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이후 최고의 천재, 대승불교를 만든 남자 용수보살 나가르주나 일대기

간략한 요약

이 동영상은 나가르주나 (용수보살)의 삶과 사상을 다룹니다. 나가르주나는 불교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공(空) 개념은 세상의 고정된 본질이 없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는 욕망과 고통을 경험한 후 불교에 귀의하고, 히말라야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 개념은 후에 대승불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 현대 철학 및 과학과도 연결됩니다.

  • 나가르주나는 불교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다.
  • 그의 '공' 철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관계성을 강조한다.

인트로 - 이천 년 전 질문 하나

인도 남부에서 태어난 천재 소년 나가르주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는 확고한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공(空)의 개념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이 질문과 대답은 과거에 이미 2,000년 전에 제기되었습니다.

기 - 브라만 가문의 천재 소년

나가르주나는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의 교육은 특히 방대한 배다 경전을 암기하는 것이 포함되었으며, 열 살 때 이미 모든 경전을 외웠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는 욕망으로 인해 친구들을 잃고 인생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승 - 불교에 귀의하다, 히말라야의 깨달음

위기를 겪은 후, 나가르주나는 불교의 승단에 귀의합니다. 그는 불교 경전을 연구하며 사상을 정립하던 중 히말라야 깊은 곳에서 한 늙은 비구와 만나 새로운 경전, 즉 대품반야경을 전수받습니다. 그는 용왕과의 전설적인 만남을 통해 더 깊은 경전들도 찾게 됩니다.

전 - 공(空)이란 무엇인가, 중론과 대승불교의 아버지

나가르주나의 '공' 개념은 모든 것은 고정된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 개념을 연기(緣起)와 연결시키며 중론에서 여러 개념을 해체합니다. 나가르주나는 대승 불교의 토대를 확립하고 다양한 경전의 사상을 통합하게 됩니다.

결 - 삼론종에서 티베트 불교, 그리고 오늘의 우리

나가르주나의 사상은 인도에서 발전하여 중국과 티베트 불교에까지 전파됩니다. 그의 중간철학은 현대 철학과 과학에서조차 주목받고 있으며, 고정된 본질이 없다는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가르주나의 사상이 현대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엔딩 - 손을 펴야 자유로워진다

손을 움켜잡고 있으면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없듯이, 고정관념과 집착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나가르주나의 사상은 우리에게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하고, 현재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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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살아가면서 이런 순간 있으셨나요? 손에 꽉 쥐고 있던 것이 결국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순간 그리고 그 허무함 속에서 오히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던 그런 순간 말이에요. 오늘 소개해 드릴 인물은 바로 그 질문에 2,년 전에 이미 답을 내놓은 사람입니다. 인도 남부의 어느 숲에서 태어나 불교의 역사를 통째로 뒤집어 놓은 천재 바로 용수보살 산스크리트어로는 나가르 주나라고 불리는 인물이에요. 어쩌면 석까모니 이후 불교 사상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그가 평생을

0:45 걸고 파고든 하나의 질문 그리고 그 답으로 내놓은 공이라는 개념.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왜 이렇게까지 뒤흔드는지 지금부터 천천히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석기 150년에서 250년 사이 어느 지음이었어요. 인도 남부 안드라 지방의 어느 브라만 가문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브라만이라는 건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 계급으로 제사와 학문을 담당하던 사제 집안이었어요.이 이 집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배다 경전을 외우는 것이 숙명 같은 것이었지요. 그런데이 아이는 좀 남달랐습니다. 불교 전승에 따르면 열살이 되기도

1:30 전에 방대한 배다 경전을 모조리 외웠고 15살이 되기 전에는 당시 인도에서 배울 수 있는 학문이란 학문은 전부 마스터했다고 전해져요. 물론 이건 후대에 조금 푸풀려진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이 소년의 지적 흡수력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당시 인도는 힌두교와 불교, 자인나교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존하던 시대였어요. 철학과 종교를 둘러싼 논쟁이 그야말로 일상의 공기와도 같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이 총명한 소년의 이름은 나가르주나. 우리 한자어로는 용수, 후대에는 용수보살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2:17 모든 걸 다 이룬 것처럼 보였던이 소년에게 어느 날 뜻밖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욕망이었어요. 전승에 따르면 젊은 시절 나가르나는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어떤 비술, 그러니까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술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술법을 이용해서 왕궁의 후궁에 몰래 잠입하는 무모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이야기지요. 술법은 통했지만 결국 경비병들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함께한 친구 세 명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직 나가르 주나만이 천운으로 살아남았다고 해요. 친구들을 눈앞에서 이은 그 순간 나가르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 욕망이라는

3:04 것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죽음의 문턱까지 데려다 놓는구나. 삶이란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이 모든 고통의 뿌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젊은 청년의 마음에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이 소용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나가르나는 불교 승단에 귀의하게 됩니다. 당시 불교는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드신지 이미 수백년이 흐른 시점이었어요. 여러 부파로 나뉘어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던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나가르 주나는 그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리고 그의 천재성은 여기서 다시 한번 빛을 바랍니다. 불교 경전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한 그는 얼마

3:52 지나지 않아 당대의 이름난 불교학자들과 논쟁을 버려도지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나가르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물음을 품었어요. 지금까지 배운 것들 이것으로 충분한가? 석가모니께서 진정으로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근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이 이 갈증이 그를 히말라야 깊은 산중으로 이끌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조금 신화적인 색채를 띄게 됩니다. 불교 전통에서는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지금까지도 전에 내려오고 있어요. 나가르 주나가 히말라야 어딘가에서 홀로 수행을 이어가던 어느

4:37 날 한 늙은 비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 노스님은 나가르나에게 당시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경전. 그러니까 대품반야경이라는 방대한 경전을 건네 주었다고 해요. 지혜의 완성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전설은 이렇게 전합니다. 지상의 경전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 나가르나가 용왕이 산다는 바닷속 궁정까지 찾아갔다고 해요.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 세계에는 아직 전해지지 않은 더 깊은 경전들을 얻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이야기는 그의 이름 자체와도 연결이 됩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나가는 용을 아르나는 나무를 의미하니 용수라는 한자 번역이 정확히 들어맞는

5:23 셈이지요. 물론 현대의 학자들은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이 신화는 아주 중요한 상징을 담고 있어요. 나가르 주나가 당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승 경전들을 발굴하고 체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상이 얼마나 깊고 심오한 것이었는지를 용궁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지요. 자, 이제 나가르나의 사상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만나볼 차례예요. 바로 공의 철학입니다. 환자로는 빌 공자를 씁니다. 공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텅 비어 있다. 아무것도 없다. 이런

6:09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실 거예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공사상을 허무주의와 혼동합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모두 가짜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나가르 주나가 말하는 공은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나가르 주나가 말하는 공의 핵심은 이것이었어요.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고정된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여러분 손에 스마트폰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스마트폰이 스마트폰일 수 있는 이유가 뭘까요? 배터리가 있고 화면이 있고

6:55 소프트웨어가 있고 이걸 만든 노동자가 있고 여기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가 있고 그리고 이걸 사용하는 여러분이 있기 때문이에요.이 모든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비로소 스마트폰이라는 존재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만약이 관계들을 전부 지워 버린다면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어요. 나가르 주나는 이것을 연기라는 개념과 연결지어 설명합니다. 연기란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불교의 핵심 원리인데 나가르나는 이것을 한 단계 더 밀어붙였어요.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만에 고유하고 불변하는 본질 즉 자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이

7:41 자성이 없는 상태 이것을 바로 공이라고 부른 것이지요.이 이 공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나가르나의 대표작인 중론입니다. 제목 그대로 가운데의 논리라는 뜻이에요. 당시 불교 안에는 크게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가 존재했습니다. 하나는 영혼이나 세계가 영원히 고정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항상 있음의 견해였고 다른 하나는 죽으면 모든 것이 완전히 소멸한다는 완전한 없음의 견해였어요. 존재와 무이 두 극단 사이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나가르나는이 앙극단을 모두 거부했어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관계

8:26 속에서 일시적으로 성립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중도적인 입장 그것이 바로 중간이고 나가르나가 세운 학파를 중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론에서 나가르나는 27개의 장에 걸쳐서 당시 불교와 비불교 철학에서 통용되던 거의 모든 개념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갑니다. 운동 시간 인과관계 자아 생멸 심지어는 붓다와 열반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떤 개념도 그 자체로 고정된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보여 주었어요. 이건 단순한 철학적 유의가 아니었습니다. 아가르 주나의 진짜 목적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굳건히 붙들고 있는 고정 관념들 이럴 테면 내 것이라는 생각,

9:13 나라는 자, 절대적인 진리 같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해체하는 것이었어요. 집착이 사라질 때 비로소 고통도 사라진다. 그것이 바로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습니다. 나가르 주나를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대승불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석가모니 이후 불교는 세월이 흐르면서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상자부 불교, 흔히 소승 불교라고도 불리는 흐름으로 출가한 수행자들이 언격한 계을과 수행을 통해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어요. 오늘날 태국이나 미안마, 스리랑카 같은 동남아시아 불교가이 전통에 해당합니다. 다른 하나는 대승 불교예요. 대승이란

10:01 큰 수레라는 뜻으로 나 혼자만의 해탈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해탈을 목표로 삼는 넓은 길을 의미합니다. 대승 불교에서는 보살이라는 개념이 핵심이 됩니다. 보살이란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이지만 모든 중생이 함께 해탈할 때까지 곁에 남아뒀겠다고 서원한 일을 뜻해요. 나가르나 자신도 후대의 보살로 추앙받아 용수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지요. 당시 대승 불교는 새로운 경전들을 활발하게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상자부 불교 측에서이 새로운 경전들의 정통성을 공격하기 시작한 거예요. 석가모니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진 위경이라는

10:47 비판이었지요. 바로 이때 나가르나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공사상 즉 중간 철학을 통해서 대승 경전들이 딛고 설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경고하게 마련해 주었어요. 단순히이 경전이 맞다 틀리다를 따지는 논쟁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나가르나는 대바야경, 화원경, 법화경 등 당시 떠오르던 대승 경전들의 핵심 사상과 자신의 공철학을 하나로 연결하여 대승불교 전체를 정합적인 사상 체계로 묶어냈어요. 그래서 그를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나가르나는 훌륭한 수행자였지만 동시에 탁월한 논쟁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11:33 인도 철학계에서 불교 외의 다양한 학파들과도 치열하게 논쟁을 버렸어요. 그의 논쟁 전략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상대방의 논리를 그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방식이었지요.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펼치면 나가르나는 그 추장이 품고 있는 내적 모순을 끄집어내어 논리적으로 해체했습니다. 이것을 귀류법이라고 불러요. 쉽게 말하면 당신의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결국 이런 모순에 빠지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누군가 나가르 주나에게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인과 관계는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해봅시다. 나가르 주나는 이렇게

12:18 되묻습니다. 그렇다면 원인이라는 것 자체는 어디서 왔는가? 원인에도 또 다른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 원인에도 또 다른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결국 그 사슬은 끝없이 이어지거나 어느 순간 원인 없는 원인을 인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르나는 상대방이 세워 놓은 경고에 보이는 논리의 성벽을 그 성벽이 딛고 있는 집안부터 무너뜨려 버렸어요. 그가 논쟁에서지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떤 주장에도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나가르 주나가 제시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이제 즉 두 가지 진리입니다. 그는 진리를 두 층위로

13:05 나누어 설명했어요. 하나는 세속적 진리로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세계에 약속된 규칙들을 말합니다.이 이 책상은 책상이고이 사람은이 사람이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식의 약속이지요. 다른 하나는 궁극적 진리로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고정된 본질 없이 공하다는 진리입니다. 나가르나는 세속적 진리를 부정하지 않았어요. 공이라는 진리를 알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을 이해했다고 해서 일상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일상을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나가르나의 삶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면이 있어요. 그는 산속에

13:53 틀어박혀 명상만 한 은둔 수행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인도 남부의 사타바나 왕조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전통에 따르면 나가르나는 사타바하나 왕조의 왕과 가까운 사이였고 왕에게 직접 가르침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가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친우서와 보행왕정로는 왕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저작으로 불교적 지혜의 기반에서 어떻게 국가를 다스릴 것인가를 논한 내용이에요. 이건 나가르나가 추구했던 것이 단순히 개인의 수행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불교의 가르침이 사회와 정치의 영역에서도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공의 지혜와 자비의 마음

14:39 이것이 개인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나가르 주나의 만년에 대해서도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는 매우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전승에 따라서는 수백년을 살았다고도 해요. 하지만 이건 물론 그의 사상적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도록 지속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겁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어느 왕자가 나가르나에게 자신의 머리를 보시해 달라고 요청했고 나가르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여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집착 없음 무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불교 전통은 해석해요. 사실이든 전설이든이

15:25 이야기는 나가르나라는 인물이 후대 불교도들에게 얼마나 이상적인 보살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상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에 걸쳐 가르치고자 했던 공과 자비의 실천이었을 거예요. 나가르나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사상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멀리, 더 깊이 퍼져 나갔어요. 인도에서 그의 중간 철학은 아리아데바 찬드라키르티 샤티데바 같은 걸한 후계자들에 의해 발전하고 정교해졌습니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전파되어 중국에 도착했을 때 중간 사상은 중국 불교와 결합하여

16:10 삼론종이라는 독립적인 학파을 탄생시켰어요. 삼론종이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불교에도 나가르 주나의 사상이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상국 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불교 전파 과정에서 중간 사상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원요 대사 같은 우리나라의 위대한 불교 사상가들도 나가르나의 영향을 깊이 받았어요. 티베트 불교로 넘어가면 나가르나의 위상은 더욱 절대적입니다. 티베트 불교에서 나가르나는 여섯 장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최고의 성인이에요. 티베트 불교의 모든 전통이 나가르나의 중간 철학을 사상적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나가르나의 공사상은 오늘날 현대

16:56 철학과 과학의 관점에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어요. 20세기의 철학자들, 특히 현상학과 실존주의 그리고 해체주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나가르 주나의 공사상 사이에서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하는 연구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고정된 본질이 없다는 생각, 언어와 개념이 실제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이 모든 것들이 서양 철학자들의 통찰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나가르 주나를 해석하려는 시도들도 있어요. 양자 세계에서 입자는 관찰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그 어떤 것도 관계를 떠난 독립적인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17:41 나가르 주나가 말한 공이 세계관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비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겠지만 그만큼 나가르나의 사상이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품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여요. 2,년 전 인도 남부의 한 천재가 제시한 공이라는 아이디어가 지금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철학자들과 불교 수행자들 그리고 과학자들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가르 주나의 사상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매일 수많은 것들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내 직업, 내 재산, 내 평판, 내 관계, 내가 옳다는 확신 이런 것들을 마치 고정 불변한 실체인

18:28 것처럼 붙들고 살다가 그것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크게 괴로워하지요. 나가르나는 말합니다. 그것들은 본래 공하다고요. 고정된 것이 없다는 말이 허무주의가 아닌 이유는 그것이 오히려 자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일시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것에 집착하는 대신 충분히 경험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됩니다. 손을 꽉 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새로 들어올 수 없어요. 하지만 손을 펼치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공의 지혜는 바로 이렇게 열린 손과 같은 것이지요. 사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나가르 주나가 말한 공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어요.

19:14 오늘의 나와 10년 전에 나는 같은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일까요? 몸의 세포도 바뀌었고 생각도 바뀌었고 관계도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라는 것이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하나의 실체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지요. 나가르 주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나라는 존재도 매순간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흐름일뿐 어디에도 고정된 실체는 없다고 말이지요.이 말이 처음에는 조금 서늘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오히려 안심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은 곧 내가 지금이 순간의 모습에 영원히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실수를

20:01 했더라도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더라도 그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것이 바로 공의 지혜가 우리에게 건내는 또 하나의 위로입니다. 기원 후 이세기 인도 남부의 한 천재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욕망으로 인해 친구들을 잃고 그 고통 속에서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을 아는 채 불교의 문을 두드렸어요. 그리고 거기서 만난 공이라는 하나의 진리로 그는 아시아 정신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용수보살 나가르나 그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것에 집착하다 괴로워질 때 세상이 왜 이렇게 복잡하고 불안한지 혼란스러울 때 그의 사상은 조용히 우리에게

20:47 묻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붙잡고 있는 그것 그게 정말로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인가요? 그 물음 하나가 때로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더 깊은 자유를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 여기까지입니다. 2,년 전 인도 남부에서 시작된 한 소년의 이야기가 오늘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살면서 무언가를 너무 꽉 붙들고 계신다면 오늘만큼은 잠시 손을 펴 보셔도 좋겠어요. 어쩌면 그 자리에 더 좋은 무언가가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영상이 마음에 와닿으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큰 힘이 됩니다. 다음

21:35 시간에도 인류 역사 속 위대한 정신들의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편안한 하루 보내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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