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능엄경 전체 해설ㅣ부처님이 경고한 50마장, 가짜 깨달음에 속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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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불교 경전인 능엄경에 대해 다루며, 수행 중 발견할 수 있는 여러 마장(마의 방해)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를 통해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깨달음과 올바른 수행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 마장은 수행에서 나타나는 각종 방해
  • 가짜 깨달음을 분별하는 눈을 열어줌
  • 올바른 수행의 방향성과 구체적인 방법 제시

능엄경의 경고와 중요성

영상은 능엄경을 중심으로 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이들이 유의해야 할 마장, 즉 방해 요소에 대해 설명합니다. 아난존자의 실례를 통해, 수행 중 나타나는 겉보기에 신비로운 현상들이 실제로는 가짜 깨달음에 속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칠처징심: 마음의 본래 자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신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마음의 본래 자리를 찾아내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아난이 시도하는 여러 답변들은 부처님에 의해 논파되며, 마음이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입증하게 됩니다.

열래장: 모든 중생 안의 불성

모든 중생 안에는 부처의 성품이 존재한다는 열래장의 가르침이 전해집니다. 매 순간 내가 경험하는 사물들과 감정들이 어떻게 부처의 성품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를 통해, 깨달음은 바깥에서 찾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25원통: 깨달음의 수행 방법

부처님과 제자들이 각각의 수행법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깨달음에 이르렀는지를 공유합니다. 이를 통해 각자의 기량에 맞는 다양한 수행 방법의 중요성과 그들이 도달한 깨달음을 탐구합니다.

능엄주: 수행자의 보호막

부처님이 직접 설한 능엄주는 수행자에게 강력한 보호막을 제공하는 주문으로 소개됩니다. 능엄주의 내용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수행자를 지키는 방법과 함께, 긴 법문의 뒤편에 이 주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구체적 힘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57위: 수행의 단계

영상에서는 능엄경에서 제시하는 수행의 단계를 57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각 단계는 수행자가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요소와 함께, 그에 따라 필요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제안합니다.

50마장: 수행 중의 방해 요소

부처님은 수행 중 경험할 수 있는 마장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하며, 잘못된 체험에 대한 경고를 제공합니다. 각 마장은 수행자가 속기 쉬운 특정 상황이나 현상으로, 이를 인지하고 방지하는 방법이 제시됩니다.

결론: 마장에 대한 경계와 본래의 자리

영상은 마장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이를 성인의 경지로 오인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마무리됩니다. 진정한 수행은 마음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끌림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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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음악] 오래 수행하신 분일수록 한 번쯤은 이런 의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걸어온이 길이 과연 바른 길이었는가? 절에 다닌 세월이 10년 20년이 되어도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번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참선 중에 문득 빛이 보이거나 기도 도중 온몸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것을 깨달음의 징조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을 가장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능엄경 전체 해설 부처님이 경고한마장 가짜 깨달음에 속지 마세요. 이것이

0:49 오늘 우리가 함께 들어갈 경전입니다. 능엄경은 수행의 이치와 그 위험을 가장 상세하게 밝힌 경전으로 이것을 모르고 수행하면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예로부터 전해져 왔습니다.이 이 영상을 끝까지 들으시면 수행 중에 나타나는 쉰가지 마장의 실체를 분명히 아시게 됩니다. 가짜 깨달음과 참된 깨달음을 구분하는 눈이 열리고 올바른 수행의 방향이 또렷해질 것입니다. 능엄경의 정식 이름은 대불적 열의밀린 수중 요의제 보살만 행수능엄경입니다.이 이름 자체가 하나의 가르침을 품고 있습니다. 열의 비밀스러운 원인을 닦아 증득하는 요일을 모든 보살의

1:36 만행을 통해 밝힌 경전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법화경 화엄경과 함께 배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으로 꼽히며 소화엄경이라는 별이 붙을만큼 방대하고 정밀한 내용을 품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 강원에서는 금강경, 원각, 대승 기신론과 함께 사교과에 속하는 핵심 경전으로 가르치고 있을만큼 그 비중이 큽니다. 출가 수행자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지만 제가 불자들에게는 [음악] 그 깊은 뜻이 온전히 전해질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이 경전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에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열대 제자 가운데

2:23 다문제일이라 불렸던 아난존자가 탁발을 나갔다가 마든가라는 여인의 주술에 걸린 것입니다. 아나는 부처님 곁에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들은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많이 들었다는 것과 실제로 수행의 힘을 갖추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에 주술 앞에서 아난의 수행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였고 부처님께서 능엄주를 설하시어 문수보살을 보내셨기에 비로소 구출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아나는 부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들었다는 자부심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이 이 장면이 능엄경 전체의 출발점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의 질문에

3:11 답하시는 형식으로 마음의 본래 자리가 어디인지를 밝혀 주셨습니다. 참된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수행 중에 만나게 되는 쉰가지 마장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설하셨습니다. 능엄경이 다른 경전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수행의 위험을 토록 상세하게 경고한 경전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모음 곧 세금 수음 상음 행음 시음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장이 각각 열 가지씩 총가지로 분류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마장은 더 교묘해지며 수행자 스스로도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3:59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미리 알면 마에 빠지지 않지만 모르면 마구니의 권속이 된다고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오늘이 영상에서는 능엄경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칠처징심에서 시작하여 모든 중생 안에 부처의 성품이 있다는 열래장의 가르침으로 나아갑니다.이어서 25명의 성자가 각각의 깨달음을 보고하는 장면과 관세음 보살이 선택한 이근원통의 수행법도 함께 듣게 됩니다.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능엄주의 위력을 살펴보고 범부에서 부처까지 나아가는 57단계의 수행 계도 함께 짚어 보겠습니다.

4:46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장 하나하나를 풀어 나갈 것입니다. 편안하게 들으시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하셨던 그 경고의 말씀이 바로 지금 우리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함께해 주십시오. 능엄경의 본론은 부처님의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아나, 너는 무엇으로 보고 무엇으로 듣느냐? 부처님께서 이렇게 물으시자 아나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분별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상식적인 대답이었고 우리라 해도 같은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이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이렇게

5:33 물으십니다. 그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것이 칠처징심의 시작입니다. 칠처징심이란 아난이 마음의 위치를 일곱 번 답하고 부처님께서 일곱 번 모두 논파하신 장면을 가리킵니다. 수행의 출발점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무엇을 닦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난의 첫 번째 대답은 마음은 몸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음이 가슴 안에 있거나 머리 안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느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음악] 이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6:20 마음이 몸 안에 있다면 먼저 몸 안에 장기와 핏줄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사람은 바깥에게는 보면서도 자기 몸속은 보지 못합니다. 마음이 정말 안에 있다면 안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안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마음이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밝히셨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순간 자기 몸 안이 보이십니까? 보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몸 안에 있다는 생각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아나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니 아니라면 밖에 있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출론이었습니다.

7:05 부처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습니다. 마음이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은 서로 관계가 없어야 합니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괴로운 것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몸의 고통을 마음이 즉시 알아차린다는 것은 마음이 몸과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안도 아니고 박도 아니라면 마음의 자리는 더욱 묘해집니다. 세 번째로 아나는 마음이 눈속에 숨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수정 그릇으로 눈을 가려도 바깥이 보이듯 마음이 눈 뒤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음악] 이에 대해서도 반박하셨습니다.

7:51 수정 그릇을 쓴 사람은 수정 그릇 자체도 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눈속에 있으면서 바깥을 본다면 눈 자체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눈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눈속에 있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이 이 논파는 마음을 감각 기관 안에 가두어 두려는 시도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네 번째 대답은 더 교묘하였습니다. 아나는 눈을 감으면 어둠이 보이고 눈을 뜨면 밝음이 보이니 어둠이 곧 몸 아니고 밝음이 곧 몸바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얼핏 그럴듯한 논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8:39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어둠이 만약 몸이라면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떠도 몸을 보는 것이 되느냐? 어둠이 곧 아니라는 논리는 밝은 곳에서만 성립하고 어두운 곳에서는 무너지기에 이건 역시 마음의 자리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음악]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마음에 참된 자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로 아나는 한 발 물러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마음은 정해진 곳에 있지 않고 인연이 합쳐지는 곳에서 생겨납니다. 대상과 만나는 그 자리에서 마음이 일어난다는 뜻이었습니다. [음악] 여러분,이 대답은 상당히 정교하게 들립니다. 무언가를 보면 보는 마음이

9:27 일어나고 무언가를 들으면 듣는 마음이 일어나니 마음은 [음악] 접촉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생기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불교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연기법과도 통하는 듯하여 더욱 그럴 듯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물으셨습니다. 마음이 인연 따라 생기는 것이라면 마음에는 본래 정해진 자체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자체가 없는 것은 합칠 수도 없습니다. 합칠 수 없는 것이 어디서 생겨나겠느냐? 부처님께서는 [음악] 인연 따라 생긴다는 것은 곧 마음의 실체가 없다는 고백과 같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인연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변하고

10:13 사라지는 마음일 뿐의 마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로 아나는 말하였습니다. 마음은 안과 밖에 중간에 있습니다. 안도 아니고 박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으셨습니다. 중간이란 무엇과 무엇의 중간이냐? 몸과 바깥의 중간이라면 그 위치를 정확히 가리켜 보아라. 가리킬 수 있는 곳은 이미 특정한 한 장소가 되며 몸이 움직이면 중간의 위치도 함께 바뀌어 버립니다. 고정된 중간은 존재하지 않기에이 대답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10:59 중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양쪽 끝에 의존에서만 존재하는 상대적 위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 마지막 대답에서 아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일체에 집착을 놓으면 그 집착 없는 자리가 곧 마음입니다.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상태가 마음의 본래 자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수행을 오래 하신 분이라면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셨을 수도 있습니다.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핵심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물으셨습니다. 집착이 없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 집착 없음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11:46 없는 것이라면 돌이나 나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이라면 이미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셈이 됩니다. 집착을 놓는다는 그 생각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집착이 되어 버리는 까닭기입니다.이 마지막 논파야말로 수행자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일곱 번의 대답이 모두 논파된 뒤 아나는 할말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평소의 마음이라 부르는 것,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그것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칠처징심을 통해 전하고자 하신 핵심은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12:33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으며 중간에도 없고 인연 따라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에도 없으면서 동시에 어디에나 작용하고 있는 것. 그것이 마음에 참된 성품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능엄경 수행의 첫걸음이 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찾을 때 반드시 어딘가에서 찾으려 합니다. 서랍을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기억을 더듬습니다. 마음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슴 속에서, 머릿속에서 고요한 순간에서 마음을 붙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일곱

13:18 번을 물으신 까닭은 바로 그 찾으려는 방향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음은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미 작용하고 있는 그 자리에 본래붙어 있습니다. 보고 있을 때 보는 그것, 듣고 있을 때 듣는 그것이 마음의 본래 자리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뿐 마음은 이미 그 자리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칠처징심은 능엄경 전체에 토대가 됩니다. 마음의 자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이 뒤에 이어지는 열래장의 가르침도 25원통의 수행법도 50마장의 경고도 온전히 받아들릴 수

14:03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의 잘못된 견해를 하나하나 벗겨내신 뒤에 비로소 참된 마음의 성품을 밝혀 주십니다. 우리도 지금이 순간 마음을 어딘가에서 찾으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보십시오. 찾으려는 그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 부처님께서 가르키신 자리가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그 참된 마음의 성품에 대한 가르침이 이어지는 [음악] 열래장 법문에서 펼쳐집니다. 칠처징심을 통해 마음이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왜 아난의 대답을 일곱 번이나 물리치셨을까? 마음이 없다고 말씀하시려 한 것이

14:50 아닙니다. 아난이 마음이라 부르던 것이 참된 마음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아난에게 참된 마음과 거짓 마음의 차이를 밝혀 주십니다. 이것이 능엄경의 핵심 가르침인 열래장 법문이 시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눈으로 본다고 하였는데 보는 것은 눈이냐 마음이냐? 아나는 눈으로 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유를 드셨습니다. 방 안에 앉아 문을 통해 바깥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십시오. 문이 보는 것이냐 사람이 보는 것이냐? 문은 열려 있을 뿐이고 보는 것은 안에

15:36 있는 사람입니다. 눈도 이와 같아서 눈은 문과 같을 뿐이며 보는 주체는 눈 뒤에 있는 성품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밝히셨습니다.이 보는 성품을 능엄경에서는 견성이라 부릅니다. 견성은 눈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눈을 감아도 어둠이 보이고 눈을 떠도 밝음이 보입니다. 보이는 대상은 바뀌지만 보고 있는 그 성품 자체는 바뀌지 않습니다. 밝을 때도 보고 어두울 때도 보고 있는 그것을 견성이라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이 견성의 특징을 더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젊었을 때 보았던 강물과 늙어서 보는 강물은 다릅니다.

16:23 물살도 달라지고 주변 풍경도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보고 있는 그 성품은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얼굴에는 주름이 생겼지만 [음악] 보는 성품에는 주름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차이입니다. 변하는 쪽이 거진 마음이고 변하지 않는 쪽이 참된 마음이라고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보는 성품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듣는 성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소리가 울리면 우리는 소리를 듣고 종소리가 그치면 고요함을 듣게 됩니다.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있고 소리가 없을 때도 듣고 있습니다.

17:09 달라지는 것은 소리의 유무이지 듣고 있는 [음악] 그 성품 자체는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문성이라 하셨습니다. 코로 냄새를 맞는 성품, 혀로 맛을 아는 성품, 몸으로 촉감을 느끼는 성품도 모두 같습니다. 뜻으로 법을 아는 성품까지 합하면 여섯 가지 근의 작용 모두에 참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능엄경은이 여섯 가지 감각의 문을 통해 열래장이 이미 우리 일상 속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낱낱이 밝힙니다. 우리가 평소의 마음이라 부르는 것은 대부분이 거짓 마음에 해당합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 기억하고

17:56 판단하는 생각. 이것은 [음악] 대상에 따라 끊임없이 바뀝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기쁘고 나쁜 소식을 들으면 괴롭습니다.이 마음은 인연을 따라 일어났다가 인연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집니다. 능엄경에서는 이것을 반연심이라 부르며 이것이 마음의 본래 모습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물 위에 비친 달을 달리라 여기는 것처럼 반연심을 참된 마음으로 착각하는 것이 중생의 근본적인 미혹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마음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열래장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열래장이란 모든 중생 안에 열래의

18:44 성품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갖추어져 있되 번뇌라는 먼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전하셨습니다. 금광석 안에 금이 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돌덩이로 보이지만 불에 녹이면 순금이 나옵니다. 금이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열래장도 이와 같아서 우리 마음 안에 부처의 성품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습니다. 경전의 말씀은 아는데 [음악] 삶에서는 여전히 흔들리는 그 간극을 느끼셨던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흔들림이 생기는 까닭은 반연심을 참된 마음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31 감정이 요동칠 때 우리는 [음악] 그것을 나의 마음이라고 여깁니다. 화가 나면 화나는 내가 진짜 나라고 생각합니다. 능엄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화는 2년 따라 일어난 반연심일 뿐이며 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 성품이 참된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래장의 성품을 여러 비유로 밝혀 주셨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끼면 하늘이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구름 위로 올라가 보면 하늘은 처음부터 맑았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가렸을뿐 하늘 자체가 더러워진 적은 없습니다. 열래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번뇌와 망상이 아무리 [음악]

20:16 두un게 쌓여도 그 아래에 있는 본래 성품은 한 번도 더러워진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본래 청정한 마음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능엄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래장이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두루 퍼져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땅의 성품, 물의 성품, 불의 성품, 바람의 성품, 허공의 성품, 의식의 성품, 그리고 보고 듣는 근의 성품.이 이 일곱 가지를 칠때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칠때 모두가 열래장에 드러남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도 열래장이며 바람이

21:03 부는 것도 열래장이고 허공이 비어 있는 것도 열래장입니다. 마음과 세계가 둘이 아니며 하나의 열래장에서 나왔다는 것이이 법문의 핵심입니다.이 이 대목에서 열래장 사상이 왜 수행에 중요한지가 분명해집니다. 만약 참된 마음이 마음속에만 갇혀 있는 것이라면 바깥 세계는 수행과 무관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과 세계가 모두 열래장이라면 밥을 짓고 길을 걷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열래장의 작용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수행이 좌선이나 독경의 시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수행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1:50 능엄경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열애장이 보고 듣는 일상의 작용 속에 이미 드러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특별한 체험이나 신비한 경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작용 소리를 소리로 알아차리는 그 성품이 바로 열래 장에 드러남입니다. 수행을 오래하신 분 가운데 특별한 체험이 있어야만 깨달음이라고 [음악] 여기셨던 분이 계실 것입니다. 능엄경은 분명히 지금이 순간 듣고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이미 열래장의 작용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처님께서는 한 가지를 더 경고하셨습니다. 열래장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깨달음에

22:35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알았다는 그 알마저도 놓아야 합니다. 내가 열래장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참된 마음을 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은 다시 반연심이 되어 버립니다. 마치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달로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전의 말씀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며 문자에 메이지 말고 마음 자체를 바라보라고 부처님께서는 거듭 담보하셨습니다. 열래장의 가르침은 수행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줍니다. 우리는 흔히 수행을 통해 무언가를 새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3:21 깨달음을 얻고 지혜를 얻고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능엄경은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을 가리고 있는 번뇌를 걷어내는 것이 수행이라고 설랍니다. 새로 얻는 것이 수행의 본질이 아닙니다. 원래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것이 수행입니다.이 이 관점이서야이 뒤에 이어지는 25원통의 수행법도 50마장의 경고도 올바르게 받아들릴 수 있습니다. 열애장이 모든 중생 안에 갖추어져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 번뇌를 걷어내는 것이 수행이라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닦아야 하는지가 남은 물음입니다. 능엄경은 이에 대해 25가지 수행법을

24:09 한 자리에 펼쳐 보여 줍니다. 이것이 25원통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열래장의 도리를 밝히신 뒤 자리에 모인 성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처음 발심하여 깨달음에 이른 수행법이 무엇이었느냐? 이에 25명의 성자가 차례로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수행의 문을 하나씩 보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통이란 원만하게 통달하였다는 뜻입니다. 각자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통해 막힘없이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25원통은 여섯 가지 진, 여섯 가지 근, 여섯 가지 식 그리고 일곱 가지

24:54 대를 수행의 문으로 삼섭니다. 진란 색, 성, 향미, 촉, 법의 여섯 가지 대상을 말하며 근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에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가리킵니다. 식은이 근과 진이 만나서 생기는 여섯 가지 의식이고 [음악] 되는지 수, 화 풍 식 견해 일곱 가지 원소를 뜻합니다. 합하면 25이 됩니다.이 각각의 문을 통해 깨달음에 잃은 성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하나씩 풀어 놓았습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수행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교진 여존자는 소리의 진을 통해

25:41 원통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첫설법대 사성제를 듣고 고제의 참된 뜻을 체득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우판이사다 존자는 코의 근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다가 들숨과 날숨 사이에 고요히 머무는 성품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래 수행하신 분이라면 호흡을 세는 수식관을 하시다가 문득 숨과 숨 사이에 고요함을 느끼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파이사다 존자가 발견한 것이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야광보살과 약상보살은 마세진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쓴 것과 단 것 맵고 짠 모든 맛을

26:28 관찰하다가 맛 자체에는 본래 분별이 없다는 것을 채득하였습니다. 주발 난타존자는 초개진을 관하여 원통에 이르렀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몸에 닿는 그 접촉을 관찰하다가 촉감을 느끼는 성품 자체는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세지보살은 뜻에 그을 통한 수행 곧 부처님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는 염불 수행을 보고하였습니다. 대세지보살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먼 곳에 있는 자식을 그리워하듯 중생이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하면 부처님도 그 중생을 생각하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잊지 않고 자식도

27:15 어머니를 잊지 않으면 생에서 생으로 서로 멀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마음과 마음이 서로 향하는 것이 곧 염불삼매라고 대세지 보살은 밝혔습니다. 절에서 나무아미타부를 칭하며 기도하시는 분이라면이 대목에서 그 기도의 의미가 한층 깊어지실 것입니다. 아미타불 정토 신앙의 근간이 되는 가르침이 바로이 25원 통안에 담겨 있습니다. 미륵 [음악] 보살은 식 곧 의식을 통한 원통을 보고하였습니다. 일체의 분별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되 그 분별에 머무르지 않고 분별 자체의 성품을 본 것입니다. 허공장 보살은 허공의 대를 지장보살은

28:04 땅의 대를 관하여 각각 원통에 이르렀습니다. 수월 존자는 물의 대를 오추술만은 불의대를 관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25명의 성자는 각기 다른 문으로 들어갔지만 도달한 곳은 같았습니다. 열래장에 참된 성품을 깨닫는 것. 그것이 모든 원통의 귀결점입니다. 25명의 보고가 끝난 뒤 부처님께서는 문수보살에게 물으셨습니다.이 25가지 수행법 가운데 말법 시대의 중생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이냐? 문수보살은 주저 없이 관세음보살의 이은 원통을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28:49 관세음보살의 수행법은 귀의 근 [음악] 곧 듣는 성품을 관하는 것입니다. 관세음은 보살은 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처음에 소리를 듣는 것에서 출발하여 소리를 따라가지 않고 듣는 성품 자체로 돌이켰습니다.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듣고 있는 그 성품 곧 문성을 관하였습니다. 관세음 보살은이 [음악] 수행을 더 깊이 나아가 먼저 소리와 고요의 분별을 넘어섰습니다. 소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구분을 넘어선 까닭깁니다. 다음으로 듣고 있는 나와 들리는 대상의 구분도 놓아 버렸습니다. 듣는 것도 없고들을 것도 없는 정멸의

29:35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임류망소라 합니다. 소리의 흐름에 들어가되 듣는 대상을 잊는 것입니다. 흐름에 들어간 다음은 소리를 밖으로 쫓아가지 않고 듣는 성품 안으로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대상을 잊는 다음은 소리에 대한 집착과 분별을 놓는다는 의미입니다.이 이 경지에 이른 관세음은 보살은 위로는 [음악] 부처님과 같은 자비의 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아래로는 중생의 고통에 응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중생이 괴로움 속에서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즉시 구제하러 가는 것이 가능해진 까닭기입니다.

30:21 능엄경에서는 관세음 보살이 32가지 응신으로 나투어 중생을 제도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이 이 32시는 모두 [음악] 이근원통 수행의 공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수보살이 이근통을 으뜸으로 추천한 까닭은 분명합니다. 눈은 벽을 사이에 두면 볼 수 없지만 귀는 벽 너머의 소리도들을 수 있습니다. 눈은 감으면 보이지 않지만 귀는 잠든 사이에도 쉬지 않고 착용합니다. 여섯 가지 근 가운데 귀만이 방해받지 않고 항상 열려 있는 감각입니다. 코는 들숨과 날숨이 있어야 작용하고 현은 음식이 있어야 맛을 알며 몸은

31:06 접촉이 있어야 느낌이 생깁니다. 그에 비해 귀는 [음악] 대상이 없어도 고요함을 듣고 있으며 자는 동안에도 소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이 점을 들어 듣는 수행이 말법 시대 중생의 근기에 가장 알았다고 밝히셨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법문을 듣고 계신 바로 그 행위가 관세음 보살이 걸었던 수행의 길과 다 있습니다. 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듣고 있는 그 성품 자체를 돌아보십시오. 소리가 올 때도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고요히 듣고 있는 그 자리가 있습니다. 관세음이라는 이름 자체가 세상의 소리를 관한다는 뜻입니다. 소리를 관한다함은 소리에 끌려가지

31:54 않고 소리의 본래 성품을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매일 독경을 하거나 염부를 할 때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그 소리를 귀로 듣게 됩니다. 그 순간이 이근 원통 수행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바로 그 일상이 수행의 문이 됩니다. 25원통은 수행의 문이 하나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각자의 근기에 따라 다른 문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어떤 문으로 들어가든 도달하는 곳은 같습니다. 다만 부처님과 문수보살께서이 시대의 중생에게 가장 적합한 문으로 이은 원통을 가리쳐 주셨습니다.

32:39 그 수행의 핵심은 소리를 쫓지 않고 듣는 성품으로 돌이키 있습니다.이 가르침을 바탕으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를 지켜줄 강력한 보호막을 하나 더 내려 주셨습니다. 수행의 길이 밝혀졌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수행자를 지켜줄 힘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보호막 그것이 바로 능엄주입니다. 정식 명칭은 대불수능엄 신주이며 불교에서 전해지는 모든 진원과 다니 가운데 가장 긴 주문입니다. 그 위력 또한 가장 강력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능엄주가 설해진 배경은 앞서 살펴본 아난의 사건으로

33:26 돌아갑니다. 아난이 마든 간녀의 주술에 걸려 위기에 빠졌을 때 부처님께서는 정수리에서 광명을 놓으시며 능엄주를 설하셨습니다.이 능엄주의 힘으로 문수보살이 아난을 구하러 갔으며 [음악] 마든간의 주술은 순식간에 풀어졌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들은 아난조차 주술 앞에서 무력했다는 사실은 지적인 이해만으로는 수행자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까닭게 부처님께서는 마음의 이치를 밝히신 것과 별도로 수행자를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주력을 함께 내려 주셨습니다. 능엄주는 총 427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섯 부분으로 나닙니다.

34:13 제1회는 비로자나불의 법신을 찬탄하는 내용입니다.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불러모아 그 위심력으로 수행자를 감싸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제2회는 석가모니불의 응신을 찬탄하며 부처님께서이 세상에 나투신 인연을 되새깁니다. 제 3회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담고 있어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원력이 주문 속에 녹아 있습니다. 제사회는 금강장 보살의 항마력을 나타내며 수행을 방해하는 일체의 마군과 악귀를 물리치는 위력이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제오회는 일체 마군을 항복시키고 수행자를 보호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됩니다.

34:59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부처님과 보살과 호법신장의 위신력으로 수행자를 둘러싸 마장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 있습니다. 능엄주의 공덕에 대해 [목을 가다듬음] 부처님께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전하셨습니다.이 주문을 지송하는 자에게는 84천의 금강장 보살과 그 권속이 항상 따라다니며 보호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능엄주를 외우는 수행자의 주의에는 보이지 않는 보호의 결계가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능엄주를 지성하면 수행 중에 나타나는 마장이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이 뒤에 이어질 50마장을 미리 알려

35:44 주신 것도 능엄주의 보호와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까닭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능엄주의 위력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셨습니다.이 주문을 한 번이라도 지송하면 생생세에 지은 무거운 업장이 소멸됩니다. 생 도적질 사음의 죄를 지었더라도 진심으로 참회하며 능엄주를 외우면 그 업보가 노가 없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또한 능엄주를 외우는 자가 머무는 곳에서는 독충과 맹수가 해를 끼치지 못하며 독약도 효력을 잃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 천상의 마왕, 귀신, 야차 등이 모두 물러나 수행자의 몸과

36:31 마음을 침범할 수 없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주문의 힘만 믿고 계율를 어기며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회의 마음이 먼저이고 능엄주는 그 참회를 뒷받침하는 힘이라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능엄주에는 수행자 개인의 보호를 넘어서는 공덕도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주문을 외우는 자가 있는 곳에 재앙과 역병이 물러간다고 전하셨습니다. 가뭄이 들 때 능엄주를 지송하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날 때 지송하면 물이 물러간다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방편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핵심은 능엄주가

37:19 개인의 수행을 넘어 주변 세계까지 맑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능엄주가 한국 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각별합니다. 사찰의 새벽 예불에서 능엄주를 독송하는 전통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똥한거와 하한거 기간 중에는 능엄주를 집중적으로 외우는 수행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법당에서 능엄주를 읽어본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그 길고 장엄한 주문이 끝난 뒤에 밀려오는 고요함을 아실 것입니다. 그 고요함이 능엄주의 결계 안에서 마음이 안정된 상태입니다. 능엄경에는 한 가지 엄중한 예언도 담겨 있습니다. 말법 시대가 깊어지면

38:06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경전이 능엄경이고 가장 먼저 잊치는 주문이 능엄주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능엄경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마장을 분별할 수 있는 가르침이 없어지고 능엄주가 잊치면 수행자를 보호할 힘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능엄주를 지송하고 전하는 것 자체가 말법 시대를 살아가는 수행자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427구 전체를 외우는 것이 어렵다면 능엄주의 핵심 구절인 능엄주 심주만이라도 지성해 보십시오. 심주는 능엄주의 정수를 모은 짧은 진원입니다.이 심주를 아침 저녁으로 세 번씩 지송하는 것만으로도 능엄주의 보호력을

38:52 일상에 들여올 수 있습니다. 4279 전체를 외우고자 하는 분이라면 매일 새벽에 한 번씩 읽는 것에서 시작하십시오. 처음에는 소리를 따라 읽기만 해도 됩니다. 반복하다 보면 주문니 리듬이 몸에 베어 자연스럽게 외워집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의 꾸준함입니다. 능엄경에서는 능엄주를 지송하는 자에게네 가지 근본 계율을 함께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살생하지 말 것, 훔치지 말 것, 음행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이 이 사종 청정 명회입니다. 능엄주의 힘은 계율이라는 바탕 위에서 온전히 발휘됩니다.

39:38 주문만 외우고 삶은 어지러우면 주력이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계율이 땅이라면 능엄주는 그 땅 위에 세우는 성벽이라 하겠습니다. 능엄주를 지송할 때 중요한 것은 입으로 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을 함께 모으는 것입니다. 주문의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앞서 배운 이근 원통의 수행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 능엄주를 외우고 귀로 그 소리를 듣고 듣는 성품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소리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그 순간 능엄주의 위력은 더욱 깊어집니다. 우리가 진언을 외울 때 단순히 주문을 반복하는 행위로 여기기 쉽습니다.

40:24 그러나 능엄경의 관점에서 보면 진원 지성은 부처님의 위신력과 내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수행입니다. 소리를내는 입과 소리를 듣는 귀와 소리를 알아차리는 마음이 한 곳에 모일 때 그것이 삼밀 상황에 수행이 됩니다. 삼밀이란 몸과 입과 뜻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능엄주를 외우면서 몸은 바르게 앉고 입은 주문을 소리 내고 뜻은 그 소리에 집중하십시오.이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능엄주의 보호력은 온전히 발현됩니다. 새벽 예 때 능엄주를 독송하시는 분이라면 내일 아침에는 조금 달리해 보십시오. 주문을 읽으면서 내가내는

41:12 소리를 귀로 듣고 그 소리가 법당 안에 울려 퍼지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울림이 나의 몸과 마음을 감싸는 과정을 고요의 관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자에만 머물지 않고 소리와 마음이 하나되는 그 자리를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주를 설하신 까닭은 분명합니다. 수행의 길은 밝혀졌지만 그 길 [음악] 위에는 마장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능엄주는 [음악] 그 위험으로부터 수행자를 지켜주는 갑옷과 같습니다.이 보호막을 갖추고 나서야 비로소행의 단계를 밟아 나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수행의 방법과 보호막을

41:57 갖추었다면 이제 그 길이 어떤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능엄경은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의 수행 단계를 57위라는 체계로 정리하여 밝히고 있습니다.이 57위는 능엄경에서만 볼 수 있는 [음악] 독특한 수행 계이며이 뒤에 이어질 50마장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토대가 됩니다. 57위는 크게 여덟 단계로 나닙니다. 10신 10주 10행 10회향 사과행지 등각 묘각입니다. 화엄경에서는 10신부터 등각과 묘각까지를 52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능엄경은 여기에 사과행이라는 단계를 별도로 넣어

42:44 57위로 확장하였습니다. 사과행이 추가된 까닭은 수행 중에 만나는 마장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이 이 점이 능엄경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인 십시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수행을 시작하려면 먼저 삼보에 대한 믿음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 가르침이 참되다는 것, 수행의 길이 있다는 것을 마음깊이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십신의 열 가지는 신심,염심, 정진심 해심 정심 불퇴심 호심 회향심 계심 원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이 열 가지 마음이 갖추어져야 비로소행의

43:33 문에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법당에 처음 들어서던 날 향을 피우고 삼배를 올리던 그 마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삼보에 대한 믿음이 싹트는 그 순간이 십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인 10주는 마음에 머무는 단계로서 믿음이 확립된 뒤 그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안정시키는 과정에 해당합니다. 발심주에서 시작하여 관정주에 이르기까지 수행자의 마음이 점차 굳건해지는 열단계를 밝게 됩니다. 발심주란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킨 자리이며 관정주는 부처님의 지혜의 물을 정수리에 받는 관정의 자리를 뜻합니다. 우리가 절에서 처음

44:19 발언문을 읽고 수행을 시작하는 그 마음이 넓게 보면 발심주의 출발점이라 하겠습니다. 10주를 마친 수행자는 더 이상 외부의 흔들림에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인 집행은 닦은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단계입니다. 안으로 쌓은 수행의 힘을 바깥으로 베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시, 지계, 인욕 등 보살행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중생과 함께하는 수행이 2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절에 가서 기도하는 것에서 나아가 일상의 살을 몸소 실천하는 단계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법당밖에 삶에서 수행의

45:07 힘을 느끼고자 하셨던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실천의 자리가 바로 시행의 단계입니다.네 번째 단계인 집회향은 자신의 수행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돌리는 단계입니다. 나를 위한 수행에서 모든 중생을 위한 수행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라 하겠습니다. 회향이란 공덕을 되돌린다는 뜻이며이 [음악] 단계에서 수행자는 자기 자신과 중생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합니다. 나의 기도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안녕과 깨달음을 향해야 한다는 마음이 무르는 과정입니다. 오래 수행하신 분이라면 기도를 마친 뒤 회양문을 읽으시며 공덕을 돌리는

45:53 의미를 되새기셨을 것입니다. 그 회향의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 바로 10회양의 단계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인 사과행은 능엄경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구간에 해당합니다. 난 정인 세제일법이네 가지 단계를 거치며 수행자는 성인의 경지로 들어가기 직전에 마지막 관문을 통과합니다. 나는 불을 일으키는 단계로서 나무를 비벼서 불꽃을 만들 듯 수행의 열기가 처음 피어오르는 자리입니다. 정은 그 불에서 수행이 무어 있는 경지이며 불꽃이 안정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는 단계를 뜻합니다.이는 진리를 참고 견디는 단계이며 아직

46:41 완전히 체득하지는 못하였지만 진리를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힘이 갖추어집니다. 세제법은 세간에서 가장 뛰어난 법을 체득하는 단계로 범부의 마지막 경제이자 성인의 문턱에서는 자리입니다.이 사과행을 지나야 비로소 십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능엄경이 2단계를 별도로 둔가 밝은 사과행 구간에서 마장이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범부와 성인의 경계에서 있는 수행자는 거의 깨달음에 다다른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체험이 참된 것인지 마장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수행은 거기서 멈추거나 오히려 뒤로 밀려나게

47:26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57위 안에 사과행을 넣으신 것은 바로이 위험 구간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여섯 번째 단계인 집은 보살의 경지입니다. 초지인 환의지에서 시작하여 법원지에 이르기까지 보살이 지혜와 자비를 동시에 키워 나가는 열단계를 밟습니다. 초지에 들어서면 수행자는 처음으로 진리를 직접 체험하게 되며 한없는 기쁨이 솟아나기에 환이지라 부릅니다. 이지인 이구지에서는 계율의 때가 완전히 씻겨 나가며 삼지인 발광지에서는 지혜의 빛이 안 밖으로 비치기 시작합니다. 지 염해지에서는 수행의 지혜가 활활

48:12 타오르고 오진 난승지에서는 다른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경지에 이릅니다. 육지 현전지에서는 진리가 눈앞에 현연하며 칠지 원행지에서는 보살의 행위 끝없이 멀리까지 미칩니다. 팔지 부동지에서는 어떤 마장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경지가 되고 굳이 선해지에서는 뛰어난 지혜로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이 자제해집니다. 십지인 법원지에서는 법의 비가 세상을 적시듯 보살의 공덕이 온 세계를 감싸게 됩니다. 일곱 번째 단계인 등각은 부처와 거의 같은 경지에 이른 상태입니다. 이란 같다는 뜻이고 각이란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부처의

48:58 깨달음과 거의 동등하되 아직 미세한 무명이 한 겹 남아 있는 단계입니다.이 한 겹의 무명을 경전에서는 생상무명이라 부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인 묘각은 부처의 자리 그 자체입니다. 생상 무명마저 소멸하여 모든 번뇌가 남김없이 사라진 궁극의 깨달음에 해당합니다. 더 이상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남지 않았으며 능엄경이 가르키는 수행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이 묘각의 자리입니다.이 57위 전체를 한꺼번에 이해하려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체 구조를 아는 것이며 그 안에서 자신의 수행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음해 보는 것입니다.

49:45 능엄경이 57위를 밝힌 핵심 이유는 수행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마장도 더 교묘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십신과 10주 단계에서는 수행자가 마장을 만나더라도 비교적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거친 번뇌와 명백한 집착이 드러나기에 스스로도 잘못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행과회향을지나 사과행에 이르면 마장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깨달은 것 같은 느낌, 신통력이 생긴 것 같은 체험, 우주와 하나가 된듯한 황홀함 이런 것들이 마장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마장은 [음악] 깨달음과 더 비슷한 모습을 하고

50:32 찾아옵니다. 부처님께서 57위를 세밀하게 밝히신 뒤 곧바로 50마장을 설하신 까닭기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단계에서 어떤 마장이 나타나는지를 미리 알아야 속지 않고 바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57위의 지도를 손에 쥐고 50마장의 경고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그래야 수행의 길위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어질 세계의 장에서 50마장 하나하나를 풀어 나가겠습니다. 50마장의 첫 번째 관문은 세금마입니다. 세금이란 물질과 감각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51:18 느끼는 모든 감각적 경험이 세금에 속합니다. 수행이 깊어지면서이 세금을 깨뜨리는 과정에 열 가지 마장이 나타납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열 가지를 하나하나 짚어 주시며 어떤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놀라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어떤 체험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세금마의 핵심을 먼저 짚어두겠습니다. 수행 중에 신비로운 감각이 나타나면 수행자는 이것을 깨달음의 징조라 여기기 쉽습니다. 빛이 보이거나 몸이 가벼워지는 경험은 수행이 잘되고 있다는 친호로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이

52:04 모든 현상이 세금이 깨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며 깨달음 자체와는 다르다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첫 번째 세금마은 수행 중에 몸 안에서 강렬한 빛이 보이는 현상입니다. 참선이나 기도 중에 눈앞이 화나게 밝아지거나 금빛이나 백세의 광명이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금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안으로 쌓여 있던 기운이 풀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 빛을 보고 자신이 깨달았다고 여기면 마구니가 그틈을 타고 들어온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두 번째 마장은 몸이 투명해지거나 몸을 관통하여 바깥이 보이는듯한

52:51 체험입니다. 마치 몸이 유리처럼 맑아져서 안팎 경계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이 이 현상에 빠지면 수행자는 자신이 이미 색신을 초월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세 번째 마장은 몸 안에서 벌레가 기어다니는듯한 기이한 촉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거나 피부 아래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은 세금이 변화하면서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 결과이며 병이 아니라 수행 과정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놀라지 않고 지나치면 저절로 사라지지만 이것을 특별한 체험으로 붙잡는 순간 마장이 됩니다.네

53:38 번째 마장은 온 세상이 부처님의 국토로 변하는 환영을 보는 것입니다. 주변 공간이 갑자기 장엄하고 화려하게 바뀌며 극락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수행 중에 정토의 장엄함을 보았다고 기뻐하며 자신이 극락의 가어변이 무르익었다고 확신하는 수행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음악] 이것이 세금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마음의 영상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다섯 번째 마장은 허공 중에 온갖 보배와 빛나는 형상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거나 빛나는 연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선 중에 이런 광경을 보면 누구라도

54:24 마음이 들뜨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것은 세금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만들어낸 영상일 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섯 번째 마장은 어두운 곳에서도 밝은 빛 속에 있는 것처럼 사물이 환이 보이는 현상입니다. 밤중에도 방 안에 물건이 또렷이 보이거나 눈을 감아도 주변이화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이 현상이 며칠 계속되면 수행자는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고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금이 변하면서 감각이 일시적으로 예민해진 것이며 연구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일곱 번째 마장은

55:10 몸이 갑자기 단단해져서 마치 금강석처럼 변한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몸에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며 불도 물도 해치지 못할 것 같은 확신이 차오릅니다. 무병 장수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이 마장의 한 형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음악] 이런 몸에 변화해 마음을 빼앗기면 수행의 방향이 몸을 기르는 쪽으로 흘러가 버린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여덟 번째 마장은 주변의 산하대지가 모두 부처님의 광명으로 가득차는 환영입니다. 온 세계가 금빛으로 빛나며 만물이 부처님의 몸으로 보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서 배운 열장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이것이

55:57 열래장의 현이라고 확신하기 쉬운 대목입니다. 열래장은 특정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모습 속에 이미 있기에 특별한 광경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마장의 시작이 됩니다. 아홉 번째 마장은 먼 곳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입니다. 천리 밖에 광경이 또렷이 보이거나 다른 사람의 행동이 마치 직접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행자는 이것을 천한통이 생겼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참된 신통은 오음을 모두 깨뜨린 뒤에 자연이 갖추어지는 것이라 밝히셨습니다. 세금마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은 신통이

56:43 아니며 마음이 만들어낸 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열 번째 마장은 수행 중에 부처님이나 보살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음악] 직접 앞에 오셔서 법을 설하시거나 보살이 나투어 가르침을 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처님께서 수행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거나 미래의 성부를 약속하시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하였습니다.이 이 현상이 가장 위험한 까닭은 부처님을 직접 배웠다는 체험이 수행자에게 극도의 확신을 심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 확신이 클수록 마장에 깊이 빠져들게 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처님으로부터 직접인가를

57:28 받았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음악] 이것을 마고니가 부처님의 형상을 빌려 나타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이 이 열 가지 세금마 모두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같은 원칙을 거듭 전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성인의 경지라 여기지 않으면 아무런 해가 없다. 다만 그것을 깨달음이라 착각하고 집착하면 그 순간 마고이가 그 마음에 들어와 수행자를 끌고 간다. 이것이 세금마 전체를 관통하는 부처님의 경고입니다. 핵심은 현상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현상에 대한 집착이 문제가 되는 까닭기입니다. 빛이 보이더라도 빛에 머물지 않으면

58:16 괜찮으며 몸이 가벼워지더라도 가벼움에 빠지지 않으면 해가 되지 않습니다. 수행의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구름이 지나가듯 바라보고 놓아 버리는 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응법입니다. 참선이나 기도 중에 신비한 체험을 하셨던 분이라면이 가르침 앞에서 잠시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빛을 보았다면 그 빛에 집착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신비한 감각이 찾아왔다면 그것을 깨달음의 증표로 여기지 않았는지도 함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세금말을 경고하신 까닭은 수행자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현상이 올 수 있다는

59:02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 그것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마는 50마장 가운데 가장 거칠고 알아차리기 쉬운 마장에 해당합니다. 몸의 감각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수행 중에 이러한 현상을 만나게 되면 능엄주를 지송하며 마음을 가다듬으십시오. 앞서 배운 이근 원통의 수행법으로 듣는 성품에 마음을 돌이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편상에 끌려가지 않고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세금마를 이겨내는 수행의 핵심입니다.이 다음에 이어지는 수음마와 상음마는 감정과 생각의 영역에서 일어나기에

59:49 훨씬 더 미세하고 교묘합니다. 세금마가 몸의 감각에서 일어나는 마장이었다면 수음마는 감정의 영역에서 상음마는 생각의 영역에서 찾아오는 마장입니다. 세금마보다 한 단계 더 안으로 들어왔기에 알아차리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빛이 보이거나 몸이 변하는 것은 눈에 띄지만 감정의 변화와 생각의 흐름은 수행자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여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먼저 수음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수음이란 느낌 곧 감정과 감수 작용을 가리킵니다.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평온함 이런 것들이 모두 수음의 영역에

1:00:35 속합니다. 수행이 깊어지면서이 수음을 깨뜨리는 과정에 열 가지 마장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 수마은 수행 중에 갑자기 극도의 슬픔이 밀려오는 현상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며 세상 만물이 괴롭고 슬프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업보를 깊이 참여하는 마음과 비슷하지만 이것은 수음이 깨어지면서 감정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응입니다.이 슬픔에 빠져들면 수행자는 깊은 우울 속에 갇혀 수행을 이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두 번째 수만은 반대로 끝없는 기쁨이 솟아오르는 현상입니다.

1:01:21 온 세상이 아름답고 모든 중생이 사랑스러우며 겉잡을 수 없는 환의심이 넘쳐 흐릅니다. 기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이 기쁨에 도취되면 수행자는 자신이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극도의 자만이 일어나는 마장이며네 번째는 이유 없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마장입니다. 수행 중에 갑자기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거나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갑자기 게으음과 무기력이 찾아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지는 마장입니다. 수행할 의욕이 완전히 사라지며 경전을

1:02:08 읽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게 됩니다. 여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의 수음만은 더욱 교묘합니다. 여섯 번째는 수행 중에 갑자기 큰 평안이 찾아와 움직이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는 마장입니다. 이것을 선정에든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수음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무기력의 다른 형태에 해당합니다. 일곱 번째는 자신이 대단한 공덕을 쌓았다는 확신이 드는 마장이고 여덟 번째는 한없는 사랑과 연민이 넘쳐흘러 모든 중생을 끌어앉고 싶은 감정에 사로잡히는 마장입니다. 아홉 번째는 수행에 대한 의욕이 극도로 치소사 잠도 자지 않고

1:02:53 밤낮으로 정진하려는 마장으로 수행자가 스스로 몸을 해칠 정도로 무리하게 됩니다. 열 번째 이르면 자신이 이미 부처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열 가지 감정의 마장 모두가 수음이 깨어지는 과정에서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수음마의 핵심 위험은 감정이 깨달음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점에 있습니다. 슬픔이 참회로, 기쁨이 법별로, 두려움이 경각심으로 포장됩니다. 수행을 오래하신 분이라면 기도 중에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르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진 경험이 있으실

1:03:39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 멈추어서 이것이 참된 수행의 열매인지 수이 깨어지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인지를 분별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분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감정이 지나간 뒤에도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으면 수행의 진전입니다. 그 감정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그 체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마장에 걸린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상음마로 넘어갑니다. 상음이란 생각 표상 관념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수음마가 감정에서 왔다면 상음마는

1:04:25 생각과 이미지에서 찾아옵니다. 수행이 더 깊어지면서이 상음을 깨뜨리는 과정에 또다시 열 가지 마장이 나타납니다. 상음마는 수음마보다 더 정교하며 수행자의 지정 능력까지 이용하여 속이기 때문에 [음악] 가장 주의가 필요한 구간 가운데 하나입니다. 첫 번째 상음만은 수행 중에 갑자기 탐욕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여색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게 솟아오르거나 세속적 쾌락에 대한 갈망이 되살아납니다. 오래 수행하여 이미 욕심을 다스렸다고 여겼던 수행자에게이 마장은 특히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부처님께서는

1:05:10 이것은 상음이 변화하면서 잠들어 있던 습기가 올라오는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두 번째 상음마는 자신이 과거 전생의 기억을 보게 되는 현상입니다. 전생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상음이 변화하면서 잠재된 기억의 종자가 올라온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전생의 기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만들어낸 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마장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또렷하게 보이며 자신에게 예지력이 생겼다는 확신이 차오릅니다.네

1:05:56 번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여기는 마장으로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꽤 뚫어보는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 두 가지 모두 상음이 예민해지면서 나타나는 마음의 투영이라 밝히셨습니다. 참된 신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기에 이에 빠지면 수행의 방향이 크게 어긋나게 됩니다. 다섯 번째는 경전의 뜻이 갑자기 한꺼번에 통달되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어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구절이 하룻밤 사이에 모두 풀리는듯한 느낌이 찾아옵니다. 이때 수행자가 자신을 법사나 선지식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매우

1:06:42 위험한 지점에 접어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참된 지혜는 한꺼번에 쏟아지듯 오는 것이 아니며 오음을 하나하나 깨뜨리는 과정에서 점차 밝아지는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여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더욱 미세해집니다. 여섯 번째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자신을 선택했다고 믿는 마장이고 일곱 번째는 자신이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의 화현이라고 확신하는 마장입니다. 여덟 번째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듯한 체험에 해당하며 아홉 번째는 자신의 몸이 사라지고 순수한 의식만 남은 것 같은 경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수행자는 자신이 육신을

1:07:27 초월했다고 확신하기 쉽습니다. 열 번째는 가장 위험한 마장으로 자신이 이미 성불하였다고 선언하며 주변에 제자를 모으기 시작합니다.이 열 번째 마장에 빠진 수행자는 스스로를 부처라 칭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잘못된 길에 빠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음마와 상음마 모두에 대해 세금마와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성인의 경지라 여기지 않으면 해가 없다. 집착하는 순간 마구니의 권속이 된다. 감정이든 생각이든 어떤 체험이 일어나더라도 [음악] 그것을 붙잡지

1:08:15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수행 중에 강렬한 감정이 밀려오거나 신통과 같은 체험이 찾아올 때에는 그 현상을 알아차리돼 따라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을 바라보는 자가 누구인지를 되물어 보십시오. 생각이 휘몰아치면 그 생각을 알고 있는 성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십시오. 열래장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힘이이 구간에서 가장 큰 보험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생각은 결국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기쁨도 마음이 만들었고 슬픔도 마음이 만들었으며 전생을

1:09:01 보았다는 체험이나 미래를 알았다는 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든 것이니 성인으로 여기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수음마와 상음마를 지나면 이제 50마장의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음마와 식음마 가장 미세하고 가장 위험한 스무가지 함정입니다. 마장의 마지막 관문에 이르렀습니다. 행음마와 시음마.이 이 스스가지 마장은 앞서 살펴본 세금마, 수음마, 상음마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몸의 감각도 아니고 감정의 파도도 아니며 생각의 환영도 아닙니다. 마음의 가장

1:09:46 깊은 곳, 의지의 흐름과 의식의 뿌리에서 일어나는 마장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 스스로도 자신이 마장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먼저 행음말을 살펴보겠습니다. 행음이란 마음속에서 쉬지 않고 흘러가는 미세한 의지의 작용을 가리킵니다. 생각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한 상태에서도 마음 밑바닥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흐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행음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열 가지 마장이 나타납니다. 행음마의 첫 번째는 인과의 법칙을 부정하는 견해에 빠지는 것입니다. 수행이 깊어지면서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선악의 인과도

1:10:34 공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선을 행해도 의미가 없고 악을 저질러도 과보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공을 체험한 것은 맞지만 그 공에 집착하여 인과를 부정하면 이것이 곧 외도의 견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음악]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상견에 빠지는 마장입니다. 열래장의 성품이 영원 불변하다는 가르침을 듣고 나의 영혼도 영원하다는 집착에 빠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그 가르침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여 영혼불멸의 견해를 세우게 됩니다. 이것은 불교의 무아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외도의

1:11:21 견해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는 반대로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단견에 빠지게 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며 윤회도 없고 인과도 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공을 잘못 이해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의 경지를 진리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상견과 단견 모두가 행음이 변하면서 만들어낸 치우친 견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네 번째는 자신이 우주의 근원과 하나가 되었다고 확신하는 마장입니다. 나와 우주 사이에 경계가 없다는 체험을 하면서 자신이 이미 궁극적 진리에 도달했다고 여기게 됩니다.이 체험은 매우 강렬하며 수행자에게

1:12:09 절대적인 확신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행음이 변하면서 만들어낸 미세한 집착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우주와 하나되었다는 그 느낌에 머무는 것 자체가 여전히 행음의 작용에 갇혀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의 행음만은 외도의 사견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불에서 만물이 생겨났다거나 허공에서 모든 것이 나왔다는 식의 그릇된 세계관에 빠지는 마장입니다. 여섯 번째는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가르침을 왜곡하여 수행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본래 부처라면 왜 수행해야

1:12:54 하느냐는 물음이 교묘하게 수행자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일곱 [음악] 번째는 죽음 이후의 존재에 대해 집착하는 마장이며 여덟 번째는 죽음 이후에 [음악] 아무것도 없다는 견해에 빠지게 됩니다. 아홉 번째는 열반을 체험했다고 착각하며 수행을 멈추는 마장으로 더 이상 나아갈 것이 없다는 안주에 빠져버립니다. 열 번째는 오음 가운데 행음만을 참된 자로 여기며이 미세한 흐름 자체가 영원한 나라고 집착하는 마장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열 가지 행음마 모두가 행음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외도의 사견이라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행음마가 위험한 까닭은 2단계에

1:13:42 이르면 수행자의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경전을 많이 읽었고 교리도 깊이 이해하였으며 수행의 체험도 풍부합니다. 이러한 까달게 마장이 찾아와도 그것을 정교한 논리로 합리화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증거를 경전에서 찾아내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이 점을 특별히 경고하셨습니다. 마장은 수행자의 지혜를 이용하여 수행자를 가두기에 지혜가 깊을수록 오히려 마장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행음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1:14:27 견해를 절대 시하지 않는 겸함이 필요합니다. 내가 체험한 것이 참된 깨달음인지 행음이 만들어낸 사견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면 바른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50마장을 세세히 밝히신 것도 바로 이분별의 기준을 수행자에게 미리 건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래 수행하신 분 가운데 [음악]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진듯한 체험을 하시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끼셨던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 체험이 진정한 것이었는지 행음이 변하면서 만들어낸 미세한 확신이었는지를이 능엄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한번

1:15:13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시금마로 넘어갑니다. 지금은 오음의 마지막이자 가장 근본적인 층위입니다. 의식의 뿌이 곧 분별 작용의 가장 깊은 자리에 해당합니다. 시금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열 가지 [음악] 마장은 50마장 전체에서 가장 교묘하고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함정입니다. 시금마의 핵심은 깨달았다는 그 암 자체가 마지막 마장이 된다는데 있습니다. 세금, 수음, 상음, 행음을 모두 깨뜨린 뒤 시금만이 남은 상태에서 수행자는 [음악] 극도로 맑고 고요한 경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나는 이제 모든 마장을

1:16:00 통과했다. 나는 깨달았다 [음악] 하는 미세한 확신이 일어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 확신이 시그마의 시작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칠처징심에서 아난이 마지막으로 대답했던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집착을 놓는다는 그 생각 자체가 집착이 되었던 것처럼 깨달았다는 그 앎이 마지막 걸림이 됩니다. 시그마의 첫 번째는 모든 것의 근원을 하나로 돌리는 마장입니다. 만물이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고 여기며 그 하나를 자신이 깨달았다고 확신합니다. 두 번째는 그 근원이 곧 나라고 여기는 마장이며 세 번째는 만물의 자아가 깃들어 있다고 보는

1:16:46 마장입니다.네 번째는 의식 자체가 영원하다고 집착하는 마장이며 다섯 번째는 반대로 의식도 결국 사라진다고 여기는 단멸의 견해에 빠지게 됩니다. 여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시금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마장입니다. 여섯 번째는 생사가 본래 없다는 것을 체험한 뒤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짓게 됩니다. 일곱 번째는 열반과 생사가 같다는 것을 깨달은 뒤 번뇌를 굳이 끊을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마장이며 여덟 번째는 진리 자체에 집착하여 진리밖에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견해에 빠집니다. 아홉 번째는 공을 완전히 체득했다고 여기면서 그

1:17:32 공마저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놓치는 마장이고 [음악] 열 번째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지막 한 생각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이 마지막 한 생각까지 놓아야 비로소 시금이 완전히 깨어지며 50마장의 관문을 모두 통과하게 됩니다. 50마장 전체를 관통하는 부처님의 대응 원칙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나든 그것을 성인의 경지라 여기지 말라.이 이 한 마디가 세금마에서 시금마까지 모든 마장을 이겨내는 열쇠입니다. 빛이 보여도 감정이 폭발해도 전생이 떠올라도 우주와 하나된 체험을 해도 깨달았다는 확신이 들어도 모두 같은

1:18:19 원칙으로 대응하면 됩니다. 붙잡지 않으면 해가 없고 붙잡는 순간 마구니의 자리가 됩니다. 여러분 50마장의 여정이 여기서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세금에서 시작하여 시금에 이르기까지 마장은 [음악] 점점 더 미세해지고 점점 더 깨달음과 닮은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빛과 소리라는 거친 형태로 나타났지만 끝에 이르서는 깨달았다는 한 생각 그 미세한 확신의 형태로 찾아온 것입니다. 부처님께서이 질를 낱낱이 밝히신 까닭은 수행자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리 알면 속지 않고 모르면

1:19:04 빠져든다는 한마디에 오신마장 전체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이 경고를 가슴에 품고 이제 능엄경이 전하는 궁극의 메시지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능엄경의 긴 여정을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7처징심에서 시작하여 열래장에 참된 마음을 확인하였으며 25원 통의 수행법과 능엄주의 보호막을 갖추었습니다. 57위의 수행 단계를 밟고 50마장의 경고를 하나하나 들어왔습니다.이 모든 가르침을 한마디로 모으면 능엄경이 전하는 궁극의 메시지가 드러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장을 설하신 뒤문 전체를 관통하는

1:19:49 핵심을 이렇게 전하셨습니다. 미리 알면 마에 빠지지 않고 모르면 마구니의 권속이 된다.이 한 마디가 능엄경 전체를 요약하는 말씀입니다. 마장의 정체를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장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이 법문의 시작을 떠올려 보십시오. 수십년 수행했는데 혹시 잘못된 길이었다면이 무음 앞에 불안했던 마음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능엄경은 그 불안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려주었습니다. 잘못된 길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경전 스스로가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칠처징심은 마음의 자리를 묻는 법을

1:20:35 가르쳐 주었고 열래장은 참된 마음과 거진 마음을 구분하는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마장은 수행 중에 만나는 온갖 함정의 지도를 미리 펼쳐 보여 준 것입니다. 능엄경이 수행의 교과서로 불리는 까닭은 단순히 교리를 해설하는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마음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닦는 과정에서 만나는 위험까지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수행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음악] 한 권의 경전 안에 모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이런 경전은 대장경 전체를 통틀어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21:21 50마장이 두렵게 느껴지셨을 수 있습니다. 빛을 보면 마장이고 기쁨을 [음악] 느끼면 마장이고 깨달았다고 생각해도 마장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참된 수행인가? 이런 의문이 드셨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답도 이미이 경전 안에 담아두셨습니다. 마장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특별한 체험이 아닙니다. 어떤 체험에도 머물지 않고 고요히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참된 수행입니다. 마장은 [음악] 수행을 막는 벽이 아니라 수행의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이정표였습니다. 능엄경이 가르키는 수행의 핵심은 결국 마음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1:22:06 것입니다. 칠처징심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의 대답을 일곱 번 물리치신 까닭달은 마음이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열래장을 밝히신 까닭은 그 고정되지 않는 마음 자체가 본래 부처의 성품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장을 낱낱이 경고하신 까닭도 그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가짜 깨달음에 속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모든 마장은 마음이 만든 것이며 마음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면 마장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빛도 감정도 생각도 의지도 모두 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1:22:52 작용에 끌려가지 않고 작용의 근원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 근원이 바로 열래장이며 열래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더러워진 적이 없는 본래 청정한 성품입니다. 수행이란 새로운 것을 얻는 일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가리고 있는 먼지를 걷어내는 일이라고 능엄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금광석 안에 금이 밖에서 온 것이 아닌 것처럼 열래장은 우리 안에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성품입니다. 수행은 그 먼지를 걷어내는 과정이며 옷마장은 [음악] 그 과정에서 먼지가 깨달음으로 위장하여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능엄경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수행의 길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1:23:39 첫째, 이근 원통의 수행법으로 듣는 성품에 마음을 돌이키십시오. 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소리를 듣고 있는 그 성품 자체를 관하는 것입니다. 둘째, 능엄주를 매일 지송하며 수행자의 보호막을 갖추십시오. 427 전체가 어렵다면 10주만이라도 아침 저녁으로 세 번씩 외우는 것에서 시작하시면 됩니다. 셋째, 사종 청정 명예를 지키십시오.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네 가지 계율이 수행의 기초가 됩니다. 넷째, 마장의 내용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수행 중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1:24:26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힘은 미리 아는 데서 나옵니다. 능엄경은 예로부터 소화엄경이라 불려왔습니다. 화엄경이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경전이라면 능엄경은 그 깨달음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과 그 길 위에 위험을 낱낱이 밝혀주는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들은 7처징심 열래장 25원통 능엄주 57위마장이 모든 가르침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마음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법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말법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능엄경은

1:25:13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다른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사이비 가르침이 넘쳐나는이 시대에 경전 자체가 스승의 역할을 합니다. 어떤 가르침이 바른 것이고 어떤 체험이 참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이 경전 안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능엄경을 읽고 듣고 되새기는 것 자체가 말법 시대 수행자의 가장 든든한 길잡이가 됩니다. 오늘이 법문을 들으시며 능엄경의 가르침이 마음에 와닿으셨다면 한 가지 수행을 권해드립니다. 매일 능엄주 심주를 세 번씩 지송하시며 오늘 들으신마장의 가르침을 마음에 되새겨 보십시오. 수행 중에

1:26:00 어떤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부처님의 한마디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인의 경지라 여기지 않으면 해가 없다.이 한마디가 우리의 수행기를 지켜줄 것입니다. 능엄경은 말법 시대가 깊어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경전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이 이 경전이 세상에 있는 한 수행자는 마장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이 법문을 끝까지 들어 주신 것만으로도 능엄경의 가르침을 마음에 심으신 것입니다. 밤마다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아 괴로우셨던 분이 계실 것입니다. 수행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제자리를 맴도는 것인지

1:26:46 답답하셨던 분도 계셨을 줄 압니다. 능엄경은 [음악] 그 모든 물음에 마음의 본래 자리에 답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순간이 법문을 듣고 계신 바로 그 마음속에 열래장의 성품이 고요히 빛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이 이 법문의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양합니다.이 가르침을 듣는 모든 분이 마장에 속지 않고 바른 길을 걸으시기를 발언합니다. 열래장의 본래 성품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고요히 빛나기를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이 영상이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수행하시는 분이 계시다면이

1:27:34 영상을 함께 나누어 주십시오. 능엄경의 가르침이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작은 나눔이 큰 공덕이 됩니다. 다음 법문에서 또 뵙겠습니다. 아미 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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