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5일 주일 예배 | 믿음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 (창세기 4장 9-26절) | 김효남 목사”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1 다 같이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4장 9절에서 22절까지 말씀입니다. 창세기 4장 9절에서 22절입니다. 24절이 어 24절 끝까지 보겠습니다. 제가 조금 착각을 했네요. 마지막 26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9절에서 26절입니다.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이가
0:46 알지 못하나이다. 지키는 자니까 이시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그 입을려손으로 아우의 피를은즉 가에서 저주를 받으리니가을 갈아도 땅이는 그력을게지 아니할 것이요너는 땅에서 피하며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호께 아르되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 주께서이 지에서 나를쫓아내온즉 가주의을 지하리니가에서 피하며는지라를는죽이겠나이다께서
1:31 그에게이 그렇지 아니하다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 앞에서 떠나서 아침임여을낳은지라인을 그 아들의 이성을 이하여라 이을낳고 이은 무야를 무야은 무드사를낳고 무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슬라였더라 아는 야바를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
2:18 이은니는니 그는구리로 가지를 드는 자여 두발인의 인는라 아들에게 이르 아다와 신라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일진데 아이기 아침 그 아들을낳을라니이는 하나님이게인이 아벨씨를 아들을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 사람들이 비로소
3:04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멘 다같이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습니다. 제가 그 여러분들께 드렸던 그 말씀 가운데 오늘 저희가 주보에 적었던 그 주보의 제목이 조금 수정을 해야 될 거 같아요. 제가 이제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에게 설교 제목을 이제 알려 드리면서 또 그것을 보충하는 과정에서 제목을 좀 바꿨습니다. 뭐 가인에 대한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제가 설교를 다 하고 나서 또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서 보다 보니까 설교의
3:49 제목이 믿음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라고 하는게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여러분 아시다시피 뭐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부족한 사람이지만 어쨌든 성경이 가르치는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 연구를 해 왔고 또 지금도 관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잖아요. 그런 시각에서 보다 보니까 오늘이 본문 속에서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아주 치명적인 부분이 발견이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믿음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라고 그렇게에 정해 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계속해서 창세기 초반부를 하고 있는데요. 물론 1장에서 인간이 만들어지고 2장에서 본격적으로 아담과
4:35 하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아 그러면서부터 지금 4장까지 총 다섯 명의 사람이에 등장하게 됩니다. 뭐 두 사람은 우리가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고요. 나머지는 이제 그들의 자녀들이죠. 어 가인과 아벨과 셋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창세기 지금까지를 보면 아주 초반부이긴 하지만 사람의 처음 시작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가만히 보면은 우리 인간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이 그려져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긍정적인 인간이었죠. 그러나 그 인간이에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타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속에서 포커스가 인간의
5:20 죄악됨과 인간의 무지함으로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여러 가지로 주어지는데요. 그중에도 여러분 보시면 다섯 명의 사람들 중에 지금 가장 많은 포커스를 받는 사람이 누굴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어 조금 그것이 좀 잘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 한번 보시면 가장 많은 분량이 할당된 사람이 어떻게 보면 가인이에요. 2장부터 사람에 대한 내용이 자꾸 나오잖아요. 뭐 2장에도 보면 아담에 대한 내용도 나오지만 그 아담에 대한 내용이 사실은 아담이 뭐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하고 뭐 그런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냥 아담에 대해서 그냥 기술하는 그건 아담의 포커스가 있는게 아니라 사람을 처음 만들었던 아름다운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이 설명을 해 주는 거죠. 그다음에 직접적으로 아담과의 대화가 나오고
6:06 하는 장면들은 뭐냐면 3장 2장에도 이제 아담이 짐승들의 이름을 짓고 하는 잠깐 나오고요. 그다음에 하와가 하나님 만들어 주셨을 때뭐 뼈 중에 뼈이고 살 중에 살이다.요 한 마디 잠깐 나오고요. 바로 3장으로 넘어가면서 포커스가 어디로 옮겨지게 되냐면은 하와로 옮겨져요. 그리고 하와가 범죄하는 장면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이 어떻게 범죄했는가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세요. 그래서 하와이 된 내용이 쭉 많이 나오고요. 그다음에 이제 4장에 가면은 가인과 아벨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믿음의 사람인 아벨에 대한 내용은 또 거의 없어요. 그냥 죽은 얘기밖에 없어요. 제사 지내고 죽었다는. 그다음에 주로 대화하고 말하고 하는 스토리의 중심은
6:52 가인에게 가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특별히 어떻게 보면 가장 심각한 죄 뭐 하나님 앞에서도 죄악이지만 또 특별히 아담과 하와는 특별한 인간이잖아요.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인간인데 생육법으로 태어난 우리와 같은 존재로서 태어난 세 명의 자녀 중에 가인과 아벨과 셋 중에 거의 포커스가 가인에게 맞춰져 있고 그의 어떤 그 실수와 죄악된 모습에 갖춰져 있다라는 것은 오늘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가인일까? 가장 보편적인 사람들의
7:37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리고 가인이 가진 믿음에 아주 치명적인 오해가 있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들 속에는 치명적인 오해가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의 차이점 공통점 있고 차이점이 있어요. 공통점은 다 죄를 범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성경에 명확하게 규정을 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전체적인 그 창세기의 내용이나 뒤에 나오는 신약의 내용을 보면은 아담과 하와는 회개를 하고 영적으로 보면 구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훨씬 커 보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렇지가 않아요. 가인은
8:24 가인도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4장에 내용 나온 내용과 다른 신약에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은 가인은 하나님께 영적으로 버림을 받은 사람으로 보입니다.이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것이죠. 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죠. 아담은 회개를 했고 가인은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가인은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라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면서 가인의 믿음에 대해서 보겠는데요. 세 가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인은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정확하지 못했어요. 옳지 않았어요. 두 번째는 가인은 참된 예배를
9:12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교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가인은 위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땅의 것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란 무지고요. 두 번째는 예배에 참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교재가 없었기 때문이고요. 세 번째는 땅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요 세 가지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로 가인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가인이 하나님을 믿었을까요, 안 믿었을까요? 생각해 보셨어요? 근데 사실 이거는 생각해 볼 것도 없어요. 4장을 보시면 가인은 하나님을 당연히 믿었습니다.
9:59 오늘 대부분의 성도들이 의미하는 그 믿음을 가졌어요. 왜 믿었?이 믿음은 뭐냐면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걸 믿는 거죠.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단 말입니다. 가인은 확실히 믿었어요. 여러분 4장에 보면 가인이 하나님과 대화를 한단 말이에요. 어 하나님 뭐 하나님이 가인에게 묻습니다. 야네 아우 너 어떻게 했냐? 어디냐? 그러니까 아유 걔를 왜 저한테 찾으세요? 제가 뭐 걔를 뭐 어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다음에 가인이 살인 죄하는 것이 들통나서 하나님께 벌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 뭐 요구도 하고요. 하나님과 대화를 했어요. 그니까 가인은요. 오늘 우리 시대의 대부분이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방식의 믿음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다라는 것을 믿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10:46 꽤나 크다는 것도 믿은 것 같아요. 왠지 막 두려워하고요. 그죠? 아버지 엄마한테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왜 내가 지금 땅을 이렇게 힘들게 갈아야 되는지 왜 이렇게 그냥 고생을 해야 되는지 아버지가 야, 안 그럴 때도 있었다 야, 옛날에 내가 에덴에 살 때는 되게 좋았어. 어, 그러면서 그럼 어떡하다 이렇게 됐어요? 다 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자기보다 크심과 뭐 창조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히 많은 내용을 가인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너무 신기했어요. 저는 그냥 회개만 했으면 됐을 텐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더라도 하나님 제가 죄송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회개합니다. 살려
11:32 주세요. 그러면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안 살려 주시는 하나님입니까? 아니죠. 우린 알잖아요. 하나님 살려 주세요. 회개하는 자에게 어떤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나의 죄악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을 따라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어떻게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하지 않았을까요? 아담의 우리가 믿는 믿음이라는 거는 단순히 하나님이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이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단순히 하나님이 능력이 꽤나 크냐 아니냐 이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안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단지 지식적인 믿음에 머무르면 그 믿음이 아니에요. 구원얻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12:17 지식이 있어야 될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아야 됩니다.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된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저에게 제가 결혼해서 아내가 있잖아요. 그죠? 저는 제 아내를 알죠. 뭐 20년 넘게 살았으니까 좀 알지 않겠습니까? 근데 아내가 만약에 다쳤어요. 뭐 아니 몸에 좀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때 의사는 이제 아내를 진단하겠죠. 뭐 여기 뭐 엑스레이도 찍고 MRI도 찍고 뭐 피검사도 하고 뭐 온갖 검사를 많이 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제가 모르는 아내에 대한 아내의 그 신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까? 뼈가 뭐 어떻게 엑를 찍었으니까 그런 것도 알고 간수치가 얼만지도 알고 그냥 뭐 어 심박수가
13:04 어떤 건지도 알고 그러니까 저보다도 어떻게 보면 제 아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로 그 의사가 저보다 제 아내를 더 잘 안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더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신체의 물리적인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더 잘 알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 외의 부분들 사람은이 몸으로만 구성된게 아니잖아요. 그 외의 부분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왜?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거나 우리가 교리 시간에 배워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의 일부를 안다거나 뭐 전지 뭐 대단히 능력이 뛰어나다 전지 전능하시다라는 말은 알지만 그 전지
13:51 전능하시다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가 과연 알고 있느냐라는 것이죠. 가인도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이 좋다라는 것은 알았을 거예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도 알았을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하와가 죄를 범하고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 가지고 아 그들이 숨어 버렸잖아요. 그때 하나님은 모든 걸 알고 계셨죠. 그들은 가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모든 내용을 다 알고 계셨단 말이에요. 그 아버지 엄마가 가인에게 그걸 알려 주지 않았겠어요? 당연히 뭐 수도 없이 알려줬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이 하는 행동은 똑같아요. 아버지하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요. 자기가 아벨을 죽여 놓고서 하나님이 아벨이 어디냐라고 물었을 때 너희들이 어디냐라고 물었을 때 숨었을 때 하나님 마치 자기를 찾지 못할
14:37 것처럼 아담과 하와가 했던 것처럼 아벨을 죽인 걸 하나님이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어떻게 합니까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뭐 걔를 지키는 뭐 그런 사람인가요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여러분 가인은 하나님이 전지 전능하다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전지 전능함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야, 이거 진짜 다 아시는구나. 이제 경험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으로 뭐 좀 배워서 알 수 있습니다.여이 중에 다수는 저와 웨스민스터 신앙 고백서를 했거나 아니면 하고 있는 중에 있기 때문에 뭐 대부분은 실론 뭐 이러면은 뭐 줄줄 읊 수 있는 사람들도 있으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15:23 아직까지는 가인의 신앙에 머무를 수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전부가 아니에요. 절대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됩니까? 체험적으로 알아야 되는 것이죠. 이건 여러분 놀랍게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셔야 성령께서 가인의 심령에 역사하셔야 그는 그 전지 전능함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는 가인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을 해요. 당연하죠. 그러니까 하나님께 벌을 받고 하나님을 쫓겨나. 제가 좀 더 말씀을 드릴 거예요. 그는 중생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었을 수 있어요. 그의 엄마는 아담과 하와였고 그의 동생은 믿음 있는 아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09 그에게는 믿음이 없었어요. 어떤 믿음? 구원얻는 믿음이 없었다이 말이에요. 그는 구원얻는 믿음이 아니라 역사적인 신앙,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과 하와 아까 말씀드렸지만 죄졌어요. 그들도 벌 받았어요. 저주 받았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서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반면에 가인은 저주를 받고 나서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오늘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주님 저를 쫓아내시올 것인데 안
16:56 됩니다. 주님 제가 저를 받아 주십시오. 제가 회개하겠으면 요렇게 가야 되는 거예요. 근데 가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내가 주의을 배옵지 못하리니 쫓아내시면 그냥 할 수 없지요. 뭐 얘기해요.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뭐야?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이제 방황하면서 살게 되는데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근데 어쩔 수 없이 저는 받아들여야 되겠네. 이거는 믿음에 좋은게 아니에요. 믿음이 없는 거예요. 잘못된 믿음을 가진 거란 말이에요. 그는 하나님께 돌아갈 마음이 없었어요. 회개할 마음이 없었다고요. 왜 그랬을까요? 다른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회개할 마음이 없었을까요? 아까 경험적인 것이 없다 그랬잖아요. 그것도 맞아요. 그래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
17:41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무한히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믿지 않았어요.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사실은 이걸 몰랐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죠? 가인이 하 내가 이렇게 잘못 지었으면 여러분 마음속에서 사단이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야 그렇게 죄를 지은 네가 어떻게 하나님 하나님이 널 사랑하겠냐? 네가 아무리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도 야 네가 생각해 봐라. 너 같은 용서하겠냐라고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세상에 있는 많은 법들이 윤리들이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우리가 익숙해진 그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가
18:26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을 향해서 떼어놓는 그 사단의 목소리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지금도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을이기는 것이이 예배에서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이기는 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면 돌아갈 수가 없어요. 무식해서가 아니에요. 경험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건 모르는 거예요. 무지한 거예요. 아담과 하와 가인은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 무지했어요. 몰랐어요. 많이 아는 것 같았지만 가장 중요한 걸 몰랐단 말이에요. 왜 오늘 우리는
19:13 죄를 지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습니까?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분이 회개하는 자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가장 큰 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를 여러분 아셔야 돼요. 그것을 알아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전지 전능하심을 나의 것으로 가질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통해서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우리를 대적한단 말이에요. 그러나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있어야 그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쓸 수 있어요. 언제든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20:00 하나님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가인은 왜이 하나님을 몰랐을까요? 이게 중요한 지점이에요. 아니 그렇게 아담과 하와한테 많이 들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도 교회에서 많이 배우고 뭐 여러분 교회 오래 다니다 보면 수도 없이 배우잖아요. 그죠? 다 잊어버려서 그렇지 하여튼 많이 배웁니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 어 제 아내가 옛날 청년부 때에이 썼던 노트를 발견을 했어요. 제 옛날 일기하고이 한꺼번에 이제 보물이 발견이 돼 가지고 그걸 발구를 했어요. 그래서 이제 저는 제 거 읽고 자기는 자기 거 읽고이 서로 이제 그렇게 읽었는데요. 깜짝 놀라는 거예요. 왜냐면은 그 제가 전도사 생활을 했고 아내와 이제 그 다녔던
20:46 그 교회에 돌아가신 목사님이 계신데 그 목사님이 하셨던 강의 노트가 이제 발견이 된 거예요. 그 강의 노트를 보니까 실론이었는지 모자 지금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교리를요.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잘 못 들었어요. 그런 교리를 다 배웠더라고요. 거기서 다 써 놨어요. 거기 써져 있어. 그분이 다 가르치셨어요. 우리가 주익이 있게 안 들어 가지고 그런 거지. 여러분, 얼마나 많이 들으셨겠어요? 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모를까요? 참되게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몰랐던 이유는 뭐냐면 참된 예배자가
21:33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가인은 곡식으로 예배했잖아요. 우리가 배웠죠. 하나님께서 원하는 예배는 뭐라 그랬어요? 곡식이라 그랬어요. 제 그 짐승 재물이라 그랬어요. 짐승으로 드리는 재물이라 그랬죠. 근데 가인은 자기의 편의대로 그죠? 자기의 상식대로 그렇게 드렸단 그랬단 말이에요. 자기가 곡식을 거두는 사람이니까 아유 뭐 굳이 그렇게 그 뭐 짐승을 굳이 죽여 복잡하고 그냥 짐승 죽는 거 보면 마음도 아프고 별 이제 싹 마음이 들어오겠죠. 야,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야,네 죄를 속하기 위해서이 양을 죽이는게 그게 하나님의 성품에 맞겠냐? 뭐 온갖 소리들이 다 들리겠죠. 그러면서 자기는 그래 그냥 뭐 내가 오늘 쌀농사 지었으니까 벼로 드리자. 이렇게 한 거예요. 근데 여러분,
22:20 그건 우리의 편이란 말이에요. 우리의 판단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드리라고 한 제사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는 죄사는 짐승으로 드리는 죄사잖아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왜 하나님이 재물을 요구하셨을까요?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소개하기 위한 거예요. 내가 어떤 하나님인지 알려주기 위한 거. 동시에 너희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이고 너희가 얼마나 나를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인지 그래야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 첫참함과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온전히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피튀기는 제사예요. 비참하게 죽어가는 양이 필요했단 말이에요. 그 제사를 보면서 우리 죄의 비참함을
23:06 보고 내가 그 양을 죽이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보고 그 피와 그 살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긍휼과 은혜의 하나님인지가 그 어린양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에 있는데 하나님이 명한 대로 안 드린 거예요. 내가 판단해서 드린 거예요. 내 스타일에 맞게 드린 거예요. 예배를 그렇게 한 거예요. 제사를 그렇게 한 거예요. 그게 하나님과의 교재였어요. 하나님과의 교재를 하나님과의 방식대로 드린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드렸어요. 하나님과의 교재를 내 방식대로 드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면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을 바로 파악하려면 그 대상을 그
23:51 자리에서 보아야 돼요. 그 대상과 나와의 관계가 바르게 설정이 돼야 그 사람의 어떠하심을 우리가 바로 알 수 있는 거란 말이에요, 여러분. 예를 들면 사령관의 어떤 능력을 가지고 전술를 가지고 있고 뭐 뭐 포스타의 어떤 그런 군사 지식을 가지고 있고 지위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장군이 있다고 생각 장군감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근데 그 사람을 사단장이나 아니면은 군단장이나 아니면 군사령관을 시키지 않고 2등병으로 넣어 놨어요. 저 변방에 어느 후방에 있는 부대에 2등병 PX병으로 넣어 놨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그러면 그 사람에게서 그 PX가 아무리 교재를 안 될 뭐 장군의 전술이 나오겠습니까? 장군의 기계가 나오겠습니까? 그 사람의 능력을 바로
24:38 파악할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놓고 그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는 대상으로 놓고 그 하나님을 우리의 신뢰 대상으로 놓고 그 하나님과 교재를 해야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알 수가 있지. 내 스타일로 예배를 드리는 거야. 기도의 내용도 하나님 이거 해 주세요. 물론 제가 이거 해 주세요. 우리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하라고 하세요. 근데이 말의 의미는 뭐냐면 중심이 나에게 있다라는 얘기예요. 하나님을 종으로 여긴다는 얘기예요. 그런 인식 속에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여기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면서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그게 아니라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섬김과 희생은
25:24 별로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향한 요구만 가득차 있는 신자의 삶은 나는 인정하건 안 하건 우리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px병 취지 취급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을 알 수가 없어요. 야 네가 그런 사람이었어. 나중에 그 제대로 된 눈을 가진 사람은요. 거기서 발견하죠. 대부분은 못 발견해요. 야,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다. 모르죠. 그렇게 취급했으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설정되어져 있어야 됩니다. 왜곡된 관계에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지 않으면 의지하지 않으면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를 알 수가 없다고요. 하나님이 드리라고 하는 그 양의 제사를
26:11 드렸으면 아담도 그 처절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어요. 그러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을 알았을 거예요.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명령합니까? 여러분을 힘들게 하기 위해서 십계명을 주시나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서 주시나요? 아니란 말이에요. 그것조차도 하나님께 순종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가지는 의심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 본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명령을 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거를 그걸 해 본 사람만 안단 말이에요. 순종해 본 사람들만 아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해본 사람들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셔 두어야
26:58 해요. 하나님의 자리에 두지 않으면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령관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 하나님은 언젠가 자신을 사령관으로 드러내야 될 텐데 여러분이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겠습니까? 여러분을 심판하는 방식으로 밖에 드러낼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포스인데 내가 대장인데 1등병이 나보다 여기에 2등병 달고 있으니까 내가 포스트라고 말해도 안 믿어 주는 거예요. 너 1 2등병이잖아. 내가 너보다 고참이야. 그런단 말이에요. 끝까지 안 믿어 주면 사령관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 어떻게 해야 돼요? 힘으로 하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자신의 권세를 보여주는 방법밖에 더 있냐고요? 자기를 거역하는 사람에게. 여러분 이거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돼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놓지 않은
27:44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젠가 당신의 증벌하시는 능력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사랑과 긍휼과 용서의 아버지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왜?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선택해야 돼요. 하나님을 인정할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근과 용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더 놀라움을 알게 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인정 안 하고 왜곡된 관계 속에서 가인처럼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실행자로서밖에 하나님을 접할 수밖에 없을 것인가? 우리는 가인이 되지 말아야 될
28:30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둘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의이 온전하신 능력과 지혜를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는 회개를 해야 됩니다. 회개한다는 거는 단지 반성하는게 아니에요. 회개를 한다는 거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겁니다. 내가 정 범한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비로소 깨달아야만 회개가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죄악이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내가 당할 형벌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아야만 하나님을 향한 회개가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그분의 사랑과 긍휼를 깨달아야만 나오는 것이죠. 주님, 내가 돌아가기만 하면이 감당할 수
29:15 없는이 벌을 제가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이 벌을 주님이 용서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가인을 보면 그 얘기하잖아요. 제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죽이면 어떡할까요? 이렇게 두려워해요. 자기가 당할 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그러면 가인은 뭘 했어야 되냐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어야 되는데 그게 믿어지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다른 걸 요청하는 거예요. 내가 좀 살 수 있게만 좀 해 주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어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아 뭐 시키는 대로 해야 하나님을 경험할 거 아닙니까?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30:04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인은 왜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지 않았을까요? 이게 이제 우리의 질문이에요. 세 번째가 그는 위의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가인은 땅의 것만을 생각했어요. 철저하게 가인은 땅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저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찔리고 또 우리 시대에 많은 교회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아예 여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에요. 지금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가인이잖아요.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넘어지는 곳이 바로 여깁니다. 우리는 땅의 사람으로 살 때가 너무 많아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30:50 생각은 땅에 있는 거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있지 않고 땅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요. 그분과 교재를 나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미 여러분 가인이 땅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았잖아요.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그 아벨의 피가 땅으로 갔다고 설명이 되 있어. 땅에서 막 소리 지른다는 거예요. 그 결과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았어요. 아벨의 피가 그로 들어갔으니까. 땅의 사람인데 땅에서 저주를 받았으니 가인은 너무 불행한 사람이 된 거예요. 가인에게 땅이 특별히 저주인 이유는 뭐냐면 말씀드린 대로 땅의 사람이기 때문에요. 땅에서 농사 짓고 사는 사람이에요. 땅에 자신의 생명을 둔
31:36 사람이에요. 자신의 어떤 뭐라 그럴까요? 모든 운명을 땅에 건 사람이란 말이에요. 근데 땅이 저주를 받았으니까 가인한테는 너무 비참한 거죠. 자, 12절에는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은 그가 밭을 갈아도 땅이 그 수고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래. 그니까 아담이 한번 저주를 받으면서이 땅이 엉건키와 가시를 내면서 고생이 생겼어요. 근데 가인은 땅의 사람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땅이 더 곡을 안 낸다는 거예요. 그니까 가인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지 다시 말하면 죄인의 인생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픈가 하는 것을 너무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피곤하죠. 결과도 비참하죠.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시냐면은 땅이
32:21 척박하다 보니까 가인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다고 돼 있어요. 야, 얼마나 아리 아,이 아이러니한지 몰라요. 보세요. 가인이 이건 우리의 추측의 영역이지만 어느 정도 개연속 있는 축이죠. 왜 가인이 목축업이 아니라 아벨이 아니 양을 치는 일이 아니라 농사 짓는 일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냐면은 소망을 땅에 뒀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소망을 땅에 둔다는 것은 좀 편안한 삶을 말하는 거죠. 편안한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냐면은 정착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요. 야, 돌아다니면요. 피코해요. 막 그냥 지워야 되고. 여러분, 목수업이 발달된 그런 것은요. 그게 좋아서 하는게 아니라 농사를 짓고 하는 그 일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죠. 그래서 정착하는 삶이
33:09 가인이 원했던 삶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땅을 선택했던 가인에게 주어진 벌은 땅을 피하면서 유리하는 자가 돌아다니는 자가 땅을 소망하지만 늘 땅에 정착하고 모든 관심과 사랑은 정착해 있는데 결코 정착하지 못하리라. 너는 엄청난 소망을 그 땅에 두겠지만 그 소망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그 그 소망이에요. 그 저주예요. 지금 이것이 바로 이것이 오늘날이 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운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세기 4장에 등장한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인간은 사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었어요. 특별히 아담, 하와,
33:54 가인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었어요. 하늘이 아니라 땅을 욕망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거예요. 하와는요.이 땅에서 독립을 선택했어요. 뱀이 와 가지고 하나님에게 언제까지 종속돼서 살 거냐? 너 하나님처럼 될 거야. 독립을 선택했어요. 독립할 줄 알고 먹었어요. 땅에 있는 것을 아름다운 것을 먹었어요. 아담은요 가족을 선택했어요.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어요. 땅에서 아내와 자손 대대로 잘 살고 싶었던 거죠. 가인은이 땅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 결과는 모두에게 동일해요. 자신들이 소망했던 것을
34:42 얻지 못했어요. 그 소망했던 것을 얻지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잃어버리는 신세가 되었다라는 거지. 이게 공통점이 여러분 놀랍게도 공통점이에요. 하와는 독립이 아니라 남편에게 더 의존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그 저주 받았잖아요. 너는 남편을 원하나 그죠? 아담은 아내를 비롯해서 가족을 얻는 얻기를 원하고이 땅에서의 번영된 삶을 원했는데 그 자손이 오히려 그 아들 둘째 아들이 죽어 버리는 일이 발생했어요. 그리고 5장을 보시면 자신의 모든 자녀들은 다 오래 살았지만 다 죽는 운명에 처해 버렸단 말이에요. 가족을 영원토록 살게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가족을 잃어버렸어요. 가인은 안정적인 삶을 구했지만 오히려
35:28 쫓 쫓아다니는 쫓겨 다니는 그런 인생이 되어 버렸어. 너무나도 공통점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땅에 종이 되어 버렸단 말이에요. 종이라는 건 뭐예요? 자기가 소유하면 자기가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 거잖아요. 가인은 그렇게 되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에 주어진 것은 뭐냐면 땅을 늘 졸졸졸졸졸 쫓아다니는 땅의 종이 되어 버렸단 말이에요. 놀랍죠? 우리에게 이렇게 삼중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신호를 주는데 우리들은 그 신호를 캐치를 못 하고 여전히 가인처럼 그 땅을 쫓아다니고 있는 가인에게 주님이 너 땅에서 유리하고 땅을 피하고 그런 사람이 될 거야 하는데 가인은 땅으로 가요. 그 땅을 추구하겠다고 간단 말이에요. 어리석죠.이 우리의이 삶이에요.
36:16 아담은 회개했으나 가인은 회개하지 않았어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아까 말 없다 그랬죠.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몰랐어요. 경험적으로 몰랐어요. 지식이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가 하나님과 교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땅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하늘을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그렇게 땅을 사랑했던 그는 정말로 땅을 소유 제가 뭐 답을 말했지만 한 번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정말 그는 영혼토록 자신의 땅을 소유하는 사람이 됐을까요? 땅을 쫓아다니는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얻으면 다행이잖아요. 그죠? 근데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요. 너무나
37:01 비참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땅에서 쫓기는 신세가 된 거죠. 가인은 땅에 소망을 두고 땅을 사랑하며 살았어요. 그랬지만 그는 땅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런 가인의 형편을 설명하는 것이 16절이에요. 16절을 보면 그리고 16절과 그 이하의 모든 내용입니다. 우리 마지막 셋이 나오기 전까지 가인의 자손들의 이야기가 과연 가인이 땅을 소유했는가? 요걸 보여 주는 거예요. 16절에는 뭐라고 돼 있습니까?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아 떠났어요. 확실하죠?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버렸어요. 떠나서 어디로 갔을까? 여호와 앞을 떠났다라는 것은 하늘에서 떠났다. 하늘의 관심을 떠났다는 얘기야. 그리고 어디로 갔을까요? 놀랍게도 그 동네 이름은 노땅이었어요. 예. 내가 원어를 보지 않았는데 예.
37:47 그죠? 한글 번역만 저는 일단은 이제 보니까 어 땅이에요. 땅 그죠? 그 노이라고도 안 하고 노 땅이라고 돼 있잖아요. 어 왜 하나님을 떠나서 땅에 갔을까? 가인은 여호와는 여호와를 떠나서 노 땅에 거하게 된 가인은 그곳에서 누굴 낳았냐면 에녹을 낳았어요. 여러분이 에녹을 낳은 다음에 가인은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 뭘 했나? 특별히 한게 없어요. 성을 쌓았대요.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 에녹의 이름을 붙인 거예요. 여전히 땅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성을 쌓았다는 것은 자기가 있는 그 땅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든든히 그 땅에 더 집착하는 모습이에요. 성을 쌓아서 누구도 뺏아가지 못하게 하리라. 뭐
38:33 그런 마음이죠. 땅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 그 가인의 불신앙. 하나님이 너 땅 소유 못 해라고 했는데 아닙니다. 나 할 수 있습니다. 이거 보여 주는 거예요. 사람이 이렇게 왕고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하고 살아요. IQ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해요. 그 IQ로. 그런데요. 그 아들의 이름으로 그 성을 불렀다는 것은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이름을이 땅에서 드러내는 것이죠. 여전히 땅을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하늘이 아니라 땅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심은 에녹이 가인과 다른가요? 우리도 여전히 자손들, 내 이름, 내 DNA가 있는데 내
39:20 자손들이이 땅에서 번성하기를 물론 바라죠. 저도 바랍니다. 근데 우리의 관심이 거기에 더 있습니까? 우리의 성을 든든히 쌓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아니면 여러 가지 명성을 쌓아서이 땅에서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안전함을 그곳에서 얻고자 하는이 가인의 모습과 오늘 우리의 모습이 많이 다른가요? 여러분 이후에 보면 가인의 자손들은 번성했어요. 놀랍게도. 특히 라멕이라는 자손들에게 가서는요. 두 아내가 있어. 아다와 실라라고 한 두 아내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아내가 낳은 아들이 두 명 있었습니다. 아 유발과 야발이죠. 첫 번째는 목축업에 조상이 되었어요. 아 뭐 옛날에 고대 고대의 뭐 직업이라고 해봤자 바다에 살면 어부구고 육지에 살면 목축
40:07 아니면 농사 할 거 아니에요. 목축업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또 다른 그 목축업은요. 여러분 꽤나 그 부유한 사람이죠. 그죠? 여러분 욥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뭐 낙타가 얼마가 있고 막이 짐승들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은 굉장히 부유한 것을 상징합니다. 또 다른 아내가 낳은 그 아들은 구리와 쇠로 어 저 아니에 음악가의 조상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수금과 퉁소를 만드는 그 아 아다가 낳은 두 아들은 그러니까 문화죠. 문명이죠.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문화를 말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다른 아내가 아을 아들을 낳았는데 두발가인은 뭘 어떤 사람이 되었냐면 구리와 쇠로 기구를 만드는 사람의 조상이이 구리와 쇠라는 건 문명을 상징하는 거예요. 뭐 뭐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이런
40:53 거죠. 문명을 상징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이 가인의 자손들은 어쩌면 그들의 소원대로 땅에 성을 쌓고 이름을 내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다시 말하면 철저하게 점점 더 깊이이 땅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문명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란한 지금 우리 어떻게 보면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이 두 발 가인의 자손들이고이 야바야가 유발의 자손인 것처럼 무나와 월드컵 거기에 우린 열광하지 않습니까? 음악에 열광하지 않습니까? 얼마나이 세상이 아름다운게 많습니까? 얼마나 지금 AI가 발달되고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잖아요. 그런 수많은 인간의 그런 문명의 상징이 된 것은 세상적으로 보면 가장 부러운 일이에요. 야 가인
41:40 너 진짜 출세했다야. 하나님에게서 떠난 거 아주 좋은 초이스였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근데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아요. 성경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그 문명과 문화를 상징하는 두 개의 그 상징이 있어요. 첫 번째는 바벨탑이에요. 두 번째는 소돔성입니다. 여러분 바벨탑은 어떤 곳입니까? 인간의 건축 기술이 제가 볼 때는 가인의 자손들이 집중적으로 투입됐으라고 생각을 해요. 그들이 투입돼 가지고요.기구 기구들을 사용해서 하나님께로 높이 가겠다고 하는 인간의 어떤 지식과 지혜와 어떤 건축 기술과이 모든 것들의 총체였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바벨탑을 무너뜨렸죠. 여러분 소돔은 어떤 것입니까? 소돔도 역시 문명이 이룩한 번영과 풍요와 도시와 그니까 문명의
42:28 상징이었습니다. 바로 가인의 자손들의 모습이에요. 인간들의 모습이죠. 우리가 그렇게 감탄하는이 세상의 영광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다 알죠. 바벨은 무너졌고 소돔은 멸망했어요. 너무나 뻔하. 성경이 우리에게 계속 반복해 주는 거예요. 야, 아담이 이걸 추구했지만 그거 얻었냐? 하와가 이걸 추구했지만 얻었냐? 가인이 추구했지만 얻었냐? 그 자손들이 세상의 영광을 다 누리는 것처럼 했지만 그들에게 무너진 것들을 보라. 여전히 우리는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죠. 신자들이 불신자들은 원래 그런 거예요. 신자들도 지금 그걸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가인을 통해서
43:13 땅을 소유하기는 거 죽음과 형벌뿐이었어요. 여러분,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땅을 소유하려면 가인은 그 이렇게 실패했는데 진정으로 땅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땅을 쫓아다녀서 안 돼요. 요새 땅이 뭐 부동산 또 값이 오른다는데 하여튼 땅이 관심이 많죠. 여러분 물리적인 육체가 살기 위해서 땅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사실이 세상에 뭐 뭐 먹을 거 중요하지만이 거주한 땅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땅을 집착하게 됩니다. 신자들도.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래서 땅 못 얻는다라는 거예요. 하늘을 봐야 된다라고 얘기합니다. 하늘을 봐야 된다. 여러분 가인의 자손인 남에게 저주에이어서 오늘 본문에서 바로이어서
44:00 나오는 너무나도 의도적으로 저는 성경이 대조시키고 있다고 봐요. 바로이어서 나오는 내용이 뭐냐면 아담 이야기가 나와요. 아담 지금 라멕은요 가인의 영이 자손이에요. 한참 후에요. 그런데 그 가인의 가문의 운명을 보여 주고 난 다음에 다시 아담으로 올라가서 그 가인과 아벨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직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거죠. 어떻게 보면은 모르겠어. 시간상으로는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아담이 오래 살았으니까. 근데 내용으로 보면 다시 아담으로 가는 거예요. 가인 얘기를 하다가 뭐예요? 아벨을 대신해서 셋이라고 하는 자손을 주님이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왜 굳이 셋시을 주셨다고 하지 않고 아벨을 대신해서 주셨다고 할까요? 아벨이 누군지를 보라는 거예요. 아담은 가인은 땅의
44:46 사람이었지만 아벨은 어디에 사람이었어요?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이었어요. 목축을 했고 제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드렸던 사람이었어요. 우리는 아벨을 보면서 허무하게 죽은 것만 보지만 하나님은 그 아벨을 같이 가져와서 셋을 통해서 그 아벨의 믿음을 믿음의 개보를 이어가는 거예요. 그 셋을 아벨에게서 가져온단 말입니다. 아담의 아들이지만 실제적으로 아벨을 대신하는 사람이 셋이었어요. 그 셋의 특징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라는 거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여러분 성경은 셋시 아들을 낳았을 때 셋시 아들을 낳았을 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거든요. 요것도 재밌어요. 왜 셋을 아담이 셋을 낳았을 때에여
45:32 사람들이 여호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셋이 아들을 낳았을 때 여호와 이름을 불렀을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아담이 셋을 막 낳았을 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면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셋은 관계가 별로 없어요. 그냥 태어나기만 했을 뿐이에요. 시기가 공교롭게 맞아떨어진 것일 뿐이지요. 그런데 셋이 아들을 낳았을 때 믿음을 이어받았던 아벨의 믿음을 이어받았던 그 셋이고 그 셋이 세월이 뭐 몇 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 그가 아들을 낳았을 때 사람들이 여호와 이름을 부르기 그건 세세 삶과 사람들이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것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예요. 셋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거예요. 셋이 그냥 아무렇게나 산게 아니라는 거예요.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거예요. 하늘을 바라보는
46:19 삶을 살았다는 거예요. 가인의 자손들과 다른 방향으로 살았다라는 거예요. 삶의 초점이 달랐다라는 얘기예요. 믿음의 삶을 살았다라는 얘기입니다.이 내용은 저는 이게 복음 전도라고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셋이 가인의 자손들을 전도했다고 생각 육체적으로 가인의 자손들이 있었지만 셋시 믿음으로 그들을 아벨의 자손으로 편입시킨 거예요. 사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만든 거죠. 그의 삶이 그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음 전도예요. 우리가 추구할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음 전도 교회를 어떤 뭐 어떤 말을 쓰든 어떤 선물을 주든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에 앉혀 놓기만 하면 전도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그걸 전도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교회는 전도 대회하면은 경품으로 자동차를 걸고
47:05 수십명을 데리고 1등하는 사람 자동차 주고 막 이러잖아요. 그게 전도가 아니에요. 전도는 새처럼 하는 거예요.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예요. 다르게 사는 그게 거룩이에요. 가인의 자손들과 다르게 사는 거예요. 사는 방식이 달라. 추구하는게 달라. 바라보는 것이 달라. 이것은요 5장에 나오는 족보를 통해서도 참 기가 막히게 증명이 됩니다. 모두가 죽어가죠. 제가 말 이제 제가 다 다음 주 나 이렇게 말 설명하겠지만 모두가 죽어 가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습니다. 그죠? 그들이 지옥 같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까 죽음. 그 아담의 저주가 여전히 인간에게 역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의 줄기를 보여 주시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죽지
47:51 않죠. 에녹이에요. 근데 좀 그것도 재밌어요. 에녹이 한 천년 살다가 하늘로 가면 우리가 와 세상에서도 오래 살고 뭐 천국도 가겠구나 하면서이 뭐도 도랑치고 가져 잡고 뭐 다 좋아할 텐데 남들은 900년 살 때 에녹은 365년밖에 못 살았어요. 그럼 이제 고민이 되는 거예요. 에녹을 선택할 것인가? 969년을 살았던 무두셀라를 선택할 것인가? 여러분, 에녹의 삶이 훨씬 복된 겁니다. 그죠? 자, 그런데 어쨌든이 에녹이 이름이 에녹이에요. 가인의 아들의 이름이 뭐였다고요? 에녹이었다고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 하늘을 바라보고 산 대표적인 사람, 365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 그게 나오는 거거든요. 그 사람의 이름도 에녹이에요. 지우는 거예요. 아담의 자손의 이름을 내고 세상을
48:39 바라보고 사는 그 에녹을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그 에녹의 이름으로 대체시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살으라고?이 에녹처럼 살으라고. 그것 진짜 복된 거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에녹은 죽지 않았어요. 땅을 떠났어요. 그런데 그 에녹이 땅을 온전히 소유하게 됩니다. 하늘로 갔지만 그리스도와 더불어이 땅에 올 거기 때문에 그래요. 자,이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여기뿐만이 아니에요. 신약의 산상순훈입니다. 예수님은 8복을 말씀하시면서 세 번째 복으로서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나니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리고서 뭐 그 복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이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타고난 성질이 부드러운 사람은
49:26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거듭난 사람이에요. 쉽게 말하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땅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 땅을 보면서 산다는 사람은 모든 인생에이 모든 시간을 자기의 죽음에 맞춰져 있는 사람이에요. 근데 하늘을 향하여 산다는 사람은 그 죽음 너무의 영원한 시간을 보는 사람이에요. 땅의 가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게 바로 온유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땅을 땅의 땅의 사람 에녹과 땅의 모든 소망을 두고 자신의 시선의 끝이 죽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땅에서 결정지어야 되기 때문에 지금 당하는 약간의 손에도 너무 힘들어요. 견디기가.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어요. 까칠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냥 불평 나올 수밖에
50:11 없어요. 양보를 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품어 줄 여유가 없어요. 왜? 내 인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거 이거 하고 어떻게 살아요? 그죠? 근데 여러분, 영혼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넓어져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요. 그래서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죠. 땅을 소유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라야 그래서 진정으로 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이 땅에서 땅을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은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과 땅을 실제로 땅을 소유하더라 뭐 100만 평의 땅을 내가 소유하더라도
50:56 여러분 반드시 그 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소유 못 합니다. 그게 가인에게 주어진 저주예요. 네가 가인이 뭐 정정착하지 못하고 진짜 뭐 계속 땅을 돌아다닌다 하는게 아니야. 에녹성 살아 살았잖아요. 그런 모에 그 땅은 자기게 아닌데 없어진단 말이에요. 가인 죽었잖아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린 반드시 땅을 추구하는 사람은 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첫 번째는 여러분의 죽음 때문에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땅을 보유하고 돈을 보유해도 방법이 없어요. 죽을 때 다 놓고 가야 됩니다. 좀 좋은 수위, 좀 좋은 오동나무 관에 들어갈 수 있을지 언정 그다 놓고 가야지요. 그것마저도 놓고 가야지요. 그죠?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51:43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죽음을 생각해야 됩니다. 죽을 때 여러분 장례식에 가셔야 돼요. 그 가서 그냥 얼굴 안 가면 조금 미안해서 가는 그런게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서 가셔야 돼요. 가서 고민하셔야 돼요. 그 영정을 보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보셔야 돼요. 그죠? 아주 아주 대단한 사람도 가잖아요. 다 놓고 가잖아요. 그러므로 반드시 있을 죽음을 외면하면서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어차피 놓칠 것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죠. 진정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죠. 영원한 것에 투자를 해야 되죠. 둘째로 우리가 반드시 잃어버려야 되는 이유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52:29 뭐냐면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땅이 풀어지게 된다고 성경은 얘기하고 있어요. 없어진다 풀어지는 거예요. 풀어지는 거. 내가 잡고 있어도요. 물처럼 나 빠져나가는 거예요. 언젠가는 성경은요.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서 12절을 보면 요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 여기서 말하는 체질이 뭐냐? 뭐냐면은 온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체 어떤 몸체 구성 요소들 만져질 수 있는 물리적 요소들을 말하는 거예요.이 모든 체질들이 풀어지게 되니까 땅이 땅도 그 체질 중에 하나잖아요. 그 속에 감추뒀던 모든 것이 드러난다이 말이에요.
53:14 체질이 부러져요. 땅이 부러진다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이 땅이이 땅처럼 안 된단 말이에요. 손에서 다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게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이 땅을 추구하는 사람은이 땅을 못 얻어요. 잃어버리게 되어 있어요. 시기만 다를 뿐이지. 어떤 사람은 살면서도 잃어버리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죽을 때 잃어버리고요.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실 때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새로운 것이. 그러므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살아가는이 땅은 원래부터 풀어지는 성격을 가지는 허무함을 가진 존재. 그래서 전도자가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러분이 사실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냥 살다 보니까 에휴
54:00 모든게 헛대 뭐 그것도 되지만 그 정도로 단순한 말을이 인류가 난 최고의 천재가 그 정도 말밖에 안 했겠어요?이 이 진리들을 품고 있는 겁니다.이 체질이 풀어지는 걸 알고 있는 거예요. 헛되다이 말이에요. 땅을 추구함이 헛되다이 말이에요. 자기가 그렇게 살아봤더니 헛되다이 말이에요. 이처럼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모습은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의 치명적인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그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진정으로 땅을 소유하는 사람이
54:46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이거 잘 들으셔야 돼. 짧게 말씀을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먼저 여러분 위에 것을 생각하시는 시간이 많아야 됩니다. 아, 그걸 위해서 막 그냥 한 40일 금식할까요? 40일 금식하고 300, 325일을 생각 안 하고 살면 안 돼요. 그런게 아닙니다. 항상 위에 것을 우리는 보통 그렇게 많이 생각을 해요. 일주일을 내 마음대로 살고 주일날 막 열광적인 예배와 함께 나의 모든 에너지 그것도 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 헷갈리시면 어쨌든 예배당에서 하니까 하나님을 위한 걸로 치고 열심을 다하는 저도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 예 청년 때 아 여러분들 다 그러셨을 거 아니야. 교회에서 주일 날은 아침부터 막 저녁까지 막 열심히 일하고 주를 항상 물어보면 교회 봉사
55:31 뭐 하냐? 내가 주를 왜 봉사해? 다 봉 다 사실 자기가 좋아사는 게도 많거든요. 그 봉사한다고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일주일은 그 봉 일주일째 다 해 버린 거예요. 주일날 그 신앙에 성장하던가요? 그랬더니 그게 안 돼요. 위의 것을 많이 생각해야 되. 그런 걸 말하는게 아니라 일단은 위의 것을 많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제가 최근에 이제 좀 절실하게 깨닫게 된게 있는데 뭐냐면은 많은 이제 좀 뭐 목사님들도 그렇고 신학자들도 그렇고 사실상 제가 볼 땐 그래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좀 세련돼 보이고 뭔가 쿨해 보이는 사람들이 유튜브라든지 막 이런데 나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놔요. 여러분 그 다 들으시면 안 됩니다. 고 아 다 아예 듣지 말라는게 아니라
56:18 다 정답으로 들으시면 안 된다는 얘기예요. 어떤 식의 얘기를 많이 하냐면 중립적인 것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해요. 우리가 이거를 하는 거 우리가 스포츠를 하고 우리가 뭘 하고 뭘 하고 영화를 보고 우리가 뭐 뭐 뭐 하고 이런 것들이 그 죄 아니야. 아 죄 아니죠. 뭐 스포츠가 됩니까? 뭐가 됩니까? 그죠? 뭐 영화 보는게 죄입니까? 드라마 보는게 죄인가요? 뭐 통속적인 소설을 보는게 뭐 죄인가요? 그게 아니죠. 가요 부르는게 죄입니까? 죄 아니에요. 죄 아니야까지는 맞아요. 근데 죄 아니니까 마음껏 해도 돼. 이렇게 얘기를 해요. 왜 사람들은 죄 아니니 마음껏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유튜브를 보거든요. 그니까 그들에게 그 말을 해 주는 거예요. 듣고 싶은 얘기. 그래 더 많이 오지. 그래서 성경적이지 않은 얘기를 해요. 죄가 아닌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열심히 해야 될 건 아니에요.
57:04 그건 그 자체는 죄는 아니지만 그 자체는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게 아니에요. 우리의 시간이 위의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점점 줄어들고이 땅의 것을 죄든 죄가 아니든이 땅의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우리나 가인처럼 되는 거예요. 방법이 없어요. 그거는 생각이 다 걸로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어떤 골 골골몰란 것에 빠지면 다른 생각이 안 나잖아요. 그런 거예요. 더군나라 영적인 것은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의 것을 생각을 많이 해야 돼요. 아직까지 거룩하여지지 않고 아직까지 습관이 되지 않은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에 내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지만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듣기만 해도 힘들어 보일 수 있어요. 왜? 아직은 흥미를 못 느끼니까. 그래도
57:49 여러분 믿음이 그걸 밀고 나가는 거. 제가 오늘 설교한 그 내용을 여러분이 믿으신다면 해야 되는 거예요. 믿음이라 하는 거 안 믿으면 안 하는 거예요. 뭐 제가 하란 말 할 것도 없어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거죠. 믿으면 하는 거고 안 믿으면 안 하는 거지 뭐. 그러시면 하라고 저는 하고 싶어요. 저도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우리 또 말씀 교회가 위의 것을 더 많이 생각하 그럼 어떻게 위에 것을 더 많이 생각해요? 제가 저번에 우리 수련회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주일 예배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 주일 예배를 빼놓고 시작하면 안 돼요.이 예배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드려지는이 예배에 대한 기대감을 여러분 가지고 여러분 삶의 중심을 안식일 놓고 주일해 놓고 그 주일의 중심을 예배해 놓고이 예배를 일상에서
58:36 준비하면서 그리고 주일이 점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함께 준비하면서 보내는 그 습관. 그리고 여러분 삶 속에서 가정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가정 예배 자주 할 수 있으면 자주 할수록 좋은 거예요. 그건 단순히 우리 가족을 희생시켜 가면서 하나님께 무슨 제사를 드리는 그런게 아니야. 산재물로 드리는게 그건 정말 우리에게 복된 일이죠. 하면 할수록 이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해 보세요. 복되게 됩니다. 그런 거예요. 다. 그리고 여러분 개인적으로 하늘에 속한 내용들의 글들, 책들 그것들을 자주 보셔요. 우리가이 땅을 살기 때문에 그것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어요. 회사 가면 회사를 해야죠. 회사일을 하기 위한 또 필요한 책들도 읽어야죠. 왜냐면 그건 역시도요. 하늘을 생각하는 것일 수 있어요.
59:22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업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살면 그건 역시 또 하나님을 한 그니까 그런 직업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면은 하늘에 속한 것을 더 보게 돼요. 왜? 그 의식이 있어야 내 직업에 탁월함의 목적이 하늘을 향하기 때문에 더 탁월함을 추구하게 되거든요.이 같이 가는 겁니다. 따로 놀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선 개인 경건이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 시간을 많이 보내십시오. 위의 것을 생각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내 보십시오. 막 안 읽어지면 막 전화라도 하시고 막 저한테 막 문자라도 보내시고 막 그렇게 하여튼 저 아니면 여러분들끼리라도 그렇게라도 하셔요. 그래서 내 혼자 안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위의 것을 생각하셔야 돼요. 우리는 우리가 가야 될 것을 생각해야지 우리가 떠나야 될 것을 자꾸 생각하면 못 떠나요.
1:00:09 그래서 평생 예수를 잘 믿은 것처럼 보였는데 죽을 때에 막이 생명줄을 막 붙잡고 막 그러면 자손들이 크게 실망합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천국 갈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안 가시려고 저러는 거야? 혹시 아버지 믿음이 없으셨던 거 아니야? 뭐 이런 의심도 콜라요. 오히려 오히려 평소에는 그렇다가도요. 우리의 우리의 호흡이 멈출 그 날이 올 때 자녀들에게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웃으면서 떠나 보세요. 자녀들이 제가 종종 얘기하잖아요. 그게 진짜 복된 거죠.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믿음으로 예배해야 됩니다. 느낌으로 예배하는게 아니라 믿음으로 예배해야 돼요. 내 느낌이 좋다고. 여러분,
1:00:56 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분 음식도요. 즉각적으로 맞은 건 대부분 오래 먹으면 죽는 것들이에요. 그죠? 건강을 해치는 것들이에요. 그래 좀 맛 없어도요. 그 믿음으로 하면요. 건강해져요. 그 그 맛도 있어죠. 나중에는. 물론 제가 그만할 자격은 없어요. 제가 알아요. 누군가가 비웃고 있는 거 같아서 제가이 얘기를 해야 될 거 같아. 그렇지만 맞잖아요. 그죠? 믿음이 좀 부족한가 봐. 여러분 하늘의 것도 마찬가지예요. 예배도요. 우리가이 뭐막 음악이 있고 내 왜냐면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지금 상당히이 땅을 향해 있는 상태 땅의 체질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은이 땅에 속한 것들이에요. 그래서 교회들이 그 유혹을 많이 받는 거예요. 아 저
1:01:42 사람들 일단 데려다 나와야 되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 얘기한다고 누가 와요. 그러니까 느껴지는 것들로 채우게 되고 그 이상 성장이 안 돼요.이 사람들은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명한 대로 예배를 드리면 우리가 처음에는 힘들고 시편을 부르다 보면 처음에는 음도 음도 익숙하지도 않고 가사도 안 와닿고 그러지만 그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집에서도 시편을 부르고 시편을 개인적으로 연구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읽기도 하고 그러면 여러분이 시편과 부딪히는 경험과 체험이 생기게 되면서 그 찬양이 완전히 달라지고 어떤 메카니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 순종하다 보면 점점 점점 여러분들이 거룩하게 변하고이 예배 예배의 참된 의미를 느끼는 그 날이 오게 될 거. 그리고 이건요. 내 일생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하면 여러분
1:02:28 다음 세대, 다음 세대, 다음 세대 십계명에서 말하는 것처럼 천대까지 복을 받게 되는 그 일이 그것까지 봐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십시오. 세 번째는 죽음을 생각하십시다. 우리가 저도 우리가 지금의 어떤 요즘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뭐 아직까지 좀 뭐 여유가 있죠. 그죠? 뭐 여기가 어떤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뭐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특이점이 오면요. 어 그 뭐 AI가 발달돼 가지고요. 특이점이 곧 온대요. 그래서 어 그때 되면은 인간이 병사하는 시간보다 인간 평균 수명이 더 빨리 늘어나 가지고 적어도 병으로는 죽지 않는 시대가 온다고는 해요. 올지 안 올지 몰라요.
1:03:14 온다고는 해요. 그렇지만 무여 여전히 뭐 사고라든지 그런 건 있지만 여러분 그렇게 따지면요 되게 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사실 그가 믿지 않아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면 그렇게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주님이 오실 거예요. 우리 인간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 아닐 거 사람들의 말에이 AI가 뭐 그 그 말에 길을 기울이지 마세요. 조금 늘어날 수 있어요. 그러나 주님이 정한 날을 넘어날 수는 없어요. 언젠가 여러분 969년을 살던 무드셀라도 지금 어디에 있어요? 천국에 있어요. 죽은지 오래됐어요. 자기가 천년 동안 살 동안에는 죽을 생각도 안 들었을 거야. 우리 아버지도 960 몇 살, 우리 하버리도 900 몇십살. 야, 내가 지금 100살을 살았지만 아직도 뭐 야, 나는 뭐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근데 무두살 죽은지 몇
1:04:01 천 년 됐어요. 우리는 다 죽음을 맞닥뜨리게 돼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을 생각하십시다. 그래야 우리가 땅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있어요.이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또 우리 더 말씀 교회가 땅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가인의 믿음이 아니라 세세 믿음을 가진 아벨의 믿음의 개보를는 그 은혜 언약의 개보를 있는 사람들로 어른들 우리 자녀들 어린아이들 다이 그 여러분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제가 오늘 설교했던 내용을 애들이 지금 어리기도 하고요. 여러분들 제가 하는 설교 중에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혹시 괜찮다고 생각되는게 좀 있으시면요. 잘 기억했다가 아이들이 좀 크면은 제가 계속 그 설교를 반복할 순
1:04:47 없잖아요. 아이들이 좀 크면은 가정에서 그걸 가르쳐 주세요. 여러분들이 가르쳐 주셔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먼저 실행하셔야죠. 실행 안 하고 가르치는 건 참 힘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 작업이 우리 안에 있을 때이 더 말씀 교회가 작지만 그러나 정말 복음이 역사하는 그 교회 가인의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아니라 세세 믿음 아벨의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많은 그런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