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감행하며 한국으로 대탈출" 유럽 중산층 청년들 1년 거주 비자 받으러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중, 프랑스 독일 정부 충격!ㅣ해외감동사연”의 전체 스크립트입니다. 타임스탬프를 클릭하면 해당 장면부터 영상이 열려요. 다른 영상이 필요하다면 유튜브 스크립트 추출기를 이용하세요.
0:00 현재 유럽 청년들이 한국으로 대탈출을 감행하고 있어 발칵 [음악] 뒤집혔습니다. 설마 하셨겠지만 단순한 관광 이야기가 아닌 실제 상황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파리의 청년들, 로마의 청년들, 유럽 곳곳의 젊은이들이 짐을 싸서 서울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는데요. 프랑스에서만 유학생이 1년 만에 40% 늘었고 영국과 이탈리아 사람만 해도 5년 전보다 20배나 훌쩍 뛰어 버렸죠. 프랑스 대통령도 직접 방안에서 부탁했는데요. 자신들의 청년들이 한국에서 더 [음악] 오래 살게 해 달라며 간청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소름 돋는 사실 하나는 불과 60여년 전만 해도 방향은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독일의 탄광과 병원으로 떠나야 했던 한국의 젊은이들. 그 유럽이 지금 정반대로
0:47 한국 대사관 앞에 줄을 서고 있는 것이었죠. 도대체 60여년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금부터 그 믿기 힘든 대역전의 이야기를 낱낱이 공개하겠습니다. >> 교수님, 저는 8위를 떠나려고 합니다. >> 그날 오후 제가 가장 아끼던 제자가 던진 그 한 마디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저는 프랑스 파리의 한 대학에서 도시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 장피에르모로라고 합니다. 청년들이 왜 어느 도시를 떠나고 어느 도시로 모이는지 그 이동의 방향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죠. 숫자를 확인하기 전에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 제 오랜 원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에 휩쓸려 어느 나라를 찬양하는 사람들을 늘 경계해 왔습니다. 바로 그런 제가 지금부터 제 인생에서 가장
1:34 크게 흔들렸던 몇 주간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 드리려 합니다. 그날은 파리에 늦은 오후였습니다. 제 연구실 문을 두드인 사람은 클레르 뒤몽 24살례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성적도 뛰어나고 영어도 유창했으며 제가 유럽에 좋은 연구 기관에 추천장을 써 줄 정도로 앞날이 밝은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사 과정 상담이나 진로 이야기를 하러 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밖 없습니다. 8일을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27 동안 젊은 인재들의 국제 이동을 연구해 온 사람이니까요. 런던인가 뉴욕인가 아니면 취리 히쯤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21 클레르의 대답은 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서울로 간다는 대답에 저는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머릿속에서 그 도시의 위치를 떠올리는 데에도 몇 초가 걸렸습니다. 저는 그저 교환학생 정도라고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좋은 경험이 되겠지. 얼마나 있을 생각이냐고. 여섯 달쯤이냐고 말입니다. 클레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가능하면 졸업하고도 거기서 일하고 싶어요. 그 순간 저는 첫 번째 충격을 받았습니다. 파리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프랑스 청년이 지구 반대편에 서울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서울에서 1년을 보내는 것은 좋은 경험일 수 있다.
3:08 하지만 내 미래까지 걸 도시는 아니라고요. 그러자 클레르가 조용히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교수님,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결정적인 말을 꺼냈습니다. 제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아서 8일을 떠나는 거예요.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27회 동안 도시와 청년을 연구해 온 저에게 그 말은 단순한 유학 상담이 아니었습니다. 파리의 젊은이가 파리보다 서울에서 미래를 본다는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유럽 도시들이 겪는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높은 생활비, 청년들의 취업 불안, 주거 문제, 느려진 행정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3:53 파리의 경쟁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요? 혁명과 예술이 태어난 도시, 철학과 대학이 쌓여온 도시. 그것이 제가 아는 팔이었습니다. 반면 제 머릿속에 한국은 삼성과 자동차, 반도체, 그리고 케이팝과 드라마 정도였습니다. 놀랍게 성장한 나라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성공한 아시아 국가라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젊은 프랑스인이 미래를 찾아 이주하는 나라는 개념은 제 머릿속 한국과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클레르 역시 케팝이나 한국 문화에 잠시 매료된 평범한 사례라고 판단했습니다. 문화적 호기심을 인생의 방향과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고요. 그것이 저의 첫 번째
4:39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클레르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또 다른 학생이 제 연구실를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26살의 남학생 리카였습니다. 그의 상담 내용 역시 한국 대학원과 서울 취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표정이 굳었습니다. 며칠 사이에 두 명이라니 우연이라고 넘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학과 행정실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대학과의 교환 프로그램을 문의하는 학생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과거에 가르쳤던 제자들의 근황도 찾아보았습니다. 한 명은 이미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또 한 명은 한국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5:25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에 처음으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하필 서울인가? 런던도 아니고 뉴욕도 아니었습니다. 젊은 유럽인들이 전통적으로 향하던 도시가 아닌 서울이 자꾸만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제 동료 교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습니다. 장피에르. 자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군. 케팝 [목을 가다듬음] 때문이야. 저 역시 처음에는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언제나 유행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요. 한때 일본 문화가 유럽을 휩쓸었고 그전에는 미국 문화가 청년들을 사로잡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한국도 그 연장선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제 가설을 확인하려고 학생 몇 명에게 직접
6:10 물어보았습니다. 왜 한국을 선택했느냐고 말입니다. 당연히 케팝수와 드라마, 영화, 음식 같은 답이 쏟아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대답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몇몇 학생의 대답이 이상했습니다. 안전해서요. 생활하기 변하잖아요. 서울에서는 뭔가 계속 변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답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앞으로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저는 불편해졌습니다. 문화적 동경이라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전과 생활환경, 기회와 미래라는 것은 도시 사회학자인 제 전문 영역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웃어 넘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날
6:56 밤 저는 연구실에 혼자 남았습니다. 창밖에 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불빛이 세어 나오고 카페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이 이 도시를 두고 서울로 간다니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한국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재판단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검색창에 프랑스 학생과 한국 유학에 관한 자료를 입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넘겼습니다. 그러다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프랑스 유학생의 규모와 최근 증가세가 제 예상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자를 앞으로
7:42 당겼습니다. 다른 자료들을 하나씩 찾아보았습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증가,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의 확대, 젊은 층에 한국에 대한 관심, 자료 하나뿐이라면 오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숫자들이 같은 방향을 가르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잠깐 이건 관광객 숫자가 아니잖아. 그 순간 문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행은 호기심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학은 다릅니다. 취업은 더 다릅니다. 정착은 인생의 선택입니다. 저는 연구실 벽에 붙어 있는 세계 지도를 바라보았습니다. 8위에서 서울까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선을 그어 보았습니다. 약 9,000km.
8:28 언어도 문자도 문화도 다른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청년들이 그 먼 거리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일하고 가능하면 남기 위해서였습니다. 27회 동안 인구 이동을 연구하며 저는 하나의 원칙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원칙 때문에 저는 오히려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날 새벽 저는 처음으로 제 생각을 의심했습니다. 혹시 서울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20년 전에 서울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는 마지막으로 자료를 하나 더 열어 보았습니다. 화면에는 예상보다 훨씬
9:13 큰 변화가 나타나 있었습니다. 저는 안경을 벗었습니다. 숫자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혼잣 말을 했습니다. 이건 유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데.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몰랐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세 가지 질문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왜 서울인가? 왜 지금인가? 그리고 왜 프랑스 청년들은 파리보다 그곳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가? 저는 결국 직접 답을 확인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목적지는 대한민국 서울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마주칠 어느 평범한 밤의 풍경 하나가 제가 27 해 동안 믿어온 도시의 상식을 처음부터 다시 쓰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요. 다음날 아침 저는 전날 밤 열어둔 자료를
9:58 다시 확인했습니다. 혹시 기사 하나가 과장한 것은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저는 도시 사회학자로서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표본을 넓히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학생들의 한국 유학 자료,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의 규모, 체류, 외국인의 연령대 졸업 이후에 정착 의향, 그리고 장기 체류 제도까지 하나씩 자료를 늘려갔습니다. 제가 바라던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문화 콘텐츠 때문에 잠시 늘어났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겹쳐 놓자 이상한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프랑스 학생수가 한해 사이에 크게 늘었고 전체 외국인 유학생 규모 역시 꾸준히 올라가고
10:43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몇 달에서 몇 년을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수첩에 선을 하나 그었습니다. 관광에서 유학으로.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가 강하면 유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음 자료에서 제 손이 멈췄습니다. 졸업 후에도 한국에 계속 살고 싶다는 외국 학생들의 비율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의자의 등을 기대며 중걸 거렸습니다. 잠깐 그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저에게 정착 의향이라는 것은 단순한 호감도가 아니었습니다. 한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신호였습니다. 저는 직접 청년들을
11:30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상대는 25살의 마틸드 르페브르였습니다. 파리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케팝 때문에 한국에 가는 겁니까? 마틸드는 웃었습니다. 좋아한다고 인정했습니다. 드라마도 받고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틸드의 다음 말이 제 판단을 흔들었습니다. 그건 한국을 알게 된 계기였어요. 그런데 제가 남고 싶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제가 그럼 무엇 때문이냐고 묻자 마틸드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습니다. 거기서는 혼자 뭔가
12:18 시작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취업이든 작은 사업이든 새로운 관계든 말입니다. 마틸드는 한국이 쉽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쟁이 심하고 힘든 점도 많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한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힘들어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요? 저는 메모하던 팬을 멈췄습니다. 클레르가 했던 말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달라질 것 같다는 말과 움직이고 있다는 말. 서로 알지도 못하는 두 정년이 같은 도시를 비슷한 언어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28살에 토마 베르나르였습니다. 그는 이미 서울에서 1년간 교환학생활을 마치고 바위로 돌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이
13:04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을 실제로 살아봤다면 환상이 깨졌을 것이라 예상했으니까요. 다시 한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도마는 망설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취업해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그의 대답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도 완벽하지 않다. 사람들이 바쁘고 경쟁도 심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었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직장 문화도 낯설었다고요. 저는 속으로 안도했습니다. 드디어 제 생각과 비슷한 증언이 나온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토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파리로 돌아오니까 오히려 답답했어요. 제 표정이 굳었습니다. 무엇이 답답했느냐고 묻자
13:51 토마가 대답했습니다. 서울에서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움직일 수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바리에 돌아오니 모든 일이 다시 느려진 것 같았다고요? 저는 처음으로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프랑스 청년들이 한국을 선택하는 이유가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만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가? 혹시 실제 생활 환경 자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 순간 연구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터뷰 기록을 벽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사례를네 단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관심, 방문, 체류, 정착. 처음에는 대부분 문화가 입구였습니다. 케이팝, 드라마, 영화, 한국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한 이후에는 전혀 다른
14:38 이유가 등장했습니다. 안전, 교통, 디지털 환경, 일상의 편리함, 도시의 속도,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사람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이유와 한국에 남게 만드는 이유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케팝이 문을 열었다면 정착을 결정하게 만드는 것은 삶의 경험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첩에 처음으로 적었습니다. 문화는 입구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남게 만드는가?이 이 질문이 제 조사에 중심이 되었습니다. 조사를 이어가던 저는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서 청년 교류를 넓히려는 정부 차원의 논의까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이
15:24 부분이 특히 충격이었습니다. 개별 청년 몇 명의 취향이 아니라면 국가 차원에서도 젊은 세대의 한국 체류 수요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저는 동료 교수 앙투한 르클레르에게 자료를 보여 주었습니다. 앙투아는 여전히 냉소적이었습니다. 젊은 이들은 원래 새로운 곳을 좋아한다. 5년 뒤면 또 다른 나라로 갈 것이라고요? 저는 쉽게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저 역시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질문으로 되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잠깐 다녀온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려 하느냐고요? 앙투아는 환상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환상은 보통 직접 살아본 뒤에 깨지지 않느냐고요? 그 말을 하고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16:12 얼마 전까지 한국 열풍을 가장 강하게 의심하던 사람이 이제 그 현상을 변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바로 한국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불편해졌습니다. 제가 27 동안 연구해 온 유럽의 도시들은 오랜 역사와 세계적 명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리에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런던 금융의 중심이며 로마에는 수천 [목을 가다듬음] 년의 유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는 기준에서는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우리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같은 것으로 착각해 온 것은 아닐까?이 이 질문은
16:57 저에게 상당히 위험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제 연구 대상인 유럽 도시들의 경쟁력 자체를 다시 평가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출국을 준비하던 클레르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교수와 제자가 아니라 연구자와 인터뷰 대상처럼 물었습니다. 한국에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고요? 클레르의 답은 예상보다 냉정했습니다. 한국도 싫은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경쟁적인 분위기, 높은 주업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거리감까지요. 그런데도 왜 가려하느냐고 묻자 클레르가 대답했습니다. 교수님, 파리는 이미 완성된 도시처럼 느껴져요.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기보다
17:43 이미 만들어진 것들 사이로 끼어드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대해 말했습니다. 서울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문장이 저를 멈추게 했습니다. 도시 사회학자에게 그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완성된 도시와 성장하는 도시, 과거의 자산을 소비하는 도시와 내일의 가능성을 만드는 도시. 저는 수첩 한가운데 크게 적었습니다. 움직이는 도시. 인터뷰만으로는 결론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결국 연구자로서 가장 단순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장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앙투한이 정말 한국까지 가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 학생들이 왜 8일을 떠나는지 알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앙투안이 웃으며
18:29 답을 찾으면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내가 틀렸다는 답을 찾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요. 며칠 뒤 비행기가 인천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습니다. 저에게 한국은 아직 답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물음표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서울에 도착한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밤 늦은 시간 젊은 여성 한 명이 이어폰을 낀 채 혼자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고 가방은 뒤로 자연스럽게 매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파리에서라면 제가 사랑하는 딸에게 절대로 권하지 않을
19:15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설마 이것 때문인가? 그때까지 저는 몰랐습니다. 그저 평범해 보이던 서울의 밤 하나가 다음날부터 제 상식을 완전히 뒤집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요. 서울에 도착한 첫날 밤 저는 시차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호텔 근처를 잠시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를 넘긴 뒤였습니다. 그런데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퇴근하는 직장인 편의점 앞에서 음료를 마시는 학생들. 이어폰을 낀 채 혼자 걷는 여성들이 보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걸었습니다. 그러다 제 시선이 자꾸 한쪽으로 향한다는 것을
20:01 깨달았습니다. 젊은 여성 한 명이 가방을 뒤로 맨 채 휴대전화를 보며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서도 특별히 주위를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뒤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누군가 그녀를 따라오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왜 내가 대신 경계하고 있지. 파리에서 딸이 밤 늦게 귀가 한다면 저는 반드시 메시지를 보냈을 것입니다.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사람 많은 길로 가라고 당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그런 긴장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한 지역만 보고 도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학자로서 위험한
20:48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첫 번째 메모를 남겼습니다. 야간 보행의 체감 안전성, 예상보다 높음. 서울의 첫 번째 충격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밤길를 걷는 사람들의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일부러 택시가 아닌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도시의 진짜 경쟁력을 보려면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시스템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내려가자 여러 노선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안내책에는 생각보다 직관적이었고 열차 강역도 짧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였습니다. 물론 저는 서울의 지하철만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21:33 파리에도 지하철이 있고 런던에도 있으니까요. 제가 주목한 것은 개별 기술이 아니라 연결성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버스가 이어지고 도착 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동 중에도 휴대전화 연결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득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누구도이 시스템에 감탄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은 영상을 보고 직장에는 업무 메시지를 보내고 노인은 다음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이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인프라가 아니라 그냥 일상이구나. 도시 사회학자로서 저는 바로이 부분에 관심이 같습니다. 좋은 도시란 거대한 시설 하나가 있는 도시가 아니라 시민이 매일 이용하는 수십개의
22:19 시스템이 별다른 노력 없이 연결되는 도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메모를 적었습니다. 편리함이 특정 서비스가 아니라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다.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토마 베르나르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파리의 카페가 아니라 서울 한복판이었습니다. 정말 이런 것들 때문에 서울에 다시 오고 싶은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토마는 웃으며 이런 것 하나 때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휴대 전화를 들어 보였습니다. 교통, 은행, 배달, 병원 예약, 쇼핑, 행정까지 여러 생활 기능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돌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저 기술적인 편리함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도마가 한 가지
23:06 예를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았던 날이었다고 합니다. 가까운 병원을 찾고 직접 방문하고 진료를 받고 약을 받는 과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고 했습니다. 제가 예약은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토마는 그날 바로 갔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진료의 성격과 지역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상당한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도마는 은행 계좌를 만들거나 여러 생활 업무를 처리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속도였습니다. 단순히 모든 것이 빠르다는 의미가
23:51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시민이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저는 숙소로 돌아가다 편의점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학생 몇 명이 간단한 음식을 사고 있었고 야간 근물을 마친 직장인도 들어왔습니다. 누군가는 택배를 찾고 누군가는 교통 카드를 충전했습니다. 편의점 자체는 저에게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에도 작은 상점은 있으니까요. 그러나이 작은 공간이 물건을 파는 곳을 넘어 여러 생활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흥미를 느꼈습니다. 문득 서울에서는 필요할 때 바로 움직일 수 있다던 학생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그 말이
24:38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철만 편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달만 빠른 것도 편의점 하나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각각은 사소했습니다. 그러나이 사소한 것들이 계속 연결되면 시민은 하루 동안 수많은 작은 기다림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제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도시의 경쟁력은 시민의 시간을 얼마나 덜 빼앗는가와도 관련이 있다.이 순간부터 서울에 대한 제 평가가 한 단계 달라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첨단 도시라는 뻔한 표현으로 서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시민의 일상에 마찰리 적은 도시라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온 저는 제가 파리에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은행 업무를 위해 약속
25:26 시간을 맞춰야 했던 일. 서류 하나를 처리하려고 여러 절차를 거쳤던 일. 교통파업대 일정을 통째로 바꿔야 했던 날. 딸이 밤 늦게 귀가할 때마다 마음 조리던 기억. 저는 파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합니다. 수십년을 살아온 제 도시니까요. 그래서 비교가 더 불편했습니다. 서울이 완벽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인정해야 했습니다. 제가 파리에서는 당연히 감수해 온 불편을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감수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노트북을 열어 적었습니다. 유럽의 명성은 역사에서 오지만 서울의 매력은 현재의 사용 경험에서 오는 것인가? 관광객은 도시의 상징을 봅니다.
26:13 그러나 거주자는 도시의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지금 제가 조사하는 대상은 관광객이 아니라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제야 두 가지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청년들이 왜 애펠탑이 있는 파리보다 서울을 선택하는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도시가 더 유명한지가 아니라 어느 도시에서 자신의 하루가 더 잘 굴러가는가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스스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며칠 경험했다고 도시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편리함이 삶의 질 전부도 아니었습니다. 서울에는 높은 집값이 있을 수 있고 경쟁도 심하며 업무 문화도 다르고 외국인에게는 언어의 벽도 있습니다. 저는 수첩에 일부러
26:59 크게 적었습니다. 서울을 이상화하지 말 것. 저는 한국을 칭찬하러 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반대 증거를 찾으려는 연구자였습니다. 다음날 저는 클레르와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직접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었습니다. 너희는 이런 것들 때문에 한국에 가는 것이냐고요?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클레르가 되물었습니다. 저는 늦은 밤에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것, 교통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갑자기 일이 생겨도 바로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클레르는 [목을 가다듬음]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습니다. 교수님, 한국 사람들은 그런 걸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말이 정확했습니다. 서울에서 제가 가장
27:46 놀랐던 장면마다 한국 사람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너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에게 새로운 가설이 생겼습니다. 한 나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그나라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보다 너무 당연해서 자랑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유럽 청년들은 한국 사람들 스스로도 잘 보지 못하는 가치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저는 이제 한국행 현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케팝이 사람을 불러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성장 가능성이 사람을 붙잡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여기에 하나가 더해졌습니다. 생활에 마찰이 적다는 것,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것, 이동이
28:34 쉽다는 것, 필요한 서비스를 빠르게 쓸 수 있다는 것. 모두 따로 보면 사소했습니다. 그러나 합쳐지면 한 사람의 하루를 바꿉니다. 저는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유럽 청년들이 서울에서 발견한 것은 거대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가 잘 굴러가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울이 정말 더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저는 다음 조사에서 의도적으로 한국의 단점을 찾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높은 경쟁, 주거 문제, 직장문화, 언어의 벽, 외국인의 불편까지 말입니다. 저는 아직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분명이 열풍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제가 만나게 될
29:20 사람들은 예상과 전혀 다른 답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며칠 겪은 뒤 저는 제가 지나치게 빠르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트 첫 장에 크게 적었습니다. 서울의 장점만 보고 결론 내리지 말 것. 그리고 조사 방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한국 생활에 불만이 있는 외국인을 찾았습니다. 온라인 모임, 외국인 직장인 커뮤니티, 프랑스 교민, 한국 기업 근무 경험자, 대학 졸업생까지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예상대로 불만은 금방 나왔습니다. 회사에서는 위계가 강하다. 약은 문화가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 한국어를 못 하면 한계가
30:07 분명하다. 친구를 깊게 사귀는데 시간이 걸린다. 저는 오랜만에 안도했습니다. 그래 결국 현실은 어디나 비슷한 것이다. 서울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유럽 청년들에게 더 힘들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제 기존 판단에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편리함과 정착 가능성은 다른 문제다. 저는 인터뷰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힘들다면 왜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느냐고요? 첫 번째 상대는 서울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31살례 줄리앙 마르탱이었습니다. 줄리앙은 한국 회사 문화가 처음에는 상당히 힘들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회의 방식도 달랐고 장사와의 관계도 익숙하지 않았으며 프랑스보다 휴가를
30:55 자유롭게 쓰기 어렵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돌아갈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줄리앙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습니다. 힘든 것은 맞지만 여기서는 아직 자신이 해 볼 수 있는 일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고요. 저는 예상하지 못한 답에 다시 물었습니다. 파리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냐고요? 줄리앙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제가 들어갈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한국에서는 적어도 새로운 걸 해볼 틈이 있다고 느낍니다. 제 팬이 멈췄습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것은 불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불만 뒤에 또다시 기회라는 단어가 붙었습니다. 두 번째 상대는 29살의 프랑스 여성 소피 르노였습니다. 한국에서 6년째 거주 중이며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31:43 사람이었습니다. 토피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솔직했습니다. 한국 생활이 항상 좋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편한 시선을 느낀 적도 있고 서류가 한국어로만 되어 있어 곤란했던 경험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집을 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고 직장 안의 문화 차이 때문에 회사를 고민한 적도 있다고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반례를 찾았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느냐고요? 소피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러고는 예상밖에 말을 했습니다. 가끔은요. 저는 기다렸습니다. 소피가이어서 말했습니다. 돌아가서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면 결국 여기 남게 된다고요.
32:29 왜냐고 묻자 소피는 창밖을 바라보다 대답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제 인생이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있어요.이 표현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또다시 같은 의미였습니다. 클레르는 미래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마틸드는 움직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줄리앙은 해 볼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소피는 인생이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문장으로 같은 감각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한국행을 젊은 세대 특유의 모험심으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20대와 30대는 원래 변화가 많은 시기입니다. 낯선 도시의 속도와 자극을 미래 가능성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앙투한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습니다.
33:16 앙투한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습니다. 봤지? 결국 서울도 문제 투성이 아니냐고요? 저는 한국에서들은 불만을 하나씩 이야기했습니다. 높은 주업이 경쟁적인 사회, 직장문화, 언어 문제, 앙투안이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돌아올 것이다. 발리는 불편해도 8이니까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저도 똑같이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왜 한국의 단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오래 머무는가? 환상 때문이라면 현실을 겪은 뒤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충분히 겪고도 남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 가설에서 가장 큰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34:02 한국이 완벽한가 아닌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단점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엇을 얻고 있다고 느끼는지가 진짜 문제였습니다. 며칠 뒤 저는 서울에 사는 프랑스 청년 여섯 명의 저녁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음식과 문화 이야기가 오습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 있는 사람? 잠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여섯 명 중 두 명만 손을 들었습니다. 그중 한 명도 언젠가는이라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저는 예상보다 적은 숫자에 놀랐습니다. 한 사람씩 이유를 물었습니다. 한 명은 한국 회사에서 경력을 더 쌓고 싶다고 했고 한 명은 한국인 파트너와 결혼을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한 명은 창업을 생각하고
34:49 있었고 또 한 명은 프랑스보다 서울에서 더 많은 직업 기회를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조용히 듣던 27살 청년이 한 마디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사는게 쉽다는 사람은 여기 없을 겁니다. 제가 바라보자 그는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것과 미래가 없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그 순간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저 역시 말을 잃었습니다. 그 문장은 지금까지들은 모든 인터뷰를 하나로 정리해 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어려움과 가능성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로 돌아온 저는 파리의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생황, 오래된 건물, 카페, 제가 평생 사랑해 온 도시.
35:34 저는 서울이 파리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사회 문제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며칠간의 조사로 서울의 단점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를 선택할 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히려 내가 여기서 아직 뭔가 해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27 동안 주거와 교통, 안전과 경제, 문화 같은 요소로 도시 경쟁력을 분석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항목 하나를 더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미래에 대한 체감, 숫자로 측정하기 가장 어려운 요소.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도시를
36:21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일 수도 있는 요소였습니다. 저는 앙투한과 다시 통화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고 서울이 파리보다 낫다는 것이냐고 앙투한이 물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한 뒤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앙투한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요. 앙투 안에 표정이 굳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느 도시가 더 위대한지를 묻는 건 우리 세대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다른 걸 묻고 있다. 어디에서 내가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느냐? 앙투아는 파리가 가진 역사와 문화는 서울이 따라올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마야, 그런데 젊은
37:08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사는게 아니잖아. 그 말을 한 뒤 저 자신이 가장 크게 놀랐습니다. 평생 파리의 경쟁력을 믿어온 제가 처음으로 과거의 위대함과 현재의 선택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국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은 완벽한 나라가 아닙니다. 서울에도 분명한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단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왜 사람들이 남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질문은 더 깊어졌습니다. 왜 사람들은 불편을 알면서도 서울에서 미래를 느끼는가? 저는 이제 편의성과 안전만으로는 답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래 정착한 외국인들의 삶을 더 깊이
37:55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상하지 못한 다음 단계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음악을 좋아하던 학생이 한국 기업의 유럽 담당자가 되고 잠깐 공부하러 왔던 청년이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여행으로 만난 사람이 한국에서 가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질문을 던졌습니다. 혹시이 사람들은 서울을 소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서울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는 지금까지 만난 프랑스인들의 인터뷰 기록을 다시 펼쳤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처음부터 한국의 평생 살 생각으로 온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교환학생으로 왔고 누군가는 한국어를 배우러 왔으며
38:42 누군가는 1년만 일해 보려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저 여행으로 서울을 처음 방문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계획했던 체류 기간이 끝나갈 무렵 이상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어 보자. 여섯 달이 1년이 되고 1년이 3년이 되었습니다. 학생은 직장인이 되고 직장인은 새로운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연애를 시작한 사람은 가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는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관광객의 증가는 한 나라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정보다 오래 머무는 사람의 증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노트에 적었습니다. 찾아오는 것은 매력의 결과지만 남는 것은 선택의 결과다. 이제 제 관심은 왜
39:28 한국에 오는가에서 한국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로 옮겨갔습니다. 저는 33살의 프랑스인 엘로디 카롱을 소개받았습니다. 처음 한국에 온 것은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계획은 단 1년이었습니다. 당시 그녀가 알던 한국 역시 음악과 영화 몇몇 대기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생활을 하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프랑스로 돌아간 뒤에도 한국과의 연결을 끊치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그녀는 한국 기업과 프랑스 시장을 잇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제품을 유럽에 소개하고 프랑스 소비자의 반응을 한국 직원에게 설명하며 양쪽의 문화 차이를
40:16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프랑스 사람이냐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엘로디는 웃으며 프랑스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더니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제 경력은 한국이 없으면 설명할 수 없어요. 그 문장이 저에게 깊게 남았습니다. 한국은 그녀에게 좋아하는 외국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의 일부를 만들어 준 장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한국행의 파급 효과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외국 청년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경험을 얻은 사람이 다시 세계와 한국을 잇는 통로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화적 호감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41:03 사람을 통해 만들어지는 국제적 연결망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30살의 프랑스인 니콜라 페랑이었습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일하며 여행하는 제도를 통해 왔습니다. 한국 음식과 문화가 좋아서 선택한 나라였고 처음 계획은 정확히 1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여러 한국인 친구를 사귀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니콜라는 프랑스와 한국을 잇는 작은 사업 아이디어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의 제품과 브랜드를 프랑스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반대로 프랑스 기업이 한국 시장에 들어올 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현실적인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요? 니콜라는 웃으며
41:51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한국에서 시작하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해보자는 사람을 많이 만났거든요. 저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니콜라는 혼자 사업을 준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인 지인이 통역을 도와주었고 또 다른 사람은 거래처를 소개해 주었으며 누군가는 작은 사무 공간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니콜라의 사업이 성공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외국인 청년 한 명의 아이디어가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실제 행동으로 바뀌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클레르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서울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던 그 말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42:38 저는 서울을 주로 시스템의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교통, 안전, 디지털, 편의성, 경제적 기회 그런데 니콜라를 취재하면서 처음으로 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사람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니콜라와 함께 일하는 50대 한국인 사업가 김영수 씨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에게 왜 경험도 많지 않은 프랑스 청년을 도와주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영수 씨는 대단한 이유가 없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한국까지 와서 해 보겠다는데 한번 해 보라고 해야죠. 저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김영수 씨는 자신도 젊은 시절 작은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에 도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니콜라에게 자신의 거래 경험과 시장
43:26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보았습니다. 예순에 가까운 한국인과 30살 프랑스인이 서툰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같은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국적도 세대도 살아온 역사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한국 시장을 알고 다른 사람은 프랑스 시장을 알았습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노트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습니다. 도시의 활력은 건물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시작할 때 생긴다. 서울에 대한 제 평가가 다시 한 단계 변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사례를 만났습니다. 36살에 프랑스인 앙투한 뒤발이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온 것은
44:11 여행이었고 몇 주 머물고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다 한국에서 인연을 만나 다시 방문했고 결국 서울에서 직장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저녁 식탁에는 프랑스식 빵과 한국 음식이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앙투아는 딸에게 프랑스어로 말하고 아내는 한국어로 대답했습니다. 아이는 두 언어를 섞어가며 부모와 대화했습니다. 저는 순간 말수가 줄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한국행을 숫자로 분석했습니다. 유학생이 몇 명인지, 체류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몇 명이 남고 싶어 하는지,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한 가족의
44:56 인생이었습니다. 저는 앙투한에게 언젠가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딸을 바라본 뒤 대답했습니다. 이제 돌아간다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다고요? 이유를 묻자 그가 말했습니다. 제 집이 여기에도 있으니까요. 그 한 마디가 저에게 묘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국은 누군가에게 여행지가 아니었습니다. 유학지도 아니었습니다. 집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클레르 마틸드 토마 줄리앙 소피 엘로디 니콜라 앙투안. 출발점은 제각이었습니다. 음악, 드라마 한국어 여행 교환학생 취업.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유가 변해갔습니다. 문화에서 생활로,
45:44 생활에서 기회로, 기회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정착으로. 저는 이제 제 최초의 가설이 얼마나 단순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케팝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첫 페이지에 불과했습니다. 문화는 한국을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겪은 일상이 머물게 만들었고 사람과 기회가 그곳에서 다음 인생을 만들게 했습니다. 저는 노트 한가운데에 크게 적었습니다. 한국은 더 이상 소비되는 대상만이 아니다. 삶의 장소로 선택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울의 속도와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46:31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들어오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한다고요. 저는 처음에는 이것을 단순히 빨리빨리 문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빠르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멈춰 있지 않다는 감각이었습니다. 클레르에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 마틸드에 움직이는 느낌, 소피에 진행 중인 인생, 니콜라의 일단 해보자는 사람들, 전혀 다른 증언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났습니다.이 사람들은 한국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호텔로 돌아가는 길. 저는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진 서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동안 저는이 도시의
47:16 속도를 피곤함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불빛 속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시험을 공부하고 누군가는 다른 나라에서 건너와 새로운 삶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 제 젊은 시절에 파리를 떠올렸습니다. 그때의 파리에도 이런 감각이 있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우리 세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저는 처음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부러움이었습니다. 한국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아직 자기 도시에 내일을 믿고 있다는 그 감각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연구자로서 저는 다시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었습니다. 활력, 기회, 속도, 도전 모두
48:04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하지만 도시와 국가의 진짜 힘은 좋은 시절이 아니라 위기가 왔을 때 드러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스템은 평상시에는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 닥치면 오히려 쉽게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이 모든 것이 좋은 환경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연구 방향을 다시 바꿨습니다. 한국이 실제 위기와 압박을 받았을 때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하기로 한 것입니다. 기업이 흔들릴 때, 산업이 위기를 맞을 때, 사회 전체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났을 때 과연 그때도이 나라의 속도와 실행력은 작동했을까? 저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습니다.이 질문을
48:49 따라가던 중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과거의 기록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기록은 지금까지 제가 조사한 유럽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동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들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노트북을 닫으며 혼잣 말했습니다. 좋아. 이제이 나라가 어려울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자. 저에게는 한국을 시험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질문은 제 자신의 마지막 확신을 시험하게 되었습니다. 강한 나라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가 약했을 때를 봐야 합니다. 저는 한국이 큰 위기를 겪었던 시기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이후에 폐허, 빈곤 부족했던 산업 기반, 외화 부족,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49:36 산업 국가로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씩 살폈습니다. 현재 서울의 모습만 알던 저에게 과거의 사진들은 낯설었습니다. 지금 제가 걸어다니는 도시와 같은 나라고 쉽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흑백 사진 속 사람들의 옷차림, 전쟁 이후의 거리, 부족했던 기반 시설, 그리고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했던 젊은이들. 저는 처음으로 현재 서울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강역을 체감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넘기던 제 손이 어느 기록에서 멈췄습니다. 서독으로 향한 한국인 광부들. 저는 화면을 확대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해외 노동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읽을수록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50:23 전 한국은 지금과 전혀 다른 나라였습니다. 경제적 기회는 부족했고 해외에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이 절실했습니다. 그시기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서독의 광산으로 향했습니다. 이어 한국의 간호 인력도 독일로 건너갔습니다. 저는 오래된 사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젊은 한국 남성들이 낯선 유럽 당에서 작업복을 입고서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진에는 한국 여성들이 간호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독일은 문화적 호기심 때문에 가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더 나은 임금, 가족의 생계, 자신의 미래, 그리고 고국에 남은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말을 잃었습니다.
51:10 며칠 전 인터뷰했던 프랑스 청년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캐리어를 끌고 서울로 향하는 클레르, 한국에서 사업을 준비하는 니콜라, 한국에서 경력을 만든 Lood디, 서울에서 가족을 만든 앙투안, 그리고 60여년 전 낡은 가방을 들고 유럽으로 향했던 한국 청년들. 방향만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저는 호텔 책상 위에 세 개 지도를 펼쳤습니다. 첫 번째 화살표를 그렸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유럽으로 그리고 그 아래 다른 색으로 두 번째 화살표를 그렸습니다. 지금 유럽에서 한국으로 한동안 저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278 동안 인구 이동을 연구한 저에게이 그림이 갖는 의미는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사람의 이동에는 이유가
51:58 있습니다. 더 안전한 곳, 더 많은 일자리가 있는 곳, 더 높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곳,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곳. 물론 두 시대의 이주는 성격도 규모도 맥락도 달랐습니다. 그것을 단순히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강렬했습니다. 한때 자기 나라의 젊은이들이 기회를 찾아 해외로 나가야 했던 나라가 이제 다른 선진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선택지로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 연구 제목을 바꿨습니다. 프랑스 청년의 한국 선호 현상이라는 문장을 지웠습니다. 새로운 제목을 적었습니다. 이동 방향의
52:44 역전. 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광보와 간호사들의 개인적인 기록을 더 찾아보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낯선 나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언어, 다른 음식, 다른 문화, 광산이라는 고된 작업장, 병원이라는 긴장된 노동 현장, 그리고 한국에 남은 가족에게 보내던 돈. 그 순간 저는 제가 지금까지 써 온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이동. 학자의 보고서에서 이동은 화살표 하나면 끝납니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나라로 몇 명이 움직였는가? 하지만 실제 사람에게 이동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고 자신이 쓰던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며
53:30 전혀 모르는 나라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서울에 사는 프랑스 청년들에게서 보았던 용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60여년 전 한국의 젊은 이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절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떠났습니다. 여기서 제 감정은 호기심에서 존중으로 처음 넘어갔습니다. 저는 당시 독일에서 일했던 한국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소개를 통해 80대의 전직 파독 광부 박정호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화려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젊었을 때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54:17 독일에 갔다고 했습니다. 처음 광산에 내려갔던 날 낯선 언어가 들리던 숙소.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밤 월급을 받으면 자신이 쓸 돈보다 가족에게 보낼 돈부터 계산했던 기억을 담담히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때 가장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박정호 어르신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거창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안 살았으면 했죠. 제 팬이 멈췄습니다. 그분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신보다 자식이 잘 살기를 바랐고 자식보다 손주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다고요. 그뿐이었습니다. 저는 문득 며칠 전 서울에서 보았던 젊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스마트폰으로
55:04 지하철 도착 시간을 확인하던 학생, 밤 늦게 혼자 집으로 걸어가던 여성. 카페에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던 니콜라, 한국 기업과 프랑스를 있던 엘로디 저에게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였던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저는 혼자 걸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서울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떠올렸습니다. 지하철이 편리하다. 인터넷이 빠르다. 밤길이 안전하다. 서비스가 효율적이다. 저는 그것들을 도시 경쟁력의 지표로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호 어르신의 이야기를들은 뒤부터 같은 풍경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제가
55:50 며칠 동안 평가표에 체크했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바라던 미래의 일부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을 과도하게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경계했습니다. 한국의 발전을 특정 세대 하나만의 공로로 단순화할 수도 없었습니다. 정부, 정책 기업 노동자 교육 국제 환경까지 수많은 요소가 함께 작동했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한국과 60여요. 연전의 한국 사이에는 한 세대 이상의 엄청난 노동과 선택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한국을 분석 대상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 사회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파리의 앙투안에게 전화를
56:36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서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60여년 전 독일의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앙투아는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잠시 침묵한 뒤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상한 그림을 하나 그렸다. 60여년 전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왔다. 돈을 벌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앙투하는 말 없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학생들이 한국으로 가고 있다. 이번에는 앙투한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세계지도 위의 화살표를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말했습니다. 이건 서울이 인기 있다는
57:22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한나라의 위치가 바뀐 이야기야. 그 순간 제 연구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서울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지난번에 탔던 것과 똑같은 지하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노인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고 학생들이 무선 이어폰을 낀 채 영상을 보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자연스럽게 관승했습니다. 아무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박정호 어르신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안 살았으면 했죠.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이 평범함 자체가 그 세대가 원했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더 이상 먹고 살기 위해 먼 나라로
58:09 떠날 필요가 없는 나라. 오히려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나라. 저는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한국의 현재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현재를 이해하려면 한국 사람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함께 봐야 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온 저는 지난 며칠간의 노트를 처음부터 펼쳤습니다.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왜 프랑스 청년들은 서울로 가는가? 저는 그 문장을 바라보다 천천히 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적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사람들이 떠나던 나라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나라가 되었는가? 이제 연구 대상은 프랑스 청년들이 아니었습니다. 서울도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58:55 60년이었습니다. 저는 세계지도 위 화살표 사이에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 질문이 다음 이야기에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호텔 벽에 긴 종이 한 장을 붙였습니다. 왼쪽에는 60여 년전, 오른쪽에는 현재, 그리고 그 사이에 긴선을 그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한 방식대로 경제와 도시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산업 기반의 확대, 수출 성장, 도로와 항만, 교육 확대, 제조업 경쟁력, 전자산업 자동차 반도체 디지털 인프라. 그런데 자료가 쌓일수록 저는 한 가지 문제를 느꼈습니다. 숫자는 결과를 보여 줄뿐 그 결과를 만든 사람들의 시간을
59:40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공장이 만들어졌다는 기록 뒤에는 그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출이 늘었다는 숫자 뒤에는 밤 늦게까지 제품을 만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학교가 늘었다는 통계 뒤에는 자신의 형편이 어려워도 자식을 공부시킨 부모가 있었습니다. 도로가 깔렸다는 결과 뒤에는 그 길을 직접 놓은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박정호 어르신의 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안 살았으면 했죠. 그제야 저는 한국 발전의 긴 시간축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그래프가 아니었습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계속 무언가를 넘겨 준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산업화
1:00:26 시기를 살아온 여러 세대의 증언을 접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 작은 가게를 운영했던 사람, 농촌에서 자녀를 도시, 학교로 보냈던 부모, 해외에서 일했던 노동자, 젊은 시절 기술을 배우려 공장에 들어갔던 사람. 이들의 삶은 서로 달랐습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었습니다. 나는 못 배워도 자식은 공부시켜야 했다. 우리 아이만큼은 이런 고생을 안 했으면 했다. 먹고 사는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저는이 말을 들을수록 박정호 어르신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부모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문장이 여러 사람에게서 반복되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1:01:14 노트에 적었습니다. 세대간의 열망, 자신의 삶에서 얻지 못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 주려는 마음. 저는 처음으로 이것을 한국 발전을 이해하는 하나의 핵심 열쇠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한국 산업의 성장 과정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첨단 기술 국가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술을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만들고 품질을 개선하고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고 더 높은 단계의 제품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처음 기대했던 기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매우 지루한 반복이 보였습니다. 품질 개선, 교육 투자, 수출, 재투자,
1:02:00 기술 축적, 그리고 또다시 개선.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한국의 성공을 기적이라고 부르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적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납니다. 하지만 제가 보고 있는 한국의 변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십년 동안 같은 방향으로 반복된 선택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중얼거렸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축적이었군. 그 한 문장이 한국에 대한 제 인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밤길을 혼자 걷던 여성, 정시에 들어오는 지하철, 휴대전화 하나로 처리되는 여러 생활 서비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학생, 창업을 준비하던
1:02:45 니콜라, 유럽 시장을 담당하는 Lood디, 한국에서 가족을 만든 앙투안. 처음에는 각각 다른 서울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의 긴 결과처럼 보였습니다. 안전, 교육, 기술, 기업, 인프라, 생활 서비스, 문화적 영향력이 모든 것이 서로 무관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라가 수십년 동안 계속 다음 단계로 올라가며 만들어낸 복합적인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결과를 지금 외국 청년들이 일상 속에서 누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그런데 그 평범함을 만들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은 평생을
1:03:32 사용했습니다. 저는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작성했던 메모를 다시 보았습니다. 야간 보행의 체감 안전성, 예상보다 높음. 저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옆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바라던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클레르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서울행 준비가 거의 끝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큰 캐리어를 열어 놓은 사진도 함께였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24살의 프랑스 여성 낯선 나라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청년. 그 순간 제 머릿속에 60여년 전에 오래된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젊은 한국 광부들이 독일로 떠나기 전서 있는 모습, 낡은 가방, 긴장된
1:04:19 표정, 알 수 없는 미래. 두 사진 사이에는 60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상황도 목적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쪽은 훨씬 가난하고 절박했던 시대의 노동 2주였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현대 청년의 이동이었습니다. 저는 둘을 똑같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너무나 선명했습니다. 둘 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오른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가 정확히 뒤집혀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유럽, 지금은 한국. 저는 처음으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혼잣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60년이면 한 사람의 인생이군. 한 사람이 젊어서 떠나고 아이를 키우고 손주를 볼 수
1:05:06 있는 시간. 그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한나라의 젊은이들이 향하는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출국하기 전 박정호 어르신을 한 번 더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연구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휴대전화에서 클레르가 보내온 사진을 보여 드렸습니다. 큰 캐리어를 싸고 있는 프랑스 청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설명했습니다. 제 학생입니다. 곧 한국에 옵니다. 잠깐 여행하러 오는게 아닙니다. 여기서 공부하고 가능하면 일도 하고 싶어 합니다. 박정호 어르시는 사진을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어떤 생각이 드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잠시 웃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헛고생한 건
1:05:53 아니었네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정호 어르신은 거창한 애국심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몇 위인지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젊은 시절 떠났던 나라의 청년이 이제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그 애들이 와서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 순간 저는이 이야기의 핵심을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과거 한국 청년들이 유럽으로 갔던 이유도 결국 더 나은 삶이었습니다. 오늘 프랑스 청년들이 한국으로 오는 이유도 결국 자기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한 나라의 위상이 바뀌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사람들이 그 나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1:06:39 그곳에 걸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몰랐습니다. 그날 밤 저는 숙소에서 제 첫 인터뷰 기록을 다시 들었습니다. 클레르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교수님, 저는 제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아서 파리를 떠나는 거예요. 그리고 박정호 어르신의 목소리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안 살았으면 했지요. 두 문장이 제 머릿속에서 겹쳤습니다. 저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한국을 효율적인 도시라고 평가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활력 있는 사회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모든 결과에는 시간과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노트에 적어 두었던 단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국의 기적. 저는 그 문장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대신
1:07:26 적었습니다. 한국의 축적. 저에게이 차이는 중요했습니다. 기적이라고 부르면 운이 좋았던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제가 본 것은 운이 아니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교육하고 만들고 수출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며 다음 세대를 밀어올린 결과였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제 판단을 분명하게 인정했습니다. 나는이 나라의 결과만 보고 있었다. 과정은 보지 못했다. 조사를 마친 저는 인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습니다. 그중 외국인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큰 캐리어, 배낭, 서툰 한국어, 휴대전화로 지하철 노선을 확인하는 모습.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도 보았던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1:08:13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저는 탑승고 앞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60여년 전 한국의 젊은 이들은 이런 마음으로 유럽행 비행기를 기다렸을까? 무섭지만 가야 하고 낯설지만 기대되고 저곳에 가면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그리고 오늘 유럽의 젊은이들이 비슷한 기대를 안고이 나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좌석에 앉아 창밖에 인천 공항 불빛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노트 마지막 페이지에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미래의 도시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발견한 것은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 준 사람들이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렸습니다. 저는 이제 8위로
1:09:00 돌아갑니다. 하지만 파리를 바라보는 제 눈은 한국에 오기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을 평가하러 왔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묻게 되었습니다. 우리 유럽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마지막 이야기에 문을 열었습니다. 파리의 공항에 도착한 저는 오랜만에 익숙한 공기를 마셨습니다. 익숙한 언어, 익숙한 거리, 익숙한 건물. 저는이 도시를 여전히 사랑합니다. 서울을 경험했다고 해서 파리의 역사와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비교의 기준이었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는 도시의 위상을 역사와 문화, 명성과 세계적 인지도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1:09:47 서울에서 돌아온 뒤에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민이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하루의 작은 불편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젊은 세대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여지가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도시에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가?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파리는 여전히 위대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위대함만으로는 다음 세대의 선택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 저는 제 대학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됐던 바로 그 공간이었습니다. 책상, 세계 지도, 학생들의 논문, 그리고 클레르가 앉았던 의자. 몇 주 전만 해도 저는이 자리에서 클레르에게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1년 보내는 건
1:10:34 좋은 경험이지만 내 미래를 걸 도시는 아니라고요. 저는 그 말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잠시 후 클레르가 연구실로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서울 출국을 앞둔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준비는 다 됐느냐고 묻자 클레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고는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교수님은요. 한국에서 답을 찾으셨어요. 저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답을 줄 생각이었습니다. 안전, 편리함, 기회, 문화, 도시의 속도.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왜 서울에 가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아? 무엇이냐고 클레르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저는
1:11:20 대답했습니다. 그 도시가 완벽해서가 아니야. 아직 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지. 클레르는 아무 말 없이 미소지었습니다. 자신이 처음 했던 말을 제가 이제야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한국행을 비웃었던 동료 교수 앙투안과 다시 만났습니다. 앙투한은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신봉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냐고요? 저는 웃으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서울이 8위를 이겼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라고요? 앙투안이 의야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설명했습니다. 도시의 역사는 순위표처럼 단순하지 않다. 파리와 서울은 전혀 다른 역사와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쪽이 좋아졌다고 다른
1:12:06 쪽이 실패했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향이 달라지고 있어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앙투한이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겐 아마 아닐지도 몰라. 우리는 이미 직업도 있고 집도 있고이 도시에서 만든 삶이 있으니까. 하지만 25살에게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는 건 다른 문제야. 그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남은 50년을 보고 선택하거든. 앙투아는 이번에는 바로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유럽의 패배를 본게 아니야.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우이가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봤어. 며칠
1:12:52 뒤 저는 대학에서 한국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강의실에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제목은 비슷했습니다. 서울의 경쟁력, 한류와 프랑스 청년, 아시아 도시의 성장. 하지만 화면에 뜬 제목은 전혀 달랐습니다. 60년 만에 뒤집힌 화살표. 첫 화면에는 두 장의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한쪽에는 과거 유럽으로 향했던 한국의 젊은이들. 다른 한쪽에는 지금 서울로 향하는 유럽 청년들을 상징하는 모습. 저는 천천히 설명했습니다. 두 이동은 역사적 맥락도 이유도 달랐습니다. 과거 한국인의 유럽행은 훨씬 절박한 생계와 국가적 빈곤의 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유럽 청년의 한국행은 선택지가
1:13:40 많은 시대의 유학과 취업, 재료입니다. 따라서 둘을 똑같은 현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60여년 전 한국의 젊은 이들에게 유럽은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부 유럽의 젊은 이들에게 한국 역시 그런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국가의 위상은 국제 회의의 좌석이나 화려한 건물만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훨씬 단순한 곳에서 드러납니다. 젊은 사람이 자기 인생에 몇 년을 어디에 걸고 싶어 하는가? 강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간견 마지막에 한국을 칭찬하는 결론을 내리지
1:14:26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도시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만들고 싶습니까? 뉴욕 런던 서울 도쿄 싱가포르, 파리. 여러 답이 나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도시가 1등인가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도시에서도 여전히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국가와 도시가 다음 세대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 만난 박정호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독일로 향했던 한인 가족을 위해 일했던 사람 그리고 그가 평생 품었던 단순한 소망.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안 살았으면 했죠. 저는 학생들을
1:15:13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장 놀란 것은 초고층 빌딩도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한 세대의 소망이 다음 세대에게는 너무 평범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간견을 마친 뒤 저는 혼자 연구실에 남았습니다. 첫날 작성했던 연구 노트를 꺼냈습니다. 가장 첫 페이지 왜 프랑스 청년들이 서울로 가는가? 그 아래에는 제가 처음 예상했던 답이 적혀 있었습니다. 케팝, 드라마, 일시적 유행. 저는 한동안 그 글씨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줄을 그었습니다. 그 위에 새로운 문장을 썼습니다. 그곳에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뒤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완전한 답은
1:15:58 아니었습니다. 결국 클레르가 서울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오늘의 서울을 만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 청년들이 누리는 삶 역시 다음 세대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변화가 문화적 인기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 제품을 쓰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의미 있는 변화는 한국이 삶의 선택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할 나라, 일해 볼 나라, 사업을 시도할 나라, 몇 년 살아볼 나라, 경우에 따라 가족을 만들 나라. 한 국가가 이런 선택지에 포함된다는 것은 단순한 유행보다 훨씬
1:16:45 오래 가는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이 앞으로도 영원히 성장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한국 역시 저출산과 높은 주업이 경쟁과 세대 갈등 같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지난 60년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그 반대였습니다. 나라의 미래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과거 세대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면 오늘의 세대 역시 다음 세대가 살아갈 한국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몇 주 뒤 클레르가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제 휴대전화에 사진 한 장이 왔습니다. 인천공항 큰 캐리어. 조금 긴장했지만 환하게 웃는
1:17:33 얼굴. 사진 아래에는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교수님 도착했어요. 저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60여년 전 유럽으로 향했던 젊은 한국인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들도 낯선 공항에 내렸을 것입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을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고 그래도 자신들의 미래를 믿고 앞으로 걸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 프랑스 청년이 같은 기대를 품고 한국당에 내렸습니다. 저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경험하고 오렴. 그렇게 쓰다가 멈췄습니다. 그리고 지웠습니다. 대신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미래를 잘 만들어 보렴. 메시지를 보내고 저는 창밖에
1:18:18 파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제가 한국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한국이 프랑스를이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럽이 끝났다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서울이 완벽한 도시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훨씬 단순하고 강력했습니다. 한때 자기 나라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나야 했던 나라가 이제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변화의 뒤에는 수십년 동안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잘 살기를 바라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연구 노트를 닫았습니다. 그 표지에는 처음과 전혀 다른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60년의 대역전
1:19:06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마지막 한 문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서울을 조사하러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나라를 물려주는 방법을 보았다. 여기까지 프랑스 도시 사회학자 장피에르 모로가 대한민국에서 발견한 60년의 대역전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도시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싶으신가요? 한때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야 했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걸고 찾아오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 그 놀라운 역전의 뒤에는 자식만큼은 나보다 잘 살기를 바라며 묵묵히 한 시대를 견뎌낸 우리 부모 세대의 땀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1:19:52 대한민국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해 주시면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해외 감동 사연을 소개해 드리는 스페셜 코리아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