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하나의 꽃이라고?ㅣ화엄경 완결편ㅣ중중무진의 비밀ㅣ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는 법”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2 세계이라 세계는 하나의 꽃이다. 화엄경을 오래 공부해 온 분들이이 경전의 뜻을 한마디로 정리할 때 종종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만나볼 이야기가 결국이 한 마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법당한 향 하나가 조용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라 천천히 흩어지며 법당 전체를 채웁니다. 그런데이 향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 산에서 자란 나무의 시간이 있고 그 나무를 베어 향으로 빚어낸 장인의 손길이 있고 그 향이 여기까지 오는데 지나온 오랜 시간이
0:49 있습니다. 작은 향 하나에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이 [음악] 겹겹이 쌓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보실까요? 깨달음을 이루신 그 순간 부처님의 눈앞에 무엇이 펼쳐졌을까요? 오늘은 저희 화엄세계 시리즈를 총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선재동자의 순례로 시작해서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연보살의 실천까지 함께 [음악] 걸어왔는데요. 오늘은이 모든 이야기가 흘러나온 그 근원, 화엄경 그 자체를 만나보려 합니다. 평생을 수행해도 닿을 수 없다는 그 자리. 모든 번뇌와 어둠이 거치고 [음악] 세상에 참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1:36 그 순간 수십생에 갈고 닦끔을 거쳐 마침내 그 자리에서 계셨던 부처님은 대체 무엇을 보셨을까요? 아마도 그때 깨달음을 얻으신 분의 눈에는 [음악] 우리가 평소 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졌을 겁니다. 나와 남이 나뉘지 않고 시간이 앞뒤로 흐르지 않으며 작은 것과 큰 것이 서로를 가로막지 않는 세계에 언어로는 도무지 다 담아낼 수 없는 그런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음악]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부처님이 그 깨달음을 사람들 눈높이에 맞춰 낮추고 낮춰서 [음악]
2:22 들려 주신 것들입니다. 어려운 진리를 쉬운 비유로 깊은 이치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서요. 마치 큰 학자가 어린아이에게 우주의 이치를 설명할 때 그림책의 언어를 빌리는 것처럼요. 그런데 딱 하나 그렇지 않은 경전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음악] 깨달으신 바로 그 순간 그 환이 들여다 보이는 세계를 조금도 낮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쏟아내신 경전. 그래서 사람들은이 경전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경전의 왕, 경중왕. 이런 표현을 쓰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이 별칭은 다른 경전에도 종종 쓰이는 말입니다.
3:07 그래서 오늘은이 경전에 더 정확히 어울리는 이름으로 불러보려 [음악] 합니다. 사람들은이 경전을 이렇게 부릅니다. 모든 경전을 아우르는 경전의 뿌리 때 화엄경. 오늘 우리가 함께 볼 이야기는 바로이 경전 화엄경입니다. 지금까지 [음악] 저희 화엄 시리즈에서 선제동자의 길고 아름다운 순례를 문수보살의 지혜를 보연보살의 실천을 따로따로 만나 보셨는데요. 오늘은이 모든 이야기가 흘러나온 그 커다란 바다 화엄경 그 자체를 만나보려 합니다.이 이 경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왜 경전의 왕이라
3:53 불리는지, 그리고이 [음악] 경전이 품고 있는 가장 깊고 아름다운 통찰들이 무엇인지 오늘은이 모든 길을 함께 걸어 보겠습니다. 그리고이 걸음의 끝에서 부처님의 그 깨달음이 지금이 순간 우리 곁에서도 여전히 숨쉬고 있다는 것을 함께 확인하게 되실 것입니다. 화엄경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잠시 멈추시고 구독, 좋아요 눌러 주시면 공덕이 되십니다. 먼저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깨달음을 이루신 직후 그 자리에서 곧바로이 화엄경을 [음악]
4:38 설하셨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이 설법을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음악]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방금 보신 그 세계는 눈높이를 낮추지 않은 부처님이 [음악] 깨달으신 세계였으니까요. 그 당시 이야기에 따르면 이때 그 자리에 있던 [음악]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마치 기어거리나 벙어리처럼 그저 멍안이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 높고 넓은 진리 앞에서 그들의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지요. 마치 태어나 처음 바다를 본 사람이 그 광화람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서
5:25 있는 것과 [음악] 비슷했을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이이 사실을 모르셨을까요? 부처님은 [음악] 세상 모든 존재에게이 세계를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이치가 바로 화엄세계니까요. 중생의 고통은 곧 불보살님의 고통이니까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후 40여년에 걸쳐 [음악]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하나씩 하나씩 다른 가르침들을 펼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여러 경전들이 되게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 깨달음의 그 순간 쏟아내신 그 원형의 세계 그건 따로
6:13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때의 말씀으로 전해져 오다가 훨씬 뒤에 경전으로 결집이 된 것이 화원경입니다. 그런데이 경전이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처음부터 딱 완성되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엔 여러 관래로 흩어진 품들이 각자 따로 [음악] 전해지다가 대략 사색이 무렵 서역 어딘가에서이 흩어진 품들을 하나의 큰 뜻 아래 모으고 엮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여러 갈래로 흐르던 강물이 [음악] 마침내 한 바다로 모이듯이요.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지요. 어느 한 사람이 어느 날
6:59 갑자기 앉아서이 방대한 경전을 써내려 간게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곳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담하는 여러 경들이 마치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하나의 큰 그림 아래로 모여들었다는 것입니다. 화엄경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종종이 성립 과정 자체가 이미 화엄경이 말하려는 진리, 즉 [음악] 서로 다른 것들이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그 연결됨의 진리를 보여 주는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후 경전은 중국으로 건너가 한문으로 옮겨지는데 크게 세 번의 큰 걸음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5세기초 북인도 출신의
7:44 스님 불타발타라가 예순권 34품으로 옮겼습니다. 이걸 60파엄 또는 가장 먼저 나왔다 하여 구역이라 부릅니다. 그로부터 약 300년 뒤 측천무 시대에 이르러 이전 번역이 다소 미흡하다고 여긴 분들이 [음악] 코탄이라는 서역당으로 사람을 보내 더 온전한 원본을 구해옵니다. 먼 사막길을 건너 코탄에 이른 사신들은 그곳에서 실천난타라는 학생을 만나 함께 [음악] 장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실찬난타는 그렇게 가져온 번본을 바탕으로 여러 스님들과 함께 몇 년에 [음악] 걸쳐 한 글자 한 글자를 다시 옮겼습니다.
8:30 그렇게 여등권 39품으로 완성된 것이 80하엄 신역입니다. 앞서 나온 60화원보다 문장이 유려하고 뜻이 더 명료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100년 가까이 흐른 뒤 남인도에서 보내온 또 다른 번본을 반야 3장이 옮긴 것이 40하엄입니다. 그런데이 40화엄은 조금 특별합니다. 화엄경 전체가 아니라 딱 한 품 입법개품만을 [음악]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바로이 입법 계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선재동자가 신세명의 스승을 찾아 떠난 그 순례. 문수보살이 소년을 남쪽으로
9:16 보내던 그 장면. 보연 보살이 마지막에 10대원을 설하던 그 자리. 저희가 지난 시여편에 걸쳐 함께 걸었던 그 모든 이야기가 바로이 40파엄 입법계품 속에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즉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이 거대한 화엄경이라는 바다에 가장 깊고 아름다운 한 물줄기를 함께 걸어온 셈입니다. 그러니 오늘 여정은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사실은 얼마나 크고 깊은 강줄기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이 경전은 인도와 중국을 거쳐
10:01 마침내 신라 땅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던 의상 대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서 화엄막을 공부하고 돌아와 지금의 영주 땅에 부석사를 세우고 화엄종을 열었습니다. 그때부터이 땅에서도 화엄경은 단순한 경전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절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불쌍과 탱화, 사찰의 이름 하나하나에도이 화원경의 흔적이 깊이 쓰며 있습니다. 특히 화엄경 안에는 십지품이라는 품이 있는데이 부분은 오늘날까지도
10:47 산스크리트어 원문이 그대로 남아 있을만큼 독자적으로도 중요하게 다뤄져온 부분입니다. 보살이 수행을 통해 한 단계씩 올라가는 열 가지 지위를 설한 대목이지요.이 십지품 하나만으로도 별도의 경전십지경으로 편찬되어 따로 유통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화엄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면서 동시에 그 안의 납품들조차 각자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었던 셈입니다.이 또한 오늘 저희가 곧 만나게 될 일진중 함시방의 도리를 미리 보여 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화엄경이 왜 경전의 뿌리인가? 다시
11:34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이 경전만이 유독 모든 경전을 아우르는 뿔이라고 불릴까요? 다른 경전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전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어떤 경전은 자비를 실천하는 법을, 어떤 경전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칩니다.이 모든 가르침은 하나같이 소중하지만 [음악]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해서 우리 눈높이에 [음악] 맞춰 한 걸음씩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은 순서가 반대입니다.이 경전은 우리를 낮은 곳에서 서서히
12:20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대신 처음부터 부처님이 도달하신 바로 그 정상의 풍경을 통째로 펼쳐 보여 줍니다. 마치 산을 오르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대신 정상에 서면 보이는 그 광경을 먼저 보여주고 이곳이 그대가 결국 다다를 꽃이다라고 말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신비로운 방식입니다. 아직 산 밑에서 있는 사람에게 정상의 풍경을 먼저 보여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데 화엄을 오래 공부한 이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정상의 풍경을 한 번이라도 마음에 품고 오르는 사람과 그저
13:06 발민만 보며 오르는 사람은 걸음이 다르다고요. 화엄경은 우리에게 그 정상의 풍경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지금 걷는이 낮은 걸음 하나하나에 이미 [음악] 그 정상이 깃들어 있음을 알려 주려는 것과 같습니다. 자상하고 파격적이면서 희망의 메시지 같은 법문이지요. 실제로 이런 방식이 다른 경전들과 얼마나 다른지 한 가지 예로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전들은 이렇게 하면 언젠가 저 자리에이를 수 있다는 방식으로 말합니다.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듯 오늘의 작은 실천이 내일에 더 나은 자리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화엄경은
13:54 다릅니다. 그대가 오늘 딛는 그 걸음이 이미 그 정상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도착해야 할 곳과 지금서 있는 자리 사이에 애초에 [음악] 거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엄경을 다른 경전들과 구별짓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는 이런 말도 전해집니다. 처음 발심하는 그 순간이 이미 바른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고요. 처음과 끝이 둘이 아니라는이 도리는 오늘 우리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큰 위안이 되어 줍니다.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첫걸음을 뗄 자격이 생기는게 아니라 첫걸음을 떼는
14:41 그 순간 이미 그 길 전체와 이어져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화원경을 오래 공부하신 분들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이 경전은 [음악] 이해하기 위한 경전이 아니라 젖어드는 경전이라고요. 한 번에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장엄한 풍경 속을 자꾸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마음도 그 풍경을 닮아간다는 것이지요. 오늘이 영상 하나로 화엄경을 다 이해하지 못하셔도 괜찮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오늘이 풍경 속을 잠시라도 함께 거일어 보았다는 것 그 자체입니다. 화엄경이 그리는 그 정상의 풍경에는
15:29 이름이 있습니다. 연화장 세계라고 부릅니다. 커다란 영꽃 탄송이 속에 겹겹히 도은 세계가 담겨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는 비로자나불이 계십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석가모니불이이 세상에 오셔서 중생 눈높이의 맞처법을 설하신 분이라면 비로자나불은 그 모든 설법의 근원 우주 전체를 두루 비추는 [음악] 광명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분입니다. 화엄경은 바로이 비로자나불의 눈으로 본 세계, 그 광명이 두루 비추는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전이지요. 훗날 중국의 화엄종 조사들은 이런
16:14 화엄경의 독특한 위치를 정리하기 위해 부처님의 평생 설법을 몇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는 작업을 했습니다.이를 이를 교판이라 부르는데 화엄종에서는이 화엄경을 부처님 설법에 가장 처음이자 [음악] 가장 근원적인 자리 중심에 놓았습니다. 마치 나무의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잎을 나누어 보듯이 화엄경을 뿌리로 이후에 설해진 다른 경전들을 그 뿌리에서 뻗어나온 줄기와 가지로 [음악] 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이 지점에서 화엄경은 유독 [음악] 한국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습니다. 신라의 의상 대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16:59 떠나 화엄학을 배웠다는 것 아시지요?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이 방대한 경전 전체를 통째로 짊어지고 올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몇 날 며칠을 고시한 끝에이 거대한 바다 같은 경전의 핵심을 단자 법성계라는 짧은 계송 하나에 압축해 냈습니다. 화엄일승 법계도가 그것입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압축했던지이 짧은 계송 하나를 두고도 후대의 학생들이 수백년간 강의를 이어올 정도였습니다. 오늘날까지도이 의상 대사 법성계는 [음악] 한국 화엄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17:46 첫 관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210자라는 짧은 글자 수 안에 화엄경 80권 전체의 뜻이 조금도 어긋남 없이 담겨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의상 대사의 지혜가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음악]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송의 한가운데 오늘 저희가 함께 볼 세 가지 보석 같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이 통찰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중국 당나라 때 이런 일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음악] 당시 황제였던 측천무가 화엄경의 깊은 뜻을 도무지 말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자 화엄종을 세운 법장 스님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방안
18:34 사방과 천장 바닥에 온통 거울을 세우고 그 한가운데 불쌍을 하나 놓아둔 것입니다. 그러자 거울과 거울이 서로를 비추면서 그 작은 방 안에 무한히 겹쳐지는 불쌍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황제는 그 광경을 보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음악] 백마디 말보다 눈으로 본 그 겹겹의 거울상 하나가 화엄경의 뜻을 더 깊이 전해 준 것이지요. 오늘 저희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 말이 아니라 이야기와 이미지로이 통찰에 다가가 보겠습니다. 화엄경의 세 가지 보석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보기.
19:20 이제 화엄경이 품고 있는 가장 유명한 세 가지 통차를 만나 보겠습니다. 그런데이 [음악] 셋을 따로따로 설명하면 자칫 어려운 개념으로 나열되기 쉬우니 짧은 이야기 하나로 엮어서 함께 걸어 보겠습니다.이 이 이야기는 [음악] 특정 임무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화엄경을 공부해 온 여러 스님들의 구도 여정을 하나로 모아 엮어 본 것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어느 스님이 있었습니다.이 스님은 젊은 시절부터 머리가 좋기로 소문났고 경전이라면 무엇이든 한번 보면 잊지 않았습니다. 스승들은이 스님을 볼 때마다 흐뭇태하며이 아이는 [음악]
20:07 장차 큰 강백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엄경만은 아무리 읽어도 마지막 한 걸음이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경전은 몇 번 읽으면 뜻이 히 들어오는데 화엄경만은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음악] 더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어요. 평생을 공부했지만 마지막까지 마음에 걸리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이 넓은 우주와 지금 내 손 안에 있는이 작은 돌멩이 하나.이 둘이 정말 같은 무게로 존재하는 걸까?이 이 질문은 깊이 박혔고 거듭 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스님은 꿈을 꿉니다.
20:53 꿈속에서 스님은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티끌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먼지한 토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티끌 속으로 시선이 점점 빨려 들어가더니 그 안에서 상과 강, 온 세상이 통째로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티끌 하나가 작았던게 아니라 그 안에 원래 온 우주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깨어난 스님은이 꿈을 곰곰히 되새기다 문득 깨닫습니다. 크다 작다는 것은 애초에 내가 지어낸 구분이었구나.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 세계가 통째로 담겨 있다면 큰 것과 작은 것은 원래
21:40 걸림이 없는 것이었구나. 평생 풀리지 않던 그 마지막 한 걸음이 그제야 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 그리고 의상대사 법성계가 말하는 일진중 함시방입니다. 하나의 작은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스님은이 깨달음에 기뻐하며 다음날 아침 마당에 나가 이을 맺친 거미줄을 바라보다 또 한 가지를 알아차립니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 방울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서로를 비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슬을 하나를 들여다 보면 그 안에 [음악] 다른 모든 이슬 방울이 비춰 보이고 그 비친 이슬 방울 속에는 또
22:27 다른 모든 이슬방울이 비춰 보였습니다. 끝없이 겹겹이요. 스님은 한참을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너 놓고 그 작은 그물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중무진입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를 끝없이 비추고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가 변하면 그 파장이 다른 모든 것에 겹겹이 [음악]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이 이슬방울들의 그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스님의 머릿속에 오래전 스승에게서 들었던 예시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하늘의 재석천에게는 [음악] 커다란 그물이 있는데 그 그물의 매듭마다
23:13 보배 구슬이 하나씩 달려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모든 구슬의 모습을 고스란이 [음악] 비추고 있었습니다. 구슬 하나를 들여다 보면 거기에 나머지 모든 구슬이 비치고 그 비친 구슬 속에 또 나머지 모든 구슬이 비치기를 끝없이 반복하면서요. 어릴 적엔 그저 신기한 옛 이야기로만 들었던 그 그물이이 순간 스님의 눈앞에 있는 거미줄과 정확히 겹쳐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드라망입니다. 그리고 이제 스님은 알아차립니다. 자신이 꿈에서 본 티끌 속에 우주도
23:58 아침에 본 거미줄의 이슬도 예시하기 속 재석의 구슬 그물도 사실은 전부 같은 진실을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습니다. 나와 세상은 따로 떨어진 두 개가 아니라 [음악] 서로를 끝없이 비추며 하나로 이어진 커다란 그물입니다. 오늘 내가 짓는 작은 선행 하나, 작은 미소 하나도이 겹에 그물을 타고 결국 온 우주로 퍼져나갑니다. 반대로 오늘 내가 짓는 작은 악업 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은 그날 [음악] 이후는이 작은 행동 하나쯤이야 상관없겠지라는
24:45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놓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온 우주의 그물을 흔드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훗날 제자들이 스님에게 화엄경의 뜻을 한마디로 정리해 달라 청하자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대가 오늘 밟은 그 발자국 하나가 이미 온 우주의 문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조금 멀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치 우리는 매일 저녁 밥상 앞에서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놓인 밥 한 그릇을 가만히 들여다 보십시오. 그 안엔
25:30 농부가 흘린 땀이 있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내리 햇살이 있고 눈을 적신 비가 있습니다. 씨앗을 골라 심은 손길이 있고 별을 배고 찌어낸 손길이 있고 그것을 틀어게 싫어 나른 이들의 새벽이 있습니다. 밥한 그릇 안에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인연이 겹겹이 쌓여 있는지요. 그러니 오늘 저녁 [음악] 밥 한 술 뜨실 때 한 번쯤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이 [음악] 한 그릇 안에 이미 온 우주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요. 선재동자가 걸었던 그 길.이 이 커다란 진리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이 통찰은
26:15 사실 우리가 이미 오래 전에 함께 걸어본 길이기도 합니다. 선재동자가 만난 신세명의 스승들 기억하시나요? 첫 스승 더군비구부터 마지막 신 세 번째 실천의 완성을 보여준 보연보살까지 스님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뱃사공도 있었고 평범한 여인도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얼굴, 서로 다른 삶이었지만 선제동자는 그 한 사람 한 사람 속에서 매번 같은 진리의 한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일미진중함 시방에 살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신세명의 스승 하나하나가 작은 티끌 같았지만 그 각자의 티끌 안에
27:03 [음악] 이미 온전한 우주가 온전한 진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미 선제동자 구법기로 시여편에 걸쳐 이순례를 함께 걸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 길을 다시 되집 않고이 정도로 짧게 마음에 새기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음악] 신세명의 스승 한 분 한 분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깊고 [음악] 다체로운지 오늘이 짧은 언급만으로는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이 신 세 명을 한 분 한 분 제대로 찾아뵙는 여정은 별도의 영상으로 [음악] 따로 마련해 보려 합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걸어온 길을
27:48 잠시 되짚어 볼까요? 화엄경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왜이 경전이 다른 경전들과 다른 자리에 놓이는지, 그리고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기는 그 신비로운 이치까지 [음악] 함께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정작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인 부처님의 육성 그 자체는 들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자리로 가보겠습니다. 화엄경 속 부처님의 법문 마음은 화가와 같다. 화엄경의 여러 회자 중 한 자리 수많은 보살들이 모여 저마다 [음악] 계송으로 깨달음을 노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강림 보살이라는 분이 대중 앞에 나서 계송
28:36 하나를 읍습니다. 다른 보살들의 계송도 저마다 깊었지만 유독이 강림 보살의 계송이 후대에 가장 널리 회자되었습니다. 짧게 풀어들이면 이런 내용입니다. 마음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이 세상 온갖 것을 다 그려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 모든 모습이 사실은이 마음이라는 화가가 붓을 놀려 그려낸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화가 마음속엔 처음부터 뚜렷한 그림이 있는게 아니지만 붓이 움직이는 대로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듯이 우리 마음도 처음엔 텅 비어 있지만 [음악] 그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세상의 온갖 모습이
29:24 그려져 나온다는 것이지요.이 구절에서 나온 말이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이 화엄경의 한 구절이 훗날 신라 땅에서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살아 움직입니다. [음악] 바로 원요 대사의 이야기입니다. 원요 대사는 젊은 시절 의상 대사와 함께 [음악]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어느 어두운 동굴 같은 곳에서 잠을 청하게 됩니다. 한밤쯤 목이 너무 말랐던 원는 머리에 놓인 바가지에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30:11 어찌나 달고 시원하던지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환난 빛 속에서 다시 보니 그건 바가지가 아니라 해골이었고 그 안에 고여 있던 것은 그저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원요는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닫습니다. 어젯밤엔 그렇게 달게 마셨던 물이 오늘은 구역질이 날만큼 더럽게 느껴집니다. [음악] 물은 그대로인데 달라진 건 오직 하나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아,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었구나. 진리는 당나라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이 마음 안에 있었구나. 원요 대사는 그 길로 [음악] 당나라 유학을 접고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30:59 그리고 평생이 [음악] 깨달음을 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했습니다. 화엄경의 그 짧은 개송한 줄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훗날 사람들이 원요 대사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스님, 그날 밤 마신물이 해골에 고인 것인 줄 처음부터 아셨다면 그렇게 달게 마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원요 대사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다. [음악]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는데 하물며 [음악]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 전체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함께 유학기를 떠났던 의상 대사는
31:45 결국 [음악] 당나라로 건너가 화엄막을 정통으로 배우고 돌아왔고 원요 대사는 신라에 남아 저작거리에서 불법을 전했습니다. 두 분의 길은 이렇게 갈라졌지만 두 분 모두 결국 같은 화엄의 진리를 각자의 방식으로이 땅에 심었던 것입니다. [음악] 한분은 경전의 정수를 210십자로 응축해 후대학인들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그 진리를 저작거리 사람들의 언어로 풀어 누구나 다가갈 [음악]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이 둘이 함께 있어야 화엄의 세계가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것을 두 분의 삶이 나란히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32:33 화엄 정신을 이어온 사람들 누구일까요? 화엄경은 부처님이 설하신 그 순간 그리고 여러 스님들이이를 [음악] 번역해 낸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이 >> [음악] >> 땅 신라와 고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이 화엄의 정신을 몸으로 이어왔습니다. 경전은 종이 위에 머물러 있을 때는 그저 글자일 뿐입니다. 그 글자가 다시 살아 숨쉬려면 누군가 그것을 자기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자장율사를 기억하시나요? 문수보살 편에서 저희가 함께 만납했던 [음악] 그 자장율사입니다.
33:19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챙겨하지 못해 에테오다 결국 고향 땅 오대산에서 그 인연을 이어갔던 분이었지요. 자장율사는 이후 신라의 여러 사차를 세우고 계율을 정비하며 화엄의 정신이이 [음악] 땅에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통도사, 문수보살의 성지가 된 오대산 상원사이 모든 자리마다 자장율사의 발걸음이 남아 있습니다. 먼 이영 만리에서는 끝내 만나지 못했던 두 구도자가 결국 자기나 산천 속에서 만났다는 그 여정 자체가 이미 화원경이 말하는 진리를 온몸으로 살아낸 것이었습니다.
34:06 진리를 찾아 그토록 멍기를 떠났던이가 [음악] 결국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것을 되찾았다는 것.이 이 역설이야말로 화엄경이 우리에게 가장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의상 대사가 있습니다. 당나라에서 화엄학을 정통으로 배우고 돌아와 부석사를 세우고 화엄종을 열었으며 그 방대한 경전의 정수를 21자의 법성계 하나로 응축해 낸 [음악] 분입니다. 전에 오는 이야기로는 의상 대사가이 법성계를 지을 때 하룻밤 [목을 가다듬음] 사이에 맞췄다고도 하고 오랜 시간 공들여 다듬었다고도 전해집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그 짧은
34:53 210십자 안에 [음악] 화엄경 전체의 정수가 조금도 빠짐없이 담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본 일진중함 시방, 중중 무진, 인드라망의 통찰도 모두 이법성계 안에 담겨 전해져 온 것입니다. 그리고 원요 대사가 있습니다. 화려한 유학도 특정 종파의 창시자라는 이름표도 없이 그저 해골물 하나로 깨달음을 얻고는 저작거리로 나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불법을 [음악] 전했던 분입니다. 어렵고 방대한 화엄경의 진리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쉬운 말로 풀어낸 것이지요. 원요 대사는 훗날 화엄경에
35:39 대한 방대한 주석서를 남기기도 했는데 정작 그 자신은 학문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표주박 하나를 두드리며 저작거리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노래하듯 불법을 전했습니다. 그를 모르는 사람도 신분이 낮은 사람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요.이 세분는 시대도 방식도 걸어간 길도 저마다 달랐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분들의 삶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오늘 저희가 함께 본 그 통찰이 고스란이 담겨 있습니다. 자장율사가 먼타국에서 찾아 헤매던 것을 결국 고향산에서 만났다는 것. 그것이 일미진중함
36:25 시방이었습니다. 의상 대사가 방대한 경전을 짧은 계송 하나로 엮어낸 것. 그것이 중중 무진이었습니다. 원요 대사가 해골 하나로 온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것. 그것이 인드라망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세 분의 삶이 결국 하나의 진리를 저마다의 각도에서 비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이 흐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이 영상을 만들고 있는 저희도 그리고 [음악] 지금이 영상을 보고 계신 여러분도 사실은 커다란 흐름 속에 한 매듭입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순간에 완성된 경전임에도 수천년을 흘러오며
37:13 구도자들의 걸음과 마음을 흔들어 깨웁니다. 자장율사에게서, 의상 대사에게서, 원요 대사에게서 [음악] 계속 다시 태어났듯이 오늘 우리의 마음 하나하나에서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살아 있는 경전입니다. 훗날에도이 흐름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많은 스님들이이 화엄의 정신을 이어받았고 그년대에 이르러서는 방대한 화엄경을 우리말로 완역해 낸 큰 스님들도 계셨습니다. 천년도 훨씬 넘는 시간 동안이 경전은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온 것입니다. 화엄는 끝나지 않습니다.
38:02 여전히 성성이 존재하며 우리를 깨우고 있습니다. 쉰 세분 선지식의 얼굴. 여기서 잠시 호흡을 바꿔 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선재동자가 실제로 만난 그 신세분의 얼굴을 순서 그대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 보려 합니다. [음악] 한 분 한 분 깊이 머물지는 못하지만이 짧은 순간에도 화원경이 얼마나 다체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첫 발심을 열어준 문수사리 보살. 그리고 더군비구, 해운비구, 선주비구 미가장자 해탈장자 [음악] 해당비구, 휴사우바이, 비목구사선인,
38:48 승열바라문, 자행동. 여기까지가 첫 열분 수행의 첫걸음을 다진 스승들입니다.이 열분에게서 선재동자는 부처님을 향한 한결 같은 마음과 깊은 선정과 실천으로 살아내는 수행의 기초를 배웠습니다.이이어서 이이어서 성견비구, 자재주동자, 구조바이 명지장자 법보장자 [음악] 보안장자, 무조광, 대광왕, 부동우이 변행회도 왕도 [음악] 있고 심지어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외도까지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무염조이라는 이름을 눈여겨 보실 만한데요. 얼핏 무서운 형벌을 내리는
39:34 왕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 엄격함 속에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방편이 숨어 있었다고 [음악] 전해집니다. 선재동자는 여기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웁니다. 3. 그다음은 우발라와 장자 파시라 장자는 뱃사공이었습니다. 무상승장자 사자빈 신비군이 바수밀 안주장자 그리고 밤을 다스리는 여러 주야신들 파수천신 개부수와 주야신 대원정진역 구호일체중생 주야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몸을 넘어선 존재들까지도 선제동자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뱃사공에게는 강을 건너는 법을 밤에
40:22 신들에게는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서원의 빛을 배웠습니다. 사그리고 구바녀 마야부인 바로 부처님을 낳으신 그 어머니입니다.이어서 이어서 천주각 변우동자 선지중자 현승우바이 경고의 탈장자 뮤월장자 무승군 장자 [음악] 최적정 바라문 그리고 덕생동자와 유덕동 어 마침내 미륵 보살을 만나 도설천 누각에서 온 우주가 겹겹히 담긴 광경을 봅니다. 처음 길을 열어준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 초심을 되새기고 마지막으로 보연 보살를 만나 그 모든 배움을 실천으로 완성합니다.
41:09 53선지식에는 스님도 있었고 왕도 있었고 뱃사공도 있었고 밤에 신도 있었고 어린 소녀도 있었습니다. 흰셋의 서로 다른 얼굴이었지만 그 하나하나가 결국 같은 진리를 비추는 인드라망의 구슬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도 아니었고 이름난 성인도 아니었던 이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한 소년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화엄경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파격적인 선언인지도 모릅니다. 깨달음을 향한 길에 자격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6.이 이 신세분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는 참으로 깊고
41:54 아름다워서 오늘이 짧은 스만으로는 [음악]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한 분씩 제대로 찾아뵙는 여정은 다음 이야기로 따로 마련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우선이 신세분의 얼굴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 얼굴들이 하나같이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왔다는 것만 마음에 담아 두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볼까요? 선재동자에서 시작되어 여기까지 온 화엄 시리즈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음악] 오늘 저희는 화원경이라는 커다란 바다의 근원을 함께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순간
42:43 깨달으신 상태를 그 쏟아내신 세계 흩어진 품들이 하나의 큰 뜻으로 모여 완성된 그 오랜 경전의 역사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기고 모든 존재가 겹겹히 서로를 비추며 구슬 그물의 마디마디가 서로를 끝없이 반영한다는 그 깊은 통찰 그리고 마음은 화가와 같다는 [음악] 그 한 구절이 원대 사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던 이야기까지 돌이켜 보면 저희가 선제동자와 함께 걸었던 그 순례도 문수보살에게서 배운 질문하는 습관도 보염 보살에게서 [음악] 배운 열 가지 실천도 그리고 오늘 만난 자장율사와 의상 대사와
43:29 원요 대사의 삶도 사실은 전부이 하나의 진리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그 진리를 여러 각도 도에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지혜의 산에서 문수보살이 던진 질문 하나. 코끼리를 타고 서두르지 않던 보연보살의 걸음 하나. 해골물 한 바가지 앞에서 원대사가 깨달은 마음 하나.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이 영상을 보시며 잠시 멈춰 생각해 본 그 순간 하나.이 이 모든 것이 저 인드라망의 구슬 하나하나처럼 서로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음악] 오늘 하루 우리가 짓는 아주 작은 선행 하나가 결코
44:15 작지 않다는 것. 그 하나가 겹에 그물을 타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다는 것. 이것이 화엄경이 그리고 저희 화엄 시리즈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진실이었습니다. 영상을 시작할 때 말씀드렸던 그 향 하나를 다시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음악] 그 작은 향 하나에 나무의 시간과 장인의 손길과 오랜 여정이 담겨 있었듯이 오늘 우리의 하루 하나에도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이 담겨 있습니다. 그 하루가 다시 누군가의 내일 속으로 겹겹이 이어져 갈 것입니다. 선재동자의 구법 순례로 시작해
45:01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연보살의 실천을 거쳐 오늘이 화엄경의 근원과 그 정신을 이어온 분들까지 함께 걸어와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처음 선제동자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이 여정이 이렇게 멀리까지 이어질 줄은 저희도 몰랐습니다. 한 소년의 순례에서 시작해 지혜의 산에서 사자를 탄 문수보살을 만나고 코끼리를 타고 서두르지 않던 보염보살을 만나고 마침내 오늘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인 화엄경 그 자체에 다달았습니다. 마치 저희도 여러분과 함께 화엄경이
45:46 그리는 저 인드라망의 구슬 하나하나를 손수 [음악] 만져보며 여기까지 걸어온 기분입니다. 또한 처음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저희는 그저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어 갈수록 오히려 저희가 더 많이 배우고 [음악] 더 깊이 젖어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화엄경이 말하는 진리를 저희 스스로 살아낸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 손잡고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었지요. 한 소년의 순례에서 시작해 그 쉰 세 명의 스승 한 분 한 분을 만났습니다.
46:31 왕도 뱃사공도 밤을 다스리는 신들도 평범한 여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이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니이 [음악] 여정은 끝이 없습니다. 앞에서 인도해 주시고 뒤에서 밀어 주시는 불보살님 손잡고 그저 즐겁고 행복하게 나아가야지요.이 구도의 길처럼 행복한 여정이 또 [음악] 있겠습니까? 우리들 모두가 구법의 여정에 있는 선재동자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겹겹이 이어진이 커다란 그물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여기까지 함께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47:17 것입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시간내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음악] 더 좋은 영상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나무 대방광 불라엄경.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