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원래 다 바다였습니다" 갯벌을 메워 세계 3위 공항까지 만든 한국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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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요약

영상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이 어떻게 바다를 메우고 만들어졌는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은 과거 40년 간의 기술과 경험을 통해 해외에서도 땅을 만드는 등 도전을 해왔다.

  • 인천국제공항은 원래 바다였던 개벌 위에 세워졌다.
  • 한국은 기초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현재는 국제적인 건설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천 연안의 변화

인천은 원래 개벌이었던 곳에 인천국제공항을 만들기 위해 바다를 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1990년대 초, 섬과 섬 사이의 바닷물을 막아 국제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방조제를 세우고 새로운 땅을 만든 과정이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1992년부터 1994년까지 2년 가까이 이어졌다.

해양 공사의 난이도와 기술

물마귀 공사는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틈을 막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시뮬레이션과 기술적 접근이 매우 중요했다. 많은 양의 바닷물을 막기 위해 기초적인 기술이 적용되며 다시 안정된 땅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포함되었다.

인천공항의 성공

1994년 공사가 완료된 후, 인천국제공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중 하나가 되었다. 2024년에는 약 7,670,000명의 여객을 수송하게 되어 세계 3위 공항으로 올라섰다. 더불어 무역량에서도 290만 톤을 수송하며 세계적으로 중요한 물류 허브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배우지 않던 기술과 협력

1980년대 서산에서 더험한 물 마귀를 성공적으로 막음으로써, 한국은 독창적인 건축 기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현대건설은 싱가포르에서도 종합적인 간척 사업을 시행하며 해외에서 대등한 기술력을 인정받게 됐다.

세만금 간척 공사

세만금 방조제 공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명성을 얻었다. 이것은 몇 십 년 간의 노력으로 완성되었고, 현대 건설 업계의 기술 진보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울릉도 공항 건설의 도전

울릉도에 공항을 세우기 위한 과정은 더 복잡하였으며, 바다의 깊이와 화산섬의 지형이 난제로 작용하였다. 이곳에서는 먼저 방파제를 세우고 그 안쪽을 메우는 방식으로 건설이 진행되었다.

상상 이상으로 발전한 기술

한국의 해양 공사 기술은 세계 저명한 사례로 성장하였다. 현대건설은 싱가포르에서 약 7%의 국토를 메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본 및 네덜란드와 협력하여 해외에서 인정받을 만큼의 기술력을 서야 하였다.

국내외 건축기술의 위치 변동

한국 건설기는 이제 해외에서도 기술력으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복잡한 간척 사업에서 중요한 협력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건설 분야에서 국제적인 입지를 굳혔다.

앞으로의 과제와 기술 발전

한국의 해양 건축 기술은 국토를 변화시켰으며,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다. 부산의 새로운 공항 건설 계획은 한국의 해양 기술 발전을 다시 한 번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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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보는 인천 공항. 그 넓은 활초로가 원래는 조개해던 개벌이었다면 믿으시겠어요? 땅이 없으면 바다를 메워서라도 만든다. 한국은 지난 40년 동안 개벌과 바다를 메워 공항을 세우고 국토를 넓혀왔습니다. 그렇게 쌓은 기술로 이제는 싱가포르 앞바다에 서울 강남만한 땅을 만들어 주고 돈을 받는 나라가 됐죠.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어떻게 남의 나라 땅까지 파는 나라가 됐는지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면 개벌과 방파제로만 보이던 우리 해안 풍경이 사실은 수십조짜리 수출 상품의 출발점이었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구독, 좋아요 꾹 눌러 주세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천

0:45 공항. 그 활주로가 놓인 땅은 원래 영종도와 용유도라는 섬들 사이에 넓게 펼쳐진 개벌이었습니다. 만조 때 물이 차오르면 평균 수심이 3, 4m, 얼른 키를 훌쩍 넘기는 바다가 됐다가 물이 빠지면 조개는 갯벌로 돌아오는 땅이었죠. 바로이 섬과 섬 사이 바다를 통째로 메워서 국제공항을 짓겠다는 결정이 내려진게 1990년대 초입니다. 지금 보면 단연한 자리처럼 느껴지지만 당시로서는 육지에 지어도 될 공항을 굳이 바다 한복판에서 새 땅부터 만들어 시작하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활주로를 깔 땅이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데 그 땅부터 바다에서 건져 올려야 하는 공사였던 셈이죠. 매운다는 말은 간단하지만 바다를

1:32 땅으로 바꾸려면 먼저 밀려드는 바닷물부터 막아야 합니다. 섬과 섬 사이를 두구로 이어 바닷물이 드나드는 길을 끊는 물마귀 공사인데요. 북쪽으로 삼목도에서 용유도까지 7.31km, 남쪽으로 신불도에서 용유도까지 6.08km 동쪽 구간까지 합치면 방주제 길이만 약 17km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바닷물을 막아 개벌을 말리고 흑과 모래로 다져올리면 비로소 활주로를 깔 수 있는 평지가 생기는 겁니다. 부지를 메우는이 작업만 1992년 11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꼬박 2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물마귀 공사는 마지막 순간이 가장 무섭습니다. 양쪽에서을 좁혀 오다

2:19 보면 바닷물이 빠져나갈 길이 점점 줄어드는데 같은 양의 바닷물이 좁은 틈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물살이 무섭게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욕조에서 마게를 뽑으면 배수구 근처에서 소용돌이가 산납게 도는 그 장면을 바다 규모로 옮겨 놓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994년 10월 말 마지막 남은 좁은 물기를 막아내면서 인천궁항 부지의 물마귀가 마무리됐습니다. 그렇게 바다에서 건져올려 육지로 바꾼 개벌이 1,435만 평, 여의도 면적에 약 19배였습니다. 여의도 19개를 바닷 속에서 새로 건에 붙인 것입니다. 지도에 없던 땅이 이만한 규모로 새로 생겨난 겁니다. 그런데 땅을 만들어 놓고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3:06 메워 쌓은 땅은 속이 물러서 세월이 지나며 자리마다 조금씩 다르게 내려왔는데 하필 그 위에 무거운 여객기가 쉴새 없이 뜨고 내려야 하니 활로가 울퉁불퉁 주저앉지면 공항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바다를 메운 공항은 결국 가라앉을 거다.이 넓은 공항을 채울만큼 사람이 우지도 않을 거다. 세금만 쏟아붙는 텅빈 공항이 될 거라는 회의가 공사 내내 따라다녔습니다.이 이 걱정에 대한 답이 흥미롭습니다. 공사를 무작정 빨리 끝내는 대신 매운 땅이 스스로 자리를 잡도록 일부러 시간을 들여 기다렸습니다. 물은 개벌 위에 흙을 쌓아 무게로 눌러두면 땅속 물기가 서서히 빠지면서 집안이 단단해지는데 그 과정을 억지로 앞당기지 않고 땅이

3:53 충분히 내려앉을 때까지 지켜본 겁니다. 봉사를 빨리 끝내는 것보다 땅이 단단해지는게 먼저라는 판단이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이 기다림이 훗날 활주로가 흔들림 없이 버티는 바탕이 됐습니다. 바다를 메운 공항은 가라앉는다던 걱정을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방식으로 정면 돌파한 겁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가라앉는다던 그 개벌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2024년 인천 공항의 국재선 여객은 7,66만 명. 세계 공항들을 통틀어 3위에 올랐습니다. 앞에 있는 건 두바이와 런던 히드로 단 두 곳뿐입니다. 인천 바로 뒤로는 싱가포르 창위 공항이 6,706만 명, 네덜란드 스키폴이

4:39 6,682만 명으로 이어졌으니 오랜 항공 강국들의 반문을 바로 아래로 밀어낸 겁니다. 개항일에 처음으로 세계 3위에 선거죠. 사람만 그런게 아닙니다. 같은 애 인천공항이 실어나른 북제 화물은 290만 톤으로 홍콩과 상하의 다음은 세계 3이었습니다. 여객으로 보나 화물로 보나 세계 손가락 안에 드는 관문이 된 겁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25년에는 인천 공항으로 간 총 여객액이 7,407만 명까지 들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수요가 없을 거라던 바로 그 공항이 이제는 한해 7천만 명이 넘는 사람을 실어나르는 세계 최상위권 관문이 된 겁니다. 조개를 캐던 개벌 위에서

5:26 지금 한해 수천만 명이 뜨고 내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첫 번째 반전입니다. 가라앉을 거라던 땅이 세계에서 가장 분비는 관문 가운데 하나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배벌 하나 제대로 메워 본 적도 없던 나라가 대체 어디서 바다를 통째로 막아낼 배장과 기술을 얻었을까요? 인천공항보다 10여년 앞선 1980년 충청남도 서산 앞바다에서 훨씬 더 거친 물마귀가 시작됐습니다. 서산 A 지구와 B구 간척 바닷물을 막아 넓은 농경지를 만드는 공사였는데요. 여기서 확보하려던 땅이 약 16,000를 우리 국토의 약 1%에 해당하는

6:11 면적이었습니다. 여의도로 치면 약 쉰계에 달하는 크기의 바다를 땅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었죠.이 이 공사가 성공하면 나라 전체의지도 모양이 바뀔 정도의 대역사였습니다. 문제는 마지막 울마귀 구간에 바다가 사람의 상식을 벗어날만큼 사나웠다는데 있습니다. 서산 앞바다는 밀과 썰물의 높이 차이가 9m에 달했습니다. 하루에도 바닷물이 아파트 3층 높이만큼 오르내린다는 뜻인데 그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막바지 좁은 물길로 몰리면서 유속이 초당 약 8m까지 취소샀습니다. 우리가 한 여름 큰 홍수가 났다고 할 때 한강의 물살이 대략 초당 6m 안파킨데 서산의 마지막 물길은 그보다도 빠른

6:58 물살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던 겁니다. 홍수가 났을 때의 강물보다 사나온 물사를 잠깐도 아니고 밤낮 없이 상대해야 했던 셈이죠. 이런 물살 앞에서는 흔한 방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두을 쌓으려고 큼직한 돌을 쏟아부어도 승용차만한 바위조차 물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쓸려나갔었습니다. 아무리 돌을 부어도 바닥에 남질 않으니 히 자라날 수가 없었죠. 먼저 국내 기술진이 매달렸지만 물사를 이기지 못했고 바다 건너 앞선 나라의 전문가들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이런 물살은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에서 한 번, 해외에서 또 한 번, 그리고

7:44 이론으로 계산해 봐도 안 된다는 답이 나오면서 방법이 없다는 벽이 세 번이나 되풀이에 쌓인 겁니다. 마지막 물길 하나를 남겨두고 몇 년째 공사가 그 앞에서 멈춰서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공사를 접거나 될 때까지 무작정 볼을 더 붙는 쪽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실제로 돌을 아무리 부어도 밑빠진 독처럼 물살에 쓸려 나가기만 하니 시간과 비용만 계속 세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바로이 막다른 자리에서 현대 그룹 정주형 회장이 전혀 다른 발상을 꺼냅니다. 돌이 자꾸 쓸려 나가는게 문제라면 굳이 돌로 이길게 아니라 물살에 쓸리지 않을만큼 크고 무거운 것 하나로 물기를 통째로 틀어막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눈을

8:32 돌린 대상이 때마침 고철로 팔려고 사두었던 다쓴 대형 유조선이었습니다. 길이가 322m, 무게가 22만6,000톤에서 23만 톤에 이르는 거대한 폐 유조선이었는데요. 2만 한배를 마지막 물길 위로 정확히 끌고 와 물살이 가장 사나온 구간에 맞춰 세운 다음 안에 바닷물을 채워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쳤습니다. 돌은 쓸려 나가도이 거대한 쇠덩어리 배는 꼼짝하지 않았죠. 배 한척이 물길을 통째로 가로막자 그 뒤로 물살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고 잠잠해진 그틈을 놓치지 않고 돌과 흙을 부어을 이어붙였습니다. 몇 년을 애먹이던 마지막 물마귀가 폐유 조선을 가라앉치고 나서는 며칠

9:18 만에 끝났습니다. 덕분에 공사비도 약 280억에서 290억 원이나 아꼈고요. 그저 돈을 아낀 데서 그친게 아니라 아무도 답을 내지 못하던 물기를 실제로 막아냈다는게 핵심입니다. 배로 물살에 잡는다는이 방법은 당시 미국의 뉴스크와 타임 같은 잡재에까지 소개됐고 지금도 세계 토목학계에서는이 물마귀 방식을 정주영의 이름을 따서 부르고 있습니다. 앞선 나라의 기술을 배워오던 처지에서 오히려 앞선 나라들이 무리 방법을 배우게 된 첫 장면이었습니다. 남의 교과서를 받아줬던 나라가 자기 이름이 붙은 방법 하나를 세계 교과서에 써 놓은 겁니다. 그렇게 사나웠던 물기를 막고 나서 서산 앞바다에는 국토의 약

10:03 1%에 해당하는 새 땅이 실제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불가능하다던 일이 눈앞에 땅으로 바뀌자이 방식은 이후 우리 바다공사의 든든한 미천이 됐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배를 가라앉쳤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남들이 다 가진 장비도 앞선 기술도 없어서 안 된다는 말만 세 번들은 나라가 마침 고철로 처분하려던 배 한척에서 답을 찾아냈다는 점입니다. 없어서 궁하니까 남들이 미쳐 해보지 않은 방법을 짜냈고 그렇게 짜낸 방법이 세계 토목 교과서의 이름을 오인 겁니다. 앞선 나라의 장비를 그대로 들여왔다면 나오지 않았을 가진게 없어서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국미해야 했기에 남들이 상상하지 못한

10:50 답이 나온 거죠. 없다는 조건이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낳는다는이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우리 바다 이야기에서 몇 번이고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산에서 쌓은 물마귀 경험이 한 곳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 무대가 있습니다. 서산에서 배로 물살을 잡아본 나라가 그다음 도전한 무대가 전라북도 세만금입니다. 부안에서 분산까지 바다를 가로지르는 세만금 방조재는 길이가 33.9km에 이릅니다. 간척으로 치면 원조격인 나라가 네덜란드인데 네덜란드가 1932년에 완성한 압솔루트 담이 32.5km로 무려 8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세만금은이

11:36 오래된 기록을 1.4km 차이로 앞질렀고 2010년 4월에는 세계 최장 방조제로 기네스 세계 기록의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간척의 원조나라가 80년 가까이 지켜온 기록을 뒤늦게 바다를 메우기 시작한 한국이 마침내 넘어선 겁니다. 그런데 세만금에서 정말 놀라운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차를 몰고 방조재 위를 지날 때 눈에 들어오는 건 잘 닦긴 두길과 그 아래로 이어진 비탈면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바닷물 아래 잠긴 방조재의 진짜 몸통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합니다. 바닥에 닿는 민너비가 넓은 곳은 535m에 달하고 높이는 평균 36m, 가장 깊은 구간은

12:21 54m까지 내려갑니다. 높이 54m면 아파트로 치면 18층에 만 먹는데 그 18층짜리 콘크리트와 돌더미를 옆으로 눕혀서 33.9km 대내 바닷속에 깔아둔 셈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두길은 그 거대한 몸통의 꼭대기 물 밖으로 살짝 드러난 일부일 뿐이죠. 바닷속에 잠긴 진짜 크기는 지나가는 사람들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데 그 보이지 않는 몸통이 33.9km km 내내 바다 밑바닥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1991년 11월에 첫삽을 뜬이 방조재 하나를 완성하는데만 약 18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을 들여 바다 한 가운데 세 개에서 제일 긴 독을 쌓아

13:07 올린 것입니다. 서산에서 물길 하나를 막던 경험이 세만금에서는 바다 자체를 가로지르는 규모로 커진 겁니다. 이렇게 바다를 가로마스다가 땅을 만드는 기술은 방향을 살짝 들자 바다 위에 다리를 놓는 기술로도 번져나갔습니다. 바다를 메워 본 경험은 깊은 물 속에 무거운 구조물을 안정적으로 앉치는 노하우로 이어졌고이 노하우가 그대로 해상 그량공사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인천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인천 대교가 대표적인데요. 2005년에 착공해 2009년 10월에 개통한이 다리는 총 연장이 21.38km 그 가운데 교량 구간만 18.35km에 이릅니다. 바다 한복판에 다리를 놓으려면 물살과 바람을 견디면서

13:53 상판을 지탱해야 하는데 인천대교는 높은 기둥에서 굵은 케이블로 바닥판을 잡아당겨 매다는 사장교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다리의 상판은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하나하나 만드는 대신 육지에서 미리 큼직한 덩어리로 만들어 두었다가 대형 크레인으로 통째로 들어올려 제자리에 얻는 방식으로 시공했습니다. 인천 대교의 규모는 숫자로 보면 더실감이 납니다.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벌린 주경간이 800m로 계통 당시 같은 방식의 다리 가운데 세계 5위였습니다. 케이블을 붙드는 주탑은 높이가 238.5m에 달하는데 서울의 63 빌딩이 249m인 걸 떠올리면 63 빌딩과

14:39 만먹는 높이의 탑을 바다 한 보판에 두 개나 세워 그 사이에 다리를 매단 것이죠.이 이 거대한 다리를 짓는데 걸린 시간은 약 52개월이었습니다. 계통 당시이 정도 규모의 사장교는 세 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으니 바다를 메우는 기술로 시작한 나라가 바다 위에 세계적인 다리까지 올려세운 겁니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고 바다를 가로질러 바리를 놓는 기술이 이렇게 서해에서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서해에서 통하던이 방법이 동해에서도 똑같이 통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해의 외딴섬 울릉도에 지금 공항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배를 타면

15:24 예일곱시간이 걸리던 섬인데 공항이 열리면 비행기로 약 한시간이면 닿게 됩니다. 그런데이 울릉 공항을 짓는 현장이야말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다공사 가운데 난도가 가장 높은 무대입니다. 가장 먼저 발목을 잡은 건 바다의 깊이였습니다. 공항이 들어서는 사동 앞바다는 평균 수심이 약 23m 깊은 곳은 30m에 이르는 심해였습니다. 인천 공항을 지은 개벌이 물 빠지면 걸어 들어갈만큼 얕고 만조에도 3, 4m에 그쳤던 걸 떠올리면 울릉의 바다는 인천보다 예일곱 빼는 깊은 물 속에 땅을 만들어야 했던 겁니다. 인천에서는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개벌 위에 흙을 쌓우면 됐지만 울릉에서는 발이 닿지도

16:11 않는 깊은 바닷부터 채워 올려야 했습니다. 얕은벌을 메우던 방식으로는 애초에 손을 댈 수가 없었죠. 게다가 울릉도는 섬 전체가 가파른 화산섬이라 바다를 메울 흙과 돌을 쌓아둘 평지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상식을 벗어납니다. 공항 옆에 솥은 가두봉이라는 산을 통째로 깎아내려 그 돌덩이로 앞바다를 메우기로 한 겁니다. 깎아내야 할 산의 양이 912만제M 25톤짜리 대형 덤프 트럭으로 약 60만 대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산 하나를 헐어서 바다에 붙는 공사인셈이죠. 2026년 5월을 기준으로이 가두봉의 절취는 70%를 넘어섰고 그렇게

16:57 깎아낸 돌이 앞바다를 조금씩 땅으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여기서이 공사의 진짜 묘수가 등장합니다. 보통은 바다의 흙과 돌부터 부어 땅을 만들고 나서 방파제를 세울 법한데 울릉에서는 순서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동해의 파도가 워낙 거서 붙어 부었다가는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파도에 다 쓸려 나갈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서산에서 돌이 물살에 쓸려 나가던 상황이 동해에서는 파도의 형태로 되풀이될 판이었죠. 그래서 파도를 먼저 막을 방파제부터 세우고 그 안쪽에 잔잔해진 바다를 메우는 순서로 진행했습니다.이 공사의 진짜 묘수는 산을 깎았다는데 있는게 아니라 무엇을 먼저 하고

17:43 무엇을 나중에 할지 순서를 뒤집은데 있었던 겁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2020년 9월 태풍 마이사기 울릉도를 지날 때 섬 주변에서 관측된 최대 파고가 19.5m 울릉도 간측일 가장 높은 파도였습니다. 이때 사동항 방파제 약 200m가 파도에 쓸려 나갔고 울릉도가 입은 피해 476억 원에 달했습니다. 바다가이 정도로 사나온 곳이니 파도부터 잡지 않고는 아무것도 싸울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이 파도를 막아설 방파제의 몸통으로 케이슨이 동원됐습니다. 케이슨은 속을 벌집처럼 여러 칸으로 나눈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인데 울릉 공항에는 모두 30이

18:30 놓였습니다. 가장 큰 케이스는 높이가 약 28m, 무게가 16,400톤으로 국내에서 만들어진 케이슨 가운데 가장 무거웠습니다. 16,400톤이면 사람들이 흔히 타는 시내 버스를 100대쯤 한 덩어리로 뭉쳐 놓은 무게입니다. 공항을 지우면서 이런 케이슨 방파제 공법을 쓴 건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이 거대한 상자를 울릉도에서 만들다 보니 케이스는 저 멀리 포항 0일만항에서 하나하나 제작됐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케이스는 약 210km 떨어진 울릉 앞바다까지 바다 위로 끌고 왔는데요. 워낙 무겁고 큰 구조물이라 예인 속도가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했고

19:17 그렇게 이틀 박을 꼬박 바다 위에서 끌어옮겼습니다. 국내에서 이만한 케이슨을 이렇게 먼 바닷길로 날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케이스를 하나씩 옮겨앉치기를 거듭한 끝에 2025년 5월에 마지막 30번째 케이슨을 제자리에 내려놓으면서 방파제의 몸통이 모두 자리를 잡았습니다. 거대한 장비와 구조물이 모든 걸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케이슨을 안치기 전에 바닥의 돌을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은 결국 사람 손으로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 바닥이 수심 30m 바닷 속이었습니다. 햇빛이 제대로 닿지 않는 깊고 어두운 물 속에서 잠수부들이 손끝 감각에 의지해 돌

20:04 하나하나를 고르고 다졌습니다. 수십만 대분의 돌을 붙고 수천 톤짜리 상자를 앉치는이 큰 공사의 밑바닥을 어둠속 사람의 손이 받치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거대한 장비가 동원되도 마지막 정밀한 마무리는 결국 사람몫이었고 잠수부들이 가장 깊고 위험한 바닥에서 공사를 떠받쳤다는 사실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물론이 공사에 회의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정말 이만한 돈을 들여 공항을 지을만큼 사람이 오겠느냐는 수요를 다시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활주로 길이를 1200m로 잡는게 맞느냐를 두고도 의견이 오습니다. 이런 논의가 오 건 사실입니다. 다만 그 사이에도

20:50 공사는 이어졌고 2026년 5월을 기준으로 전체 공정률은 77.5%를 5%를 넘어섰습니다. 계약상 목표는 2028년으로 공항이 열리면 서울에서 울릉까지 예시간 걸리던 길이 약 한시간으로 줄어듭니다. 깊은 바다와 사나온 파도 평지 하나 없던 화산섬이라는 세겹의 조건을 산을 깎고 순서를 뒤집고 사람 손으로 밑바닥을 다지며 하나씩 넘어서고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바다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갈고닦근 기술의 진짜 쓰임새는 뜻밖에도 우리 바다가 아니라 남의 나라 바다에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부자 도시 국가 싱가포르는 북토가 좁기로 유명합니다.

21:38 그래서 싱가포르는 오래 전부터 바다를 메워 나라를 넓혀 왔는데 놀랍게도 그 국토의 상당 부분을 한국 건설사가 만들어 줬습니다. 현대 건설이 매립해 준 땅만 따져도 싱가포르 국토의 약 7%에 이릅니다. 한국 기업이 바다를 메워붙여 준 땅 위에서 지금 싱가포르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국토도 아닌 남의 나라 국토의 일부를 한국의 기술이 실제로 만들어 넘겼다는 뜻이죠. 시작은 1981년이었습니다. 현대 건설은 싱가포르의 한 섬을 매립하는 공사로 처음 발을 들인 뒤까지 싱가포르에서만 매립과 토목 공사를 여섯 건 넘게 따냈고 그 규모를

22:24 돈으로 합치면 143억 달러에 달합니다. 최근에 진행한 투아스 핑거 3 공사에서는 387를 축구장 500개가 넘게 들어가는 넓은 새 땅을 바다 위에 만들어 냈습니다.이 이 공사 한 건에 들어간 케이슨만 227함. 바다에 부어 넣은 흑과 모래가 1억 세제곱미를 훌쩍 넘었습니다. 무리가 앞서 울릉공항 방파제에 놓은 케이슨이 30이었던 걸 생각하면 남의 나라 바다에서는 그 일곱배가 넘는 규모의 공사를 한꺼번에 해내고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이 새 땅은 싱가포르가 항만을 통째로 옮겨오려고 만드는 초대형 부지라 나라의 미래가 걸린 자리를 한국 건설사가 맡아들어 주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이 하나 더

23:10 있습니다.이 투아스 핑거 3 공사는 한국의 현대 건설과 일본 그리고 네덜란드 회사가 한 힘을 이뤄 진행했는데 지분이 현대 건설 35%, 일본 회사 35%, 네덜란드 회사 30%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네덜란드는 간척의 원조로 불리는 나라입니다. 바다를 메우는 일에서 스승격이던 네덜란드와 비늦게 시작한 한국이 이제는 같은 공사장에서 대등한 지분을 나눠갔는 사이가 된 겁니다. 배울 것이 없어 방법을 물으러 다니던 나라가 원조 나라와 어깨를 나란니하는 자리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서사 앞바다에서 방법이 없다는 단만 듣던 때를 떠올리면 불과 한 세대만에 벌어진 자리 바꿈입니다. 땅을 만들어 파는

23:55 것만이 아닙니다. 바다 위에 다리를 놓는 기술도 그대로 수출됐습니다. 중동의 쿠웨이트에는 현대 건설이 지은 쉐이 자베르 코즈웨이라는 거대한 해상다리가 있습니다. 총 연장이 36.1km 그 가운데 바다 위를 지나는 구간만 27.5km에 5km에 이릅니다. 36km면 광화문에서 수원까지의 거리를 통째로 바다 위에 다리로 이어놓은 것과 비슷한 길이입니다. 사업비가 26억 달러가 넘는이 다리는 2019년에 완공됐는데 배가 지나는 주교량 구간은 선박에 도칠 본떠 한쪽으로만 케이블을 늘러뜨린 독특한 모양으로 지어졌습니다. 다리 중간에는 축구장을 여러 개 합친 크기의 인공섬을 남과

24:41 북에 하나씩 만들어 얹기도 했고요. 현대 건설이 맡은 목만 따져도 약 2조원이 넘는데 우리 건설사가 해외에서 따낸 토목 공사 가운데 손에 꼽히는 규모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현대 건설이 지은이 본선 다리에 GS 건설이 완공한 또 다른 연결 구간인 도화 링크를 이어붙이면 전체 길이가 48.57km에 7km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긴 축에 드는 다리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긴 바다위 다리를 한국의 두 회사가 사이 좋게 나눠 놓았습니다. 다른 나라가 아니라 한국 건설사끼리 세계 최장급 다리에 양쪽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해상 건설 기술이 어느 자리에 올라섰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렇게 싱가포르의 국토와 쿠웨이트의

25:27 다리까지 만들어 팔면서 현대 건설의 해외 건설 누적 수준은 1조 달러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감아 보면 서사 앞바다에서 돌 하나가 자꾸 쓸려 나가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듣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남의 나라 국토와 다리를 만들어 넘기고 조단위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없어서 만들어야만 했던 기술이 만들어 파는 상품이 된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세계 곳곳에 바다를 메우고 다니는 사이 정작 우리나라의 국토와 해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답은 우리 발밑에 해안선에 이미 새겨져 있습니다. 국립 해양 조사원이 최근 조사한 우리나라 해안선의 총길이는 15,270km입니다. 그 가운데 자연 그대로의 해안선이

26:15 9,565km. 사람이 항만과 방파제를 쌓 새로은 인공 해안선이 5,705km에 이릅니다. 우리 해안선의 약 1분이 이미 사람의 손으로 새로 그린 선이라는 뜻입니다. 바다를 메워 온 40년이지도 위에 해안선 모양 자체를 바꿔 놓은 겁니다. 그리고 다음 무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부산 앞바다 가독도에는 10조원이 넘는 공사비를 들여 새 공항을 짓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정지가 바닷속 집안이물은 고난도 현장이라 이번에도 매운 땅이 고르게 내려앉도록 집안이 자리를 잡는 시간을 넉넉히 잡아두었습니다. 2035년 개왕을 목표로 인천 개벌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부산

27:00 앞바다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땅이 없어서 개벌을 메웠고 장비가 없어서 배를 가라앉쳤고 평지가 없어서 산을 통째로 깎았습니다. 없다는 조건이 남들이 해보지 않은 방법을 낳았고 그렇게 한 겹쌓인 기술이 지금은 싱가포르의 땅과 쿠웨이트의 다리처럼 남의 나라 지도를 그리는 상품이 됐습니다. 우리가 무심고 지나치던 개벌과 방파제가 실은 세계에 내답하는 국토를 만들어 온 출발점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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