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조선의 실세가 된 홍국영! 권력을 향한 잘못된 욕망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된 홍국영의 몰락 | #벌거벗은한국사 홍국영편

사피엔스 스튜디오 www.youtube.com

خلاصه مختصر

این ویدیو به بررسی زندگی و سقوط هونگ گوک یونگ، دست راست مورد اعتماد پادشاه جونگجو می‌پردازد. هونگ گوک یونگ در به قدرت رسیدن جونگجو نقش مهمی داشت و به پاس این خدمات، از قدرت و نفوذ زیادی برخوردار شد. با این حال، جاه‌طلبی‌های او حد و مرزی نداشت و در نهایت، رفتارهایش باعث شد که مورد غضب پادشاه قرار گیرد و به عنوان خائن شناخته شود.

  • نقش حیاتی هونگ گوک یونگ در به سلطنت رسیدن پادشاه جونگجو
  • افزایش قدرت و نفوذ هونگ گوک یونگ و رفتارهای متکبرانه او
  • تلاش هونگ گوک یونگ برای تبدیل شدن به خویشاوند سلطنتی و جانشین کردن فرزند خواهرش به عنوان پادشاه
  • سقوط هونگ گوک یونگ و تبعید او به دلیل رفتارهای نامناسب و تلاش برای دستکاری در جانشینی سلطنت
  • مرگ هونگ گوک یونگ و اعلام او به عنوان خائن پس از مرگ

راز پنهان در دادخواست منجر به تغییر اوضاع

هونگ گوک یونگ با پنهان شدن در پشت صحنه، به ولیعهد کمک کرد تا نیابت سلطنت را به دست گیرد. پس از مرگ پادشاه یئونگجو، ولیعهد جونگجو به سلطنت رسید.

هونگ گوک یونگ در لبه پرتگاه! رنج بردن از حسادت شدید

پادشاه جونگجو اعلام کرد که هر کسی که قصد آسیب رساندن به هونگ گوک یونگ را داشته باشد، در واقع قصد نابودی بال راست او را دارد. جونگجو به مخالفان هونگ گوک یونگ هشدار داد و به این ترتیب، قدرت و نفوذ هونگ گوک یونگ در دربار افزایش یافت.

پیشرفت سریع! هونگ گوک یونگ، دست راست پادشاه جونگجو شد

پس از سرکوب مخالفان، جونگجو هونگ گوک یونگ را به سمت رئیس دبیرخانه سلطنتی منصوب کرد. جونگجو همچنین هونگ گوک یونگ را به عنوان اولین رئیس کتابخانه سلطنتی منصوب کرد. علاوه بر این، جونگجو هونگ گوک یونگ را به عنوان فرمانده گارد سلطنتی منصوب کرد. در سال 1777، زمانی که تلاش برای ترور جونگجو صورت گرفت، هونگ گوک یونگ با موفقیت از جان پادشاه محافظت کرد. جونگجو برای محافظت از خود، یک واحد گارد ویژه به نام سوگی سو ایجاد کرد و هونگ گوک یونگ را به عنوان فرمانده آن منصوب کرد.

شوک! رفتارهایی که پس از به دست گرفتن قدرت در پشت در نشان داد؟

هونگ گوک یونگ با در دست گرفتن قدرت، رفتارهای متکبرانه‌ای از خود نشان داد. او در دفتر خود در سوگی سو، با پاهای برهنه روی تخت می‌نشست و مقامات عالی رتبه را به این شکل ملاقات می‌کرد. درب سوگی سو همیشه مملو از مقامات دولتی بود که برای جلب رضایت هونگ گوک یونگ تلاش می‌کردند.

شروع به رویای قدرت ابدی کرد

هونگ گوک یونگ علاوه بر رفتارهای متکبرانه، با زنان دربار نیز رفتارهای ناشایستی داشت. او حتی پا را فراتر گذاشت و اعلام کرد که هر کس با او مخالفت کند، خائن است. پادشاه جونگجو در برابر این رفتارها سکوت کرد و این سکوت به عنوان تایید و اعتماد پادشاه به هونگ گوک یونگ تلقی شد. هونگ گوک یونگ با حمایت پادشاه، به دنبال رسیدن به جایگاه داماد سلطنتی بود. از آنجایی که پادشاه فرزندی نداشت، هونگ گوک یونگ امیدوار بود که خواهرش، که به عنوان همسر سلطنتی انتخاب شده بود، پسری به دنیا آورد و او را به عنوان پادشاه بعدی معرفی کند. خواهر هونگ گوک یونگ به عنوان همسر سلطنتی انتخاب شد و به بالاترین رتبه در میان همسران سلطنتی ارتقا یافت، عنوانی که معمولاً به همسرانی داده می‌شد که پسر به دنیا آورده بودند. او نام "وونبین" را برای خواهرش انتخاب کرد، نامی که فقط پادشاه و ملکه می‌توانستند از آن استفاده کنند. پادشاه جونگجو این اقدام غیرمعمول را پذیرفت.

آرزوهای اشتباه! سرپیچی از قانون و پیشروی با خشونت

پس از اینکه خواهر هونگ گوک یونگ به عنوان همسر سلطنتی انتخاب شد، او رفتارهای بی‌ادبانه‌ای نسبت به ملکه از خود نشان داد. پادشاه جونگجو همچنان سکوت کرد، اما این بار به نظر می‌رسید که او در حال تحمل است. با این حال، خواهر هونگ گوک یونگ یک سال بعد بدون هیچ فرزندی درگذشت. هونگ گوک یونگ از مرگ خواهرش بسیار ناراحت شد و شروع به سرزنش ملکه کرد. او حتی خدمتکاران دربار را شکنجه کرد تا اعتراف کنند که ملکه در مرگ خواهرش دست داشته است. این رفتارها از نظر پادشاه و دربار سلطنتی، عبور از خط قرمز بود. هونگ گوک یونگ که هنوز به دنبال تبدیل شدن به خویشاوند سلطنتی بود، تلاش کرد تا پسری را به عنوان فرزند خوانده بین پادشاه جونگجو و خواهر مرحومش معرفی کند. او پسر شاهزاده ایونئون، برادر ناتنی پادشاه جونگجو را به عنوان پسر خوانده انتخاب کرد و نام "وانپونگ گون" را برای او برگزید. هونگ گوک یونگ با این کار، قصد داشت نام خاندان خود را در کنار خاندان سلطنتی قرار دهد و قدرت خود را تثبیت کند.

تصمیم نهایی! تصمیمی که پادشاه جونگجو گرفت؟

هونگ گوک یونگ از پادشاه جونگجو خواست که از سمت خود استعفا دهد. پادشاه جونگجو با این درخواست موافقت کرد و هونگ گوک یونگ را از دربار اخراج کرد. هونگ گوک یونگ پس از 4 سال قدرت، تمام قدرت خود را از دست داد و از پایتخت تبعید شد. او در سال 1781 در سن 34 سالگی در تبعید درگذشت. پنج سال پس از مرگ هونگ گوک یونگ، در سال 1786، او به عنوان خائن معرفی شد. این اتفاق پس از مرگ پسر اول پادشاه جونگجو رخ داد. ملکه جئونگسون، مادربزرگ پادشاه جونگجو، اعلام کرد که هونگ گوک یونگ در مرگ پسر پادشاه دست داشته است. ملکه جئونگسون که از رفتارهای متکبرانه هونگ گوک یونگ ناراضی بود، از مرگ پسر پادشاه به عنوان بهانه‌ای برای مجازات هونگ گوک یونگ استفاده کرد. هونگ گوک یونگ به دلیل جاه‌طلبی‌های بیش از حد و سوء استفاده از قدرت، سقوط کر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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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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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음악] 홈 구경이 정민 씨에게 부탁하여 상소할 사람을 찾도록 했고 정민 씨는 은밀히 서명선에게 급히 상소하도록 하였다 [음악] 홍국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조의 대리청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거죠 [음악] 진짜 든든한 사람이네요 자 우여곡절 끝에 대리청정을 시작하게 된 세손 정조 어 그런데 약 3달 뒤 경석의 누운 영조가 세상을 떠납니다

0:51 영주가 담긴 유연 옥새를 왕세손에게 전하라 [음악] 11살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살얼음판과도 같았던 후계자 시절을 격과했던 세손 정족 드디어 조선의 왕으로 즉위하게 된 겁니다 결국 정조가 이게 무사히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일등공신 누구냐 [음악]

1:37 홍구경을 장애하려는 흉계를 하는 사람은 곧 우익을 제거해 버리라는 흉신이 있는 것이다 즉 홍구경을 해치려는 흉년은 나의 옳은 날개를 제거하려는 흉신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죠 이날 정조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아직도 좋은 지경에 있기 때문에 감히 이런 짓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정조는요 거기는 것 정호겸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2:24 제가 원하던게 이런 스토리입니다 깔끔하죠 지금이 순간 최고 시청률이 잠깐 나온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권선징악 근데 이로써 홍구경의 그런 위치나 신임은 그 나라 안에서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정조에게 있어 자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신자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당분간은 홍보경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3:10 정조의 충신 홍보경에게 앞으로 감히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했겠죠 자 그렇게 홍인영과 정호겸을 사상 바로 다음날인 1776년 7월 6일 정조는 홍보경이이 자리를 또 바뀝니다 승정원 도승지 요즘으로 치면요 대통령 비서실에 비서 실장으로 승진한 겁니다

3:55 6명 중에 1등이네요 자 그런데요 정조가 홍구경이 맡긴 직책은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 정조가 인제양성을 위해 세웠던 곳 휴장과 직재학 [음악] 와 정조와 직위하는 9월에 규장각을 설립한 뒤 최초의 직지학 자리를 홍두경에게 떡하니 맡긴 겁니다 두 직책을 다 준거에요 11월에는요 분권까지 넘겨줍니다

4:41 네 조선의 주간 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수호천의 으뜸 벼슬 수어사를 맡긴 겁니다 여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오 자 이제는요 [음악] 궁궐을 수비하고 수도를 방어하는 금이형의 대장증마저 홍보경이 맡깁니다 세손 때부터 여러 위협에 시달렸던 정조는요 그 누구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조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맙니다 1777년

5:28 7월 28일 늦은 밤 여느 때처럼 촛불에 의지에 책을 읽고 있던 정조는요 지붕 위를 오가는 발소리를 듣게 됩니다 큰 소리로 포위군을 부릅니다 자 이때 궁궐의 경비 책임자 금이 대장 누구 홍국영 홍국영 홍국영 병사를 이끌고요 근데 범인은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뒤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정적들을 제거한 뒤에도 끊이질 않는이 위협 이때 정조는 또

6:14 어떤 방법을 찾았을까요 바로 홍구경이 또 하나의 직책을 맡깁니다 바로 이겁니다 수기 대상 궁궐 내에서 숙직하면서 정조를 지키는 경호부대 수기소를 새로 설치합니다 자이 수기소를 지휘하는 수기 대장으로 홍보경을 임명한 겁니다 [음악] 비서실장 홍국영 이젠 또 뭐가 된 거죠

7:00 경호실장 자 이렇게 수비대장이 된 홍구경은요 궁궐 경비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정조의 안전을 지키는 것 이거 부족하다고 판단합니다 수기소가 생긴 이후에 궁궐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수기소에 있는 홍구경의 검문을 거쳐야만 정족 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홍국영이 문고리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거죠 자 그렇게 문무관을 넘나들며 나라의 주요 관직을 꿰차게 된 30살에 홍구경 범위를 부르고 대답하는 것이 마치 사사집과 같았고

7:45 방안에는 늘 다리가 높은 평상을 두고 맨발로 다리를 뻗고 앉았다 궁궐 안에 있는 수기소는 왕인 정조가 거처하는 것과 고작 다만으로 막혀 있을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 방안에서 홍구경은 늘 맨발로 다리 쭉 뻗고 교만한 자세로 고관대작들을 맞이했다는 겁니다 이러니 홍국의 위세가 어땠을까요 말 다 했죠 수기소문은요 홍구경이 아부하기 위한 벼슬아치들로 늘 문정선씨를 이뤘다고 합니다

8:32 [음악] 기고만장한이 홍국의 행동은요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음악] 직녀들을 데려다가 온갖 어지럽고 더러운 짓을 일섭다는 겁니다 진짜요 그런 일이 있나요 궁녀는 누구의 여자입니까 [음악]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런 말까지 있었습니다 홍국영과 갈라서는 자는 역적이다 자 그렇다면 이때

9:18 정조이 상황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요 정조는 홍국영의 모든 행동에 침묵으로 일어납니다 침묵 이 정조의 침묵은 홍구경과 조정실로 모두에게 홍보경을 향한 여전한 정조의 총회와 신뢰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왕의 전폭적인 신뢰와지지 아래 이제 홍구경은 또 다른 자리까지 욕심을냅니다 어떤 자리 바로

10:06 창조의 사돈 [박수] 항상 나와요 [음악] 왕실에 외척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아 그리고 그 정조와 자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혹시 아들이 태어난다는 자신의 핏줄을 이은 조카가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꿈이 엄청 크네요 그런데 놀랍게도요 상황은 홍보경에게 무리하게 돌아갑니다

10:51 당시 정조는요 정신을 부인이었던 효의 왕과 혼이든지 15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어요 자 이게 정조의 나이가 27살 그렇게 마음이 조급해진 왕실에서 왕의 후사를 입기 위해 이제라도 무엇을 드리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후궁 후궁 그렇죠 후궁을 드리자고 했던 거예요 그리고 이때 간택된 후궁은 누구였을까요 홍국영의 여동생 맞습니다 홍구경해 하나뿐인 여동생이었습니다

11:37 [음악]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간택된 홍구경의 여동생이 유례없는 대우를 받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뭐야 [음악] 하자마자 [음악] 후궁 최고 품게 오른 겁니다 자 빙의 어떤 풍기입니까 정일품이에요 정일품이 정일품인 비는요 보통 왕자를 낳은 후궁들에게 내려지는 풍기입니다 [음악]

12:22 긴 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 누구입니까 근데 그걸 한번에 임신도 안 했는데 왜 그래요 [음악] 자 이거 홍고개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냥 빡 느껴보시죠 하지만 [음악] 파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홍국영 여동생의 후궁 간택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바로

13:11 원빈 이름이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원이 으뜸원이거든요 제가 장예원이어서 [음악] 쓰고 있는 그 원 이 으뜸 원자는요 조선의 왕과 왕비만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홍보경이 여동생에게 원 원빈이라는 이름이 내려진 겁니다 그 이유는 뭐였을까요 바로

13:57 홍국영이 으뜸 원자를 써서 원빈이라는 이름을 짓고 정조에게 올렸던 겁니다 [음악] 정조가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요 정조는 [음악] 허락합니다 [음악] 이런 황당한 파격이 가능했던 이유 그건 바로 실세 홍보경의 입김과 그런 홍보경을 향한 정조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자 이렇게 왕의 사돈이 된 홍국영 자 이후 홍보경의 행동은요 왕실에 어마어마한

14:45 폭풍을 몰고 옵니다 그 누이가 빈이 되고서는 더욱 방자하고 무도하여 곤전의 허물을 지적하여 함부로 몰고 협박한 것이 그지 없었으나 그 아이를 못 가졌다는 그 중전 자 이런 태도를 본 청주 어떻게 했을까요 보시죠 역시

15:30 침묵으로 일관한 겁니다 [음악] 답답해 침묵할수록 위상이 높아지는 거잖아요 홍구경의 위상이 근데 여러분들이 기록 좀 자세히 한번 보시죠네 임금이 참고 말하지 않았 자 그러니까요 지금까지 묵인과는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단 참았다는 것은요 결국 한국인의 태도가 정조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거다 시작한 건 아닐까요 자 그런데요 조카로워야금 왕위를 있게 하겠다는

16:17 홍구경의 꿈은 불과 1년 만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미 세상 을 떠나셨어 1779년 5월 한국에게 여동생 원빈 홍씨가 조사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겁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32살의 하나뿐인 여동생의 죽음 앞에서

17:02 망연자실합니다 이때 슬픔에 잠긴 홍구경은요 여동생의 죽음을 두고 누군가를 향해 폭주합니다 그 누군가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자 다음은 심방이 제 누이가 죽은 것을 감히 곤전에게 의심해 내전 나인 여럿을

17:49 잡아다 칼을 빼내고 무수히 치며 혹독한 고문을 하였다 중전 때문에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거네요 지금 저 글을 보면 약간 지금 이성을 좀 잃은듯한 느낌인데요 자 그런데 이건 정조와 왕실의 입장에선 선을 넘어도 제대로 넘는 행동이었습니다 감히 하나씩 하나가 조선의 왕비를 능멸한다

18:37 자 정조 이번엔 어떻게 쓸까요 이젠 안 참을 것 같아요 이제는 참을 수 없어요 청주는 죽임과 관련된 문제니까 인간적인 실수라고 생각하고 정조는 어떻게든 홍구경을 이해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너무 슬프니까 그런데요 홍구경은요 또 한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입니다

19:24 왕의 외척이 되겠다는 홍구 격의 야망이 아직 꺾이지 않았던 겁니다 왕실에서는 또 다른 후궁을 찾아보려고 할 거 아닙니까 그죠 이때 마음이 급해진 홍구경이 꼼수를 부린 거예요 정조와 죽은 원빈 홍씨 사이에 양자를 드리려고 한 겁니다 이거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런 행동이죠 그런데 사실 당시 조선에서는요 자식 없이 죽을 경우에는요 제사를 지내줄 양자를 사후에들은 일은 많이 있었습니다

20:12 근데 문제는 문제는 이거는 지금 왕실의 입양 문제를 왕실의 인원도 아닌 홍구경이 개입해서 진행했다는 거죠 자 양자를 드릴 때는요 왕실의 가장인 정조뿐 아니라 정실 부인인 왕비와 왕실에 큰 어른인 대비에 동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홍구경은이 모든 걸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했던 겁니다 자 그렇다면 홍구병이 택한 정조의 양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러니까 어디서 오신 분이에요 어디서 왔지 바로 사도세자의 아들 아들이자 정조의

20:58 이복동생인 은원군의 아들 이담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단 왕실 혈통에서 항렬상 정조의 아들 학렬인 조카 중에서 골라야 됐거든요 그래서 홍구경은 정조의 조카 이담을 정조의 양자로 선택했던 겁니다 자 그리고 만약 이담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홍구병은 이담을 자신의 세대로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죠 자 그리고 홍국이군요 정조가 더 이상 아들을 얻을 수 없도록 새로운 허공을 드리는 것까지

21:45 막습니다 자 그렇게 제멋대로 정조의 양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이 홍구경 자신의 야심을 담아 은원군의 아들 이담에게 이런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보시죠 완풍군 홍구경이 이다음에게 지은 이름 속엔 무시무시한 홍보경에 야망이 자 완은요 왕의 본관인 전주의 옛 이름

22:32 완산 그리고 풍 풍은 자신의 본관인 풍산홍씨 풍에서 따온 말입니다 즉 전주 이씨 왕가의 핏줄에 은근슬쩍 자신의 집안인 풍산 홍씨를 끼워 넣은 겁니다 즉 임금의 가문과 홍구경 가문의 결합을 뜻하는 이름 이게 바로 완풍군 정조의 양자를 통해 꿈꾼게 바로 이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허구경이 은밀히 나라의 근본을 옮기려는

23:18 계책이었다 그러면은 역적인데요 아 그렇죠 영모를 껴안고 있는 건데 지금 결국 홍구경의 궁극적 목표는 양자인 완풍군을 앞세워 세도정치를 펼치겠다는 거였죠 세도정치 홍도 승지가 스스로 사직을 청하였네 그 아이는 그를 봉조화를 사마귀로 하고 그의 사진을 윤하도록 하겠네 정조에게 사직하겠다고 먼저 말한 겁니다

24:15 지금까지 얘기 됐듯이 지금 홍구병은 스스로 문어를 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정조가 미리 불러서 사직 하라고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이 가능성이 좀 클 거 같아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좀 생각을 해주는 건가 보네요 이렇게 홍국영은 그 권력을 잡은지 불과 4년여 만에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군 밖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조가 홍국영에게 내린 명령 다시는 도성을 들어올 수

25:01 그렇게 한양에서 추방되어이 강원도 횡성을 거쳐 강릉까지 본국이 쫓겨납니다 결국 1781년 34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유배지 강릉에서 병사합니다 홍구경의 사후 5년 뒤인 1786년 죽은 홍구경에게 또 한 번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홍구경을 역적으로 칭한다는 겁니다 죽었는데 이미 그렇죠

25:47 죽은 홍구경이 왜 갑자기 역적이 되었을까요 정조의 첫 아들 모녀 세자가 짝스럽게 죽게 되거든요 그런데 왕실에 큰 어른이자 정조의 새 할머니였던 정순왕후가 무효 세자의 죽음에 홍보경과 관련된 사람이 개입돼 있다고 선포한 겁니다 바로 궁궐 내 남아있는 국녀라든가 4시 같은 홍국의 끝나풀을 망한 거죠 예전부터 왕실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조정은 쥐고 흔든 홍구경이 정순남은 언짢았던 거예요 그 오만방자였던 행동을 잊지 않고

26:34 있다가 무효세자의 죽음을 빌미로 죽은 홍구병을 역적으로 규정한 겁니다 감당하지 못할 권력을 쥐고 과욕을 부린 결과 스스로 몰락하고 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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