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팔의 병예를 목숨보다 아낀다던 사무라이 정작 조선에 쳐들어올 땐 총을 들고 왔습니다. 그 총 앞에서 대포와 거북선으로 버틴 쪽이 조선이었어요. 미국 젊은이들이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웅 순위가 뒤집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하나 더 있어요. 미해고는 이순신을 이미 1929년의 영웅이라 적어뒀습니다. 대중만 몰랐던 거죠. 그 늦은 바이언의 전말입니다. 놀랍게도팝과 드라마 라면에 이어 미국에 상륙한 한류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이번 주인공은 가수도 배우도 아니에요. 400년 전 조선의 바다를 지킨 제도 충무공입니다. 미국 출판 시장에서 먼저 신호가 왔어요. 충무공을 주인공으로 한 그래픽 노블 시리즈가 나왔거든요. 심지어 만든
0:46 사람은 한국계도 아닌 시카고 토박이 청년입니다.이 이 시리즈가 지금까지 팔린 양이 무려 46만 부예요. 도미체 16만 부, 디지털 판이 30만 부를 넘겼습니다. 망토들은 히어로들이 꽉 잡고 있는 시장에서 거둔 정말 대단한 성적이죠. 해군 전문 매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어요. 미해군 연구소 뉴스가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군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답변이 무려 900개 가까이 쏟아졌고 투표는 26,000표를 넘겼어요. 항공모과 전함이 질비한 후보들 사이에서 독자들이 유독 높이친 배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거북선이었어요. 항공모함을 굴리는 나라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옛 전함에 손을 들어 준
1:31 거예요.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흔든 걸까요? 답을 찾으려면 먼저 미국인들 머릿속에 동양 영웅부터 봐야 합니다. 오랫동안 그 자리의 주인은 사무라이였어요. 할리어드 영화와 일본 게임이 수십년 동안 그 이미지를 아주 공들여 쌓아 올렸거든요. 홀로 칼을 뽑아 적 수십명을 베어 넘기는 검계. 패배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명예의 전사. 미국 관객에게 사무라이는 그야말로 동양 무사의 완성형이었습니다. 전국 시대 무장들 이름을 게임으로 외운 아이들도 한둘이 아니었죠. 하지만 요즘 미국 젊은 층은 조금 다릅니다. 멋있다는 감탄보다 먼저 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그거 진짜야? 영상 하나를 봐도 댓글로 출처부터 따지는 세대거든요.이
2:18 질문 앞에서 사무라이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혼자서 수십명을 베는 장면은 실제 전쟁 기록 어디에도 없다는게 드러났어요. 그리고 결정타가 달아듭니다. 임진을 한 때 일본군이 믿은 주력 무기는 칼이 아니라 조총이었다는 사실이죠. 일본은 포르투갈 상인에게서 들려온 총을 수십년간 대량으로 찍어낸 나라였어요. 칼의 전사라는 이미지는 사실 훗날 더칠된 포장에 가까웠던 겁니다. 그렇다면 그 총의 맞선 쪽은 어땠을까요? 바로 여기서 조선 바다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리고이 진짜 기록은 영화보다 훨씬 말이 안 돼요. 자, 이제 링 위에 두 선수를 올려보겠습니다. 청코너는 도요토미 히데우시가 보낸 일본군입니다. 1592년 봄 일본은 15만이 넘는
3:05 대군을 바다 건너 조선에 풀어 놓았어요. 부산에 옳은 일본군은 20날 남짓만의 한양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육제에서는 막을 방법이 종처럼 보이지 않았죠. 홍코너는 전라 자수사 이순신입니다. 그는이 싸움의 급소가 땅이 아니라 바다라는 걸 꿰뚫고 있었어요. 대구는 먹어야 움직이고 먹을 것은 대로 실어와야 했거든요. 바닷길만 끊으면 어마어마한 15만 대군도 굶주인 군대가 됩니다. 그래서 충구공은 첫사원부터 적의 백기를 정조준했어요. 오포에서 시작된 연승 엔진이 4천과 당포를 거쳐 한산도로 이어졌습니다. 거복이 처음 전장의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무렵이에요. 상상해 보세요. 새옷을 촘촘히 박은 지붕 덮힌 배가 적진
3:51 한가운데로 파고듭니다. 적선에 뛰어올라 칼싸움을 버리는게 특기였던 일본 수군에겐 악몽 같은 상대였죠. 올라탈 곳이 없으니 자랑하던 칼솜씨를 쓸 데가 없었던 거예요. 뱀머리 용머리에서 연기를 뽑으며 달려드는 모습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명장면은 몇 뒤에 나옵니다. 1597년 가을 조선 수구는 거의 전멸 상태였어요. 충무공이 모함으로 쫓겨난 사이 7천양에서 한 대가 무너졌거든요. 심지어 임금마저 수군을 거두고 육지에서 싸우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다시 불려나온 충무공이 올린 한 줄이 있어요. 신내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여기에 한 척이 더 모여 13척이 됐습니다. 상대는 적게
4:37 잡아도 133척이었어요. 무려 열배가 넘는 차입니다. 누가 봐도 결과가 정해진 경기였죠. 충무공이 고른 경기장은 진도합 울돌목이었습니다. 바닷물이 울면서 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폭이 아주 좁고 물살이 거칠기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곳입니다. 좁은 물목에서는 배가 아무리 많아도 한꺼번에 덤빌 수가 없어요. 숫자의 싸움을 한 척대 한척의 싸움으로 바꿔 버린 겁니다. 그리고 충무공에게 숨겨둔 무기가 하나 더 있었어요. 흥미롭게도 그 무기는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울목의 물살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방향을 확 뒤집습니다. 싸움 초반엔 물살이 일본 함대에 등을 밀뤄줬어요. 조선 대장선 한척이 맨 앞에서 홀로 버티는 정말
5:23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물대가 바뀌는 순간 판이 뒤집힙니다. 이번엔 물살이 일본 배들의 뱃을 정면으로 때리기 시작했어요. 좁은 무게 몰려 있던 배들이 서로 부딪히고 뒤엉킵니다. 그 한가운데로 조선 수분의 포탄이 쏟아졌죠. 이날 부서진 일본 배가 무려 31척이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수구는 배를 단 한 척도 잃지 않았어요. 용기만으로이긴 싸움이 아니었던 겁니다. 바다를 통째로 읽고 체스 두듯 술을 계산한 진짜 두뇌 싸움이었어요. 미국의 한 역사의 설는이 대목에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검객 하나가 수십명을 베는 건 그래도 영화라 치겠다고 해요. 하지만 13척이 100척 넘는 함대를 꺾는 건 정말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6:09 그런데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충부공은 7년 전쟁 동안 20번 넘는 해전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단 한 번도지지 않았어요. 지연낸 영웅이 차지하던 자리에 진짜 기록이 걸어 들어온 셈이죠. 여기까지 들으시고 가슴이 좀 뜨거워지셨다면 좋아요 한번 눌러 주세요. 이런 이야기가 더 멀리 퍼지는데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승구는 바다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언제 끝나고 300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곳에서 2라운드가 열렸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전쟁터는 다가 아니라 종이 위였습니다. 1901년 일본에서 조선의 근세사를 다룬 책 한권이 나옵니다. 쓴 사람은 하야시 다이스케라는 역사학자였어요. 첫날 식민 사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6:55 꼽히는 사람이죠.이 이 책이 겨냥한 관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거북서언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삼키려고 역사책부터 새로 쓰던 참이었어요. 조선은 원래 약하고 뒤쳐진 나라였다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그 이야기에 딱 맞지 않는 존재가 하나 있었습니다. 일본 수군을 연전 연패로 몰아놓은 조선의 바다 그리고 그 바다에 배였죠. 사정은 이랬습니다. 몇 해 전 영국 해군 쪽 보고서에 조선에 철판 덮은 전함이 있었다는 내용이 실렸어요.이 소식이 신물을 타고 번지면서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겠죠. 자기들을 바다에서 박살낸 배가 진짜 세계 최초
7:42 철갑선이라뇨? 하야씨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섭니다. 조선의 철갑선이라니 그런 건 없었다. 영국 보고서가 말한 건 판자를 덮은 배였을 뿐이다. 거북 등딱지처럼 나무판을 둘렀을뿐 쇠 같은 건 없었다는 거예요. 세계가 지목하던 조선의 자랑을 그야말로 한 순간에 나무 상자로 끌어내린 겁니다. 한마디로 조선 거북선 이야기를 거짓으로 몰아간 셈이었어요. 여기서 끝났다면 차라리 나왔을 겁니다. 심지어 하야시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오히려 일본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남의 집 문패를 떼다가 자기 집 때문에 거는 격이죠. 조선의 자리를 지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자리를 통제를 차지하려 한 거예요. 바다에서 진싸움을 책상 위에서 뒤집어 보려는
8:27 아주 뻔뻔한 시도였습니다.이 흐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여태에 뒤 아오야기 스나타로라는 인물이 속한 단체가 충모공 전지부의 편해냅니다. 그런데이 책에 실린 거북선 그림이 어딘가 이상했어요. 조선 시대 원본 도판 대신 볼품 없이 바뀐 그림이 들어가 있었던 겁니다. 국내에 한 연구자는 이것을 의도적인 변조로 보고 있습니다. 철유갑 거북선이 식민 통치의 논리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거예요. 한번 떠올려 보세요. 나라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우리 바다를 지킨 배의 모습까지 흐려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 흔적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예요. 그러면이 2라운드는 일본의 완승으로 끝났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9:12 여기서이 이야기에 가장 큰 반전이 터집니다. 하야시의 책이 나오고 겨우 7년 뒤였어요. 1908년. 이번엔 일본 해군 안에서 정말 뜻밖에 책한 권이 나옵니다. 제목은 제국 국방사론이었습니다. 쓴 사람은 사토 데스타로 훗날 해군대학교 교장까지 오르는 인물이에요. 너희 전쟁 때 함대 참모로 포화속을 두빈 그야말로 일본 해군의 대표 이론가였죠. 그런 사람이이 책에 충무공을 이렇게 적어 놓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제독으로 동쪽에 이순신과 서쪽에 넬슨을 꼽는다. 다만 인간과 도덕성에서는 넬슨이 이순신에 못 미친다. 그가 서양에 덜 알려진 건 조선에서 태어난 불른탓일 뿐이다.
9:59 믿어지세요? 일본 학자가 거북선을 깎아내리던 바로 그 무렵이었어요. 일본 해군의 두뇌가 영국의 국민 영웅보다 충무공을 한 칸 더 높이 세운 겁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심판석에서 판정이 통째로 뒤집힌 격이에요. 그것도 상대팀 벤치에서 나온 판정이었고요. 하야시가 깎아내린 그 이름을 하야시의 나라 해군이 도로 세워 올린 겁니다. 아주 제대로 재발등을 찍은 셈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이 대목이 제일 통쾌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랑해도 남들은 그저 자와자찬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자기들을 바다에서 무너뜨린 적장에게 일본 해군이 스스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보다 확실한 증언이 또 있을까요? 일본 해군이 축무공을
10:46 연구한 건 사토 혼자만의 일도 아니었어요. 사실 메이지 시대 일본 해군은 충무공의 전술를 공부하고 장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일본에서 첫 이순신 전기가 나온게 1892년이었거든요. 단지 신체호 선생이 이순신 신전을 쓰기 무려 16년 전에 일입니다. 적을 가장 잘 아는 건 그 적에게 가장 크게 당해 본 쪽이라는 말이 있죠. 77, 7년 전쟁 동안 바다에서 가장 뼈 아프게 당한 쪽이 바로 일본 수군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300년 뒤 일본 해군 장교들의 교재가 된 거예요. 학자들이 종이 위에서 지우려 해도 바다에서 싸워 본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2라운드의 판정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일본 학자는 지우려 했고 일본 해군은 끝내 지울
11:32 수 없었던 거예요. 자, 이제 무대를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옮겨 보겠습니다. 1929년 여름 미해군 연구소가내는 학술지의 글 한편이실입니다. 제목은 한국의 해군 영웅이었어요.이 글은 첫머리부터 독자의 허를 아주 제대로 찌릅니다. 스페인이 무적함대를 영국으로 떠나보내던 바로 그 시절 이야기로 시작하거든요. 서양 사람들이 해전사의 전설로 떠봤는 그 시절입니다. 같은시기 동양의 외진 바다에서 역사상 손꼽히는 해군 영웅이 싸우고 있었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는 나라를 잃은지 20에 가까이 된 처지였습니다. 우리 영웅의 이름을 우리 입으로 크게 부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죠. 놀랍게도 지구 반대편 해군 학소지는 충무공을
12:18 영웅이라 부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로부터 15년 뒤 두 번째 글이 실려요. 1944년 6월이었습니다. 미국이 태평양에서 일본과 섬 하나하나를 놓고 피를 흘리던 한복판이었죠. 바로 그 달 미국은 사이판 상륙을 앞두고 있었어요. 전쟁의 승구가 걸린 정말 뜨거운 시기였습니다. 제목은 이순신 바다에서 일본을 꺾다 쓴 사람은 해군 예비군 소속의 한 중이었어요. 눈앞에 적고 한창 싸우던 현역 장교가 쓴 글이였죠. 그런 사람이 350년 전 같은 적을 꺾은 조선 제독을 진짜 스승처럼 펼쳐든 겁니다. 적을이기는 법을 옛 스승에게 묻고 있었던 샘이에요.이 글은 충무공이 어떻게 적의 바닷길을 끊었는지 차근차근 짚어
13:03 나갑니다. 보급을 끊으면 대군도 무너진다는 교훈은 태평양의 미국 해군에게도 그대로 통하는 이야기였죠.이 이 글에는 영국의 해군사가 벨러드 제독의 평가도 인용되 있습니다. 영국인으로서 네슨에게 맞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란 늘 어렵다. 그럼에도 그런 인무을 하나 꼽아야 한다면 패배를 몰랐던이 동양의 사령관이다. 그리고 그 뒤에 정말 섬뜩한 표현이 하나 이어집니다. 그가 지나간 뱃길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일본 배들의 자네만으로도 그려낼 수 있다는 거예요. 소름 돋지 않으세요? 지도의 선을 그는게 아니라 적선의 자네를 이어 항로를 그린다는 겁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1967년 같은 학술지의 세 번째 글이 실렸어요.
13:48 제목은 거북선의 재왕이었습니다.이 글은 16세기 후반 세계의 바다를 바꾼 작전 세 개를 꼽았어요. 지중에 레판토 회전, 스페인 무적함대의 격파 그리고 충무공의 바다였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서양 해전사의 두 전설과 조선의 바다를 같은 줄에 세운 거죠. 정리해 보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일본 학자는 깎아렸습니다. 일본 해군은 고개를 숙였어요. 그리고 미국 해군은 거의 100년 동안이 이름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공부했죠.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대단한 이름을 미국 대중은 왜 까맣게 몰랐던 걸까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충무공은 전문가들끼리만 돌려읽는 편지 속에 있었어요. 해군 장교와 전쟁사 연구자들의 책상 사이만
14:36 오가던 편지였죠. 사실 할리우드는 그 봉투를 한 번도 뜯어보지 않았습니다. 게임 회사도 장난감 회사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사이 사무라이와 닌자는 극장과 안방 텔레비전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결국 유명해지는데 필요한 건 진짜 업적보다 얼마나 자주 눈에 띄느냐였던 거죠. 하지만 인터넷이 이판을 뒤흔들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전문가의 편지를 직접 뜯어볼 수 있게 됐어요. 미국 유튜브에 올라온 총모공 해설 영상에는 댓글이 무려 수천 개씩 달립니다. 량의 마지막 장면만 잘라낸 짧은 영상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요. 해설을 듣던 사람들이 되묻는 말은 되게 하나로 모입니다. 이게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냐는 거죠. 교과서에서 한 줄도 못 본 이름이라 충격이 정말 큰
15:23 거예요. 100년 듣게 붙인 편지가 드디어 대중의 우편함에 꽂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이 편지를 가장 먼저 대중에게 배달한 사람이 있어요. 앞에서 말씀드린 그 시카고 청년 만화가 온니 콘판입니다. 2006년 콤파는 대학에서 창작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어요. 케이블 채널을 돌리던 괴의 손이 한국 사극 하나에서 멈춥니다. KBS 대하라마 불멸의 이순신이었어요. 한국어도 모르던 미국 대학생이 100회가 넘는 대하 사극에 빠져든 거예요. 콤파는 그 드라마를 무려 수십번 되돌려보며 관련책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건 한 번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승리가 슈퍼히어로 만화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거죠. 그는
16:09 충무공을 만화로 그리기로 마음 먹습니다. 문제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심지어 동양 역사를 다룬 만화를 대주겠다는 출판사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사무라이 이야기는 팔려도 조선 제독 이야기는 안 팔린다는게 어깨의 상식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그의 계획은 누가 봐도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콤파는 재손으로 책을 찍기로 합니다. 가비로 만든 책을 들고 미국 곳곳에 만화 행사를 돌았어요. 그렇게 찾아간 행사장이 무려 120곳이 넘습니다. 한 권 한 권 손으로 건네며 조선 제독 이야기를 풀어 놓았죠. 그 세월이 무려 17년이에요. 그 끈기가 쌓여 46만 부라는 숫자가 된 겁니다. 게다가 행사장 한 곳에서 15500권 넘게 팔려 나간 날도
16:56 여러 번 있었다고 해요. 처음엔 이름조차 모르던 미국 독자들이 이제는 다음 권을 기다립니다. 한국 정부도 한국 기업도 아닌 미국 청년 한 명이 해낸 진짜 기적이었어요. 콤페는 실존 영웅의 이야기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통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지금 미국 독자들이 증명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충무공에게서 가장 크게 흔들리는 장면은 뭘까요? 승리의자가 아닙니다. 마지막 장면이에요. 1598년 겨울 노량 앞다 7년 전쟁의 마지막 해전이 벌어집니다. 물러가려는 일본군을 끝까지 쫓던 충고공에게 적의 총탄이 날아와 박혔어요. 쓰러진 그가 남긴 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17:41 내지 마라.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그가 걱정한 건 두 아들의 사기였어요. 장군이 쓰러진 걸 알면 병사들이 흔들릴 테니까요. 조선수구는 그의 죽음을 모른 채 끝까지 싸워 이겼습니다. 소름 돋는 건 장수가 숨을 거둔 뒤에도 함대가 그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겁니다.이 장면을 처음 접한 미국인들 사이에서 자주 보이는 반응이 있어요. 이게 영화가 아니라 실제 기록이냐는 겁니다. 영화 속 사무라이는 멋진 대사를 남기려고 죽습니다. 충무공은 자기 죽음을 숨기라 이러고 떠났어요. 정환되죠. 하나는 관객을 위한 죽음이고 하나는 나라를 위한 죽음이었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이 장면을 정리하다가 울컥했습니다. 수백번은 들어온 이야기데도요. 더 놀라운 건 그의
18:27 삶이 한 번도 순탄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두 번이나 억울하게 모든 걸 잃고 배그 정군을 했습니다. 제급장을 떼고 맨몸으로 군대를 따라다니는 그야말로 치옥이었죠. 그를 모함한 사람들에게 안갚가품을 꾀했다는 기록도 없어요. 그저 다시 불려나와 다시 바다를 지켰을 뿐입니다. 나라가 등을 돌려도 그는 나라의 등을 돌리지 않았던 거예요. 사토제독이 내보다 위라고 적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던 거예요. 통쾌하게도 실력에서 이기고 사람 됨이에서 한 번 더이긴 겁니다. 물론 반대편 목소리도 있습니다. 첫째, 명량은 생각만큼 큰 싸움이 아니었다는 주장이에요. 사실 일본 쪽 기록은이 싸움을 비교적 짧게 다루는 편이거든요. 하지만이 싸움 뒤 일본
19:13 수군이 서해로 치고 올라가려던 계획이 꺾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탄을 바꾼 싸움을 작은 싸움이라 부르긴 어렵죠. 둘째, 거북선에 정말 철갑이 쉬워져 있었는지는 확실했치 않다는 지적입니다.이 부분은 우리 학계에서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철갑이 있었든 없었든 바뀌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배를 앞세운 함대가 끝까지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셋째, 충무고 혼자 이룬 공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맞는 말이에요. 거북선을 함께 만든 나데온 같은 인물과 이름없는 수군들이 있었죠. 그래서 정말 더 대단한 겁니다. 무너진 수을 다시 모아 한 방향으로 묶어낸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요. 일리 있는 반론들이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아요. 적이었던
20:00 일본 해군이 먼저 인정했고 미국 해군이 100년 가까이 공부했으니까요.이 열기는 바다 건너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겨울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특별전이 열렸어요. 96일 동안 무려 4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물려들었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다룬 전시로는 역대 최다 기록이었죠. 박물관 특별전 전체로 봐도 루브르 이집트 문명전 다음은 성적이었어요. 관람객들의 발길에 붙든 건 칼과 가북보다 난중일기 속 인간 이순신의 고내였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지나며 무심고 올려다보던 그 동상. 그 안에 이토록 뜨거운 사람이 있었다는 걸 우리도 다시 확인한 거죠. 참 미국인들이 이제야 알아본 영웅을 우리는 매
20:45 광화문에서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이 바람은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큽니다. 명량에서 한산 노량으로 이어진 영화 삼부작도 해외 관객에게 그 이름을 알렸어요. 사무라이가 수십년 걸려 차지한 자리를 충무공은 이제 막 넘보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이 싸움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았어요. 한쪽은 할리우드와 게임 회사가 수십년 동안 밀어준 선수였습니다. 다른 한쪽은 번역조차 제대로 안 된 채 서고에 잠들어 있던 선수였죠. 그런데도 판정이 뒤집히고 있는 겁니다. 진짜 기록의 힘이 포장의 힘을 이기고 있는 거예요. 결국 미국이 충무공에게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이겁니다. 사무라이는 지어내야 했고 충무공은 있는 그대로 말하기만
21:31 하면 됐어요. 일본 학자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던 이득. 적국의 해군조차 넬슨 위에 올려세온 이름. 그 이름이 바로 우리 조상 충무공 이순신입니다. 오늘 이야기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원할 필요가 없는 영웅. 그게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할리였습니다. 충무공께 드리고 싶은 한마디를 댓글로 남겨 주세요. 좋아요와 구독은 이런 이야기를 계속 만드는 큰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