죠.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는데 도착지는 이렇게나 달랐던 겁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하나 짚고 싶은게 있어요. 우리는이 이야기를 400년 전 남의일처럼 들었잖아요. 조금만 뒤집어 생각해 볼까요? 지금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남민이 되어 낯선 땅에 도착하죠. 그리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태도에 따라 누군가는 뿌리를 내리고 누군가는 밑바닥으로 밀려납니다. 강세작이 겪은 일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역사는

33:12 이렇게 옷만 갈아입고 계속 돌아옵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영상을 보고 계신 여러분 곁에도 이런 뿌리를 가진 분이 있을지 몰라요. 해주석 씨, 절강시 씨, 광동진 씨, 영양 천시, 여기에 소주가 씨 같은 성시도 있습니다.이 낯선 성시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400년 전 무너진 제국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보둥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거예요. 성신은 그냥 글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흔적인 거죠.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하나 여쭤보고 싶어요. 만약 여러분이 강세작이었다면 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무릎을 꿇고 고향에 남는 삶 아니면 모든 걸 버리고 낯선

33:58 나라로 도망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강세작은 후자를 택했고 여든 내해를 살아냈고 4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어쩌면 그게 그가 목숨 걸고 얻어낸 가장 값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성시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혹시 짐작 가는게 있다면 댓글로 꼭 남겨 주세요. 정말 궁금하거든요.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남으셨다면 조용히 좋아요 한번 눌러 주시고요. 다음엔 또 어떤 이친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 볼지 저도 벌써 설냅니다. 그때 또 뵙겠습니다.

Share

유튜브 영상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