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는 왜 사라졌을까? 아무도 묻지 않은 그 답을 찾아 몽골로 갔습니다”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복되면 창문을 닫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늘이 온통 누럽게 변하고 애써 덜어둔 빨래를 다시 걷어야 했죠.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갑던 그 봄을 여러분 중에도 생생히 기억하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아이들 학교에서 문자가 오고 마스크를 챙기고 차위에 쌓인 노란 먼지를 닦아내던 그 풍경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봄이 조용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황사 때문에 고생한게 언제였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요. 실제로 서울의 황사관측 일수는 예전 평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예전엔 한해 일주일 넘게 겪던 것이 이제는 사나을 남짓입니다. 이상한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이렇게 큰 변화가 우리 봄에 찾아왔는데도 정작 아무도
0:47 왜냐고 묻지 않았다는 겁니다. 좋아졌으니 그저 다행이라 여기고 넘어간 거죠. 그런데 대체 그 흑먼지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그 답은 뜻밖에도 우리 땅이 아니라 저 멀리 몽골의 한 사막에 있었습니다. 애초에 우리 보마늘을 뒤덮던 그 황사가 왜 그렇게 먼 몽골 땅에서 시작되는 걸까요? 그리고 그 먼 사막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서울의 봄까지 이렇게 조용해진 걸까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몽골의 바로 그 땅에서부터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그 땅의 이름은 토진나르스입니다. 몽골말로 끝없는 소나무숲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지금은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인데 왜 하필 소나무 숲이라는
1:34 이름이 붙었을까요? 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원래 그곳이 몽골에서 손꼽히는 소나무 숲이었기 때문입니다. 땅의 이름이 그 옛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셈이죠. 셀랭게라는 지역에 살리한 제법 이름난 숲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말이 숲에 큰 산불이 두 차례나 났습니다. 울창하던 소나무들이 통째로 타 버렸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나무가 사라진 다음에 찾아왔습니다. 그때까지 흙을 단단히 붙잡아 주던 건 다름 아닌 나무의 뿌이였습니다. 땅속에서 뿌리가 흑갈갱이 사이사이를 그물처럼 얼어 놓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나무가 타 죽으면서 그 뿌리도 시간이지나 힘을 잃고 사과갔습니다.
2:22 붙잡아 줄 것이 없어진 흙은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날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와도 땅이 물을 먹음지 못하고 그대로 흘려보냈죠. 물기가 빠진 흙은 더 잘 부서지고 더 잘 날렸습니다. 나무가 없으니 흙이 날리고 흙이 날리니 새 나무가 뿌리내릴 자리마저 사라지는 악순난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때 숲이었던 자리가 불과 몇 태만에 매마른 모래 땅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한번 이렇게 무너진 땅은 저절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씨앗이 날아와도 뿌리 내릴 물기가 없고 겨우 싹이 터도 모래바람에 인내 묻혀 버리니까요. 사람이 나서지 않는 한이 땅은 스스로 숲으로 돌아올 힘을 이미 잃은 상태였습니다. 되살리기가
3:09 세상에서 손꼽히 어려운 땅 토진 나르스는 그렇게 버려진 채 남아 있었습니다. 되살리기가 그토록 어려운 땅, 그런데 바로 그 땅에 한 한국 기업이 찾아옵니다. 2003년 유한 킴벌리가 국경을 넘어 이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겁니다. 몽골 정부 그리고 평화의 숲이라는 시민 단체와 함께. 여기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하나듭니다. 자기 나라도 아니고 되살리기도 힘든 저 먼 땅에 왜 굳이 한국 기업이 갔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사실 우리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봄마다 우리를 괴롭히던 황사가 시작되는 땅이 바로이 근처거든요. 발언지의 흙이 조금이라도 덜 날리면 우리 봄도 그만큼
3:55 나아집니다. 남 돕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 문제를 뿌리해서 손보는 일이기도 했던 거죠. 다른 하나는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은 한국 전쟁을 겪으며 산이란 산이 다 벌거벗었던 나라입니다. 뗄감으로 베어내고 포탄에 타 버려서 비만 오면 흙이 쓸려내리고 산태가 나던 시절이 있었죠. 여러분 중에도 학교에서 산에 나무심으로 가던 기억, 식목일마다 온 동네가 산에 오르던 기억이 남아 있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렇게 수십년에 걸쳐 헐벗은 민둥산을 다시 울창한 숲으로 되돌려냈습니다. 나라 전체가 헐버쓴 되살려낸 경험을 가진 나라는 세계에도 몇 곳지 않습니다. 바로 그 노하우를 이번엔 몽골 땅에 옮겨 보려 한 겁니다.
4:42 그렇게 시작한 나무가 한 구루 두루 쌓여 지금은 1,300만 구루가 넘습니다. 넓이로 따지면 서울 송파구만한 땅이 다시 숲에 옷을 입었죠. 여의도에 열배가 넘는 크기입니다. 그런데 좋은 뜻과 경험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정작 현장에 들어서자 나무만 심어선 도무지 풀리지 않는 벽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무만 심어선 풀리지 않던 벽. 그 정체를 알려면이 땅이 왜 사막이 됐는지를 다시 봐야 합니다. 산불이 시작이긴 했지만 산불 한 번으로 땅이 영영 사막이 되지는 않습니다. 불에 타도 시간이 지나면 풀이 돋고 나무가 돌아오는게 보통이니까요. 그런데이 땅은 돌아오지
5:27 못했습니다. 그걸 막은 진짜 원인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뜻밖에도 그 원인은 우리 옷장 속에도 있습니다. 바로 캐시미어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해서 겨울옷에 많이 쓰이는 그 고급털이죠. 세계에서 팔리는 캐시미어의 약 40%가 몽골에서 나옵니다. 그런데이 털은 어디서 얻을까요? 바로 염소입니다. 유목민에게 염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습니다. 털을 깎아 팔면 현금이 되는 거의 유일한 돈줄이었죠. 그러니 살림이 어려울수록 염소를 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몽골의 가축수는 수십년 사이에 몇배로 불어났습니다. 문제는 염소가 풀을 먹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소나말은 풀의 윗부분을
6:15 뜯어 먹습니다. 그래서 뿌리가 남아 풀이 다시 자라죠. 그런데 염소는 다릅니다. 풀을 뿌리째 뽑아먹고 날카로운 발급으로 땅까지 파헤칩니다. 한번 염소대가 훑고 지나간 초원은 다시 회복할 씨앗조차 남지 않는 겁니다. 이런 일이 넓은 땅에서 수십년간 되풀이됐습니다. 그 결과 몽골 국토의 약 77%가 사막으로 변해갔습니다. 땅이 마르자 겨울 호안에 가축이 때로 얼어 죽었고 살길이 막힌 유목민들은 도시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이은 그 마른 흑이 봄바람을 타고 북경을 넘어 한국까지 날아온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봄 하늘을 덮던 그 황사는 하늘이 무린 심술이 아니었습니다.
7:02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 오랜 세월 쌓여 만들어낸 것이었죠. 이렇게 사막화의 뿌리가 먹고 사는 구조에 있었으니 나무 몇구루 꽂는다고 풀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첫 몇에는 심는 족쪽 나무가 죽어 나갔습니다. 가장 먼저 앞을 막은 건 날씨였습니다. 몽골의 겨울은 영하 40도까지 내려갑니다. 우리로 치면 한 겨울 냉동 곳에서 있는 셈이죠. 여름은 또 정반대입니다. 한낮이면 땅 표면이 50도 가까이 달아오릅니다. 한해 안에 80도가 넘는 온도차를 여인 묘목이 고스란이 견뎌야 했던 겁니다. 한국의 온화한 땅에서 자라던 나무들은이 극단에 버티지 못하고 말라 죽었습니다. 더 답답한 건 물이었습니다. 나무가 살려면 물을
7:49 줘야 하는데이 땅에서는 그마저 쉽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정성껏 물을 주면 나무가 미쳐 빨아들이기도 전에 마른 땅이 먼저 그 물을 다 삼켜 버렸습니다. 워낙 매말라서 흙이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인 거죠. 그래서 아침에 물 준 나무가 오후가 되면 바싹말라 부스러지는 일이 되풀이됐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비도에서 하늘이 도와주기만 기다릴 수도 없는 땅이었습니다. 한해 심고 죽고 다음에 또 심고 또 죽고 그렇게 몇 년이 그냥 흘러갔습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 같은 시간이었죠. 나무를 심는 손보다 죽은 나무를 뽑아내는 손이 더 바쁜 날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앞으로
8:35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자연이 쳐 놓은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고 단단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활동가들을 더 지치게 만든 건이 혹독한 자연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보다 훨씬 넘기 힘든 벽이 따로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벽은 놀랍게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왔습니다. 더 큰 벽이 사람에게서 나왔다니 무슨 뜻일까요? 그 땅에는 오래 전부터 대대로 살아온 유목민들이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에게는 사막을 되살리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정작 그들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번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죠. 우리 가축이 풀을 뜯어야 할 땅에 어느 날 낯선 외국인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더니
9:22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나무를 심기 시작합니다. 반가울 리가 없었습니다. 가축이 먹을 풀밭이 그만큼 줄어드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밤 사이 애써 심어 놓은 묘목이 뽑히거나 가축에게 뜯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무를 보호하려고 둘러세운 울타리는 또 다른 쓸모가 있었습니다. 영하 40도의 겨울밤을 나려면 때감이 필요했는데 마른나무 울타리가 딱 그때감이 됐던 겁니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게 하나 있었습니다.이 땅에서 물은 목숨만큼 귀합니다. 그런데 그 귀한 물을 사람이 마시는 것도 가축을 먹이는 것도 아니고 나무에 준다니요. 주민들에게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활동가들은이 벽 앞에서
10:08 몇 년을 실름했습니다. 마을을 찾아가 설명하고 부탁하고 때로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래도 종처럼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여전히 주민들에게 남의 것이었으니까요.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었습니다. 심는 사람 따로, 그 옆에서 살아갈 사람 따로. 이렇게 둘이 갈라져 있는 한 나무는 심어도 심어도 계속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니 진짜 답은 더 좋은 묘목이나 더 많은 물에 있지 않았습니다.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세우느냐 바로 거기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돌린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나무 자체를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은 보기
10:53 좋고 잘 자랄 것 같은 묘목을 골랐는데 정작 그 땅에서는 힘을 못 썼습니다. 그래서 발상을 뒤집었죠. 예쁜 나무가 아니라이 혹독한 땅에서 끝까지 버티는 나무를 찾은 겁니다. 하나는 비술나무였습니다. 뿌리를 땅속 깊이 내려 지표가 아무리 말라도 저 아래 지하수를 스스로 찾아마시는 나무죠. 또 하나는 포플러였습니다. 빨리 자라는 데다 줄지어 심으면 모래 바람을 막아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줬습니다. 나무를 땅에 맞추자 비로서 살아남는 나무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열쇠는 둘째에 있었습니다. 바람 막는 나무들 사이에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함께 심은 겁니다. 차차르간 비타민
11:39 나무라고도 불리는 나무였죠.이 이 나무의 열매가 주스와 차, 건강식품의 원료로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무언가가 달라집니다. 나무가 그저 심어놓고 지켜야 하는 짐이 아니라 돈을 벌어다 주는 미천이 된 겁니다. 그러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곧 일자리가 됐습니다. 주민들은 스스로 협동 조합을 만들어 함께 기르고 함께 팔고 함께 나눴습니다. 앞서 사막화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죠. 현금이 오직 염소에서만 나오던 구조 그게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현금이 나무에서도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문제를 만든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바꿔 놓은 셈이죠. 이렇게 되자 더는 누가
12:24 시키지 않아도 주민들이 알아서 나무를 지켰습니다. 자기 박벌리가 걸린 숲이였으니까요. 나무는 마침내 남의 숲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숲이됐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숲을 살린 힘이 나무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이 말이 정말 맞는지 확인해 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정 반대로 간 곳과 비교해 보는 겁니다. 오직 규모로만. 그러니까 나무의 수로만 밀어붙인 곳 말이죠. 바로 옆나라 중국이 그랬습니다. 중국은 1978년부터 나라 북쪽에 거대한 숲에 띠를 두르는 사업을 버렸습니다. 사막이 도시로 밀려오는 걸 맡겠다는 거였죠. 지금까지 심은 나무가 무려 660억가
13:11 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심기 사업입니다. 규모만 보면 몽골에 심은 우리 나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23년에 나온 한 연구가 뜻밖에 내놓습니다. 모래 땅에 심은 그 많은 나무 가운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대략 열렸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심어 놓고 관리없이 떠나 버린 곳이 많았고 물을 많이 먹는 나무를 골랐다가 오히려 땅속물을 다 빨아먹어 주변을 더 매마르게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규모로만 밀어붙인 결과가 이랬던 겁니다. 그러면 사람을 남긴 몽골의 그 작은 숲은 어땠을까요? 정반대의 답이 나왔습니다. 유한 킴벌리는 21년치
13:59 위성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이 땅의 광합성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광합성량이 는다는 건 쉽게 말해 죽어가던 땅이 다시 살아숨쉬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사진 몇 장이 아니라 위성이 21년간 지켜본 숫자가 그걸 증명한 겁니다. 규모로만 밀어붙인 쪽과 곁에 사람을 남긴 쪽, 두 땅에 갈린 운명이 그 답이 오았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이 숲을 만든 건 한 기업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대한항공은 또 다른 지역에 나무를 심었고 인천 시민들은 10시 일반 성금을 모아 힘을 못 했습니다. 산림청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이제는 나무를 대신
14:45 심어 주는데 그치지 않고 나무를 심고 가꿀 줄 아는 사람과 기술까지 몽골에 남기고 있습니다. 기업이 나서고 시민이 모으고 정부가 있는이 노력이 23년 동안 겹겹이 쌓여온 겁니다. 사실 우리가이 먼 땅에 나선대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이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황사가 시작되는 땅을 되살리면 본마다 시달리던 우리 하늘도 그만큼 맑아지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우리를 위한 마음이 뜻밖에 아름다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리 보마늘은 예전보다 한결 조용해졌고 몽골은 잃어버렸던 숲과 일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 두 나라 모두를 살린 셈입니다. 한쪽이 베풀고 한쪽이
15:31 받기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이득을 본 일이었던 겁니다. 그리고이 숲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진짜 이유는 딱 하나로 모입니다. 처음엔 남의 숲이라며 등을 돌렸던 몽골 사람들이 이제 그 숲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 지켜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씨앗을 뿌렸다면 그 숲을 오늘까지 키워낸 건 결국 그 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계속 무언가를 대신해 주는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우리가 손을 때도 그들 스스로 설 수 있게 그 힘을 남겨주는 일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움이란 무엇을 남기는 일이어야 할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 주세요. 봄마늘이 조용해진 그
16:18 뒤편에는 이렇게 오래 심고 오래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