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감동사연] 대한민국이 조지아에 심은 15조 원의 기적! 전 국토를 한국 기술로 뒤덮은 충격적인 이유”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지금 국제 외교관은 조지아와 대한민국 때문에 발칵 뒤집혔습니다. 단순한 우호 협정이나 정상회담 때문이 아니었어요. 조지아 정부가 미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 국민조차 쉽게 누리지 못하는 파격적인 특별 대우를 오직 국민에게만 허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조지아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어요. 복잡한 잔고 증명이나 까다로운 체류 목적 심사 없이 장기간 머물 수 있었고 특정 조건 아래에서는 취업과 사업, 부동산 취득까지 훨씬 자유롭게 허용된다는 이야기가 외교가를 뒤흔들었습니다. 미국 외교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유럽의 기업인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어요. 도대체
0:47 왜 한국인만 가능한 겁니까? 미국보다 한국을 더 신뢰한다는 뜻입니까? 독일 기업은 문전 박대를 당했는데 왜 한국 기업에는 자원 개발의 문을 열어 주는 겁니까? 그러나 조지아 정부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가장 외로웠던 순간에 우리를 외면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시간을 2008년으로 되돌려 보십시오. 러시아의 전차가 조지아 국경을 넘어 도시를 짓밟고 폭격기가 민간인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그 절망적인 순간에 서방은 무엇을 했습니까? 북대서양조약 기구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UN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미국과
1:34 영국, 프랑스와 독일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조지아 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거창한 군사 개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자신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어요. 그러나 러시아의 눈치를 보던 세계는 그 작은 부탁조차 외면했습니다. 딱 한 나라만 달랐습니다. 러시아의 분노와 경제적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지아의 손을 잡아 준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었어요. 당시 크램 내부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서방 국가가 이런 선택을 했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참 묘한 나라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믿기
2:19 어려운 일이 벌어졌어요. 러시아의 코앞에 자리잡은 조지아가 한국 기업에만 전략 자원과 주요 개발 사업에 문을 열어 주기 시작한 겁니다. 독일 기업이 막대한 투자금을 들고 찾아왔지만 거절당했고 프랑스 기업은 협상 테이블에조차 앉지 못했어요. 반면 한국 기업이 찾아오면 조지아 정부 고의 관료가 직접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세계가 외면한 작은 나라의 이름을 지켜준 대가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외교적 신뢰가 한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요? 지금부터 그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제임스 하트필드입니다. 영국 BBC에서 20년 넘게 탐사보도 기자로 일했어요. 이라크와
3:05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와 리비아를 비롯해지도 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되는 위험 지역은 대부분 제출근길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폭탄이 떨어지는 거리에서 생방송을 진행했고 무장 세력이 점령한 도시에서 몰래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취재했으며 정부가 숨기려던 문서를 세상에 공개한 적도 있었어요. 피바디상을 받았고 피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진실의 수호자라고 불렀어요. 그러나 웃기지 마십시오.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진실을 지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방송국과 정부, 기업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편집된 진실만을 팔아온 비겁한 사람이었어요. 불편한 진실을 보았지만 기사를 쓰지
3:51 않았고 권력의 계산이 끝날 때까지 수많은 사람의 절규를 화면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제가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예요. 얼마 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릿이 국제공항에서 목격한 한 장면입니다. 그날 공항 입국 심사장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어요. 제앞에는 런던에서 온 영국인 관광객과 독일에서 온 기업인 프랑스 여권을 가진 국제기구 직원들이 길게 줄을서 있었습니다. 입국 심사관들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어요. 그들은 입국하려는 사람을 손님이 아니라 잠재적인 불법 체류자나 범죄자로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마침내 제 차례가 왔어요. 저는 대형제국의 후회라는 자부심이 담긴 영국 여권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심사관은 여권
4:39 표지를 보고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어요. 방문적이 무엇입니까? 취재입니다. 언론사 재직 증명선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숙소 예약 확인서를 보여 주십시오. 저는 호텔 예약서를 꺼냈어요. 귀국 항공권은요. 그것도 보여줬습니다. 체류 기간 동안 사용할 자금이 충분하다는 증명은 있습니까?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은행 잔고 화면까지 보여주며 제가 불법 취업을 위해 조지아에 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심사는 15분 넘게 이어졌어요. 심사관은 제 얼굴과 여권 사진을 몇 번이나 번갈아 바라본 뒤 마지못해 입국 도장을 찍었습니다. 여권을 돌려주며 차갑게 말했어요.
5:25 재료 가능 기간은 90일입니다. 의심스러운 행동이 확인되면 즉시 체류 허가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대형제국의 여건을 들고도 범죄자 취급을 받은듯한 불쾌감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바로 그다음에 벌어졌어요. 제엽 심사대에 20살 남짓한 동양인 청년 한 명이서 있었습니다. 낡은 배낭을 매고 있었고 장거리 비행에 지쳤는지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영역했어요. 그는 두 손으로 여권을 내밀었습니다. 모릇은 녹색 표지의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힌 한국 여권이었어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청년도 꽤 고생하겠군. 조지아 입국 심사관들은 유럽인에게도 이렇게 까다로운데 처음 온 아시아 청년에게는 얼마나 많은
6:12 것을 요구하겠어?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여권을 받아둔 심사관의 무뚝뚝한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어요. 불과 몇 초 전까지 프랑스인 관광객에게 차갑게 질문을 퍼붓던 사람이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발견한 것처럼 미소를 지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셨습니까? 청년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네. 서울에서 왔습니다. 심사관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방문 목적도 묻지 않았어요. 숙소 예약서도 귀국 항공권도 은행 장고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권의 빔페이지를 펼친 뒤 입국 도장을 힘차게 찍었어요. 쾅 그리고 유창한 영어로 믿기 힘든 말을 건냈습니다. 웰컴
6:58 home더. 형제여,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제 길을 의심했습니다.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니요. 저 청년은 조지아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이었어요. 서울에서 처음 여행을 온 평범한 관광객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입국 심사관은 그에게 관광객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온 형제를 대하듯 말하고 있었어요. 더 충격적인 것은 입국 도장이었습니다. 제 여권에는 90일이라는 체류 기간이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 청년의 여권에는 선명하게 365일이 찍혀 있었습니다. 무려 1년이었어요. 단순한 관광 허가가 아니었습니다. 일정 조건만 갖추면 취업과 사업 활동도 가능했고 현지에서 재산을 취득하는 것도 다른 국적자보다 훨씬
7:45 수월하다고 했어요. 사실상 준명 주권에 가까운 특별 대우였습니다. 미국인도 90일, 영국인도 90일, 독일인과 프랑스인도 비슷한 심사를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왜 한국인만 1년입니까? 도대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조지아에 무엇을 해 주었기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나 전통적인 유럽 강국보다 더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일까요?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입고 지냈던 16년 전의 기억이 벼락처럼 되살아났습니다. 코를 찌르던 맥쾌한 화약 냄새, 귀를 찢을 듯 울리던 폭격 소리, 창 밖으로 솟아오르던 검은 연기, 그리고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그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제 비겁한 침묵이었어요.이 미스터리를 풀기
8:30 위해서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야 합니다. 세계가 베이징 올림픽에 화려한 개막식에 취해 있던 2008년 8월에 뜨거운 여름으로 말입니다. 2008년 8월 트빌리시 메리어트 호텔 로비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러시아 폭격기들이 조지아 연공을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쾅 멀지 않은 곳에서 폭파음이 울릴 때마다 호텔 유리창이 위태롭게 떨렸습니다. 창밖에서는 검은 연기가 거대한 기둥처럼 솟아 올랐고 다급하게 달리는 군용 차량과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고리 지역을 넘어온 러시아군의 T72 전차가 수도 트빌리시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속보가 전해졌습니다. 호텔에 머물던 외신 기자들은 위성 전화와 노트북을
9:17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어요. 누군가는 방송 장비를 챙겼고 누군가는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탈출 차량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호텔 옥상에서 위성 전화를 붙잡고 런던 본사 편집국에 소리를 질렀어요. 데스크 들립니까? 지금 러시아군이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전차가 고리를지나 수도로 진격하고 있어요. 이건 단순한 국경 충돌이 아닙니다. 침공입니다. 헤드라인에 반드시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이라고 써야 합니다. 그러나 수학이 너머해서 들려온 편집국장의 목소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했어요. 제임스 진정하게 톤을 조금 낮춰 저는 순간 제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올림픽 기간이야. 전
10:04 세계가 베이징 개막식과 경기 소식에 집중하고 있어. 축제 분위기에 지나치게 자극적인 보도를 내보낼 필요는 없어. 그리고 침공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해. 러시아를 자극하면 모스크바 지국이 폐쇄될 수도 있어. 저는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어요. 지금 제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러시아 탱크가 다른 나라의 영토를 넘어왔어요. 이게 침공이 아니면 대체 무엇입니까? 국장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분쟁으로 가자. 조지아 지역 내 갈등 고조. 그 정도가 적당해. 그리고 제임스 너무 조지아 편을 들지 마. 우리 정부도 러시아와 가스 공급 문제를 협상 중인 것 알고 있지. 괜히 문제를 키워 일을 복잡하게
10:51 만들지 말라고. 통화가 끝난 뒤 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옥상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어요.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서방의 저널리즘입니까? 약한 나라의 영토가 짓밟히고 민간인이 죽어가는데도 가스와 방송허가 올림픽 시청률을 먼저 계산하는 것이 정의입니까? 그러나 저 역시 결국 그 조직의 기자였습니다. 분노했지만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고 진실을 보았지만 회사가 허락한 단어만 사용했어요. 그때 호텔 로비 임시 기자 회견장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지아 외무부 차관 다비트 바크라제가 긴급 기자 회견을 연다는 소식이었어요. 저도 카메라맨을 데리고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잠시 뒤 다비트 차관이 단상 위로
11:37 올라왔어요. 흰색 와이셔츠는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넥타인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듯 눈은 푹 꺼져 있었어요.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전 세계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새 없이 터졌어요. 기자들은 모두 비슷한 발표를 예상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무기를 요청하거나 UN 평화 유지군을 보내 달라고 호소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의 뒤통수를 세개 후려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존경하는 세계 언론인 여러분. 우리는 오늘 식량과 총알를 구걸하기 위해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 하나를 부탁드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는
12:23 잠시 입술을 깨물었어요. 우리의 이름을 되찾게 해 주십시오. 제발 우리를 그루지아라고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의 이름은 조지아입니다. 기자 회견장이 순렁이기 시작했어요. 프랑스 기자 한 명이 옆 사람에게 들리도록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라가 사라지게 생겼는데 이름 이야기나 하고 있군. 재정신인가? 독일 기자도 어깨를 으쓱했어요. 러시아가 무서워서 현실 감각을 잃었나 보지. 그루지아나 조지아나 결국 같은 나라 아닌가? 그러나 다비트 차관은 그들의 조롱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말을 이어갔습니다. 목소리는 점점 더 떨리고 있었어요. 그루지아라는 이름은 러시아 제국이 우리를 지배하며 강요한
13:09 이름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억압했고 우리의 역사를 바꾸었으며 우리의 정체성을 지우려 했습니다. 그루지아는 단순한 발음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식민지의 백성으로 부르기 위해 만든 낙인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우리가이 전쟁에서 죽게 되더라도 노예의 이름으로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독립국 조지아의 시민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기사를 쓸 때 단 한 번이라도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 주십시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세계에 부탁할 수 있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굴은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저는 가슴 한 구석이 날카로운 바늘에
13:54 찔린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러나 기자 회견장의 분위기는 냉혹했어요. 미국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차관님, 현실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서방의 군사 지원 없이 조지아가 러시아군을 상대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고 지금은 전쟁 계획을 설명해 주시죠. 다비트 차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마침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의 절박한 호소는 거대한 기자 회견장 안에서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졌어요. 그날 밤 저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제목은 본사의 지시대로 정해졌어요. 조지아 지역 분쟁 격화. 그러나 본문에서는 당시 영국 언론의
14:40 관행에 따라 조지아가 원하는 이름이 아닌 러시아식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다비트 차관의 눈물을 직접 보았고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었지만 저는 데스크가 요구한 표현을 그대로 따랐어요. 영국도 침묵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도 마찬가지였어요. 푸틴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이 작은 나라의 자존심을 지켜줄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었습니다.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을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협박 앞에서 서방이 자랑하던 정인은 너무나 쉽게 무너졌어요. 우리는 조지아를 철저히 배신했습니다. 러시아 전차의 진격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던 그날 새벽 저는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결국
15:25 호텔 로비로 내려왔습니다. 대부분의 외신 기자들은 짐을 싸며 탈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저 역시 아침이 되면 영국 대사관에서 보낸 차량을 타고 조지아를 빠져나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텅빈 로비 구석의 어둠 속에 한 남자가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아시아인이었습니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넥타인은 거칠게 풀어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피우다만 단백공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어요. 그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누군가와 격렬하게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의 뜨거운 분노와 결기가 담겨 있었어요. 처음에는 일본 외교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16:11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나라고 하면 일본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니까요.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테이블 위에 놓인 명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 한승우. 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어요. 아직 떠나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대부분 철수 준비를 하고 있던데요. 한승우 참사관은 충열된 눈으로 저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저는 피곤함과 냉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요. 해야 할 일이라고요? 러시아군이 수도 근처까지 왔습니다. 한국도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고 경제 협력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정부도 결국 우리처럼 모른 척하는 편이 이익일
16:58 겁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국 기업들만 피해를 볼 텐데 지금은 짐을 싸서 나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습니까? 제 비아냥거림을들은 한승훈은 수기를 천천히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저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수많은 외교관을 만났지만 그런 눈빛은 처음 봤어요. 두려움도 아니었고 무모한 흥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의 눈빛이었어요.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기자님, 영국은 나라의 이름을 빼앗껴 본 적이 없겠지요.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어요. 그렇겠지요. 영국은 다른 나라의 이름과 영토를
17:45 빼앗은 적은 있어도 자기 이름을 빼앗긴 적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 말은 영국인 제 가슴을 정확하게 찔렀습니다. 한승훈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믿기 어려운 말을 꺼냈어요. 방금 서울에 긴급 전문을 보냈습니다. 내일 오전 9시를기에 대한민국 정부는이 나라의 공식 명칭을 기존 러시아식 표기에서 조지아로 변경할 겁니다. 정부 문서와 외교 문서, 교과서와 방송, 언론 표기까지 모두 바꾸도록 요청했습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어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정말 미친 것 아닙니까? 러시아가 바로 눈앞에서 전쟁을 버리고 있습니다. 이름 하나 때문에 러시아와 정면으로 충돌하겠다는 겁니까? 그것이 한국의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18:32 한국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그런 결정을 승인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자 한승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세 개 두드리며 말했어요. 이것은 단순히 국익을 따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존엄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로비에 울려퍼졌어요. 제 할아버지는 평생 원하지도 않았던 일본식 이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면 매를 맞았고 자신의 진짜 이름을 부르면 처벌 받았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이 단순히 호칭 몇 글자가 바뀌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것은 한 사람과 한 민족의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는 일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19:19 있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는 단단했어요.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대한민국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같은 고통을 겪어 놓고도 다른 피해자의 이름을 빼앗는 일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배운 나라입니까? 러시아가 화를 내더라도 불러 줘야 합니다. 조지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조지아라고 불러 달라는데 우리가 왜 가해자의 언어를 따라야 합니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머리를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와 독일처럼 스스로를 문명국이자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러시아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난 동아시아의 작은
20:06 나라는 오직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기억한다는 이유만으로 거대한 러시아의 정면으로 맞서려 하고 있었어요. 한승우 참사관은 다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어요. 기자님, 내일 아침을 지켜보십시오. 아마 세상이 조금 시끄러워질 겁니다. 그의 말은 정확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브리핑을 통해이 나라의 명칭을 조지아로 표기하겠다고 발표하는 순간 국제 외교관은 얼어붙었어요. 그것은 단순히 외국 지명의 표기를 바꾼 행정적인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라는 거대한 고메터를 동아시아의 작은 호랑이가 정면으로 건드린 사건이었어요. 크램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20:53 러시아 외교 당국은 한국 정부의 결정이 자국의 역사적 영향력을 무시한 비우호적인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어요. 외교적 경고 뒤에는 더욱 무서운 말이 따라붙었습니다. 한국은 자신의 선택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 대가는 외교문서 한 장으로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스 공급 협상과 세무조사 통지서 통관 지연과 비자 거부 도장으로 날아왔어요. 총성이 들리지 않았을 뿐은 분명한 전쟁이었습니다. 첫 번째 표적은 에너지였어요. 당시 한국은 러시아와 천연가스 공급 및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경제와 겨울철 난방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문제였어요. 그런데 조지아
21:40 명칭 변경 발표 직후 러시아 측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협상 일정이 갑자기 연기됐고 기존에 논의하던 가격 조건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통보가 날아왔어요. 공식적인 이유는 시설 점검과 시장 상황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외교가에서 그것을 우연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말이 협상이지 사실상 정치적인 압박이었습니다. 러시아는 한국 국민들의 생활비와 기업의 생산비를 볼모로 잡아 정부의 결정을 되돌리려 했어요. 두 번째 표적은 한국 기업이었습니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자동차와 전자기업 사업장의 갑작스러운 세무 조사와 위생점검, 소방 점검이 이어졌어요. 평소에는 문제 삼지 않던 사소한 규정 위반을
22:25 이유로 공장 가동을 지연시키고 한국산 부품을 실은 컨테이너의 통관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러시아에 파견된 한국 기업 직원들의 비자 연장도 갑자기 어려워졌어요. 어제까지 아무 문제 없이 일하던 사람들이 비자 갱신을 거부당해 하루 아침에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공항에서 흘린 눈물은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이 되지 못했어요. 기업 실적 악화와 수출 감소라는 차가운 숫자로만 기록됐습니다. 한국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어요. 일부 언론은 정부가 시릭도 없는 감성 외교로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름 하나 바꾸기 위해 왜 국민이 난방비를 더 내야 하는가? 러시아를
23:11 자극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조지아가 한국 경제를 책임져 줄 수 있는가? 여론은 빠르게 차가워졌습니다. 기업들은 정부를 원망했고 정치권은 책임자를 찾아 나섰어요. 그리고 가장 먼저 조지아의 편에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한승우 참사관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습니다. 트빌리시 호텔 로비에서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한민국은 피해자의 이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그 남자였어요. 2년 뒤인 2010년 저는 서울 광화문의 허름한 순대국집에서 한승우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트빌리시에서 보았던 팩이 넘치는 외교관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머리카락 곳곳이 하얗게 변했고 어깨는 눈에 띄게 쳐져 있었습니다. 외교부의 핵심
23:58 부서에서 밀려난 그는 이름조차 생소한 한직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승진은 사실상 물 건너갔고 동기들 사이에서는 조직의 문제를 일으킨 인물로 취급받았습니다. 러시아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왔지만 정작 러시아 관련 업무에서는 완전히 배제됐어요. 그는 소주잔을 채우며 쓰우음을 지었습니다. 제임스 그거 압니까? 러시아 대사가 우리 장관실에 찾아와 소리를 질렀다고 하더군요. 한승우를 당장 해고하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을 더 강하게 압박하겠다고 했답니다. 장관이 겨우 막아줘서 해고는 피했지만 외교관으로서 제 인생은 사실상 끝난 셈이지요. 저는 그에게 냉정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후회합니까? 그때 모른
24:45 척했으면 지금쯤 승진하고 좋은 자리에 있었을 겁니다.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당신의 인생도 꼬였습니다. 조지아 사람들이 당신의 가족을 먹여 살려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솔직하게 말해 보십시오. 그 선택이 정말 옳았습니까? 한승훈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말없이 뚝배기 속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었습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오래 접어 구겨진 편지 한 통을 꺼내 제 앞에 놓았어요. 봉투에는 조지아 트빌리시의 우편 소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보낸 사람은 전쟁 당시 기자 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나라를 조지하라고 불러 달라고 호소했던 다비트 바크라제 차관이었어요. 편지는 서툰 한국어로 작성되
25:31 있었습니다. 한승우 형제님께 당신이 우리 때문에 겪고 있는 고통을 전해들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과 대한민국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 주십시오. 조지아의 많은 어머니가 당신의 이름을 기도 속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책에는 우리를 가장 먼저 조지아라고 불러준 나라로 대한민국의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난하고 힘이 없어 아무것도 갚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이 빚을 갚겠습니다. 조지아는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조지아는 대한민국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승우는 편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마셨어요. 그리고 조용히
26:18 말했습니다. 외교관 생활을 하며 훈장도 받아보고 대통령 표창도 받아봤습니다. 하지만 제게는이 편지보다 갑진 것이 없어요. 그는 제 눈을 바라봤습니다. 경제적 손해가 컸다는 것 저도 압니다.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고 국민이 불편을 겪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돈을 아끼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외면했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덩치만 큰 삼류 국가로 남았을 겁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국격이라는 겁니다. 그는 가슴을 가리키며 나지막이 덧붙였어요. 제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보고 계실 겁니다. 적어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밤 저는 호텔방으로 돌아와 한동안 울었습니다. 부끄럽게
27:05 살지 말자. 그 말이 영국인 저널리스트인 제심장을 잔인할 정도로 후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가스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올림픽 축제 분위기를 망치기 싫다는 이유로 침공을 분쟁이라고 불렀어요. 러시아 지국이 폐쇄될까 두려워 피해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돈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조지아의 이름을 불러줬어요. 강대국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식민지의 아픔을 기억하는 한나라가 피해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한국이 치른 그 값비싼 선택이 훗날 얼마나 거대한 외교적 자산으로 되돌아오게 될지를요. 러시아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조지아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27:52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더욱 깊게 새겨졌습니다. 트빌리시의 시장과 상점에서는 한국산 제품을 구매하자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퍼지기 시작했어요.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니었고 정부가 만든 캠페인도 아니었습니다. 조지아 국민들이 스스로 시작한 보답이었어요. 택시 기사들은 한국인 승객기 타면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신랑이를 버렸고 식당 주인들은 한국인 관광객에게 와인과 음식을 무료로 내놓았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형제라고 불러준 나라에서 왔습니다. 형제에게 어떻게 돈을 받습니까? 러시아가 경제의 밸브를 잠그려할수록 조지아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었어요. 그러나 한승우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가적인
28:39 선택은 순고했지만 그 선택을 최전선에서 떠바쳤던 개인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너무나 가혹했어요. 그는 외교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10년을 잃었고 동료들의 신뢰와 승진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목숨처럼 지키려 했던 또 하나의 이름까지 이을 위기에 처했어요.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2011년 겨울 제가 서울 취재를 위해 한승우의 집을 찾았을 때 집 안에는 싸늘한 냉기만 감돌고 있었습니다. 현관에는 아이들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고 거실 한쪽에 놓인 가족 사진은 엎어져 있었어요. 한승훈은 텅빈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가족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29:24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힘없이 웃었습니다. 나갔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어요. 잠시 뒤 그가 아내의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과 결혼했지. 나와 결혼한 사람이 아니야. 조지아라는 나라의 이름을 지키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우리 아이들의 이름은 잊어버리지 않았느냐고 하더군요.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시었습니다. 러시아의 압박이 가장 심했던 시기. 한승훈은 거의 집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한국 기업의 공장이 멈추면 대측 회의에 불려갔고 가스 협상에 문제가 생기면 밤새 대응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큰아들의 중학교 졸업식 날에도 그는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어요. 둘째, 딸이
30:11 폐렴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외교부 상황실에서 러시아 대사에 항해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가족에게 아버지와 남편은 늘 부제 중이었어요. 더구나 한승훈은 단순히 바쁜 사람의 아니라 나라 경제에 문제를 일으킨 외교관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은 학교에서 친구들의 조롱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에게 소리쳤다고 해요. 아빠 때문에 학교에서 창피해 죽겠어. 뉴스에서 아빠가 나라 경제를 망친 사람이라고 하잖아. 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우리 가족까지 욕 먹게 만드는 거야? 그 말을들은 날 한승훈은 처음으로 사직설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나라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거창한 명분 뒤에서 정작 자신의
30:58 가족이 가진 자존심은 짓밟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텅빈 거실에 앉아 한승우가 제게 물었습니다. 제임스, 제가 틀렸던 걸까요? 그때 눈을 감고 모른 척했으면 우리 가족은 지금 행복했을까요? 나라 하나의 이름을 지켜주겠다고 나섰다가 제 아이들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어요. 저 역시 진실을 외면하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고 한승우의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습니다. 한승우가 서울의 차가운 방 안에서 혼자 무너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각. 지구 반대편의 조지아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31:45 못한 뜨거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어요. 2011년 트빌리시의 한 전자 제품 매장에 70대 할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오래된 지갑 속에서 평생 모은듯한 꼬깃сць깃꼬깃한 집회를 꺼내며 점원에게 물었어요. 여기서 한국이 만든 냉장고가 어떤 것이냐? 점원은 삼성 냉장고를 가르키며 말했습니다. 할머니,이 제품은 조금 비쌉니다. 비슷한 중국산 제품은 절반 가격인데 그쪽으로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할머니는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내리쳤어요. 이놈아, 내가 돈이 부족하지 의리가 없는 줄 아느냐?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을 때 우리 이름을 불러준 나라가 한국이다. 내가 죽기 전에 그 나라가
32:30 만든 물건 하나라도 사 줘야 저승에 가서도 부끄럽지 않을 것 아니냐?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꺼내 가장 비싼 한국 냉장고를 구입했습니다.이 이야기가 조지아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어요. 바이코리아 한국 제품을 사자.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소비 캠페인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향한 조지아 국민들의 집단적인 감사 표현이었어요. 젊은이들은 아이폰 대신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부들은 마트에서 한국산 라면과 과자를 찾았습니다. 한국산 제품이 없으면 점원에게 왜 형제의 나라에서 만든 물건을 들여놓지 않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트빌리시의 대학에는 한국어 강좌가
33:17 만들어졌습니다. 소수의 수강생을 모집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가 몰려들었어요. 면접장에서 한 학생은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케팝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버지는 한국어가 언젠가 우리를 살려줄 언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의 언어를 알고 있으면 우리가 다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혼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 진심은 마침내 외교의 높은 벽까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늦시아의 영향력 아래에서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리투아니아 정부가 대한민국 외교부의 짧은 전문을 보냈어요. 대한민국 정부의 용기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리투아니아
34:03 정부는 오늘부터 러시아식 명칭 사용을 중단하고 해당 국가를 조지아로 부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승훈은 그 전문을 받아든 순간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가족이 떠난 텅빈 집에서 소주병을 붙든 채 어린아이처럼 울었어요.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안도와 확신의 눈물이었어요. 내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구나. 우리의 선택이 아무 의미도 없는 미친 짓은 아니었구나. 누군가는 우리의 진심을 보고 있었구나. 리투아니아가 움직이자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도 뒤를 따랐습니다. 소련의 지배와 러시아의 압력을 경험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 둘 조지아의 이름을 되찾아 주기
34:48 시작했어요. 폴란드와 체코 루마니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도 같은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워했어요. 아시아의 작은 나라도 러시아 앞에서 피해자의 이름을 불러 주었는데 정작 같은 유럽 국가인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한국이 치른 갑비싼 선택은 조금씩 국제 사회의 양심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돈을 잃었지만 명분을 얻었어요. 그리고 그 명분은 훗날 어떤 경제 계약보다 강력한 외교적 신뢰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반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조지아가 한국 국민에게 1년에 가까운 장기 체류의 문을 열고 한국 기업의 전략 자원 개발의 우선권을 부여하며 독일과 프랑스의 제한을 거절하게 된
35:35 배경에는 단순한 감사의 사건이 숨어 있었어요. 한승우가 자신의 가족과 경력을 잃어가며 지킨 이름 하나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바꾸었는지 그리고 조지아가 수십년 동안 기다려온 빚을 어떤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대갑했는지 보십시오. 가장 어두운 밤이 끝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 나라를 뒤흔들 거대한 새벽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어요. 이제 두 나라를 뒤흔들 거대한 새벽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당시에 한승훈은 그 새벽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외교부의 한직에 머물러 있었고 자신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들이 승진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어요. 한때 러시아와 동유럽
36:22 문제의 정통한 외교관으로 평가받았지만 조직 안에서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복도에서 후배들이 속삭귀는 소리도 자주 들렸어요. 저분이 러시아를 자극했던 당사자라면서 외교관이 감정적으로 움직이면 저렇게 되는 거지. 한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해명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어요. 아내와 아이들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조지아라는 나라의 이름은 지켜냈지만 자신은 가족에게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지아 정부가 대규모 경제사 절단을 서울로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대표단에는 외교 책임자와
37:07 경제부 장관, 에너지 관계자들이 포함되 있었어요. 그런데 조지아측이 가장 먼저 만나고 싶다고 요청한 사람은 대통령도 외교부 장관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한승우였어요. 외교부 간부들은 난처했습니다. 한승우를 공식 자리에 세우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러시아가 다시 반발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조지아측은 단호했습니다. 한승우가 참석하지 않으면 이번도 없습니다. 우리는 계약보다 먼저 형제에게 감사하러 가는 것입니다. 며칠 뒤 조지아 대표단이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앞에서 있던 사람은 2008년 기자 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조지아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호소했던 다비트였어요.
37:53 그는 한승우를 발견하자 수행원과 기자들을 뒤로 한 채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를 끌어안았어요. 형제여,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한승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당신들이 살아남아 줘서 고맙습니다. 다비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약속을 지킬 차례입니다. 다음날 열린 경제 협력 회의에서 조지아 정부는 모두를 놀라게 할 발표를 했어요. 한국 기업의 수력 발전과 광물 개발, 또한 정보 통신 사업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기업이 더 많은 투자금을 제시한 사업도 있었어요. 한국 측관계자가 조심스럽게
38:41 물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한국에 대한 특해라고 비판하지 않겠습니까? 다비트는 망설리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Т해가 맞습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어요." 그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H지만 이것은 부당한 특해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약했을 때 위험을 함께 감수한 나라에게 먼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더 많은 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폭격을 당하던 날 그들은 우리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 주지 않았어요." 다비트는 한승우를 바라봤습니다. 대한민국은 손해를 보면서도 우리를 조지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첫 번째 기회를 누구에게 주어야 하겠습니까? 돈을 가장 많이
39:27 가진 나라입니까? 아니면 우리와 함께 비를 맞아 준 나라입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조지아의 결정은 곧 유럽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어요. 독일과 프랑스는 경제와 감정을 분리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한 조지아 시민이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배신을 기억하면 전략이고 은혜를 기억하면 감정입니까? 한국은 우리가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때 우리를 도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왜 잘못입니까? 이후 한국 기업들은 조지아의 발전소와 도로 통신망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단순히 자원만 가져가지는 않았습니다. 현지 청년들을 고용했고 기술을 가르쳤으며 학교와 병원도
40:14 지원했어요. 조지아 국민들은 한국을 과거의 은인일뿐 아니라 함께 미래를 만드는 나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뒤 조지아 정부는 또 하나의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어요. 한국 국민에게 장기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제도를 열어 준 것입니다. 정부 내부에서는 반대도 많았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같은 조건을 요구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조지아의 한 고위 관료가 물었어요. 미국과 유럽은 2008년 우리를 위해 무엇을 잃었습니까? 한국은 우리를 위해 돈과 외교적 관계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나라의 국민을 범죄자처럼 의심해야 합니까? 결국 제도는 통과됐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인은 조지아 공항에서 다른 나라
40:59 국민과는 조금 다른 환영을 받기 시작했어요. 일부 심사관은 한국 여권을 확인하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웰컴 홈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공항에서 목격했던 장면도 바로 그 오랜 역사의 결과였어요. 처음 저는 한국인이 받는 대우가 부당한 특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게 됐어요. 그 여권에 찍힌 365일이라는 숫자 안에는 2008년 조지아 국민들이 흘린 눈물과 러시아의 보복을 감수했던 대한민국의 선택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승우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어요. 국가는 그의 선택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지만 가족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조지아 정부의 초청으로
41:45 그가 트빌리시를 방문했을 때 수많은 시민이 공항에 나와 그를 맞았어요. 어떤 노인은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이름을 불러준 날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온 그에게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화면에는 큰 아들의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 걸려온 전화였어요. 아빠 그 한마디에 한승우의 목이 매었습니다. 아들이 조용히 말했어요. 오늘 방송을 봤어. 조지야 사람들이 아빠 손을 잡고 우는 것도 봤어. 나는 아빠가 우리보다 외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믿었어. 그런데 이제
42:30 조금은 알 것 같아. 아빠가 지키려던 건 단순한 나라 이름 몇 글자가 아니었던 거지. 한승우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너희를 아프게 한 건 내 잘못이다. 그건 변명하지 않겠다. 잠시 뒤 아내의 목소리도 들렸어요. 돌아오면 이야기해요. 아이들과 공항에 나갈게요. 며칠 뒤 인천공항 입국장에는 아내와 두 아이가서 있었습니다. 한승훈은 그들을 발견하고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먼저 달려온 것은 딸이었습니다. 아빠. 딸이 그의 품에 안겼어요. 큰아들은 잠시 망설리다가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짧게 말했습니다. 고생했어요. 한승훈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어요. 그는 아들을 끌어안으며
43:15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잠시 뒤 천천히 아버지의 등을 감싸 안았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한승우의 가족은 다시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가기가 시작했어요. 한승우도 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국가를 위해 가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지아의 이름을 지킨 선택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이유로 가족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긴 것은 제 잘못입니다. 용기는 대가를 치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용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치르는 대가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안 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44:02 한승우가 왜 진짜 외교관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하지 않았어요. 잘한 일뿐 아니라 자신의 잘못까지 인정했습니다. 저 역시 제 잘못과 마주했습니다. 2008년 당시 저는 다비트의 절규를 들었지만 본사의 지시에 따라 조지아를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이름으로 보도했어요. 러시아의 침공도 단순한 분쟁이라고 축소했습니다. 저는 회사를 탓탈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최종적으로 제 이름을 걸고 기사를 내보낸 사람은 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조지아로 돌아갔습니다. 2008년 기자 회견이 열렸던 호텔 로비에서 바비트를 만났어요. 저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44:48 당신의 말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기자로서 실패했습니다. 아비트는 한동안 저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어요. 과거의 침묵은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평생 죄책감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 또 다른 작은 나라가 같은 일을 당할 때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용서보다 더 무거웠어요. 저는 한국과 조지아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단순했습니다. 이름을 불러준 나라.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은 트빌리시 공항이었어요. 한국인 가족 한 팀이 입국 심사대로 다가왔습니다. 심사관은 한국 여권을 확인한 뒤 어린아이에게
45:34 작은 조지아 국기 스티커를 건냈어요. 그리고 도장을 찍으며 말했습니다. 웰컴 홈지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가족은 그 말에 담긴 긴 역사를 모두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16년 전 호텔 로비에서 한승우가 내린 선택이 이제 그와 만난 적도 없는 한 한국 아이에게 따뜻한 환아오고 있었어요. 한 사람의 선택이 국경과 세대를 넘어 살아남은 것입니다.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뒤 수많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한국은 처음부터 이런 보상을 예상했습니까?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조지아의 자원도 장기체류 혜택도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저 이름을 빼앗긴 아픔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지아의 진짜 이름을 불러 준
46:21 것입니다. 그래서 그 행동은 더 강한 힘을 가졌어요. 대가를 기대하지 않은 행동이었기에 조지아 국민의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물론이 이야기를 지나치게 아름답게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결정으로 기업과 국민이 피해를 본 것도 사실이고 한승우의 가족이 고통받은 것도 사실이에요. 조지아에 진출한 모든 한국 기업이 완벽하게 행동한 것도 아닙니다. 일부 현장에서는 노동환경과 문화적 갈등도 발생했어요. 그러나 진정한 우정은 상대의 모든 행동을 무조건 칭찬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신뢰예요. 한승우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지아가 한국인을 형제라고 불러 주는
47:07 것은 특권이 아닙니다. 책임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얻은 신뢰를 다음 세대가 마음대로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기업과 국민이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그 신뢰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어요. 그 말이이 이야기의 진짜 결론이었습니다. 신뢰는 한번 얻었다고 영원히 유지되는 훈장이 아니에요. 매일 행동으로 다시 증명해야 하는 약속입니다. 대한민국은 2008년 조지아의 영토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전차를 멈추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세계가 침묵할 때 조지아라는 이름을 불러줬습니다. 조지아 국민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이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다는 증거였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조지아도 자신의
47:53 방식으로 대답했습니다. 한국인에게 문을 열고 한국 기업을 믿으며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지지했어요. 그 후로도 저는 조지아를 여러 번 찾았습니다. 갈 때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부의 발표나 거대한 경제 계약이 아니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이었습니다. 트빌리시의 한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어느 날 주인 아주머니는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계산서를 다시 가져갔습니다. 저는 계산이 잘못된 줄 알고 따라나갔어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화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국 손님에게는 오늘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은 우리를 가장 먼저 사람으로 대해 준 나라라고요. 또 어느 택시
48:39 기사는 한국인 관광객을 공항까지 태워다 준 뒤 끝내 요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16년 전 한국은 우리에게 이름을 돌려 주었습니다. 오늘 제가 해드리는이 작은 친절은 그 빛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외교의 진짜 결과는 정상회담 사진 속에서 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이었어요. 국가와 국가가 맺은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정권도 바뀌고 정책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전해준 감사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지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49:25 이름을 배우고 부모에게 2008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그들에게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어려운 순간 손을 내밀어 준 형제로 기억되는 것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문득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날 호텔 로비에서 저는 기사의 제목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한승훈은 한 나라의 존엄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역사는 제 기사 제목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승우가 지켜낸 단 하나의 이름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조지아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외교는 화려한 정상 회담이나 거대한 계약서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 단어에서 시작되어
50:13 누군가 원하는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는 일, 모두가 떠날 때 곁에 남아주는 일, 아무런 대가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저는 처음 트빌리시 공항에서 한국인의 여권에 찍힌 365일이라는 도장을 보며 분노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 도장을 특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조지아가 대한민국에 맡긴 신뢰의 증서였어요. 그리고 그 증서에는 보이지 않는 조건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배신하지 마십시오. 대한민국이 그 믿음을 지키는 한 조지아의 문은 계속 열려 있을 겁니다. 조지아가 한국을 과거의 은인으로만 보지 않고 동등한 동반자로 대하는 한 두 나라의 관계도 더욱 깊어질 거예요. 한승훈은 어느
50:59 강연에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국가의 품격은 얼마나 많은 나라가 두려워하는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어려운 순간에 얼마나 많은 나라가 믿고 전화를 걸 수 있는가로 결정됩니다. 강한 군대는 적을 물리칠 수 있고 거대한 경제는 시장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신뢰입니다. 그가 2008년 트빌리시 호텔 로비에서 외쳤던 말도 아직 제 귀에 남아 있어요. 남들은 몰라도 대한민국은 그러면 안 됩니다. 그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두 나라의 역사를 바꾸었어요. 이름을 지켜준 나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조지아 국민들에게 그 이름은
51:46 단순한 국가명이 아닙니다. 가장 외로웠던 순간에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은 형제의 이름이에요. 그리고 이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은 다음 세대의 책임입니다. 과거에 의리를 자랑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돼요. 오늘도 힘없는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받은 신뢰를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조지아 공항에서 들리는이 말이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의 약속으로 남을 수 있어요. 웰컴홈 브라더.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형제여, 이것이 세계가 외면한 작은 나라의 이름을 불러준 대한민국과 그 은혜를 오랫동안 기억한 조지아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52:33 돈이 많은 나라입니까?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른 피해자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나라입니까?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겼다면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을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과 조지아의 특별한 인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지금까지 해외 감동사연이었습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