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끝내고 1,400만 명을 구했지만, 조국에게 버림받아야 했던 과학자"|나의 두 번째 교과서|알고e즘”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1952년 1월 영국의 한 과학자가 풍기란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남자의 죄목은 자기보다 20살 가까이 어린 상대와 애정 행각을 버렸다는 거였는데요. 문제는 그 상대가 동성이었다는 겁니다. 이때가 1952년이었다는 걸 감안하셔야 돼요.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2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였습니다.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이 과학자에게 판사는 마치 선처를 해주듯이 제안을 합니다. 감옥에 가겠습니까? 아니면 성욕을 억제하는 호르몬 주사를 1년간 맡겠습니까? 저라면 차라리 감옥에 갈 텐데이 40대의 과학자는
0:47 다른 선택을 합니다. 과학적 거세를 선택한 거예요. 자신이 하던 연구를 이어나가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지속적으로 투입받았는데요. 결국 몸은 점점 여성처럼 변해가고 목소리도 변했습니다. 거기다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여웅이었지만 조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죠.이 이 사람이 바로 오늘의 첫 번째 주인공 앨런 튜링입니다. 앨런 영화 주인공이 되고도 남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는데요. 실제로
1:34 영화도 [음악] 나왔습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 아시죠?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 우리 베네트 형님이 튜링력을 맡아서 여을 펼쳤는데요. 영화는 수학자인 앨런 튜링이 애니그마라는 나치의 [음악] 암호를 해독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니 오늘 컴퓨터 얘기한다더니 수학제 전쟁 얘기가 왜 나오는 거야? 사실 우리나라에선 컴공이 공학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컴퓨터 공학은 컴퓨터 과학의 일부 영역이고요. 컴퓨터 과학 자체는 수학과 논리학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수학자들이 컴퓨터 [음악] 과학의 아버지였는데요. 그중에 한 명이 바로 앨런 튜링이었습니다.
2:19 컴퓨터는 어느 한 사람이 만든게 아니에요. 누가 컴퓨터의 아빠냐? 이것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아주 처회한 주제죠. 1980년대만 해도 앨런 튜링은 이런 논쟁에서 크게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튜링의 공적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죠. 2021년에는 영국 50파운드 화폐. 우리로 치면 5만 원 건처럼 최고의 건이죠. 여기에 튜링의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그전엔 증기 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와 매튜볼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튜링의 존재감을 짐작할 수 있으시겠죠? 50파운드에 튜링의 얼굴과 함께 실린게 있었는데요. 바로 튜링의
3:04 암호해독끼였던 본부의 도면입니다.이 장치가 컴퓨터의 탄생에 [음악] 공원을 했기 때문에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독일 낮지에 맞서서 영국,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대립을 했습니다. 당시 독일군은 애니그마라는 기계로 모든 작전을 암호로 만들어서 전달했는데요. 영국은이 [음악]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블래슬리 파크라는 비밀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영국 첩보부가이 연구소의 팀장으로 스카웃트한 사람이 앨런 튜링이었어요. 튜링은 수학 천재로 명성이 자자아했거든요. 미국에서 박사기를 받을 때도 이름을 날리다가 결국
3:49 스카웃이 된 거였어요. 아무튼 튜링이 수학 팀장으로 연구서 있을 때 영국의 골칫거리는 독일 잠수함이었습니다.이 잠수함 때문에 영국군 피해가 막됐거든요. 그래서 튜링에게 주어진 임무는 독일 잠수함과 독일군이 주고받는 암호를 푸는 거였습니다. 당시 독일이 썼던 암호 기계는 애니그마라는 기계였는데요. 문장을 치면 그걸 다른 알파벳 암호로 바꿔 줬습니다. 예를 들어서 t트라고 입력하면 그거에 대응되는 알파벳 XW가 나오는 식인데요. 이렇게 만든 암호의 경우의 수가 1해가 넘었습니다. 1가 얼마나 큰 수냐면요. 만약 돈으로 1해원을
4:38 대한민국 국민 5천만 명에게 나눠 준다면 한 사람이 받는 돈이 무려 2조원입니다. 어마어마하죠? 그만큼 사람이이 암호를 푸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튜링은 기계가 만든 아암무는 기계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본부라는 기계를 만들었는데요. 폴란드에서 만든 걸 계량한 장치였죠. 이걸로 암호를 어떻게 풀렸냐면요. 우선 독일군이 아침에 a b c d e f ggh ijk라는 암호문을 [음악] 보내면 아침이니까 이걸 굿모닝으로 가정해 [음악] 보는 겁니다. 그럼 A는 굿모닝의 G가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알파벳을 쫙 지어 놓고
5:25 아무문이 해독되는지 확인한 건데요. 이걸 사람이 일일이 하면 백날 첫날에도 답이 안 나오겠죠? 그걸 해 준게 튜링이 만든 본부입니다. 본부는 알파벳을 짝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해석했을 때 말이 되는 경우를 찾아냈는데요. 독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애니그마보다 복잡한 로렌츠 하모를 만든 거죠. 튜링이 있던 연구소에서는 본부의 기초에서 콜로서스라는 새로운 암호이도끼를 만듭니다. 콜로서스는 본부와 달리 이미 해독한 내용을 기계에 저장해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기계였는데요. 초당 5천자의 속도로 암무를 해독할 [음악] 수
6:10 있었습니다. 이런 본부와 콜로서스는 2차 세계대전에 종전을 2년 앞당기고 10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보통 애니학을 최초의 컴퓨터로 많이 알고 [음악] 계신데요. 콜로서스는 애니학보다 2년 전에 만들어진 사실상 최초의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였습니다. 그런데도 본부나 콜로서스의 존재는 군사 기밀이었기 때문에 1970년대 후반까지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애니학만 익숙하게 알고 있는 거죠. 물론 애니학은 범용 컴퓨터로서는 최초였습니다. 범용이 무슨 [콧방귀] 뜻이냐면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아도 소프트웨어만 바꾸면 다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6:58 그런 컴퓨터입니다. 예를 들어서 계산기나 세탁기, 전자레인지도 내부에 컴퓨터가 있는데요. 그 하드웨어로 빨래 음식 대우기 같은 특정한 작업만 수행하는 컴퓨터죠. 이런 건 범용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는 노트북, 스마트폰 같은게 범용 컴퓨터죠. 사실상 우리가 컴퓨터라고 생각하는 것이 범용 컴퓨터인 겁니다. 우리가 오늘 컴퓨터를 이야기하면서 튜링을 소개하는 이유. 튜링이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주 핵심적인 이유도 바로 튜링이이 범영 컴퓨터라는 개념을 처음 이론으로 제안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튜링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7:45 있었는데요. 이때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여기에 튜링 기계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요. 튜링 기계는 진짜 기계가 아니라 가상의 기계입니다. 이게 뭐냐면요. 우선 칸마다 0이나 1이 적힌 끝이 없이 긴 종이 테이프가 있습니다. 0과 1로만 이루어진 숫자. 뭔가 익숙하시죠? 튜링 기계는 0과 1. 이진법을 사용하는 현대 컴퓨터가 작동하는 원리의 시초입니다. 그리고 한 번에 테이프를 한 칸씩 익는 스캐너 같은 장치가 있어요.이 스캐너에 어떤 작동 규칙, 명령을 넣는데요. 이게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
8:33 부르는 겁니다. 튜링은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가상의 기계를 제한한 건데요.이 튜링 기계 목적은 계산입니다. 동작은 단순하지만 이걸로 공항용 계산기나 컴퓨터로 풀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어요. 튜링은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연산 규칙을 다 담을 수 있는 보편적인 기계가 가능할지 논의했었는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컴퓨터의 핵심적인 특징인 범용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런 특성은 늘 튜링의 관심사였습니다.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대단한 능력이 [음악] 범용성이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뇌
9:20 역시 범용 기계라고 [음악]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 튜링은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도 [음악] 평가받는데요. 튜링은 계산하는 기계가 생각하는 기회가 [음악]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산하는 기계가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음악] 체스 같은 게임을 하고 결국엔 지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상상한 거예요. 진행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던 튜링은 1950년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합니다. 예산하는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인데요. 논문의 첫 문작은 이렇게 [음악] 시작합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고려해 볼 것을 제안한다.
10:07 앨런 튜링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유명한 문장인데요. 현대 인공지능 개념에 시동을 건 논문으로 꼽힙니다.이 논문이 유명한 이유는 또 있는데요. 바로 튜링 테스트라는 획기적인 발상 때문입니다. 튜링 테스트는 과연 기계가 지능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이 담긴 테스트입니다. 과정은 간단합니다. 마치 우리가 채팅을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모르는 상대랑 채팅을 하는데 이때 그 상대는 인간일 수도 있고 기계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은 상대방의 답변을 들으면서 상대방이 인간인지 기계인지를 마치는 겁니다.
10:53 그래서 튜링은 만약 기계가는 답변이 사람과 아주 비슷해서 구분되지 않는 정도라면 생각하는 기계라고 봐도 좋다.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럼 튜링 테스트는 어떤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튜링이 제시한 가상 대화 샘플을 일부 보여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지은 시의 >> [음악] >> 첫 행인 그대는 여름날의 비하리까에서 여름날보다는 [음악] 봄날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운율이 맞지 않아요? 그럼 여름날 [음악] 대신 겨울날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운율은 맞습니다만 글쎄요. 겨울날에 비유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이
11:39 답변자는 여름날과 봄날은 운율이 맞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람이 겨울에 비유되는 [음악]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어요.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이 정도면 답변자가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나요? 당시 튜링은이 정도 답변이면 상대가 인간인지 아니면 인간인 척하는 기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면서 지금부터 50여년이 지나면이 테스트를 뛰어나게 수행하는 기계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요. 어땠을까요? 튜링의 측이 맞았을까요? 튜링이이 테스트를 고완한 이후로 새로운 기계들이 계속 도전장을
12:25 내밀었는데요.이 논문이 나온지 64년만인 2014년에 처음으로 튜닝 테스트를 통과한 프로그램이 등장합니다. 러시아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이었는데요. 모순되는 답변도 많이 했기 때문에 테스트를 통과한 걸로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자, 그러면 과연 채 GPT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을까요?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2025년 4월에 GPT 4.5 버전이 아주 뛰어난 성적으로 통과했어요. 300명의 참가자가 1023회에 걸쳐 진행했는데 결과는 7대 3이었습니다.
13:12 체피트가 7로 압승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답변을 보고 인간이다라는 답변을들은 [음악] 횟수가 인간보다 채 G지pt가 훨씬 많았던 거예요. 튜닝 테스트에서 기계가 인간을이긴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소름 돋지 않습니까? 앨런 튜링은 이런 기계가 [음악] 약 50년 후에 나올 거라고 예측했는데 75년 만에 현실이 된 거죠. 그런데요. 제가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컴퓨터라는 건 하드웨어도 있고 소프트웨어도 있고 누구 한 사람이 한 순간에 발명이는 것도 아니라서 탄생 과정에 지분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앨런 튜링도 그중
13:57 한 사람인데요. 전쟁 때 튜링했던 일들이 국가 기밀로 오랫동안 베일에 쌓여 있어서 튜링을 컴퓨터의 아버지로 보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이후에요. 그전까지 컴퓨터 개발에 누구의 공이 크냐 하고 논쟁을 하면 튜링이 아니라 다른 세 사람이 많이 언급되는데요. 공학자였던 존 프레스퍼 에커트, 물리학자였던 존 모클리, 그리고 오늘의 두 번째 주인공인이 사람입니다. 미래에서 온 남자라고 불릴만큼 미친 천재로 알려진 사람. 바로 존폰 노이만입니다.
14:43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브린스턴 대학교의 교수에 기도했던 포원노이만. 아인슈타인과 자주 비교되는 엄청난 천재입니다. 수학, 컴퓨터 과학, 양자역학, 경제학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혁한 업적을 남겨서 21세기를 설계한 남자다. 이런 평가를 받기도 해요. 폰노이마는 앨런트링보다 9년 먼저 헝가리에서 태어나는데요. 네로라 하는 과학자들도 폰노이만이 천재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부터 귀족적인 폰 누이마는 아주 부유한 유대인 가정 출신인데요. 여섯 살에는 여덟리 숫자의 곱셈을 무려 암산으로 할 수 있었고 여덟살 때는 미적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15:28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세 개를 동시에 다녔고요. 19살에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언어는 뭐 간단하게 [음악] 7개국어 정도 했다고 해요. 이런 거 말고도 입이 아플 정도로 천재적인 이야기가 많은데요. 그중에 유명한 건 28살에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라는 논문을 내서 수학계를 발칵 뒤집었다는 겁니다. 재밌는 건 폰노이만의이 양자 역학 논문을 읽었던 한 소년이 있었는데요. 그게 바로 앨런 튜링입니다. 튜링은 그 논문을 읽고 너무 재밌고 술 잘 읽혔다.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이런 말을 어머니한테 썼다고 합니다.네 네. 그들만이 사는
16:14 세상이죠. 이렇게 젊을 때부터 최고의 수학자로 널리 알려진 본노의 말은 미국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의 교수로 가게 됩니다. 유럽에 비해 수학과 과학 발전이 [음악] 뒤쳐졌던 미국이 당대 최고의 약자들을 다 여기로 당겨왔거든요. 이중에 아인슈타인도 있었는데요. 당시 29살이었던 폰노이마는 교수 중에 최연소였습니다. 노이만의 동료들은 여기에 모인 천재들 중에 노이만이 그 누구보다도 머리 회전이 빨랐다라고 평가했는데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는 말 있잖아요. 폰노이마는 천재들의 천재였던 거죠. 본노이만과 앨런 튜링이 처음 만난 것도이 시기였는데요.
17:00 튜링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귀를 받았거든요. 이때 노이만이 튜링계의 논문을 보고 야이 녀석 >> [음악] >> 쓸 만한데 싶었던 거죠. 그래서 튜링한테네 조교 좀 해 줘. 연봉 많이 줄게. 제안을 합니다. 근데 튜링이 거절하죠. 튜링은 미국이 아닌 조국 영국에서 [음악] 연구 활동을 지속하는데요. 둘은 그 후로도 서로의 논문을 보고 각자 연구하는데 꽤나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 이제 폰노이만이 왜 컴퓨터가 태어나는데 큰 역할을 했는지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폰노이만이 세운 업적이 이것저것 너무 많아요. 여러분, 경제학에서 쓰는
17:46 게임 이론이란 말이들 들어보셨죠? 콘이만이 바로 게임 이론을 최초로 만든 사람입니다. 게임 이론은 게임에서 최대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지 수학적으로 체계한 건데요. 여기서 게임이란 건 국가간 외교부터 기업간의 경쟁, 정치권의 협상, 그리고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협상까지 해당됩니다. 폰노만이 주로 연구한 건 2인 제로썸 게임이었는데요. 제로썸 게임은 한 참가자가 이득을 보면 다른 참가자는 똑같은 양의 손해를 보는 게임입니다. 합이 제로다. 제로썸. 푸노이마는 제로섬 게임에서 어떤 전략을 짜야 유리한지
18:31 수학적으로 증명했는데요. 쉽게 말해서 케이크 하나를 잘라서 두 사람이 나눠서 갖는다고 생각해 볼게요. 한 사람이 케이크를 자르는 권한을 가지면 다른 한 사람은 잘린 케이크 조각을 먼저 가져가는 권한을 갖습니다. 그럼 이때 자르는 사람은 어떻게 하겠어요? 가져가는 사람이 선택하지 않을만큼 작아 보이는 쪽을 가능한 크게 잘라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나중에 이걸 가져갈 때 손실이 적잖아요. 뭐 가져가는 사람의 전략은 쉽습니다. 그냥 두 조각 중에서 큰 걸 신중하게 골라서 가져가면 되죠. 아니, 그냥 반을 정확하게 나누면
19:16 되잖아 싶으실 텐데 케이크의 경우에는 그게 가능하지만 실제 제로썸 게임에서는 그렇게 반으로 딱 나누는게 가능하지 않은 복잡한 상황이 많아요. 그러니까 이걸 수학적으로 연구한 거죠. 지금 이런 게임 이론은 경제학뿐만 아니라 정치학부터 생물학까지 거의 모든 학문에 다 쓰이는데요. 제일 먼저 가치를 알아본 건 미국 군대였습니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버릴 때 미국이 핵폭탄 발사 단출을 언제 눌러야 할지를 결정하는데도 게임 이론이 중요한 전략을 제공했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가 현대 과학자들을 이야기할 때도 전쟁 이야기가 빠지질
20:02 않는데요. 2차 대전과 뗄리야 뗄 수 없는 튜링처럼 폰노이만도 전쟁의 중심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유대인이었던 폰노이만이 나치 히틀러에 맞서서이 전쟁을 적극 돕기로 결심한 거예요. 그래서 그 뒤로 전쟁에 관련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 중요한게 바로이 매네튼 프로젝트인데요.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미국의 비밀 프로젝트인 거 이제 많이들 아시죠? 여기 수장이 오펜하이머였는데요. 핵분열 실험이 계속 실패하니까 [음악] 오페이머가 우리 천재 폰노이만한테 좀 도와줘 하고 SOS를 한 거예요. 그때 과학자들이 만들고 있던 건 우라늄 폭탄이었는데요. 이게
20:49 농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좀 있어서 플루토늄 폭탄도 하나 더 만들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플루트늄은 훨씬 복잡하고 정밀한 설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더 파괴력이 강한 복발을 위해 폭발 렌즈라는게 필요했고 이걸 만든 사람이 폰 노이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적국에 더 큰 피해를 입히려면 어디서 터트려야 할지 완벽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는데 그것도 폰노이 많이 했죠. 그런 치밀한 계산 안에서 팬맨이라 불리는이 플루토늄 폭탄이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기에 투화되고 지상 500m 지점에서 폭발합니다.
21:35 그리고 풋노이만의 예측대로이 폭탄은 일본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남깁니다. 노이만이 과학적으로는 대단한 발명을 했지만 인류에겐 끔찍한 결과가 된 거죠. 맨튼 프로젝트에 관련이 있는 과학자들이이 프로젝트의 결과를 두고 반성과 후회를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폰노이마는 정반되었습니다. 끝까지 [음악] 핵 개발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강력한 핵에 대한 두려움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제 슬슬 컴퓨터 얘기로 넘어가 버려고 하는데요. 노이만도 튜링처럼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 이것도 전쟁과 관련이 있는데요. 맨튼 프로젝트에서 핵폭탄 모의 실험을 할
22:21 때 어마어마한 계산량을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했거든요. 노이마는 제일 빠른 계산기를 찾기 위해 미국 저역을 돌아다녔는데 그러다 만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애니학입니다. 애니 아까 최초의 [음악] 범용 컴퓨터라고 말씀드렸죠? 당시에 미국에서 총알보다 빠른 계산기라고 아주 떠들썩했습니다. 기존의 계산기보다 천배나 빨랐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지금 아는 컴퓨터와는 달리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애니학 개발자들이 컴퓨터를 들고 다닌게 아니라 컴퓨터 안에서 살았다고 말할 정도였죠. 하지만 애니학에도
23:09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덧셈을 하다, 뺄셈을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배선을 사람이 매번 뽑아서 다시 끼워야 했던 거예요. 너무 불편하겠죠? 그래서 노이마는 이걸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라는 걸 제안합니다. 단어가 복잡해 보이지만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아는 현대식 컴퓨터의 구조를 보면요. 키보드 같은 입력 장치가 있고요. 중앙 처리 장치인 CPU가 있고요. 출력 장치인 모니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 처리 장치 옆에 기억 장치인 메모리가 있죠. 그런데 초기 컴퓨터들 에니아, 콜로서스 이런 애들은 메모리가 없었어요. 노이만이 한 건 CPU 옆에 메모리를
23:55 붙인 겁니다. 이렇게 하면 프로그램과 자료를 메모리에 저장해 놓았다가 명령에 따라 작업을 차례로 불러내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노이만이 제한한 구조에서는 배선을 안 바꾸고 소프트웨어만 바꿔 끼우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할 땐 당연한 거지만 그 당시엔 획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구조를 폰 노이 구조라고 하는데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도이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1949년에 폰노임하는이 새로운 구조로 에드박이라는 컴퓨터를 완성합니다. 새 컴퓨터의 획기적인 메모리 얼마였을까요?
24:41 5.6k바였습니다. 요즘 스마트폰 내장 메모리랑 비교하면 수억배 차이가 나죠. 그래도 중요한 건 7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런 방식의 컴퓨터가 사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뭐 물론 콘이만 구조에도 단점은 있었습니다. 병목 현상이라고 하는 건데요. 중앙에서 아무리 데이터를 빨리 처리해도 메모리의 속도가 느리거나 데이터가 너무 많으면 전체적인 성능이 저화된다는 거였어요. 노이마는 이걸 해결하려고 계속 고민했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해결하진 못했습니다. 요즘은 인공지능 때문에 처리해야 할 데이터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는데요. 다행히 이런 병목 현상을
25:27 줄일 수 있게 다른 구조를 가진 컴퓨터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즘 핫한 양자 컴퓨터도 그중 하나죠. 어쨌든 폰노이마는 그 후로 컴퓨터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던 IBM과 손을 접게 됩니다. 그리고 1951년부터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IBM의 컨설팅을 제공했고요. 덕분에 1960년대에 IBM은 전 세계 전자 컴퓨터의 70%를 생산하는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IBM이 벌어들인 돈에 절반은 노이만한테 빚을 진거나 다름 없다.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어쨌거나 날 때부터 부자였던 노이마는 살면서도 돈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인생이
26:14 플렉스 그 자체였는데요. 슈퍼카 수집이 취미어서 페라리, 포르쉐 같은 고급차가 여러대 있었다고 합니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항상 고가의 투버튼 정작만 입고 다녔다고 해요. 노이마는 파티 광이었고 음단 패설도 좋아했고 여자도 좋아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EBS 품격에 맞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폰노이만이 핵과 컴퓨터 분야에서 성공도를 달리는 동안 에런 튜링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요? 튜링은 말련에는 기계가 아니라 갑자기 생물학 연구에 몰두합니다. 동물의 무늬에 나타나는 패턴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는데요. 예를
26:59 들면 호랑이 얼룩말 물고기의 무늬에 어떤 수학적 질서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튜링은 이걸 1952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큰 관심을 얻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음악] 1970년대 튜링의 미분 방정식을 시뮬레이션하면 조개 껍데기나 열대어의 무의를 제연할 수 있다는게 [음악] 밝혀집니다. 이렇게 수학으로 생물을 설명하는 분야를 지금은 수리 생물학이라고 합니다. 그런 분야가 없던 시대에 튜링이 큰 기여를 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이 논문을 발표했던 해 튜링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27:46 발각된 건데요. 제가 맨 처음에 그 시대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라고 말씀드렸었죠. 그때 튜링은 아놀드 머레이라는 20살 연하의 청년과 연인 관계였는데요. 둘의 관계가 멀어질 때쯤 튜링의 집에 도둑이 듭니다. 도둑의 정체는 황당하게도 머레이의 친구였는데요. 튜링이 사는 집이 좋아 보이니까 좀 털어보려고 한 거죠. 동성애를 들키지 않으려고 신고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튜링은 바로 신고를 해 버립니다.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튜링에게 동성애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버리고 경찰은 튜링을
28:31 풍기 물란죄로 고발합니다. 그렇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튜링은 감옥에 가는 대신에 화학적 거세를 [음악] 택합니다. 연구를 계속 하고 싶었거든요. 그 후 튜링은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신체적으로 여러 부작용을 겪습니다. 국가의 모든 기밀 업무에서도 배제가 됩니다. 뛰어난 학자였던 튜링의 명예가 바닥까지 [음악] 떨어진 거죠. 튜링은 자신이 이룬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년 뒤 [콧방귀] 청상가리에 [음악] 담근 사과를 베어먹고 스스로 세상을 등집니다. 42살 때일이었어요. 튜링의 주변 사람들은 [음악] 튜링의
29:17 죽음은 사고 사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아직까지 뭐가 진실인지는 [음악]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위대한 수학자의 인생이 너무 허망하게 일찍 끝나 버렸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