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총애를 받던 홍국영이 역적이 된 이유 #highlight #벌거벗은한국사 EP.44

خلاصه مختصر

این ویدیو به بررسی زندگی و دوران قدرت گرفتن هونگ گوک-یونگ، یکی از شخصیت‌های بحث‌برانگیز در تاریخ چوسان می‌پردازد. او که به عنوان دست راست پادشاه جونگجو به قدرت رسید، به سرعت نفوذ خود را گسترش داد و رفتارهایی از خود نشان داد که منجر به سقوطش شد.

  • هونگ گوک-یونگ با استفاده از موقعیت خود، افراد را کنترل و در امور سلطنتی دخالت می‌کرد.
  • جاه‌طلبی‌های او برای به قدرت رساندن خاندانش و کنترل جانشین پادشاه، باعث شد تا از چشم پادشاه بیفتد.
  • سرنوشت غم‌انگیز او، از تبعید تا مرگ زودهنگام و اتهام خیانت پس از مرگ، نشان‌دهنده خطرات قدرت بی‌حد و مرز است.

قدرت‌نمایی هونگ گوک-یونگ

پس از ایجاد دفتر "سوگی سو"، هونگ گوک-یونگ با بازرسی تمام افرادی که قصد ملاقات با پادشاه جونگجو را داشتند، قدرت زیادی به دست آورد. او با رفتارهای متکبرانه و بی‌احترامی به مقامات ارشد، جایگاه خود را به رخ می‌کشید و در "سوگی سو" که نزدیک به محل اقامت پادشاه بود، با رفتارهای ناپسند به استقبال مقامات می‌رفت. این دفتر به مکانی برای تجمع افراد چاپلوس تبدیل شده بود.

فساد و رفتارهای ناشایست

رفتارهای گستاخانه هونگ گوک-یونگ به اینجا ختم نشد. او با زنان خدمتکار در قصر رابطه داشت، که این عمل در آن زمان جرم بزرگی محسوب می‌شد و می‌توانست منجر به از دست دادن مقام شود. هونگ گوک-یونگ به تدریج با پر کردن دربار از افراد مورد اعتماد خود، قدرت خود را افزایش داد.

سکوت پادشاه جونگجو

پادشاه جونگجو در ابتدا در برابر رفتارهای هونگ گوک-یونگ سکوت کرد. هونگ گوک-یونگ با ازدواج خواهرش با پادشاه، قصد داشت تا به یک خویشاوند سلطنتی تبدیل شود و با به دنیا آمدن فرزند از این ازدواج، کنترل تاج و تخت را در دست بگیرد.

انتخاب همسر سلطنتی و ارتقاء بی‌سابقه

با توجه به اینکه پادشاه جونگجو پس از 15 سال ازدواج فرزندی نداشت، دربار تصمیم گرفت تا یک همسر جدید برای پادشاه انتخاب کند. خواهر هونگ گوک-یونگ برای این مقام انتخاب شد و به طور غیرمنتظره‌ای به بالاترین مقام در بین همسران سلطنتی، یعنی "بین" (嬪) با رتبه "جونگ ایل품" (정1품) ارتقا یافت. این رتبه معمولاً به همسرانی داده می‌شد که پسری به دنیا آورده بودند.

نامگذاری بحث‌برانگیز

نامی که برای خواهر هونگ گوک-یونگ انتخاب شد، "وون‌بین" (원빈) بود. استفاده از حرف "وون" (원) که به معنای "اول" یا "برتر" است، فقط برای پادشاه و ملکه مجاز بود. با این حال، پادشاه جونگجو این نامگذاری را تأیید کرد، که نشان‌دهنده نفوذ بالای هونگ گوک-یونگ بود.

سوء استفاده از قدرت و دخالت در امور داخلی قصر

پس از اینکه خواهرش "بین" شد، هونگ گوک-یونگ رفتارهای گستاخانه‌تری از خود نشان داد و حتی ملکه را مورد انتقاد قرار می‌داد. پادشاه جونگجو همچنان سکوت کرد، اما این سکوت نشان‌دهنده نارضایتی او از رفتارهای هونگ گوک-یونگ بود.

مرگ ناگهانی و اتهامات

رویای هونگ گوک-یونگ برای به ارث رساندن تاج و تخت توسط یکی از بستگانش، با مرگ ناگهانی خواهرش در سال 1779، به پایان رسید. هونگ گوک-یونگ که از این اتفاق بسیار ناراحت بود، شروع به متهم کردن ملکه به مسموم کردن خواهرش کرد و دستور شکنجه خدمتکاران قصر را صادر کرد.

دخالت در انتخاب جانشین و سقوط

هونگ گوک-یونگ برای جبران این فقدان، تلاش کرد تا پسری را به عنوان فرزندخوانده برای پادشاه و خواهر مرحومش انتخاب کند. او بدون توجه به قوانین سلطنتی و مخالفت بزرگان دربار، "لی دام"، پسر برادر ناتنی پادشاه را به عنوان فرزندخوانده انتخاب کرد و نام "وان‌پونگ گون" (완풍군) را برای او برگزید. این نام ترکیبی از نام خانوادگی پادشاه (یئ) و نام خانوادگی خود (هونگ) بود، که نشان‌دهنده جاه‌طلبی‌های او برای ایجاد یک خاندان قدرتمند بود.

پایان قدرت و تبعید

پادشاه جونگجو که از رفتارهای هونگ گوک-یونگ به ستوه آمده بود، او را مجبور به استعفا کرد و از ورود به پایتخت منع کرد. هونگ گوک-یونگ در سال 1781 در سن 34 سالگی در تبعید درگذشت.

اتهام خیانت پس از مرگ

پنج سال پس از مرگ هونگ گوک-یونگ، او به اتهام خیانت محاکمه شد. این اتهام پس از مرگ پسر اول پادشاه جونگجو مطرح شد و ملکه جونگ‌سون، مادربزرگ پادشاه، هونگ گوک-یونگ را مسئول این مرگ دانست. به این ترتیب، هونگ گوک-یونگ که زمانی قدرتمندترین فرد در دربار چوسان بود، به عنوان یک خائن شناخته ش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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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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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수기소가 생긴 이후에 궁궐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수기소에 있는 홍구경의 검문을 거쳐야만 정족 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홍국영이 문고리 권력을 손에 주게 된 거죠 자 그렇게 문무관을 넘나들며 나라의 주요 관직을 꿰차게 된 30살에 홍구경 자 그렇다면 조선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영상을 통해서 한번 확인해 보시죠 좌회전 아이고야 자세가

0:48 입이 너무 위치가 사람을 만들어요 눈은 안 내려 왜 그럴까 영상에서 수기대장 홍구경을 찾아온 인물 바로 조선조직에서 가장 높은

1:34 직책 중 하나인 좌회전이었습니다 나이로 보나 정치 경력으로 보나 자신보다 훨씬 위에 있는이 대신에 앞에서도 지금 한껏 건방을 떨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요 홍구경의 실제 행동은요이 드라마보다 더 심각했 [음악] 덩이를 부르고 대답하는 것이 마치 사사집과 같았고 방화되는 늘 다리가 높은 평상을 두고 맨발로 다리를 뻗고 앉았다 궁궐 안에 있는 수기소는 왕인 정조가 거처하는 것과 고작 담

2:20 하나로 막혀 있을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 방안에서 홍구경은 늘 맨발로 다리 쭉 뻗고 교만한 자세로 고관대작들을 맞이했다는 겁니다 이러니 홍국의 위세가 어땠을까요 그냥 말 다 했죠 수기소문은요 홍구경이 아부하기 위한 벼슬아치들로 늘 문정선실을 이뤘다고 합니다 [음악] 기고만장한이 홍국의 행동은요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음악] 직녀들을 데려다가 온갖 어지럽고 더러운 짓을 일상만

3:08 따는 겁니다 진짜요 그런 일이 있나요 [음악] 궁녀와 간음하는 것은 영원히 관직에 설 수 없는 죄에 해당됩니다 남의 집 높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던 조선 사회에서 왕의 군인들과 더러운 행동을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게 없는 그런 행동인 거죠 너무 실망스럽다 마음이 아파 진짜로 자 이렇게 모든 국정은 정조에게 보고 되기 전 살펴보는게 당연시 됐습니다 조선조종은 어느새 홍국인의 세력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하늘을 찌를듯한

3:55 홍고경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런 말까지 있었습니다 홍국영과 갈라서는 자는 역적이다 자 그렇다면 이때 정조이 상황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요 정조는 홍구경의 모든 행동에 침묵으로 일어납니다 침묵 정조와 자신의 여동생을 결혼시켜서

4:42 왕실에 외척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아 그리고 그 정조와 자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이것이 아들이 태어난다고 자신의 핏줄을 이은 조카가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꿈이 엄청 크네요 그런데 놀랍게도요 상황은 홍보경에게 무리하게 돌아갑니다 당시 정조는요 정신을 부인이었던 효의 왕과 혼이든지 15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어요 자 이게 정조의 나이가 27살

5:31 그렇게 마음이 조급해진 왕실에서 왕의 후살을 입기 위해 이제라도 무엇을 드리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후궁 후궁 그렇죠 후궁을 드리자고 했던 거예요 그리고 이때 간택된 후궁은 누구였을까요 홍국영의 여동생 맞습니다 하나뿐인 여동생이었습니다 [음악]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간택된 홍구경의 여동생이 유례없는 대우를 받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뭐야

6:16 [음악] 하자마자 [음악] 후궁 최고 품게 오른 겁니다 자 빙의 어떤 풍기입니까 정일품이에요 정일품이 정일품인 b는요 보통 왕자를 낳은 후궁들에게 내려지는 품계입니다 [음악] 딱 떠오르는 사람 누구입니까이 빈 되기까지 몇 년 걸렸습니다 근데 그걸 한번에 왜 그래요 [음악]

7:02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냥 빡 느껴보시죠 하지만 [음악] 타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홍국영 여동생의 후궁 간택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요 바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바로 원빈 이름이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원이 으뜸원이거든요 제가 장예원이어서 [음악]

7:54 이 으뜸 원자는요 조선의 왕과 왕비만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홍구경이 여동생에게 원 원빈이라는 이름이 내려진 겁니다 그 이유는 뭐였을까요 바로 홍국영이 으뜸 원자를 써서 원빈이라는 이름을 짓고 정조에게 올렸던 겁니다 [음악]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요 정조는 [음악] 허락합니다 [음악]

8:39 이런 황당한 파격이 가능했던 이유 그건 바로 실세 홍보경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자 이렇게 왕의 사돈이 된 홍국영 어마어마한 [음악] 폭풍을 몰고 옵니다 그 누이가 빙이 되고서는 더욱 방자하고 무도하여 곤전의 허물을 지적하여 함부로 몰고 협박하는 것이 그지 없었으나

9:28 그 아이를 못 가졌다는 그 중전 자 이런 태도를 본 청조 어떻게 했을까요 역시 침묵으로 일관한 겁니다 [음악] 답답해 침묵할수 임금이 참고 말하지 않

10:13 았 자 그러니까요 지금까지 묵인과는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단 참았다는 것은요 결국 한국인의 태도가 정조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거다 시작한 건 아닐까요 자 그런데요 조카로워야금 왕위를 있게 하겠다는 홍구경의 꿈은 불과 1년만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미 세상을

10:59 떠나셨어 1779년 5월 행복에게 여동생 원빈 홍씨가 투사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겁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32살의 홍보경 그는 하나뿐인 여동생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시랍니다 이때 슬픔에 잠긴 홍구경은요 여동생의 죽음을 두고 누군가를 향해 폭주합니다 그 누군가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12:04 제 누이가 죽은 것을 감히 곤전에게 의심해 내전 나인 여럿을 잡아다 칼을 빼내고 무수히 치며 혹독한 고문을 하였다 중전 때문에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거네요 지금 저 글을 보면 약간 지금 이성을 좀 잃은듯한 느낌인데요 여동생을 독살했다고 의심하는 겁니다 그리고 효의왕의 궁녀들을 잡아다가 잔혹하게 지금 고문까지 하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건 정조와 왕실의 입장에선 선을 넘어도 제대로 넘는

12:49 행동이었습니다 감히 하나씩 하나가 조선의 왕비를 능멸한다 자 정조 이번엔 어떻겠을까요 이젠 안 참을 것 같아요 이제는 참을 수 없어요 정조는 참습니다 피부츠의 죽임과 관련된 문제니까 인간적인 실수라고 생각하고 정조는 어떻게든 홍구경을 이해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너무 슬프니까

13:35 왕실에서는 또 다른 후궁을 찾아보려고 할 거 아닙니까 그죠 이때 마음이 급해진 홍구경이 꼼수를 부린 거예요 정조와 죽은 원빈 홍씨 사이에 양자를 드리려고 한 겁니다 이거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런 행동이죠 그런데 사실 당시 조선에서는요 자식 없이 죽을 경우에는요 제사를 지내줄 양자를 사후에들은 일은 많이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문제는 이거는 지금 왕실의 입양 문제를 왕실의 인원도 아닌

14:21 홍국영이 개입해서 진행했다는 거죠 자 양자를 드릴 때는요 왕실의 가장인 정조뿐 아니라 정실 부인인 왕비와 왕실에 큰 어른인 대비에 동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홍구병은이 모든 걸 무시하고 막무가내로이를 진행했던 겁니다 정조의 양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러니까 어디서 오신 분이에요 어디서 왔지 바로 사도세자의 아들 아들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혼 군의 아들 이담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5:10 일단 왕실 혈통에서 항렬상 정조의 아들 학렬인 조카 중에서 골라야 됐거든요 그래서 홍보경은 정조의 조카 이담을 정조의 양자로 선택했던 겁니다 자 그리고 만약 이담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홍보경은 이담을 자신의 스텝대로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죠 자 그리고 홍국이군요 정조가 더 이상 아들을 얻을 수 없도록 새로운 허공을 드리는 것까지 막습니다 자 그렇게 제멋대로 정조의 양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이

15:57 홍구경 자신의 야심을 담아 은원군의 아들 이담에게 이런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보시죠 완풍군 홍국영이 이다음에게 지은 이름 속엔 무시무시한 홍보경에 야망이 자 완은요 왕의 본관인 전주의 옛 이름 완산 그리고 풍 풍은 자신의 본관인 풍산홍씨

16:43 풍에서 따온 말입니다 즉 전주 이씨 왕가의 핏줄에 은근슬쩍 자신의 집안인 풍산홍씨를 끼워 넣은 겁니다 즉 임금의 가문과 홍국영 가문의 결합을 뜻하는 이름 이게 바로 완풍군 자이 말은 곧이어 홍구경이 정조의 양자를 통해 꿈꾼게 바로 이것이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허구경이 은밀히 나라의 근본을 옮기려는 계책이었다 그러면은 역적인데요 아 그렇죠 영문을

17:28 껴안고 있는 건데 지금 결국 홍구경의 궁극적 목표는 양자인 완풍군을 앞세워 세도정치를 펼치겠다는 거였죠 세도정치 당시 정조실록을 편찮은 사관들이이 완풍기라는 이름을 듣고서 옆구리 오싹했는데 그 홍국영의 위세의 눌려 가지고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고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조로써도 그냥 방치해두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같습니다 너무 많이 갔어 자 그렇게 정조는 [음악]

18:18 간밤에 공도 승지가 스스로 사직을 청하였네 과외는 그를 봉조화로 삼합이로 하고 그의 사진을 윤화하도록 하겠네 정조에게 사직하겠다고 먼저 말한 겁니다 지금까지 얘기 듣듯이 지금 홍구병은 스스로 문어를 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정조가 미리 불러서 사직 하라고

19:03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이 가능성이 좀 클 거 같아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좀 생각을 해주는 건가 보네요 이렇게 홍구경은 그 권력을 잡은지 불과 4년여 만에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군 밖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조가 홍국영에게 내린 명령 다시는 도성을 들어올 수 없 다 그렇게 한양에서 추방되어이 강원도 횡성을 거쳐 강릉까지 본국의

19:50 결국 1781년 34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유대지 강릉에서 병사합니다 자 그런데요 홍구경의 사후 5년 뒤인 1786년 죽은 홍구경에게 또 한 번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홍구경을 역적으로 칭한다는 겁니다 죽었는데 이미 그렇죠 죽은 홍구경이 왜 갑자기 역적이 되었을까요 정조의 첫 아들 모녀 세자가

20:36 짝스럽게 죽게 되거든요 그런데 왕실에 큰 어른이자 정조의 새 할머니였던 정순왕후가 무효세자의 죽음에 홍구경과 관련된 사람이 개입돼 있다고 선포한 겁니다 바로 궁궐에 남아있는 궁녀라든가 4시 같은 홍국의 말한 거죠 예전부터 왕씨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조정은 쥐고 흔든 홍구경이 정순환은 언짢았던 거예요 그 오만방자였던 행동을 잊지 않고 있다가 무효세자의 죽음을 빌미로 죽은 홍구병을 역적으로 규정한 겁니다

21:24 홍구경은 감당하지 못할 권력을 쥐고 과욕을 부린 결과 스스로 몰락하고 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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