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ep.03] 1,200년 전 아라비아인이 본 신라인의 모습은? | 고대 아랍 문헌에 기록된 한국인의 ‘웃긴 해석’

Brief Summary

The video discusses the historical connections between Silla, an ancient kingdom in Korea, and Persia, highlighting artifacts and records that signify cultural exchanges. Key points include the discovery of Persian relics in Gyeongju, a notable mention of Silla's portrayal in Western literature, and evidence of direct human exchanges between these ancient civilizations.

  • Cultural exchanges are evidenced by Persian artifacts found in Gyeongju.
  • Ancient texts describe Silla as a prosperous and beautiful land.

Artifacts and Cultural Exchanges between Silla and Persia

The chapter begins by questioning how the traces of Silla might remain in Persia. It notes that records, particularly artifacts, indicate cultural connections. Clear references are made to Gyeongju, where Persian relics, dating back to the 5th century, were discovered. These relics affirm the cultural exchanges between Europe, Persia, and Silla, prior to the fall of the Persian Empire.

In Gyeongju's Hwangnam-dong, artifacts such as a glass bead with a face etched inside are shown to match designs from Southwest Asia, suggesting a transfer of ideas and products. More items include glass vessels from Hwangnam Daechong tombs that align closely with Persian production techniques, indicating a strong trade relationship despite historical records lacking direct references.

Proof of Engagement through Artifacts

The analysis of Gyeongju's burial sites offers insight into trade and interactions. Researchers theorize that Silla's glass production relied on imports from Persia, connecting the two regions much earlier than previously understood. The chapter discusses the confirmation of certain tombs in Gyeongju, including the royal tomb attributed to King Wonseong, based on various artifact styles.

There are further references to human depictions found at these sites, illustrating that western individuals served as models. This suggests that Silla may have engaged in direct interactions with people from beyond their borders, influenced by the cultures they encountered.

Descriptions of Silla in Historical Texts

The narrative shifts to historical accounts from the 9th and 13th centuries, highlighting how Silla was depicted as a desirable land with riches and beauty, including fair-skinned residents. Accounts describe how Islamic traders were attracted to Silla, and reference Silla's wealth in gold. These perceptions of Silla as an idyllic place illustrate the cultural fascination with Korea.

The chapter also flags an influential figure, Zakariya Qazwini, who provided later accounts of Silla's landscape and populace during the Mongol dominion. He echoed similar sentiments of prosperity and beauty, reinforcing Silla's legendary status as an exotic realm within the known world.

Conclusions on Cultural Interactions

The concluding chapter posits that there were indeed interactions between Silla and the Middle Eastern realms. Although the evidence from texts and artifacts implies a degree of cultural engagemen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the exact nature and extent of these exchanges before the 7th century remain uncertain. This ambiguity stems from the fact that many Eastern contacts thrived within China, complicating direct connections with Silla.

Ultimately, the findings underscore the rich historical tapestry of Asian civilizations and the complexities of trade and cultural trans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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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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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그쪽에는 우리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을까요? 문자 기록이 있어요. 그곳 주민들은 피부가 희다. 이런 말을 해 [음악] 놨어요. 신라는 중국 맨 끝에 있는 매우 유쾌한 나라이다.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고 땅이 비혹하고 병을 볼 수 없는 곳이다. 페르시아 시대의 유물이 지금 경주에 남아 있는데요. 사진으로 보시는 이겁니다.이 페르시아 유물이 경주에서 나온 거예요. 어디서 나왔냐면 경주 황남동에 미추왕릉이 있는데이 지역에 14호분이라고 하는 고분이

0:46 있습니다.이 고분에서 1973년에 출토가 됐는데 언제 거라고 지금 보느냐면 5세기에 3, 4분기. 그러니까 5세기에 3쿼터 451년부터 475년까지. 그러니까 아직 페르시아가 멸망하기 전이에요. 그리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입니다.이 유물이 유럽과 옛날 페르시아 지역, 지금이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거는 명백하게 문화교류가 있었다라고 보는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1:33 그러니까 사산조 페르시아의 물건인 신라까지 왔다. 물건만 왔을까요? 택배로 소포로 아니겠죠. 이걸 들고 왔겠죠. 교역을 한 겁니다.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물건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또 있어요. 경주 황남동에서 출토된 상감 유리 구슬이 있습니다. 여러 개의 유리를 묶어서 목걸리 형태를 만들어 놓은 건데요. 그 가운데 저 중앙에 있는 좀 더 큰 유리 구슬이 있어요. 약간 청색 녹색으로 보이는 저걸 확대해서 보면 사람 얼굴이 그 안에 상감이 돼 있습니다. 사람 얼굴이

2:21 새겨져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형태의 유리 구슬은 지중에 연한 서남아시아 여기서 출토되는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이것도 문화교류가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죠. 또 경주에서 유리로 만든 병, 잔토가 되는데요. 황남대에서 황남대총은 남쪽분, 북쪽분, 그래서 남분 북분 두 개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황남대총 남쪽에 있는 곳분 남분된 유리병과 잔들이 있습니다. 또 북분에서 발견된 유리잔이 있는데요.이

3:06 이 유리의 질과 그릇의 형패, 색깔 이런 걸 보면 전부 서남아시아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특히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저 유리자는 두 가지 설이 있어요.로만 로만 글라스라고 하는 그러면 이제 유럽에서 만든 거고 페르시아에서 만든 커트 글라스라고 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두 번째 견해가 좀 더 다수설린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의 유리가 신라에 왔다. 이런 이야기죠.이 이 유리는 아주 재밌는 유물이에요.

3:51 저는 평소 이런 가설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릇을 만든다라고 했을 때 고대 문명마다 이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경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을 담아도 그릇이 녹아내리지 않고 물을 담아도 물이 스며들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서도 아름다움까지 함께 갖춘 이런 그릇을 만들려고 하는데 대체로 유럽과이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유리로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닐까? 반면에 중국에서는 도자기로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유럽이나이 서남아시아

4:38 쪽에서는 도자기가 아주 늦게 만들어집니다. 중국에서는 도자기에 비해서 유리의 발달이 늦어요. 그만큼 도자기가 압도적으로 먼저 발달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릇 만들기 경쟁에서 유리의 길과 도자기의 길 두 개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신라는 그 당시에 유리를 자체 생산하기보다는 외국에서 수입을 해 왔는데 수입처가 페르시아였다는 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페르시아와 우리나라의 교류가 일찍부터 시작됐다. 이건

5:24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유물도 있어요. 신라에 가면 옛날에는 괴릉이라고 불렀는데 괴릉이라고 부른 것은 신라의 왕릉은 맞는데 어떤 왕의 능인지 모르겠다 해서 괴릉이라고 불렀고 괴릉의 주인공을 신라의 문무왕이다라는 설과 원성왕이다라는 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무왕릉은 해중능으로 있고 괴릉은 원성왕릉이야 거의 확정을 하게 돼서 2011년부터 경주 괴릉을 경주 원성왕릉 이렇게 확정해서 이름을 고치게 됐는데요. 여기 보면 왕릉 앞에 있는 문인석

6:11 무인석 가운데 무인석이 이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자, 얼굴을 자세히 보시면 우리나라 사람 당연이 아니고 동양계가 아니에요. 그래서 뭔가 서역인이라고 했었는데 그 서역인이라고 하는게 어딜까? 어, 이때는 이미 페르시아는 멸망했을 때니까 페르시아의 쥐를 이은 다음 시대의 그 지역 사람들 아마 대식국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그런 사람을 모델로 해서 무인석을 만든 거죠. 신라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안 보고 만들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6:57 신라에 온 거예요. 그 사람을 보고 무인석으로 표현을 해 놓은 겁니다. 이렇게 신라에는 페르시아와 그 뒤를 이은 왕조의 흔적이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쪽에는 우리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을까요? 유물은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거보다 더 강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문자 기록이 있어요. 자, 그 지역에 이분 쿠루다드비라는 사람이이 직업은 우편 배달부라고 하는데요. 여러 도로와 여러 왕국의 안내라고 하는 책을 남깁니다. 석기 846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7:43 있는데요. 여기 이런 구절이 있어요. 중국 맨끝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금이 많이 난다. 이슬람 교도들이 그 나라에 상륙하면 그 아름다움에 끌려 연구히 정착하고 떠나려 하지 않는다. 동쪽 끝에 있는 이상향처럼 묘사돼 있죠. 금이 많이 나고 아름답고 그래서 한번 정착하면 떠나려 하지 않는 나라 이런 나라로 묘사가 돼 있는 거예요. 슬라이만이라고 하는 무역상이 중국과 인도 안내에서라고 하는 책을 쓰는데 요건 언제 썼는지는 모르고 석기 931년 이전에 썼다고만 추정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중국의 해안에

8:30 신라라는 섬이 있다. 신라가 섬이에요.이 책에서는. 그곳 주민들은 피부가 희다. 그들은 중국 황제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늘이 그들에게 비를 내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아마 이거는 신라가 당해 보내는 조공을 그 의미하는게 아닌가 하는데요. 자, 어쨌건 우리 동료 가운데 아무도 그곳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소식을들을 수는 없다. 그들은 또 흰 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매가 하얀매 어 뭔가 그 신령스런운 그런 동물 같은 느낌이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자카리아 카즈윈이라고 하는

9:17 사람.이 사람은 상당히 뒷이에요. 13세기. 그리고 주로 어 몽골이 그 지역을 지배하던 시기에 살던 사람입니다. 자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해 놨어요. 신라는 중국 맨 끝에 있는 매우 육쾌한 나이다.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고 땅이 비혹하고 병을 볼 수 없는 곳이다. 살기가 좋아서 그 주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고 가장 건강하다. 이곳에는 이로운 것들이 많고 금이 풍부하다. 금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은데 왜 이런 소문이 났을까요? 어쨌건 중요한 것은 서남아시아 지역의

10:05 사람들이 신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게 중요하죠. 물론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 섬이라든지 금이 많이 난다든지 병이 발을 못 붙인다든지 다 잘생겼다든지 뭔가 환상이죠. 이런 환상을 갖게 하는 어떤 신비한 나라. 이런 식으로 신라가 묘사가 돼 있는 거예요. 우리한테는 유물이 있고 저쪽에는 기록이 있다.이 두 개를 종합하면 둘이 통했네. 둘이 왕내했네, 친하게 지냈네. 뭐이 정도 생각을 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이런 현상을

10:50 정리해서 어 지금 어 대전대에 있는 이한상 교수가 어 결론을 내렸는데 저도 동의가 돼서 여기에 옮겨 보겠습니다. 아랍의 문헌에 신라와 아랍 간의 교섭 기록이 보이는 것은 적어도 통일신라 시대는 양지역간의 직접적인 인적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보다 앞선 5세기부터 6세기 무덤에서 출토되는 일부 서역산 또는 서역계 문물의 존재를 해석하면서 그러니까 경주 고분에서 나오는 그런 여러 가지 유물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걸 해석할 때 인적 교류의

11:37 소산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시 얘기해서 경주에서 나오는 유물을 가지고 직접 사람들이 왔다라고 보기에는 아직 미심적은 데가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중국에 아랍 지역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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